'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0.08.11 모순인가 아닌가 3
  2. 2010.08.08 종기 2
  3. 2010.08.04 심기일전 16
  4. 2010.08.03 방심 10
  5. 2010.07.30 재산세 1
  6. 2010.07.30 냉방병 2
  7. 2010.07.29 기억 7
  8. 2010.07.21 방향감각의 한계 9
  9. 2010.07.16 거슬림 23
  10. 2010.07.09 생각과 달라 5

내가 아는 언론인과 사진작가 부부가 있다. 언론인인 남자의 취재 도구는 볼펜과 작은 수첩, 소형 녹음기가 전부다. 남자는 가방도 없이 여기저기 다니다 뭔가 기록할 일이 있으면 재킷 주머니에 넣어둔 수첩과 볼펜, 소형 녹음기를 꺼낸다. 가끔은 노트북 컴퓨터를 소지하고 다닐 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땐 기사를 바로 송고하거나 자료를 참고해야 하는 경우이고, 대부분은 양손을 자유롭게 하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 그와 동반 기사를 취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어쨌든 언론인 남편보다 상대적으로 촬영도구가 많은 여자는 작은 체구에 여러 종류의 카메라와 렌즈가 들어 있는 큼지막한 가방을 늘 어깨에 짊어지고 다닌다. 본격적인 촬영이 있는 날 쫓아다녀본 적이 있는데, 웬만한 택배상자보다도 큰 카메라 가방엔 각종 카메라와 렌즈, 빛의 느낌을 확인하기 위해 먼저 찍어본다는 폴라로이드 카메라까지 들어 있어 무게가 20킬로그램은 족히 될 듯 했다.

특별히 전문적인 취재나 촬영이 있는 날은 아니지만 둘이 같이 관련된 행사 때문에 두 부부가 같이 외출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남자는 맨몸에 빈손이고, 여자는 예의 그 묵직한 카메라 가방을 들었다. 남편은 아내의 카메라 가방을 들어주어야 할까, 아닐까? 더욱이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남자는 185센티미터의 장신에 100킬로그램은 나가는 거구인 반면, 프리랜서 사진작가인 아내는 150센티미터의 단신이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둘과 동행하게 됐을 때 나는 빈말로라도 카메라 가방을 대신 들어주겠다는 말 한 마디 안하는 남자의 태도에 분개했고, 복잡한 인사동을 함께 거닐며 나 역시 비슷한 단신임에도 사진작가 친구에게 가방을 같이 들자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헌데 친구는 괜찮다며 내 호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마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어깨가 아파 가방 매는 쪽을 자주 바꾸면서도.  

가끔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은 나는 반나절을 지켜보다 참다못해 덩치 큰 남편에게 왜 부인 짐을 대신 들어주지 않느냐고 묻고 말았다. 넌 짐도 하나 없으면서, 가냘픈 아내가 끙끙거리며 그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혼자 들고 다니는 게 가엾지도 않냐고. 남자는 오히려 내 질문을 의아하게 여겼다. 사진작가로서 무거운 촬영도구를 들고 다니는 건 어디까지나 당연한 일인데, 왜 자기가 간섭해야 하느냐고. 자기 아내가 사진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을 땐 그에 수반되는 모든 수고로움까지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므로, 온전히 본인의 책임이라고. -_-; 논리적으로 너무도 맞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들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그런 '쿨'한 사고방식과 행동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인 부부였다면 둘 다 아무리 '프로'다운 직업인이라고 해도, 둘이 같이 움직일 땐 상대적으로 힘 센 남편이 아내의 짐을 잠시라도 들어주지 않았겠나 말이다.

이번엔 예순 살의 아버지와 열일곱 살의 늦둥이 딸이 있다. 역시나 이들도 미국인이다. 방학을 맞아 이혼한 아버지의 집에 다니러온 십대의 딸은 올 때보다 더 빵빵해진 큼지막한 가방을 낑낑거리며 짊어지고 아버지의 배웅을 받는다. 가방의 무게 때문에 딸은 걸음걸이가 휘청거릴 정도다. 아버지는 시원섭섭함을 느끼며 딸을 위해 현관문을 열어주는 친절을 베푼다. 그의 배웅은 아파트 현관에서 끝이 난다. 주차장까지 함께 나가는 건 아버지 본인도, 딸도 상상조차 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예순 살이라고는 하지만 깡마른 십대 딸보다는 그래도 아버지가 주차장까지 짐을 옮겨다주어야 '자연스럽지' 않을까? 물론 어디까지나 이건 내 생각이지만. 

이 장면은 지금 작업중인 소설의 이야기인데, 나는 이 부분에서 몇년 전 친구 부부의 에피소드가 떠올랐고 확실히 내가(심히 비약하자면 한국인이) 의존적이구나 하고 느꼈다. 책 속에서 아버지가 무거운 딸의 짐을 스스로 옮기도록 내버려두는 장면은 그의 매몰찬 성격이나 무정함을 묘사하려는 뉘앙스가 전혀 없고, 그저 자연스러운 작별의 장면일 뿐이었다. 물론 유별난 딸의 독립심과 괴력을 강조한 것도 아니다. 다만 가족 안에서도 개인주의가 통용되는 미국 사람들의 사고가 드러났을 뿐이다. 부녀 사이에도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지는 게 원칙상 옳긴 하다. 그럼에도 나는 어느 틈엔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 같으면 당연히 나 대신 짐을 옮겨다 줬을 텐데, 라고. 위에 적은 친구 부부의 에피소드에서 내 주변 남자들 같으면 당연히 아내의 카메라 가방을 대신 들고 다녔을 텐데, 라고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나는 무겁든 가볍든 남자들이 여자의 핸드백을 대신 들고 다니는 걸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며(다만 책가방은 인정 ^^;), 사사건건 "여자는 약하니까 이런 건 못해!"라고 핑계대는 여자들을 줄곧 혐오하며 집밖에선 늘 괴력을 발휘해온 이른바 돌쇠형 여자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묵직한 아기 캐리어와 기저귀 가방, 시장바구니 따위는 남편이 매고 들어야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남편이 아내보다 더 힘이 세다는 전제 하에. 요즘엔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별로 그런 커플이 눈에 띄지 않지만 몇년 전까지도 흔하게 보았던, 아내에게 아기와 기저귀 가방을 모두 들게 하고 본인은 빈손으로 한가로이 걸어가는 뻔뻔한 남편들의 뒤통수를 내가 얼마나 째려보며 욕했던가.

돌이켜보니 나는 양성평등과 성별역할 구분의 철폐를 집밖에서만 엄중이 부르짖었던 것 같다. 집안은 마치 그런 원칙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 마음껏 응석을 부리거나 편협한 태도를 취해도 용서될 수 있다는 듯이. 물리적인 힘을 쓰는 부분에서도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건, 무조건 남녀 공히 군대에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어린이든 성인이든 하나의 인간 개체임은 마찬가지이므로 모든 사회적 의무를 똑같이 져야 한다고 우겨대는 억지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어쩐지 집 안과 밖에서 성별 문제에 대한 나의 이런 태도가 모순처럼 느껴지는 걸 피할 수가 없다. 험악하게 운전하는 것조차 여성에 대한 편견 타파와 양성평등을 향한 내 나름의 노력이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면서, 정작 집안의 영역에선 상당히 '연약한' 여자라 '특별히' 더 존중받아야 한다는 특권을 자임했다. 물론 나의 이런 태도는 맏딸이면서 고명딸이라는 지위에서 오는 프리미엄이 작용한 덕분이다. 상대적으로 두 남동생들은 나 때문에 역차별을 당하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체중과 체구에 상관없이 어느덧 집안에서 '힘쓰는' 인물이 되면서, 그리고 '딸이고 첫째'이라서 더 예쁨을 받는 건 엄연한 '차별'임을 눈 동그랗게 뜨고 지적하는 똘똘한 조카들 덕분에 집안에서도 성 역할의 경계는 확실히 무너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또 불쑥 걱정이 든다. 가족적 온정주의는 양성평등과 꼭 상충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제대로 공부는 안하고 몸으로 부딪치고 느끼는 현실로만 나름의 원칙과 이론을 정립하려니 생겨나는 부끄러운 헷갈림이다. 언제고 제대로 여성학 공부 좀 해봐야할 터인데, '과연' 언제나... 만날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고 한탄만 하는 이런 태도야 말로 진정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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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기

투덜일기 2010. 8. 8. 03:02

몇달에 한번씩 꼭 같은 자리에 종기가 솟아오른다. 병원에 가서 째고 치료를 받아야할 만큼 크고 심한 증상은 아니므로 '종기'라고 불러야할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왼쪽 날갯죽지에서 반뼘쯤 내려온 곳에 잊을 만 하면 한번씩 불룩하게 응어리가 생겨나 어쩌다가 눌리면 약간 불편한 정도다. 거울로 비쳐보면 초기엔 약간 분홍색으로 두드러졌다가 점점 색이 진해져 거무스름하게 변하면서 어느 순간 명을 다한다. 계속 불편하거나 심하게 곪으면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찾을 생각을 할 터인데, 그간의 경험상 무지하게 마냥 버티면 언제고 스러짐을 알고 있기에 이젠 별로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다만, 몸에 화와 열기가 많아져 솟는 게 종기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이런 게 생겨나면 그제야 새삼 나를 돌아본다. 이제 좀 그만 까탈을 부리고 살라는 몸의 신호 같아서. 어떻게 보면 몸은 내 정신과 별도로 작용하는 또 하나의 유기체 같다. (이미 사실이 그러한데 무식하게 나만 모른 체 하고 있었을지도.) 복닥복닥 바둥거리는 내 정신에게 최대한 이리저리 끌려다녀주기는 하되, 어느 순간 못견디겠다 싶은 순간에 몸이 반기를 드는 형국 아닌가. 확실히 몇달에 한번쯤 몸이 종기란 놈을 앞세워 투정을 부리면, 일단은 기름진 것, 달달한 것도 좀 덜 먹으려 노력하고 버럭버럭 질러대던 성질머리도 좀 달래보려 애를 쓰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을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알고도 못하는 것들을 옆구리 찔러 일러주는 '고마운' 종기의 출현이 몇달만에 한번씩이란 건 확실히 문제지만, 더 크게 부풀렸다가 한꺼번에 펑 터뜨리는 것보다야 얼마나 기특한가. 정신과 몸이 둘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내 경우는 정신보다 몸쪽이 더 쓸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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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일전

투덜일기 2010. 8. 4. 20:15

덥고 습하고 불쾌지수는 하늘을 찌르고 몸은 쳐지면서 일은 몹시 바쁜 궁극의 구렁텅이에서 헤매느라 너무 짜증만 부렸다는 생각에 심기일전 용으로 그간 좋은 일을 꼽아본다.

7월 중순 즈음 번역 인생 50권째 책이 나왔다. 출간된 번역서가 100권 되는 날부터 옮긴이 약력에 '100여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는 문구를 넣으려고 작심하고 있었으나, 이 추세로는 어쩌면 100권 이전에 이 일을 작파하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번역서 50권 기념'을 홀로 자축했다. 15년전 첫해엔 딱 한권이 나왔고 중간에 2, 3년은 늦은 공부한답시고 일을 거의 못했으니 15년간 50권이면 게으름뱅이라고 심히 자책할만 한 수준은 아니라는 자평을 내렸다. 엎어진 책들과 앞으로 나오게 될 책까지 감안하면 심지어 칭찬해줄 만 하다.

상반기를 마무리하며 전에 없이 맥이 빠졌던 이유는 '유사이래 최대불황'이라는 출판계 넋두리가 새삼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원숭이 줄타기 원칙이 무색하게도 예년과 달리 번역 의뢰 전화와 계약건수가 엄청나게 줄어 밀린 일 말고는 7월 초까지도 하반기에 새로 잡힌 일이 하나도 없어 위기감을 느껴야 했다. 가뜩이나 일도 하기 싫던 차에 '이 길이 아닌가벼' 하며 다른 일을 모색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마감에 허덕이는 사이 새로운 일감이 밀려들었고 어느새 하반기 작업 스케줄이 모두 채워졌다. 믿을 수 있을지는 지내봐야 알겠지만 구두상으로는 내년 초까지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위기감에 허덕이다 고비를 넘기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나며 열심히 자신을 채찍질해 게으름을 쫓아내고 있다.

0.1퍼센트의 가능성도 없다고 확신하지만, 얼결에 모 번역문학상 심사를 신청했다는 출판사의 이야기를 들었고 (사실 아무나 다 신청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그럴만한 책이 전혀 아님에도 일단은 그런 논의에 끼어들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놀랍고 흡족하다. 번역기계가 된 느낌으로 안일하게 작업하던 와중에 그 소식을 들으니 한동안은 시시한 문장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못하고 끙끙대며 고민했다. '상' 여부와 상관없이(오히려 나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거 싫다)  남은 번역인생에서도 좀 더 치열한 자기검열의 동기가 되겠다 싶다. 

음.. 억지로 꼽으려니 좋은 일이 또 뭐가 있는지 잘 떠오르질 않는다. 다음달로 약정이 끝나는 휴대폰이 드디어 맛이 가고 있다는 건(확인과 취소 버튼이 잘 안눌러지고, 아무때나 수시로 꺼진다 -_-;;) 좋은 일인가 나쁜일인가. 나 또한 스마트폰의 대열로 접어들 것인지 말것인지, 그렇다면 기종은 뭘로 할 것인지, 스마트폰은 관두고 그냥 예쁘기만 하고 기능이 단순한 휴대폰으로 바꿀 것인지 행복한 고민중이다. 휴대폰 추천 환영. ^^; 

쓰고 보니 다 재수없는 자기 자랑인 듯 하여 민망함이 밀려들긴 하지만, 어차피 심기일전을 위해선 나에게도 필요한 부분이다. 앞으로는 더 좋은 일 신나는 일만 생겨나서 계속 이 목록을 늘려나갈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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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

투덜일기 2010. 8. 3. 00:47

벌레를 못 견뎌하는 편이라 날아다니는 모기가 한 마리라도 눈에 띄면 반드시 퇴치를 해야 안심하고 하던 일을 할 수가 있는 성격인데, 놀랍게도 올 여름엔 계속 모기가 별로 눈에 띄질 않았었다. 두어 주 전에 조카들 놀러왔을 때 비가 내리면 모기가 없을 줄 알고(어딘가 숨어 있다가 오히려 문이 열린 틈을 타 재빨리 실내로 숨어든단다!) 현관문을 좀 오래 열어두는 바람에 엉뚱한 객들이 모기에 뜯기는 사태가 발생하긴 했지만, 나는 지긋지긋한 모기 물림에서 퍽 자유로웠고 당연히 방심을 하고 말았다.
초여름에 모기 매트를 꺼내놓긴 했으되 켜고 잔 날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그만 7월 마지막 날을 보내며 보란듯이 여덟군데를 한꺼번에 물리고야 말았다. 긁적긁적 잠에서 깨어나 집중적으로 두 다리에 발긋발긋 흔적을 남긴 모기의 흡혈 자국을 보며 느꼈던 자괴감은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밤새 일하면서 모기 날아다니는 꼴을 전혀 못봤는데 대체 아침까지 어디 숨어 있다가 단체로 날아와 흡혈 잔치를 벌였단 말인가! 모기가 야행성이란 건 어디까지나 옛날 얘기고, 우리 집에 숨어든 모기들은 주인이 밤새 안 자고 있다는 걸 이미 간파해 오전중에 활동을 개시하는 모양이다.
모기에 물리더라도 사람마다 수월하게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하게 부풀어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후자쪽이다. 전혀 긁지 않고 모기약만 발랐는데도 하필 장단지와 발목을 공략당하는 바람에 걸을 때마다 긁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생겨났는지 자국은 점점 크게 분홍색으로 부풀더니 현재는 아예 실핏줄이 터진 것처럼 빨간색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악! 이렇게 되는 경우 십중팔구 모기 물린 자국은 가을을 넘기고도 거무스름한 흔적을 남기기 십상이다. 얼마나 독한 모기한테 물렸기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수시로 모기약을 뿌려대고 문득문득 혹시 날아다니는 모기는 없는지 살피고는 있지만 남은 여름 내내 다시 지긋지긋한 모기와 사투를 벌일 생각을 하니 한숨이 다 나온다. 여행갈 때 써먹으려고 사놓은 (작년에 사서 결국엔 개봉도 하지 않았다. ㅠ.ㅠ) 벌레 퇴치 스프레이를 여름 내내 뿌리고 살 수도 없는 일이고 원, 미칠 듯한 가려움증이 되살아 날 때마다 모기에 대한 혐오감으로 부들부들 치가 떨린다. 아 정말 모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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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세

투덜일기 2010. 7. 30. 14:20

나는 다달이 우편으로 날아오는 각종 공과금 청구서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다. 자원절약의 차원에서 각 회사별로 인터넷 청구를 권유하기도 하지만, 마치 빚독촉처럼 날아오는 청구서를 우편함에서 꺼내는 열어보는 것도 귀찮고 열어보고 난 청구서와 봉투를 처리하기도 짜증스러워 웬만한 청구서는 죄다 이메일 청구로 돌려놓은지 오래다. 신용카드, 의료보험, 국민연금, 각종 전화요금, 전기요금, 케이블 요금... 매달 이메일로 날아오는 청구서도 열어보기 짜증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훨씬 덜 번거롭고 웬만한 건 죄다 자동이체 신청을 해두었으니 더는 깊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다달이 있는 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이메일 청구를 신청해놓았는데도 굳이 우편 청구서가 이중으로 날아오는 경우가 있다. 바로 자동차세와 재산세다. 월초에 이메일로 재산세 청구서를 받고는 왠지 얄미워서 최대한 미루다 마지막날 즈음에 내야지 결심하고 있었더니 엄마 명의로 된 재산세 청구 우편물과 함께 내 청구서도 동시에 도착했다. 아 또 뭐야! 에너지 낭비를 막자더니만 왜 이중으로 보내고 지랄! 그러더니 지난주엔 '재발송'이라면서 이메일로 재산세 청구서가 또 와 있었다. 전기요금 청구 메일이 와도 안열어보고 있으면 수신확인을 감지하는지 종종 재발송 메일이 날아오던데, 이번엔 메일을 읽었는데도 또 보낸 걸 보면 중간 세금 납부 집계를 해서 아직 안낸 사람들에게 재발송을 했다는 뜻일까? 아니 왜???? 연체시킨 것도 아니고 납부일이 남았잖아! 잘 하던 짓도 누가 시키면 삐딱해지는 내 성깔을 건드린 것 같아서 가뜩이나 기분이 나빠지려는 참인데, 그제는 급기야 빚독촉하듯이 재산세 마감일을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서울시 재산세 납부마감일 8월 2일까지!! etax.seoul.go.kr에서 조회납부 가능합니다.

아으!!! 결론은 하나다. 정부와 서울시는 지들이 채권자라고 생각하고 국민과 시민을 채무자로 여기고 있다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왜 네 번이나 빚독촉을 하겠나! 성질 같아선 8월 2일까지 최대한 개기다가 인터넷 납부 마감시간에 내주고 싶었지만, 마지막날은 접속도 원할하질 않고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또 독촉메일이나 문자가 날아오면 더욱 짜증이 날 것 같아서 조금 전 그냥 '내주고' 말았다. 그러고 나니, 결국 칼자루를 쥔 저들의 음모대로 고스란히 억지춤을 춰준 꼴이 아니고 뭔가. 아무리 세금납부가 국민의 기본 의무라지만, 정부는 국민을 돌봐야 하는 기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으면서 적반하장으로 빚독촉만 해대는 꼬라지에 정말 울화가 치민다. 내가 낸 세금으로 또 쓸데없이 애먼 삽질이나 해댈 거잖아!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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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방병

투덜일기 2010. 7. 30. 02:48

해마다 여름이면 몇차례씩 꼭 냉방병 때문에 괴롭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리고 소화가 안되고 눈이 쏟아질 것 같고... 기막히게 더운 바깥 날씨와 너무 차이 심한 실내 기온 사이에서 몸이 갈팡질팡하다 결국 탈이 난다는 얘긴데, 긴팔 옷을 하나씩 갖고 다니며 기온 적응에 애를 써봐도 어떤 날은 말짱 꽝이다. 바로 오늘처럼.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건 내가 원시의 몸으로 과분한 현대에 적응하려 낑낑대는 진화 덜 된 인간형이란 사실이다. 물론 정말로 원시사회에 놓였다면 제일 먼저 도태되었을 허약하기 짝이 없는 인류가 바로 나다. 냉방병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인위적인 냉방환경을 없애는 것뿐이라는데, 그 환경에서 벗어난지 4시간이 넘어가는데도 좀체 회복되지 않는 이놈의 저질체력이 큰일이다. 중복이랍시고 멀리 나가 고단백 섭취까지 하고서 냉방병이라니 잡아먹힌 소가 웃겠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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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투덜일기 2010. 7. 29. 00:29

인간은 워낙에도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내가 얼마나 기억력이 부실한지 새삼 놀라는 때가 있다. 바로 며칠 전에 들었음이 분명한 멍의 원인이 기억나지 않는것도 그렇고, 부러 잘 챙겨둔 물건의 위치가 완전히 깜깜하게 떠오르지 않는 때도 부지기수다. 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과거의 끼적거림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생각의 틀이라든지 일상적인 고민거리는 10년전이나 20년 전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지만, 가끔은 어떻게 이렇게 유치찬란하고 얼굴 뜨거운 글을 적어놓았나 싶을 때도 있다. 심지어는 그렇게 적어놓은 글을 증거로 눈으로 보면서도, 그 안의 사건이라든지 정황이 전혀 떠오르지 않아 막막해지기도 한다. "넌 어쩜 그런 걸 다 기억하니!"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일부 기억에 대해선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것까지 묘사할 수 있는 반면, 어떤 시기는 뭉텅뭉텅 인생에서 잘라 내 버린 것처럼 기억이 전무하다. 다 기억의 선택이 부려댄 조화겠지만, 그걸 깨달을 때마다 신기하다. 까마득한 과거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워낙 인상적이라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대개는 알게 모르게 그 기억을 계속 환기해 신선도를 유지했기 때문이란다. 알게 모르게 환기되는 기억의 중요성이 대체 어떤 근거로 정해지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오래 기억해두면 좋을 것들은 쉽사리 사라지고 잊고 싶은 것들만 꾸역꾸역 남기고 있진 않아야 할 텐데 말이다.

5년만에 슬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컴퓨터가 걱정스러워 그간 또 까먹고 안하던 하드 백업을 하느라 오래 전에 컴퓨터 바꾸면서 압축해둔 파일들을 새삼 뒤져보니 별별게 다 있다. 내 기억에선 거의 사라졌던 흔적들을 발견하는 기분이라 거의 보물찾기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대부분은 아 맞다, 그랬었지, 이런 짓도 했었구나, 싶은 것들이 많았으나, '으엥?' 하며 놀라게 되는 것들도 있다. 어떻게 이런 걸 잊을 수 있나 싶은 것 가운데 하나를 기막혀 하며 올려본다. 무려 2002년 5월 날짜 파일이다. 8년이면 꽤 긴 세월이긴 해도, 기억이 까맣게 지워졌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의 '소중한' 파일이었다. 스스로 너무도 한심해서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며 기억을 환기해보니 아스라이 그 그림을 얻게 된 상황은 대강 떠오르는 것도 같은데, 이후의 추이는 완전 깜깜하다. 머릿속에 지우개가 들었다고 농담삼아 푸념하는 게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잔혹한 현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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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에 갈 일이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딱 1시간 10분(과거 경험으로 나름 예상한 시간이었다) 먼저 집을 나서며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겠군 싶었다. 퇴근시간을 교묘히 피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오산이었다.
늘 가던 대로 내부순환도로 - 강북강변도로 - 반포대교 - 반포로로 이어지는 길을 택할 작정이었는데
강변도로가 주차장이었다. 반포대교까지 전광판에 뜬 예상시간(지체 돼서 28분)대로라면 10분쯤 되레 지각을 하게 생긴 반면 한강 건너 올림픽 대로를 보니 거긴 그나마 좀 차가 움직이는 추세였다.

그야말로 삽질의 시작.
강을 건너 여의도에서 올림픽대로로 접어들려고 했지만, 노들길 진입로로 얌체 끼어들기를 하려던 걸 실패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요리조리 인간 내비게이션으로 머리를 최대한 굴려 이리저리 차를 돌려봤지만 결국엔 미친듯이 막히는 남부순환도로에서 약속시간을 맞고 말았다. +_+ (대체 얼마나 돌아간 것이냐!)
하필 약속시간보다 더 일찍 도착했던 친구를 50분이나 기다리게 한 끝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자책을 했는지 모른다. 그냥 가던 대로 갔으면 10분 지각할 길을 휘발유 없애가며 돌고돌아 (안막히는 길로 돌아가는 게 낫다고 착각했는데, 5시반 전후로 서울시내에 안 막히는 길이 어디 있다고!) 조바심에 자꾸 차선바꾸느라 욕이란 욕은 죄다 먹어가며 뭐하는 짓이었는지.

늦은 밤이라 30분만에 주파한 귀가길로도 도저히 만회가 되지 않는 오늘 삽질의 교훈은 이렇다.
잠깐잠깐 더워도 러시아워땐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게 좋겠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더웠다고! ㅠ.ㅠ)
이왕 차를 몰고 나섰으면 그냥 아는 길로나 가라. 내비게이션도 없이 방향감각만 믿고 모르는 길 개척하지 말고. (아니 그냥 뒷북으로라도 내비게이션을 살까? -_-;;)
약속시간에 딱 맞춰서 가려고 꼼지락거리는 버릇을 없애자. 좀 일찍가서 기다리면 어떠리. 
진짜로 명심해라. 오늘 보니 니 방향감각은 별로 훌륭하지 않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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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림

투덜일기 2010. 7. 16. 00:57

시기적으로 괜스레 까칠하게 굴게 되는 요즘 특히 거슬리는 것 두 가지.

1. 점심 때 "**** 햄버거가 오직 삼천원"이라는 광고 문구.
유일함을 뜻하는 부사인 '오직'을 써서 일부러 강조한 카피라이터의 의도를 모르진 않겠으나, 어쨌든 비문이잖아! 오직 돈 벌 생각에만 혹해 한글 망치는 건 신경 안쓰는 태도냐 뭐냐.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자꾸 귀에 들려 심히 거슬린다. 멍청한 일부 대중은 또 저게 맞는 줄 알고 따라쓰지 않을까. 어휴.

2. 새로이 등장한 서울 택시의 황당한 색깔.
'꽃담황토색'이라는 색깔이름은 예쁘다고 할 수 있겠음. 자동차 도장에 쓰이는 페인트가 특히 색상 구현에 까다로우리란 것도 얼추 짐작할 수 있음(과거 내 눈엔 흉측하게만 보이는 자동차 색깔들이 좀 많았나!). 은색이나 흰색 택시보다 확실히 눈에 확 띄는 색깔임도 인정.
그러나 결정적으로 너무 밉다. ㅠ.ㅠ 주황색도 아니고 황토색도 아닌 것이 몹시 어중간하고 칙칙하여 새차임에도 더러운 느낌이 드는 괴상망측한 색깔의 새 택시가 눈에 띌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쌀이 찌푸려진다. 시민의 의견을 반영해서 정한 색상이라는데 과연 어떤 시민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것인지... 그저 한숨만. 하기야, 디자인 서울이랍시고 오잔디 일당이 저질러대는 흉물 꼬락서니의 연장선이겠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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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달라

투덜일기 2010. 7. 9. 12:06

생각속에선 참 그럴듯할 것 같은데 막상 현실에선 기대와 다른 것들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꿈이나 이상을 쉽게 포기하기에 이르는지도 모르겠다. 여우의 신포도 이론을 적용하면서 말이다. 맛있는 걸 먹고 싶어 법석을 떨며 찾아가 먹거나 해먹어 보아도 딱히 '이맛이야' 싶었던 적은 거의 없다. 

직장생활을 관두고서 꿈꾸었던 프리랜서 번역가의 생활도 생각속에선 참 아름답기만 했었다. 처음엔 몰라도 대강 틀이 잡힌 뒤엔 하고 싶은 책만 골라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일년에 두세번은 한가로이 여행을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무한한 자유를 누리면서 자기관리에도 소홀하지 않으려고 내가 꽤 노력할 줄 알았으나, 이 생활 또한 척박한 현실이다보니 기대했던 삶과는 퍽 다른데다 나라는 인간도 생각보다 '훨씬' 게으르고 대책없단 걸 깨닫는 세월이었다. 

언제부턴가 막연히 제주도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로망을 품고 있었는데, 그 또한 얘기를 들어보니 쉬운 일이 아니다. 텃세가 그리도 심하다나. 물론 농사짓고 고기 잡으면서 사는 현지인들로서는 외지인들이 야금야금 들어와 땅을 차지하고 집을 짓고 한가로이 여유롭게 산다면 그 꼬라지가 보기 싫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살러 간' 사람들에게 심한 텃세를 부려 괴롭히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은퇴 후 제주도 작은 마을에 집을 짓고 내려가 사시는 부모님을 방문하러 멀리서 날아온 후배가 요새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마냥 부러워 하는 나를 매번 타이른다. 거긴 나 같은 사람이 살 데가 못된다고. 웬 쓸데없는 참견이냐고 만날 노친네들이랑 대판 싸우게 될 거라고. 얼마전엔 집앞에 나무를 하나 심었더니 주민들이 돌아가며 타박을 하다가 심지어는 며칠 전에 번호판을 가린 트럭 하나가 대낮에 나무를 들이받아 쓰러뜨리고는 달아나더라고. -_-; 시내 아파트 같은 데서 살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시내에서 매연 맡으며 살려면 뭣하러 제주도로 내려오느냐고...

사실 도시가 지긋지긋하다며 시골로 내려간 다른 지인들도 주민들의 텃세 때문에 처음엔 다들 너무도 힘들어 했고, 친구 하나는 다시 올라올까 심히 고민중이긴 하다. 지역 주민들 입장에선 도시에서 왔네 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눌러앉아 살러' 온 것인지 그냥 뜨내기로 허둥대다 떠나버릴 것인지 지켜봐야 했을 테고, 그래서 더욱 모질게 주민으로서의 자질을 시험하려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주로 노친네들만 사시는 시골에 젊은 가족 하나 나타나 예쁨 받아보려고 살갑게 굴었더니, 동네 머슴 부리듯이 별별 잡일을 다 시키는 바람에 정작 자기 일은 하나도 할 수가 없다는 친구의 푸념을 들으면 귀촌의 삶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싶어진다. 시시콜콜 간섭하려드는 시골의 이웃 정서도 나 같은 인간에겐 곤란할 테고.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정이 흘러 넘치는 게 시골인심이겠지만, 역시나 내가 상상한 호젓한 시골의 삶과는 다르다.  
 
마당 있는 한옥의 삶도 마찬가지란다. 좋은 점은 분명 존재하지만, 조금만 게으름 부리면 수북하게 잡초가 무성해지는 마당을 비롯해서 늘 뽀얗게 먼지가 앉는 툇마루 관리까지 한옥에서 살려면 얼마나 더 부지런해져야 하는지 말을 듣기 시작하면 귀가 따가울 정도다. 개조를 했어도 겨울 한옥은 윗풍이 심해 지난 겨울 난방비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대고, 멀리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대느라 내야 하는 월주차비가 아깝다는둥 이런저런 고충을 토로한 끝에 그들도 내게 말한다. "그리 좋은지 어디 한번 살아봐라..."

그런데도 물론 나는 한옥에서 살아보고 싶고, 제주도에도 내려가서 지내보고 싶고, 이 삶도 좀 더 자유롭고 여유롭게 경영해보고 싶고, 뭔가 맛있는 걸 끊임없이 먹고 싶다. 결국엔 남들이 아무리 설명해도 본인이 겪어보지 않으면 실감할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동경이 곧 꿈이고 이상이고 로망이니 그걸 버린다면 죽은 삶이 아닐까나. 생각과 다를지 모른다고 한편으론 실망을 미리 준비하면서라도 선망하는 것이 바로 꿈이고 희망인듯 하여, 여우의 신포도 이론을 적용하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엔 '정말 달콤하고 맛있을지도 몰라!' 하는 여지가 남는다. 어쩌면 그 여지가 내 삶을 지탱하는 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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