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투덜일기 2010. 7. 29. 00:29

인간은 워낙에도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내가 얼마나 기억력이 부실한지 새삼 놀라는 때가 있다. 바로 며칠 전에 들었음이 분명한 멍의 원인이 기억나지 않는것도 그렇고, 부러 잘 챙겨둔 물건의 위치가 완전히 깜깜하게 떠오르지 않는 때도 부지기수다. 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과거의 끼적거림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생각의 틀이라든지 일상적인 고민거리는 10년전이나 20년 전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지만, 가끔은 어떻게 이렇게 유치찬란하고 얼굴 뜨거운 글을 적어놓았나 싶을 때도 있다. 심지어는 그렇게 적어놓은 글을 증거로 눈으로 보면서도, 그 안의 사건이라든지 정황이 전혀 떠오르지 않아 막막해지기도 한다. "넌 어쩜 그런 걸 다 기억하니!"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일부 기억에 대해선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것까지 묘사할 수 있는 반면, 어떤 시기는 뭉텅뭉텅 인생에서 잘라 내 버린 것처럼 기억이 전무하다. 다 기억의 선택이 부려댄 조화겠지만, 그걸 깨달을 때마다 신기하다. 까마득한 과거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워낙 인상적이라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대개는 알게 모르게 그 기억을 계속 환기해 신선도를 유지했기 때문이란다. 알게 모르게 환기되는 기억의 중요성이 대체 어떤 근거로 정해지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오래 기억해두면 좋을 것들은 쉽사리 사라지고 잊고 싶은 것들만 꾸역꾸역 남기고 있진 않아야 할 텐데 말이다.

5년만에 슬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컴퓨터가 걱정스러워 그간 또 까먹고 안하던 하드 백업을 하느라 오래 전에 컴퓨터 바꾸면서 압축해둔 파일들을 새삼 뒤져보니 별별게 다 있다. 내 기억에선 거의 사라졌던 흔적들을 발견하는 기분이라 거의 보물찾기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대부분은 아 맞다, 그랬었지, 이런 짓도 했었구나, 싶은 것들이 많았으나, '으엥?' 하며 놀라게 되는 것들도 있다. 어떻게 이런 걸 잊을 수 있나 싶은 것 가운데 하나를 기막혀 하며 올려본다. 무려 2002년 5월 날짜 파일이다. 8년이면 꽤 긴 세월이긴 해도, 기억이 까맣게 지워졌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의 '소중한' 파일이었다. 스스로 너무도 한심해서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며 기억을 환기해보니 아스라이 그 그림을 얻게 된 상황은 대강 떠오르는 것도 같은데, 이후의 추이는 완전 깜깜하다. 머릿속에 지우개가 들었다고 농담삼아 푸념하는 게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잔혹한 현실인 셈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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