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0.09.17 자꾸 바뀌는 주소 3
  2. 2010.09.13 파란 사과 5
  3. 2010.09.08 컴퓨터 20
  4. 2010.09.04 3분 6
  5. 2010.09.02 고백 유감 5
  6. 2010.09.01 허리와 커피 5
  7. 2010.08.31 자동차 보험 5
  8. 2010.08.26 바라보긴 뭘 8
  9. 2010.08.22 헉 개가 돌아왔다 6
  10. 2010.08.19 매미 8

별걸 다 걱정하는 울 왕비마마가 거의 고정으로 틀어놓는 TV 채널에는 저녁 무렵 일반인들이 나와서 억울한 사연 같은 걸 호소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행정적으로 피해를 보았다거나, 민사상 손해를 보았는데 증거가 확실해도 법제도가 부실하거나 지자체의 외면으로 구제받지 못해 애를 태우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등장해 변화를 촉구한다. 그 프로그램에 심심찮게 나오는 사연이 뭐가 있는고 하니, 자기 땅, 자기 집인 줄 알고 수십년간 살았는데 국유지였다고 판명이 됐다면서 수십년간 밀린 점유권에 대한 범칙금이 엄청나게 나와 억울해 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심지어 자기 집인 줄 알고 평생 살다가 국유지 개발로 졸지에 집을 잃게 된 사람들도 나온다.

그런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왕비마마는 특유의 염려증에 더하여 피해망상에 사로잡히기 일쑤다. 당신 명의로 된 지금 사는 집이 아마 자기 집으로 되어있지 않을 거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곧장 배우자 상속으로 명의변경을 한 '집문서'까지 있는데도 좀처럼 의심은 가시지 않는다. -_-; 이 세상엔 말도 안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워낙 비일비재하기도 하지만, 왕비마마의 근원적인 불안감의 요인에는 자꾸만 짜증스럽게 바뀌는 이 동네 주소도 크게 한몫을 한다.

행정구역의 변화야 과거에도 조금씩 있어왔고 작은 규모의 동네가 하나로 통합되기도 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이 동네도 과거엔 **1동부터 **4동까지 나뉘어 있다가 10여년 전쯤에 개편되면서 3동까지만 있었는데, 그마저도 얼마전 또 바뀌어 **3동이던 우리 동네가 다시 **2동이 되었다. 사실 이건 뭐 큰 걱정거리도 되지 않는다. 어차피 주민등록증엔 1, 2, 3동 구분 없이 번지수만 적혀있지 않은가. 1, 2, 3동 구분은 그냥 동사무소 관할구역을 나누고 우편물 배달 편의를 위한 방편이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못마땅했던 건 몇년 전 뜬금없이 얼굴 간지러운 이름으로 골목마다 새로운 주소를 만들어 홍보를 하더니 구청에서 알아서 제 마음대로 초록색 주소표지판을 만들어 집집마다 붙였던 사실이다. 서울시와 구청에서 날아오는 각종 고지서엔 옛날부터 써온 현재 주소와 함께 '개나리길 00-0'라는 새주소가 늘 괄호 안에 적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운전을 하고 돌아다녀 보면 그렇게 새주소와 거리, 골목 이름이 큰길 표지판 밑에도 죄다 붙어 있었다. 헌데 얼마전부터 지자체에서 보내오는 고지서엔 또 다른 주소가 등장했다. 심지어 우리 동네 이름도 아니고, 옆동네 이름을 넣은 도로명으로 '**로 OO길 OO-O'이라고 되어 있었다. 왕비마마의 불안은 다시 고조되었다. 이러다 집을 빼앗기는 게(누구한테???) 아니냐는 걱정이었다. 나는 서울시에서 하는 짓인지 구청에서 하는 짓인지 몰라도 지난번 '개나리길' 사태 때처럼 이번에도 또 누군가 삽질하다 관두게 될 거라고 장담하면서도,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니 왜 자꾸 주소를 바꾸는 건데???

그러다 며칠 전엔 아래층 똥개가 대낮에 거의 30분 넘게 쉬지않고 짖어대는 일이 발생했다.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 위층에서 내려다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전주에 올라가 케이블을 설치하는 사람도 없는 듯했다. 하지만 아래층 개는 하도 짖어대서 거의 쉰 목소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빌어먹을 똥개가 드디어 미쳤나보다고 생각하다가 너무 시끄러워 하는 수 없이 내려가 원인을 살펴보았더니, 이상한 사람이 있기는 했다. 골목을 이리저리 오가며 망치질을 하다가 또 사진을 찍다가 이리저리 살피는 아저씨 한분이었다. 차마 묻지는 못하고 계단 위에서 가만히 지켜보노라니, 이어 우리집에도 망치질을 한 뒤 사진을 찍었다. 얼마전까지도 분명히 집앞에 붙어있던 '개나리길 00-0'이라고 적힌 초록색 표지판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그 대신 ' **로 OO길 OO-O'이라고 들어간 새 주소 명판이 남색으로 떡하니 걸려 있었다.

짜증이 버럭 밀려왔다. 지난번 개나리길 주소도 그렇고, 이번 새 주소도 그렇고 당국은 왜 자꾸 쓸데없이 세금 처들여가며 주소를 바꾸고 주소명판을 갈아붙이는 것일까? 과거 주소 체제가 외국과 달리 주소만 달랑 하나 들고는 집 찾기 힘들게 되어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이지만, 그런다고 당국에서 무조건 바꿔라 명령하면 그냥 쉽사리 바꿔지는 게 주소인가?? 정말 궁금하다. 또 다시 은근슬쩍 바뀌어 버린 행정상의 주소는 누구의 머리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며, 또 언제 슬그머니 다른 걸로 바뀌게 될지. 4년마다 휙휙 바뀌는 지자체장의 정책으로 과연 수십년간 장기적인 행정개편 같은 게 이루어질 수 있기는 한건지. 어쩌면 뭔가 '야로'가 있어서 멀쩡히 살던 집을 빼앗기게 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울 왕비마마의 염려가 뜬금없는 망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요즘 저들이 해대는 한심한 짓거리를 보면 말이다. 대체 누구를 위한 변화이고 혁신인지, 아님 그냥 또 한번의 '돈지랄'인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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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사과

투덜일기 2010. 9. 13. 17:44

사과 중에 내가 제일로 치는 품종은 역시나 새빨간 '홍옥'이지만, 풋풋한 맛의 파란 사과도 그에 버금가게 좋아한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과 1, 2위는 '빨간 사과, 파란 사과'다.(홍옥을 제외한 다른 품종의 사과엔 '빨갛다'는 말도 붙이기 어렵지 않은가! 그저 붉은 정도지...-_-;) 아쉬운 건 내가 좋아하는 품종들이 지극히 짧은 기간에만 유통된다는 점이다. '아오리 사과'로 불리는 파란 사과도 요즘에나 먹을 수 있지 좀 지나면 -- 아마도 추석이 지나고 나면 -- 구경하기 힘들어질 거다. 그러니 요맘때 얼른 실컷 먹어주는 수밖에 없다. 과육이 부드럽고 새콤달콤한 홍옥과는 또 다르게 아삭거림이 강하면서 껍질이 얇고 약간 떫은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역시나 새콤달콤한 과즙이 풍부한 파란 사과는 나름 매력이 철철 넘친다.

'파랗다'라는 우리말은 정말로 '파란색'부터 '초록색'에 이르기까지 푸른 계통의 색을 모두 아우르고 있으니 하늘도 파랗고 바다도 파랗고 신호등에도 파란 불이 들어오고 사과도 파랗다고 말하는 게 어른들에겐 어색하지 않은데, 아이들이 듣기엔 아무래도 이상할 수밖에 없다. 유치원에서도 신호등 파란 불은 '초록 불'이라고 고쳐 배우는 모양이니 말이다. 제일 어린 조카가 네살이었던 작년 이맘때, 집에 놀러온 녀석에게 "파란 사과 먹을래?"라고 물었더니 대뜸 세상에 파란 사과가 어디 있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뜨끔한 내가 "초록 사과, 아니 연두색 사과 말이야"라고 고쳐 말했더니, 녀석은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으응, 아오리 사과?"라고 대꾸했다. '아오리 사과'를 아는 네 살 짜리 어린이는 이 세상에 또 없을 거라고 나는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었는데, 올해 다시 파란 사과를 통째로 들고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으며 생각하니 '파란 사과'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조카들에게도 가르쳐줘야할 것만 같다.

어른들이 초록색이든 연두색이든 푸르딩딩한 남색이든 하늘색이든 죄다 '파랗다'고 말하는 건 색깔 구분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색깔조차도 크고 넓고 풍요롭게 지칭하는 마음의 여유 때문이라고. 연두색이 예쁜 파란 사과는 역시나 '아오리 사과'라고 부를 때보다 '파란 사과'라고 부를 때 느낌이 제격이다. 백설공주가 먹고 쓰러진 반만 빨간 사과도 덜익은 반대편 절반은 '파랗게' 덜익었다고 해야 어울릴 것 같지 않은가. 아무려나 바야흐로 파란 사과의 계절, 내가 원없이 먹었다고 느낄 때까지는 너무 빨리 모습을 감추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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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투덜일기 2010. 9. 8. 02:11

5년을 넘긴 컴퓨터가 얼마 전부터 슬슬 걱정스러운 양상을 보이더니 오늘은 급기야 그 무서운 '시퍼런' 화면을 수없이 띄웠다. 완전 컴맹이라 안절부절 못하며 몇번이나 전원을 껐다 켰지만 부팅이 되다말고 무시무시한 경고(이런 화면을 처음 보는 거라면 어쩌구 저쩌구.. 그게 아니라면 시스템 인스트럭터에게 연락하라던가 뭐라던가... )가 뜨더니, 안전모드도 실행이 안되는 상황. 더럭 겁이 났다. 지난주부터는 원고 백업도 안해놨는데!!!

컴퓨터가 슬슬 이상을 보이기 시작한 건 꽤 됐다. 되다말다 했던 CD롬이 완전히 고장나 읽히지 않는 건 1년이 다 돼가고(그렇기 때문에 확 밀어버리고 윈도를 새로 깔 수도 없다. 혼자선 할 자신도 없지만 -_-;; CD롬이라도 괜찮으면 동생이든 누구든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겠나..), 본체에서 갑자기 윙윙 바람부는 소리가 나면서 느려지질 않나, 화면 보호기 작동되다 말고 프로그램 오류 메시지가 뜨질 않나, 과거 경험상으로도 컴퓨터는 수명 5년이 지나면 시한폭탄처럼 저절로 망가지도록 프로그램이 심어져 있는지 꼭 말썽을 부리곤 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악성 코드랑 바이러스 무서워서 유료 V3도 꼬박꼬박 자동실행하고 있거늘 나 원 참! 하지만 버벅거리긴 해도 또 완전히 고장난 것은 아닌 컴퓨터를 확 바꾸긴 좀 뭣하고, 그렇다고 불안한 마음으로 계속 버티는 것도 괴로운 어정쩡한 상황이 이어지던 와중에 드디어 오늘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시퍼런 화면'이 등장한 것.
 
컴맹답게 이럴 땐 컴퓨터가 열을 받아서 그럴 지 모른다며 모든 전원을 끄고 플러그 까지 빼서 몇시간 식히는 것이 나의 유일한 처방이다. 근데 이번에도 그게 먹히더라. ㅋ 드디어 안전모드가 실행됐으므로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시스템 복원' 설정으로 컴퓨터를 다시 부팅하는 데 성공했고, 무서워서 얼른 작업해 놓은 원고들을 이메일로 보내놓았다. 외장하드에 백업하다가도 혹시 오류날까 싶어서 ㅠ.ㅠ

늘 마감인생의 덧없음을 하소연하는 나에겐 꿈에도 등장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두 편 있다.
하나는 거의 완성된 번역원고가 컴퓨터 고장으로 홀라당 날아가는 것이다. 마감일은 이미 어겨놓은 상황인데 백업도 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수천매 원고가 그야말로 홀라당 날아가는 바람에 펄펄 뛰다가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 되는 거다. 요샌 정전으로 컴퓨터가 꺼져도 워드 프로그램에서 자동저장을 해주지만, 십수년 전엔 새벽녘에 갑자기 정전이 되는 바람에 밤새 작업한 원고를 홀라당 날린 적이 있었다. 하기야 지금도 재수가 없으면 컴퓨터가 미쳤는지 덜컥 오류가 났다가 수십매쯤 날아간 문서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낭패감과 억울함은 말할 것도 없다. 두번째로 번역을 하면 속도야 훨씬 붙지만, 어쩐지 전에 번역한 문장보다 못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기분도 영 찜찜하다. 허니 내가 이런 꿈을 꾸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또 하나는 (재수 없는 상상이긴 하지만) 잔뜩 맡아놓은 작업을 마무리도 하지 못하고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것. 사람이 죽었으니 출판사에서도 더는 독촉할 형편이 못되겠지만, 남은 가족들에게 그간 작업한 원고라도 넘겨달라고 하면 어쩌나, 다듬지 않은 초고가 세상에 선보이는 건 정말 싫은데, 계약금만 받아놓고 아직 시작도 못한 추후 작업들은 어찌되는 걸까, 앞으로 받기로 한 원고료는 또 어떻고! 뭐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상상을 하며 괜스레 식은땀을 흘리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물론 참 한심하다. 하지만 얼마 전 갑작스레 이윤기 선생이 심장마비로 운명하신 소식을 듣고 보니, 내 상상이 완전히 부질없는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일단 말썽 부리는 컴퓨터 강박증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새 컴퓨터를 장만하면 그만인데, 컴맹주제에 워드며 필요한 프로그램 설치하고 다운받는 과정을 생각하면 또 끔찍하다. 2005년도에 이 컴퓨터 샀을 때는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걸!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근다는 말이 정말로 나 같은 인간에겐 딱이다. 당면한 문제 해결보다는 그 이후의 소소한 귀찮음이 더 두렵게 느껴지니 말이다. AS를 부르는 방법도 있다는 건 알지만, 그간의 경험상, 그리고 시청자 불만 프로그램의 고발 내용을 보아도 컴퓨터 AS기사는 십중팔구 사기꾼이던데 어찌 믿는단 말인가. 당장 CD롬부터 새것으로 갈으라고 할 텐데 몇만원 들이느니 새로 사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자니 또 어떤 컴퓨터를 어디에서 살 것인가 하는 원초적인 고민부터 다시 꼬리를 문다. 우웩~~~ 책상을 넓고 한가롭게 쓰기 위해선 노트북 컴퓨터를 새로 사는 것도 생각해본 적이 있으니(근데 여름엔 노트북 자판 뜨거워져서 싫단 말이닷) 이런 고민은 최소한 몇달간 지속될 것 같다. 시퍼런 화면이 연일 나를 괴롭히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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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투덜일기 2010. 9. 4. 02:05

집에 3분짜리 모래시계가 있다. 화장실에 두고 양치질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한지 한 일년쯤 된 것 같다. 원래부터 양치질 용으로 산 건 아니었고, 그냥 어느 기념품 가게에서 친구가 뭘 굳이 사주고 싶다고 해서 만만한 모래시계를 집어들었는데 그냥 두고 먼지만 씌우느니 뭣에라도 써먹어 보자는 생각이 들어 화장실엘 갖다 둔 거다. 하루 종일 어영부영 지내다 보면 3분쯤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는 것 같지만, 생각외로 3분이란 시간은 퍽 길다.

양치질의 원칙 3-3-3을 모르는 이는 없겠지만 꼬박꼬박 실천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거의 평생 아침저녁 하루 두번 양치질을 고수한 나로서는 직딩 시절(그마저도 첫 직장 3년은 양치질로 유난 떠는 사람이 없었다) 점심시간 이후 거의 한 사람도 빠짐없이 치솔을 들고 화장실엘 가는 문화가 거의 충격적이었다. 귀찮음은 둘째 문제였다. 워낙에도 질질 뭐든 잘 흘리는 편이지만, 특히 양치질을 할 때는 얼굴 주변은 물론이고 종종 옷섶에도 치약을 묻히는 인간인 내가 회사에서 정장이나 유니폼을 입은 채로 어떻게 양치질을 하라는 것인지! 양치질을 하고 나면 거의 반 세수는 해야하는 형편인데 화장은 또 어떻게 고치라고?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모두들 닭벼슬 머리에 진한 아이섀도와 진한 립스틱으로 무장한... 나도 그 무리였다 ㅋㅋ) 그래서 나는 더러운 인간 취급을 받거나 말거나 점심시간 양치질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습관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떤 날은 온종일 세수 및 양치질을 삼가(?)다가 잠자기 전이라든지 졸음을 깨기 위한 방편으로 '큰 맘먹고' 양치질을 시도하는 극강의 게으름을 부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드물게 하는 양치질도 원칙에 맞게 3분간 꼬박 구석구석 닦는데 공을 들이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모래시계가 생긴 후, 평소대로 쓱싹쓱싹 열심히 양치질을 한 뒤 이쯤이면 3분 지났겠지 쳐다보면 대개는 모래가 절반도 안 떨어진 상태였다. 치아가 모두 30개 전후이므로 이빨 한 개당 5, 6초씩 꼼꼼하게 닦으면 3분 양치질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치과의사들의 조언도 모르는 바 아니다. 헌데 이론적으로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 이빨 한 개당 5, 6초 골고루 문지르기, 이건 성미 급한 나에게 놀라운 인내심을 필요로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모래시계가 눈에 들어오는 날이면 나는 전체적으로 북북 닦은 이빨을 또 닦고 문지르며 떨어지는 미세한 모래를 거의 째려봐야 한다. 그러면서 매번 느낀다. 3분이 왜 이렇게 길어!?!?

밤참으로 찐 옥수수를 세 자루나 데워먹고 나서 분위기 전환 용으로 방금 어렵사리 3분 모래시계에 맞춰 양치질을 마치고는 생각했다. 3분이란 시간은 포스팅으로 한 번 짚고 넘어가기에 충분한, 놀라운 시간이라고. ㅋ 3분 얘기 쓰느라고 일할 시간 또 30분 허비하긴 했지만, 그래도 쓸데없이 인터넷 서핑에 허비하는 시간에 비하면 심히 건설적이다. 이 글 마무리 하면 모래시계 꺼내다 엎어놓고 3분간 몇줄이나 번역하나 실험이나 해볼까나... 과연 그 실험은 작업 진도에 고무적인 영향을 미칠까, 아니면 허탈과 자괴감을 안겨줄까. 시간은 휴대폰 스톱워치로도 잴 수 있는데 굳이 모래시계 놀이를 생각하는 걸 보면, 그냥 일이 하기 싫은 거라는 결론이 나오는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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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유감

투덜일기 2010. 9. 2. 15:40

초등학교 앞 문방구의 최고 인기품목이 하나에 이천원짜리 커플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나는 줄곧 어여쁜 조카 공주의 로맨스를 기다려왔다. (어쩌면 약간은 두려워하면서... 아니 왜? -_-;;)  헌데 유치원 시절에 몇몇 남자아이들의 이름을 대며 좋아한다고, 나중에 결혼할 거라는 결심을 토로했다가 금세 마음을 바꾼 시시한 해프닝 이후로 지금껏 6, 7년째 공주는 남자애들에게 관심이 없다. 은근히 유도심문을 해봐도 전교생 중에 썩 괜찮은 남자애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건 이성에 큰 관심이 없다는 뜻이겠지? 눈도 높고 어려서부터 워낙 도도한 편이라 그건 그러려니 할 수 있겠는데, 내가 보기엔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고모 특유의 콩깍지 모드임은 나도 안다) 공주를 어째서 남자애들이 그냥 두는 것인지 그건 좀 이상했다.

물론 1학년 때부터 공주에 대한 순정을 6년째 이어오고 있다는 '땅꼬마' 남자애가 하나 있다는 건 알지만(현재 이 남자애는 공주와 다른 반이다), 제 친구들이 벌써 몇 번이나 커플이 되었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별다른 연애사건이 없으니 한편으론 안심이 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좀 아쉽다. 하다못해 심히 연애인자가 부족한 나조차도 국민학교 다닐 때 몇번이나 스캔들이 있었는데 말이지!

그러던 차에 얼마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컵스카우트인가 뭔가에서 공주는 요번 방학동안 중국엘 다녀왔는데 그때 같이 갔던 5학년짜리 남자애가 5박6일의 여행에서 돌아온 뒤 공주에게 문자를 보냈단다. '우리 사귀자'고!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공주에게 물었더니 그냥 문자를 씹었단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느꼈나보다. ㅋ 헌데 생각할수록 그녀석이 괘씸하다. 제 아무리 연상녀 연하남 커플이 유행이라지만, 5학년 땅꼬마 주제에(공주 키가 부쩍 자라는 바람에 남자애들은 동급생들도 거의 내려다본단다) 6학년 누나를 마음에 품었으면 사귀자고 달려들기 전에 먼저 '좋아한다'고 고백부터 해야하는 거 아닌가?!

돌이켜보니 주변인들의 요즘 연애담을 들어봐도 다 비슷하다. 가물가물 기억도 잘 나지는 않지만 과거 추억을 들춰보면 분명 누군가 먼저 좋아하는 마음을 품거나 거의 동시에 마음이 통해서 사랑을 고백하고 망설이거나 적극 응수하는 단계를 거쳐 본격적으로 '사귀는' 사이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새는 일단 서로 '조건'과 '스펙'을 맞춰보고 '느낌'이 괜찮은 것 같으면, 혹은 별로 마음에 안들더라도 싱글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단순한 목적만으로도 '일단 사귀고 보는' 식이다. 애틋한 마음을 고백하거나 어떻게든 감정을 전하는 노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 촌스러운 감정 소모를 대신하여 고가의 선물이나 커플링이 오간다. 예로부터 중매 시장에서 남녀가 조건에 맞춰 서로를 재본 다음, 세번만에 옳다구나 결혼을 결심했던 전례가 어느새 연애 분야에도 물든 모양이다.

매사에 이기심이 늘어난 요즘 사람들은 혹시라도 감정이 상할 것을 염려하여 섣불리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지는 않으면서 은근슬쩍 얍삽하게 '어장관리'만 한다는 이야기도 익히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아, 이제 나는 연애하기 정말 글렀구나, 하는 사실이다. 내가 너무 구식이라서 (물론 하도 오래 돼서 연애인자가 메말라버린 건 인정한다) 좋아하는 마음도 없이 '일단 사귀고 보자'는 시도 정도에는 도저히 넘어가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귀자'는 말에 이미 '네가 마음에 든다. 좋아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아니올시다다. 오히려 그 말에는 '일단 사귀어 보긴 하겠는데 아님 말고' 하는 심보가 들어있을 뿐이다. 어린 친구들은 그 편이 더 속편하다고 말한다. 구질구질하지 않고 '쿨하게' 관계 정리가 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름지기 고백이라 함은 애틋한 감정 토로가 먼저여야 할 것 같다. 그 마음을 전하기까지 자기 감정을 곱씹고 돌이키며 망설이는 단계를 거치고 제대로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연애'이고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5, 6학년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진짜 '연애 사건'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뭐든 어른들 따라하는 게 당연해진 요즘 사랑조차 가볍고 소모적인 유희로 변질되면 어쩌나 걱정이다. 구닥다리 고모의 마음으로는, 1학년 때부터 줄곧 우리 공주를 좋아했던 녀석이 갑자기 훌쩍 키도 자라고 멋있게 변해서 (공주 말로는 걔가 아토피가 심해서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지만 ㅠ.ㅠ) 순애보를 성공시키는 게 가장 이상적일 것 같다. 그 녀석이 아니더라도, 제발이지 무작정 '사귀자'고 달려드는 놈들 대신 우리 공주에게 '난 네가 좋다'고 제대로 고백하며 접근하는 첫사랑이 다가오면 좋겠다. 고모로서 대리만족이라도 느끼게... 엇, 열세살이면 너무 빠른가? 그럼 으음, 지금 당장은 말고 몇년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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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와 커피

투덜일기 2010. 9. 1. 18:13

이틀 전 아무 이유 없이 허리를 비끗했다. 무거운 걸 든 것도 아니고 갑자기 몸을 깊이 수그린 것도 아니다. 그냥 외출하려고 손을 뻗어 소파에 있던 가방을 집어들려던 것 뿐인데, 순간적으로 몸이 좀 이상했다. 과거에 허리를 삐끗하거나 어깨 같은데 담이 들릴 때는 외부로 들릴 만큼은 아니라도 몸 어딘가에 무리가 갔음을 직감할 수 있는 '우드득' 또는 '휘청' 하는 소리가 나에게만은 들렸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그렇지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느낌도 없이 손을 뻗었을 때와 손을 거두었을 때의 몸 느낌이 달랐을 뿐이다. 심한 이상은 아니라 앉아 있거나 누워있거나 할 땐 거의 멀쩡하지만 자세를 바꿀 때가 문제다. 특히 엉거주춤 구부리는 동작은 코미디가 따로 없다. 가장 괴로운 건 볼일 볼 때. -_-'' 주변에선 빨리 병원엘 가든지 한의원엘 가라고, 하다못해 파스라도 붙이라고 성화지만 내가 어디 그런 사람인가. 며칠 지나면 나아질 거라면서 그냥 버티는 중이다. 확실히 상태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서 화장실 다닐 때와 잠자리에 누울 때 많이 수월해졌음을 느낀다. 앉아서 일할 때는 거의 불편함을 모르겠고... 어쨌거나 또 요가수업 빼먹을 핑계가 생겨서 기뻤다. 이젠 요가를 빼먹어도 돈도 아깝지 않은 단계에 접어들었다. 조카한테 민망할 뿐.

원두커피가 떨어져서 이번에도 같은 원두를 살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공정무역 커피를 주문했다. 그간 양심에 찔리면서도 가격이 두배가 넘는 데다 입맛에 맞는 걸 찾으려면 또 몇번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기 때문에 망설였다. 원두는 금방 볶은 걸 조금씩 사다가 일주일 내로 먹어야 제격이지만, 방구석 붙박이로 사는 나로서는 그냥 대용량을 사서 며칠 간 신선한 원두커피를 즐기다 남은 원두는 얼른 냉동보관했다가 조금씩 꺼내 갈아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간 주문해 먹던 원두는 1kg에 3만6천원. 이것저것 사먹어 보니 내 입맛엔 풀시티로스트로 좀 진하게 로스팅한 남미산 커피가 맞는다는 걸 깨달았고, 가격대비 만족도도 몹시 높았다. 주문한 뒤에 로스팅해 보내주는 원두를 이틀 쯤 뒤에 받아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면 정말로 향기가 온 집안 가득 그윽하게 퍼진다.

어쨌든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곳도 주문 하면 그제야 볶아서 배송해준다니 원두만 잘 고르면 될 듯했는데, 똑같이 콜럼비아산 아라비카 커피를 두 종류로 시켰는데도 오늘 도착한 원두를 설레는 맘으로 갈아서 커피를 만들어 보니 맛이 없다. -_-;; 개인적으로 나는 신맛이 강한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데 향도 그윽함이 덜하고 맛은 전체적으로 시큼털털하다.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곳도 여러군데이니 계속 양심적인 커피를 마시려면 로스팅을 좀 더 잘하는 곳을 찾아봐야한다는 뜻이다. 구매자 후기 읽어보니 다들 '맛'보다 '공정무역'에 방점을 두고 산 듯했는데 그걸 간과한 내 잘못이다. 227g에 만오천원씩, 두 봉지 다 맛이 없다니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하나는 성공할 줄 알았건만... 솔직한 마음으론 공정무역이고 양심이고 다 관두고 그냥 예전에 주문하던 데다 다시 원두를 주문하고 싶다. -_-; 변변한 낙도 없는 삶에서 커피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데... 결국엔 커피 업체를 잘못 고른 나의 잘못인데도, 공정무역 커피는 별로 맛이 없다는 쪽으로 자꾸 편견이 자리를 잡으려 하기에 이렇게 또 끼적이고 있다. 자꾸 마셔보면 신맛에도 길들여지려나...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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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보험

투덜일기 2010. 8. 31. 17:43

어느덧 후딱 1년이 지나가서 또 자동차 보험 갱신일이 다가오는 바람에 요 근래 전화가 시끄러웠다. 보험 만기일은 또 다들 어떻게 알고 난생 처음 들어보는 보험회사까지 전화질에 문자질인지 원! 두어 군데 보험사는 작년에 내가 온라인으로 견적을 받아보며 정보가 노출되었을 거라 짐작하지만, 다른 데는 또 뭐냐고!! IT강국이네 뭐네 하지만 그 이면엔 이런저런 경로로 개인신상에 관한 모든 정보가 여기저기 떠돌고 있으니 벌거벗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종종 핸드폰이 꺼져 있는 바람에 못받은 전화들은 상당수 보험 마케터 전화일 거라는 짐작에 고소하기까지 하다. 

제아무리 보험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거라지만, 최근 몇년 동안엔 접촉 사고 나서 혜택 받은 적도 없고 하다못해 어디 갔다가 시동이 꺼졌다거나 타이어를 갈아달라고 응급조치 부탁도 한 적 없이 지낸 터라 내 경우 자동차 보험은 특히 그냥 쌩돈을 날리는 셈이다. 그나마도 십수년째 아버지한테 묻어 지내느라 보험료 한푼 안내고 살다가 아버지 돌아가시는 바람에 내 이름으로 처음 보험을 들던 해엔 기막히게도 보험료가 백만원이 넘었었다. 바로 직전까지 아버지는 삼십만원쯤 내셨던 것 같은데, 나는 보험료가 그 세배라니... 눈이 튀어나올 정도였지만, 처음 자동차 보험계에 들어가면 누구나 그러는 모양이니 어쩌랴. 어쨌거나 무사고로 보험료만 쌩으로 날리는 해가 거듭되면서 올해는 드디어 보험료가 첫해의 절반에 도달했다. 보험료 저렴한 '다이렉트' 보험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매달 내고 있는 건강보험료는 따져보면 1년치를 한꺼번에 내는 자동차보험보다 훨씬 많은데도, 아까움이랄까 억울함이 훨씬 덜하다. 내가 낸 의료보험료로 울 엄마처럼 평균 한달에 대여섯번 병원 진료를 받고 약을 타다먹는 노인들이 혜택을 보고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강보험료는 그나마 공기업인 의료보험 '공단'으로 들어가지 않는가 말이다. 재정이 바닥나네 마네 논란이 많기는 하지만, 어쨌든 국가에서 책임져야 할 공공시스템이라고 믿는다. 울 왕비마마는 또 장남인 동생 보험카드에 올라 계신데(얼마 전까지는 나도 그랬다만 아쉽게도 이젠;;;) 동생이 보험료를 얼마나 내고 있는지는 몰라도, 워낙 병원을 많이 다닌 탓에 최근 3개월에 한번씩 계속 통지서가 날아오고 있다. 3개월씩 정산하는 본인 부담금 총액이 정해진 한도를 넘어섰다면서 추가분을 환급해주겠다는 통지서다. 벌써 두번이나 이십 몇만원씩 환급금을 받았다. 물론 온몸이 종합병원 수준이신 왕비마마의 병원 진료비에 비하면야 얼마 안되는 돈이랄 수 있지만, 정해진 비율의 본인 부담금 한도를 넘으면 환자에게 진료비를 돌려주기까지 하는 공단의 시스템이 퍽이나 기특하다.

하지만 자동차보험은 어디까지나 사기업의 영역이고, 환급금 따위는 전혀 없다. 그래서 어떤 자동차보험회사에서 혜택을 돌려준다는 식으로 광고를 하고 있긴 하지만, 견적을 받아보니 다른 다이렉트 보험사보다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비싸더라. -_-' 결국 혜택을 주려고 보험료를 비싸게 받는다는 뜻 아닌가. 자동차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필요와 선택에 의한 기호품이고 의료혜택은 모든 국민이 누려야하는 공적인 서비스 영역이긴 하지만, 내가 낸 보험료로 누군가 다른 사람이 혜택을 받는 집단책임의 시스템은 똑같은데 자동차보험 회사는 수십년째 엄청난 이익을 늘려 승승장구하는 반면에 건강보험공단은 만날 적자에 허덕이는 걸 보면 결론은 뚜렷하다.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인 자동차보험회사의 시스템에 더 많은 '야로'가 있다는 것.

어쨌거나 아무리 몇년 새 아무런 사고가 없었다고 해도 무보험 차량으로 돌아다닐 배짱은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또 다시 자동차보험을 갱신했다. 작년엔 상대 차 배상액 한도를 1억으로 했는데 요새는 고가의 차가 많으니 6천원 더 내고 3억으로 높이라는 상담원의 꼬드김에 잠결에 넘어가 그러마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또 막 억울하다. 앞으로 1년동안 3억짜리 자동차를 내가 받아버릴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_-;; 괜스레 더욱 아까비 아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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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긴 뭘

투덜일기 2010. 8. 26. 15:43

중고등학교 시절 사범대 부속학교였던 우리 학교엔 당시로선 꽤 드물게(이후 많은 학교에서 따라했다고 들었다) 아침마다 명상의 시간이 있었다. 이른바 '마인드 콘트롤'이라고 해서 MC라고 시간표에도 떡하니 적혀 있었을 거다. 아침 수업 시작하기 전에,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유치하고 얼굴 간지러운 명상음악과 새소리 물소리 따위를 배경으로 느릿느릿 명상을 유도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편안히 눈을 감고  마음의 여행을 떠납니다.
나는 지금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는 숲 속을 거닐고 있습니다.
산들바람이 붑니다.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쩌구 저쩌구...

뭐든 새로운 걸 도입하기 좋아했던 그때 선생들은 우리학교가 '마인드 콘트롤' 시간을 도입해서 학생들 성적도 오르고 성정이 반듯해졌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렇게 강제로 단체로 눈을 감게 하고 억지 명상을 시키는 상황도 우습고, 흘러나오는 명상음악과 내레이션도 웃겨서 처음엔 피식피식 웃다가 그냥 잠깐 눈붙이고 자는 짬으로 활용하고 말았다. 특히나 명상의 시간이 끝날무렵, 당연하다는 듯 "이제 마음의 무거운 짐은 모두 사라져 평화가 찾아왔습니다."라며 얼토당토 않게 단정하는 말에는 버럭 화도 났던 것 같다.

꽤 오래 요가를 다니면서 이젠 좀 익숙해질만도 하건만, 나는 학창시절 명상시간에 느꼈던 삐딱한 불평 때문인지 여전히 명상을 유도하는 강사들의 간질간질한 말들이 귀에 거슬리고 우습다. -_-;; 특히나 조용조용 가만가만 우아떨며 나긋나긋 읊조리는 말투도 우스꽝스럽고! 같은 말투라도 동작 설명하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참아주겠는데 처음에 반가부좌 하고 앉아서 눈감고 수업 시작할 때 하는 말들은 어쩜 그리도 그 옛날 명상의 시간 코멘트와 비슷한가 말이다! (하기야.. 명상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억지로 생각을 물리치려고도 떠올리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들고 나는 호흡에 의식을 집중합니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호흡을 바라봅니다
허리를 곧게 펴고 깊은 숨에 척추 마디마다 전해지는 호흡을 바라봅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얘긴 줄은 알지만, 만날 뭘 어떻게 바라보라는 건지!
아무리 마음의 눈이라지만 볼 게 있고 못 볼 게 있지 않은가 말이다. 몇달 전에 강사가 바뀌어 수강생들이 우르르 다른 시간대로 빠져나갔을 만큼, 새로 온 강사가 좀 여러가지로 서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전 강사들의 언사가 더러더러 귀에 거슬리는 정도였다면 지금 강사는 수업 중 쓰는 말의 절반 이상이 비문이다. 특히  동작 설명을 하다가도 걸핏하면 '바라보라'고 한다. "다리 뒤쪽에서 느껴지는 자극을 바라봅니다", "고개를 숙이고 온몸의 자극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봅니다"하는 식이다. 명상과 요가 동작을 동시에 유도하는 말들이 어렵다는 건 인정하겠는데, 그래도 말과 글로 밥벌이를 하는 직업병까지 있는 인간이다 보니 문장 전후관계가 틀리는 경우가 더 많은 강사의 지시를 거듭 들으면 몸이 유연하게 풀리는 게 아니라 팔다리 근육이 자꾸 오그라드는 기분이다. 조카가 요가 가자고 하지 않으면 신나서 수업을 빼먹는 형편이긴 해도 무려 핫요가 9개월째인 지금도 내 몸이 여전히 최강뻣뻣인 건 어디까지나 마음에 들지 않는 명상언어 때문이라고 변명하면 누가 믿어주려나. -_-;;

째뜬 이런저런 핑계로 열흘쯤을 내리 빠지다가 어제 그제 연이틀 요가 수업 후 삭신이 심히 쑤셔서 오늘은 막무가내로 버텨 요가수업을 빼먹었다. 요가 열공중인 조카는 혼자라도 가겠다며 나섰으니 시방 열심히 요상한 비문 명상언어에 맞춰 호흡과 여러 자극을 '바라보며' 팔다리를 늘이고 있을 게다. 이러다 조만간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도 '바라보다'에 대한 새로운 뜻이 실리는 건 아닐까. 으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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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재활용품 내다 놓으러 방금 나갔더니만 아래층 곰돌이가 돌아와 있었다! 역시나 개집이 계속 그대로 있더라니!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데 어디선가 낮게 "으르릉..."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설마 하며 개집 있는 곳을 쳐다봤더니만 개가 줄에 묶여 있었다. 다행이도 전처럼 마구 짖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온종일 내가 몰랐겠지!

따져보니 근 두달 만이다. 그동안 대체 어디에 가 있던 걸까 궁금증이 몰려들면서 혹시 키드님네 장금이처럼 강아지 훈련소엘 다녀온 건 아닐까도 생각해봤는데, 다달이 거금이 든다는 걸로 봐선 또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조카네 개도 계속 대소변 문제로 사고를 치면 훈련소에 보내보라고 조언은 하겠지만 비용이 많이 들면 식구들한테 핀잔만 들을 것 같아서 고민이 앞서기 때문이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도 아니고 집밖에 내놓고 막 기르는 잡종견에게도 아래층 식구들이 과연 그런 거금을 들였을까 싶긴 하다. 물론 순전히 내 편견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아래층 개가 으르렁 소리를 내자마자 1층 아저씨가 얼른 현관문을 열고 나온 걸로 봐서는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의미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종일 동네는 조용했다. 그리고 내가 재활용품을 내다놓고 돌아올 때도 살금살금 내가 발소리를 줄이긴 했어도 녀석이 또한 번 낮게 "으르릉..." 소리만 냈을 뿐 짖지는 않았다. 어휴... 어쩐지 살얼음판을 다시 딛는 기분이라 불안하다. 과연 이 동네의 평화는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제발이지 아래층 개가 철들어서 돌아온 것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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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투덜일기 2010. 8. 19. 16:01

오늘도 아침 내내 집앞 나무에서 시끄럽게 울어대 올빼미족의 단잠을 방해하던 매미들이 오후들어 쥐죽은 듯 조용하다. 돌연 마음 한 구석이 싸해진다. 장마 때는 별로 큰 비를 안 내리다가 오히려 그 이후에 간간이 밤새 한번씩, 때로는 새벽이나 아침나절에, 또는 오후에 무섭게 쏟아지던 소나기와 폭우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울어대던 매미들이 아닌가. 밤인 줄도 모르고 울어대는 도시의 매미는 낮밤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을 밝힌 보안등과 가로등 때문에 감각이 마비된 탓이니 녀석들을 미워해선 안된다는 얘기를 들으며 이미 또 마음이 한번 짠했었다.

어제부터 다시 날씨가 더워지긴 했지만, 낮에도 선풍기가 필요없을 정도로 선선해졌던 요 며칠간 드디어 한여름 무더위도 힘을 잃었구나 생각하니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스산한 가을이 기어이 오는 것인가 싶어 잠시 망연했다. 어제 얘기를 들으니 일산 사는 동생네는 선선했던 그 며칠 사이 매미들이 벌써 생을 마감해 바닥에 떨어져 있더란다. 선선한 날씨에 여름이 다 간줄 알고 성질 급한 녀석들이 살 힘을 놓아버렸던 모양이다. 땅속에서 굼벵이로 지내야 하는 세월이 몇년이라는데 그렇게 오래오래 뜸들이며 참다가 겨우 한 철 매미로 사는 주제(?)에 어딜 가나 성질 급한 놈들은 있기 마련이구나 생각했다가, 오히려 그렇게 어렵사리 기다림 끝에 얻은 세상이라 끝에 대한 절망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매미 우는 소리도 시끄럽고 더위는 좀 물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가을이 오는 건 또 아직 두렵기만 하니 뭘 어쩌자는 건가. 입추, 말복 다 지난 건 알았어도, 새삼 달력을 보니 다음주 월요일이 처서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온, 처서엔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은 이제 사장된 표현이지만 그래도 이름마저 '처량맞게' 들리는 처서를 지나고 나면 제 아무리 아열대 기후권에 돌입했다는 한반도에도 스산한 계절이 올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하다. 가을 지나면 또 무서운 겨울이잖아! 새삼 여름을 붙잡으려면 매미채 들고 나가 옆 동네로 날아가버린 매미들이라도 다시 몰고 와야할 것만 같다. 매미들아, 변덕 부려서 미안한데, 한동안은 좀 더 울어다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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