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기

투덜일기 2010. 8. 8. 03:02

몇달에 한번씩 꼭 같은 자리에 종기가 솟아오른다. 병원에 가서 째고 치료를 받아야할 만큼 크고 심한 증상은 아니므로 '종기'라고 불러야할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왼쪽 날갯죽지에서 반뼘쯤 내려온 곳에 잊을 만 하면 한번씩 불룩하게 응어리가 생겨나 어쩌다가 눌리면 약간 불편한 정도다. 거울로 비쳐보면 초기엔 약간 분홍색으로 두드러졌다가 점점 색이 진해져 거무스름하게 변하면서 어느 순간 명을 다한다. 계속 불편하거나 심하게 곪으면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찾을 생각을 할 터인데, 그간의 경험상 무지하게 마냥 버티면 언제고 스러짐을 알고 있기에 이젠 별로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다만, 몸에 화와 열기가 많아져 솟는 게 종기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이런 게 생겨나면 그제야 새삼 나를 돌아본다. 이제 좀 그만 까탈을 부리고 살라는 몸의 신호 같아서. 어떻게 보면 몸은 내 정신과 별도로 작용하는 또 하나의 유기체 같다. (이미 사실이 그러한데 무식하게 나만 모른 체 하고 있었을지도.) 복닥복닥 바둥거리는 내 정신에게 최대한 이리저리 끌려다녀주기는 하되, 어느 순간 못견디겠다 싶은 순간에 몸이 반기를 드는 형국 아닌가. 확실히 몇달에 한번쯤 몸이 종기란 놈을 앞세워 투정을 부리면, 일단은 기름진 것, 달달한 것도 좀 덜 먹으려 노력하고 버럭버럭 질러대던 성질머리도 좀 달래보려 애를 쓰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을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알고도 못하는 것들을 옆구리 찔러 일러주는 '고마운' 종기의 출현이 몇달만에 한번씩이란 건 확실히 문제지만, 더 크게 부풀렸다가 한꺼번에 펑 터뜨리는 것보다야 얼마나 기특한가. 정신과 몸이 둘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내 경우는 정신보다 몸쪽이 더 쓸만한 것 같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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