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0.10.16 이게 뭔지.. 10
  2. 2010.10.13 양치기 중년 9
  3. 2010.10.12 노골 광고 거부증 11
  4. 2010.10.09 과거, 망각, 현재 2
  5. 2010.10.07 공주야 고맙다 9
  6. 2010.09.28 아이폰 열흘 17
  7. 2010.09.26 헌 휴대폰 3
  8. 2010.09.24 유리 6
  9. 2010.09.23 명절 서울 5
  10. 2010.09.18 악 귀찮아 12

이게 뭔지..

투덜일기 2010. 10. 16. 21:03

실로 몇달만에 왕비마마 모시고 집앞 개천 산책로엘 나갔는데, 여러가지가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도 있긴 했지만 운동기구들이 군데군데 좀 더 많아졌고, 자전거 도로와 보행로 구분이 좀 더 확연해졌으며, 자전거 무인대여기계도 십수개나 주르륵 놓여 있더라. 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개천옆 교각마다 매달려 있는 모네의 그림들. -_-; 이걸 어떻게 봐야하는 건지... 그림은 반드시 미술관에서 경건한 분위기로만 감상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활속으로 예술이 들어올수록 대중과 더 가까워질 수 있으니까.  나중에 집이 더 넓어지고 색감만 잘 살려낸 그림을 만나기만 한다면, 복제본 그림을 사서 집안에 걸 용의도 있다. 하지만 개천 옆 교각에 붙어 있는 모네의 그림 복제품들을 보노라니, 어쩐지 슬퍼졌다.
사람들의 손을 탈까봐 그랬겠지만 그림들은 지나치게 높거나 멀리 달려 있어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냥 아, 저기 그림이 걸려 있구나 하는 정도면 목적 달성이란 얘긴가? 물론 그림 근처에 친절한 그림 설명 안내판이 달려 있긴 했지만, 그림 설명만 읽을 거면 차라리 화집을 읽는 게 나을텐데... 과연 이 그림들은 비바람과 습기와 햇빛에 얼마나 오래 제 모습을 지킬 수 있을까. 도대체 처음 이런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과연 무슨 생각이었을까? 주민들은 음습한 교각 아래를 색다르게 활용할 수 있어 다들 좋게만 여기고 있을까?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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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중년

투덜일기 2010. 10. 13. 16:08

몇달 전 가요계의 폐단을 지적하며 이하늘이 쓴 말인데, 유독 귀에 콕 박힌다. 물론 이하늘은 자기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넣은 방송국과 PD를 비난하는 맥락으로 사용한 반면, 내 경우는 스스로 민망한 거짓말쟁이가 되어 가시방석에 앉은 상황이다. 마감일을 질질 끄는 것이 이 업계 사람들의 고질병이라고는 하지만, 계약 마감일에서 무려 두세 달이 지난 뒤에도 일주일씩 계속 약속을 어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로 막판엔 아무도 믿어주질 않아서 늑대에게 잡혀먹힌 양치기 소년이 떠오른다. 

편집 담당자들이 번역하는 사람들한테 연락해서 가장 흔히 듣는 거짓말이 "마무리중"이라는 변명이란다. 맞다. 최근들어 나도 몇번이나 써먹었다. 정말로 대강 초벌 번역은 끝났는데 골치아픈 퇴고를 앞두고 그런 말을 했다면 거짓말이 아니지만, 번역분량이 아직 엄청 남았어도 미안해서 차마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가 없으면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흘러나온다. 마무리 중이긴 한데... 어쩌고 저쩌고. 편집 일을 하고 있는 지인의 말을 들으면, 저런 구차한 변명을 그들도 다 알아차린단다. 이 인간 또 거짓말 하고 있구나, 하고. 하기야 거짓말이 아니라면 일주일, 이주일 차일피일 원고를 지연시킬 이유가 없겠지.

번역의 질은 둘째치고라도 마감일에 관한 한 '비교적 신용 있는' 사람으로 분류되었던 과거의 나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조만간 고질적인 마감 어기기 대장이라는 악명을 뒤집어 쓰고 매장당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이런 두려움이 없지도 않으면서 왜 도대체 매번 마감일을 못 지키고 악순환의 구렁텅이에서 허덕거리는지!? 나도 그게 궁금하다. 그렇다고 만날 팽팽 놀러다니기만 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근거없이 느긋해져 배째라고 여기는 태도, 이것도 일종의 병인가 싶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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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슈퍼스타k2의 열렬 시청자지만 보면서도 욕을 안할 수 없는 건 노골적인 협찬광고 때문이다. 조마조마 두근두근한 순간에 꼭 화면에서 시야를 가리는 그놈의 제로칼로리 콜라는 하도 싫어서 앞으로 절대 안 사먹을란다고 마음 먹게 됐을 정도고, 비디오 클립에 수시로 등장하는 온갖 협찬업체의 노골적인 간판과 로고들도 눈쌀이 찌푸려진다.

하기야 편당 억대 고료를 받으며 막강의 권력을 휘두르는 드라마작가인 김수현 씨조차도 간접광고에서 자유롭지 못한 걸 보면 상업성과 TV 간의 긴밀한 공모관계는 확실히 내 상상 이상이다. 배경이 제주도라 수시로 제주도 관광홍보 같은 장면들이 나오는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쓸데없이 갑자기 등장인물이 쌀국수 끓여내라고 억지 부리는 장면엔 정말 어이가 없다. 특히나 그 쌀국수 끓이기도 오래 끓여야해서 불편하기 짝이 없고 가장 결정적으로 정말 맛 없던데!!! 그나마 요샌 쌀국수 타령이 좀 덜 나오는 것도 같던데 암튼 그럴 때마다 난 짜증스러워서 잠시 확 채널을 돌린다. -_-;

몹시 유명한 파워블로거를 일부러 쫓아다니며 글을 읽는 편은 아니라도 잊고 있다 가끔 생각나 찾아가 몰아서 볼 때도 있는데, 맛집이나 여행 관련 블로거인 경우엔 간혹 음식점 주인한테 공짜 대접이라도 받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칭찬일색인 의심쩍은 포스팅도 눈에 더러 띈다. 어차피 입맛은 사람마다 다르니  마냥 신뢰하지도 않고 그저 참고만 하게 되는 수준이지만, 같은 파워블로거라도 믿음직한 의견이 있는가 하면 어쩐지 뒤가 구린 포스팅은 딱 봐도 알 것 같다. 그리고 노골적이든 은근하든 협찬 업체로부터 선전효과를 전제로 크든 작든 이득을 본 것 '같은' 정황이 포착되면서 광고의 기미가 보이면 단숨에 정이 똑 떨어진다. 

컴퓨터에 윈도를 새로 깔면서 즐겨찾기 백업을 해두지 않아 몽땅 처음부터 기억을 더듬어 하나하나 찾아가는 중인데, 그저 뉴욕 감상하는 재미로 뻔질나게 드나들다가 고양이 사진이 무서워서 또 뜸했다가 했던 블로그가 생각나 한 2주 전부터 다시 들러보던 차에 오늘 읽은 포스팅에 확 배알 뒤틀림이 아주 거세져 즐겨찾기에서 그 사이트를 삭제해버렸다. 전에도 느꼈지만 고양이 애호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보니 관련 업체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건 어쩔 수 없으리란 건 이해가 된다. 업체들로서야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파워블로거에게 자기네 제품을 홍보하면 큰 광고비 들이지 않아도 되니 금상첨화란 것도 알겠다. 고양이 애호가들도 열심히 구경다니면서 좋은 제품을 접할 수 있느니 유용할 게다. 하지만 나처럼 고양이도 싫고 별 관심 없는 사람들에겐 그냥 그런 자랑 포스팅은 노골적인 '광고'일 뿐이며, 유명세를 이용해 누리는 이득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비양심으로밖엔 보이질 않는다.

치킨집 트위터 홍보로 입방아에 오른 이외수의 경우처럼, 탁 터놓고 처음부터 한달에 몇번 노골적인 치킨집 언급으로 광고를 하면 천만원을 받기로 했으며, 그 돈은 고스란히 장학금으로 기부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와는 느낌이 또 다르다. 내가 자주 안 가봐 몰라서 그렇지 내 눈에 거슬린 파워블로거 역시 그렇게 얻은 혜택을 어딘가 나눠주거나 기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옹호자들에겐 이 글이 근거 없이 '악의적으로' 깎아내리려는 시도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음식점이나 특정 업소에 대해서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포스팅하면, 포털사이트를 통해 인권침해, 명예훼손 운운하며 글을 삭제하라는 압력이 들어오는 반면에 직간접 홍보에 대해서는 그냥 보는 사람들이 알아서 걸러 이해하라는 식이니, 한 사람의 방문객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조치는 그저 소극적으로 구경 안다니는 것밖엔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뭐든 깔끔한 디자인을 선호하기 때문에 주렁주렁 블로그에 광고 배너를 단 것조차 눈에 거슬린다고 여기는 사람이라, 일반인인 척 하면서 블로그에 올린 글과 사진으로 은근슬쩍 직간접 광고를 하는 행위는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다. 차라리 업자가 직접 광고용 블로그를 운영하는 거라면 모를까.. (그러고 보니 그런 사이트에서 자기가 만든 다이어리나 문구용품 판매 광고할 땐 아무런 거부감도 없었다!) 트루먼 쇼도 아니고 말이지.. -_-; 어차피 블로그라는 데가 자기자랑 차원을 벗어날 수 없는 공간이지만, 똑같은 자기 자랑이라도 제 돈과 노력을 기울여 한 행위를 자랑하는 것과 '누가 디밀어 줘서 공짜로' 받은 것들을 자랑하는 건 엄연히 다르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도 뇌물 아니냐고! 어쩌면 괜한 질투심에 씩씩대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 한참 뒤에 내리게 될 포스팅일 수도 있겠으나, 현재 내 기분은 이랬다. 열 그만 내고 점심이나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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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과 바쁜 일은 원래 떼로 몰려다닌다는 게 맞다. 숨도 못 고르게 바쁠 땐 정말 또 다른 일이 겹친다. 마감에 허덕이고 있는 가운데 이번주엔 설상가상 며칠 간격으로 교정지를 두권이나 넘겨야 했다. 몹시 힘겨워하는 후기도 써야 했고. 덕분에 평균 수면시간이 형편없이 줄었고, 가뜩이나 가을 타는 얼굴 꼬라지는 아주 가관이 되었다.
어쨌거나 새삼스레 교정지와 씨름하며, 며칠 간격으로 생각이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린 게 있어서 적어둔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과거를 반복할 운명에 놓인다." 조지 산타야나의 말이란다. 기계적으로 번역을 하고, 퇴고를 할 땐 자구에 얽매여 웬만해선 작품을 감상할 여유 따윈 생기지 않는다. 각별히 애정이 가는 책이 아니고서야 말이다. 석달이나 마감일을 어기고 넘긴 책이라 쫓기듯 번역한 소설에서 조지 산타야나의 인용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기에, 그땐 신기하다 정도만 생각하고 넘겼던 것 같다. 700페이지에 가까운 산타야나의 책을 헉헉대며 번역하다 엎어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암튼, 과거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면 똑같은 실수를 또 저지르게 될 거라는데 끄덕끄덕 동의하며 그 주제로 역자후기를 써보냈다. 그런데 워낙 귀가 얇은 인간인지라, 며칠 뒤엔 다른 책의 또 다른 글귀에 시선이 꽂혔다. "망각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신호다." 어차피 과거의 경험이라는 게 각자의 편견을 거쳐 남은 '반쪽짜리 학습'이므로 연연할 필요 없으니 잊어도 좋다는 의미로 쓰인 말이다. 망각을 가장 두려워하는 노년을 위로하는 맥락인데, 이 또한 진리가 아닌가. -_-;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본 뒤 carpe diem이 내 삶의 모토라고 주장해왔던 걸 생각하면 후자가 역시 내 취향이긴 하다. 과거에 자꾸만 얽매이는 건 현재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의 표현일지 모른다. 어쨌거나 서로 모순인 것 같기도 하고, 잘하면 둘 다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은 두 가지 생각 때문에 갈팡질팡했다. 가뜩이나 온갖 선택 앞에서 우유부단한 인간이 이런 심오한 문제를 어찌 결론 지으랴. 이럴 땐 황희정승 놀이가 최고일 듯. 깜박깜박 까먹는 걸 비롯해 수많은 걸 망각해도 공포에 사로잡힐 필요 없다고 마음을 놓으며 살다가, 또 마음 켕기는 순간엔 추억을 쓰다듬을란다. 결국 내 마음대로 펄럭거리며 살겠다는 얘기로군.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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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야 고맙다

투덜일기 2010. 10. 7. 15:49

딸을 둔 부모는 원래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이제 겨우 열세살인 조카를 두고 동생과 올케는 공주의 결혼 문제로 벌써부터 고민을 한다. 동생 녀석은 이렇게 정성들여 키운 딸이 아까워서 어떻게 시집 보내느냐고, 남주기 싫어서 그냥 계속 데리고 살겠다는 전형적인 딸바보 아빠의 발언을 최근까지 토로했다. 그러면 올케는 펄쩍 뛴다. 스무살만 되면 독립시키고 싶다나. 그러면서 공주가 나중에 결혼해서 어떻게 살아나갈지, 가서 보면 속 터질 것 같아 안보는 게 낫겠다고 구시렁거린다. 내가 보기엔 참 걱정도 팔자다. 지난 금요일 결혼식에선 벌써부터 딸 예식 걱정을 하질 않나...

딸들의 경우 자라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은 비슷하게 발전하다 어느 시점에 확고한 자리를 잡는 듯하다. 처음엔 멋모르고 제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하다가 유치원쯤 들어가면 마음에 드는 남자친구랑 결혼하겠다고 하는 식이다. (그러고 보니 사내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려선 엄마랑 결혼하겠다고 하다가 나중에 가족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여자친구 이름을 들먹이지 않는가.) 아이들의 그런 대답은 사실 어느 정도 어른들이 강요한 것이다. "너 커서 누구랑 결혼할래?"라고 자꾸 물으니 눈에 보이는 대상을 입에 올리는 게 아닐까.

어쨌든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회의적으로 보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였던 듯한데, '주의'라고 이름 붙일 만한 이론적인 정신 무장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놓고 독신을 부르짖지는 않았어도 내심 난 결혼 같은 거 하지 않으리라고 '자연스레' 마음 먹고 있었다. 사회 시간이었던가, 어쩌다 결혼제도의 종류와 일부일처제의 불합리함을 토론하던 수업 중에 나의 독신 성향이 발각되고 말았을 때, 욕쟁이 여선생은 내게 말했다. "저런 년이 제일 먼저 시집간다고 난리 치는 법이다. 다들 두고봐라. 쟤 학교 졸업하자마자 청첩장 돌리나 안 돌리나." 속으로 나 역시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어디 두고 보셔.'
 
얼마 전까지도 공주는 아주 돈이 많은 부자랑 결혼해서 자기가 회사 나가서 일 안해도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여행다니며 살고 싶다고 말해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그런 사고방식이 왜 옳지 않은지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퍼뜩 떠오르지 않았달까. 주체적인 삶이 어쩌고 경제적인 종속이 어쩌고 몇 마디 하다가 그냥, 그런 건 나중에 커서 결정해도 된다고, 어른 되면 생각이 바뀔 거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런데 제 엄마에게 또 한번 "너 나중에 결혼하면.... 어쩌구 저쩌구..."하는 잔소리를 듣던 조카가 며칠 전엔 대뜸 자기는 결혼을 하지 않고 '고모처럼 살겠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고모가 얼마나 행복한데 그래!"라고 부연하면서. +_+ 진정한 행복 여부를 떠나 순간 어찌나 공주한테 고맙던지! 물론 조카의 의도는 '고모처럼' 계속해서 부모에게 얹혀 살며 캥거루족이 되겠다는 것이어서 제 엄마를 더욱 펄쩍펄쩍 뛰게 만들었지만, 옆에서 듣는 나는 염려스러우면서도 뿌듯했다. 스스로 요즘 내 삶이 과연 행복한가 회의에 빠져있던 시기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소소한 데서 찾는 깨알 같은 행복으로 만족하기엔 속물스러움이 점점 심해진다. 욕심은 커지고 몸을 써서 들이는 노력은 차츰 아끼고만 싶다. 불평과 짜증은 겉잡을 수 없이 늘어나 이마엔 깊은 三자 주름이 새겨진 느낌이다. 그러던 중에 가끔씩 촌철살인 예리하게 솔직함을 드러내는 공주에게 들은 '행복해보인다'는 말에 얼마나 기운이 솟는지 모르겠다. 요즘의 감정곡선으론 몇달 안 지나서 또 죽상을 하고 있기 십상이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꽤 훌륭한 자기최면의 화두가 될 것 같다. "고모가 얼마나 행복한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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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열흘

투덜일기 2010. 9. 28. 06:30

내가 스마트폰을 쓰게 된다면 아이폰4를 선택하리라 마음 먹은 계기는 순전히 모양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이폰3은 생김새가 넙적한 것이 별로 마음에 안들었고, 갤럭시s는 너무 크고 못생긴 느낌인데다, 그 밖의 제품들은 디자인이 하나가 마음에 들면 다른 쪽이 마뜩찮은 구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기 모토로라 몇번에 이어 애니콜 휴대폰을 계속 쓰면서 내가 왜 몹쓸 대기업에 충성하고 있나 공연히 벨이 뒤틀려 '다른 것'을 선택해보려던 차에, '사과표'에 대한 막연한 오랜 동경을 해결하기엔 딱이려니 싶었다. 16기가 정도면 mp3대신으로도 내겐 충분할 테고.

암튼 그래서 얼떨결에 신청해 바꾼 아이폰4와 함께 지낸지 열흘이 지났다. 빌어먹을 터치 방식이 낯선 것이야 그렇다 치지만 내겐 전혀 직관적이지 않은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으면서 친절한 매뉴얼 책자도 없는 아이폰과의 생활은 여전히 불만 투성이다. 바쁨과 컴맹을 핑계로 내가 아직 기능 파악을 제대로 못해서 그랬을 확률이 절반 이상이지만, 조금씩 공부해 익힌 바로도 그간 익숙하게 썼던 기능과 다르거나 없는 게 많은 듯해서 아이폰4의 가장 큰 문제점인 수신률 부분은 거의 논외일 정도였다.

헌데 이 생새벽에 분노의 폭풍 포스팅을 하고 있는 데서 드러나듯, 수신률 문제가 심각하긴 한 모양이다. 아 글쎄, 어제 저녁 8시 56분에 보낸 문자메시지가 생새벽인 조금 전에 띵동 하고 날아온 게 아닌가! 캐치콜 메시지도 아니고, 그냥 동생이 보낸 메시지 내용 그대로다. 안테나 부분을 쥐면 막대기표시가 한두개 줄어드는 것이야 원래도 아는 문제점이니 그러려니 했었고, 지난번에 쓰던 핸드폰과 달리(언덕배기 주택가라도 줄곧 예전 휴대폰 안테나는 여섯개 다 떴었단 말이다) 방구석에 있을 땐 안테나 막대기가 두개까지 내려갈 때도 있어 그 옛날 KTF 때 엘리베이터에서 통화하다 말고 "여보세요? 여보세요? 뭐라고요?"를 반복해야 했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어도 그저 그러려니 했다.(과거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속터지게 하는 바람에 결국 통신사를 sk로 바꾼 전적도 있다. 요 전번 휴대폰으로 바꿔타면서 예쁜 휴대폰이 없는 바람에 다시 KT로 옮기긴 했지만;;). 그런데 메시지가 8시간이나 지연되어 날아오는 건 너무 심하다! 9월까지는 신청자 전원에게 지급한다던 무료범퍼도 서울 전체를 뒤져도 몇개 되지도 않는 애플 as센터로 직접 찾아가야 된대서 애저녁에 포기하고 그냥 케이스를 사서 씌워야지 마음 먹고 있던 차여서 안 그래도 못마땅한 상황이었는데, 이런!

아직은 수신률 때문에 전화를 못받은 적은 '없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문득 죄다 의심스럽다. 특히 요즘 원고독촉 기간인데 괜스레 '먹튀'로 찍히는 건 아닌가 몰라... -_-;; 물론 출판사 전화야 전화기가 알고 따돌려준다면 나로선 고마워해야할 것 같지만서도...

그밖에도 아이폰4 쓰면서 불편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1. 단축키가 없다! 내가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1번부터 10번까지 단축번호 열개는 외워서 써먹어왔고, 이전까지는 폴더 올리고 단축키 한번 꾹 누르는 것으로 전화걸기가 가능했는데, 이젠... 몇 단계를 거쳐야하는지 모르겠다. ㅠㅠ 일단 홈 버튼 눌러서 화면 띄워야지, 잠긴 화면 밀어서 해제 해야지, 전화 아이콘 터치해야지, 전화번호부 뒤지거나 즐겨찾기 해둔 이름이나 최근 통화 목록에서 골라 터치해야지, 그 다음에 비로소 통화시도가 가능하다. 켁... 뭐 물론 문자를 보내든 전화번호부를 편집 중이든 어디서나 번호만 슬쩍 누르면 전화가 걸리기는 하는데, 나처럼 서툰 인간한테는 오히려 그게 독이다. 딴짓하다가 자꾸 전화가 걸리니 원...

2. 단체로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가 없다! 친구들한테나 동생들한테 꽤 자주 써먹는 단체 메시지 기능이 없으니 아오... 일일이 번호 찾아 새로 메시지 써서 보내는 거 짜증난다. 뭐, 복사 기능이 있으니 문자 내용을 복사해서 붙여가지고 보내는 기능을 대신 쓰면 된다는데, 아직 터치가 서투르기 짝이 없는 나로서는 한번 쓴 문자로 꾹꾹 전화번호부 찾아서 한꺼번에 슝 문자 보낼 수 있었던 때가 확실히 더 편했다. ㅠ.ㅠ

3. 문자에 이모티콘을 못쓴다! 요란한 이모티콘 어플이 따로 있는 모양인데, 그건 다른 종류 휴대폰에선 안보일 거다 아마. 기껏해야 웃음표시 ^^ 밖에 못쓰니 조카에겐 특히나 하트를 남발하던 나로선 모든 문자메시지가 무미건조해졌다. 휴대폰에 저장된 기념일 관련 이모티콘도 물론 없고, 자주 불러와 쓰던 만들어진 이모티콘 종류도 없으니 앞으론 그런 거 보내고 싶으면 반드시 컴퓨터로 보내는 수밖에 없겠다. ㅠ.ㅠ

4. 배터리가 정말 빨리 닳는다. 휴대폰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과거엔 3, 4일에 한번이나 배터리를 갈까말까 했던 것 같다. 가끔 게임에 열중할 때는 예외였지만, 심하면 5일 이상 배터리 하나로 버티곤 했는데, 초반부라 내가 이것저것 자꾸 눌러보고 연구하는 경향이 있다고는 해도 (처음 사흘간은 매일 충전해야 했다), 열흘이 지난 지금은 거의 방치상태로 전화와 문자 기능만 쓰고 있는데도 배터리가 이틀을 못간다. 귀찮게스리... 전원버튼을 살짝 눌러 절전모드로 해놓아도 그렇다.

5. 내 행동반경 안에는 와이파이존이 별로 없다. -_-; 열흘간 와이파이존을 딱 두번 경험했는데, 한번은 동네 미용실에 머리 자르러 갔다가 뜻밖에도 와이파이 표시가 떠서 기뻐하며 얼른 여럿이 추천하는 무료 어플을 몇개 다운받았었다. 3G일때보다 확실히 로딩 속도도 빨라서 신나했었는데, 같은 와이파이라도 매번 그런 환경인 것은 아니었다. 지난주에 엄니 모시고 대학병원엘 가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었는데, 와이파이존면 뭐하나 사용자가 얼마나 많은지 당최 제대로 접속되질 않아 결국 시도하는 것마다 로딩은 전부 다 실패였다. -_-;; 게다가 절반도 남지 않은 요번달(17일에 개통했음)에 할당된 데이터사용량이 한 200메가쯤 된 모양인데, 추석 전날 조카가 한 30분 갖고 놀며 이것저것 구경하더니 다 썼다고 메시지 날아오더라. 아이폰3 쓰는 후배 얘기로는 내비게이션으로 사용하지 않는 한 500메가 다 못써서 매번 담달로 이월됐다던데, 난 뭥미?

6. 전화번호부 그룹별로 벨소리 편집을 할 수가 없다. 귀가 특히 발달되진 않았어도 벨소리로 그룹을 나눠놓으면 번호를 보기 전에도 알아차릴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젠 일일이 죄다 벨소리를 등록해야 한다는 얘기다. (설마 나만 그룹 편집 메뉴를 모르는 건 아니겠지?) 특히 가족이랑 친구, 후배들은 벨소리로 구분해서 척 듣는 순간 긴장을 풀어도 되니 좋았는데... 요샌 벨이 울릴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ㅠ.ㅠ (일단은 주요 가족만 일일이 벨소리를 바꿔놨다. 으휴)

7. 전단계로 갈 수 있는 취소 버튼이 없다. 내가 애니콜에 너무 오래 익숙해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암튼 '멀티태스킹'이 가능하기 때문에 컴퓨터에 화면 여러개 띄우듯 동시에 이것저것 다 할 수 있게 만들어 딱 하나만 취소시키는 기능 버튼이 아예 필요 없는 모양인데, 나 같은 컴맹은 속터진다. 물론 언제든 '홈' 버튼을 누르면 되기는 하지만 그거만 눌러선 제대로 끝난 게 아니라잖아! +_+ 인터넷에 접속해서 이것저것 둘러보고 나면 초기화면으로 돌아와도 그 화면들이 죄다 떠 있는 상태라나 뭐라나.. 암튼 메모리 안 잡아먹게 나중에 정리해줘야 한댄다. 윽.. 그럼 컴퓨터처럼 모든 화면 한 구석에 x라도 넣어주든지! 젠장... 취소버튼이 없다보니 인터넷 메뉴에서 이리저리 다니는 게 죄다 로딩이다. 속터져라... (이것도 나만 몰라 헤매는 것일지도 ㅋ)


암튼 생각나는 건 여기까지다. 일곱가지나 적었으니 '한두가지가 아님'은 확실.

어차피 정들여 최소 2년은 써야하는 물건이니 앞으론 좋은 점만 발굴하게 되기를 빌고 있다. 물론 비틀즈 음반을 대거 넣어둔 아이팟 기능이 제일 뿌듯하고, 틈틈이 플라시보 예습도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씩 웃음이 나며, 뭐니뭐니해도 외관이 내 마음에 들게 깔끔하니 '예쁘다'. ^^*

실컷 욕하다가 전화와 메시지 부실해도 예쁘면 그만이라는 결론 같아서 좀 민망하긴 하지만, 아 일단 저질렀으니 어쩔겨. 어쩌면 긴급 연락이 아닌 한 문자메시지가 턱없이 지연되고 전화통화가 안되는 것도 종국엔 나에게 이로운 하나의 '핑계거리'가 될수도 있을지 모른다. -_-; 받기 싫은 연락은 슬쩍 아이폰 핑계로 보이코트할 수 있지 않겠나 말이다. (하지만 정말 급한 전화는 어쩐담?! 앞으로 좀 더 지켜보긴 하겠지만, 문자 지연전송 문제가 또 생긴다면 주변에 사지 말라고 뜯어말릴 수밖에 없긴 하겠다. 아이폰5도 내년에 나온다니 뭐;;) 아무려나 각설하고, 앞으로 배울 길이 멀고 멀어만 보이는 아이폰의 길, 나의 무지를 일깨워줄 분들의 충고는 언제든 대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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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휴대폰

투덜일기 2010. 9. 26. 17:12

왜 요새는 휴대폰을 새로 장만할 때 헌 휴대폰과 충전기를 반납하는 의무규정이 없을까? 몇년씩 쓰던 휴대폰을 막상 내놓으라고 하면 뭔가 소중한 걸 빼앗기는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헌 휴대폰을 반납하지 않으니 중고이긴 하지만 멀쩡히 잘만 쓰던 물건이 무용지물이 된 마당에 새삼 어째야 하나 처치곤란이다.

휴대폰을 바꾸면서 헌 휴대폰을 반납했던 건 아주 까마득한 옛날에 한두 번 뿐이었고, 그 이후로는 대리점에서 매번 선심쓰듯 '기기 반납 안하셔도 됩니다'고 얘기했다. 뭐든 물건을 잘 내다버리지 못하는 고질병이 있는 나는 또 그 안에 든 전화번호와 사진들이 찜찜해서 휙 내다버리지도 못하고 계속 서랍 속에 처박아 두었고 최근 쓰던 휴대폰 두 개는 혹시나 조카들이 휴대폰 잃어버리면 개통해서 쓸지 모른다며 충전기는 물론이고 박스와 설명서까지 고이 모셔두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 헌 휴대폰이 대체 몇개인지 모르겠다! 엄마 것까지 치면 대여섯 개는 될 듯.. -_-; 공통이 된 충전기는 아예 뜯지도 않은 박스째로 여러개다.

헌 휴대폰도 중고로 수출하거나 부품을 추출해 재이용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지만 대체 어떤 경로로 그 대열에 참여해야 하는 건지?? 조카네 학교에서 언젠가 집에 굴러다니는 헌 휴대폰을 모아 내 자원활용을 유도하는 캠페인을 벌였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당장 학교 다니는 아이도 없는 우리집의 경우는 어쩌란 말인지.

아이폰으로 바꾸기 직전에 쓰던 휴대폰에는 유심칩도 들어 있었고 워낙 메모해둔 것들도 많아 당분간은 계속 충전해두고 전화번호부와 메모장 용으로 써야할 것도 같다. 사진들도 죄다 컴퓨터에 옮겨두긴 했지만 전화번호부에 입력해둔 사진들은 또 그럴 수도 없으니 정보를 죄다 지워버리기도 찜찜하고. 그러고서 생각해보니, 중국 등지에 완전히 노출되어버렸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락처와 신상정보 일부는 함부로 내다버리거나 반납했다가 수출한 중고 휴대폰에 남았던 정보일 가능성은 없는지 궁금해졌다. 

가끔 "고장난 가전제품, 컴퓨터 삽니다"라고 방송하며 동네를 돌아다니는 트럭이 있던데, 휴대폰은 안 가져가나?? +_+ 하기야 몇년전에 필요 없어진 감열지 팩스랑 잉크젯 프린터 가져가시라고 했더니만, 돈을 주고 사가기는커녕 나더러 처리비용을 내라는 식이어서 좀 기막혀 하다가, 복합기까지 얹어서 그냥 다 '거저' 가져가는 쪽으로 흥정을 마친 적이 있었다(쓸모 없어진 물건 치워버려서 속은 시원했지만 어쩐지 사기 당한 기분이었다;;). 휴대폰이야 무게로 따지는 고물값으로 치면 몇푼 되지도 않을 터이니 아예 취급하려들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건전지도 따로 버릴 데가 없어서 동사무소 갖다 준다고 모아둔 게 한 보따리라 이젠 들지도 못할 정도인데, 휴대폰도 동사무소나 구청에 갖다 주면 재활용을 하려나? 나 같은 게으름뱅이가 어느 천년에 그런 착한 짓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우리집 말고도 집집마다 지천으로 깔려 있을 헌 휴대폰 처리법이나 좀 알려주면 좋겠다. 이제는 쓸모 없을지 몰라도 살 때는 분명 기십만원씩 했던 고가품이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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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투덜일기 2010. 9. 24. 03:19

부실한 왕비마마 덕분에 본격적으로 무수리의 삶을 산지 꽤 됐지만, 정말이지 가사노동은 '정'이 들지 않는다. 드물기는 해도 간혹 살림살이에 취미를 붙이고 호사스러운 그릇 사재기부터 집안 꾸미기를 즐기는 이도 없지는 않는 듯한데, 나로선 도무지 재미가 없는 게 살림이다. 특히 제일 싫은 건 뭐니뭐니해도 청소! 그 다음으로 요리, 설거지, 빨래의 순인 것 같다. 정리정돈도 뭐 잘하는 건 아니고...

암튼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것이니 하기는 하는데, 나의 무의식이 끊임없이 가사노동을 거부하는지 어느 시점에 이르면 한계에 다다라서는 몇달에 한번은 꼭 사고를 친다. 청소를 하다가 뭔가를 망가뜨린다거나, 그릇을 깨는 정도의 사고이긴 하지만, 지나고 보면 늘 깨닫는다. 하기 싫은 일에 성질 부리다가 애먼 살림살이만 아작냈구나, 하고.

일주일 전에도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다가 유리 밀폐용기를 떨어뜨렸는데, 오늘 또 설거지를 하다가 유리 그릇을 놓쳐 바닥으로 투하시키고 말았다. 지난번엔 내용물까지 있었어도 깨진 유리조각 치우기를 사고 없이 마쳤건만, 오늘은 역시나 조심하느라고 했는데도 두 군데나 손을 벴고 조금 전 밤참 챙기러 부엌에 갔다가 또 덜 치운 유리조각에 발가락도 살짝 찔렸다. 깨진 유리를 치우다 다치는 건 종이에 베는 것만큼이나 내가 미리부터 두려워하는 일이라 퍽 조심을 하는데도, 오늘은 심히 부주의했다는 의미다.

유리란 놈이 참 교활해서 깨지며 튀긴 범위가 빤한 것 같지만, 파편조각을 치우다 보면 그렇지가 않다. 도저히 날아갔을 것 같지 않은 곳까지 버젓이 반짝거리는 유리파편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해서 구석구석 죄다 치운다고 하느라 했는데 마지막에 방심해서 키친타월을 너무 세게 잡았던 것이 문제였고, 그러다 보니 또 빠뜨린 유리조각이 남아 발가락까지 공격당하고 만 것. 다행히 발가락은 무딘 놈이라 찔리고도 피 한방울 닦고 나니 멀쩡한데, 엄지와 검지는 움직일 때마다 불편해서 작은 밴드를 붙여야 했다.

워낙에도 좀 덜렁거리는 인간형이지만 일주일 만에 유리그릇을 또 깨뜨렸다는 건 마감을 핑계로 나의 가사노동 혐오증이 극에 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므로, 손까지 벤 건 그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하늘의 뜻인가? 미신 따위는 코웃음치면서도 막상 심통 부리다 퉁박을 맞듯 작은 사고를 내고 나면 뜨끔하다(특히 엄마한테 버럭 소리지르고 나면 꼭 뭔일이 생긴다 -_-;). 어쩌면 못난 자신에 대한 무의식적 응징이거나 제발이 저려 발생하는 실수일지도? 유리에 베긴 했어도 아주 슬쩍 보일듯 말듯한 상처로 그쳤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오늘의 반성일기 끝.

착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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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서울

투덜일기 2010. 9. 23. 17:23
서울이 고향이라는 말처럼 이상하게 들리는 말도 드문 것 같지만, 어쨌든 서울서 나고 자랐으니 누가 물으면 내 고향은 서울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할아버지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라고 해야하는 건가? 그럼 만주에서 태어나 자라다 한국전쟁 통에 부산으로 피난 내려가 십대까지 보낸 아버지의 고향은 또 어디인가? 내 혈통의 절반을 차지한 엄마는 그야말로 대대로 서울 토박이인데 그건 또 어떻게 반영해야하나? 이것저것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온다.

어쨌든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살아계실 때도 우리 가족 명절 기반은 서울이었고, 우리집에서 동생네 집으로 차례의 주관이 넘어간 지금껏 상당수 서울 시민들이 귀향해 텅텅 빈 것 같은 명절 서울을 지키며 교통량이 만날 명절 때만 같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산 게 수십년이다. 연휴 시작무렵 차량 몇십만 대가 톨게이트를 빠져나갔네 어쩌네 하는 뉴스를 듣지 않아도 명절 때 가끔 시내를 다녀보면 정말로 한산해서 평소보다 시간이 절반밖에 안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거나, 명절 때 움직이는 쪽이 아니라 친척과 가족들의 방문을 받는 쪽이라 몰랐던 것일 뿐이었는지, 명절의 서울은 이제 그리 한산하지 않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설날과 추석에 온종일 왁자지껄 친척들과 먹고 마시다 늦은 밤에 헤어져 집에 오는 길은 한산하게 느껴졌었다. 명절 연휴의 길이에 따라 상황이 약간 달라지긴 했어도 명절 당일엔 길막힘 따위 모르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그런데 가족회의 결과 우리집도 올해부턴 며느리들의 휴식과 친정방문을 위해(이전까지 우리 엄마를 비롯해 작은어머니들은 물론이고, 올케들까지 명절엔 온종일 시댁과 함께한 뒤 다음날에나 친정에 갈 수 있었다.) 점심까지만 다 같이 먹고 헤어지기로 했기 때문에, 명절 당일 오후에 도로엘 나서보니 교통혼잡이 상상 이상이다.

하기야 요번엔 추석 전날 서울에 물폭탄이 쏟아지는 바람에 동생네 집으로 가는 길도 수월하지가 않았었다. 2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1시간도 넘게 걸려 꾸물꾸물 기어가며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기분이 묘했다. 명절마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막막한 기분이었겠구나 싶었다. 이미 지난 설날에도 경험했지만, 어제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각 지방에서 아침 일찍 차례를 마친 사람들이 다 벌써 돌아온 것인지, 아니면 그냥 서울 안에서 친척집을 오가는 차들이 서로 엉킨 것인지, 그 둘 다인지 간선도로 지선도로 할 것 없이 길마다 자동차가 꽉꽉 들어차 기어가고 있었다.

명절 때마다 7, 8시간씩 고속도로에서 고충을 겪는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하찮은 수준이기는 했어도, 명절 교통체증을 실감하며 이렇게 다들 고생을 해가며 찾아가는 고향과 가족과 만남의 의미가 무엇일까 새삼 멍했다. 전날부터 기름냄새 온 몸에 배어가며 장만한 각종 전과 음식은 맛있었고, 일년에 몇번 그렇게 대대적으로 모여 얼굴 맞대고 왁자지껄 떠들고 노는 자리를 몹시 소중히 여기는 사람임에도 확실히 명절은 적잖은 스트레스다. 핏줄로 어쩔 수 없이 엮인 나와 달리 엄연히 따지면 남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고리로 묶여 노동에 힘쓰며 짜증스러워할까봐 눈치가 보이면서, 동시에 또 그렇게 가족 내에서도 편을 가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한숨이 나온다. 거기다 이젠 명절날 몰랐던 교통 체증 속 운전까지 까칠한 인간의 성미를 돋울 줄이야.

착하긴 해도(어쩌면 착하기 때문에) 명절증후군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올케들에게 한 사람씩 돌아가며 안식년 휴식제를 실시하든지, 5년씩 돌아가며 차례와 제사를 모시는 순환제를 도입하든지 하자고 제의했던 건 어쩌면 나도 늘 꿈꿔마지않는 '명절에 해외여행가기' 를 실현하고 싶은 욕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생선전 밀가루 묻히기부터 시작해 명절 음식 장만을 도운 역사가 7살무렵부터 따져도 무려 얼마인가. 지겨울 때도 됐다고 생각은 하는데, 사실 명절 서울을 떠나 어디 다른 하늘 아래 가 있는다 해도 아직은 마음 편히 즐길 자신이 없긴 하다. ㅋ 참 바보 같은 가족형 인간이다 난. 그러니 앞으로도 한참은 명절 서울의 막히는 도로사정에 툴툴대는 수밖에 없을 듯. 암튼 고속도로도 막힌다는데 서울 시내 도로도 동시에 막히는 건 어찌된 영문인지 그걸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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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귀찮아

투덜일기 2010. 9. 18. 00:06
과연 나한테 필요가 있는가 반문했을 때 별로 크게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결국 아이폰4G를 신청했었고 드디어 오늘 전화기를 받았다. 근데 시작부터 조짐이 안 좋았다. 미리 시간약속까지 하고 찾아간 대리점에선 하필 컴퓨터가 다운되는 바람에 다시 밀고 설치중이라면서 무작정 기다리라고 하지 않겠나. -_-; 팩스로 서류를 보내 본사 같은 데서 대신 개통 노력을 하는 듯하더니 암튼 40분 넘게 기다려 결국 개통에 성공을 하긴 했다.

근데 헐... 역시나 컴맹에다 아날로그 세대인 나는 낯선 휴대폰을 새로 장만했을 때처럼 매뉴얼 읽고 공부 좀 하면 되겠거니 여겼더만 앙증맞은 핸드폰박스 안엔 아예 매뉴얼이 없더라. *_* 간단한 팁 설명만 들어 있고, 나머지는 죄다 온라인으로 공부하라네... 게다가 계속 컴퓨터 문제로 전에 쓰던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옮겨주지 못해 내일 다시 오면 해주겠다니, 완전 황당했다. 왜 하필 내가 개통하기 직전에 그 대리점 컴퓨터가 다운되고 지랄?? 기계도사들이야 택배로 받아서 스스로 유심칩도 끼고 개통에 응한뒤 척척 어플을 내려받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겠지만, 나는 내 수준을 잘 알고 있기에 최소한 전화번호부라도 옮겨받으려고 대리점 수령을 택한 거였는데, 맥이 탁 빠졌다.
 
게다가 전화 거는 거야 번호만 누르면 된다지만, 메시지 보내려니 그놈의 터치에 서툴러서 어찌나 글자가 잘못찍히던지! ㅠ.ㅠ 나름 문자는 꽤 빨리 보내는 중년 엄지족이라 여겼건만 이젠 완전히 더듬더듬 세번에 한번은 화살표를 눌러 글자를 지워야 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조카에게 보낸 첫 문자는 '핸드폰ㅐ'라고만 써서 그냥 날아가버렸다. -_-; 핸드폰 새로 장만했다고 자랑하려던 거였는데 그 짧은 문장도 완성 못하고 전송 버튼이 눌리다니... 순간적으로 혀를 깨물고 싶더라.

어플이고 자시고 일단 아이튠즈 깔아서 음악이나 담아놓으려는 것이 오늘의 목표량이었으나, 꼬진 컴퓨터로 최대한 추출해서 한시간 가까이 수백곡도 넘게 열심히 전화기에 담았건만 헐...(그나마도 열심히 초보자 가이드 찾아보며 실행한 거다) 음악감상은커녕 휴대폰에 음악파일이 제대로 들어갔는지도 확인이 안된다. ㅠ.ㅠ 악~~ 귀찮아!! 비서 같은 사람이 나에게 필요한 기능만 쏙쏙 다 다운받아 내가 쓰기만 하게 만들어주면 좋겠다. 우리집에선 당연히 와이파인지 뭔지 안뜨니 이것저것 막 눌러서 접속하기도 겁나고 (그래봤자 요금 이내수준일텐데도!) 일단 용어가 낯설어서 뭘 좀 해보려다가도 진행이 안된다. 우웩~~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시작했나 후회부터 앞섰다. 으휴... 일단 내일 전화번호부라도 좀 옮기고 나면 내 물건 같은 느낌이 들려나. 아직은 순전히 애물단지 같아서 정이 안간다. 흑흑.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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