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투덜일기 2010. 9. 4. 02:05

집에 3분짜리 모래시계가 있다. 화장실에 두고 양치질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한지 한 일년쯤 된 것 같다. 원래부터 양치질 용으로 산 건 아니었고, 그냥 어느 기념품 가게에서 친구가 뭘 굳이 사주고 싶다고 해서 만만한 모래시계를 집어들었는데 그냥 두고 먼지만 씌우느니 뭣에라도 써먹어 보자는 생각이 들어 화장실엘 갖다 둔 거다. 하루 종일 어영부영 지내다 보면 3분쯤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는 것 같지만, 생각외로 3분이란 시간은 퍽 길다.

양치질의 원칙 3-3-3을 모르는 이는 없겠지만 꼬박꼬박 실천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거의 평생 아침저녁 하루 두번 양치질을 고수한 나로서는 직딩 시절(그마저도 첫 직장 3년은 양치질로 유난 떠는 사람이 없었다) 점심시간 이후 거의 한 사람도 빠짐없이 치솔을 들고 화장실엘 가는 문화가 거의 충격적이었다. 귀찮음은 둘째 문제였다. 워낙에도 질질 뭐든 잘 흘리는 편이지만, 특히 양치질을 할 때는 얼굴 주변은 물론이고 종종 옷섶에도 치약을 묻히는 인간인 내가 회사에서 정장이나 유니폼을 입은 채로 어떻게 양치질을 하라는 것인지! 양치질을 하고 나면 거의 반 세수는 해야하는 형편인데 화장은 또 어떻게 고치라고?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모두들 닭벼슬 머리에 진한 아이섀도와 진한 립스틱으로 무장한... 나도 그 무리였다 ㅋㅋ) 그래서 나는 더러운 인간 취급을 받거나 말거나 점심시간 양치질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습관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떤 날은 온종일 세수 및 양치질을 삼가(?)다가 잠자기 전이라든지 졸음을 깨기 위한 방편으로 '큰 맘먹고' 양치질을 시도하는 극강의 게으름을 부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드물게 하는 양치질도 원칙에 맞게 3분간 꼬박 구석구석 닦는데 공을 들이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모래시계가 생긴 후, 평소대로 쓱싹쓱싹 열심히 양치질을 한 뒤 이쯤이면 3분 지났겠지 쳐다보면 대개는 모래가 절반도 안 떨어진 상태였다. 치아가 모두 30개 전후이므로 이빨 한 개당 5, 6초씩 꼼꼼하게 닦으면 3분 양치질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치과의사들의 조언도 모르는 바 아니다. 헌데 이론적으로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 이빨 한 개당 5, 6초 골고루 문지르기, 이건 성미 급한 나에게 놀라운 인내심을 필요로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모래시계가 눈에 들어오는 날이면 나는 전체적으로 북북 닦은 이빨을 또 닦고 문지르며 떨어지는 미세한 모래를 거의 째려봐야 한다. 그러면서 매번 느낀다. 3분이 왜 이렇게 길어!?!?

밤참으로 찐 옥수수를 세 자루나 데워먹고 나서 분위기 전환 용으로 방금 어렵사리 3분 모래시계에 맞춰 양치질을 마치고는 생각했다. 3분이란 시간은 포스팅으로 한 번 짚고 넘어가기에 충분한, 놀라운 시간이라고. ㅋ 3분 얘기 쓰느라고 일할 시간 또 30분 허비하긴 했지만, 그래도 쓸데없이 인터넷 서핑에 허비하는 시간에 비하면 심히 건설적이다. 이 글 마무리 하면 모래시계 꺼내다 엎어놓고 3분간 몇줄이나 번역하나 실험이나 해볼까나... 과연 그 실험은 작업 진도에 고무적인 영향을 미칠까, 아니면 허탈과 자괴감을 안겨줄까. 시간은 휴대폰 스톱워치로도 잴 수 있는데 굳이 모래시계 놀이를 생각하는 걸 보면, 그냥 일이 하기 싫은 거라는 결론이 나오는군. ㅎ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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