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와 커피

투덜일기 2010. 9. 1. 18:13

이틀 전 아무 이유 없이 허리를 비끗했다. 무거운 걸 든 것도 아니고 갑자기 몸을 깊이 수그린 것도 아니다. 그냥 외출하려고 손을 뻗어 소파에 있던 가방을 집어들려던 것 뿐인데, 순간적으로 몸이 좀 이상했다. 과거에 허리를 삐끗하거나 어깨 같은데 담이 들릴 때는 외부로 들릴 만큼은 아니라도 몸 어딘가에 무리가 갔음을 직감할 수 있는 '우드득' 또는 '휘청' 하는 소리가 나에게만은 들렸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그렇지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느낌도 없이 손을 뻗었을 때와 손을 거두었을 때의 몸 느낌이 달랐을 뿐이다. 심한 이상은 아니라 앉아 있거나 누워있거나 할 땐 거의 멀쩡하지만 자세를 바꿀 때가 문제다. 특히 엉거주춤 구부리는 동작은 코미디가 따로 없다. 가장 괴로운 건 볼일 볼 때. -_-'' 주변에선 빨리 병원엘 가든지 한의원엘 가라고, 하다못해 파스라도 붙이라고 성화지만 내가 어디 그런 사람인가. 며칠 지나면 나아질 거라면서 그냥 버티는 중이다. 확실히 상태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서 화장실 다닐 때와 잠자리에 누울 때 많이 수월해졌음을 느낀다. 앉아서 일할 때는 거의 불편함을 모르겠고... 어쨌거나 또 요가수업 빼먹을 핑계가 생겨서 기뻤다. 이젠 요가를 빼먹어도 돈도 아깝지 않은 단계에 접어들었다. 조카한테 민망할 뿐.

원두커피가 떨어져서 이번에도 같은 원두를 살까 하다가, 마음을 바꿔 공정무역 커피를 주문했다. 그간 양심에 찔리면서도 가격이 두배가 넘는 데다 입맛에 맞는 걸 찾으려면 또 몇번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기 때문에 망설였다. 원두는 금방 볶은 걸 조금씩 사다가 일주일 내로 먹어야 제격이지만, 방구석 붙박이로 사는 나로서는 그냥 대용량을 사서 며칠 간 신선한 원두커피를 즐기다 남은 원두는 얼른 냉동보관했다가 조금씩 꺼내 갈아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간 주문해 먹던 원두는 1kg에 3만6천원. 이것저것 사먹어 보니 내 입맛엔 풀시티로스트로 좀 진하게 로스팅한 남미산 커피가 맞는다는 걸 깨달았고, 가격대비 만족도도 몹시 높았다. 주문한 뒤에 로스팅해 보내주는 원두를 이틀 쯤 뒤에 받아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면 정말로 향기가 온 집안 가득 그윽하게 퍼진다.

어쨌든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곳도 주문 하면 그제야 볶아서 배송해준다니 원두만 잘 고르면 될 듯했는데, 똑같이 콜럼비아산 아라비카 커피를 두 종류로 시켰는데도 오늘 도착한 원두를 설레는 맘으로 갈아서 커피를 만들어 보니 맛이 없다. -_-;; 개인적으로 나는 신맛이 강한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데 향도 그윽함이 덜하고 맛은 전체적으로 시큼털털하다.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곳도 여러군데이니 계속 양심적인 커피를 마시려면 로스팅을 좀 더 잘하는 곳을 찾아봐야한다는 뜻이다. 구매자 후기 읽어보니 다들 '맛'보다 '공정무역'에 방점을 두고 산 듯했는데 그걸 간과한 내 잘못이다. 227g에 만오천원씩, 두 봉지 다 맛이 없다니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하나는 성공할 줄 알았건만... 솔직한 마음으론 공정무역이고 양심이고 다 관두고 그냥 예전에 주문하던 데다 다시 원두를 주문하고 싶다. -_-; 변변한 낙도 없는 삶에서 커피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데... 결국엔 커피 업체를 잘못 고른 나의 잘못인데도, 공정무역 커피는 별로 맛이 없다는 쪽으로 자꾸 편견이 자리를 잡으려 하기에 이렇게 또 끼적이고 있다. 자꾸 마셔보면 신맛에도 길들여지려나... 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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