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사범대 부속학교였던 우리 학교엔 당시로선 꽤 드물게(이후 많은 학교에서 따라했다고 들었다) 아침마다 명상의 시간이 있었다. 이른바 '마인드 콘트롤'이라고 해서 MC라고 시간표에도 떡하니 적혀 있었을 거다. 아침 수업 시작하기 전에,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유치하고 얼굴 간지러운 명상음악과 새소리 물소리 따위를 배경으로 느릿느릿 명상을 유도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편안히 눈을 감고 마음의 여행을 떠납니다.
나는 지금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는 숲 속을 거닐고 있습니다.
산들바람이 붑니다.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쩌구 저쩌구...
나는 지금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는 숲 속을 거닐고 있습니다.
산들바람이 붑니다.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쩌구 저쩌구...
뭐든 새로운 걸 도입하기 좋아했던 그때 선생들은 우리학교가 '마인드 콘트롤' 시간을 도입해서 학생들 성적도 오르고 성정이 반듯해졌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렇게 강제로 단체로 눈을 감게 하고 억지 명상을 시키는 상황도 우습고, 흘러나오는 명상음악과 내레이션도 웃겨서 처음엔 피식피식 웃다가 그냥 잠깐 눈붙이고 자는 짬으로 활용하고 말았다. 특히나 명상의 시간이 끝날무렵, 당연하다는 듯 "이제 마음의 무거운 짐은 모두 사라져 평화가 찾아왔습니다."라며 얼토당토 않게 단정하는 말에는 버럭 화도 났던 것 같다.
꽤 오래 요가를 다니면서 이젠 좀 익숙해질만도 하건만, 나는 학창시절 명상시간에 느꼈던 삐딱한 불평 때문인지 여전히 명상을 유도하는 강사들의 간질간질한 말들이 귀에 거슬리고 우습다. -_-;; 특히나 조용조용 가만가만 우아떨며 나긋나긋 읊조리는 말투도 우스꽝스럽고! 같은 말투라도 동작 설명하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참아주겠는데 처음에 반가부좌 하고 앉아서 눈감고 수업 시작할 때 하는 말들은 어쩜 그리도 그 옛날 명상의 시간 코멘트와 비슷한가 말이다! (하기야.. 명상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꽤 오래 요가를 다니면서 이젠 좀 익숙해질만도 하건만, 나는 학창시절 명상시간에 느꼈던 삐딱한 불평 때문인지 여전히 명상을 유도하는 강사들의 간질간질한 말들이 귀에 거슬리고 우습다. -_-;; 특히나 조용조용 가만가만 우아떨며 나긋나긋 읊조리는 말투도 우스꽝스럽고! 같은 말투라도 동작 설명하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참아주겠는데 처음에 반가부좌 하고 앉아서 눈감고 수업 시작할 때 하는 말들은 어쩜 그리도 그 옛날 명상의 시간 코멘트와 비슷한가 말이다! (하기야.. 명상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억지로 생각을 물리치려고도 떠올리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들고 나는 호흡에 의식을 집중합니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호흡을 바라봅니다.
허리를 곧게 펴고 깊은 숨에 척추 마디마다 전해지는 호흡을 바라봅니다....
그저 들고 나는 호흡에 의식을 집중합니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호흡을 바라봅니다.
허리를 곧게 펴고 깊은 숨에 척추 마디마다 전해지는 호흡을 바라봅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얘긴 줄은 알지만, 만날 뭘 어떻게 바라보라는 건지!
아무리 마음의 눈이라지만 볼 게 있고 못 볼 게 있지 않은가 말이다. 몇달 전에 강사가 바뀌어 수강생들이 우르르 다른 시간대로 빠져나갔을 만큼, 새로 온 강사가 좀 여러가지로 서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전 강사들의 언사가 더러더러 귀에 거슬리는 정도였다면 지금 강사는 수업 중 쓰는 말의 절반 이상이 비문이다. 특히 동작 설명을 하다가도 걸핏하면 '바라보라'고 한다. "다리 뒤쪽에서 느껴지는 자극을 바라봅니다", "고개를 숙이고 온몸의 자극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봅니다"하는 식이다. 명상과 요가 동작을 동시에 유도하는 말들이 어렵다는 건 인정하겠는데, 그래도 말과 글로 밥벌이를 하는 직업병까지 있는 인간이다 보니 문장 전후관계가 틀리는 경우가 더 많은 강사의 지시를 거듭 들으면 몸이 유연하게 풀리는 게 아니라 팔다리 근육이 자꾸 오그라드는 기분이다. 조카가 요가 가자고 하지 않으면 신나서 수업을 빼먹는 형편이긴 해도 무려 핫요가 9개월째인 지금도 내 몸이 여전히 최강뻣뻣인 건 어디까지나 마음에 들지 않는 명상언어 때문이라고 변명하면 누가 믿어주려나. -_-;;
째뜬 이런저런 핑계로 열흘쯤을 내리 빠지다가 어제 그제 연이틀 요가 수업 후 삭신이 심히 쑤셔서 오늘은 막무가내로 버텨 요가수업을 빼먹었다. 요가 열공중인 조카는 혼자라도 가겠다며 나섰으니 시방 열심히 요상한 비문 명상언어에 맞춰 호흡과 여러 자극을 '바라보며' 팔다리를 늘이고 있을 게다. 이러다 조만간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도 '바라보다'에 대한 새로운 뜻이 실리는 건 아닐까. 으휴.
아무리 마음의 눈이라지만 볼 게 있고 못 볼 게 있지 않은가 말이다. 몇달 전에 강사가 바뀌어 수강생들이 우르르 다른 시간대로 빠져나갔을 만큼, 새로 온 강사가 좀 여러가지로 서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전 강사들의 언사가 더러더러 귀에 거슬리는 정도였다면 지금 강사는 수업 중 쓰는 말의 절반 이상이 비문이다. 특히 동작 설명을 하다가도 걸핏하면 '바라보라'고 한다. "다리 뒤쪽에서 느껴지는 자극을 바라봅니다", "고개를 숙이고 온몸의 자극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봅니다"하는 식이다. 명상과 요가 동작을 동시에 유도하는 말들이 어렵다는 건 인정하겠는데, 그래도 말과 글로 밥벌이를 하는 직업병까지 있는 인간이다 보니 문장 전후관계가 틀리는 경우가 더 많은 강사의 지시를 거듭 들으면 몸이 유연하게 풀리는 게 아니라 팔다리 근육이 자꾸 오그라드는 기분이다. 조카가 요가 가자고 하지 않으면 신나서 수업을 빼먹는 형편이긴 해도 무려 핫요가 9개월째인 지금도 내 몸이 여전히 최강뻣뻣인 건 어디까지나 마음에 들지 않는 명상언어 때문이라고 변명하면 누가 믿어주려나. -_-;;
째뜬 이런저런 핑계로 열흘쯤을 내리 빠지다가 어제 그제 연이틀 요가 수업 후 삭신이 심히 쑤셔서 오늘은 막무가내로 버텨 요가수업을 빼먹었다. 요가 열공중인 조카는 혼자라도 가겠다며 나섰으니 시방 열심히 요상한 비문 명상언어에 맞춰 호흡과 여러 자극을 '바라보며' 팔다리를 늘이고 있을 게다. 이러다 조만간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도 '바라보다'에 대한 새로운 뜻이 실리는 건 아닐까. 으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