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걸 다 걱정하는 울 왕비마마가 거의 고정으로 틀어놓는 TV 채널에는 저녁 무렵 일반인들이 나와서 억울한 사연 같은 걸 호소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행정적으로 피해를 보았다거나, 민사상 손해를 보았는데 증거가 확실해도 법제도가 부실하거나 지자체의 외면으로 구제받지 못해 애를 태우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등장해 변화를 촉구한다. 그 프로그램에 심심찮게 나오는 사연이 뭐가 있는고 하니, 자기 땅, 자기 집인 줄 알고 수십년간 살았는데 국유지였다고 판명이 됐다면서 수십년간 밀린 점유권에 대한 범칙금이 엄청나게 나와 억울해 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심지어 자기 집인 줄 알고 평생 살다가 국유지 개발로 졸지에 집을 잃게 된 사람들도 나온다.

그런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왕비마마는 특유의 염려증에 더하여 피해망상에 사로잡히기 일쑤다. 당신 명의로 된 지금 사는 집이 아마 자기 집으로 되어있지 않을 거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곧장 배우자 상속으로 명의변경을 한 '집문서'까지 있는데도 좀처럼 의심은 가시지 않는다. -_-; 이 세상엔 말도 안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워낙 비일비재하기도 하지만, 왕비마마의 근원적인 불안감의 요인에는 자꾸만 짜증스럽게 바뀌는 이 동네 주소도 크게 한몫을 한다.

행정구역의 변화야 과거에도 조금씩 있어왔고 작은 규모의 동네가 하나로 통합되기도 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이 동네도 과거엔 **1동부터 **4동까지 나뉘어 있다가 10여년 전쯤에 개편되면서 3동까지만 있었는데, 그마저도 얼마전 또 바뀌어 **3동이던 우리 동네가 다시 **2동이 되었다. 사실 이건 뭐 큰 걱정거리도 되지 않는다. 어차피 주민등록증엔 1, 2, 3동 구분 없이 번지수만 적혀있지 않은가. 1, 2, 3동 구분은 그냥 동사무소 관할구역을 나누고 우편물 배달 편의를 위한 방편이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못마땅했던 건 몇년 전 뜬금없이 얼굴 간지러운 이름으로 골목마다 새로운 주소를 만들어 홍보를 하더니 구청에서 알아서 제 마음대로 초록색 주소표지판을 만들어 집집마다 붙였던 사실이다. 서울시와 구청에서 날아오는 각종 고지서엔 옛날부터 써온 현재 주소와 함께 '개나리길 00-0'라는 새주소가 늘 괄호 안에 적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운전을 하고 돌아다녀 보면 그렇게 새주소와 거리, 골목 이름이 큰길 표지판 밑에도 죄다 붙어 있었다. 헌데 얼마전부터 지자체에서 보내오는 고지서엔 또 다른 주소가 등장했다. 심지어 우리 동네 이름도 아니고, 옆동네 이름을 넣은 도로명으로 '**로 OO길 OO-O'이라고 되어 있었다. 왕비마마의 불안은 다시 고조되었다. 이러다 집을 빼앗기는 게(누구한테???) 아니냐는 걱정이었다. 나는 서울시에서 하는 짓인지 구청에서 하는 짓인지 몰라도 지난번 '개나리길' 사태 때처럼 이번에도 또 누군가 삽질하다 관두게 될 거라고 장담하면서도,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니 왜 자꾸 주소를 바꾸는 건데???

그러다 며칠 전엔 아래층 똥개가 대낮에 거의 30분 넘게 쉬지않고 짖어대는 일이 발생했다.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 위층에서 내려다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전주에 올라가 케이블을 설치하는 사람도 없는 듯했다. 하지만 아래층 개는 하도 짖어대서 거의 쉰 목소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빌어먹을 똥개가 드디어 미쳤나보다고 생각하다가 너무 시끄러워 하는 수 없이 내려가 원인을 살펴보았더니, 이상한 사람이 있기는 했다. 골목을 이리저리 오가며 망치질을 하다가 또 사진을 찍다가 이리저리 살피는 아저씨 한분이었다. 차마 묻지는 못하고 계단 위에서 가만히 지켜보노라니, 이어 우리집에도 망치질을 한 뒤 사진을 찍었다. 얼마전까지도 분명히 집앞에 붙어있던 '개나리길 00-0'이라고 적힌 초록색 표지판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그 대신 ' **로 OO길 OO-O'이라고 들어간 새 주소 명판이 남색으로 떡하니 걸려 있었다.

짜증이 버럭 밀려왔다. 지난번 개나리길 주소도 그렇고, 이번 새 주소도 그렇고 당국은 왜 자꾸 쓸데없이 세금 처들여가며 주소를 바꾸고 주소명판을 갈아붙이는 것일까? 과거 주소 체제가 외국과 달리 주소만 달랑 하나 들고는 집 찾기 힘들게 되어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이지만, 그런다고 당국에서 무조건 바꿔라 명령하면 그냥 쉽사리 바꿔지는 게 주소인가?? 정말 궁금하다. 또 다시 은근슬쩍 바뀌어 버린 행정상의 주소는 누구의 머리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며, 또 언제 슬그머니 다른 걸로 바뀌게 될지. 4년마다 휙휙 바뀌는 지자체장의 정책으로 과연 수십년간 장기적인 행정개편 같은 게 이루어질 수 있기는 한건지. 어쩌면 뭔가 '야로'가 있어서 멀쩡히 살던 집을 빼앗기게 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울 왕비마마의 염려가 뜬금없는 망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요즘 저들이 해대는 한심한 짓거리를 보면 말이다. 대체 누구를 위한 변화이고 혁신인지, 아님 그냥 또 한번의 '돈지랄'인지 두고볼 일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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