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투덜일기 2010. 8. 19. 16:01

오늘도 아침 내내 집앞 나무에서 시끄럽게 울어대 올빼미족의 단잠을 방해하던 매미들이 오후들어 쥐죽은 듯 조용하다. 돌연 마음 한 구석이 싸해진다. 장마 때는 별로 큰 비를 안 내리다가 오히려 그 이후에 간간이 밤새 한번씩, 때로는 새벽이나 아침나절에, 또는 오후에 무섭게 쏟아지던 소나기와 폭우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울어대던 매미들이 아닌가. 밤인 줄도 모르고 울어대는 도시의 매미는 낮밤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을 밝힌 보안등과 가로등 때문에 감각이 마비된 탓이니 녀석들을 미워해선 안된다는 얘기를 들으며 이미 또 마음이 한번 짠했었다.

어제부터 다시 날씨가 더워지긴 했지만, 낮에도 선풍기가 필요없을 정도로 선선해졌던 요 며칠간 드디어 한여름 무더위도 힘을 잃었구나 생각하니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스산한 가을이 기어이 오는 것인가 싶어 잠시 망연했다. 어제 얘기를 들으니 일산 사는 동생네는 선선했던 그 며칠 사이 매미들이 벌써 생을 마감해 바닥에 떨어져 있더란다. 선선한 날씨에 여름이 다 간줄 알고 성질 급한 녀석들이 살 힘을 놓아버렸던 모양이다. 땅속에서 굼벵이로 지내야 하는 세월이 몇년이라는데 그렇게 오래오래 뜸들이며 참다가 겨우 한 철 매미로 사는 주제(?)에 어딜 가나 성질 급한 놈들은 있기 마련이구나 생각했다가, 오히려 그렇게 어렵사리 기다림 끝에 얻은 세상이라 끝에 대한 절망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매미 우는 소리도 시끄럽고 더위는 좀 물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가을이 오는 건 또 아직 두렵기만 하니 뭘 어쩌자는 건가. 입추, 말복 다 지난 건 알았어도, 새삼 달력을 보니 다음주 월요일이 처서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온, 처서엔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은 이제 사장된 표현이지만 그래도 이름마저 '처량맞게' 들리는 처서를 지나고 나면 제 아무리 아열대 기후권에 돌입했다는 한반도에도 스산한 계절이 올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하다. 가을 지나면 또 무서운 겨울이잖아! 새삼 여름을 붙잡으려면 매미채 들고 나가 옆 동네로 날아가버린 매미들이라도 다시 몰고 와야할 것만 같다. 매미들아, 변덕 부려서 미안한데, 한동안은 좀 더 울어다오. 응?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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