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해당되는 글 56건

  1. 2008.01.11 눈이 쌓였다 7
  2. 2007.12.03 식객 7
  3. 2007.11.24 수도꼭지 12
  4. 2007.10.08 울음의 정당성 10
  5. 2007.09.18 바닥 10
  6. 2007.09.05 정리 3
  7. 2007.08.19 어제 4
  8. 2007.08.13 8
  9. 2007.07.26 두 여자
  10. 2007.07.23 .... 6

눈이 쌓였다

삶꾸러미 2008. 1. 11. 15:39
세상모르게 쿨쿨 자고 있다가
꽤 많은 눈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벌떡 일어나게 되는 계기는 늘
집앞을 쓰는 빗자루 소리였다.
그리고 그렇게 부지런히 집앞에 쌓인 눈을 쓰는 사람은 십중팔구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저 멀리 골목 어귀까지 눈을 치우고 있자면, 비질하는 소리를 듣고서 이웃 아저씨들도 나와서 거들곤 하셨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사방이 고요하다.
사람들이 힘겨운 비질보다 염화칼슘 내다 뿌리는 걸 더 선호하기 때문이리라.

하염없이 내려 쌓이는 눈을 내다보다가 커피 한잔 마시고는
동네 친구 아줌마 등쌀에 반강제로 마실간 엄마가 돌아오는 길에 혹시 계단에서 미끄러질까봐
모자달린 파카 입고 나가서 기다란 빗자루로 알량하게나마 집앞에 길을 냈다.
꽤 많이 쌓인 눈은 원래 무거워서 잘 쓸어지지도 않는데
오늘은 푹한 날씨 탓에 젖어 늘어붙은 눈이라 비질이 더욱 어려웠다.  

촤륵촤륵... 눈 쓰는 소리가 정겨운 만큼 슬퍼져서 얼른 들어와
눈 핑계대고 술 한잔 청해볼까 지인들을 떠올리다가
그냥 차나 한 잔 더 마시려고 찻물을 올려놓았다.

마실간 엄마는 수다가 길어지는지 아직도 안 오시고
부슬부슬 힘없는 눈발은 그칠줄을 모르고...
고양이 세수하듯 쓸어놓은 집앞 길엔 또 다시 눈이 쌓여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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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놀잇감 2007. 12. 3. 01:57
사실 나는 식객보다 똑같은 글잣수에 발음도 비슷한 <색, 계>를 보고싶었지만
주지스님 추천작이라며 <식객>이라는 영화가 있느냐고 보름 남짓 은근슬쩍 압력을 넣고 있었던
왕비마마 덕분에 왕비와 무수리 모녀는 날씨 우중충한 일요일 오후 극장을 찾았다.
개봉한지 한참 된 터라 영화관이 한가할 줄 알았더니 날궂은 일요일 한낮에 자리가 절반 이상 차는 걸 보면
아직도 인기는 꽤 괜찮은 모양.
타짜 때도 그랬듯 허영만의 원작 만화를 보지 않았던 터라 잘은 모르겠지만
순진한 희망에 가깝게 그려진 한일관계와 신파스러운 애국심이라는 고명이 역시나 약간 거북하긴 했어도,
입맛에 안맞는 고명은 걷어내고 먹으면 되듯
나에겐 꽤나 맛깔스러운 영화였다.

식탐녀답게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는 무조건 좋아하는 편이라 점수는 대체로 후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남들의 감상 포인트와 상관없이 나는 뜻하지 않은 복병 같은 몇 장면에서 흑흑 흐느끼고 말았는데
그래서 감상에 방해가 되기도 했고 동시에 어쩐지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데 없이 나를 울게 만든 것들은
접시 무늬가 보일 만큼 얇게 깔린 복어회 접시, 몇 개의 영정 사진, 하얀 보자기에 쌓인 유골함. 국화꽃으로 장식한 제단, 그리고 육개장.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영화 시작 후 거의 5분 뒤부터 줄곧 울다 퉁퉁 부은 눈으로 영화관을 나섰던
<집으로...>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식객> 또한 나에겐 눈물로 기억될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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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꼭지

삶꾸러미 2007. 11. 24. 14:58

그간 화장실 수도꼭지가 느슨해졌는지 조금씩 물방울이 떨어지는 게 신경에 꽤나 거슬렸는데
어젠 씨름선수 같은 힘을 발휘해 확 잠가보려다 결국 수도꼭지를 망가뜨렸다.
플라스틱으로 된 찬물 쪽 수도꼭지 손잡이가 아예 부서져버린 것.
오래 전 화장실 수리할 때, 원터치식 수도꼭지는 온수 온도 맞출 때 민감하질 않아 일부러 따로따로 있는 걸로 달아 달라고 아버지한테 부탁했던 것인데...
10년이면 수도꼭지도 명을 달리하나보다.

꽉 잠그다 망가진 것이라 밤새도록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안나서 좋긴 했는데
오늘 억지로 펜치(?)로 톱니나사 같은 부분을 돌려갖고 찬물을 틀어 씻고 나니 완전히 잠기질 않는다.
똑............똑...........똑 흘러내리는게 아니라 이젠 아예
줄줄줄줄 뚝뚝뚝뚝 물이 샌다.
물 떨어지는 소리도 당연히 더  귀에 거슬리는 것은 물론이다.

수도꼭지가 고장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그동안 우리는 이런 일이 있을 때 그저 아버지한테 한 마디만 하면
득달같이 필요한 부품을 사가지고 돌아와 뚝딱뚝딱 30분 정도만에 모든 걸 고쳐주셨기 때문에
어젯밤 사고를 낸 뒤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했다.

인터넷으로 대강 수도꼭지 파는 곳을 알아보긴 했는데
과연 내가 그걸 사다가 혼자 달 수 있을지
부품을 사다놓으면 아버지와 달리 손끝 여물지 못한 동생놈들이 달아줄 수 있을지
처음부터 그냥 아예 사람을 불러다가 고쳐달라고 해야할지
이런 수리를 맡기려면 대체 어디에다 연락을 해야하는 것인지
집주변에 그런 수리점이 있기는 한 것인지...
태산같은 걱정들이 밀려든다.

아...
쓸데없이 예민한 내 귀에는 화장실 문을 꼭 닫아도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라도 안들리게 받쳐놓은 대야라도 치워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
어차피 곧 넘쳐 하수구로 흘러들 물인데, 한 대야 정도 절약한다고 누가 상주겠나..
뭐 이런 생각 때문에 더욱 짜증.

게다가 왜 하필 주말인 것이냐!
사람을 부르려해도 월요일이나 되야할 판국.
에효..
대형마트에 가면 수도꼭지도 팔 것 같은데;; 이따 밤에 모험을 한번 해볼까 말까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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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의 정당성

투덜일기 2007. 10. 8. 17:02
그러니까 배우란 직업을 아무나 택하는 게 아니긴 하겠지만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은 우는 모습도 예쁘고 아름답고 우아하다.
커다란 눈망울에 이슬처럼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다간 수정구슬처럼 또르륵 뺨위로 굴러내리기도 하고
간혹 코가 빨개지도록, 또는 콧물까지 뒤범벅이 되어 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배우들이 우는 얼굴은 그다지 일그러지지도 않고 빨갛게 변하지도 않는다.
참 신기하다.

배우가 아닌 이상 폄범한 이들 가운데 울면서 굳이 거울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어린아이들 가운데는 울면서 자기 모습을 거울로 쳐다보며 더 서럽게 우는 경우도 꽤 보기는 했다)
내 경우 울음 뒤끝에 몰골을 추스르느라 거울을 보면 매우 가관이다.
잘 우는 편이라 굳이 온 얼굴에서 눈물을 짜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코끝과 눈가는 물론이고 흰자위까지 새빨갛게 충혈돼 온 얼굴이 완전히 시뻘겋고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으며
콧물 동반은 필수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눈두덩을 자꾸 닦아내면 순식간에 퉁퉁 붓는다.
몇달 간 울 일이 많았던 탓에 새삼 깨달은 바로는 그나마 눈물을 자꾸 닦지 않고 그냥 흘리다 말리면 차라리 덜 붓는다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한참 울고 나서 보면 안경에 미세한 눈물방울이 튕겨 있다는 점이다.
눈물샘에서 눈물이 스프레이처럼 샘솟을 리는 없고 아무래도 눈썹을 깜박거릴 때 소량의 눈물이 안경 유리에 튀기는 모양인데 확인할 길은 없다.

울면서 남들에게 우는 모습이 추할지, 아름다울지 따질만큼 남의 눈을 신경쓰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른이 된 뒤에 우는 건 역시 깜깜한 영화관이나 혼자 있을 때 비로소 편해진다.
옆 아기가 울면 덩달아 따라 우는 아기들처럼 언제부턴가 누군가 울면 금세 전염이 되어 따라울게 되는데
친구 하나는 그게 주책맞은 아줌마가 되어간다는 징조라고 했다.
자기도 요샌 결혼식에 가서 지켜보다 돌연 눈물이 난다나.
서양 영화를 보면 결혼식장에서 흔히 아줌마나 할머니 하객들이 저마다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는데 젊어서는 그걸 보며 비웃었더니 이젠 자기도 그러고 있단다.
그게 정말일까?
암튼 언제부턴가는 나도 신랑신부가 부모님께 절하는 대목에서 늘 울컥 눈물이 나곤 했다.

어쨌든
양파썰기를 할 때 매워서 흘리는 눈물과 슬퍼서 우는 눈물은 성분이 다르단다.
슬프거나 감동적이어서 감정의 변화와 함께 흘러 나오는 눈물에는 교감신경이 자극되어 생성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성분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목놓아 울면서 흘린 눈물에는 몸에 돌아다니던 스트레스 호르몬이 잔뜩 담겨 나오기 때문에 한참 울고 나서 속이 후련한 이유도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얘기다.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한 감정 때문에 지쳐있을 때 슬픈 영화를 보면서라도 통곡을 하고 싶어지는 것도
눈물과 스트레스 호르몬의 상관관계를 시사하는 현상인가 보다. 건강한 정신생활을 위해서도 꽤 자주 울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꽤나 자주 울 일이 많았던 지난 몇달간은 그럼 내 정신건강을 위해 퍽이나 이로운 시기였던가?
실컷 울고 나서 후련해지는 것은 그렇다 치고, 내 경우 극심한 두통이 뒤따르는 건 또 왜일까?
흠...

또 종일 운다고 잔뜩 핀잔을 듣고서 또 억지로 웃다가 울음의 정당성을 따져보려니 쉰소리가 길어졌다.
그냥 뭐든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고 여기며 마음 내키는 대로 하련다.
머리가 지끈거리든 말든 자꾸 흘러나오는 눈물을 무슨 수로 막으랴.
덩달아 스트레스 호르몬도 빠져나온다는데 온몸에 쌓인 '카테콜라민'도 배출하고 좀 좋은가 말이다.
그냥 오늘은 또 실컷 울어야겠다.

날을 따져 우는 것도 좀 우습지만
어쨌든 오늘은 아버지 가신지 100일째다.
납골당에 가며 오며 계속 울었는데도 울음끝이 꽤나 질기다.
그리운 만큼 울어야겠다고 쉰소리까지 끄적일 배설의 공간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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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투덜일기 2007. 9. 18. 17:42
비가 와서 커피향 그윽하다며 좋아라할 땐 언제고
오늘은 또 비 핑계로 계속 기분이 바닥이다.
아무래도 명절증후군의 전초증상인 것 같기도 하다.
추석에 대거 손님을 치르려면 대청소부터 해야할 형편이라
요 며칠 아버지 옷가지를 거의 정리해 박스에 담아두었다가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
등산복 욕심이 많으셨던 아버지의 옷가지는 커다란 박스 3개에 담고도 남아 푸대자루와 큰 비닐을 모두 동원해야 했다.
왜 하필 이리도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기증품을 가지러 왔는지...
아버지가 용띠라서 움직이실 때마다 비가 온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생전에 여행 가셨을 때도 종종 그랬고,
세브란스 병원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건대병원으로 옮기던 날도,
발인 날 장례식장에서 화장터로, 다시 납골당으로 모시던 동안에도 내내 비가 내렸다.
어제는 구름 한점 없이 날이 화창하더니만...


어제 오늘 온 집안 커튼을 떼서 빨고 말려 다시 매달았더니 어깨와 목이 아프다.
사촌동생들이랑 동생네 와서 잘 때 덮을 이불이랑 요도 왕창 빨아야 하는데 날씨가 왜 이런다냐.
원래 이런 건 지난주쯤 해치웠어야 하는 일이건만 꾸물럭거리며 게으름에 젖어 있다 마음이 바빠지니 또 기분만 바닥을 친다.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일 신경쓰고 가족 대소사 챙기는 '주부'로 사는 삶이 죽도록 싫다는 게
어린시절부터 나의 표면적인, 그리고도 "중대한"  독신 지향 사유였는데 -_-''
벌 받았는지 철들고 나서부턴 아픈 엄마 대신 대리 '주부'로 살아야 하는 날들이 점점 많아져
이젠 아예 돈 못받는 파출부가 되어버린 내 신세도 오늘따라 몹시 처량하다.
주부노릇에 직장 일까지 슈퍼우먼이 되려고 자진해서 선택한 저들이야 그렇다치고
자유롭고 싶어 조직도 떠난 내 꼬라지는 만날 왜 이런가 말이다.
원래 쓸데없는 푸념과 한탄에 사로잡히면 끝없이 맥떨어져 헤어나올 수가 없는 법.
소용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온종일 모든 것에 앙탈을 부렸더니
괜스레 옆구리만 결린다.
그 여자 성질 참 못됐다.

그나마 바닥을 차고 오르기 위한 위로용 혼잣말 하나.
확실히 가족은 멍에지만, 그래도 나는 한쪽 가족만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양쪽 가족 다 거느리고 있는 유부녀들--가령 울 올케들 같은--봐서 참아보자...고 생각하지만 남들의 불행을 담보로 느끼는 위안은 그리 설득력도 없고 별로 달콤하지 아니하다)

아무래도 이번 추석은 몹시 힘들고 슬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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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삶꾸러미 2007. 9. 5. 22:59
사람을 간단히 두 유형으로 나누어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과 정리정돈을 못하는 사람으로 가른다면
나는 당연히 정리정돈에 젬병인 사람에 속한다.

뭐든 되는대로 널브러뜨려놓고 사는 게 어쩐지 인간답고 정감있다는 편견은
내 삶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원천이기도 한데
그런 인간이 철저한 정리를 도맡으려니 참 쉽지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다른 누군가 마무리하고 정리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마음 속 방들을 칸칸이 정확히 나누어 그 안에 생각과 감정들을 차곡차곡
정돈할 수 없는 것처럼, 제아무리 피붙이라 해도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정리한다는 건 어쩌면 말도 안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사람이 떠난 자리엔 반드시 정리할 게 꽤 많다.

두달이 넘도록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버지 책상엔 피우시던 담뱃재까지도 재떨이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나로선 차마 하나라도 손을 대기가 싫었다.
웬만한 공과금 자동이체는 해지시켰지만, 아직도 통장이며 카드도 마냥 그대로만 두고 있으면서, 누군가에게 독촉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마지못한 듯 하나씩 '정리'하는 시늉을 하는 중.

워낙 아버지가 깔끔했던 분이라 딱히 어려울 것도 없는 정리건만
마냥 헤매고만 있는 나를 보면서, 제일 강렬히 드는 생각은 내 삶을 가능한 한 간소하게
정돈해 놓고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 속의 나는 자꾸만 너저분하게 일을 벌려만 놓고 도무지 정돈할 줄을 모르고 있다. 어떻게 하면 단정하고 소박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인지, 과연 나 같은 인간도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하니 한심하다.

폭탄 맞은 것처럼 어지러운 삶을 남겨두고서야 어찌 부끄러워서 편히 떠날 수가 있겠나.
생전에 스스로 묻힐 곳이며 입고 갈 옷까지 다 장만해두어야 더 오래 산다고 믿은
옛 사람들의 지혜가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좀 알겠다.
굳이 더 오래 살고 싶은 마음에 매달려 노년의 생을 바락바락 연장하고 싶은 없지만
편한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건 역시 지혜로운 선택이다.
이제라도 최대한 간소하게 주변을 정리하며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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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투덜일기 2007. 8. 19. 12:19

지나고 보면 세월은 참 잘도 간다는 걸 느낀다.
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49일째 되는 날.
아침부터 절에 올라가 49재를 치렀다.
(참.. 절에선 제사를 지낸다고도 하지만  "'재'를 올린다"고도 표현하므로 어제 우리가 올린 의식은 49재가 맞다. 하지만 49'제'라는 말도 많이 쓰이는 듯...)
불교식으론 고인의 영혼이 49일 동안 아직 멀리 떠나지 않고 이승을 떠돌며 가족들 곁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49재는 정말로 고인을 멀리 떠나보내는 의식.
내가 보기엔 모든 장례 의식이 남은 사람들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는 데 더욱 방점이 찍히지만
그런 절차가 전통과 관습으로 남은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다시 친지들이 모여 지켜보는 가운데
새로이 아버지의 옷을 준비했다가 살라드리고
상장과 머리 리본, 상복의 동정을 뜯어 같이 태우고
뜻 좋은 글귀를 함께 읽고 기도하는 의식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사실 불교든 기독교든 천주교든 어느 종교의 힘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 아버지는 "좋은 데" 가셨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이 좋은 데 안 가셨다면 정말로 천국이나 극락 따윈 없는 걸 테니까.
심지어 독실한 천주교인인 친구 하나는 우리 아버지가 이미 천국에 야훼와 함께 계시다는
신성한 메시지까지 받았단다. ^^

...


아버지의 일기장을 어제 돌려받았다.
1964년부터 두해 동안 군대 시절에 기록한 아버지의 일기장이 할아버지 유품 사이에 끼어 지금껏 보관 된 것은 어쩌면 놀라운 운명 같기도 하다.
12년 전에 아버지가 손수 생겨오셨다면 쑥스러운 마음에 없애셨을지도 모르는데
그 일기장이 우리 손에까지 무사히 전달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할아버지 고서와 유품을 모두 간직했던 막내고모 덕분인 듯하다.  아.. 그 전에 장남의 일기장을 오래도록 소중히 갖고 계셨던 우리 할아버지 덕분도 크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막내고모는 할아버지 유품 사이에서 우리 아버지의 흔적이 담긴 기록이 있었던 걸 생각해냈고, 그게 우리 아버지 일기장이란 걸 확인하고는 며칠 동안이나 울었다고 했다.
일기장엔 장남으로서 가난한 식솔들을 챙겨야하는 책임감과 애정이 담겨 있고
스무살때부터 연애중이었던 우리 엄마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 또한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사실 막내고모는 25살의 청년이 기록한 애틋한 연정의 주인공이 혹시나 우리 엄마가 아니면
울 엄마가 상처받을까봐 끝까지 다 읽고 상황을 파악하기 전엔 함부로 일기장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밝히기가 조심스러웠단다.
(설령 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대도 우리에겐 소중한 보물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고모는 제일 먼저 '이'씨인 울 엄마의 영문 이니셜이 뭐냐고 넌지시 물었더랬다.
나는 어린 시절 이미 부모님의 연애편지를 훔쳐본 경력이 있던 터라
Rhee로 썼던 울 엄마의 이니셜을 확인해주었고, 고모는 그제야 안심을 했다.
우리 부모님이 8년간 연애 끝에 결혼한 순애보 커플이란 걸 다들 알면서도, 젊은 시절 꽤나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아버지가 혹 바람이나 폈을까봐 염려했던 거다.

고모는 누구보다 우리 식구들이 제일 먼저 아버지 일기장을 읽고 싶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난 10여년 간 큰형님을 부모처럼 여겼던 작은아버지들과 고모들도 읽고 싶어하셨으므로
어르신들부터 돌려읽고 어제야 비로소 우리 손에 일기장이 들어오게 된 것.
일기장을 읽어본 친척 어르신들은 "역시 장남은 다르더라.."고 하셨다.
장남인 큰동생도 남다른 장남의 책임을 실감하는 듯했다.
사실 나는 아껴읽고 싶은 마음에 동생들과 함께 앞부분만 몇 군데 읽어보다 말았다.

이북에서 월남해 부산에서 피난시절을 보낸 우리 집안에 특별히 오래묵은 골동품 가보 따위는 없지만, 우리가 늘 자랑하는 가보 1호는 부모님이 8년간 연애하는 동안 주고받으신 편지뭉치였는데, 이젠 아버지의 일기장으로 가보 2호가 생겼다.

여러 권의 앨범 한 가득 젊은시절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의 추억이 순간으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젊다 못해 어리게 느껴지는 스물다섯 살 아버지의 또 다른 추억을 갖게 되어 몹시 기쁘다.
이니셜 R, 또는 子라는 호칭으로 아버지의 일기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인공인 우리 엄마 역시 아직도 차마 일기장을 읽지 못하겠다 하신다.
내용도 감동이지만 만년필 글씨체는 또 얼마나 유려한지... 글씨를 잘 써서 행정병이 되었다던 아버지의 말씀을 못믿었던 건 아니지만 새삼 놀랍다. 해서, 엄마랑 나랑은 두고두고 조금씩 조금씩 음미하듯 읽어볼 생각이다.

돌아가신 분에 대해선 당연히 좋은 기억만 남는다지만, 얼핏 들여다본 청년 아버지의 모습 역시 참 멋진 분이었음은 확실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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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일기 2007. 8. 13. 01:33

언제부턴가 몸 구석구석에 붉으레하게 뭔가 불쑥 솟기 시작했다.
이른바 '종기'라고 이름 붙일 만큼 커다란 녀석도 있지만
흔히 얼굴에 솟아나는 뾰루지처럼 작은 녀석들도 있는데
원래부터 두피가 얇아서 머릿속엔 그런 것들이 자주 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뜬금없이 등 한복판, 옆구리, 귓불, 이마 같은데서 솟아나는 데는 도무지 대책이 없었다.

그닥 기름진 음식을 먹어대는 것도 아니고(오히려 평소보다 더 푸성귀만 먹고 사는데;;)
더워서 매일 안씻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대체 이유가 뭔가 아리송해 하고 지냈는데
내 얘길 들은 지인 하나가 명확하게 원인을 짚어주었다.
몸 안의 열과 화 때문이란다.
나도 스트레스 때문이겠거니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그 스트레스가 열기와 화기로 뭉쳐
견디지 못하고 살갗을 뚫고 나오는 거란 얘길 들으니 좀 섬뜩했다.

그러면서 나더러 괜히 쎈 척, 밝은 척, 안 힘든 척, 생각 안하는 척 하지 말고
울고 싶을 때 펑펑 울고, 소리치고 싶을 때 소리치고, 그리우면 마음껏 그리워하라고
조언해주었다.
이젠 매일 안울어도 될만큼 마음이 다독여졌다고 믿었는데
그 말 듣고 생각해보니 다른 건 몰라도 울음은 그간 좀 많이 참았던 것 같다.

처음엔 내가 울면 엄마도 덩달아 따라울기 때문에 주변에서 자꾸 만류했었고,
엄마도 부실한데 나까지 정신을 놓아버릴까 염려한 동생들이 하도 걱정을 해대는 바람에
마음껏 우는 게 불가능하기도 했다.
요즘도 조카들은 자기도 모르게 할아버지 얘기를 꺼냈다가는 얼른 내 눈치를 본다.
그러면 제일 머리 굵은 정민공주는 할아버지 얘기를 꺼낸 녀석에게 "너 때문에 고모 또 울면 어쩌려고 그래!"라고 면박을 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내가 더 민망하다. 울보 고모 때문에 어린 조카들까지 신경을 쓰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서.

가족들이 너무 많이 슬퍼하면 고인이 좋은 데 못간다는 얘기는 대체 어디에서 나온 얘기일까. 아니, 사후에 천국이든 극락이든 고통이나 불행 따윈 없는 곳으로 절대자의 곁으로 갔으니 슬퍼할 필요 없다는 종교적인 관점은 도대체 어떻게 비롯됐을까.

하지만 내가 우는 건 그저 아버지가 곁에 안계시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위한 이기적인 슬픔이고 눈물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니까 관습과 통념을 빌미로 하여 스스로를 위한 연민과 서러움까지 남들이 간섭하고 만류하는 건 옳지 못한 일인 것 같다. 물론 그들이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염려해서 하는 배려라는 건 알지만, 내 마음은 물론이고 몸까지도 종기를 앞세워 반기를 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블로그에도 아버지 얘기는 그만 써야지 생각했었다.
처음부터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는 삼가려던 공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들은 좀처럼 공감할 수 없는 혼자만의 슬픔을 노출된 공간에 자꾸 드러는 게
방문자들에 대한 일종의 폭력일 것도 같았다.
그런데 요즘도 내 사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버지 이외의 주제로 뭔가 글을 써서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낸다는 것은 역시 불가능했고, 그 자체로도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됐던 듯하다.
그러니 그냥 하던 대로 헛소리든 참소리든 주절주절 끼적이는 쓰레기통 같은 낙서장으로 삼는 수밖에 없겠다.

펄럭이는 감정에도, 생각에도 좀 더 솔직해지다보면
차차 온몸에 치솟는 열기와 화기도 차츰 가라앉지 않을까...
이것도 너무 뜬구름 잡는 식의 희망일까.

두고봐야지 별 수 있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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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

투덜일기 2007. 7. 26. 23:29

한 집안에 사는 두 여자의 행보가 슬슬 달라지고 있다.
한 여자에겐 슬픔과 허허로움이 대책없는 허기로 달려드는 모양이다.
끼니를 잘 챙겨먹는 것은 물론이고 냉장고 안 과일이며 간식이 어느 순간 싸그리 없어지는 날들이 이어짐과 동시에 체중이 계속해서 불어난다.
또 한 여자에겐 슬픔과 공허함이 주체할 수 없는 짜증으로 증폭되는 듯하다.
말 한마디도 곱게 나가는 법 없이 사사건건 발끈발끈 하다 보니 대조적으로 계속해서 체중이 빠지는 것도 같다.

물론 두 여자 모두 감정의 펄럭거림 때문에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말고, 또는 무슨 일을 하다 말고 울먹일 때도 있지만
다행히도 한 사람이 울어도 나머지 한 사람의 눈가는 건조한 경우가 많다.

한 여자는 한시도 혼자 있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는 듯,
엄마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집구석 어딜 가든 졸졸 따라다니는데
한 여자는 이제 슬슬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한 여자는 여러모로 꽤 대단한 의지력을 발휘하여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 한 여자는 여전히 무력감에 발목을 잡혀 허우적대고 있다.

어느덧 장마는 끝났대고, 여름은 깊어가고 폭염은 시작되었는데
살뜰하고 정성어린 손길을 대신한 어설픈 물주기만으로도 아직 화분들도 멀쩡하다.
살림살이는 물론이고 물주기 따위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 한 여자는 가신 분이 하늘에서도 초록 식물들을 보살피고 있기 때문인가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암호문처럼
산세베리아, 금전수 = ☆
스파트필름, 마리안느 = ◎
고무나무 = △
라고 적혀 진열장 앞에 붙어 있는 메모지를 보고 머리를 쥐어짜 날짜 세어가며 물주기를 책임지고 있는 여자는 그러다 어느 순간 화분들이 한꺼번에 죽어나갈까봐 그저 노심초사 중이다.

그래도 두 여자는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천만다행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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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덜일기 2007. 7. 23. 04:56
잠이 안온다.
온종일 먹고 자고 또 먹고 자고 그러던 날도 있었는데
요샌 다시 식욕도 없고 밤엔 통 잠이 오질 않는다.
다행히 엄만 잘 주무시는데, 그 옆에서 질질 눈물 흘리며 뒤척거리다가 들키면
오히려 엄마 잠을 깨게 만드는 짓이라
영 잠이 안오면 일 핑계로 컴퓨터방에 앉아 있는다.
하지만 일은 단 한톨도 하질 않고... 아빠가 온종일 즐겨하시던 프리셀 카드놀이를 대신 하면서 또 빌빌 눈물을 흘리다 아침을 맞는다.

컴퓨터방 바닥엔 아빠가 담뱃불을 떨어뜨려 만들어놓은 탄 자국이 남아 있다.
따져보니 못마땅한 구석도 많은 아버지였다.

매일 저녁마다 반드시 참이슬 한 병을 식전에 반주로 드시는 것도 못마땅했고
얇다란 담배를 필터에 끼워 피우시긴 해도 하루 흡연량이 한갑 반을 넘기는 것도 못마땅했고
2000년 은퇴 이후 점점 잔소리 많은 할아버지처럼 변해가시는 것도 못마땅했고
이틀이 멀다하고 장을 봐다가 냉장고를 채워 나에게 새로운 반찬 만들기를 은근히 종용하시는 것도 못마땅했고
사소한 증상으론, 아니 몸이 대단히 불편하시지 않고는 절대로 병원에 안가는 고집도 못마땅했고
정치적으로 꽉 막혀 대화조차 불가능한 보수주의자인 것도 못마땅했고
비가오나, 눈이 오나, 몸살 기운이 있을 때조차도 등산 중독자처럼 일주일에 두번 가시는 등산을 반드시 고집하는 것도 못마땅했고
마흔 넘은 딸을 여전히 신데렐라로 불리게 만드는 아버지의 통행금지 시간도 못마땅했고...

특히 하루 네다섯 번도 넘는,
엄마가 약먹을 시간이 되면 엄마가 직접 챙기기 전에 먼저 당신이 컵에 물 떠와서 약상자에서 약을 꺼내 봉지까지 찢어준 뒤 엄마가 약을 삼키고 난 약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까지 대신 하시는 것도 못마땅했다.

아빠에게 못마땅한 걸 내가 꾹 참고 말하지 않았을 리 없었으니, 늘 투덜투털 지랄지랄...
해댄 바람에 난 자타공인 아빠에게 언제나 '제일 무서운 사람'이었다.

반면에 나에게 아빠는 하나도 무섭지 않은 사람이었다.
귀가를 독촉하는 아버지의 문자 메시지나 전화는 차츰 귀엽게 생각될 정도였고
간혹 정치문제로 언성을 높이는 순간이 와도 맨 마지막에 꽥 큰 소리를 치는 건 대부분 나였던 것 같다.
세 식구가 사는 집에서 우리 엄마는 왕비마마고, 나는 무수리고 아빠는 머슴이라는 농담을 곧잘 했었는데, 정말로 우리 모녀는 그간 아버지를 머슴 부리듯 했다는 걸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명절 때처럼 차가 필요할 정도로 큰 장을 볼 때가 아니면 반찬거리며 생활용품 사오는 장보기는 거의 아빠 몫이어서, 이삼일에 한 번씩 장바구니를 들고 집앞을 오가는 울 아버지가 천하의 애처가라는 건 온 동네가 다 아는 사실이었고
아버지가 채워놓은 냉장고 안엔 사실 새로 요리해야 할 반찬거리보다 밤중에 내가 먹을 밤참거리와 과일이 더 많았고
엄마나 내가 졸지에 옥수수나 순대, 떡볶이 같은 먹거리가 먹고 싶다고 말 한 마디만 하면 득달같이 일어나 마을버스 타고 전철역 앞까지 가서 사다 나르신 분도 우리 아빠였고
쓰레기 봉투를 사오는 것도,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것도 늘 아빠가 하시던 일이었고
운동하기 싫어하는 엄마 손을 잡고 억지로라도 집앞 산책로로 끌고 가는 것도 아빠 몫이었고
화분 물주기, 거실 청소, 하물며 최근엔 마감에 바쁜 딸 대신 세탁기 돌리고 빨래 걷어 말리는 것까지 모두 담당이셨고
마감 핑계로 까칠해진 딸이 잠든 아침엔 손수 아침상 차려 엄마랑 같이 드시고 설거지까지 말끔하게 해놓고는 행여나 잠든 내가 깰세라 조심조심 발뒤꿈치 들고 내 방앞을 지나셨는데...
그런 자상한 아빠가 더는 우리 곁에 없다는 게 정말로 믿어지질 않는다.

아무래도 이건 너무 억울하다.
모든 죽음엔 준비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졸지에 아버지를 도둑맞은 것 같다.
아버지의 부재가 미치도록 슬픈데,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생겨난 수많은 책임이 버거워서 더욱 슬퍼하는 건 아닌가 돌이켜보며 못된 딸은 가슴이 더 아프고 쓰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너무 그립다.

아버지 생각이 종일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데, 야속하게도 잠이 들면 꿈속에선 절대로 아버지를 만날 수가 없다. 그래서 견딜 수 없을 만큼 뻐근한 슬픔이 밀려들 땐 잠이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런 잠도 잘 찾아오질 않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잃고 나면 잘해드린 기억보다 못해드린 기억만 남는다더니만
나 역시 수많은 죄책감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그런데 또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오랜 침묵을 지키다
돌연 이런 횡설수설을 하게 된 건, 잡다한 끼적임으로라도 아버지께 사죄하고 싶은 마음에 더하여 무슨 이야기든 가슴에서 풀어내야만 더 깊은 우울과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이기심이 동했기 때문이다.

생전에도, 그 이후에도 변함없이 못된 딸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나는
아버지가 미치도록 그립고 보고 싶은데
할 수 있는 일이 아버지를 추억하며 흐느껴 우는 것밖에 없으니 참으로 무기력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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