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 2007. 8. 13. 01:33

언제부턴가 몸 구석구석에 붉으레하게 뭔가 불쑥 솟기 시작했다.
이른바 '종기'라고 이름 붙일 만큼 커다란 녀석도 있지만
흔히 얼굴에 솟아나는 뾰루지처럼 작은 녀석들도 있는데
원래부터 두피가 얇아서 머릿속엔 그런 것들이 자주 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뜬금없이 등 한복판, 옆구리, 귓불, 이마 같은데서 솟아나는 데는 도무지 대책이 없었다.

그닥 기름진 음식을 먹어대는 것도 아니고(오히려 평소보다 더 푸성귀만 먹고 사는데;;)
더워서 매일 안씻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대체 이유가 뭔가 아리송해 하고 지냈는데
내 얘길 들은 지인 하나가 명확하게 원인을 짚어주었다.
몸 안의 열과 화 때문이란다.
나도 스트레스 때문이겠거니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그 스트레스가 열기와 화기로 뭉쳐
견디지 못하고 살갗을 뚫고 나오는 거란 얘길 들으니 좀 섬뜩했다.

그러면서 나더러 괜히 쎈 척, 밝은 척, 안 힘든 척, 생각 안하는 척 하지 말고
울고 싶을 때 펑펑 울고, 소리치고 싶을 때 소리치고, 그리우면 마음껏 그리워하라고
조언해주었다.
이젠 매일 안울어도 될만큼 마음이 다독여졌다고 믿었는데
그 말 듣고 생각해보니 다른 건 몰라도 울음은 그간 좀 많이 참았던 것 같다.

처음엔 내가 울면 엄마도 덩달아 따라울기 때문에 주변에서 자꾸 만류했었고,
엄마도 부실한데 나까지 정신을 놓아버릴까 염려한 동생들이 하도 걱정을 해대는 바람에
마음껏 우는 게 불가능하기도 했다.
요즘도 조카들은 자기도 모르게 할아버지 얘기를 꺼냈다가는 얼른 내 눈치를 본다.
그러면 제일 머리 굵은 정민공주는 할아버지 얘기를 꺼낸 녀석에게 "너 때문에 고모 또 울면 어쩌려고 그래!"라고 면박을 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내가 더 민망하다. 울보 고모 때문에 어린 조카들까지 신경을 쓰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서.

가족들이 너무 많이 슬퍼하면 고인이 좋은 데 못간다는 얘기는 대체 어디에서 나온 얘기일까. 아니, 사후에 천국이든 극락이든 고통이나 불행 따윈 없는 곳으로 절대자의 곁으로 갔으니 슬퍼할 필요 없다는 종교적인 관점은 도대체 어떻게 비롯됐을까.

하지만 내가 우는 건 그저 아버지가 곁에 안계시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위한 이기적인 슬픔이고 눈물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니까 관습과 통념을 빌미로 하여 스스로를 위한 연민과 서러움까지 남들이 간섭하고 만류하는 건 옳지 못한 일인 것 같다. 물론 그들이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염려해서 하는 배려라는 건 알지만, 내 마음은 물론이고 몸까지도 종기를 앞세워 반기를 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블로그에도 아버지 얘기는 그만 써야지 생각했었다.
처음부터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는 삼가려던 공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들은 좀처럼 공감할 수 없는 혼자만의 슬픔을 노출된 공간에 자꾸 드러는 게
방문자들에 대한 일종의 폭력일 것도 같았다.
그런데 요즘도 내 사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버지 이외의 주제로 뭔가 글을 써서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낸다는 것은 역시 불가능했고, 그 자체로도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됐던 듯하다.
그러니 그냥 하던 대로 헛소리든 참소리든 주절주절 끼적이는 쓰레기통 같은 낙서장으로 삼는 수밖에 없겠다.

펄럭이는 감정에도, 생각에도 좀 더 솔직해지다보면
차차 온몸에 치솟는 열기와 화기도 차츰 가라앉지 않을까...
이것도 너무 뜬구름 잡는 식의 희망일까.

두고봐야지 별 수 있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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