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놀잇감 2007. 12. 3. 01:57
사실 나는 식객보다 똑같은 글잣수에 발음도 비슷한 <색, 계>를 보고싶었지만
주지스님 추천작이라며 <식객>이라는 영화가 있느냐고 보름 남짓 은근슬쩍 압력을 넣고 있었던
왕비마마 덕분에 왕비와 무수리 모녀는 날씨 우중충한 일요일 오후 극장을 찾았다.
개봉한지 한참 된 터라 영화관이 한가할 줄 알았더니 날궂은 일요일 한낮에 자리가 절반 이상 차는 걸 보면
아직도 인기는 꽤 괜찮은 모양.
타짜 때도 그랬듯 허영만의 원작 만화를 보지 않았던 터라 잘은 모르겠지만
순진한 희망에 가깝게 그려진 한일관계와 신파스러운 애국심이라는 고명이 역시나 약간 거북하긴 했어도,
입맛에 안맞는 고명은 걷어내고 먹으면 되듯
나에겐 꽤나 맛깔스러운 영화였다.

식탐녀답게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는 무조건 좋아하는 편이라 점수는 대체로 후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남들의 감상 포인트와 상관없이 나는 뜻하지 않은 복병 같은 몇 장면에서 흑흑 흐느끼고 말았는데
그래서 감상에 방해가 되기도 했고 동시에 어쩐지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데 없이 나를 울게 만든 것들은
접시 무늬가 보일 만큼 얇게 깔린 복어회 접시, 몇 개의 영정 사진, 하얀 보자기에 쌓인 유골함. 국화꽃으로 장식한 제단, 그리고 육개장.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영화 시작 후 거의 5분 뒤부터 줄곧 울다 퉁퉁 부은 눈으로 영화관을 나섰던
<집으로...>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식객> 또한 나에겐 눈물로 기억될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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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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