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쌓였다

삶꾸러미 2008. 1. 11. 15:39
세상모르게 쿨쿨 자고 있다가
꽤 많은 눈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벌떡 일어나게 되는 계기는 늘
집앞을 쓰는 빗자루 소리였다.
그리고 그렇게 부지런히 집앞에 쌓인 눈을 쓰는 사람은 십중팔구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저 멀리 골목 어귀까지 눈을 치우고 있자면, 비질하는 소리를 듣고서 이웃 아저씨들도 나와서 거들곤 하셨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사방이 고요하다.
사람들이 힘겨운 비질보다 염화칼슘 내다 뿌리는 걸 더 선호하기 때문이리라.

하염없이 내려 쌓이는 눈을 내다보다가 커피 한잔 마시고는
동네 친구 아줌마 등쌀에 반강제로 마실간 엄마가 돌아오는 길에 혹시 계단에서 미끄러질까봐
모자달린 파카 입고 나가서 기다란 빗자루로 알량하게나마 집앞에 길을 냈다.
꽤 많이 쌓인 눈은 원래 무거워서 잘 쓸어지지도 않는데
오늘은 푹한 날씨 탓에 젖어 늘어붙은 눈이라 비질이 더욱 어려웠다.  

촤륵촤륵... 눈 쓰는 소리가 정겨운 만큼 슬퍼져서 얼른 들어와
눈 핑계대고 술 한잔 청해볼까 지인들을 떠올리다가
그냥 차나 한 잔 더 마시려고 찻물을 올려놓았다.

마실간 엄마는 수다가 길어지는지 아직도 안 오시고
부슬부슬 힘없는 눈발은 그칠줄을 모르고...
고양이 세수하듯 쓸어놓은 집앞 길엔 또 다시 눈이 쌓여 있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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