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

투덜일기 2007. 7. 26. 23:29

한 집안에 사는 두 여자의 행보가 슬슬 달라지고 있다.
한 여자에겐 슬픔과 허허로움이 대책없는 허기로 달려드는 모양이다.
끼니를 잘 챙겨먹는 것은 물론이고 냉장고 안 과일이며 간식이 어느 순간 싸그리 없어지는 날들이 이어짐과 동시에 체중이 계속해서 불어난다.
또 한 여자에겐 슬픔과 공허함이 주체할 수 없는 짜증으로 증폭되는 듯하다.
말 한마디도 곱게 나가는 법 없이 사사건건 발끈발끈 하다 보니 대조적으로 계속해서 체중이 빠지는 것도 같다.

물론 두 여자 모두 감정의 펄럭거림 때문에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말고, 또는 무슨 일을 하다 말고 울먹일 때도 있지만
다행히도 한 사람이 울어도 나머지 한 사람의 눈가는 건조한 경우가 많다.

한 여자는 한시도 혼자 있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는 듯,
엄마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집구석 어딜 가든 졸졸 따라다니는데
한 여자는 이제 슬슬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한 여자는 여러모로 꽤 대단한 의지력을 발휘하여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 한 여자는 여전히 무력감에 발목을 잡혀 허우적대고 있다.

어느덧 장마는 끝났대고, 여름은 깊어가고 폭염은 시작되었는데
살뜰하고 정성어린 손길을 대신한 어설픈 물주기만으로도 아직 화분들도 멀쩡하다.
살림살이는 물론이고 물주기 따위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 한 여자는 가신 분이 하늘에서도 초록 식물들을 보살피고 있기 때문인가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암호문처럼
산세베리아, 금전수 = ☆
스파트필름, 마리안느 = ◎
고무나무 = △
라고 적혀 진열장 앞에 붙어 있는 메모지를 보고 머리를 쥐어짜 날짜 세어가며 물주기를 책임지고 있는 여자는 그러다 어느 순간 화분들이 한꺼번에 죽어나갈까봐 그저 노심초사 중이다.

그래도 두 여자는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천만다행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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