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해당되는 글 56건

  1. 2007.07.14 초하루 2
  2. 2007.07.10 괜찮음 5
  3. 2007.07.07 天崩 4
  4. 2007.06.18 살얼음 8
  5. 2007.06.12 일주일째 11
  6. 2007.05.18 길눈 8
  7. 2007.05.09 고맙습니다 5
  8. 2007.04.15 밤벚꽃놀이 4
  9. 2007.04.02 화분 욕심 (수정^^) 11
  10. 2007.03.26 패밀리 레스토랑에 간 패밀리 7

초하루

투덜일기 2007. 7. 14. 15:09
오늘은 음력으로 유월 초하루.
울 아버지는 양력으로 칠월 초하루에 돌아가셨는데...
불교 방식대로 따지면 오늘이 이칠일, 두번째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과거에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 상 치르면서 49재까지 7일마다 온가족이 절에 가 제사를 지내며 너무 고단하고 슬퍼서, 아버지 영정을 집 근처 엄마 다니시는 절에 모셔놓고는
주지스님께 매주 제사지내러 올라가진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냥 49재만 올리는 것으로 하고, 간간히 마음 허허로울 때만 절에 올라가겠노라고.

스님은 어디서든 간절히 마음을 담아 49일동안 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올리면 되는 것이니
아무렇게나 해도 좋다고 말씀하셨고, 어쨌거나 스님들은 매일 울 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올리겠다 하셨다.

오늘 엄마는 당연히 초하루 법회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나는 또 주체할 수 없이 울게 될까봐
절에 올라가는 걸 망설였는데, 특별히 등산복 입으신 사진으로 내가 골라 만든 아버지의 영정사진이 뵙고 싶어서 결국 따라 나섰다.

사실 열심히 절에 다니는 사람은 우리 엄마였고, 아버지는 무신론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등산길에 들른 산사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 풍경소리, 염불소리,
종소리를 참 좋아하셨다.
그래서 삼우제날 아버지 사진을 절에 모셔놓고 내려오며 우린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오늘 다시 아버지 사진과 위패가 놓인 법당에 들어서면서부터 당연히 눈물이 났는데
그래도 잘 다녀왔다 싶다.
어차피 모든 제례절차는 돌아가신 분보다 산 사람을 위한 위로방식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아버지가 병원에 계실 때도 각자의 종교와 상관 없이 모두들 간절히 기도를 올렸듯이, 친척과 지인들은 여전히 교회에서 성당에서 절에서 집에서 울 아버지의 명복과 남은 가족의 행복을 빌고 있단다.
사실 나는 아버지를 잃으며 신에 대한 회의가 더욱 강해졌지만, 그래도 내 오만함 때문에 누구에게든 누를 끼치면 안되니까 여전히 열심히 기도를 올리긴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게 결국 내 마음 편해지려는 이기적인 행동 같아 민망하다.

하지만...
산 사람들이나 종교가 다르고 이념이 달라 선을 긋고 편 나누기를 할 뿐
영의 세계에선 모두가 하나라서 궁극의 선한 마음만 갖는다면 종교가 조금 다르다고 문제 될 것 없다는 오늘 주지스님의 말씀을 그냥 묵묵히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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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음

투덜일기 2007. 7. 10. 01:15
전화로, 조심스러운 문자 메시지로 다들 묻는다.
괜찮냐고...
잘 지내고 있느냐고...

당연히 괜찮치 않을 걸 짐작하면서도 염려하는 마음으로 묻는다는 걸 알기에
모녀는 괜찮다고 대답한다.
사실 괜찮기도 하고, 썩 잘 지내고 있다.

무력감 때문인지 자도자도 또 잠이 오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 약 핑계로 끼니끼니 잘 챙겨먹고,
한달간의 공백 때문에 스토리가 좀 어리둥절하긴 하지만 낯익은 일일연속극도 쳐다보고,
어린 조카들의 재롱에 간혹 웃기도 한다.
내 경우, 머리와 마음이 텅 빈 것만 같던 시기가 지나고 슬슬 밀린 일 걱정도 되기 시작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렇게 끄적일 여유가 생긴 걸 보면 정말로 괜찮은 게다.

그런데...
나는 엄마와 내가 아빠 없이도 너무 괜찮고 잘 지내서 더 속상하고 슬프다.
오히려 중환자실 앞을 지킬 땐 허기도 모르겠더니 이젠 끼니 때가 지나면 어김없이 배가 고프고,
한달 이상씩 모두 연이어 늦어지게 생긴 원고마감에 신경이 쓰이고,
옆에 누가 있으면 좀체 깊이 잠들지 못하던 인간이 버젓이 엄마 옆 아빠 자리에 누워
쿨쿨 잠을 잔다.
엄마가 약기운을 빌어서라도 코를 골며 주무시는 게 너무도 감사한데, 동시에 또 그게 섭섭하다.

수시로 울컥 울음이 터져나오는 거야 당연한 것일 테고,
그 밖에 우리가 너무 괜찮고 잘 지내는 건 아빠에 대한 배신 같다.
이제 겨우 9일이 지났을 뿐이니 몹시 안괜찮아야 정상이지 않겠나.

아무튼
아버지가 우릴 배신하고 떠나셨듯
남은 우리들도 배신자 가족답게 꽤 괜찮게, 잘 지내고 있다.
다만 우리는 그래서 더욱 슬플따름이다.

그리고
막연한 걱정뿐이지 아직 일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게 내 유일한 변명이다.
참 알량한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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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崩

투덜일기 2007. 7. 7. 13:18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얼마나 정확한 말인지 줄곧 깨닫는 나날이었다.
중3때까지 아버지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잘생기고 멋진 남자였고
그 이후에도 정신연령이 심히 낮은 딸에겐 계속 자상하고 멋진 '아빠'였는데
그런 아버지가 이젠 곁에 안계신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나질 않는다.
아버지가 병원에 누워 계시는 동안에도, 멍한 슬픔 속에 꽤 복잡한 절차의 장례를 치르는 사이에도 모든 것이 그저 나쁜 꿈이길 바랐는데, 악몽은 결국 잔혹한 현실이었다.

아직도 엄마랑 둘이 방에 누워 게으름을 부리고 있으면
일찌감치 등산 가셨다가 일부러 무거운 등산화 발자국 소리를 쿵쿵 내며
금방이라도 아버지가 계단을 올라오실 것만 같다.

아버지의 흔적으로 가득 찬 집으로 돌아와서 과연 두 모녀가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다들 몹시 걱정했었는데
시선을 어디로 돌려도 느껴지는 아버지의 흔적이 오히려 반갑고 고맙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슬픔은
그저 그리움과 눈물로 풀어나갈 밖에 없지 않을까.

그간 마음써주고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워하며
씩씩하게 잘 견디려고 노력해볼 생각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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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얼음

투덜일기 2007. 6. 18. 22:01
날씨는 폭염이지만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금방 안심하고 돌아서면 5분도 채 못돼서 아버지의 상태가 나빠졌으니
중환자실 밖에서 대기하란 연락이 온다.

매일 아침 나는
햇살이 너무도 찬란하니까,
하늘에 구름 한 점도 없으니까,
까치가 유독 반가운 목소리로 창밖에서 울어대니까,
아버지가 키우시던 화분에 새로이 꽃이 돋아나고 있으니까,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신호등을 한번도 안 걸리고 통과했으니까...
별의별 이유를 들어 희망을 품으며
오늘은 꼭 아버지가 의식을 되찾고 눈을 뜨셨을 거란 기대로 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우리 가족과 친지들의 간절한 바람은 계속 찬서리를 맞고
복잡한 기계와 호스에 둘러싸여 누워 있는 아버지는 아직도 좀체 깨어날 기미를 안보이신다.
이제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조바심을 버리려고 애는 써보지만
두려운 마음엔 덜컥덜컥 성급함이 밀려든다.

오래도록 병상의 아버지를 지키려면
이제 조금은 일상으로 돌아가 일도 해야 한다고 스스로도 되뇌기는 하는데
제대로 일이 손에 잡힐 리 없다.
놀란 엄마를 혼자 두는 게 안쓰러워 컴퓨터 앞에 앉는 것도 죄스러운 지경이라
대부분 두 모녀가 나란히 손을 잡고 멍하니 앉아 있기 일쑤다.

편히 잠드는 것도 꾸역꾸역 밥을 먹는 것도 구차하고 허망한데
보호자인 우리가 튼튼해야 아버지를 잘 지킬 수 있다는 원칙에 매달려 그래도 잘 버티고는
있는 것 같다.

오늘도 폭염속에 살얼음을 한 뼘 또 건넜나 보다.
누구보다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계실 아버지가 잘 견뎌주시길 빌뿐이다.
올해는 우리 가족 모두 가장 덥고도 추운 여름을 보내게 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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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째

투덜일기 2007. 6. 12. 14:11

지난주 화요일부터 일주일째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위해
모두의 기도를 바라는 글을 잠시 올렸다가 내린 이유는
혹시라도 내 이기심 때문에 누군가 괘씸죄를 적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세상 모든 병원에서 병마와 힘겹게 싸우고 있을 모든 환자들과 가족, 그 주변 사람들 모두
나와 같은 기도를 올리고 있을 테니까.

분명, 주변 사람들의 기도가 부족해서 누군가의 운명이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전히 나는...
착하고 고운 심성으로 하늘과 절대자의 마음을 울릴 누군가의 기도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짧은 면회시간에 잠시 뵙고 나온 아빠는
금방이라도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실 것만 같은데
의사들은 단호한 어조로 무서운 확률과 절망적인 가능성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처구니없이 꼬리를 내리려는 의학의 힘보다 우리는 늘 건강하셨던 아버지의 의지력과 하나로 모인 모든 이들의 염원을 믿고 기다릴 테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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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눈

삶꾸러미 2007. 5. 18. 16:21

어떤 유전자가 작용하는 건지는 몰라도
길눈이 밝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눈이 어두워 이른바 '길치'로 분류되는 사람이 있다.
한번 간 길은 단박에 찾아가거나, 대강 설명만 듣고도 별 어려움 없이 찾아가는 신공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번 간 길도 매번 헷갈려하며 헤매는 사람이 있는 법.
내 주변엔 길치들이 꽤 된다.
대표적으로 우리 아버지.
과거에 친척들 집에 갈 일이 있어서 퇴근길에 따로 찾아오시게 되면, 아버지는 몇번 가본 곳인데도 늘 엉뚱한 곳에 가서 헤매고 있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전철역까지 다른 곳에서 내려 이상스럽다며 한시간도 넘게 낯익은 골목을 찾아 들쑤시고 다니기도 했더랬다.
지금은 아예 내가 늘 모시고 다니지만, 그때마다 두분이 자동차 뒷좌석에서 중얼중얼 염려를 하신다. "나 혼자 여기 두고 가면 집에 못찾아간다..."고.
아버지가 지금도 약속시간보다 최소 30분, 많게는 1시간씩 일찍 가는 버릇이 생긴 것도 아마 하도 길치라 잘 못찾아갈 것을 염려해 시간 여유를 두기 시작하면서 비롯된 듯하다. ㅋㅋ

ER 동호회로 알게된 녀석들도 손꼽히는 길치여서,
9년째 변함없이 모임장소는 종로 탑골공원이다.
몇번 그 주변의 다른 곳으로 만나는 장소를 바꿔봤지만, 워낙 약속시간도 잘 안지키는 인간들이 엉뚱한 데서 헤매기 일쑤라 이젠 장소를 바꿀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종로3가 전철역에서 나와 탑골공원 오겠다고 택시를 타는 놈이 없나
탑골공원 오랬더니 종묘에서 마냥 기다리는 녀석이 없나
일단 만났더라도 인파속에서 서로 헤어지면 방향감각 없는 녀석들이 도무지 찾아올 줄을 몰라 휴대폰 통화를 하며 숨바꼭질을 해야 하니, 그 소문난 길치들을 만나면 어린이집 학생들 소풍 데려나간 선생처럼 늘 두리번거리게 된다. +_+;;

다행히도 나는 공간감각력이나 복합적인 지각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임에도
길눈은 밝다. 한번 갔던 곳은 웬만해선 찾아갈 수 있기도 하고, 대강 지리를 머리에 그려보면 방향감각을 발휘해 좀 헤매더라도 완전히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진 않는다.
처음 가는 곳도 네비게이션의 도움 없이 설명만 잘 들으면 별 어려움 없이 찾아가기 때문에 다들 꽤 신기해하는데, 나는 똑같은 설명을 듣고도 잘 못찾아오는 사람이 오히려 신기하다. *_*

길치의 유전인자나 사고방식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길치들은 길을 설명하는 것에도 당연히 둔하다. ^^ 아마도 주요 지표가 될만한 건물이나 표지판 따위를 허투루 보고 지나치기 때문인 것도 같은데...
암튼 만날 다니는 자기 집엘 데려가면서도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갈팡질팡 설명을 헤매는 길치들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마지막 회사에 다니던 시절, 누군가에게 전화로 사무실 오는 길을 설명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나는 늘 호출을 당해야 했다. 만만한 거래처면 미리 팩스로 약도를 보내주면 끝이지만, 웃기는 상사들은 누군가와 막 통화를 하다가 말고 '미스 ㅂ!"이라고 꽥 소리를 질러 나를 불러선 수화기를 내밀곤 했다. -_-;; "이 사람한테 우리 사무실 오는 길 좀 가르쳐줘라" (나한테 그런 걸 시킬 정도의 상사면 대개 반말이다)
나보다 길을 더 잘 아는 영업부 직원들은 대개 오전부터 온종일 외출중이었고, 사무실에 남는 건 주로 여직원과 간부들이니 그 중에 '구두 약도 설명'을 시키기에 제일 만만한 건 나였다.
내가 운전을 오래 한 탓도 있었지만, 상사들 본인도 운전경력이 나보다 길지만 늘 다니던 길도 막상 설명하는 덴 젬병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은 표지판을 제대로 안보고 다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난 운전하기 전에 버스 타고 다닐 때도(내가 지하철보다 버스를 더 선호하는 이유도 방향감각을 잃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청앞에 횡단보도가 생겨 다행이지만... 예전에 횡단보도 없을 땐 걸핏하면 내가 나가고 싶은 출구로 못나가고 실패해 화가 버럭~ 났었다) 주변 풍경을 열심히 관찰했기 때문에, 그런 경험조차 나중에 길을 찾아갈 때 도움이 되었고 지금도 어딜 가든 길거리와 사람들을 유심히 살핀다. 다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란 말이지... (뭐 딱히 그런 생각을 품을 만큼 주도면밀하다기 보다는 그냥 세상구경에 관심이 많다 ㅋㅋ)

길눈에 꽤 밝다는 잘난 체 정신 때문에 나는 차에 네비게이션을 달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더라도 주절주절 떠드는 게 시끄러워서 끄고 지내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게다가 운전하며 네비게이션 화면 살피는 거, 운전중 휴대폰 통화보다 더 위험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멀리 여행을 가거나 처음 가는 곳을 찾아갈 때, 나는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경우 그대로 메모했다가 안내대로 찾아가고, 그게 아니면 미리 지도를 찾아보고 주요 지표가 되는 고속도로 나들목이나 지점 따위를 적어둔다. 혹시 미리 계획하지 않았던 곳을 찾아가게 되더라도, 지도를 찾아보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물론 우리나라 도로 특성상 표지판이 간혹 있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사라지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럴 땐 동물적인 감각으로 찾아내면 되는 거다.
대부분 길은 어디로든 뚫려있고, 혹시 막다른 곳에 다다르더라도 되돌아오면 되는 거니까!

암튼...
오늘 막내 조카의 돌잔치를 앞두고, 어제부터 줄곧 전화통에 불이 나고 있다.
장소가 광화문 대로변에 있으니 어려울 것이 없는 데도, 며칠 동안 두 노친네에게 그리도 열심히 교육을 시켜놨건만 못미더워하는 친척분들이 계속 나를 찾아 위치를 다시 묻는다. -_-
제 아무리 네비게이션이 못미덥다지만 오지도 아니고 완전 도심인데  멀쩡히 새로 단 네비게이션을 두고도 길을 되묻는 동생들에게 이유를 물으니... "인간 네비게이션(=바로 나)이 더 훌륭해서"란다. 큭...

하긴 네비게이션 안내는 방향만 지시할 뿐, 방향을 바꿔야 할 지점에서 보이는 건물이 검정색인지 초록색인지, 그 앞에 커다란 조각상이 있는지 없는지, 가로변 공사장 펜스가 몇미터쯤 되는지를 설명해줄 순 없겠지.
아마 이따가도 또 다시 근처에 왔으니 길을 설명하라는 친척들의 전화를 꽤나 여러번 받아야 할 거다. 다 쓸데없이 길눈이 밝은 탓이니 어쩌랴. 친절하게 설명해드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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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삶꾸러미 2007. 5. 9. 02:18
어버이날
결국 난 부모님한테 고맙습니다.. 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나마 어린이날 미리 모여 먹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맥주로 건배하며
올케 따라 감사하다고 거들었으니 다행인가.

꽃을 좋아하긴 하지만...
카네이션도 죄다 중국산이고 값도 엄청 올랐다기에 몇년째 실속 위주로 한답시고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는 쑥스러운 절차는 생략한지 오래다.
그나마 막내올케가 주말 모임 때 카네이션 바구니를 만들어 와서 부모님껜 다행이었는데
카네이션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나는 좀 민망했다. ㅋㅋ

올해도 선물은 고민하다 두분 다 그냥 '현금' 봉투로 드렸다.
까다로운 두 노친네들 뭐라도 사드리려면 다리품을 꽤나 팔아야 하는데 이젠 그것도 귀찮고..
사실 사드릴 품목도 정말 마땅칠 않다. 핑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며칠 전 충동적으로(사실 주차비 아까워서 쇼핑한 거지만;; ) 사다드린 연분홍색 모자는 엄마가 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다.
나이든 아줌마들은 왜 그리도 '꽃가라'를 좋아하시는지... 안쪽에 꽃무늬 프린트가 들어가고 꽃모양의 장식도 붙어 있어서 내가 보기엔 약간 난한데
백화점서 여러 아줌마들에게 씌워보고 의향을 물으니 모두들 좋아라 하기에 울 엄마도 좋아할 줄 짐작은 했더랬다.

매달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거나 생활비를 내놓는 착한 딸이 아니라
생신이나 명절, 어버이날 아니면, 가끔 원고료가 무더기로(!) 들어와 통장잔고가 매우 두둑해졌을 때만 봉투를 내밀다보니, 드리는 나도, 받으시는 부모님도 참 뻘쭘하다. -_-;;

째뜬...
그래도 나무토막같이 무뚝뚝한 딸이 콩닥콩닥 바쁘게 장봐다가 차려드린 저녁상으로
얼추 감사의 마음이 전해졌으리라 믿는다. ㅎㅎ
현금봉투에다 장 본 값에다 주말에 먹은 저녁 값까지, 올해도 얹혀 사는 큰딸의 출혈이 제일 컸다는 걸 부모님은 분명 아시겠지만 ^^;; 그래도 제대로 된 인사는 여기에나마 적어두련다.
"엄니, 아부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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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벚꽃놀이

삶꾸러미 2007. 4. 15. 23:56

벚꽃 축제로 유명하다는 진해나 여의도 윤중로엔 일부러 행사기간에 맞춰 가 본 적이 단 한번도 없고 
앞으로도 가고싶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 득시글 거리는 데도 싫지만, 벚꽃의 흐드러진 아름다움보다
음식냄새 진동하는 포장마차들이 더 즐비한 그런 곳... 제 아무리 축제엔 먹거리가 빠질 수 없다지만 나는 그런 분위기가 정말 싫다.

그런데 우리 동네 근처에도 꽤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들이 늘어선 벚꽃길이 있다.
해마다 봄이면 구청에서 벚꽃길 걷기 축제도 하고 그러는데 요즘이 만개철인지
며칠 전부터 엄마가 벚꽃 구경하러 가자고 성화였다.
그치만 나는 완전히 초절정 마감모드였던 지라 (하도 열심히 블로그질을 해대서 티는 안났겠지만 ㅋㅋ) 계속 모른 척 했는데,
오늘은 급기야 엄마가 동네 친구 아줌마랑 둘이 먹을 것까지 싸들고
구청 뒷산에 있는 벚꽃길로 놀러가시더니, 너무 좋으니 어서 아부지 모시고 구경오라고 전화까지 해댔다.
아버지는 어제 오랜 산행 끝에 발목이 아픈 상태고
나는 아침까지 원고와 씨름하다 간신히 잠든 상황이라 몹시 쌀쌀맞게 엄마나 많이 보고 오시라고 마다하며 전화를 끊고는 조금 찔렸더랬다.

그런데 역시 나보다 효자인 큰동생과 올케가 엄마 전화를 받고선 벚꽃도 볼겸 저녁 먹으러 들이닥친 것.
결국 우린 저녁을 먹고 나서 단체로 밤벚꽃놀이에 나섰다.
청사초롱이 길게 매달린 벚꽃길은 제법 그럴듯했고, 시끄러운 스피커를 매단 장사치들도 하나 없는 오솔길은 몇년 전에 낮에 와봤던 때보다 쾌적했다.
알록달록 촌스러운 색깔의 조명을 비춰 노랑, 분홍, 초록, 하늘색으로 보이는 벚꽃을 보며 울 정민공주를 비롯해 거기 나온 사람들은 마구 감탄했지만, 나는 조명이 좀 덜 인공적인 색깔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으며 시큰둥하게 오솔길을 걸었다.

벚꽃놀이를 자주 가는 건 아니지만,
나는 벚꽃이 만개해 있는 것 자체보다, 하얀 꽃들이 눈송이처럼 후두두둑 떨어지는 모습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 그야말로 꽃비가 마구 날리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내가 환성을 지르며 좋아하자 아버지가 한 말씀 하셨다.
당신은 벚꽃이 한창 예쁘게 핀 걸 보는 건 좋은데, 휘날려 떨어지는 걸 보면 서글퍼서 싫으시단다.
너희야 앞으로 예쁜 꽃 볼 날이 많지만, 당신은 그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면서...

얼마 안 남긴, 무슨 소리냐고... 앞으로 10년 동안 매해 꽃놀이 모시고 오겠다고 큰소리 치며 대충 순간을 얼버무렸지만 가슴이 짠했다.
같은 꽃을 보면서도 그렇게 느낌이 다르구나...

나도 평균수명 운운하며 이젠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짧을 거라고
늘 엄살을 떠는데, 아버지 말씀에 문득 그런 내 촐싹거림이 부끄러웠다.
울 엄만 서울태생이면서도 아직 한강 유람선도 안 타봤고, 남산 타워에도 신혼여행 가기 직전에 택시타고 둘러 본 게 마지막이고, 그 새 수없이 생겨난 서울의 여러 공원--하늘 공원, 서울 숲 따위--에도 안 가봤다면서 가끔씩 한탄하는 걸 보며, 여유 좀 있을 때마다 모시고 가리라 마음먹지만, 재작년에 선유도 공원으로 소풍 간 걸 마지막으론 또 만날 바쁘다 바쁘다 짜증만 부리며 살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더는 어떻게 잘해드릴 수도 없는 순간이 온 다음에
눈물로 후회하지 말고 미리미리 잘해드려야 하는데, 왜 늘 깨달음은 뒤늦게나 찾아오는지 모르겠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 참으로 무서운 진리인데
내 머리가 참 나쁜 게 문제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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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말려 죽이거나 썩혀 죽이면서도
기어코 또 화분을 들였다.

매년 한식을 맞아 식목일에 성묘를 다녀오면서 돌아오는 길에 화분을 사는 것이
당연한 전통처럼 되고 보니, 어제 심한 황사를 무릅쓰고 성묘를 다녀오면서도 어김없이
화원에 들렀던 것.
해마다 하나, 둘씩 늘어난 화분으로 거실 한귀퉁이를 이미 거의 화원처럼 초록으로 가꿔놓신 아버지가 또 화분 욕심을 내시는 걸 보며, 나 역시 지난번에 죽인 마리안느 화분이 빈 채로 놓여 있는 게 아쉬워 전날 미리 빈 화분을 트렁크에 실어 놓았더랬다.

일단 나는 예쁘기도 하면서 잘 안 죽는 식물로 추천해달라며 이것저것 고르다
넙적하고 길쭉한 입사귀가 열대식물을 닮은 녀석으로 골랐는데, 허걱 이제 생각하니 이름도 모르고 집어왔구나야. -_-;;

노란 칼라 꽃이 두 송이 피어있고, 이파리엔 좀이 슨듯 알금알금 미세한 구멍이 무늬처럼 들어간 화분도 샀는데, 과연 또 얼마만에 비보를 전하게 될지 두려움이 앞서면서도
초록을 가까이 한다는 게 뿌듯하다.

아버지의 금전수
나의 이름모를 화분과 노란 칼라
큰동생네가 산 넙적한 산세베리아
정민공주의 아기별꽃

분명 아버지만 실하고 튼튼하게 새 식구를 키워내시겠지만
나머지 마의 손들도 제법 오래 초록을 가꿔나가기를 빌어본다.

가끔은 생명력 질긴 녀석이 내 변덕스러운 보살핌에도 꿋꿋하게 살아주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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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라고 쓰니
마치 무슨 조폭 가문 느낌이 드는군. ㅎㅎㅎ
하지만 제목은 두운(?)을 맞추는 의미에서 그냥 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가족'의 의미가 심히 축소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우리집에서 '가족'이라고 하면, 이제 세 집 살림으로 나뉘어 있긴 해도
부모님과 나, 동생들 부부, 조카들을 포함한 11명 대가족을 의미한다.
그리고 식탐도 집안 내력인지,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는 걸 몹시 좋아하는 우리들은
걸핏하면 뭉쳐다니며 외식도 즐긴다.

외식의 빌미는 주로 누군가의 생일이지만, 별 다른 날이 아니어도 괜히 의미 붙여
우르르 몰려가 밥 사먹는 걸 좋아하는 게 우리 '패밀리'의 특성인 것 같다.
명절과 제사 때마다 북새통을 이루며 시어머니, 며느리, 딸 할 것없이 온통 노동의 장에 투입되어야 하는 마당에, 생일까지 집에서 챙기는 건 불공평한 노동력의 착취라고 소리 높여 부르짖은 사람은 없었지만 ^^;; 생일 외식은 며느리들 집에 와서 설거지 하는 것도 안쓰러워하시는 울 아부지가 오래 전부터 정한 원칙이었다.
아 물론, 올케들 처음 결혼하자 마자 첫해엔 시부모 생신이라고 한 번 씩은 집에서 상을 차렸던 것 같은데, 집에서 어른들 생일상을 차리면 친척분들도 모두 몰려오시기 때문에 명절과 똑같이 고생문이 훤하므로 그 담부턴 원천봉쇄 차원에서 외식을 빌미로 집을 아예 비우는 수법을 동원했던 것이다.

제일 어린 조카는 아직 돌도 안됐긴 했지만, 11명의 생일을 챙기려면 1년에 최소한 11번은 단체로 밥먹기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한다는 의미고,
어버이날과, 부모님 결혼기념일, 그밖에 기념해야 할 일(동생들의 승진이라든지, 올케들의 임신이라든지^^)을 더하면 어떤 달엔 두어 번 외식을 해야 해서
음식점 선정 때문에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물론 사전 계획 없이 가뿐하게 집에서 삽겹살이나 구워먹자고 하다가 죄다 모여드는 주말도 심심치 않게 이어진다.
그러고 보면 우리 패밀리는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ㅋㅋㅋ

암튼...
처음에 조카가 정민공주 하나일 때는 외식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원래 아기땐 정민공주가 천사처럼 착한 아이여서 좀처럼 울거나 떠드는 일도 없어, 어느 식당을 고르든 편히 밥먹고 수다떨고 돌아오는 게 가능했기 때문에
일단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식당만 예약한 뒤, 우아하게 가서 먹어주고 오면 그뿐이었다.

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나름대로 편식하는 음식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피자, 스파게티는 물론이고 패스트푸드까지도
몹시 즐기시기 때문에, 단체로 거의 한달에 한번 꼴로 가게 되는 음식점 메뉴는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었다.

그런데 조카들이 하나 둘 더 늘어나고, 천사표 공주와 달리 막가파 골통계보를 타고난 왕자들이 탄생한 뒤엔 우아 떨며 조용히 식사를 해야 하는 음식점엔 더는 갈 수 없게 되었다.
아주 어려선 빽빽 울어대며 같이 먹겠다고 난리여서 누군가 한 사람이 계속 아이를 안고 있어야 했고, 좀 큰 뒤엔 거침없이 식당 안을 뛰어다니려고 하는 통에 놈들을 잡아 앉히느라 신경을 많이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패밀리가 갈 수 있는 음식점은 별도로 '룸'이 마련된 곳이거나
유사한 골통 계보를 타고난 다른 아이들을 위해 아예 놀이시설을 갖춘 곳이거나
원래 좀 시끌벅적해서 놈들이 떠들어대도 눈치가 덜 보이는 고깃집이라든지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한정되고 말았다.

그런데 말이 패밀리 레스토랑이지, 특정 동네의 지점이 아닌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 패밀리보다는 연인과 친구끼리 오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더욱이 우리 가족처럼 대규모 '패밀리'는 좀처럼 없다는 것이 문제다.

토요일에 생일을 맞은 막내는 한참이나 고심하던 끝에(만인이 원하기는 했지만 생일 맞은 본인과 울 아부지가 싫어하는 '장어'를 먹으러 갈 것인가, 아니면 제가 좋아하는 메뉴를 정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였다^^) 결국 제가 좋아하는 신촌 우노로 행선지를 잡아놓고는
괜찮겠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가끔 느끼한 걸 왕창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메뉴였지만,
신촌이라는 장소가 걱정스러웠는데, 역시 우리의 염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같은 TGI라도 홍대쪽에 있는 건 가족단위로 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우리도 가끔 가주지만
신촌에 있는 건 주차장도 없을 뿐더러 복작복작 젊은이들로 늘 넘쳐나 주말엔 대기 손님도 줄지어 있지 않은가.

그나마 신촌 우노엔 주차 시설이 있어 다행이었으나
각종 카드 할인과 더불어 대학생은 추가로 10%나 더 할인을 해주고 보니
새파란 아이들만 쌍쌍이, 기껏해야 서넛씩 득시글득시글 거렸지, 우리처럼 대규모 '패밀리'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으니, 우리를 위한 넉넉한 좌석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우리는 최대 8명이 앉는다는 원탁 소파 자리에 제일 어린 조카까지 11명이 구겨 앉아서
음식을 채 놓을 자리가 없어, 같은 종류 음식을  포개거나 재빨리 먹어치우거나 하는
식탐 내공을 발휘하며 동시에 조카들을 단속하고, 정신 없어 하시는 부모님을 보필해야 했다.

우리 패밀리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갈 때 예전에 가장 염려한 것은
울 아부지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드시는 참이슬 반주였으나, 경력이 오래 되다 보니
이젠 소주를 집에서 싸가지고 가거나 근처 편의점에서 사서 빈컵 달라고 해 따라놓고 드시게 하며 다른 식구들은 맥주와 다른 음료수를 마시는데, 다행히 이제껏 울 아부지의 참이슬 반주를 막는 패밀리 레스토랑은 보지 못하였다. ^^;;
(홍대앞 TGI와 아웃백, 지금은 없어진 마르셰에 이어 신촌 우노까지 성공!)

물론 '우노'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라고 대놓고 부를 수 있을지 어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어린이용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side 메뉴로 한접시에 2천원 하는 김치도 있는 걸 보면 패밀리 레스토랑을 따라가려는 게 분명한 것 같은데...

울 아버지의 관찰에 따르면 지난 토요일 그곳에서 제일 연장자는 울 아버지셨고
제일 연소자는 돌을 앞둔 우리 막내 조카였으며,
아마 40대도 나 혼자뿐이었을 거라고 했다. -_-;;

다행히 음식은 그럭저럭 맛이 있었고, 워낙 많은 메뉴를 시켜 엄청나게 먹어댔던 덕분인지 매니저가 맥주도 더 갖다 주고 김치도 공짜로 제공하긴 했지만(김치 찾으시던 아부진 포크로 찍어 먹으려니 김치도 맛 없다며 결국 남기셨다 ㅋㅋ)
그런 패밀리 레스토랑엘 가면 우리 부모님은 메뉴도 복잡하고 늘 너무 시끄러워 정신없고 혼란스럽다고 하시는데, 신촌 우노에선 새파랗게 젊은 아이들 틈에 앉은 자리까지도 불편하셨나 보다.

우리는 가끔씩 연로하신 부모님 모시고도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즐겁게 떠들며 밥먹고 싶은데, 말만 패밀리 레스토랑이지 젊은이들의 집합소에 더 가까운
무늬만 패밀리 레스토랑이 더욱 많아지는 것 같아 속상하다.

우리 패밀리가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치사하게 맥주랑 와인 같은 것만 팔지 말고 소주도 파는!)을 좀 만들어 달란 말이지!!
하는 수 없이 다음달엔 바닥에 퍼질러 앉아 참이슬 반주에 느긋하게 구운 오리 같은 걸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모시는 수밖에...
하지만 또 몇달 뒤쯤에 음식점 레퍼토리가 떨어지면, 또 다시 참이슬 가방에 싸들고 시끄러운 패밀리 레스토랑 진출을 시도할 것은 틀림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자, 손녀까지 골고루 다 잘먹는 '느끼한' 음식들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고, 까르륵 웃어대는 조카들의 소란스러움이 다른 소음에 잘 묻혀버리는 음식점은 역시 패밀리 레스토랑만한 데가 없지 않겠나.

대규모 패밀리를 위한 넓은 좌석은 있으되, 진짜 패밀리를 찾아보는 건 드물긴 해도
우리나마 머리 하얗게 세신 부모님을 모시고 자꾸 그런 데를 다니면
다른 젊은이들도 자기 부모님 모시고 다녀볼 생각을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품어본다.
그러면 울 아부지, 엄니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동년배들을 많이 보게 되서
어색함과 불편함을 덜 느끼시겠지.

어르신들이라고 늘 한방 오리탕이나 갈비 따위만 즐기시는 건 아니라는 걸
젊은이들이 좀 알아야 할 터인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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