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의 정당성

투덜일기 2007. 10. 8. 17:02
그러니까 배우란 직업을 아무나 택하는 게 아니긴 하겠지만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은 우는 모습도 예쁘고 아름답고 우아하다.
커다란 눈망울에 이슬처럼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다간 수정구슬처럼 또르륵 뺨위로 굴러내리기도 하고
간혹 코가 빨개지도록, 또는 콧물까지 뒤범벅이 되어 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배우들이 우는 얼굴은 그다지 일그러지지도 않고 빨갛게 변하지도 않는다.
참 신기하다.

배우가 아닌 이상 폄범한 이들 가운데 울면서 굳이 거울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어린아이들 가운데는 울면서 자기 모습을 거울로 쳐다보며 더 서럽게 우는 경우도 꽤 보기는 했다)
내 경우 울음 뒤끝에 몰골을 추스르느라 거울을 보면 매우 가관이다.
잘 우는 편이라 굳이 온 얼굴에서 눈물을 짜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코끝과 눈가는 물론이고 흰자위까지 새빨갛게 충혈돼 온 얼굴이 완전히 시뻘겋고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으며
콧물 동반은 필수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눈두덩을 자꾸 닦아내면 순식간에 퉁퉁 붓는다.
몇달 간 울 일이 많았던 탓에 새삼 깨달은 바로는 그나마 눈물을 자꾸 닦지 않고 그냥 흘리다 말리면 차라리 덜 붓는다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한참 울고 나서 보면 안경에 미세한 눈물방울이 튕겨 있다는 점이다.
눈물샘에서 눈물이 스프레이처럼 샘솟을 리는 없고 아무래도 눈썹을 깜박거릴 때 소량의 눈물이 안경 유리에 튀기는 모양인데 확인할 길은 없다.

울면서 남들에게 우는 모습이 추할지, 아름다울지 따질만큼 남의 눈을 신경쓰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른이 된 뒤에 우는 건 역시 깜깜한 영화관이나 혼자 있을 때 비로소 편해진다.
옆 아기가 울면 덩달아 따라 우는 아기들처럼 언제부턴가 누군가 울면 금세 전염이 되어 따라울게 되는데
친구 하나는 그게 주책맞은 아줌마가 되어간다는 징조라고 했다.
자기도 요샌 결혼식에 가서 지켜보다 돌연 눈물이 난다나.
서양 영화를 보면 결혼식장에서 흔히 아줌마나 할머니 하객들이 저마다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는데 젊어서는 그걸 보며 비웃었더니 이젠 자기도 그러고 있단다.
그게 정말일까?
암튼 언제부턴가는 나도 신랑신부가 부모님께 절하는 대목에서 늘 울컥 눈물이 나곤 했다.

어쨌든
양파썰기를 할 때 매워서 흘리는 눈물과 슬퍼서 우는 눈물은 성분이 다르단다.
슬프거나 감동적이어서 감정의 변화와 함께 흘러 나오는 눈물에는 교감신경이 자극되어 생성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성분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목놓아 울면서 흘린 눈물에는 몸에 돌아다니던 스트레스 호르몬이 잔뜩 담겨 나오기 때문에 한참 울고 나서 속이 후련한 이유도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얘기다.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한 감정 때문에 지쳐있을 때 슬픈 영화를 보면서라도 통곡을 하고 싶어지는 것도
눈물과 스트레스 호르몬의 상관관계를 시사하는 현상인가 보다. 건강한 정신생활을 위해서도 꽤 자주 울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꽤나 자주 울 일이 많았던 지난 몇달간은 그럼 내 정신건강을 위해 퍽이나 이로운 시기였던가?
실컷 울고 나서 후련해지는 것은 그렇다 치고, 내 경우 극심한 두통이 뒤따르는 건 또 왜일까?
흠...

또 종일 운다고 잔뜩 핀잔을 듣고서 또 억지로 웃다가 울음의 정당성을 따져보려니 쉰소리가 길어졌다.
그냥 뭐든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고 여기며 마음 내키는 대로 하련다.
머리가 지끈거리든 말든 자꾸 흘러나오는 눈물을 무슨 수로 막으랴.
덩달아 스트레스 호르몬도 빠져나온다는데 온몸에 쌓인 '카테콜라민'도 배출하고 좀 좋은가 말이다.
그냥 오늘은 또 실컷 울어야겠다.

날을 따져 우는 것도 좀 우습지만
어쨌든 오늘은 아버지 가신지 100일째다.
납골당에 가며 오며 계속 울었는데도 울음끝이 꽤나 질기다.
그리운 만큼 울어야겠다고 쉰소리까지 끄적일 배설의 공간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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