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삶꾸러미 2007. 9. 5. 22:59
사람을 간단히 두 유형으로 나누어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과 정리정돈을 못하는 사람으로 가른다면
나는 당연히 정리정돈에 젬병인 사람에 속한다.

뭐든 되는대로 널브러뜨려놓고 사는 게 어쩐지 인간답고 정감있다는 편견은
내 삶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원천이기도 한데
그런 인간이 철저한 정리를 도맡으려니 참 쉽지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다른 누군가 마무리하고 정리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마음 속 방들을 칸칸이 정확히 나누어 그 안에 생각과 감정들을 차곡차곡
정돈할 수 없는 것처럼, 제아무리 피붙이라 해도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정리한다는 건 어쩌면 말도 안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사람이 떠난 자리엔 반드시 정리할 게 꽤 많다.

두달이 넘도록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버지 책상엔 피우시던 담뱃재까지도 재떨이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나로선 차마 하나라도 손을 대기가 싫었다.
웬만한 공과금 자동이체는 해지시켰지만, 아직도 통장이며 카드도 마냥 그대로만 두고 있으면서, 누군가에게 독촉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마지못한 듯 하나씩 '정리'하는 시늉을 하는 중.

워낙 아버지가 깔끔했던 분이라 딱히 어려울 것도 없는 정리건만
마냥 헤매고만 있는 나를 보면서, 제일 강렬히 드는 생각은 내 삶을 가능한 한 간소하게
정돈해 놓고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 속의 나는 자꾸만 너저분하게 일을 벌려만 놓고 도무지 정돈할 줄을 모르고 있다. 어떻게 하면 단정하고 소박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인지, 과연 나 같은 인간도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하니 한심하다.

폭탄 맞은 것처럼 어지러운 삶을 남겨두고서야 어찌 부끄러워서 편히 떠날 수가 있겠나.
생전에 스스로 묻힐 곳이며 입고 갈 옷까지 다 장만해두어야 더 오래 산다고 믿은
옛 사람들의 지혜가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좀 알겠다.
굳이 더 오래 살고 싶은 마음에 매달려 노년의 생을 바락바락 연장하고 싶은 없지만
편한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건 역시 지혜로운 선택이다.
이제라도 최대한 간소하게 주변을 정리하며 살아봐야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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