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생일에 조카 ㅈㅎ이의 카드 내용을 읽고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벌써 고모 나이가 반백을 넘었네.. 어쩌구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고모 아직 반백 안 넘었거든! 딱 반백이거든!! 만으로는 아직 사십대거든!
아무리 발악을 해도 무슨 소용이랴. 문득 오래 전 스물다섯 살 생일에 너도 이제 꺾어진 오십이라며 청춘 다 갔다고 놀려대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맙소사... 꺾어진 오십도 어쩐지 충격적으로 느껴지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하물며 반백. ㅠ.ㅠ
제아무리 백세시대라고는 해도 내가 100살까지 살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간단한 건강설문 사이트 같은데서 계산해본 기대수명도 나는 78세쯤 나왔던 것 같고... ^^; 노후준비가 쉽지 않는 사람들에게 백세시대는 축복이 아니라 확실한 저주다. 대체 몇살까지 일해서 벌어먹고 살라는 것이냐고!
번역을 평생직업으로 삼겠다고 정하면서, 막연하게 세운 계획은 60살까지만 일해서 나름대로 착실히 노후대비를 해 남은 생은 소박하게 놀고 먹어야지 하는 거였다. 정년 없는 직업이라 다행이야 그러면서... 근데 참 이게... 마음대로 되는 인생이 아님을 왜 진작 몰랐을까. 쥐꼬리만한 번역가 연봉 수입으로 꼴랑 60살까지 일해서 대체 2-30년을 어떻게 더 놀고먹겠다는 상상을 했던 것인지!
주변에 백수 됐다고 좀 징징거렸더니, 다들 기다려 봐, 곧 좋은 소식 있겠지 위로하다가도 하반기 접어들었는데 아직 아무 기미가 안보이는 눈치에 나보다도 더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 미안하게스리. 심지어 알바 일도 좀 받았다. ^^; 푼돈이라 안 하겠다고, 들이는 품에 비해 벌이가 션찮다고 몇년 전 딱 거절했던 영상번역 일이다. 잔소리 말고 그거라도 일 하란 말에 얼른 오케이, 고맙다고 수그리고 들어갔다.
다만 그 일이 또 언제까지나 보장되는 건 아니라서... 여전히 생각이 많다. 백세시대를 맞이하야 나름 재미나고 보람있게 절반 살았으니 나머지 절반은 완전히 새로운 인생으로 재설계해야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그렇다면 이 나이에 과연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영화 <인턴>을 뒤늦게 엄청 재미나게 보면서, 막연하게 회사에 재 취업을 꿈꾸기도 하고... (누가 뽑아준다고!)
그렇다면 입시학원 강사나 과외선생 밖엔 길이 없나? (내가 제일 하기 싫어하던 일인데! ㅠ.ㅠ)
셈이 느리고 서비스마인드 부족해서 뽑힐 자신도 없지만 암튼 마트 캐셔 일도 50살 이전에 구해야한다던데...
누군가는 왕비마마 섭생에 힘썼던 경험을 바탕으로 음식 사업을 해보라고 등떠밀기도 하고... (자본이 있어야지! ㅠ.ㅠ 반찬 가게를 하란 말쌈? 아니면... 건강음식 컨설턴트? ㅋㅋ)
조언이랍시고 속 뒤집어놓기 일쑤인 누군가는 이제라도 돈 많은 남편감을 찾아 '혼테크'를 하라며 권하기도 했다.. +_+
으휴.
노희경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때때로 감동하며 봤지만, 그건 막강 배우들의 흠잡을 데 없는 연기와 대사빨 때문이었을 뿐, 내용만 놓고 보면 노년의 판타지라 은근 배알이 꼴리고 부아가 돋았다. 늙고 병들어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어떻게 가난한 노인이 한 명도 없어! 캠핑카 타고 다니며 여행하며 럭셔리하게 보내는 노년이 준비된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ㅠ.ㅠ (물론 폐지주워 생활비, 용돈벌이 해야하는 독거 노인들만 나왔더라면 더 보고싶은 마음이 안들었겠지...)
번역작가로 나오는 고현정은 어떻고! 선배이자 연인이었던 출판사 사장을 든든한 '빽'으로 두긴 했지만 (소형 출판사가 또 그렇게 돈이 많냐고 따지고 들면 끝이 없다. ㅋㅋ) 집과 차는 부자 엄마가 장만해줘서 그렇다 치고, 소설 쓰고 싶다고 마음만 먹으면 곧장 책을 써서 출판이 된다고? 에라이~!
째뜬 요즘 같아선 타임워프 해서 몇년 뒤 나의 미래에 살짝 다녀왔으면 좋겠다 싶다. 커다랗게 허공에 물음표로 떠 있는 나의 인생은 과연 어느 방향으로 훌러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궁금해.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마틴 프리먼 커플(?)이 현대가 아닌 빅토리아시대로 돌아가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 외엔 사전 정보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게 정식 영화가 아니라 BBC의 셜록 시리즈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팬들을 위한 TV 스페셜이란 걸 나 역시 통 모르고 극장엘 갔었다. 아니, 다른 스케줄 때문에 TV 시리즈 찍을 시간도 없는 배우들이 언제 만나서 영화를 찍었담,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물론 나야 고맙지만...
째뜬 영화관을 나오며 "이게 뭐야,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푸념하는 관객도 정말 있다는 걸 내 눈으로 보고서야 인터넷을 좀 뒤져보니 ㅋㅋ 영화도 아닌 걸 영화로 포장해 유료상영을 했다며 욕하는 글들이 눈에 띄었다. 호불호가 완전히 갈린다고.
하기야 BBC 셜록 팬이 아니라면, TV 스페셜이란 걸 모르고 짜임새 있는 영화 한편을 기대했더라면 열깨나 받았을 것도 같다.
1, 2, 3 시즌을 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장면들을 삽입한 이야기와 구성, 시나리오 작가이자 셜록의 형으로 나오는 마크 게티스와 각 인물의 인터뷰까지... ㅋㅋ
<인셉션>이 떠오르는 셜록의 꿈? 무의식 속으로 막 휙휙 시간이동을 하질 않나... 팬이 아니라면 정말이지 불친절하고 산만하기 짝이 없는 구성이다. '유령신부' 사건을 해결하는 에피소드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거의 완전 곁다리고 전체적인 인상은 2016년이 밝았는데도 아직 시즌4를 보지 못하는 팬들을 나름 달래주기 위한 팬서비스랄까?
셜록 팬으로선 이나마도 감지덕지, 그간 가물가물 잊었던 지난 시즌을 돌아보고 그리움도 달래는 좋은 기회였으나, 그래도 이런 걸 영화관에 가서야 볼 수 있다는 건 심히 아쉽다. 이런 떡밥 말고 빨리 시즌4를 내놓으란 말이다! ㅠ.ㅠ
2015년을 깔끔하게 끝낼 생각으로 best 목록 뽑기를 시작했는데 에효... 난데없는 감기기운으로 계속 빌빌대느라 새해 시작되고 나서도 한참 지나도록 마무리를 못했다. 나름 건강관리를 한 덕분인지 이놈의 감기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활약하진 못하고 묵직한 두통과 약간의 콧물로 깔짝깔짝 괴롭히고 있는데, 그게 아주 성가시다. 가을에 일찌감치 독감예방주사를 맞고도 감기몸살로 2주 넘게 끙끙 앓고 계신 왕비마마와 한 공간에 사는 사람치곤 그래도 이만한게 장하다 싶지만... 빌빌대려니 짜증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째뜬 2015년 정리와 함께 감기도 말끔히 떨어지기를!!
2015 책 best 3
줄리언 반스의 <용감한 친구들 1,2>는 읽으면서도 이건 무조건 올해의 베스트야.. 라고 생각했었다. 아서 코난 도일 경과 사무변호사 조지 에들지의 실화를 재구성했다는데 그야말로 치밀하고 흥미진진하다. 추리소설이면서 회고록 같기도 하고, 전기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또 깊은 주제의식과 반전이 있었다. 소설은 통 못 읽고 빌빌대다가 두권짜리 소설을 홀라당 밤새가며 읽게 만든 점 또한 수훈 갑.
세월호 유가족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책을 사놓고도 차마 용기가 안나서 반년 가까이 못읽고 밀어두고 있다가... 기막힌 청문회 뉴스에 다시 분개하며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쳐들었다. 당연히 많이 울었고, 다시 반성했다. 잊지 않겠다고 다들 다짐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무심함과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고 관계자들,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에라도 올해의 책으로 여기저기 투표하고 다녔지만, 그런 정치적인 이유말고도 절절한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폭삭 속았수다>는 11월에 다녀온 제주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선망으로 별점을 좀 과하게 준 면이 없지 않다. ^^; 제주 올레길 소개 이외에도 제주 지역 구석구석에 깃든 주민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고 나도 몇 코스는 꼭 가봐야지 적어두긴 했는데.. 3쇄나 찍은 책치고는 만듦새가 부실한 느낌이 있었다. 오탈자가 꽤 눈에 띄었음. 그래도 제주는 무조건 옳으니까.. ㅠ.ㅠ
2015 영화 best 3
다 개봉작이 아니라 뒷북으로 본 게 많아서 2015년 베스트 영화 셋으로 꼽기엔 좀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고민고민하다 엄선했다. ^^;
<스파이>는 이토록 유쾌 통쾌한 여성 원탑 스파이영화가 또 있을까 싶어서 미련없이 골랐고
<월플라워>는 너무 좋아서 눈물 흘리며 연달아 두번이나 봤으므로,
<아메리칸 셰프>는 엄청 좋았던 건 아니지만 나의 식탐과 요리 본능을 어느정도 충족시켜준데다가 아들 퍼시 역할로 나온 아역배우가 너무 귀여워서!! ㅋㅋ 이 영화 역시 두번 봤다. (마침 케이블에서 또 해주길래...)
p.s. 으악.. 내 정신머리하고는...
본 영화 목록에서부터 <인사이드 아웃>을 홀라당 빠뜨렸다는 걸 좀 전에 컴퓨터 사진 정리하다 깨달았다. ㅠ.ㅠ
나중에 연말에 베스트 뽑을 때 쓰려고 사진도 미리 다운받아놨으면서... ㅠ.ㅠ
아효... 그래서 번외편으로 추가. ^^;
슬퍼할 일이 종종 생겨도 이젠 눈물대신 욕부터 튀어나오는 사나운 아줌마가 되어간다. 그도 아니면 무작정 참거나.. 슬픔과 눈물의 중요성을 애니메이션 한편 보고 다시 깨닫다니 참 나도 단순하지. 째뜬 디즈니와 픽사의 특징이 어우러진 작품이라 좋았음.
2015 드라마 베스트 3
올 상반기에 <풍문으로 들었소>는 거의 본방사수를 할 정도로 열심히 봤던 드라마다. 유준상 특유의 약간 과장된 연기를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 드라마엔 그야말로 딱 맞아떨어지는 듯 했고, 유호정, 고아성, 이준 이외에도 봄이 부모님들, 집사 부부, 비서들, 하다못해 백지연, 장호일까지 정말 허투루 연기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결국 판타지요, 한계도 느껴졌지만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허상을 블랙코미디로 비꼰 시도 또한 좋았음.
<오 나의 귀신님>은 노상 똑같은 역할로만 나오는 것 같아 별로라 느껴졌던 조정석이 좀 쳐져서 그렇지 박보영과 김슬기의 깜찍하고 발랄한 연기랑, 뻔할 것 같은 '빙의' 소재를 미스터리 추리로 풀어나가는 전개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쿡방에 아직 내가 넌덜머리 내기 전이라서 요리하며 벌어지는 로맨스라는 점도 싫진 않았던 듯. 맨날 여자 꼬시려고 남자들이 하는 응큼하고 뻔한 대사가 깜찍한 박보영 입에서 주절주절 나올 땐 어찌나 귀엽던지 ㅋㅋㅋ
나머지 한편은 <응답하라 1988>이다.
전작인 <응답하라 1997>은 좋아라 봤고 연말에 베스트 드라마로 꼽기도 했지만 그 다음<1994> 시리즈는 통 재미가 없었다. 유연석 말고는 배우들도 마음에 안들고... 보다말다 막판엔 최종회를 안보기도 했을 걸. 쓸데없이 호흡이 질질 늘어지고 장면이며 대사며 괜히 길게 멍하니 정지된 듯한 부분이 너무 많고, 뻔한 남편찾기 놀이에 치중하는 게 싫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엔 아예 안 보리라.. 그러고 있었는데 ^^
뜻밖에도 동생네(동생이 88학번이고, 올케가 덕선이 또래니깐)와 조카들이 열혈 시청자가 되더니만. 울집에 와서 하도 드라마 이야기를 하길래 ㅋㅋ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간부터 보다가 아예 첨부터 정주행에 돌입했다.
덕선이, 정팔이. 택이 같은 애들도 귀엽고 별 대사 없이 그냥 눈을 깜박깜박하는 얼굴이 화면에 비추기만 해도 헤벌쭉 웃음이 나는 진주가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난 이 아줌마들 3인방이 너무 웃기다! 특히 치타여사 라미란 최고! ㅋㅋㅋ 신파스러운 가족 이야기인데도 또 그 묘미가 넘친다. 맞아, 그땐 그랬었지 그런 추억돋는 에피소드도 많았고... (물론 내가 마당에 수돗가 있는 집에서 뜨신 물 데워 머리 감고, 이웃집에 반찬이랑 밥 나르며 지내던 시절은 80년대 초였지만...)
하여간에 그닥 본 드라마도 없거니와 이만큼 열심히 등장인물에 애정하며 보는 드라마도 별로 없겠다 싶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냥 베스트 드라마 3에 넣어버렸다. 미친 스케줄로 결방까지 하고, 종영까지 겨우 4회 남았는데... 어차피 덕선이 남편감은 빤한 거고... 라미란 여사의 활약이 계속 기대될 뿐이다. ^^
링크한 대로 전시 구경 다닌 후기는 비교적 매번 소상히 포스팅했지만, 베스트 셋을 뽑는데 한참 걸렸다. 리움미술관의 세밀가귀말고는 다들 조금씩아쉬운 점들이 있어놔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점을 다시한번 느꼈다. 이젠 무조건 기대를 버리고 보러가야겠다. ㅎㅎ
2015 등산 best 3
사진 왼쪽부터...
남양주 운길산(3월)
대구 비슬산(5월)
인제 방태산(10월)
매달 둘째주 토요일마다 단체산행에 열심히 따라다녔지만 개근을 하진 못했다. 북한산 2번, 북악산, 청계산, 수락산, 대모산, 구룡산, 운길산 같은 근교 산행도 좋았지만 역시 인상적인 건 멀리 대절버스 타고 가야하는 높은 산들이었다. 언제고 눈덮인 한라산과, 아무 계절이든 지리산에 갈 날이 있으려나...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2015 지름 best 3
아이폰6
숏커트
북해도 여행
3가지 지름이 이 한장의 사진에 다 담겼다. 삿포로 공원의 가을을 배경으로 숏커트 머리 그림자를 아이폰6로 찍다. ^^;
새로나온 아이폰6s의 성능이 몇 가지 탐나긴 하지만 4년만에 고민고민 개비한 새 휴대폰으로 뭐 이 정도면 만족이다. 아무케나 찍어도 사진도 잘 나오는 것 같고, 시리 기능도 아주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
지름에 숏커트를 넣은 이유는 아마도 수년간 또 이 머리를 고수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주 미용실에 가야하는 건 좀 귀찮지만... 지루하게 단발머리를 왜 그렇게 오래 하고 다녔나 의아할 만큼 짧은 머리가 가뿐하고 아주 좋으다. ㅎㅎ
얼결에 친구따라 떠난 여행이긴 해도, 허리까지 높이로 쌓인다는 삿포로의 눈을 못보긴 했어도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11월은 여행의 달이었다. 어쩐지 만만해서 자주 가게 되는 일본은 이제 오사카랑 오키나와만 가면 저 북쪽부터 남쪽까지 얼추 다 일본을 섭렵하는 듯한 느낌. 2016년에는 또 좀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2015 Worst 3
수락산 낙오. 포스팅도 했다시피 나 혼자만의 실수는 아니지만 우길 땐 우겨야한다는 것,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땐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때 당황해서 길 같지도 않은 길로 숲을 헤치고 걷다가 나뭇가지에 찔린 팔엔 영구히 흉터가 남았다.... ㅠ.ㅠ
신사동에서 길을 잃다. 11월에 한국 다니러 온 친구와 언니들의 서울 숙소가 강남 신사역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주로 국내외 여행을 다니느라 며칠 묵진 않았지만 암튼... 서울 관광이 좀 일찍 끝난 어느날 저녁, 부른 배도 꺼뜨릴 겸 한강 둔치로 밤산책을 나갔었다. 마음 같아선 한강변 야경을 보며 세빛둥둥섬까지 쭉 갔다 올 생각이었는데....(너무 멀다 그러면 올 땐 택시타지 뭐.. 그럼서) ㅋㅋ 노상 차만 타고 다니시는 LA 사모님들은 신사동에서 한강 둔치까지 걸어간 것만으로도 버거워했다. 갈 땐 누구한테 묻지도 않고 요리조리 굴다리를 지나 잘만 찾아갔는데... 돌아올 땐 방향감각 뛰어나다고 믿고 아파트 단지로 질러가려다가... 신사동 잠원동을 뺑뺑 돌며 헤매다... 주민들에게 신사역 방향이 어딘가요.. 몇번이나 물은 끝에 겨우 엉뚱한 반대 길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아..산속도 아니고 서울 한폭판에서... 개망신. 다시는 어디가서 방향감각 자랑하지 않겠다!
토지 소송. 어찌저찌해서 토지 분할권인가 뭔가 하는 문제로 집에 소송이 걸렸다. 아주 오래전 우리 집을 지어 팔면서 땅주인이 나중에 재건축을 예상하고 토지 일부를 분할 소유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럼 불법 알박기 아닌가?) 몇년 전 대규모 재건축 가능성이 완전 사라지자 뜬금없이 그 땅을 우리 더러 구매하라는 내용증명이 왔었다.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그래서 그냥 개무시하고 말았는데.. 어느날 문득 법원 소송장이 날아왔다. 젠장... 그마저도 난 이리저리 좀 알아보고 법원에 온라인으로 몇가지 서류제출하면 당연히 (상식적으로) 우리가 유리하고 가뿐하게 판사의 조정을 거쳐 승소할 거라 믿었는데... ㅋㅋ 법은 역시 어려운 것. 놀랍게도 무조건 우리가 지는 소송이란다. ㅠ.ㅠ 결국 부동산 전문 변호사 소개받고 상담받은 결과, 형식적으로는 질 수밖에 없지만 내용상으로 이기는(?) 전술을 펼쳐야한다고...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 피같은 쌩돈 입금하고서도 소송끝날 때까지 몇년은(빨라야 1년?) 집 팔기 글렀다. 내 잘못도 아니고 뜻밖의 재앙이긴 하지만, 웃기는 건 변호사가 소송서류 제출한 다음주엔가 몇년 째 아무 소식 없던 부동산에서 돌연 집보러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아오 정말 인생은 아니러니하다!
2015년은...
나의 번역인생 20주년이라는 이유로 뭔가 자꾸 되돌아보고 정리하고, 장기적으로 미래를 계획해두어야할 것만 같은 한해였다. 그러나 그건 괜히 조바심만 쳤다는 뜻일뿐 실제로는 그냥 다른 해와 똑같이 방만하게 보냈고, 드디어 실질적인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정확히 첫 번역서가 나온지 만 20년만인 12월 10일 현재, 완전 허당 백수가 아니었을 기뻐해야하겠으나 2016년 전망이 그리 밝지 않기에 실제론 이미 벌벌 떨고 있다.
홀로 꿈꾸던 프리랜서 근속파티(?)는 25주년에나 하기로... 5년이란 유예기간을 정했지만, 당장 올 한해도 불투명한 마당에 2020년의 내 모습은 도무지 상상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버텨보는 수밖에. 다만 부디 다시 좀 성실해져야겠다! 아쉬운 소리도 좀 하고.. ㅠ.ㅠ 그러니깐 2016년의 목표는, 한해 정리 포스팅에 반성, 한심해 따위의 태그 없이 약간이나마 희망의 서광 같은 분위기를 띄우는 것으로 정해야겠다. 일단 코앞의 일에 집중하면서.
요샌 통 챙겨보는 드라마가 없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정붙이고 볼만한 드라마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 케이블 방송에서 꽤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들도 하나도 못/안봤다. 일단은 다운로드족이 아니라서 몰아보기도 못하고, 내 방엔 케이블이 골고루 안나오고.. 그렇다고 시간 맞춰 본방이나 재방을 볼 부지런함은 앞으로도 영영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뭐가 이렇게 다 귀찮고 시큰둥한지 원...
하여간 그런데도 가끔씩 엄니 따라서 보는 드라마가 있으니 <참 좋은 시절>과 <기분 좋은 날>이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주말드라마로군. 공중파 주말드라마의 특징은 몇주 안보다가 보아도 내용 이해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는 점인 것 같다. <기분 좋은 날>의 경우 일요일엔 <개그 콘서트>에 밀려서 안보는 날이 많은데도 등장인물 관계를 다 알겠으니 원... 암튼 KBS 주말 연속극은 울 엄마의 경우 어떤 내용이든, 배우가 누구든 아무런 상관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틀어놓고 보신다.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되면 적응 못해서 한달 쯤은 고생을 하면서도 딴데로는 채널이 절대 안 돌아간다! 어휴... 참 놀라운 충성심이라고 해야할지.
<참 좋은 시절>의 경우 이서진이 주인공인데, 엄마도 나도 <꽃보다 할배>로 뜬 투덜이 서지니에 대한 인상이 좋아서 참고 보려다가 한참을 괴로워했었다. 울 엄마 왈, 이서진은 <꽃보다 할배> 때가 백배 낫단다. 드라마에선 하도 무게를 잡고 인상을 써대서 늙은 아저씨 같다고... 여주인공이랑 안어울린다나. (심지어 이서진은 노총각이고 김희선은 애엄마인데도! ㅋㅋ) 그럼에도 울 엄마가 인내심을 갖고 그 드라마를 보는 건 맛깔스러운 사투리를 쓰는 귀여운 애들(동원이 동주) 덕분이 칠할 쯤 되는 것 같고, 나머지는 본처인 장소심 여사(윤여정)과 첩 하영춘 여사(최화정)의 관계가 아닐까 대충 짐작하고 있다.
바람둥이 남편이 오래 전 나몰라라 내팽개친 집안을 일구며 시아버지에 쌍둥이 시동생에, 배다른 막내아들에, 또 그 막내아들이 고딩때 사고쳐서 낳은 쌍둥이 손주들까지 호적에 자식으로 올려 보살핀 '보살' 같은 사람이 바로 장소심 여사(윤여정)인데, 첩인 하영춘(최화정)과의 애틋한 관계는 거의 놀라울 지경이다. 십수년간 남편 없는 집에서(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둘이 한 방을 쓰며 자매처럼 모녀처럼 지냈을 정도.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바람둥이 남편이 있는 집안이거나 불임의 문제로 후처를 들인 경우 형님, 아우 해가면서 본처와 후처가 한 집에서 오손도손 사는 일이 옛날엔 꽤 많았단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외갓집이 그랬다니 뭐 말 다했지...
내가 울 엄마의 친할머니, 그러니깐 증조 외할머니이신 '송씨' 할머니의 모습을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반해, 울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에도 떡하니 한복 입고 가족사진에 찍힌 울 엄마의 '큰엄마'에 대해서는 통 기억이 없다. 그분이 증조외할머니보다 일찍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암튼 울 외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남매를 키우던 중, 살림 해주러 일 다니던 같은 동네의 어느 집에 아들을 낳아주러 후처로 들어가게 된다. (해방 직후 일본에서 고향 가는 배를 탔다는 남편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으니, 가족 부양의 의무는 계속 외할머니 몫이었다...)
딸 하나만 낳고서 계속 아이를 낳지 못해 대가 끊기게 생긴 그 하씨 집에, 외할머니는 아들 둘 딸 하나를 더 낳아주었고 본처와 후처는 나란히 한 집에서 애들을 건사하고 키웠다. 원래 있던 두 아이(울 엄마와 큰외삼촌)도 바로 윗집에 살면서 잠만 따로 잤지, 밥은 다같이 먹었다는 것 같다. 울 외할머니에겐 시어머니가 되는 송씨 할머니가 건재하셨기에 집까지 다 합치진 못했던 듯... 암튼 그러다 하씨 할아버지도 일찍 세상을 떴으니... 남은 건 우글우글 여자들과 올망졸망한 애들뿐.
드라마 속 장소심 여사와 하영춘 여사처럼 울 외할머니와 본처 할머니는 오손도손 같이 살며 애들을 함께 키웠대고, 동네에 작은 절을 지어 바칠 만큼 돈이 꽤나 많고 살림살이 규모도 컸다는 하씨네 집안일을 같이 돌봤다고 한다. 울 엄마는 하씨네 본처 아줌마를 큰엄마라고 불렀던 반면, 울 외할머니가 낳은 하씨네 자식들은 본처를 그냥 엄마, 낳아주신 생모인 울 외할머니를 '작은엄마'라고 불렀단다. 그러니깐 울 외할머니 역할이 최화정이란 말쌈. +_+ 일반적으로 남편이 바람기가 많은 오입쟁이라 후처를 들이는 경우 본처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지만, 본처가 아들을 낳지 못해 스스로 아들 낳아줄 후처를 주선하는 경우엔 사이가 좋은 경우가 더러 있단다. (아무리 그래도 참 놀랍다! 곤경에 처한 여자들의 동지애, 자매애는 어디까지 가능하단 얘긴가...)
째뜬 울 외할머니는 평생 그 하씨 집안 호적에 오른 적 없이 그냥 대를 이어준 첩으로만 사신 분이다. 생계 때문이긴 하지만 이씨 성을 가진 두 자식을 데리고 정식으로 개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가 낳은 하씨네 자식들에게 법적인 어머니 노릇도 할 수 없는 정말 딱한 처지에서 두집 자식들에게 모두 죄스러워하며 사신 것 같다. 체력이며 목청이며 천성은 카리스마 넘치는 여장부인데, 자식들에게는 늘 전전긍긍...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본인이 낳지 않은 하씨네 큰딸까지 하나같이 죽어라 속들을 썩여대는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고 김치 담가 나르고 사고치면 뒷수습하고... 그러셨다. (젤 멀쩡한 자식인 울 엄마만 해도 걸핏하면 우울증이 도졌으니 뭐;;) 하여간에 울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울 외할머니와 '큰엄마'의 사이는 몹시 좋았고, 첩이 낳은 아이들도 다 엄청 예뻐했단다. 대를 잇게 된 두 아들 뿐만 아니라 막내딸까지도 주로 업어 기른 사람이 '큰엄마'였다나.본처 입장에서 볼 때 울 외할머니가 자신의 법적인 지위를 위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배다른 자식들을 예뻐하다 못해, 엄연히 따지면 남남인 울 엄마와 큰외삼촌까지 잘해줬다는 걸 보면 본처나 후처나 두 양반 성품이 워낙 착했던 것 같다. 심지어 내가 태어났을 때도 그 '큰엄마'라는 양반이 아기 손가락 하나만 붙잡고 예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우리 외갓집의 경우 남편의 이른 사망으로 본처와 후처간의 사이가 더욱 돈독해지고 자매처럼 서로 의지하며 집안을 일구었다면, 드라마 <참 좋은 날>의 상황은 훨씬 복잡하다. 수십년간 집밖으로 떠돌던 바람둥이 남편(김영철)이 돌아온 것! 당연히 두 여자의 공분과 미움을 살 수밖에 없고, 울 엄마 역시 그들에게 공감하며 김영철 아저씨를 엄청 욕하며 드라마를 보고있다. 저런 남편은 없는 게 낫지.. 라면서. 최근 이야기는 돌아온 남편 때문에 결국 첩이었던 하영춘이 집을 나갔고, 다들 늘그막에 노부부가 행복한 재결합을 하나보다 짐작하지만 장소심 여사가 이혼 카드를 내밀며 파란이 인다. 평생 희생하며 산 아줌니가 엄마 노릇 지긋지긋하다고 집을 나가겠다니 원...
드라마에선 본처의 이야기지만 장소심 여사의 희생으로 점철된 인생을 보면 나는 울 외할머니의 삶이 떠오른다. 본처도 일찍 죽고 결국 모든 집안 건사와 자식 교육의 책임은 울 외할머니의 어깨에 떨어졌다. (울 부모님 결혼식 사진 속의 하씨 형제들은 모두 까까머리에 까만 교복 차림이다.) 외할머니는 86세까지 장수하셨고, 계속 꽤 큰 살림 규모를 유지했지만, 본인 명의로는 그 어떤 재산도 남아있지 않았더랬다. 미리미리 죄다 자식들 공동명의로 해놓았는데도 또 그 지분을 놓고 하씨네 자손들은 장례 끝나기 무섭게 박터지게 싸움을 해대고... 윤여정이 이혼선언과 함께 가출 결심을 밝히면서, 엄마 노릇이 지긋지긋해서 이제 관두겠다고 하는데 내가 막 공감이 됐다. 아오.. 안봐도 비디오지... 얼마전까지 대소변 받아내야 하는 시아버지 봉양도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아무튼 하도 설정이 신파스럽고 구식이라 8,90년대가 배경인 줄 알았던 드라마는 요즘 이야기였다. ㅋㅋ 울 엄마 세대 이야기도 아니고 무려 울 할머니 세대에나 있었던 일들을 소재로 삼았으니 당연히 인기가 없지 싶지만, 암튼 나와 울 엄마는 주말 저녁 밥먹고 나서 잠시 쉬는 동안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답답한 구세대 드라마를 계속 보지 않을까 싶다. 울 외할머니의 인생은 일제 강점기에 남편과 이별한 이후 단 한순간도 아름답게 피어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과연 장소심 여사와 하영춘 여사에겐 참 좋은 시절이 오긴 오려나.. 그러면서.
2006년부터 블로그를 시작한 뒤로 처음 몇해는 정리할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이젠 한해를 정리하는 포스팅을 하지 않으면 깔끔하게 일년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 같은 미진한 느낌이 들 지경이다. 우선은 여기 적어두고 돌아보며 홀로 흐뭇해하려는 목적이 크다 해도, 이웃들의 베스트 목록과 비교해보는 쏠쏠한 묘미 또한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말부터 어서 해야지 해야지 마음먹고 시작은 했으되 새해 들어 열흘이 넘도록 또 차일피일 마무리를 미루고만 있는 건 곤란하다. 덜 망설이고 덜 미루겠다는 새해결심을 했으면 한달은 좀 지켜야하지 않겠니, 하는 마음도 있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나의 2012년은 너무도 성취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한 해로 남을 것 같아 두렵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내 소식이 궁금하면 인터넷 서점에 내 이름을 쳐 근황을 확인한다는 이들이 더러 있는데 작년엔 내내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요새 일 안해요? 새로 나온 책이 없네... 그들의 물음에 대답하기가 나도 부끄러웠다. 2012년엔 정말로 내 이름을 옮긴이로 달고 나온 책이 딱 '한권' 출간되었다. 출판불황을 탓하기엔 나의 나태함이 제공한 이유가 너무도 커서 얼굴이 뜨거울 지경이다. 1년에 번역 한권 하고도 거뜬히 먹고 살만한 수입이 되는 처지도 아니면서 이 무슨 행태인지! -_-;
어쨌거나 2012년 한해 내내 이런 게 최고로 좋았다는 시답잖은 목록이라도 뽑아 놓고 지난 삶의 의미를 찾아볼 요량이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독후감도 올렸었겠다, 확실히 뽑아놓고 나머지 두권을 놓고 오래도록 고민했다. 읽을 땐 베스트 후보로 꼽았던 책들이 있었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그 느낌이 다 너무도 흐려지는 바람에... ㅠ.ㅠ
결국 공책에 인용문을 가장 많이 베껴놓은 책들 가운데 글귀들을 새삼 다시 읽어보며 어렵사리 고른 것이 <희망>과 <지구를 부탁해>다. 영화 <레미제라블> 때문에 요즘 <레미제라블> 완역본이 출판사별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데, <희망>에 들어있는 어느 에세이에도 선생이 감옥에서 다시 <레미제라블>을 읽으며 빅토르 위고에 대한 감사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나도 따라 읽고 싶어졌었는데, 영화까지 보고나니...
5권이라니 겁이 좀 나긴 하지만 지난 가을부터 생겨난 소설 기피증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도전해볼까 하는 중이다.
<지구를 부탁해>는 아무래도 연말에 읽은 책이라 기억이 생생한 덕을 많이 봤고, 막연한 과학 공부에 대한 선망까지 더해져 뽑힌 듯. ㅋㅋ
베스트 영화도 마지막 한 편 때문에 몹시도 어려웠다. <레미제라블>을 연말에 봤어야 고민없이 골랐을 텐데! 으휴...
<미드나잇 인 파리>는 시종일관 깔깔거리게 재미를 주면서도 강요하지 않는 감동이랄까 뭔가 찡하고 짠한 느낌까지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였다.
<말하는 건축가>는 정기용 건축가의 인간적인 매력도 크게 작용했지만 다큐멘터리 영화 자체의 아름다움과 완성도가 뛰어났기 때문에 빛을 발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게 연출의 힘이겠지?
<광해>는 재미있게 봤으면서도 대종상을 부문별로 죄다 휩쓸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베스트로 뽑기가 살짝 망설여졌다. 이유가 뭘까나... 그간 이병헌을 괜히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피하는 편이었는데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죽 안보다가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 마지막이었던 듯;;) 이 영화 보고 앞으론 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연기가 정말.. 물이 올랐다고밖엔;;
광해 대신 <파수꾼>을 넣을까도 생각했지만 연초에 뒷북으로 본 영화라 보고나서의 충격적 느낌이 많이 사라진 탓에 막판에 밀렸다. 2012년엔 이래저래 개봉작도, 아닌 것도 꽤 많이 봤다. <두개의 문>을 보고나서 포스팅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다보니 계속 밀려 이후론 영화 본 기록도 제대로 안남겼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랑 <007 스카이폴> 모두 한물 가고 잊혀진 노장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게 흥미로워서 비교 포스팅을 시작은 했었는데;; 결국 마무리가 안 되서 흐지부지... 이참에 영화 제목이라도 적어놓아야겠다.
건축학개론 / 가을소나타 / 버니드롭 / 말하는 건축가 / 두개의 문 / 도둑들 / 미드나잇 인 파리 / 하와이언 레시피 / 광해 / 늑대소년 / 다크나이트 라이즈/ 007 스카이폴 / 아워이디엇브라더 / 26년 / 킹스 스피치 / 헬로 고스트 / 파수꾼 / 옥희의 영화 / 북촌방향 / 풍산개 / 진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 자전거 탄 소년 / 대지진 / 시라노 연애조작단 / 맨인블랙 3
3. 2012년 최고의 드라마 3
BBC 셜록 시즌2
응답라하 1997
추적자
2012년에는 드라마를 별로 챙겨보지 않았다. 애정을 담아서 참아가며 봐줄 수 있는 드라마가 좀체 있어야 말이지! 미드, 일드를 찾아서 다운 받아 보는 부지런함은 원래도 없었으니;;;
째뜬 2012년이 시작되자마자 후딱 3편 방영하고 끝나버린 셜록 시즌2를 이리보고 저리 또 보고 케이블에서 찾아보며 상반기를 버텼던 것 같다.
그러다 후반기에 만난 대박 드라마 두 편이 <응답하라 1997>과 <추적자>. <추적자>는 불편해서 과연 볼 수 있을까 염려하며 보다말다 했었는데, 법도 공권력도 통하지 않는 이 나라의 정의에 대해서 조목조목 참 잘도 비판하고 있는데다 부모의 심정을 절절하게도 그렸다 싶어서 나중엔 크고 작은 드라마상의 헛점 따위는 눈감아주면서 응원했다. 연말에 손현주 씨가 상도 타서 어찌나 기뻤는지.
<추적자>가 끝나고 또 정붙일 드라마가 없어 방황하던 끝에 sns에서 하도 응칠, 응칠 하길래 본방 다 끝날무렵 불이 붙어 정주행하느라 아주 행복했다. 1997년이면 나도 한참 하이텔, 천리안 동호회 활동으로 밤을 설칠 때라 아이돌 팬덤에 대해선 전혀 모르면서도 그 시절 노래와 추억에 흠뻑 젖어들 수 있었다. 게다가 어찌나 시나리오며 소품이며 구성이 치밀한지 쫀쫀하기가 이를 데 없고, 캐릭터 하나하나도 허투로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는데다, 호기심과 궁금함을 어떻게 그토록 끝까지 이어가며 퍼즐 맞추기를 하는지... 내래이션 대사들도 '주옥' 같아서 적어놓은 게 꽤 된다. ^^;
2012년엔 선망하던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에 3일권을 끊어 실제로 갔었다는 것이 스스로도 놀라운 쾌거였다. 라인업으로는 펜타포트가 더 멋진 것 같기도 했지만, 뭐니뭐니해도 <라디오헤드> 공연을 직접 보다니! 현란한 꽃무늬 조명을 배경으로 몽롱한 분위기에서 연신 오징어춤을 추어대던 톰 요크를 비롯해 라디오 헤드의 연주와 노래를 세시간 넘게 원없이 볼 수 있었으니 무얼 더 바라랴. 더구나 낮부터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쉴새없이 밴드를 따라 이동하며 공연을 본다는 문화 자체가 신기하기도 하고... 더 나이들기 전에(?) 가본 게 장하다 싶다. 과연 다시 갈 엄두를 낼 수 있을지는 모를 일...
어쨌거나 십수년째 활동중인 관록있는 노장 밴드에 환호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며 어쩐지 가슴이 찡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한겨울에 본 스팅 공연 때도 관객층이 지난번보다 훨씬 젊어졌다는 게 새삼 뿌듯했던 것 같다. 체력 딸려서 록페스티벌 같은데 따라다니는 건 좀 무리일 것 같지만, 어쨌거나 좋은 밴드와 가수들의 내한공연이 계속해서 풍성하면 좋겠다.
포스팅을 못했지만 실로 크리스마스 이브엔 절대로 방콕을 고수하던 내가 십수년만에 옆구리를 찔려 <스윗소로우> 공연을 보러갔었다. ^^ 고려대 화정체육관 8천석을 다 채운 관객이 새삼 놀라울 정도였는데, 내년에도 옆구리를 찌르면 또 갈 순 있겠다고 생각이 들만큼 재미도 있고 노래들도 좋았으나, 저렴한 2층 좌석 탓에 음향이 '너무도 심하게' 나빴다. 가사가 하나도 안들려! ㅠ.ㅠ 스티브 잡스 패러디 해서 멤버 근황 소개하는 코너랑 수면양말 뭉쳐서 눈싸움 하는 아이디어는 기발하다 할 수 있었지만 진행이 너무 늘어지고 시간도 길다보니 나로선 지루했다. 1층 플로어석에서 멤버들을 코앞에서 보며 양말 던지고 놀았으면 안 지루했으려나? 째뜬 2층 관객들은 불우이웃돕기 기부한다는데도 입구에서 무료로 나눠주었던 수면양말을 기념으로 가져갈 생각인지 던지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특히 내 주변엔 참여도 꽝! (나의 일행도 기념품 양말 챙겨가겠다고 꺼내지도 않았음) 나 혼자 양말 뭉쳐 던지며 체력장 공던지기 생각나서 킬킬댔었다.
아무튼 똑같이 가장 저렴한 꼭대기 관객석에서 보았으되 음향 면에서도 뛰어났고 공연 자체의 감동도 강렬했으므로 베스트 공연 세번째 자리는 강수진의 <까멜리아 레이디>가 차지했다. 무척이나 오랜만에 드물게 보는 발레 공연이었다는 것도 가산점.
고르고자시고 할 것도 없이 전시라곤 달랑 이 셋을 봤나보다. 그래도 연초에 적어놓은 목록 중에서 놓치지 말아야지 결심했던 전시를 놓치지 않았다는 데 의의를 두어야;;; ㅠ.ㅠ
자세한 건 포스팅 링크로 대체하련다.
6. 2012년 인상적인 일들
-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에 3일권까지 끊어서 이틀'이나' 구경다닌 사건. 그 더운 날씨에 모여든 수많은 인파도 놀라웠고,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별이 총총한 밤하늘 올려다보며 산을 넘어다니다 모기에게 왕창 뜯겨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까지 모두가 오래 남을 '사건'인듯;;
- LA 친구랑 일본, 안동, 부산 여행. 특히나 작고 아담한 온천 료칸, 깔끔한 한옥, 바다 보이는 찜질방에서 모두 자 본 경험! ㅋㅋ
- 번역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대학생 후배들에게 강연료씩이나 받고 이야기했던 일. 지금 생각해도 오그라든다 ㅠ.ㅠ
7. 2012년 최고의 득템 3
방구석에서 뒹굴뒹굴 게으름 부리며 방황하며 주로 보낸 한해라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딱히 질러댄 물건이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저 필요한 옷가지와 신발을 엄선해서 사들인 정도. 그에 반해 생일을 빌미로 '받아낸' 물건에는 아직까지도 득템의 흐뭇함이 가시지 않은 게 있다.
첫번째는 캐스 키드슨 배낭. 북촌 구경갔던 날 삼청동 초입에 난데없이 생겨난 매장을 보고 동네랑 참 안어울린다고 툴툴대며 구경 들어갔다가 이 땡땡이 배낭을 발견했다. '땡땡이 마니아로 알려진 파피가 좋아하겠다'는 것이 처음 든 생각이었는데 신상이라 세일 안한다는 말을 듣고 어깨에 한번 걸쳐보자마자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크기도 넉넉하니 딱 내가 원하던 쓰임새의 배낭이 아닌가. ㅋㅋㅋ 거의 1분만에 생일선물로 사달라고 요구했다.
안동, 부산 여행때 몹시도 요긴하게 쓰였고, 요즘 궁궐 공부하러 다닐 때도 완전 애용하고 있다.
두번째는 스누피만화 박스세트!
절판된 50년대 세트부터 모으진 못했지만 ㅠ.ㅠ 67년부터 82년까지 장만해놓고 여름부터 틈틈이 즐겨보고 있다. 독서목록에 이것도 포함시킬까 약간 고민했었는데 관뒀다. 이건 읽는 책이 아니라 감상하는 책이여~ 이러면서...
다른 세트들도 여기 저기 사이트를 기웃거리며 호시탐탐 노리는 중이다.
세번째는 생일선물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고 얻은 물건이라 좀 민망하지만, 큰동생네서 쓰던 장식장을 물려받았다. 할머니가 쓰시던 낡은 화장대를 차마 못 버리고 망가지도록 쓰면서 이사가면 새로 사야지.. 라고만 생각하다가 동생네서 장식장 개비한다기에 얼른 좋아라 가져온 뒤 내다버렸다. 화장대 거울도 색깔 맞춰 페인트 사다가 진밤색으로 칠하고;;; 앞으로 또 10년은 너끈히 쓸듯. ;-p
7. 2012년 WORST 3
2건의 계약 파기. 2012년의 워스트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쓰신 이웃도 있던데 나도 따라 그렇게 쓰고만 싶다. '신용'이란 말을 언급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출판사를 오래오래 괴롭히다 심지어는 먹튀 버금가는 짓을 저지른 셈이 되었다. (계약금은 돌려줬으니 먹튀는 아니겠;;...) 블랙리스트에 올랐어도 할 말이 없다. 부디 정신차리는 계기가 되기를.
안동 여행 때 운전했던 친구. 시작부터 실망시키더니 어쩜 끝까지... 82년에 만났으니 딱 30년 만에 드디어 친구로서 제명하기로 결심했다. 생각해보니 새삼 그 옛날 삐삐도 없던 시절 셀수없이 바람 맞은 사실이 왜 그리도 열뻗치는지! 뒤끝작렬. 전화번호는 지우지 않았다. 피할래도 알아야 피할 수 있으니까...
게으름 뒷설거지 하느라 연말연시는 늘 쫓기듯 바쁘지만 그래도 노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한해 정리 포스팅을 하려면 못할 것도 없었는데 차일피일 미룬 이유는 우유부단한 속성 탓에 좀체 항목별로 셋을 뽑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_-; 마음에 꼭 드는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도, 베스트 사유를 쓰는 것도 은근히 시간 많이 걸리는 일이라 스스로 찔리기도 했다. 하지만 또 그런 모든 난관을 무릅쓰고 또 이렇게 얼렁뚱땅 하고만다. 2011 베스트 포스팅. ㅋㅋ
1. 2011 베스트 책
책 목록에서 인상 깊었던 걸로만 색을 달리해두고도 꽤나 뽑기 어려웠다. 결국 독서노트를 뒤져 가장 인용문을 많이 적어둔 책을 보니 얼추 세권의 윤곽이 드러났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용경식 옮김/문학동네
의외로 남들이 다 읽은 책을 하도 안 읽은 게 많아, 이 책 또한 안 읽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었다. 주인공 모모가 낯익은 건 순전히 <모모>와 동명이인이기 때문일 거라고. 그런데 중간쯤 하밀 할아버지와 로자 아줌마가 결국 어떻게 어떻게 될 것인지, 모모의 반전 비밀이 뭔지 다 기억이 났다. 아마도 대학 다닐 때 쯤 읽었던가. 그런데도 폭풍 감동에 눈물을 훔치며 읽었다.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다.
수많은 구절을 적어놓아 대체 뭘 인용할까 또 고민스럽다. 그래도 대강 골라 적자면...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 p95
"그녀는 정해진 법 때문에 자기 뜻대로 죽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할 적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법이란 지켜야 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p113-114
" <식스펜스 하우스>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양철북
킥킥대고 책을 읽고 나서 감동후기를 올릴까 하다가, 블루고비가 옮긴 책이라 또 다시 팔이 안으로 굽는 주례사후기(?)로 오인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관뒀었다. 특유의 유머와 집요함, 박식함이 넘치지 않게 어우러진 폴 콜린스의 글쓰기 묘미에 나도 빠져든 것 같은 데다, '책들의 종착지'라는 헌책 마을 웨일스 헤이온와이에 무작정 살려고 갔던 지은이의 좌충우돌 체험기라 소재부터 흥미진진했다. 헤이온와이를 책마을로 만든 장본인인 리처드 부스 할아버지가 작년 무슨 도서전에 한국에도 왔던데 구경갈까 하다 관뒀을 정도. 책의 가치에 대해서, 어쩌면 운명이 비슷한 인생에 대해서 소소한 생각거리를 주는 책이다.
"책을 썼다는 사실에는 참 희한하고도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책은 읽히기도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생명력이 질겨서 대개의 경우 작가보다 오래 남는다." - p168.
"원래 작가라는 일이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 p254
<연민>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이온화 옮김/지식의숲
다른 주민들의 책 베스트에도 많이 보이는 책을 나도 꼽았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지독한 감정'이라는 부제에 모든 단서가 담겨있다. 나 역시 <광기와 우연의 역사> 밖엔 읽은 적이 없어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이 이토록 맛깔스러울 줄 짐작도 못했다. ^^; 다른 책도 찾아 올해 '몰아읽기' 할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그저 어린아이가 우표를 수집하듯 열심히 친구를 모으고, 모은 표본(친구)들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말하자면 태생적으로 거리낌이라곤 없는 사람에 속했다." - p9
"반만 행한 일과 반만 내뱉은 암시는 언제나 악의 원인이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은 어중간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 p123
"사람은 아무리 나쁜 규율일지라도 그것이 옆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면 곧바로 가볍게 느끼기 때문이다. 정의는 신비롭게도 폭력에도 적용된다." -p404
흐이구... 책 읽자마자 리뷰를 올렸으면 간단히 끝낼 수 있었을 것을... 아주 베스트 뽑으며 리뷰 올릴 기세다. +_+
적어둔 인용문이 거의 길어서 짧은 것 중에 골라 옮겨 적으려니 안타깝다.
2. 2011 베스트 영화 비기너스
천국의 속삭임
주노
이탈리아 영화 <천국의 속삭임>(역시나 애들이 주인공인 영화 좋다! 게다가 음향감독의 실화라니 더욱 감동;;)은 연초에 봤는데도 기억에 오래 남아 단연 베스트 후보였고 연말에 본 <비기너스>(시작하는 연인들, 유안 맥그리거와 멜라니 로랑의 만남도 좋았지만, 일흔다섯 병든 아버지의 설레는 사랑 또한 눈물겹게 흐뭇했다. 소소한 소품과 배경도 딱 내 취향)또한 보자마자 베스트 후보임을 실감했다. 나머지 하나를 뽑는데 살짝 고민을 하긴 했으나, 역시 뒷북으로 본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과 <주노>(개성 넘치는 주인공 주노의 선택과 식상하지 않은 이야기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주노 새엄마는 <웨스트 윙>의 CJ였어! ㅎ 좋아하는 캐릭터였는데;; <If you're in, I'm still in>이라고 주노가 광고지에 적어준 쪽지를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는 마지막 장면까지 흡족~) 가운데 유쾌한 영화를 골랐다. <파니 핑크>를 만들기도 한 도리스 되리 감독을 좋아하지만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슬퍼서 또 보려면 가슴 아플 듯.
3. 2011 베스트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최고의 사랑
공주의 남자
압도적인 1위이자 군말없는 올 최고의 드라마였던 <뿌리깊은 나무>를 억지로 꼽은 나머지 둘과 같이 올릴 수야 없지. ㅋ
3회였나, 4회부터 보다가 완전 빠져들어 앞부분 재방송 찾아본 뒤엔 거의 본방사수 하려고 노력했다.
별로 닮지 않았음에도 송중기에서 한석규로 이어지는 이도 세종역할의 전환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니! 송중기도 다시 봤고 한석규한테는 정말 감탄했다. 극의 짜임새며 구구절절 가슴을 후벼파는 대본이며, 주조연의 연기(진정 충신 무휼과 조말생 대감까지!)며... 피칠갑을 했던 마지막회가 좀 보기 힘들었던 것만 빼면 거의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한가놈의 마지막 반전까지 숨겨놓은 작가들 정말 존경스럽다. +_+
"임금의 마음이 지옥이지 않은 태평성대가 어디 있더냐"고 했던가, 가슴을 쿡쿡 후비는 감탄스러운 대사가 매회 툭툭 쏟아졌는데 그때그때 적어놓지 않아 다 까먹었다. 밀본 정기준과의 마지막 대면에서 세종이 "백성은 속아도 되고 지더라도 괜찮다. 또 싸우면 된다"고 했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사극 보면서 어쩜 그리도 요즘 정치 세태를 떠올리게 만드는 대사가 많던지. 드라마 보다 말고, 그래, 속아서 대통령 뽑은 사람들도 대선 총선에서 또 싸워주면 된다고 중얼거리고 앉았었다. 참 놀라운 드라마 아닌가!?
두번째는 <최고의 사랑>인데 가나다순으로 사진이 밀렸;;다. ㅋ 후반부로 가면서 재미와 관심도 점점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구애정과 독고진, 띵똥 보는 재미에 끝까지 의리를 지키며 봤던 드라마다. 공효진을 원래 좋아했지만 연기에도 묻어나는 듯한 매력이 궁금해서 책(공효진의 <공책>)까지 사봤으니 뭐 말 다했지. 책 편집과 만듦새는 참 엉망이라는 걸 알고 봤음에도 공효진이 전하려는 환경 메시지와 생각은 마음에 들었다. 공효진의 다음 작품 기대중.
<공주의 남자>는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한정적인 얼개 탓인지 중반 이후에는 거의 재방송을 보는 것 같은 상황의 반복이라 차츰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특별히 베스트에 넣어주었다. 세령 역의 문채원의 연기력이 좋아지는 과정을 응원하며 보던 생각도 나고(한복이 참 잘 어울렸던 <바람의 화원> 때부터 팬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선 마음에 안드는 한복이 너무 많았음! 특히 그네탈 때 입었던 것.. 으으), 김종서와 수양대군을 연기한 중장년배우(이순재/김영철)도 좋았다. 울먹이며 "우리 삼촌이 맞습니까?" 묻던 아강이 역할의 김유빈은 최고였고! <뿌리깊은 나무> 마지막회에서 한가놈의 정체가 드러난 뒤 성삼문, 박팽년과 스쳐지나는 장면을 보며, 먼저 방영한 이 드라마에서 본 사육신 참살 과정이 떠올랐던 것도 베스트 선정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
그러고 보니 사극 잘 안보는데 베스트에 둘이나 뽑혔고, 외국 드라마는 아예 없다. BBC <셜록>을 기대했는데 아예 제작이 무산되어 안타까웠다. 올해는 설마 제작되겠지.
전시도 둘만 선정했다. 둘 다 후기 올렸으니 링크 참조.
훈데르트 바서 전시회를 갔더라면 셋을 채울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만 잔뜩.
올해는 가고픈 전시를 안 빼먹고 다 갈 수 있으려나.
6. 2011 베스트 발견
엄마의 건강
정유정
Snoopy's Street Fair
게임중독자의 자질
내가 번역한 책 한권의 힘이라고 말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년 한해 엄마는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체중은 7kg정도 줄었고 10분도 채 못걷던 분이라는 걸 믿기 어려울 만큼 걸음도 경쾌해졌으며, 심리적으로도 대단히 안정적이다. 우울증 약도 꽤 줄였는데 정신적인 안정상태가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모습은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도 잘 본 적이 없었다. 일년에 열달은 울증, 한달은 조증, 나머지 한달만 말짱하다고 내가 농담삼아 툴툴거렸던 게 거짓말 같다. 이젠 나더러 운동 안한다고 잔소리를 하실 정도고, 최근엔 심지어 잠든 나를 그냥 내버려두고 혼자 버스타고 대학병원엘 다녀오셨다. 동네 의원은 몰라도, 복잡하고 진료과도 많은 대학병원은 아버지 계실 적에도 반드시 내가 운전해 모시고 다녔었는데... 아마도 엄마가 혼자 대학병원엘 가서 진료받고 약 타온 건 근 10년만에 처음이 아닐지. 암튼 과거의 엄마는 매일매일 '죽으려고' 살았다는데, 요즘 엄마는 '열심히 살려고' 사신단다. 합창단 연습도 여전히 열심히 참여중. 매우 고무적이고 감동이다.
정유정은 <7년의 밤> 읽고 반해 국내작가 중 유일하게 전작을 찾아볼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읽고 나니 군더더기랄까 좀 과하다 싶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던 <7년의 밤>보다 <내 심장을 쏴라>가 더 마음에 들었는데, 마지막에 읽은 청소년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가 제일 좋아 두세번은 본 것 같다. 책표지가 기묘하게도 지우 그림과 많이 비슷해서였을까(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은 전무함에도!), 이상스레 정이 가는 작품. 어쨌거나 주류 문학계에선 정유정을 완전 무시하고 있대서 더욱 관심을 기울여 지켜볼 작정이다. 흥!
[#M_비슷하다고 우기기;; |접기|
아직도 안드로이드 마켓엔 없고 아이튠즈에만 있다는 스누피 마을 게임. 정말 지난 연말부터 삶의 낙이다. ㅠ.ㅠ
눈내린 겨울배경 업그레이드 버전도 좋지만 어서 봄이 와 초록 잔디 깔린 마을을 구경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데 벌써 22단계. 마지막 26단계가 머지 않았다. 마지막 단계를 이루고도 그대로 계속하지 않으면, 리세트 하고 처음부터 다시 마을을 가꿀지도 모르겠는데 어느쪽이 나을지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 무료 앱이라 깔아놓고, 결국엔 10불짜리 기프트 카드까지 사서 캐릭터를 사모았다. +_+ 처음엔 하루에도 몇시간씩 끊임없이 붙들고 있었는데 그래도 요샌 틈틈이 실행해서 동전만 벌어들이는 쪽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ㅋㅋ 어제였나 연속 27일째라며, 자주 이용하는 사람에게 주는 동전 10만개를 또 받았다. 이러니 매일 접속을 안할 수가 없다니깐! ㅠ.ㅠ
산타 스누피 기념 캡쳐
200점 증거 사진 -_-;
네번째는 베스트가 아니라 워스트 발견이어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우겨서 이 항목에 넣으련다. 스스로 중독자 기질을 발견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서... 작년에 이웃에 불었던 타일깨기 게임 열풍 때도 혼자 뒷북으로 열올라선, 다들 시들해 관뒀다는데도 홀로 악착같이(?) 중독자 답게 매달리더니(하도 시간낭비가 심해 즐겨찾기에서 지웠는데도 매번 구글 검색으로 찾아내 하고 있는 나를 발견;;;) 끝내 <200점>을 달성하고야 말았다. 그제야 관심에서 멀어져 더는 타일을 깨지 않고 있다. 대신 아이폰으로 스누피 게임에 매달리는 중. ㅠ.ㅠ 그러나 중독자임을 자각하여 자제하려고 노력한다는 데 의의를 두련다. ㅋ
7. 2011년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멍하니 살았다.
적고 보니 두 마디로군.
아무리 돌이켜봐도 베스트나 워스트로 뽑을 만한 기억도 없고, 뭘 딱히 지른 것도 없는 것 같고(기껏해야 연말에 산 거위털 이불 정도?), 인상 깊은 사건도 없이 그저 소소한 아쉬움 뿐이다.
그래서 베스트 항목을 더 뽑으려야 뽑을 수도 없었다. 참 재미없게도 살았구나 싶은 느낌. 그래서 2011년을 보내는 게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차라리 빨리 가버려서 속 시원.
8. 2011년 번역작업 달랑 3권이 출간됐다. 그중 하나는 두권짜리라며 위안을 해보지만, 8월 이후 하반기 출간된 책이 전무하다는 것은 아마도 출판 불황과 나의 게으름이 만들어낸 합작품일 듯.
작업한 책은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벌려놓은 수만 잔뜩이다. 스스로 채찍질이 필요. 그래서 일부러 적어놓았다. 정신 차리라고 쫌!
9. 2012년의 계획이라면 1. 일과 관련해서 좀 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될 것
2. 조금 긴 여행 (홀로 두고갈 엄마 걱정도 덜었겠다, 여행비 모을 욕심에 더욱 열심히 일하던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3. 기타든 그림이든 뭘 좀 배우러 다니고 싶단 소망을 실천에 옮기는 추진력을 발휘할 것
4. 큰 마음 먹고 이사 (과연;; ㅎㄷㄷ)
제목이 너무 거창한 감이 있어 좀 찔린다. 얼른 고백하자면 오래 전 울며 겨자먹기로 딱 한달 탱고를 배워봤다는 이야기다. 학교 때 연극을 했었는데, 하필 내가 맡은 배역이 잠깐 탱고 추는 장면이 있었다. 연극이라고는 하지만 거창한 극단 동아리는 아니고 매년 가을 학과 행사처럼 무대에 올리는 원어 연극이라, 순전히 숫기 개발과 영어공부(엥?)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발을 들였다가 꼬박 3년이나 코를 꿴 터였다.
그때까지 내가 아는 탱고라고는 코미디언들이 우스꽝스럽게 팔을 뻗고서 <라쿰파르시타>에 맞추어 격렬하게 방향을 바꿔가며 앞뒤로 오가는 춤 정도가 고작이었다. 헌데 나더러 무대에서 그런 우스운 춤을 추라니, 난감했다. 연출을 맡은 선배는 나와 파트너에게 탱고 추는 장면이 들어간 외화 비디오 하나를 주더니 잘 보고 연구해 따라하라고 명했다. 으악. 비디오를 보고 나니 더욱 막막했다. 전혀 우스운 춤이 아니잖아! 철거 직전의 도시 폐허에서 노숙인처럼 사는 소녀가 꿈속에서 짝사랑하는 우유배달 소년과 탱고를 추는 장면이라 애틋한 분위기가 연출되어야 하는데 탱고 음악과 함께 우리가 엉거주춤 되도 않는 탱고 흉내를 내며 걸어다니면 으레 웃음이 터져나왔다.
여름방학과 함께 본격 무대 연습이 시작되자 보다 못한 기획이 우리를 이끌고 학교 앞 무도학원을 찾아갔다. 노상 회식때 짬뽕 국물에 소주를 마시던 중국집 송X원 건물 바로 3층에 무도학원이 있었다. 수완 좋은 기획 선배는 이미 박카스 한 상자 사들고 가서 학원 원장과 강사를 잘 구워삶아 놓았으니 염려 말라고 했지만, 쭈뼛거리며 들어간 허름한 무도학원 분위기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우릴 반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빠글빠글 파마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여 기른 퉁퉁한 원장 아줌마의 태도도 시큰둥했지만 앞으로 우리를 가르칠 거라는 강사 아저씨는 어휴... 맥가이버 머리인지 단발머리인지 암튼 뒷머리를 길게 기른데다 '올빽'으로 넘긴 헤어스타일도 그렇고 통 넓은 검정바지를 잔뜩 허리춤 위로 끌어올려 입은 '배바지'를 보노라니 한숨이 나왔다. 내심 이 사람들이 진짜 탱고를 가르칠 수나 있는 걸까 의아했다.
첫날 우리 둘에게 기본 스텝을 가르치던 강사는 나와 파트너 모두 뻣뻣한 몸치임을 깨닫고 역시나 한숨을 쉬었을 거다. 둘쨋날 연출에게 호통을 듣고 쫓겨나다시피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무도학원엘 다시 가보니 마룻바닥에 분필로 발자국이 그려져 있었다. 시작하는 발만 제대로 짚으면 그림 따라 번갈아 발만 옮겨도 스텝이 완성될 거라면서. 그러나 문제는 스텝이 아니었다. 상체는 우아하게 뒤로 젖히고 하체는 서로 일직선이 되도록 붙여야 한다는데, 후배였던 우유배달 소년과 나 둘 다 발놀림에 신경을 쓰다보니 당연히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엉거주춤 엉덩이는 뒤로 빠지고... 한쪽 벽면의 거울로 보는 우리의 몰골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스텝 순서는 또 왜 그렇게 안 외워지는지! 무도학원까지 보내주었는데 도통 탱고가 늘지 않자 해병대 출신이었던 연출 선배는 잡아먹을 듯이 길길이 화를 냈고, 나는 3학년이랍시고 바락바락 대들며 정 못봐주겠으면 탱고 장면을 빼라고 항변했다.
몹시도 더웠던 그해 8월, 전체 연극 연습 말고도 선풍기만 휘휘 돌아가는 허름한 무도학원에서 매일 한시간씩 땀을 삐질삐질 흘렸지만 탱고 실력은 별로 늘지 않았다. 알고보니 수업료를 제대로 낸 것도 아니었고, 기획선배가 거의 담뱃값 정도를 쥐어주며 한 일주일 기본 스텝만 가르쳐주면 된다고 했다는데 몸치 둘이 꼬박 한달이나 춤 강사를 귀찮게 했으니... -_-; 단신인 나보다 키가 한뼘 정도밖에 크지 않은 느끼한 생김새의 강사 아저씨가 직접 나를 리드하며 가르칠 땐 열심히 배우려는 생각보다 그저 지독한 그의 머릿기름인지 스프레이 냄새와 등에 닿은 손길이 싫기만 했다. 후배였던 나의 파트너도 어쩜 그렇게 춤을 못추는지 원. 강의실에서 둘이 따로 연습을 하면서도 서로 발을 밟다가 웃어대기 일쑤였다. 나중엔 도저히 안되겠는지 학원장 아줌마와 제비 같은 강사가 마지막으로 직접 시범을 보여줄 터이니 분위기만 참고해서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손을 떼겠다는 의향을 전달했다.
그때까지 연습했던 탱고 음악의 테이프를 복사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비장하게 두 사람이 추는 탱고를 지켜보며, 똑같은 스텝인데 어쩜 춤이 우리와 그렇게도 다를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원장 아줌마의 푸짐한 몸매도 느끼하게 생긴 강사 아저씨의 제비 같은 손길도 보이지 않았다. 가벼우면서 박력있는 두 사람의 스텝과 회전이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당시 난 대사 외우기도 벅차 죽겠는데 무대에서 난데없이 탱고를 추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저 괴롭고 부담스럽다는 생각에 빠져 춤도 음악도 음미해볼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공연일은 다가왔고 얼렁뚱땅 흉내만 낸 탱고 장면도 무사히 넘어갔다. '괴롭고 어려운' 탱고와도 안녕이었다.
물론 지겹도록 들으며 연습했던 <라쿰파르시타>를 비롯해서 탱고 음악을 들으면 비싯 웃음과 함께 진땀이 나는 것 같은 조건반사가 한동안 이어지긴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서도 몇년 뒤엔가 알 파치노가 나온 <여인의 향기>에서 탱고 추는 장면이 나왔을 땐 워낙 영화가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불쑥 내가 몸치가 아니어서 탱고를 제대로 배울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탱고의 묘미를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영화에서 탱고를 처음 춰본다는 여자가 알 파치노의 리드에 맞춰 완벽하게 춤을 춘다는 건 리얼리티가 영 떨어지지만!
요즘 알 파치노의 그 영화와 제목이 같은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역시나 탱고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탱고 장면이 나올 때마다 이 드라마 때문에 또 당분간 탱고 학원에 사람들이 드글드글 하겠군, 중얼거리며 옛날 생각도 함께 떠올라 웃음이 난다. 내게는 난감하고 고통스러웠던 탱고의 추억도 지나고 보니 다 그리움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처음보다 덜 웃기고 자꾸 안타까워져 본방사수를 안(못)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다운로드까지 해서 본 어제 최종회로 드디어 <최고의 사랑>이 끝났다. 보나마나 연말에 베스트 드라마 집계 당첨 확률 백프로다. 가볍고 경쾌해서 열광했지만 이래저래 생각할 거리도 꽤 던져준 드라마였다. 심지어 나는 친지 중에 연예인이 있음에도 괜히 싫어하는 연예인들 굳이 콕콕 찝어 싫다고 밝히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왔는데, 댓글 하나하나에 파르르 떠는 독고진이 생각나서 앞으로는 좀 말을 삼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해피엔딩을 결혼과 출산이라는 빤한 결말로 보여주어 실망이라는 사람도 있으나 나로선 흡족하다. 독고진이 심장수술하다 죽지 않았으며, 깨진 유리컵과 함께 나뒹굴었던 감자싹이 죽지 않고 화분에 담겨있는 걸 본 것만으로도 일단 안심한 터라, 사실 어떻게 끝나든 좋다는 생각이었다. 인생이란 언제 또 어떻게 뒤틀릴지 모르는 거고, 뭐니뭐니해도 로맨틱코미디라면 열린 결말이든 확정 결말이든 '그래서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종결되는 동화 같은 마무리가 아무래도 마음 편하다. 현실에선 그런 동화 같은 마무리가 좀 드물어야 말이지. 한편으로는 뭔가 참신하고 새로운 결말을 원하면서도, 결국 똑 떨어지는 해피엔딩이 아니면 못마땅한 이율배반의 심리를 작가들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암튼 똑같이 결혼을 강행하고 졸지에 사내아이들을 셋씩이나 이끌고 나왔던 <시크릿 가든>의 결말보다도 <최고의 사랑> 마지막이 나는 더 좋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통통한 스파이더맨 띵똥 라인이었던 터라 마지막 신까지 귀여운 띵똥 형규가 함께 나와주어 더욱 기뻤다. 엄마의 부재 속에서도 띵똥이 그렇게 속깊고 이해심과 인정이 많은 아이로 자라날 수 있었던 건 분명 구애정 고모 덕이 태반이라고 생각하므로, 계속해서 고모네 가족과 함께 하는 건 당연하다.
밖에서 대중이 뭐라고 쑥떡대건 상관없이 행복한 구애정과 독고진의 일상을 보여주던 닭살스러운 장면 가운데서도 가장 흐뭇했던 건 독고진 부녀의 취침 장면. (큰 사진을 못 구했다;;) 화면 구성 때문임을 알면서도 아가를 소파 바깥 쪽에 뉘여놓아 떨어지면 어쩌나 쓰잘데기 없는 걱정을 잠깐 하기는 했으나, 개인적으로 이런 평화로운 장면 정말 좋다.
므흣하게 이 장면을 보다가 문득 떠올랐다. 저 장면과 유사하게 막내동생네가 연출한 사진이 있다는 걸. 이른바 준우네 삼부자 취침사건이다. 어느 휴일 오전, 다 같이 외출을 하려고 엄마가 먼저 한참 씻고 나오니 침대에서 기껏 깨워 거실로 내몰았던 삼부자는 소파에서 다시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올케가 기막혀 하면서도 애틋한 마음에 찍어놓은 사진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짓다가 괜스레 돌연 울컥했었다. 이젠 더 띵똥과 독고진, 구애정을 볼 수 없게된 허전한 마음을 조카들 사진 보며 극뽀~옥 해야겠다.
아빠 가슴팍에 엎드려 자고 있는 아가 지우가 지금 여섯살이니 벌써 4년이나 지난 사진이다. 아마도 결국 저날 지우 돌잔치 예약을 하고 돌아온 것이 외출의 전부라고 들은 것 같으므로, 독고진네 아기랑 사진속 지우랑 개월수가 비슷하지 않을까나? 셋 다 팅팅 불어터진 얼굴로 서로 엉겨 자고 있는 모습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
<시크릿 가든> 이후 관심을 기울여 볼만한 드라마가 별로 없었다. 배우가 마음에 들면 이야기가 별로고 소재가 흥미로우면 배우와 인물묘사가 마음에 안드는 식으로 뭔가 하나씩 어긋났다. 인물과 이야기가 충분히 흡인력 있는데도 내가 못견디는 드라마도 있었다. <로열패밀리>가 그런 편이었다.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조마조마함과 긴장감을 나는 견디지 못하고 리모컨을 돌려버렸다. 그게 바로 드라마 보는 재미인데! 드라마에서조차 그런 것들이 내겐 스트레스가 되다니 테순이 체면이 말이 아니다 싶긴 했다. 어쨌거나 죽어라 욕하며 조롱했던 국민드라마 <웃어라 동해야>는 드디어 끝나버려서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모르겠다. 그간 울 엄마를 비롯해 모든 할머니들은 매일 꼭 그 드라마를 봐야하는 의무감 같은 것도 있는 모양이었으나, 막장설정은 관두고라도 무슨 여덟마디 단조로운 노래에 도돌이표를 붙여 돌림노래를 끊임없이 부르듯(텐아시아에서 이런 비슷한 표현을 보고 무릎을 쳤다. 딱이야!), 똑같은 음모와 사건이 반복되는 설정에 나는 정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몇 주일을 안봐도 계속 똑같은 상황이라면 말 다했지;;). 그런데도 이 땅의 나이든 아주머니들은 그 드라마를 안 보면 대화가 안 통하는 지경이었다니 참 신기할 노릇이다. 내가 아무리 기막혀 해도 시청률 40%를 넘긴 '국민드라마'라니까 머잖아 일일드라마는 또 그밥에 그 나물 타령이 이어질 것이다. 하기야 노친네들은 그렇게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하고 또 하고 반복해야 이해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전개가 휙휙 이루어지는 미니시리즈 드라마는 울 엄마도 통 따라가질 못해 이해를 못하신다. 요새 낮에 <신데렐라 언니>를 재방송해주고 있는데, 엄마는 예전에 다 본 건데도 두번째 보니까 비로소 좀 이해가 된다며 열심히 시청중이다. 예전엔 문근영이 왜 노상 오만상 찡그리고 화만 내는지 영문을 몰랐단다. ㅋ
암튼 내가 요즘 적응해서 꽤 열심히 보고 있는 드라마는 <반짝반짝 빛나는>, <내마음이 들리니>, <최고의 사랑> 세 편이다. 공교롭게도 셋 다 MBC 드라마인데, 처음부터 마음먹고 본 건 아니고 주말에 재방송 하는 걸 어쩌다 보게 되었거나 그랬다. <반짝반짝>과 <내마음>은 주말에 내리 몰아서 하기 때문에, 평일보다 한껏 늘어져 게으름을 부리는 주말 밤 TV앞을 지키며 보기에 딱이고,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최고의 사랑>은 지난주 목요일 부터 본방사수를 시작했다. 나는 딱히 드라마 취향이라는 게 없고, 노희경, 인정옥 말고는 좋아하는 작가를 따지는 편도 아니다. 드라마를 고르는 제일 중요한 조건이라봤자 내가 싫어하는 배우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것 정도다. 그런데 그 기준도 들쭉날쭉 원칙이랄 수도 없다. 내가 싫어하는 배우들이 총 집합했기 때문에 <아이리스> 같은 건 볼 생각도 안했다. -_-; 미안하지만 그만한 배우 없다는 평을 듣는 차승원이 나에겐 괜히 별로라서 친구가 극구 추천하는데도 <씨티홀>은 보지 않았다. (* 이제부터 스포일러 나올 수 있음)
그러고 보니 요즘 보고 있는 세 편의 드라마엔 다 내가 별로 마음에 안들어하는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런데도 그냥 본다. 왜냐고? 재미있으니까! ^^; <반짝반짝>은 정말 김현주가 반짝반짝 빛이 난다. 현실성은 대단히 떨어지는 장면들이 대거 연출되기는 하지만 어쨌든 수백억대 자산가가 경영하는 출판사가 배경인 것도 흥미롭다. 워낙 탄탄한 출판사라서 소신 있는 편집장이 인터넷서점의 반값할인 강요도 막 거부하고, 그러는 대신 하루 물류비용이 2백만원이나 든다는 재고를 처분하기 위해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한다. 맞춤법 틀리는 건 예사고 비문을 마구 양산하는 인기 작가도 송편집장의 입을 통해 조롱한다. 비출판인의 눈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드라마에 책과 책 만드는 과정이 비쳐지는 게, 좀 비현실적이라도 어쨌든 반갑다. (황금란이 출판사로 배달온 인쇄용 필름으로 사고치는 장면은 얼굴 간지러웠다. 그렇게 중요한 필름을 왜 초짜 인턴사원한테! 책임 담당자가 출력소로 가서 확인해야지 말이야.. -_-;) 고두심, 박정수 두 엄마들의 연기도 장난 아니다. 도박중독자 아버지 길용우는 밉상에다 오버스럽지만, 부자 아버지 장용의 연기도 일품이다. 처음인지 아닌지 몰라도 욕망에 불타는 악역을 맡은 이유리의 황금란 연기도 무시무시하고... 또 한편의 유전자 공화국 드라마이긴 하지만, 이미 결과는 뻔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니 놀랍다. 김석훈을 제대로 드라마에서 본 적이 없으면서 그냥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기선 꽤 잘 어울리는 것 같고 일단 김현주의 행복을 절반은 쥐고 있으니 응원하는 중이다.
<내마음이 들리니>는 황정음이 주인공이래서 볼까말까 했다가 윤여정과 정보석 때문에 본다. ㅋㅋㅋ 여기서 욕쟁이 할머니 윤여정은 이미 시베리아어쩌고로 유명해진 욕쟁이 할머니 김영옥과는 또 다르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윤여정이 한혜진 할머니로 나왔을 때도 좋았다. 깡마른 몸을 몸뻬바지에 집어넣고 구겨놓은 듯 앉아 술을 마시거나 누워서 꿍얼꿍얼 욕을 해대는 모습이 어찌나 리얼한지 원. 언젠가 윤여정이 무릎팍도사에 나왔를 때 배우가 연기를 제일 잘할 땐 돈이 절실할 때라고 한 걸 기억하는데, 싱글맘으로 애들 키우느라 항상 돈이 절실해 진짜 연기가 몸에서 우러나오나 보다 싶다. 조연시절 없이 억대 몸값 받고 전격 주연으로 발탁되는 젊은 배우들이 발연기를 해대는 건 다 돈이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그럴듯하다. 밑바닥부터 좀 굴러야 연기를 제대로 배우는 건데 쯧쯧쯧. 암튼 황정음의 zzz 발음은 여전히 내 귀에 걸리지만, 아역을 했던 작은 미숙이 김새론양과 초반에 명을 달리한 큰미숙이 김여진의 역할이 워낙 인상적이라 그 관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봉영규 역을 맡은 정보석이 차동주(김재원)가 선물한 랜턴 달린 헬멧을 쓰고 눈을 위로 째지게 하며 '무서운 사람'(이혜영) 흉내를 낼 땐 그 때마다 빵 터진다. 수목원이 배경이라 수시로 꽃나무들이 대사에 등장하는 것도 좋다. 아 맞다, 봉우리 황정음을 어렸을 때부터 짝사랑해온 치킨집 아들 승철이 이규한도 귀엽다. <내이름은 김삼순> 때부터 눈여겨 봤는데 껄렁껄렁하지만 순박한 승철이 역할에 아주 딱이다. 주말에 일이 생겨서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두 드라마를 못 보면 뭔가 손해본 것 같다.
<최고의 사랑>은 홍자매 작가와 공효진에 대한 호감과 차승원, 윤계상에 대한 거부감 사이에서 고민하다 보는 쪽으로 돌아섰다. ^^; 홍자매 작가의 작품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돌그룹을 그렸던 <미남이시네요>를 워낙 재미있게 봤고 공효진은 <네 멋대로 해라> 때부터 팬이다. <파스타>에서 유경 역할도 좀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웠어야지. <미남이시네요>에서도 그랬듯이 홍자매의 만화스러운 장면들은 질끈 눈감고 그저 그러려니 넘겨야 하고, 억지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은 차승원의 코믹 연기도 가끔 난감하지만, 암튼 5회를 정점으로 독고진(차승원이 맡은 톱스타 역할)마저도 정이 들었다. <미남이시네요> 때 내가 못마땅해하던 장근석을 그냥 황태경으로 보게 만들더니, 홍자매의 인물은 역시 놀랍다. 차승원의 연기가 놀라운 건가? ㅋ
오만불손하고 성질 더럽고 못돼처먹은 국민배우 독고진이 찌질한 비호감 연예인 구애정에게 솔직히 사랑을 고백한 뒤, 그래서 자기가 '수치스럽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나는 심지어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가 떠올랐다(오만한 점 빼놓고는 모두 완벽했던 다아시와 비교하면 독고진은 재력과 외모 빼놓고는 단점 투성임에도!) @.,@ 천박하고 무례한 가족들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려고 몹시도 애썼으나 자기 마음 어쩔 수 없었다고 프러포즈를 했던 다아시가 엘리자베스한테 뻥 채였듯이, 독고진도 구애정한테 거부당한다. 뭐, 로맨틱 코미디에서 잘난 남자주인공이 생계형 여자주인공한테 반해서 막 들이대다 처음에 까이고 자존심 상해하는 설정은 드라마의 진부한 클리셰다. 그런데 이건 뭐가 다르다고 내가 제인 오스틴까지 떠올리게 됐을까나.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도 그렇고, 잘나서 오만하고 까칠한 남자주인공이 요즘 드라마의 추세던데. 게다가 엘리자베스한테 거절당하고도 사랑을 접지 못해 곤경에 처한 엘리자베스의 가족을 은밀하게 도왔던 다아시와 달리 독고진은 티나게 엄청 생색내면서 구애정을 돕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이미 편견에 눈이 어두워진 나는 비어 있는 독고진의 집에 들어가 물고기 밥을 주는 구애정을 보며, 다아시가 출타중에 아름다운 저택 팸벌리를 돌아보았던 엘리자베스에 대입하고 난리도 아니었다(보안장치 해제번호도 알만큼 이미 수없이 간 집인데도 새삼 -_-;;). 큭큭큭. 악의는 없으되 속물스럽고 무례하고 천박한 구애정의 가족들도 베넷 가족과 동일시하고. ^^; 물론 독고진의 연적인 윤필주는 사기꾼 위컴과 비교하기엔 심히 착하고 훌륭하지만, 콜린 퍼스가 나온 BBC판 <오만과 편견> 때문에라도 내겐 최고의 로맨스 주인공인 다아시를 감히(?) 독고진에게 비유한다는 건 정말 최고의 찬사다.
이 세편의 드라마로, 수목토일 잠깐은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워할 수 있게 됐다. 간만에 적응에 성공해 즐겨 볼 드라마가 생겨서 어찌나 기쁜지. 그러니 부디 내가 견딜 수 없는 조마조마한 서스펜스와 음모는 좀 등장하지 않으면 좋겠다. 당분간 드라마 보는 낙으로 살련다.
올 한해는 여러모로 정리정돈이 제대로 되지 않은 혼돈의 1년이었다. 그래서 한해의 마지막 날에라도 정리를 잘 하고 넘어가면 내년을 좀 더 쓸모있고 알차게 보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후다닥 목록을 만들어본다. (실은 2010 베스트 포스팅 하고 싶어서 자꾸 블로그에 쏠리는 마음을 다잡아 보려는 의도다. 한해 마지막 날까지 원고독촉 전화를 받는 진상 떨기는 부디 오늘 날짜로 버리고 가면 안되겠니.)
2010 최고의 책 3
<점선뎐>(김점선 지음/시작/2009)은 올해 첫 완독책이었다. 거친듯 간결하고 직선적인 문체에 빠져들며 나도 간결하고 담백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 떨었다. 잊고 있던 '까마중'을 떠올리게 한 고마운 책. 김점선의 다른 책과 (뭐였는지 까먹었다) 겹쳐지는 내용이 더러 있어서 아는 이야기인데도 새삼 기쁘게 읽었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함민복 지음/현대문학/2009) 시인의 일상과 사연이 하나하나 모두 정겹지만 그야말로 '주옥같은' 표현들이 툭툭 떨어지는 느낌이라 여러 구절 베껴 적어놓고 흐뭇해 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오늘밤 나는 봄 편지 한장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봄 자체가 누가 보낸 긴 편지 한장 같으니 큰일입니다." - 178쪽 <사랑의 갈증> (미시마 유키오 지음/송태욱 옮김/서커스/2007) 마지막 한 권으로 뭘 고를까 고민하다 유일하게 같은 작가의 책을 두권 읽었기도 하고 올해 제일 마지막으로 완독한 책이어서 ㅠ.ㅠ 가장 인상깊었으므로 포함시켰다. 공책을 보니 쪽수도 없이 "편견이 아닌 도덕이 있을까?"라는 문장을 맨 마지막에 적어 놓았다.
[#M_내친김에|접기|2010년엔 부끄럽게도 읽은 책 목록을 따로 포스팅할 수 없을 만큼 작년 대비 3분의 1도 읽지 못했다. 그래도 여기 기록해두면 내년엔 해걸이를 했다고 생각하며 더욱 분발하지 않을까. 나머지 6권은 아래와 같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2 (정은궐 지음/파란미디어/2007) - 지다 니 책 빌려서 밤새 황홀경 속에 독서했음.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 2 (정은궐 지음/파란미디어/2009) - 역시나 연이어 밤샘독서에 꿈까지 꾸었음
<눈뜬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정영목 옮김/2007) - 앞에 폭우 선거날 부분만 4번쯤 읽다 재시도 끝에 완독 성공한 게 인상적이었다 ㅋ.
<서울, 어느날 소설이 되다> (이혜경 外 8人 지음/강/2009) - 서울을 고향이랍시고 둔 터라 어쩐지 읽어보고 싶어서 사둔 책이었는데 기대가 컸던지 그저 그랬다. 내가 왜 젊은 여성 소설가들의 책을 잘 읽지 않는지 새삼 깨달았다고나 할까.
<가면의 고백> (미시마 유키오 지음/양윤옥 옮김/문학동네/2009) 미시마 유키오의 첫 자전소설이라지 아마.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걸 썼을까 놀랍긴 했는데 크게 인상적인 느낌은 없었던 모양이다. 별 기억이 나질 않는군. 상대적으로 <사랑의 갈증>의 완성도가 훨씬 높았고 인물 묘사도 탁월했다.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김춘미 옮김/민음사/2004) <가면의 고백>에 연이어 읽으며 이 책을 더 마음에 들어했던 기억은 있으나 공책에 제목만 덩그라니 있을 뿐 아무것도 적어놓질 않아서 회상 불가능이다. ㅠ.ㅠ
이왕이면 절반쯤 읽다가 던져둔 책도 적어놓자. 내년엔 부디 완독하라는 채찍의 의미로(라지만 일종의 면피용이라는 거 다 안다;;).
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이주희 옮김/문학동네/2010)
도둑일기 (장 주네 지음/박형섭 옮김/민음사/2008)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안톤 빠블로비치 체호프 지음/오종우 옮김/열린책들/2009 세계문학판)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김희정 안세민 옮김/부키/2010)
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지음/김남주 옮김/열린책들/2009 신판)
우리들 (예브게니 자마찐 지음/석영중 옮김/열린책들/2005 보급판)
2010 최고의 영화 3 토이스토리 3
인셉션
하하하
세편 모두 영화보고 와서 후기를 올렸으므로 긴 설명 생략; <토이스토리3>은 보자마다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힐 거라고 장담했고, 연이어 본 <인셉션>도 최고다 싶었다. 하반기엔 영화구경도 잘 안다녔던 터라 나머지 한편을 뭘로 꼽나 걱정스러워 나다 프로포즈에서 오늘 4시에 하는 <옥희의 영화>를 보고 나서 베스트 세 편을 뽑을 작정을 열흘쯤 전에 했으나 결국 이렇게 집구석에 있다. 영하 12도에 어딜 나가느냐고! -_-;
2010 최고의 전시 3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
샤갈 전
아시아 리얼리즘 전
올해는 전시회도 그리 많이 안 다녀서 최고의 전시 셋을 간신히 꼽을 정도다. 대체 뭘 하며 산 거냐. 역시나 각 전시후기를 포스팅했으므로 긴말 생략.
2010 최고의 드라마 3 파스타
셜록
시크릿 가든
누군가는 주방에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요리사가 정신병자 같다고 혹평했지만 나는 올초 <파스타>를 보며 오글오글 손발을 움켜쥐면서도 유경이랑 세프 때문에 진정 행복했다. 둘의 사랑에, 특히 유경의 솔직한 사랑법에 갈채와 응원을 보냈고 음식 만드는 장면이 나올 땐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신나게 봤다. ^^; 그 뒤론 오래도록 마음 붙이고 열광하며 볼 드라마가 눈씻고 찾아봐도 잘 없어서 어찌나 한탄스럽던지... 그러다 연말에 겨우 세편의 에피소드로 나의 마음을 빼앗은 영국 드라마 <셜록>과 아직은 끝나지 않았으나 여러가지로 마음 불편해지면서도( (최철원과 김주원을 동일시하지 않으려고 마인드콘트롤이 필요했고, 안하무인 개싸가지 김주원의 몇몇 행동은 확실히 계속 문제다) 중독된 듯 주말마다 본방사수하고 있는 <시크릿 가든> 덕분에 목록이 완성됐다. 생각해보니 이 셋 말고는 꾸준히 본방사수한 드라마가 없는 듯;
아.. 사진 규격 안맞아서 속상하다. +_+ <파스타>는 공효진이랑 이선균만 나온 예쁜 사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지쳐서 포기. <셜록>은 크리미널 마인드, CSI, 멘탈리스트를 뭉뚱그려놓은 듯한 천재 탐정 셜록과 왓슨의 명콤비도 일품이지만, 런던 시내 곳곳이 배경으로 나오는 게 참 좋았다. 시즌2를 눈빠지게 기다릴 작정이다. 마지막으로 <시크릿 가든>에서 나는 김주원과 길라임이 눈으로 대화하는 저 장면이 제일 좋았다(아직 완결되지 않았으나 더 좋은 장면이 과연 나올까? @.@). 하지원과 현빈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말도 안되는 스토리로 이렇게 놀라운 인물을 표현해낼 수 있었겠느냐고 볼 때마다 감탄한다.
2010 최고의 지름 3 1. 일본 온천료칸 체험: 왕비마마 보필은 너무 힘들었지만 파트너를 달리해(이왕이면 친구들과) 또 가고 싶다.
2. 실내용 자전거: 과거 옷걸이로 전락했다 버려진 전적이 있으나 요번엔 계속 사용중이라는 데서 점수 획득
3. 아이폰: 정액요금과 기기값, 부가세 포함 6만원을 넘는 요금 때문에 (이전엔 3만원 전후였는데!) 아깝고 후회스러운 구석이 있기도 하지만, 지난번 모니터 망가졌을 때 아이폰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인터넷 검색에 사용했고 잘 듣지 않던 음악도 아이팟에 넣어놓으니 틈틈이 듣게 된 변화를 생각하면 잘 질렀다고 여길란다. ㅋ
2010 최고의 사건 3 1. 요가강습 1년 달성: 그렇다. 아직도 이 엄동설한에 추위를 뚫고 요가학원엘 다니고 있다. 작년 11월에 시작했는데 맙소사. 내가 1년 넘게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게 정말 놀랍다. 다 조카 덕분이긴 하지만, 내년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요번 겨울방학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_-;
2. 마감일 어기기 최고 기록 6개월: 한두달도 아니고 서너달도 아니고 무려 6개월이나 마감일을 어긴 건 16년째 번역인생에서 처음이다. 기록깨기 도전은 절대 안될 말이고, 다시는 이 기록에 근접하지도 않기를.
3. 파랑이랑 친해지기: 아직도 다른 개와 동물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조카네 개 파랑이의 끈질긴 구애와 추근댐 덕분에 이젠 녀석을 쓰다듬어주는 수준을 넘어서 무릎에 올려 안아줄 수도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을 손바닥에 놓아 먹일 수(!!!)도 있게 되었다. 애완견 혐오자로서 배신의 행위로 여겨질 수도 있는 일대 사건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2010 최고의 업적(?)
올해는 번역서가 네 권(이 가운데 둘은 두권짜리 장편이라 역자교정에만 몇주일이 걸리기도 했다;;) 출간되었고, 번역 작업을 한 책은 무려 6권(물론 지금 이 순간도 마무리 중이지만 ㅠ.ㅠ) 이다.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평균 두달에 한 권 작업이라니 이 무슨 어이없는 짓인가 싶지만, 다 작년에 게으름을 부린 탓에 밀리고 밀린 작업이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어떤 책은 계약 마감일을 무려 6개월이나 어기기도 했다. 그러니 이건 업적이 아니라 만행이라고 손가락질 받아 마땅하지만, 스스로 업적이라고 믿어야 내년을 성실히 준비하며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고도 아직 나를 악덕 번역가로 매장시키지 않은 출판관계자분들에게 감사와 사죄의 인사를 보낸다. (그렇지만 그들이 여기 와보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2010년에도 최고의 공연과 최고의 음반은 꼽질 못했다. 공연은 아예 보러간 게 없고 (그나마도 예매한 유일한 콘서트였던 플라시보는 공연이 취소됐다. -_-;) 음반은 딱 네 장 샀던데 어쩌라고... 억지로 스팅의 Symphonicities를 꼽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솔직히 나는 신선한 느낌의 Roxanne 말고는 예전 편곡이 대체로 더 좋은 것 같다. 2011년엔 나도 최고 공연과 음반 목록에 넣을 수 있도록 분발했으면...
2010년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침몰 (또는 방황)
계속 이렇게 살면 정말 곤란하다. 자신감을 되찾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