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흥미롭긴 했으되, 나는 기억력도 나쁘고 뭔가를 열심히 정리하는 인간 유형에서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다 보니(다이어리 쓰기를 작파한지 최소 5년은 넘은 것 같다. 이젠 아예 장만하지도 않는다) 난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파피와 쌘이 한 번 더 옆구리를 쿡쿡 찔러주니 또...
정리 못하는 인간이라 더욱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참.. 그냥 수월하게 살면 될 것을 나란 인간은 뭐든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주저하고 망설이다 판난다.
게다가 또 이렇게 만날 서론이 길다. ㅋㅋ
사진 편집해 올릴 능력도 없으니 단조롭고 별 재미도 없을 것이라고 미리 경고 ^^;;
2006 최고의 책 3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알랭 드 보통 지음/정영목 옮김/청미래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 지음/조석현 옮김/이마고
- 젠틀 매드니스/N.A. 바스베인스 지음/표정훈,김연수,박중서 공역/뜨인돌
민망하게도 꼽아보니 1년동안 사들인 책 대비 읽은 책이 50퍼센트도 되지 못했다.
조지 마이클이 토크쇼에 나와 '책은 훌륭한 가구'라고 한 말에 힘입어, 사람들이 흐뭇하게 장서용 책을 사들인다는 말에 나도 킥킥 웃으며 뿌듯해 했지만... 일 때문에 하는 번역과 검토 이외의 책을 좀 더 많이 읽지 못하는 내 게으름이 참 민망한 수준이다.
겨우 열권 남짓 읽은 책 가운데 어렵사리 골라봤다. ㅡ.ㅡ;;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좋아서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을 또 사보았으나 실망스럽긴 했지만, 이 책은 사랑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터무니 없는 착각이자 자기 최면인가를 냉소적이면서도 유쾌한 사유로 엮은 책이어서 단숨에 읽었더랬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다양한 신경증 환자들의 놀라운 임상기록을 흥미진진하게 재구성한 책이다. 우울증 환자이신 엄마 때문에 신경/정신 장애를 다룬 책들에 아무래도 호기심이 많이 가는데, 황당하고 놀라운 여러 환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좀 더 깊어질 수 있었던 듯.
<젠틀 매드니스>는 가장 우아하고도 품격 있는 광기라고 애서가들이 이름 붙인 '애서광' 증상을 지닌 여러 서양인들의 특이한 삶과 책에 대한 애착에 얽힌 뒷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희귀본을 소장하기 위해 책을 훔치기까지 하며 개인 문고를 가꿔나가는 저들의 문화는 사실 우리에게 많이 낯설다. 1000페이지가 넘는 사전 두께라 사실 다 읽진 못했지만, 내용보다는 순전히 장서용으로 장만해놓고 쓰다듬으며 뿌듯해하는 책이다. ^^;; 게다가 이런 두께의 비대중적인 책을 옮기고 출간하기로 결정한 관계자들에 경의를 표하고 싶기도 하고, 읽지도 않으면서 사들여놓고 그저 좋아라 하는 책 허영심의 발로에서 목록에 넣었다고 할 수 있다. ㅋㅋ
2006 최고의 영화 3
- 수면의 과학
- Good Night, and Good Luck
- 왕의 남자
올해도 영화를 그리 많이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나마 본 영화 가운데 고를 수밖에 없었다. <수면의 과학>은 당당히 제일 먼저 손꼽을 수 있었는데, 나머지는 생각 좀 해야 했다.
<Good Night, and Good Luck>은 마녀사냥 같은 매카시의 공산주의 색출 열풍이 몰아치던 1950년대 미국의 정직한 언론인을 다룬 영화였는데, 내가 한 때 몹시 좋아했던 조지 클루니가 감독과 각본을 맡아 훌륭하게 연출을 해내기도 했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모습도 볼 수 있어 좋았을 뿐더러, 거지발싸개에도 못 미치는 우리나라 언론의 행태와 비교되는 영화속 실존 인물의 모습이 대단히 멋졌다. 당시 TV 방송에선 저널리스트가 담배를 피우며 진행을 하던데, 그 모습이 어찌나 멋진지 *.* 영화관을 나오며 흡연의 욕구가 마구 용솟음치기도 했던 영화다. ㅋㅋ
<왕의 남자>는 동성애 코드와 연산의 인간적인 고뇌, 광대패거리의 슬픔, 한복의 아름다움 따위가 잘 어우러져, 푸짐하게 잘 차린 잔칫상 같은 느낌의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6 최고의 공연 3
- 벽을 뚫는 남자
- 미스터 마우스
- 형제자매들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본 뮤지컬 <벽뚫남>은 2층 S석이라 시야 확보는 좋았으되, 좌석이 좁아 무릎이 앞 벽에 닿아 불편했던 것을 빼면, 엄기준과 해이의 적당한 호연과 조연들의 열정적인 연기가 어우러져 프랑스 코미디의 특유의 익실과 재치의 묘미를 짜임새 있게 보여준 공연이었다.
<미스터 마우스>는 소극장에서 처음 본 뮤지컬이었는데, 배우들의 폭발적인 가창력이나 흡입력 같은 건 없어도 서범석의 담백하고 진솔한 연기와 가슴 아픈 스토리 때문에 심장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안타까움을 느끼며 공연 후반 내내 엉엉 울었더랬다. 가격 대비 몹시 만족했던 뮤지컬 ^^;;
<형제자매들>은 친구따라 무작정 강남가는 격으로 내용도 전혀 모르면서
자그마치 7시간 반이나 하는 러시아 원어 연극이라는 얘기만 듣고 가서 봤는데
오후 2시부터 시작해, 가부키(물론 본 적 없다)처럼 중간에 저녁 먹는 시간도 있고
밤 10시 넘어 끝나는 놀라운 마라톤 공연이었다.
가끔 지루하다 느낀 적도 있었지만, 스탈린 시대 농민들의 애환을 다룬 내용은 다른 언어와 자막의 벽을 넘어 찌릿하게 마음을 울렸고, 막이 내린 후엔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기립박수를 오래오래 보냈다. 뮤지컬은 가끔 봤어도, 진지한 연극을 본 것이 워낙 오랜만이라 각별히 인상적이었던 데다, 20년째 같은 배우들이 같은 연극을 계속 무대에 올리고 있다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드라마 극장(? 정확하지 않음^^)의 열정적인 팀웍 또한 감동이었다.
2006 최고의 문화생활 3
- 장 뒤뷔페: 우를루프 정원 展
- 이면展
전시회를 그닥 많이 다니지 못한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둘 밖에 못 고르겠다.
클레전과 인상파 거장전은 전시장을 나와서 전시의 성의없음에 마구 화가 날 정도였고,
롭스&뭉크 전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나쁨과 미진함 때문에 덕수궁을 나오자마자 마구 단 것과 카페인이 땡겼더랬다. ^^;;
12월의 완전 끝자락에 르네 마그리트 展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나는 초현실주의 그림이 별로인데다, 키드 님과 달리 르네 마그리트 그림은 내 취향과 좀 거리감이 있다 ㅎㅎ), 내가 극구 우겨 보러갔던 장 뒤뷔페 전시회는 별 기대 없이 갔다가 대박을 건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프랑스에선 국민화가로 이름이 높다는 장 뒤뷔페의 작품이 대거 전시된 알찬 기획인 것도 훌륭했고, 작품을 설명해주는 큐레이터의 맛깔스러운 소개도 재미 있었을 뿐더러, 가장 중요하게는 한 사람의 작품 세계라 보기엔 몹시 놀라울 정도로 폭이 넓고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며 마구 행복해졌다.
그래서 부러 시키지도 않은 전시 품평서를 써주기도 할 정도였는데 ^^;;
평일 목/금엔 밤 8시반까지 전시를 연장할 뿐만 아니라, sk멤버십 카드가 있으면 평소에도 2천원 할인, 오후 6시 이후엔 50%나 할인해준다. 그래서 일행들 모두 단돈 5천원 내고 들어가 보면서 만오천원짜리 전시로도 손색이 없다고 칭찬했음 ㅋㅋ
전시 감상은 정민공주 데리고 한 번 더 보러 갔다 온 다음에 올릴 계획인데 과연..
1월 28일까지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한다.
이면전.. 은 내가 아는 분이 소속된 그룹 전시회였는데, 순전히 팔이 안으로 굽는 논리로 포함시켰다고 볼 수 있음 ㅋㅋ...
내가 최초로 전시작품을 돈 주고 산 역사적인 기록도 있고 해서.
2006 최고의 지름 3
- 필리핀 보라카이 여행
- 변수옥 화가의 판화 작품 2점 (사진 가운데 맨 오른쪽 ^^;;)
- 롤러 스탬프 세트
ㅋㅋㅋ 마지막 세번째 것 때문에 고민 좀 오래 했는데,
정가 4만8천원이나 하는 책 <젠틀 매드니스>를 넣을까 하다가
가격대비 만족도로 봐선 아무래도 롤러 스탬프를 넣어야할 것 같아 그렇게 했다.
롤러 스탬프란... 말 그대로 예쁜 무늬가 둥근 롤러에 새겨져 있어서 손잡이를 잡고 죽 돌리면 띄 모양의 스탬프가 찍히는 건데, 완전히 재미 붙여서 선물 할 일 있을 때마다 포장지 대신 두툼한 색지나 갱지 사다가 찍어서 포장해 주며 혼자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어제도 조카들이 놀러와서 공연히 이면지에 수십장 찍고 놀다가 갔는데... 스탬프 잉크가 좀 아깝긴 해도 그 마음을 내 익히 이해하기 때문에 그냥 냅뒀다. ^^;;
2006 최고의 드라마 3
- 굿바이 솔로
- 연애시대
- Grey's Anatomy
이건 이웃들과 너무 비슷해서 설명이 필요없을 듯;;;
요새 케이블에서 <꽃보다 아름다워>를 재방해주고 있는데, 또 넋놓고 보면서 노희경의 대사에 감탄하고 있다. *.*
세 드라마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가슴을 저미듯 대단히 공감 가는 현실적인 대사와 주옥 같은 표현으로 이어지는 잔잔한 내레이션, 분위기에 딱 맞는 배경음악인 듯 싶다.
2006 최고의 삽질 3
- 재작년에 거금 8백만원이나 번역료를 '완전히' 떼먹은 출판사 직원이(원래 좀 아는 사이였고 소개할 당시엔 그 출판사를 퇴사한 상태) '미안해서' 소개한 신생 출판사 일 때문에 다른 일 제쳐두고 연달아 2권이나 번역했는데, 10달 넘도록 번역료도 못받고 공연히 다른 일만 마구 밀렸던 일. 더욱이 돈 받을 욕심에, 얼굴 팔리는 거 몹시 싫은데도 책 소개 나오게 된 DMB 방송에 인터뷰도 해줬는데! 아.. 신경질나.
- 웰빙 좀 추구해보겠다고 거금 5만원씩이나 주고 사들인 마리안느와 아마존 화분 죽이기(아직 안죽었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ㅜ.ㅡ;;;)
- 그밖에 자잘한 삽질들은 많았는데... 딱히 뭘 꼽을지 모르겠다. ^^;; 나중에 생각나면 삽입하든지 하겠음
2006 최고의 음반과 싸가지, 안습 지름엔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다.
음반은 워낙 잘 사지도 않고, 또 잘 듣지도 않는 듯... 몇개 산 게 있긴 한데 까칠해져선 열심히 일할 땐 음악도 귀에 거슬리다보니 잘 찾아듣지도 않고, 찾아 들을 때도 익숙하고 편한 것만 고르게 된다.
사놓고 후회하는 물건도 좀 있지만(가령 백화점 세일에서 산 만원짜리 낙타색 미니스커트라든지, 몇달째 포장조차 풀지 않은 요가매트라든지 ㅋㅋ), 워낙 지르기까지 심사숙고 하는 인간이라 크게 지르고 후회하는 물건은 없어 다행이다.
아이고.. 정리해놓고 보니 지난 1년이 더욱 짧았던 느낌.
2006년 한 해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나는
아등바등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