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

투덜일기 2016. 7. 29. 22:06

얼마전 생일에 조카 ㅈㅎ이의 카드 내용을 읽고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벌써 고모 나이가 반백을 넘었네.. 어쩌구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고모 아직 반백 안 넘었거든! 딱 반백이거든!! 만으로는 아직 사십대거든!

아무리 발악을 해도 무슨 소용이랴. 문득 오래 전 스물다섯 살 생일에 너도 이제 꺾어진 오십이라며 청춘 다 갔다고 놀려대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맙소사... 꺾어진 오십도 어쩐지 충격적으로 느껴지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하물며 반백. ㅠ.ㅠ

제아무리 백세시대라고는 해도 내가 100살까지 살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간단한 건강설문 사이트 같은데서 계산해본 기대수명도 나는 78세쯤 나왔던 것 같고... ^^; 노후준비가 쉽지 않는 사람들에게 백세시대는 축복이 아니라 확실한 저주다. 대체 몇살까지 일해서 벌어먹고 살라는 것이냐고!

번역을 평생직업으로 삼겠다고 정하면서, 막연하게 세운 계획은 60살까지만 일해서 나름대로 착실히 노후대비를 해 남은 생은 소박하게 놀고 먹어야지 하는 거였다. 정년 없는 직업이라 다행이야 그러면서... 근데 참 이게... 마음대로 되는 인생이 아님을 왜 진작 몰랐을까. 쥐꼬리만한 번역가 연봉 수입으로 꼴랑 60살까지 일해서 대체 2-30년을 어떻게 더 놀고먹겠다는 상상을 했던 것인지!

주변에 백수 됐다고 좀 징징거렸더니, 다들 기다려 봐, 곧 좋은 소식 있겠지 위로하다가도 하반기 접어들었는데 아직 아무 기미가 안보이는 눈치에 나보다도 더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 미안하게스리. 심지어 알바 일도 좀 받았다. ^^; 푼돈이라 안 하겠다고, 들이는 품에 비해 벌이가 션찮다고 몇년 전 딱 거절했던 영상번역 일이다. 잔소리 말고 그거라도 일 하란 말에 얼른 오케이, 고맙다고 수그리고 들어갔다. 

다만 그 일이 또 언제까지나 보장되는 건 아니라서... 여전히 생각이 많다. 백세시대를 맞이하야 나름 재미나고 보람있게 절반 살았으니 나머지 절반은 완전히 새로운 인생으로 재설계해야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그렇다면 이 나이에 과연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영화 <인턴>을 뒤늦게 엄청 재미나게 보면서, 막연하게 회사에 재 취업을 꿈꾸기도 하고... (누가 뽑아준다고!)

다늦게 교사자격증 내밀며 기간제 교사나 방과후교사 일자리를 알아볼까 (늙은 보조교사를 행여나!)

그렇다면 입시학원 강사나 과외선생 밖엔 길이 없나? (내가 제일 하기 싫어하던 일인데! ㅠ.ㅠ)

셈이 느리고 서비스마인드 부족해서 뽑힐 자신도 없지만 암튼 마트 캐셔 일도 50살 이전에 구해야한다던데...

누군가는 왕비마마 섭생에 힘썼던 경험을 바탕으로 음식 사업을 해보라고 등떠밀기도 하고... (자본이 있어야지! ㅠ.ㅠ 반찬 가게를 하란 말쌈? 아니면... 건강음식 컨설턴트? ㅋㅋ)

조언이랍시고 속 뒤집어놓기 일쑤인 누군가는 이제라도 돈 많은 남편감을 찾아 '혼테크'를 하라며 권하기도 했다.. +_+ 

으휴. 

노희경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때때로 감동하며 봤지만, 그건 막강 배우들의 흠잡을 데 없는 연기와 대사빨 때문이었을 뿐, 내용만 놓고 보면 노년의 판타지라 은근 배알이 꼴리고 부아가 돋았다. 늙고 병들어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어떻게 가난한 노인이 한 명도 없어! 캠핑카 타고 다니며 여행하며 럭셔리하게 보내는 노년이 준비된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ㅠ.ㅠ (물론 폐지주워 생활비, 용돈벌이 해야하는 독거 노인들만 나왔더라면 더 보고싶은 마음이 안들었겠지...) 

번역작가로 나오는 고현정은 어떻고! 선배이자 연인이었던 출판사 사장을 든든한 '빽'으로 두긴 했지만 (소형 출판사가 또 그렇게 돈이 많냐고 따지고 들면 끝이 없다. ㅋㅋ) 집과 차는 부자 엄마가 장만해줘서 그렇다 치고, 소설 쓰고 싶다고 마음만 먹으면 곧장 책을 써서 출판이 된다고? 에라이~! 

째뜬 요즘 같아선 타임워프 해서 몇년 뒤 나의 미래에 살짝 다녀왔으면 좋겠다 싶다. 커다랗게 허공에 물음표로 떠 있는 나의 인생은 과연 어느 방향으로 훌러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궁금해.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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