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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7.20 눈가리고 아웅 2 2
  2. 2015.07.14 십대는 어렵다 2 6
  3. 2015.07.13 눈가리고 아웅 6
  4. 2015.07.08 십대는 어렵다 10
  5. 2015.06.28 영화와 현실 6
  6. 2015.06.25 돕기 6
  7. 2015.06.24 과천 현대미술관 4
  8. 2015.06.19 스마트폰 스트레스 6
  9. 2015.06.15 낙오 6
  10. 2015.06.13 6월 12일 7

머릿속이 피폐해져서 이젠 제목 정하기도 귀찮은가보다. 똑같은 제목에 번호붙이기 재미들렸나.

암튼 제 얼굴에 침뱉기 같은 아래 포스팅을 밀어내고자 뭔가 빨랑 새로운 포스팅을 해야한다는 강박감이 불쑥 작용했다. ㅎㅎ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메르스 광풍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는 듯 뉴스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다. (연일 충격적인 뉴스가 좀 많아야지;;) 하지만 대형병원엘 가면 당연하겠지만 아직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발열을 확인하는 간호사들이 곳곳에 앉아 있고, 진료 창구에선 문진용 쪽지를 나눠주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다 눈가리고 아웅이라는거! 흥!


6월말이니까 좀 지난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래서 더 어처구니 없었던 ㄷ병원. 이곳은 나름 종합병원이지만 병상수가 적은 2차병원이다. 엄마가 대장내시경을 받기로 하셔서 보호자로 따라갔는데, 9시 예약이라 일찌감치 건물로 들어가려니 정문을 잠가놓았다. 메르스 확신 방지를 위해 <응급실>쪽 출구만 개방한다고 적혀 있었다. 엥? 응급실 출구를 오히려 피해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


째뜬 8시 40분쯤... 응급실 입구로 다시 돌아가니 출입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냥 내시경센터로 가면 그뿐. 엄마팔뚝에 링거 꽂는 걸 보고 나서 보호자 대기실로 나왔던 나는 아침 커피를 사려고 다시 어슬렁어슬렁 커피숍이 있는 별관으로 향했다. 앗.. 이젠 응급실 입구와 별관 입구에 모두 간호사가 책상을 놓고 앉아 있다. 드나드는 사람들 모두 이마에 온도계를 대서 체온을 확인하고 들여보내는 식. 물론 책상에 손 세정제가 놓여있긴 했지만 굳이 그걸 쓰진 않았다. 아이스커피를 사가지고 다시 본관 건물로 들어가려니, 별관에서 커피 사온 게 뻔한 나를 보고 그냥 패스~


한 4, 50분 지났나. 내시경을 끝내고 나온 엄마를 모시고 다시 별관이 있는 외과 진찰실로 향하는데, 별관 입구에서 이번엔 체온계로 발열도 확인하고 출입자의 모든 이름과 연락처를 적으란다. 본관에서 이미하고 온 사람도, 좀 전에 별관에 왔었대도 또 하라고... 아 뭐야... 시간대별로 출입자 관리가 달라지는 건 또 뭐임?


메르스 환자나 의심자가 9시 이전에 그 병원에 들락거렸다면 아무런 제지가 없었단 얘기고, 심지어 9시 이후에 들락거렸대도 인적사항은 전혀 확인이 안 될 테고.... 출입자 목록은 분명 계속 적는 게 원칙이었을 테니 담당 간호사의 '성실함' 여부에 따라 출입자 인원파악이 달라졌다는 의미가 아닌가! 게다가 울 엄마는 마취제가 다 안 풀려서 글씨도 잘 안보이고 이름과 연락처 적는 난에 개발괴발... 이름도 엉터리 전화번호도 엉터리로 적으셨다. ㅋㅋ 역시 아무런 제재 없음.


형식적인 전시행정이 아니고 뭔가. 물론 가뜩이나 바쁘신 간호사 선생님들을 '겨우' 발열 체크 하는 걸로 빈틈없이 24시간 3교대로 돌릴 리가 없겠지. 위에서 시키니깐 뭔가 하는 척 정상 근무 시간에만 반짝 눈가리고 아웅...


지난주엔 대형대학병원인 ㅅ병원엘 갔는데, 진료카드를 기계에 대 확인을하자마자 문진용 쪽지를 내밀며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최근 다른 병원에 갔는지, 갔다면 무슨 과였는지, 병원은 어느 동네였는지, 열이 있는지, 외국에 다녀온 적 있는지...  그래서 그 종이를 다 적어서 제출을 했느냐... 하면 아니다. 그냥 들고 다니다가, 누가 문진 했느냐고 물으면 했다고 대답하라는 것이 끝. 쪽지는 종일 갖고 다니다가 집에 와서 버렸다. 발열이나 문제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만 따로 관리하는 건가??? 암튼 역시나 뭥미 싶었다. 진짜로 메르스 의심자가 무지불식간에 뚜벅뚜벅 대학병원에 들어와서 문진 쪽지 작성하다가 콜록콜록 기침으로 바이러스를 전파했다면 어쩌려고?? 


좀 있으면 '종식'을 선언한다는데 정말로 바이러스라는 게 '종식'이 가능 한 건지 어쩐지... 아직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더러 있던데 나는 도무지 답답해서 마스크를 쓸 수도 없고(안경에 김서려서리) 외출할 때 딱 한번이나 썼던가.. 내 목숨은 내가 지켜야하는 요상한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 참... 점점 더 용감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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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는 어렵다 2

투덜일기 2015. 7. 14. 21:13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외치는 건 아니고 (대나무숲의 메아리도 무섭다;;) 비밀블로그에 5월중순부터 매일 따로 문제적 십대와 사는 고충을 일기로 적고 있는데 역시 스트레스 해소는 혼자 끄적이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 것 같다. 해서 '문제적' 십대 씹기 포스팅 제2탄을 적어보기로. ㅋㅋ


대부분의 어린이도 그렇지만 십대는 채소를 제대로 안 먹고, (오로지) 고기를 좋아한다. 중고등학생을 둔 지인들에게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아침마다 고기반찬을 해대게 될줄은 정녕 몰랐다. 친구들이 새벽부터 삽겹살을 굽기도 하고 갈비, 스테이크도 해먹이고 그런다는 얘기를 귓등으로 들을 땐 그냥 무쇠도 씹어먹을 남자애들 키우는 엄마들의 극성이려니 했었다. 어차피 오밤중에 집에 들어오는 고등학생은 집밥을 딱 한끼 아침에만 먹기 때문에  특별한 반찬으로 챙겨먹이는 걸 아침에 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 특히 요즘 남자애들은 공부도 공부지만 '키' 크는 게 중요하여, 아침에 고기 먹고 부지런히 학교 가서 얼른 또 농구 한판 때려주신다고... +_+ (186센티미터가 목표라나!) 고3되면 체력이 국력이라 엄마들도 저학년땐 의외로 아침운동을 지지한다네. (애들 수업시간에 존다고 체육 시간에 운동시키면 항의전화하는 엄마들 얘기는 또 뭔가.. 암튼 요지경 ㅋㅋ)


근데 이미 성장판이 닫혀버린 이노무 지지배도 꼬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잘 안먹는다. 지네 집에서는 반찬투정 안하고 그냥 주는대로 먹었다는데 아 왜! +_+ (왜겠냐, 니가 만만한거지;) 놀랍게도 이 아이는 아침에 억지로 눈을 뜨자마자 바로 식탁으로 가서 아침밥을 먹으며 잠을 완전히 깨는 것이 습관이다. 잠도 덜 깬 아이 치고는 참 밥이 잘도 넘어간다고 놀랄밖에. 암튼 그래서 밥 먹으라고 수십번 깨우면 겨우 눈을 뜨자마자 묻는다. 반찬 뭔데?  으으으으...


최소한 달걀말이나 달걀찜은 있어줘야 하고, 주로 먹고싶다고 주문하는 건 제육볶음, 돼지고기 김치찜, 닭갈비, 훈제오리... +_+ 가뜩이나 두 모녀 엥겔계수도 높았는데 고기대장 십대까지 와 있으니 식비가 그야말로 엄청나다. 아침부터 닭갈비, 순대볶음 같은 거 만들고 있노라면 한숨이....  돌연 성질나고 땀 빼기 귀찮아지면 종종 몸에 나쁘거나 말거나 햄, 소시지, 베이컨, 명란젓(공주 취급 받던 시절부터 이상하게 좋아하던 반찬;;)으로 떼우고 있다. 십대들은 또 가공식품을 좋아하니깐!


십대들은 니옷내옷이 없다. 이건 이 아이 하나만 그러는 게 아닌 게 확실하다. 수년째 지켜봐온 경험치도 있고, 얼마 전 TV에 중학생이 된 최진실 딸이 나왔는데 비싼 파카 사줬더니 친구랑 바꿔입었다고 할머니가 잔소리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아이고 쟤도 그러는구나 싶었다. 암튼 서로 옷 많아 보이려고 그러는 건지, 새옷이랍시고 사줘도 금방 보이질 않는다. 그옷 어쨌냐고 물으면 자기보다 친구한테 더 잘어울린다고 결론이 나서 바꿔입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고가의 옷인 경우 얼렁 찾아오라고 난리치면 알았다면서 차일피일.... 계절이 바뀌고서도 구경하기가 힘들다. 이 아이는 생일이 12월이라 주로 나와 할머니한테서 고가의 외투를 선물로 받아내는데 ㅠ.ㅠ 제대로 입고 다니는 걸 본 적이 별로 없다. 물어보면 친구네 집에 있다고...  그래서 이제 다시는 옷을 사주지 않겠다 결심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요번에 사준 셔츠도 입고 다니는 거 한 사흘 봤나... 어느날 문득 친구랑 바꿔입고 왔다더니 한달 넘게 안 받아온다. 바꿔입었던 옷은 또 딴아이한테 넘어갔다던데 ㅋㅋㅋ 암튼 친구 돌려줘야한다면서 빨아놓으라던 후드 티 몇 개가 아직도 그냥 옷방에 널려있다. 자동차도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셰어카가  서서히 유행하고 있더더니만, 이 아이들은 셰어클로딩이냐 뭐냐. 난 아무리 돌이켜봐도 친구한테 괜스레 옷을 빌려입었거나 빌려준 적이 드문 것 같다. 비오는 날 쫄딱 젖었거나 음식 먹다가 대박 쏟아서, 친구 옷을 빌려입고 온 적은 있었다만 옷이 마음에 들거나 예뻐서 서로 바꿔입고 빌려입는다는 건 쫌... 그래도 친구가 안 입는다고 준 옷을 즐겨 입은 적은 있으니 이해해야 하는 건가. +_+ (가만 생각해보니 약간 '날나리'였던 사촌언니는 가끔 내 옷을 빌려가거나 자기 옷을 내게 '잠시' 빌려줘 입히려고 들었던 것도 같다. 대학 들어가자 마자 그 언니는 아직 십대였던 내게 자기 옷을 입혀선 가끔 신촌 '디스코장'엘 데려갔었다. ㅎㅎ) 집에서 나갈 때와 들어올 때 입은 옷이 달라지는 십대들.. 생각해보면 지들은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흠...


딴 십대는 모르겠고 우리집에 있는 십대 지지배는 이어폰으로 음악듣다가, 문자질 하다가,  TV보다가 그냥 소파에서 잠든다. 일찌감치 잠자리로 쫓으면 싫단다. 그렁그렁 코고는 소리 내며 잤으면서 아직 안잔다고 큰 소리도 친다. 그리고 소파에 누워있는 게 편하다고...(아 물론 지네 집에서 침대생활 하다가 바닥에서 자려니 불편한 걸 수도;;) 종종 새벽 5시까지 안자고 떠들어댈 때도 있었지만 지도 체력이 딸리는지 그래도 요샌 3, 4시엔 잠드는 편인데 3시 전에 방에 가서 자라고 깨우면 일단 거부한다. 아 왜?! 그러다가 최소 3시는 넘어서 한번 더 잔소리를 해야 방으로 퇴청... 으휴.


역시나 모든 십대가 그러는 게 아님은 알지만 암튼 우리집에 있는 십대는 대화를 기피한다. 뭘 좀 꼬치꼬치 물으면 아왜?/뭐래.../아 몰라/몰라도 돼/저리가... 따위로 차단막을 친다.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애한테 어디서 만나냐고 물어도 대답은 "몰라"다. 얘기하기 싫다는 뜻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죄다 시시콜콜 엄마에게 털어놓는 사춘기 십대들도 여전히 간혹 있다기에 부러운 마음이 드는데 (과거의 나도 대체로 그랬다. ㅠ.ㅠ), 아주  심한 경우, 후배 하나는 중학생 아들 목소리를 일주일간 단 한번도 들을 수가 없단다. 어린시절처럼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 좀 시킬라치면 인상 팍 쓰면서 제 방으로 쾅 문닫고 들어가기를 시전한단다. 조카는 사생활에 관한 게 아닌 한은 그래도 최근엔 대꾸를 해주기도 하고 제가 먼저 뭘 묻기도 해서--가령, "고모 이거 입으니깐 나 뚱뚱해보이지 않아?"라든지--좀 나아졌다고 믿고싶지만 여전히 속을 모르겠다. 말 대꾸 좀 해주는 것 같아서 얼른 다가가 앉으면 대번에 저리가라고 쫓는다. 무슨 비밀이 그리도 많은지 원... 


또한 십대는 휴대폰이 생명줄이다. 한시도 손에서 떼어놓질 않는다. 자면서도 손에 쥐고 있을 정도. 그런데 반전이 있다. 이노무 지지배는 최신형 아이폰6를 산지 두달 만에 잃어버렸다. 어떻게 한시도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않는 아이가 그걸 잃어버릴 수 있는지는 불가사의다. 배터리가 떨어져서 못쓰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변명. 게다가 새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차마 못하고 학교에 빼앗겼다고 거짓말 했다가 들통난 사건에 이어, 마지막달 휴대폰 요금이 수십만원에 이르러 (아마 이것이 집에서 쫓겨난 결정적 원인이었을지도 ㅠ.ㅠ) 꼬진 기계로라도 새로 휴대폰을 사달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단 착신 정지해놓고 약정기간 동안 기계값만 계속 내기로 한듯. 물론 요즘 십대는 휴대폰 없이 살 수가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혹시 '공기계'라는 것을 아시는지? 나 같은 사람은 한번 휴대폰을 사면 마르고 닳도록 망가질 때까지 쓰고 가능하면 기기도 반납해서 혜택을 받지만, 고가의 스마트폰을 쓰면서도 2년 약정기간이 끝나면 미련없이 새폰으로 갈아타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그래서 집집마다 쓰지않는 스마트폰 '공기계'가 더러 있는 모양. 해서 이 아이도 언제부턴가 누가 '빌려줬다'는 스마트폰 공기계 하나를 들고다닌다. 나도 영문을 잘 모르겠는데 그런 공기계는 일반전화도 안 되고 휴대폰 문자로 본인 확인을 해야 로그인을 할 수 있는 카톡도 불가능하지만, 음악을 듣는 건 물론이고 페이스북과 페이스북 메신저가 가능할 뿐더러 음성 통화기능도 쓸 수가 있단다! 그니깐 나나 제 부모는 절대 아이와 연락이 안되지만 페이스북을 하는 친구들 끼리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물론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난점이 있다--메시지와 통화를 주고받는다는 것! 물론 조카의 페이스북은 죄다 잠가놓아서 나로선 친구신청도 안되고 페이스북 메시지도 보낼 수 없다. ㅠ.ㅠ 


째뜬 이제 방학이 딱 일주일 남았다고, 고지가 바로 저기라고 안도하고 있었는데 이 문제적 십대는 방학이 되어도 집에 돌아갈 마음이 없다. (왜 안 그렇겠나. 잔소리는 좀 하지만 퍽 만만한 고모와 할머니와 제 멋대로 할 수 있는 TV가 있는데;;) 아이 부모도 딱히 데려갈 마음이 없다. 애가 싫다는데 억지로 끌고갈 수도 없는 거고.. 데려다 놓고 또 속끓일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나 역시 스트레스 만빵이지만 이제 방학했으니 무조건 집에 가라고 쫓아낼 배짱은 솔직히 없다. 고모랍시고 이게 잘하는 짓인지 전혀 확신이 없음에도.... 더 먼 곳으로 튕겨져나갈까봐 우리가 전전긍긍 두려워하는 걸, 아이는 벌써 눈치채고 있는 것 같다. 하기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나. 하여간에 십대는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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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날이라 영계 세 마리를 사다가 삼계탕을 끓였다. 내가 닭요리를 할 때 유별난 게 있다면 기름 많이 나오는 닭껍질을 홀라당 다 벗겨버리고서 끓이거나 볶아먹는다는 것. 껍질을 벗기고 익히면 맛이 없으니, 그냥 해서 먹을 때 벗겨버리는 게 더 낫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기름 뜨는 것도 싫고 담백한 맛이 더 좋다. 흥.


암튼 토종닭을 사서 백숙을 하든 영계를 사다가 1인분씩 삼계탕을 끓이든 닭볶음탕용 토막 고기를 사든 닭손질은 참 하기 싫은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맨손으로 못하고 꼭 고무장갑을 끼고 했을 정도. 우툴두툴 닭맨살 만지는 느낌이 섬뜩해서 원... 하지만 고무장갑 끼고 가위질로 닭껍질 벗기다가 고무장갑 몇 개 해먹고는 포기... 아줌마 내공을 발휘하여 맨손으로 달려든다. 


역시나 가장 고난이도는 닭 뱃속을 맨손으로 긁어내는 단계. 가뜩이나 찝찝한데 나를 더 열받게 만드는 행태가 있으니 바로 닭뱃속에 허옇고 누런 기름덩어리를 잔뜩 넣어 무게를 늘려놓는 경우다! 원래도 닭뱃가죽 아래부터 똥꼬(꽁지?)에 이르는 부분에 기름이 많은 모양인데, 먹지도 못할 기름덩어리를 순전히 그램 수 채우려고 꾸역꾸역 접어서 뱃속에 넣어놓은 걸 발견했을 땐 우쒸 정말!!  >_<


어차피 닭의 무게로 정한 홋수 구분에 좀 융통성이 있을 텐데... 그리고 닭 키워 잡는 전문업체라면 닭을 얼마 정도 키워야 몇 그램이 나오는지 수치상으로 다 정해져있지 않을까? 왼제품으로 900그램짜리 토종닭 한 마리를 키워 잡으려면 '며칠'간 사료를 어느정도 먹여야한다.. 자료가 딱 나와있을 텐데... 결국엔 며칠이라도 사료 값 아끼려고 닭을 먼저 잡아서는 뱃속에 기름까지 꾸역꾸역 다 포함해서 포장을 해 이윤을 남긴다는 뜻이겠지. 그야말로 치사찬란한 눈 가리고 아웅.


또 얼마전엔 찰옥수수를 사다가 쪄먹으려고 스티로폼 그릇에 랩으로 포장되어 있는 걸 두어개 골라 가져왔는데 3개씩 포장된 팩을 열어보니 셋 중에 하나는 꼭 하자가 있거나 벌레가 먹은 거였다! 벌레가 몰래 껍질 속에서 파먹은 정도라서 겉으로 모르는 게아니라, 겉껍찔부터 시커멓게 파먹어들어가서 딱 봐도 알게 생긴 상황. 특히 큰 옥수수를 하나 넣어놓은 경우엔 어김없이... 아오 짜증! 썪거나 벌레 먹은 옥수수는 상품성이 없으니 아예 팔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상자째 사도, 오이나 감자, 고구마를 박스째 사도 늘 그런식이다. 맨 위에는 알이 굵고 실한 놈으로 그럴듯하게 담고 아래쪽은 부실하고 작은 놈들로 채워놓는 방식. 물론 일부 농산품 직거래의 경우엔 그냥 골고루 크고작은 아이들이 '정직하게' 한꺼번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마트든 시장이든 겉만 번지르르 담아놓는 건 똑같다. 제발 좀 그러지 말지...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그러면 불법이라던가 뭐라던가... 농업 생산자의 양심상 절대 그러는 법 없다던데 왜 우리나라는 투명 플라스틱에 딸기 한 팩을 사도 아래는 오종종 작은 딸기가 위쪽에만 굵직한 딸기가 얹혀있느냐고! 젠장... 설마 이 나라 국민성에 보편적으로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가? 


생산자와 유통업체는 아마도 좋은 상품만 찾는 소비자를 탓하겠지만, 겉만 번지르르 포장해놓고 내용물이 다른 상품을 좋아라 할 소비자는 아무도 없다. 농축산물이란게 당연히 균일하게 자랄 수 없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으니, 제발 눈속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선택받는 방식이 정착되기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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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는 어렵다

투덜일기 2015. 7. 8. 22:20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친구 말이 요즘 애들은 종이 다른 인류인 것 같다고 했다.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도 도무지 알쏭달쏭, 그냥 받아들이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실제로 희곡수업의 연장선에서 단체로 연극관람을 따라갔던 날 목격한 장면인데, 15학번이라는 여학생이 친구들이랑 재잘재잘 떠들다 말고 좀 떨어져 서 있는 우리(그러니깐 늙다리 교수와 교수 친구들)에게 달려오더니 한껏 애교 띤 목소리로 소리쳤다. "교수님, OO이가 자꾸 놀려염. 때려주떼염!" +_+ 

놀란 우리들이 나중에 은근히 친구를 놀렸다. 야, 너 대학교수 아니고 유치원 보모 같더라... 


물론 한두 명의 행동으로 다 싸잡아서 손가락질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건지도 모르지만,암튼 스무살 아이들도 제 앞가림 잘 못하고 유아적 행동양식을 버리지 못할진대, 십대는 오죽하랴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고 몸에서 사리가 나오든 말든 의연하게 버티려고 하고 있는데 진짜로 어렵다. 가정불화(?)로 집을 나온, 혹은 집에서 쫓겨난 십대 조카를 데리고 지낸지 두달이 다 되간다. 팔자에도 없는 고등학생 뒷바라지를 하느라 새벽밥 해먹이고, 종종 학교까지 태워다 주고, 밤마다 안자고 노는 애한테 빨랑 좀 자라고 하소연하고, 그래봤자 소용없이 악순환의 연속으로 아침이면 눈도 못뜨는 애를 열댓번씩 깨워서 또 아침을 먹이고... 으악... 


친구네 자식들은 대체로 너무도 모범생이어서 사교육도 제대로 안받고 대학에 척척 들어가거나, 특목고에서도 막 장학금을 받는 우수학생이거나, 혹간 재수를 하고 있더라도 제 부모 위할 줄 아는 속 깊은 아이들이던데, 살다살다 이런 십대는 정말 금시초문이다. (물론 그간 감추어졌던 속썩이는 십대들의 이야기를 알음알음 전해 들으며 약간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똑같은 양태를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ㅠ.ㅠ) 


엄청난 세대 차이 뿐만 아니라 과거 나의 학창시절을 돌이켜보아도 약간 반항기는 있었으되 대체로 '모범생' 범주에 들었던 내가 '문제적' 십대 소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조카가 이미 중학생 때부터 학교에서 벌점 전교 1위를 도맡았던 아이인 걸 감안한다면 말이다... (하필 또 심히 규율이 엄한 학교를 다니긴 했다. 교복 치마 길이, 머리, 화장, 수업태도, 지각, 결석... 가뜩이나 까다로운 학교에서 조카는 그 모든 규정을 다 무시하고 거듭 위반했다. 님좀짱이심;;) 째뜬 뭐, 학교에서 치마 짧다고 머리 염색했다고 화장 진하다고 뭐라 그러는 건 나도 웃기는 규율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공부랑 무슨 상관이냐고... (교사들은 상관있다고 말할 테고 현실적 통계로도 어쩌면 상관 있겠지만 암튼...+_+)


물론 학교가 '사회적 규범'을 가르치고 몸에 배게하는 교육공간임은 알지만 매사 온몸으로 반항하는 존재도 한둘 있어야한다고 쿨하게 넘어가기로 하자. 하지만 그밖에도 내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십대의 행동양식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대체 왜 그럴까 계속 고민해보지만 결론은 아무 이유가 없다는 것. 그냥 그들은 그런 또래라고 봐야하는 걸까. 


일단 이 녀석들은 밤에 잠을 자지 않는다. 밤새도록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통화하며 킬킬거린다. 학교 안 갈거냐고 아무리 잔소리 해도 소용없다. 잠이 안온다는 것이 핑계. 휴대폰 화면 오래 들여다보면 뇌파가 이상해져서 잠 안오는 게 당연하다는 설명 따위는 개나 주라지..


아침엔 깨워도 당연히 못일어난다. 5분만, 10분만... 꼼지락거리다가 결국 매일같이 지각이다. 학교에서 지각비를 걷으면 뭘하나. 별 소용도 없다. 그러고선 학교 가면 당연히 수업시간 내내 엎어져 자겠지. 안봐도 비디오다.


늦게 일어나서 지각을 할 지언정 '화장기 없는' 얼굴로는 절대 등교하지 않는다. ㅠ.ㅠ 이젠 아주 차안에서 화장 마무리하는 것에 맛을 들여서 노상 나를 운전수로 써먹는다. 지각을 하든 말든 혼자 가! 라고 큰소리도 몇번 쳐보았지만... 이 무대포 십대는 보란듯히 1교시를 가뿐하게 째는 시간에 어슬렁 어슬렁 집을 나섰다. 맙소사...  결국 엄청난 지각비는 내 주머니에서 나갔다. ㅠ.ㅠ 


신발 신는 방법도 이상하다. 남자애들은 제 사이즈보다 큰 운동화에, 여자애들은 제 사이즈보다 작은 운동화에 발을 구겨넣어 신는다. 아대체 왜??? 전족하는 옛날 중국 여자들도 아니고! 째뜬 요즘 여자애들은 신발이 앙증맞아 보여야한다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원래 사이즈와 상관없이 발을 구겨넣어 운동화도 작게 신는다. 운동화 사주러 갔다가 자꾸 내 운동화보다도 작은 걸 산다고 해서 한참 싸웠는데(중학생때만 해도 240 신던 아이가 지금 225를 신겠다고!), 조카애만 이상한 게 아니고, 요즘 여학생들 대체로 다 그렇다는 신발가게 직원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운동화 디자인도 앞코가 짧아서 발이 작아보이는 모양이 인기란다. +_+ 반면에 남자애들은 한두치수 크게 신는 게 멋이라고. 280 정도는 신어줘야 키크고 늘씬한 남자로 인정된다나 뭐라나. 


하의실종이 대세임은 알지만, 십대들은 치마도 반바지도 너무 짧다. 처음에 몸만 달랑 우리집으로 온 터라 당장 입을 옷을 사줘야했는데 맙소사.. 백화점에선 층층마다 뺑뺑 돌았어도 아예 옷을 살 수가 없었다. 내 눈엔 충분히 짧은 미니스커트와 반바지도 너무 길어서 촌스러우시다고... ㅠ.ㅠ 결국 길거리 패션 천국인 이대앞으로 가서 길이가 딱 한뼘밖에 안되는 미니스커트와 함께 영 마뜩찮은 요란한 디자인의 티셔츠와 남방을 사줘야했다. 끙...


공부는 원래 타고난 것이고, 취미 없는 공부를 강요할 마음도 없으나 기말고사 기간인데도 평소와 아무런 차이 없이 TV 리모컨 아니면 휴대폰만 갖고 씨름하는 아이를 보며 이젠 잔소리할 전투력도 상실했다. 어차피 고등학생 된 이후로는 조카네 집에서도 방에 교과서 한 권 돌아다니는 걸 본 적이 없다. 책은 다 학교 사물함에 두고 다니는 물건이지 들고 다니는 게 아니란다. 당연히 연필이나 볼펜도 안 가지고 다닌다. 묵직한 화장품 파우치만 등교 필수품. @.,@ 그냥 학교만 잘 다녀주면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게 만든 놀라운 십대와 사는 건 하루하루 참으로 스트레스다. 오매불망 방학하기만 기다리는 중. ㅠ.ㅠ  방학만 해봐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도 다시 늬집으로 쫓아낼거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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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현실

투덜일기 2015. 6. 28. 22:08

줄리엣 비노쉬와 조니 뎁이 나왔던 영화 <초콜릿>. 찾아보니 2000년 작품. 벌써 15년이 지났다. 아이고 세월무상. 영화관에 가서도 봤지만 이후 케이블에서도 가끔 해줘서 몇번 더 본 적이 있다. 식탐녀답게 '음식'이 나오는 영화는 재미가 있든 없든 일단 넋놓고 보는 편이라, <초콜릿>은 아마도 조니 뎁에 대한 팬심으로 보러갔다가 초콜릿 열망까지 부풀리게 됐던 것 같다.


아무튼 책이든 영화든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혹은 기분에 따라서 나이에 따라서 감상 포인트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맨 처음 볼 땐 아마도 조니 뎁한테 매혹됐겠고... 이어 줄리엣 비노쉬가 만든 초콜릿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졌을 법한데... 나중엔 노년의 엄마 때문인지 주디 덴치 이야기가 오래 남았었다. 


영화에서 주디 덴치는 어떤 이유인지 같은 마을에 살면서도 손자를 거의 만날 일 없는 당뇨병환자 할머니다. 줄리엣 비노쉬가 마법의 초콜릿으로 꽉 막힌 마을 주민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인데... 주디 덴치는 줄리엣 비노쉬 덕분에 손자와 화해하고, 초콜릿이 죄다 들어가는 음식으로 파티를 연 자리에서 금지된 음식들을 마음껏 먹고는 그날밤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 


금지된 음식인 달콤쌉쌀한 초콜릿을 마음껏 먹고 죽다니... 영화를 보면서는 강렬한 백합 향에 질식해서 숨을 거두는 방법 만큼이나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질병 때문에 자기가 너무도 좋아하는 음식이나 행동을 못하게 되는 불행과 죽음의 위협이 뒤따르는 소소한 행복 가운데서 양자택일을 해야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한 건강 쪽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그게 이성적, 합리적이기도 하고. 비록 구차한 인생이라고 한탄은 하겠지만서도.


근데 막상 현실에서 용감무쌍하게 죽음의 위협이 뒤따르는 소소한 행복을 선택한 사람들을 보면, 영화처럼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버럭 화가 난다. 


사례1. 당뇨병 환자이신 지인의 아버지. 혈당조절용 먹는 약 단계를 넘어서 매일 인슐린 주사기를 배에 푹푹 꽂으셔야 하는 단계로 한 차례 발가락 절제수술까지 받으셨다. 당연히 식사요법이 매우 중요하고,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는 절대 금물이다. 하지만 자식들이 아무리 잔소리를 해대도, 간식으로 좋아하는 단팥방을 한꺼번에 두세 개씩 드신단다. 어차피 인슐린 맞을 건데 뭐 어때! 이러면서... ㅠ.ㅠ 혈당조절이 잘 안되면 말초혈관이 또 막혀서 발가락이 남아나지 않을 텐데 어쩌시려고... 아오...


사례2. 과일광이신 우리 엄마. 과일에 비타민과 무기질, 섬유질이 많이 들어 건강식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과당 때문에 건강한 사람도 과일을 많이 먹는 건 별로 좋지 못하단다. 가령, 건강검진 받았을 때 나더러도 과일은 하루 사과 반개 정도만 먹으라고 했었다. 하물며 당뇨병환자인 우리 엄마야 오죽하랴! 근데 삼시세끼 후식으로 과일을 골고루 한개씩 후딱후딱 해치우셔야 직성이 풀리는 건 도무지 고쳐지는 습관이 아니다. (그나마도 자제해서 하루 세번 과일 한알씩이지, 맘껏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참외 한 광주리도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왕비마마의 주장.) 

헌데 요번에 대장내시경을 하면서 용종 4개를 떼어냈고, 이틀간 죽을 먹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연히 과일도 금지. 헌데 이 노친네 내시경 사흘 전부터 과일을 금지당한 관계로(실은 너무 괴로워하시길래 내가 사과랑 토마토 갈아드렸단 말이다!) 이틀을 더 과일을 굶으려니 죽을맛이었나보다. 아침 댓바람부터 자고 있는 딸을 깨워 과일 먹으면 안되느냐고 성화. 단칼에 안된다고 잘랐는데, 알고보니 벌써 천도복숭아 한개 잡수셨다고. +_+ 정 드시고 싶으면 갈아드린다니깐 아 놔;;;

용종 제거하고 난 상처에 클립으로 찝어놔서 자극적이고 거친 음식 드시지 말라는 건데... 으으으...


사례3. 류마티스 환자 작은아버지. 류마티스 치료약이 워낙 독해서 간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꽤 오래전부터 들었다. 그래서 간 수치가 높아졌다고... 그러니 조심해야한다고... 하지만 '똥고집'은 집안 내력인듯, 힘든 일은 좀 쉬셔야한다, 술은 절대 안된다...고 주변에서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완전 무시. 그러더니 이 양반 결국 얼마 전 간성혼수로 쓰러지고 말았다. (하기야 등산으로 다져진 건강이라 자신하며 술담배 매일 즐기던 울 아버지도 큰소리 치다가 졸지에 가셨으니 그 피가 어디 가랴)  병명은 알코올성 간경화. 아... 기가 막히다 정말. 류마티스 약만도 문젠데 거기다 술까지. 60대 남자들의 무대뽀 정신은 정녕 아무도 못말리는 것인가.


그깟 과일 하루만 더 참지 왜 식탐을 못 버리느냐는 잔소리에 뭐 어때,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라며 '아몰랑 화법'을 시전하신 엄마한테 버럭버럭 한참 화를 내고는 독설로 마무리를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니깐!' 나는 괜찮겠지, 이 정도는 괜찮겠지, 요행을 바라다가 큰 코 다친다는 것, 후회할 땐 이미 늦었다는 걸 사람들은 왜 잘 모를까. 물론 나도 큰소리칠 입장이 아님을 안다. 남들 잘 때 자야한다고, 모든 사람들의 몸에 돌아다니는 암 세포를 죽이는 건강한 호르몬은 밤에 자야 나온다고, 스트레스와 화는 암세포를 키우는 자양분이라고... 다 알면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걸 뭐. 그러니깐 반성한다는 얘기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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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기

투덜일기 2015. 6. 25. 22:01

약속이 있어서 동네 전철역으로 내려가 개찰구로 막 들어서려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뒤에서 "전철 타는 데가 어디에요?"라고 물었다. 돌아보니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바닥을 더듬더듬 짚으며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시각장애인인 것 같은데 점자 표시에 익숙하진 않으신 듯. 주변엔 나밖에 없어서 내가 도와야하는 건가 돌아서려니 개찰구 바로 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야구모자를 쓴 청년 하나가 뛰어나와 할아버지 팔을 잡았다. "이리로 들어가시면 돼요."


다행이다 싶었던 나는 먼저 카드를 찍고 들어와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할아버지는, 아 일단 카드부터 꺼내야지.. 그러면서 주머니를 뒤져 더듬더듬 카드를 기계에 대충 들이댔고, 청년이 할아버지 손을 제대로 옮겨 대주고는 가로 막대기도 밀어주었다. 그러고는, 그 안에서 전철 타는 거는 부탁드릴게요...라고 내게 말하는 청년. 당연히 이제부터는 내가 도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끄덕끄덕.. 하고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물었다. 제가 잡아드릴까요, 저를 잡으시겠어요? (얼마 전 궁궐에서도 시각장애인 해설사 교육이 있었는데, 시각장애인 분들은 본인이 잡는 쪽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래야 앞서 안내하는 사람의 몸놀림 감각으로 지형을 파악할 수 있다고... ) 


할아버지는 계단 손잡이만 잡으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 손을 선뜻 잡고 (땀으로 끈끈한 할아버지의 손 느낌이 불쾌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순간 메르스... 라는 단어도 떠오르긴 했다;) 계단 난간에 올려드렸다. 계단은 성큼성큼 수월하게 내려가시는 할아버지. 어느쪽 방향으로 가시냐 물으니 종로란다. 나와는 반대방향. 마침 곧 전동차가 들어온다는 표시가 떴다. 이제 곧 전철 온대요. 그랬더니 4-4, 4-4 타는데... 라고 외치시는 할아버지. 바로 계단 앞이 4-4였다. 문앞에 세워드렸더니 안전문 기둥을 손으로 어루만져 위치를 확인하셨다. 나는 이제 임무 완료했다고 여겨 뒤로 물러났다. 무사히 타는 것만 보면 되겠지.


하지만 문이 열리고 더듬더듬 느릿느릿 전철에 오르는 할아버지 뒷모습을 보며, 아 잘못했구나 싶었다. 좀 전에 개찰구에서 할아버지를 나에게 인도했던 분식집 청년처럼 옆에 같이 타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고 할아버지를 인계했어야 옳지 않았을까? 그럼 손잡아서 전철 태워드리고 자리까지 잡아줬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도움의 손길이 계속 이어져 종로에서도 누군가 전철에서 손잡아서 내려주고 출구 방향도 찾아주고... 목적지까지 호의의 물결이 계속 이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연결을 내가 끊은 건가 싶어 좀 아쉬웠다. 누군가를 사심없이 명쾌하게 돕는다는 건 참 쉬운게 아니구나 싶었던 짧은 경험. 다음엔 같은 상황에서 좀 더 잘 도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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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현대미술관

놀잇감 2015. 6. 24. 21:51

네이버 캐스트에서 봤던가. 황규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메조틴트 판화전 작품에 끌려 날짜를 벼르다 보러갔었다. 과천 현대미술관은 그냥 공간만으로도 내가 좋아하는곳.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 덕분이겠지만.... ^^ 4호선 대공원 역에서 내려 코끼리 열차를 타고 동물원 앞에서 내려 미술관으로 좀 더 걸어가도 좋고... 봄 가을 날씨 좋은 날엔 그냥 차길따라 그냥 죽 걸어올라가도 괜찮다. 그래도 너무 더운 날씨엔 20분 간격으로 다니는 에어컨 빵빵 셔틀버스가 짱.

집안에 판화가가 있어서 판화작품에 유독 관심이 가는 이유도 있지만, 전시 설명에서 본 <메조틴트>라고 하는 오래 된 에칭 기법의 색감이 아련하고 예쁘다는 느낌이 들었고 작품 성향도 아기자기했기에 보러 가야겠어! 마음을 먹었던 것. 

​포스터 예쁘고... 작가의 작업실을 전시해놓은 공간도 좋았다. 우리 막내고모 작업실에도 있는 프레스 기계가 한 구석에 작은 걸로 하나 놓여있음. 

​만약에 작품을 하나 준다면 뭘로 가질까.. 하는 고민은 이번에도 계속되었지만 딱히 마음을 정하진 못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판화작품보다 노년이후엔 회화작품이 많아서 사이즈가 큰 대작은 의외로 다 유화였다. ㅠ.ㅠ 나는 메조틴트를 더 많이 보고 싶었을 뿐이고! ㅎㅎ 내 기대와 욕심이 좀 과했던 모양이다.

일단은 황규백을 다 돌아보고 나서 점심은 라운지 d에서 피자와 파스타를 먹었다. 값도 별로 싸지 않은데 모든 게 셀프 서비스인 건 좀 아니꼽지만 커피까지도 맛은 괜찮은 편이니 대체로 만족.  

점심과 커피로 에너지를 충전한 뒤 다시 전시 관람 재개. 과천 미술관에선 황규백 이외에도 여러 전시를 하고 있어서 지치지 않을 정도로만 휩쓸고 다녔다. 의외로 <벽>을 소재로 한 소장전 작품들이 좋았고... 

각기 다른 인체를 동판에 부조로 붙인 왼쪽 작품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누구 작품인지 벌써 까먹었다;; ㅠ.ㅠ 오른쪽 망치질하는 인간은 광화문 흥국생명 앞에도 설치미술이 있는 조나단 브로프스키 작품. 


<우리가 알던 도시>라는 강홍구 박진영의 사진전도 구경했는데...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황량한 풍경들을 담은 사진들은 다 내 추억속에서 끄집어낸 것도 같아서 친근했지만 감동적이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 헌데 이 전시실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났다. 영화배우 정진영씨! 인적 거의 없는 전시실을 혼자 소리없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도 나는 한눈에 엇! 알아봤을 뿐이고... ^^; 대체 유명인을 만나서 사인을 받으면 그걸 뭣에 쓰나 싶은 생각을 갖고 있음에도 (보아, 박진영, god 사인을 같은 날 받은 수첩도 있단 말이지;;; ) 친구에게 얼른 볼펜을 빌리고, 갖고 있는 종이라곤 브로셔밖에 없어서 거기다 조심스레 사인을 받았다. 죄송하지만.... 뭐 이러면서 접근... ㅋㅋ (근데 쑥스러우면서도 기분 좋았다!) 



<무제>라는 작품들만 모아놓은 전시실도 좀 돌아다녔지만 유료 전시 2개는 패스했다. 대규모 기획전시는 만원도 넘게 주고 보러 가면서 왜 2천원 정도의 저렴한 유료전시도 보려하지 않을까 반성이 들기도 했지만 ㅋㅋㅋ 전시를 한꺼번에 너무 너무 많이 보면 멀미난다는 걸 핑계삼았다. 

그러고는 미술관 밖에 나와 나무그늘에서 셔틀버스 시간까지 좀 기다릴까... 그랬는데

초록빛 나무랑 바람소리가 너무 좋아서 좀처럼 일어나기가 싫었다. 한참이나 나무 아래 비스듬히 앉아 하늘과 나뭇잎 올려다보며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가 간신히 일어났다. 어쩐지 미술관 주변의 나무와 풀들은 한여름의 짙은 초록이 아니라 아직 '신록' 느낌을 간직한듯 싱그러움 물씬.

​사진이 깜깜한 초록색으로 나온 건 그늘 탓이다.. 실제로는 연초록이었는데... 잉...

​비오는 날 다시 한번 과천 미술관엘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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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4년간 쓰던 아이폰4를 드디어 6로 갈아탔다. 그놈의 요금제를 홀로 고민하느라고 또 한참 망설이다 드디어 2주전엔가 큰 맘먹고 휴대폰 바꾸러 동네 대리점에 나갔더니 내가 원하는 색깔이 없어서 퀵으로 받으려면 1시간 기다려야 한다기에 그냥 돌아선 적도 있었다. 그래서 요번엔 아무래도 휴대폰 물량이 많을 것 같은 신촌 대리점에 드가서 상담하며 제일 먼저 기계 있느냐고부터 물었다. =_+ 보유하고 있진 않지만 퀵으로 받으면 15분 걸린다고... 그 동안 서류정리하고 개통 준비하면 된다나.


하지만 결론적으로 걸린 시간은 1시간 반이 넘었다. ㅠ.ㅠ 퀵아저씨가 신촌 온 일대를 다 배달하고 다니는 듯 1시간 넘어 나타남. 아오 정말!! 내 귀한 시간!!


째뜬 짜증을 애써 감추고 새끈한 새 휴대폰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더니 왕비마마가 의외의 코멘트. 커졌는데도 생각보다 별로 안 무겁네...  어어.. 이거 뭐지. 자긴 전화 걸고 받고 문자확인만 하면 되니깐 5년째 쓰고 있는 폴더폰 아무 불편 없으시다더니만... (물론 사진 찍고 확인하는 거 어케 하는 지 모르고 mms문자는 글씨 작아서 못 보겠다고 간간이 불평을 하긴 하셨다) 슬쩍 물어봤다. 엄마도 스마트폰으로 바꿔줄까? 요새 공짜 기계도 있다던데... 


으레 아니다, 나는 됐다.. 귀찮다... 라는 대답을 절반쯤 기대하고 있었는데 또 다시 의외의 반응. 

공짜 기계도 있대? 진짜? 그럼 한번 써볼까? @.,@  

하긴 요샌 다들 큰 전화기 들고 다니면서 손주들 사진 자랑하더라... 슬며시 덧붙이는 말을 들으며 결론은 났다.


마침 휴대폰 대리점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내가 그동안 마르고닳도록 KT를 써왔음에도 (결합상품으로 묶여 있다고 들었는데) 도무지 혜택이 별로 없어서 불만이지만 바꾸는 것 또한 귀찮아서 그냥 두고 있었는데... 컴퓨터 인터넷과 휴대폰 2대를 모두 결합하면 할인율이 높아질뿐더라.. 내가 '메가패스' 시절부터 쓰던 인터넷을 더 빠른 걸로 바꿔줄 수도 있고 ㅠ.ㅠ (KT는 왜 그런 안내를 한번도 해주지 않은 걸까요? 의아해했더니 무려 10년 전부터 쓰던 거라 아마 KT일선 직원 중엔 그 사실을 아는 직원이 아무도 없을 거라고... 자기네는 점장님이 하도 오래돼서 아는 거라고...) 심지어 쓰던 폰을 반납하면 더 혜택이 있다고 한번 더 나오라는 전화를 받은 터였다. 맙소사...  쓰던 아이폰 중고로 팔아주는 건 다른 대리점도 하는데 기껏해야 한달 요금 값 정도 빠진다던데.. 암튼  오케이 담날 다시 나가기로 한 김에 엄마 휴대폰도 바꾸기로 결정.


저가 보급형 모델 중에서 완전히 기계값이 없는 공짜폰은 너무 작고 허접해서 안되겠고, 결국 제일 저렴한 기종 중에서 새 기계로 하나를 골라 드디어 70대인 우리 오마니도 스마트폰 세상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여기서 또 한 번 함정은 내 명의로 개통한 거라 어르신 요금제가 불가능하다는 것. ㅠ.ㅠ 일단 석달 쓰고 나서 명의변경을 하고 요금제도 바꾸기로 했다. 개통과 명의변경과 요금제 변경을 한꺼번에 할 수는 없다는 듯...


암튼 걱정은 노친네가 스마트폰 익히기 어려워 스트레스를 받으실지 모른다는 것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노인들 마우스 더블클릭이 불가능하듯, 화면 '터치'부터 난항이었다. 뭐든 꾹~ 눌러야 직성.. 그것도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ㅋㅋㅋ


일대일 과외를 하다가 말로는 아무리 반복해도 안될 것 같아 눈높이 매뉴얼을 4장이나 꼼꼼히 적어 외우시라고 한 뒤 계속 실습을 하고 있는데...으아...내가 만약에 교사가 되었다면 얼마나 무능하고 신경질적이고 짜증만땅인 선생이 되었을까 실감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기껏 설명을 하고 나면 금방 딴 소리.. 아우... 버럭버럭... 


젊은 사람도 다 익히려면 1달은 걸린다고 뻥도 슬슬 치면서 차근차근 천천히 익히시라고 하는데도 성질은 또 왜 그리 급하신지.... 그러면서 자꾸 뭐가 안된다 안된다.. 왜 내가 하면 안되냐... 푸념만..


카톡방에 동생들 다 불러다놓고 엄마의 스마트폰 세상 입성을 축하드리라고 했었지만, 이건 축하할 일이 아니고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째뜬 엄마가 스마트폰 들고 씨름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도 있단다. 시간이 정말 잘 간다는 것. 애들이 왜 노상 휴대폰에만 빠져 있는지 알겠다나. ㅋㅋㅋ 아직 전화걸기와 문자 입력 단계를 넘어서지도 않았는데 그렇단다.  과거 검찰청에서 최고 뛰어난 타자수였다는 자부심을 동원해 문자 창에 애국가 가사를 쳐셔 보내기도 하셨다는데 대체 그건 어디로 사라진 걸까나? ㅋㅋㅋ 


아무튼 스마트폰 이전에도 가끔 낮에 늦게까지 자고 있으면 왜 안 일어나느냐고 거실서도 내 방으로 휴대폰으로 전화하시는 양반인데 걸핏하면 문자나 카톡 보내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이제까지는 자판 작고 정신없다고 문자는 보는 것만 하셨었는데....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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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오

투덜일기 2015. 6. 15. 22:09

주말에 수락산에 갔었는데 중간에 낙오가 됐다. 하산 길 시작하자마자 일부러 느림보들을 모아 앞세워 내려오고 있었으므로 후미에 있다가 일행과 떨어져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중간에 꼬리를 놓치면서 갈래길에서 엉뚱한 길로 내려간 거였다. 근데 낙오자 6명 중 맨 끄트머리에 있었던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단 걸 맨 처음 알았다. 내가 앞사람을 따라 무작정 내려가고 있으려니 뒤에서 우리 단체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OO! OO! 어쩌구저쩌구... (나중에 알고 보니 혹시 일행중 무작정 직선 코스로 내려간 사람 있을까봐 갈래길에서 OO 우측으로!라고 외친 거였단다) 뒷말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깨달은 나는 다시 길을 올라가며 외쳤다. OO 여기도 있어요!! 


하지만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듯 등산로는 다시 조용해졌다. 하산길도 아니고 다시 거슬러 올라가는 길에서 내가 앞선 멤버들을 따라잡을 리는 만무했다. 일단 나는 다시 소수가 내려간 길로 내려가 상황을 알렸다. 우리 잘못 내려왔어요! 다른 사람들은 오른쪽 길로 갔어요! 


그랬더니 산악마라톤도 하시는 선배님과 등산 고수 후배가 수락산은 등산로가 많아서 어차피 가다가 다 만나게 될 거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내가 가리킨 방향은 뒤풀이 장소인 '수락골' 방향(서쪽)이 아니라 북쪽이라나... 고수들이 그렇다면야 그런 거지. 일단 우리 6명은 더 이상 헤어지면 안된다고 꼭 붙어 움직여야 한다고 다짐하며 하산을 계속했다. 마침 올라오는 등반객 두 사람을 만난 우리는 수락골 방향을 물었다. 이쪽으로 내려가면 수락골 가는 길 나오나요? 그랬더니 그 젊은이 자신감 넘치게도 '아니'라고, 길도 안보이는 왼편 숲쪽을 가리키며 저리로 내려가야 수락골이 나온다고 말했다. 나름 방향감각이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보기엔, 그리고 좀 전에 헤어진 일행들이 간 방향과는 완전 반대방향을 가리키는 조언에 나는 의심을 품었지만, 가다 말고 다시 돌아서서까지 방향과 갈 길을 일러주는 그 청년의 호기에 우리는 길도 안 보이는 숲으로, 말하자면 비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내눈엔 길도 아닌데! 등산 고수들은 이 정도면 길이 있는 거라고... 쌓인 낙엽에 발이 푹푹 빠지고 아슬아슬 한뼘 밖에 흙이 안보이는 이상한 숲길로 우리를 이끌었다. 어차피 산 내려가면 좀 벗어났더라도 택시 타고 집결지로 가면 된다고... 하지만 길은 점점 더 험해지고, 설상가상 하늘이 깜깜해지더니 비까지 흩뿌렸다. 좀 전까지 햇빛 쨍쨍 눈부셔서 선글라스 끼고 있었는데! 나뭇가지를 헤치고 지나느라 긁히고 찔리고... 인적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지만 주등산로와 달리 암벽에 묶여 있는 건 알량한 빨랫줄 아니면 줄줄이 엮어 놓은 운동화끈! ㅠ.ㅠ 그걸 붙들고 유격훈련 하듯이 한 길 넘는 암벽을 내려갔다. 하지만 제법 내려가도 주등산로와 만나지지가 않았고, 나는 다시 일행들이 간 방향과 너무 달라 불안하다고 꿍얼거렸다. 


그제야 네이버 지도로 현위치를 확인. 수락산이 요상하게도 전화가 안터지는 곳이 많았고 종종 인터넷도 먹통이었다. 드디어 휴대폰에 지도가 뜬 순간 우리는 완전 엉뚱한 곳으로 내려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남양주군 별내가 나온단다. ㅋㅋㅋㅋ 결국 다시 우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미친 놈 뭐야! 길을 모르면 모른다고 가르쳐주질 말든지 왜 잘난 척 틀린 길을 가르쳐줘가지고!!! 하산길에 만난 남자가 가르쳐준 방향은 정 반대인 동쪽 방향이었다. 나 원 참. 그리고 등산하다 길을 잃으면 괜히 모르는 길 질러갈 게 아니라 다시 올라가 원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


우린 다시 가느다란  빨랫줄이나 운동화끈 같은 줄에 목숨을 걸고(!) 익스트림 스포츠 즐기는 인간이거나 약초꾼들이나 다닐 법한 이상한 숲길과 암벽을 타고 다시 정상을 향했다. 4, 50분 헤맨 끝에 드디어 밥먹고 하산하던 주등산로와 만난 순간, 희한하게도 하늘은 다시 밝아져 햇빛이 쨍쨍했다. 좀 전에 다니던 길과는 전혀 다른 세상. 음침한 회색 세계에서 벗어난 느낌은 순전히 심리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나 혼자였으면 다 뻥이려니 하겠지만 비 등산로에서 헤매며 비 계속 내리면 몇몇은 방수 옷 없는데 어쩌나 단체로 걱정했다규! 


지나고 보니 다 웃을 일이고 인상 깊은 추억이지만 생각할수록 길 잘못 알려준 그 남자가 생각난다. 원래도 소심해서 타인에게 잘 묻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어쩌면 나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 이번에 애써 주변에 묻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며 오히려 더 꼬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모르면 사실대로 모른다고 할 일이지, 그 남자는 왜 아는 척을 했을까? 진짜로 안다고 생각했을까? 비슷한 방향도 아니고 정 반대 방향을 가르쳐주면서?


본인이 의식하진 못하겠지만 그런 사람이야말로 이 사회에 병적인 존재가 아닐까 심히 비약하는 결론까지 내리게 된다. 무작정 어디론가 사람들을 막 끌고 가다가 '이길이 아닌개벼...' '아님 말고..' 하는 식의 리더나 조언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결과적으로 무사히 낙오자들을 다독여가며 이끌고 하산에 성공한 등산 고수 두 사람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하산길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해 남은 얼음물 홀라당 거의 다 마셔버린 하수들과 달리, 고수들은 보온병에 든 오미자차, 보냉팩으로 감싼 얼음물이 끝까지 남아 있어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ㅠ.ㅠ 염분과 당 떨어지는 경우를 대비한 각종 간식까지도...) 선뜻 "아무 길로나 질러가면 돼!"라고 함부로 생각한 건 잘못이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50명도 넘는 인원을 리드하면서 평소처럼 갈래길에서 방향을 지시해주는 사람을 세워두지 않은 주최측도 잘못했다! (산행 책임자는 그래서 모두에게 긴 반성의 글을 올렸다 ㅋㅋ) 하지만 이번엔 워낙 인원도 많고, 뒤풀이 장소 확보를 위해서 무거운 짐과 함께 선발대(주로 빌빌대는 멤버들 뒤치다꺼리 해주는 고수들)를 여럿 파견하는 바람에 미처 못 챙긴 걸 안다. 그래도 섭섭한 건 섭섭한 것. ㅋㅋ


그간 거의 매일 휴대폰 앱으로 근력운동을 좀 했고 앞산도 가끔 올랐지만 체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몰랐는데, 긴장한 탓인지 낙오하기 이전에 정상 오를 때도 이상한 암벽에서 밧줄이나 쇠줄 타고 오르기를 거듭 시도했고 (부들부들 떨면서... ㅠㅠ) 나중에 낙오한 뒤 되돌아가는 길에도 유격훈련이 아니고 뭐냐 싶게 엄청 생고생을 했는데도 밧줄 잡았던 어깨만 약간 뻐근할 뿐 비교적 몸이 멀쩡한 것이 놀랍다! 비록 입안은 너덜너덜 다 헐었지만서도... ㅎㅎㅎ 혹시나 산에서 낙오되면 나 혼자서도 집에 잘 찾아가야한다며 산행 루트 설명할때 귀 쫑긋 열심히 듣는 편이고, 휴대폰 안 터질 것에 대비해 배낭에 나침반도 매달고 다니지만 실제로 낙오를 하다니... ㅋㅋ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다. 물론 그날따라 산행 지도도 안보고 딴짓했고 휴대폰 안터져도 나침반 보잔 말은 못 꺼내겠더라... 고수들이 있는데 하수가 무슨...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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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하나마나 푸념 2015. 6. 13. 00:34

​경복궁이 이렇게 한산할 수가. 이것이 바로 메르스 효과.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바글거리던 경복궁 근정전 앞 마당이 텅 비었다. 정기 휴관일처럼 보일 정도다. ^^;

무료해설을 원하던 단체 예약은 모두 취소됐고, 그야말로 자원봉사자들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여유롭게 경회루 앞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노닥거려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상황. 그래도 궁궐에 사람 없어 좋을 것 같다며 찾아온 소수의 사람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평소 관람객의 최소 7할은 차지했던 아시아권 관람객이 전무하니 경복궁에서 이런 모습도 연출이 되더군. 작년엔 세월호 때문에 여행 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던데 올해도 또... 전염병 창궐하는 후진국에 누가 오고 싶겠나. 나라도 여행계획 취소할듯.  

설마 메르스 환자가 궁궐 나들이 오겠어, 그러면서(자가격리 대상자가 울릉도 관광도 간 걸 보면 뭐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도 같지만) 이래저래 한산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기에 딱 좋은 날이었는데, 한 가지 짜증나는 옥에 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청와대로 오가는 헬기들의 굉음. 경복궁 후원쪽에선  다다다다 두 대씩 날아와 청와대에 내려앉는 모습을 코앞에서 볼 수 있고 그럴 때면 바로 옆에서 얘기를 해도 하나도 말이 들리지 않는다. 아오 시끄러워랏.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를 했다. 아몰랑, 미국 갈거야... 뱅기탈거야... 그러다가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깐 헬기 타고서라도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댕기면서 항공마일리지 늘리는 거라고... 뭔 일만 터지면 해외로 도망쳐야 하는데 이번엔 못 가서 어쩌나. 쯧쯧.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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