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기

투덜일기 2015. 6. 25. 22:01

약속이 있어서 동네 전철역으로 내려가 개찰구로 막 들어서려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뒤에서 "전철 타는 데가 어디에요?"라고 물었다. 돌아보니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바닥을 더듬더듬 짚으며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시각장애인인 것 같은데 점자 표시에 익숙하진 않으신 듯. 주변엔 나밖에 없어서 내가 도와야하는 건가 돌아서려니 개찰구 바로 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야구모자를 쓴 청년 하나가 뛰어나와 할아버지 팔을 잡았다. "이리로 들어가시면 돼요."


다행이다 싶었던 나는 먼저 카드를 찍고 들어와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할아버지는, 아 일단 카드부터 꺼내야지.. 그러면서 주머니를 뒤져 더듬더듬 카드를 기계에 대충 들이댔고, 청년이 할아버지 손을 제대로 옮겨 대주고는 가로 막대기도 밀어주었다. 그러고는, 그 안에서 전철 타는 거는 부탁드릴게요...라고 내게 말하는 청년. 당연히 이제부터는 내가 도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끄덕끄덕.. 하고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물었다. 제가 잡아드릴까요, 저를 잡으시겠어요? (얼마 전 궁궐에서도 시각장애인 해설사 교육이 있었는데, 시각장애인 분들은 본인이 잡는 쪽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래야 앞서 안내하는 사람의 몸놀림 감각으로 지형을 파악할 수 있다고... ) 


할아버지는 계단 손잡이만 잡으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 손을 선뜻 잡고 (땀으로 끈끈한 할아버지의 손 느낌이 불쾌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순간 메르스... 라는 단어도 떠오르긴 했다;) 계단 난간에 올려드렸다. 계단은 성큼성큼 수월하게 내려가시는 할아버지. 어느쪽 방향으로 가시냐 물으니 종로란다. 나와는 반대방향. 마침 곧 전동차가 들어온다는 표시가 떴다. 이제 곧 전철 온대요. 그랬더니 4-4, 4-4 타는데... 라고 외치시는 할아버지. 바로 계단 앞이 4-4였다. 문앞에 세워드렸더니 안전문 기둥을 손으로 어루만져 위치를 확인하셨다. 나는 이제 임무 완료했다고 여겨 뒤로 물러났다. 무사히 타는 것만 보면 되겠지.


하지만 문이 열리고 더듬더듬 느릿느릿 전철에 오르는 할아버지 뒷모습을 보며, 아 잘못했구나 싶었다. 좀 전에 개찰구에서 할아버지를 나에게 인도했던 분식집 청년처럼 옆에 같이 타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고 할아버지를 인계했어야 옳지 않았을까? 그럼 손잡아서 전철 태워드리고 자리까지 잡아줬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도움의 손길이 계속 이어져 종로에서도 누군가 전철에서 손잡아서 내려주고 출구 방향도 찾아주고... 목적지까지 호의의 물결이 계속 이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연결을 내가 끊은 건가 싶어 좀 아쉬웠다. 누군가를 사심없이 명쾌하게 돕는다는 건 참 쉬운게 아니구나 싶었던 짧은 경험. 다음엔 같은 상황에서 좀 더 잘 도울 수 있을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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