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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0.12 이상한 일 6
  2. 2015.10.08 거장 이쾌대 & <북한프로젝트> 4
  3. 2015.10.07 번역가란... 3
  4. 2015.10.06 TV 먹방의 거짓말 6
  5. 2015.09.29 물건 정리 원칙 6
  6. 2015.09.29 안토니 가우디 전 4
  7. 2015.09.16 세밀가귀 - 리움미술관 6
  8. 2015.09.14 한복 욕심 2탄 14
  9. 2015.09.09 케이트 10
  10. 2015.09.07 욕심은 끝이 없다 10

이상한 일

투덜일기 2015. 10. 12. 23:32

어제 오늘 베란다 창문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렸다.

왕파리가 날아가다 유리에 부딪치는 소리도 아니고...

말벌이 밖에서 돌진해오는 소리도 아니고...

태풍 불때 바람에 흔들린 나뭇가지가 휘청휘청 유리창에 살짝 닿을 때의 소리에 가장 가까운 것도 같고... 

누가 손톱으로 톡톡 유리를 두들기는 소리 같기도 하고... 대체 뭐지?


빨래 건조대 너머로 내다보아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밖에서 삐리릭찌르르르르 새소리만 요란할 뿐.

혹시 귀가 이상해져셔 환청이 들리는 건가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안되겠단 생각에 주렁주렁 빨래가 널려 있는 건조대를 창가에서 옆으로 치우고 

창문 시야를 죄다 틔워놓고 지켜보고 있으니 범인이 금방 발각되었다.


크기는 딱 참새 만하고 색깔은 검정색과 흰색, 회청색이 어우러진 새 한마리가 창문 한 가운데도 아니고 맨 아래쪽 창틀 바로 위 유리를 부리로 톡톡 두들기며 자꾸 날아들었다. 너 뭐니?


송추 전원주택에 사는 막내고모네는 넓은 유리창으로 가끔 참새도 날아들고 제비도 날아들어 전속력으로 날아온 새들이 죽어 테라스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하는 일이 있어서, 신문지를 붙이곤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나마 이 영리한 작은 새는 전속력으로 날아와 몸을 부딪치는 게 아니라 작은 부리로 유리창을 톡톡 톡톡 두들기며 날갯짓을 하는데, 그게 하도 구석이라 건조대로 창이 절반도 넘게 가려져 있을 땐 보일 턱이 있나. 


이누무시키, 왜 들어오려고 그러느냐고 내가 창문 앞에서 오락가락 위협적인 몸짓을 보였더니 금방 포르르 벚나무로 날아가버렸는데, 겁도 없이 내가 가만 서 있으면 자꾸 또 날아와 그짓거리를 했다. 너 뭐냐? 밖에서 볼 땐 우리집 유리창에 나뭇가지 열매나 벌레들이 더 유혹적으로 비치나? 아래쪽은 베란다 난간 때문에 나무가 안 비칠텐데... 흠. 


집앞 벚나무와 살구나무에는 뭐 먹을 게 그리도 많은지, 버찌가 그렇게도 맛있는 먹이인지, 아니면 잎사귀마다 구석구석 작은 벌레들이 살고 있는지 아침마다, 아니 온 종일 온갖 종류의 새들이 날아와서 시끄럽게 먹어댄다. 산비둘기도 날아오고, 이름모를 각종 작은 새들이 와글와글... 참새는 아니던데. 


전면 유리나 거울로 된 대형건물엔 새들이 마구 날아들어 죽기 때문에 맹금류의 모양을 한 스티커를 붙여서 미리 도망가게 한단다. 그걸 버드세이버(bird-saver)라고 한다지? 우리집에도 맹금류 스티커를 붙여야하는 걸까, 그냥 살살 두들기는 거니깐 냅둬야하는 걸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고는 아무려나 인간으로선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일도 또 녀석이 창문을 두들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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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는 몇년 전 만난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조만간 대규모 회고전이 있을 거란 예고를 듣고 기다렸던 전시다.

근대와 일제 강점기, 그리고 분단의 현실까지 근현대사를 개인의 역사로 지닌 인물이란 것도, 조선의 서양화가로서 다양한 시도를 한 것도 흥미로웠다. 근대화가 전시에서 이쾌대란 인물을 처음 알게 됐을 때, 부인 유갑봉 여사와의 애틋하고 달달한 '연애담'도 그림 못지않게 인상깊었음을 고백한다. 옛날 사람들이 워낙 성숙하기도 했고 시절이 하수상하여 나이가 꽤 들어서 고등학교를 다녔다지만 휘문고보 졸업반때(그래봤자 19, 20살이다!) 주고받은 연애편지들은 으어... 엄청 진지하고 성숙하다. 실제로 두 사람 졸업반때 결혼을 했다는 것 같다. ㅎㅎ

연애담도 워낙 유명하지만 결혼 이후에도 얼마나 금슬이 좋았는지, 웬만한 그림 속 여자들은 죄다 모델이 아내인 유갑봉인데 애정을 듬뿍 담아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느낌이 척 보기만 해도 전달된다. 대상을 깊이 사랑하지 않고서야 그렇게 예쁘게 정감 있게 담아낼 수가 있을라고...

여러 편지와 개인소장품도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글씨는 또 어찌나 정갈한 명필인지! "맺힌 구석이 한 군데도 없이, 평생 평온한 인생을 누린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글씨체" 같다는 것이 같이 전시 관람한 친구의 평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핏 도슨트의 설명을 듣자니 그냥 '만석꾼'도 아니고 '삼만석꾼'의 아들이었단다. +_+ (정갈하고 깔끔했던 글씨체는 역시나... 포로수용소 시절엔 좀 흐트러진다. 북한 시절엔 어떠했을지 몹시 궁금..)

일제 강점기에 일본유학을 할 정도면 당시에 잘 먹고 잘 산 부유층이리라 짐작 가능하지만 대충 잘 사는 정도가 아니었던 듯. 유학시절 아내도 줄곧 일본서 함께 지냈단다.

째뜬 이쾌대가 월북화가임에도 그 수많은 작품들이 무사히 보존될 수 있었던 건, 거제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이쾌대가 아내 유갑봉에게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라고 부탁했으나, 아내가 그림을 한 개도 팔지 않고 대신 시집 올 때 받은(해온?) 패물들을 팔아 먹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쾌대가 생전에 쓰던 고풍스러운 책상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옆에 놓여있던 예쁜 지함이 바로 패물함이었대고, '물목'이었던가.. 여러가지 품목이 적혀 있던 화선지가 함에 들었던 패물 목록이었단다. 대단하다 싶기도 하면서, 또 워낙 어려운 시절인데도 나름 풍족하게 살았을 이들에 대한 괜한 반감까지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였다(한국전쟁 이후 부산 피난살이 하면서.... 유갑봉보다는 한 살 많고, 이쾌대와 동갑인 1913년생 우리 할머니는 생선광주리를 이고 다니셨다던데;; 울 할머니도 이북과 만주에선 몸종 거느리고 사신 아씨마님이었다규~ ㅋㅋ )

하여간에 조선사람, 한국사람을 서양 미술기법인 '유화'로 그려낸 그림들은 대부분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서양의 명화들을 따라 그리려한 느낌이 드는 대작들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나는 주로 '예쁜 여자들' 감상하는 재미에 푹빠져 다녔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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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란...

놀잇감 2015. 10. 7. 14:02

​오래 전에 돌아다니던 사진이다.
어딘가 올려놓고 글도 쓴 것 같은데 블로그는 아니었나보다.
며칠 전 번역을 하는 친구 셋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다 이 사진이 다시 떠올라 돌려보며 깔깔댔다.
공감 백퍼~라면서.
​그나마 우리말은 번역가/통역가를 확실하게 나눠쓰지만 영어로는 둘 다 translator라서 더욱 이런 오해를 사겠지.


친구들이 번역가인 우리를 생각하는 모습과
엄마가 상상하는 모습과 (물론 울 엄니는 이제 내 실체를 아시지만)
세상의 통념과...
셰익스피어를 꿈꾸는 우리들의 야망에 이어 현실까지.... 볼수록 웃프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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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거짓말이 아니고 취향과 입맛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의심많은 성격 답게 먹거리에 관한 한 TV 속 이야기를 잘 믿지 않는다. TV 맛집 선정에 관한 검은 뒷거래 얘기도 심심찮게 들리고,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은 종종 유명 맛집에도 적용됨을 알기 때문이다.

몇년에 한번씩 한국에 다니러 오는 LA 친구가 이번 11월에 방문계획을 알려오며, 가고픈 곳 먹고픈 것들을 미리 알려왔다. 신나게 여행 계획과 맛집 탐방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친구가 가고프다고 한 집 중에서 한 군데는 내가 퇴짜를 놓았다. '탕수육'으로 유명하다는 어느 유명 요리사의 중식당이었다. 

마침 우리집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고,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기 이전에 세번쯤 가보았지만 단연코 그 집 '탕수육'은 별로였다. ^^; 물론 며칠 전에 예약해두어야 먹을 수 있는 '동파육'과 파삭파삭한 '군만두'가 맛있다는 건 나도 인정한다. 먹느라 바빠 대충 찍기는 했지만 두고두고 감상하려고 사진도 찍어왔을 정도. ㅋㅋ

이것이 동파육당연히 이건 군만두

하지만 탕수육은.. 너무 달고 딱딱하고 별로였는데! 하필 울 오마니 생신날 온 가족을 대동하고 갔던 터라, 조카들이 가장 좋아하는 탕수육이 맛없어서 우린 '다시는 가지 말자'는 결론을 내린 음식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집 탕수육이 전국 최고라고 셰프들도 인정하는 맛이라는 격찬을 여러 프로그램에서 보면서 뜨악해졌다. 흠.. 그날만 유독 요리사들이 우리가 먹을 탕수육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걸까?  째뜬 그 이전에도 이 중식당을 추천한 지인들(ㅂㄹ와 D양)도 탕수육 맛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었는데.. +_+ 

어쨌거나 지금은 너무도 유명해져서 다시 가보려해도 두어달 전에 예약을 해야한다니, LA친구에겐 소문만큼 맛도 없고 예약도 어렵다고 일러주었다. 차라리 그 주변에 셀수없이 많은 다른 화교 운영 중식당을 아무데나 가더라도 평균적인 맛은 보장할 수 있다고... ㅎㅎ

또 한군데 소문과 달리 실망스러웠던 집은 '손만두'로 유명한 음식점이었다. 내가 가본 날도 손님들이 엄청나게 밀려들어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으음.. 막상 먹어보니... 가격대비 만족도로 보아 다시 가고픈 곳은 아니었다. 마치... 열심히 요리학원에 다닌 새댁이 때깔은 좋게 상을 차렸는데 음식 맛은 어딘가 좀 부족한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슴슴하고 담백한 맛이 그 음식점의 특징이라고는 해도, 굳이 그 돈 주고 사먹으러 다니고 싶진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그건 내 생각일 뿐, 유명한 맛집 순례하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가겠지만...


알록달록 예쁜 손만두를 일부러 포장해서 사가는 사람들도 많던데 솔직히 나는 도무지 저런 형광색을 보면서는 식욕이 돋질 않았다. ㅠ.ㅠ 참으로 입맛과 취향은 가지가지다. 

둘이 먹을 만두전골이 3만8천원인가 했던 거 같은데, 재료를 죄다 국산으로 좋은 것만 쓴다고는 해도 너무 비싸지 않나? 물론 눈물나게 맛있다고 느낀다면 그 가격도 저항이 없겠지만, 나로선 좀 ㅎㄷㄷ 아까웠다.  

(이 사진은 식탐을 달래는 보관용이 아니라 만두색이 놀라워서 언제고 포스팅하려고 올초에 찍었는데 참 오래도 묵혔다가 써먹는다) 


요즘은 정말 TV채널만 돌리면 어디서도 요리사들이 혹은 일반인들이 활약하는 먹방, 쿡방을 볼 수 있다. 식탐가로서 한동안 정말 열심히 제이미올리버쇼, 헬스키친, 마스터셰프코리아 같은 프로그램을 찾아보았고 얼마전까지도 수요미식회, 냉장고를 부탁해, 한식대첩, 집밥백선생까지 줄줄이 챙겨보았지만 이젠 다 시큰둥해졌다. 일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요리대결, 맛집 탐방을 하는 판국이니 원... 식상해하는 이들이 나뿐은 아닐테고, 머잖아 또 유행타듯 다들 휙 사라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간혹 엄청난 극찬 요리를 만나게 되더라도 절대 넘어가지 않을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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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정리 원칙

투덜일기 2015. 9. 29. 17:28

지지난주엔 까마득한 후배들의 원어연극 공연을 보러갔었다. 대체로 숫기가 없고, 원어 연극도 당연히 '공부'의 일환으로 생각했던 늙다리 선배들과 달리 요즘 아이들은 주로 '스펙쌓기'의 목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기 때문에 배우를 시켜주지 않으면 아예 중간에 빠져버린단다. 무대에 서는 게 아니라면 개인 시간을 죄다 바치면서 몇달간 지속되는 연극 연습을 견뎌낼 동기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 옛날 나는 무대에 세워준대도 싫고, 순진하게 그냥 영어로 희곡 작품 하나 통째로 외우는 게 어딘가... 그런 걸로도 충분하다고 여겼었는데 ㅋㅋ 


암튼 끼 넘치는 후배들의 공연은 해마다 기대치를 갱신하고, 이번에도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아마추어 학생들의 원어연극은 그냥 대사만 안까먹고 다 외워도 훌륭하다는 게 관람객으로서 기본적인 입장이지만(요샌 자막도 나와주어서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고 사실 대사 버벅거려도 잘 모른다 ^^), 요즘 애들은 대체로 '연기'가 된다! +_+ 놀라워 놀라워...


하여간 뭐 그 연극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고, 작품에 나왔던 대사가 요즘 계속 생각난다. 등장인물 하나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라며 애인에게 물건 정리 원칙을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1. 쓸모가 있는가? (Is it useful?)

2. 나를 기분좋게 해주는 물건인가? (Does it make me happy?)

3. 내가 좋아하는 건가? (Do I love it?) 


이 세 가지 질문에 해당되지 않으면 내다 버리는 게 맞다고 해서, 자기 남편을 내다버렸다(!)는 설명이 이어졌는데 깔깔 웃으며 다들 맞다맞다 박수를 쳤다. 


물론 세 가지에 다 해당되는 물건이나 대상이라면 꼭 곁에 두어야한다는 의미다. 명절을 앞두고 살림을 또 일부 정리하면서 계속 되뇌여보았고, 아직도 집안에 내다버릴 물건이 가득하단 사실을 깨달았다. 뒤풀이 자리에서 후배 하나가 어떤 '관계'를 놓고서도 이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더더욱 인상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관계마저도 '쓸모'를 따지는 건 씁쓸하지만, 친구가 아니고서야 주로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접근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친구와 우정이 더 소중한 거겠지. 


근데 그걸 알면서도 사실 무심함을 핑계로 친구와 우정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은 별로 기울이지 않는다. 그냥 간간이 떠올리면서 잘 지내겠지, 문득 안부가 궁금하고 보고 싶기도 하지만 먼저 선뜻 연락을 하는 건 민망하고 꺼려지는 기분. 어쩌면 상대는 나를 그간 '관리가 필요한' 인간관계망에서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지레짐작. 그러니깐 그냥 가만히 있는 쪽이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자포자기의 심정? 어쩌면 게으름일수도 있겠고. 


무심한 나에게, 너 그러다가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수가 있다고 경고하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은 거라는 말도. 으음. 돌연 마음이 스산해서 휴대폰 연락처를 이리저리 뒤지다가 전화 한통 걸지 못하고 그냥 또 이렇게 블로그에나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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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가우디 전

놀잇감 2015. 9. 29. 16:51

볼까말까 망설이다... 결국 보러갔다.
조만간 바르셀로나에 직접 가서 가우디 건축을 봐주겠노라는 것이 망설임의 이유였는데 ㅜㅜ 그저 욕심일뿐 사실은 스페인에 언제 가게될지 모르니깐.

건축관련 전시는 도면 말고 대체 뭐 볼 게 있을까 의심스러우면서도 막상 가면 볼거리가 많았던 것 같다. 특히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지을 때도 죄다 모형으로 만들어보고 실험을 거쳐, 사후에도 지금껏 계속 그의 설계에 따라 건축이 진행되고 있다니깐 더더욱 보여줄 게 남았겠거니 했다. 비록 복제품이더라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구엘 저택 같은 건물의 사진과 입면도, 평면도, 모형 구경도 감탄스러웠지만, 건축학도 시절 도면들은 으아... 얼마 전 리움미술관에서 본 <세밀가귀>의 섬세함이 떠올랐을 정도였다. 정밀하고 정교하기가 이를 데가 없더라. 색감도 예쁘고... 건축학위 따고나서 자기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명함도, 작업실 책상도예쁘고...

문짝, 문고리 하나까지 죄다 직접 건물에 어울리게 디자인해 넣은 건 또 어떻고! 나중에 기념품숍에 들어갔을 때 평소처럼 엽서 하나 사고마는 게 아니라 가장 탐나는 건 복제품 나무의자였는데 가격이 450만원이었던가... ㅋㅋ ​그래서 엽서는 사지 않았다. 전시는 미리 봤지만.. 엽서는 정말로 바르셀로나에 가서 사주겠어... (괜한 오기를 부린 건가? ㅋ)

​깨진 사기조각으로 만든 모자이크를 <트렌카디스>라고 한다는데 진짜로 주변에서 인부들이 주워온 타일조각을 죄다 색깔별로 구분해놓고 활용했고, 피렌체에서 값비싼 유리공예품을 사다가 죄 깨뜨려서 사용하기도 했단다. 어휴... 전시장 천장에도 더러 둥근 타일 조형물 복제품을 매달아놓았던데 거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으니, 좀 웃겨도 전시장 입구의 구엘공원 도마뱀을 찍어왔다. 저런 걸 트렌카디스라고 한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기부금과 입장료만으로 계속 건축이 진행중이고 가우디 사후 100주년인 2026년 완공을 목표로하고 있다는데, 나도 그 전에 꼭 구경가서 입장료 수입에 보태주고 싶다! ㅠ .ㅠ 

가우디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11월 1일까지, 입장료는 15000원인데 GS포인트 카드가 있으면 2천원 할인해줌. ㅎ 

한가람미술관에서 동시에 하도 여러 전시를 벌이는 바람에, 보테로 작품들은 좁은 전시실에 마구 구겨넣듯 비좁게 홀대를 해서 맘상했는데(모딜리아니 전시장도 그런 편이라고;), 가우디 전시실은 그나마 공간할애를 많이 해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큰 작품은 별로 없고 사진 아니면 연대기, 도면과 모형 정도라서 그런 기분이 들었나? 암튼...

가우디 전시를 보고 한가로운 마당으로 딱 나왔는데 반대편 미술관 건물에 은은하게 비친 노을빛이 눈에 들어와서 한장 더 찍었다. 이렇게 한가롭고 인적 드문 미술관이 얼마만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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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전까지는 좀 탱자탱자 놀면서 여름 내 소진된 심신을 재충전하겠노라 결심했는데, 아직도 머리는 좀 더 쉬어야하는지 책은 눈에 잘 안들어온다. 그럼 전시나 보러 다니자 싶었으나, 이미 프리다 칼로는 날짜를 놓쳐버렸고(9월 4일까지였더라) 이 전시도 끝나기 이틀 전에 겨우 볼 수 있었다. 천만다행... 기대가 컸는데도 완전 감동했다. ㅠ.ㅠ

'세밀가귀'는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의 나전을 보고 칭송한 말이란다. '세밀함이 뛰어나 가히 귀하다'라는 뜻이라고. 

그런 말이 나올만도 하게 정말 섬세하고 치밀하고 정교하고 아름답고... 더 묘사할 말이 생각 안났다. 일부러 그런 작품들만 모아놓은 전시인데도 으아.. 감탄스러웠다.

오래 전 대만갔을 때도 박물관 가득 정말 신기하고 정교한 세공 공예품들을 많이 봤지만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나 재주가 놀랍다고 느낀 건 많았어도 '감탄스럽게 아름답다'는 느낌은 덜했던 것 같은데 내가 팔이 안으로 심히 굽었다고 쳐도 우왕... 구석구석 섬세한 아름다움이 유물마다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참 놀랍게도 잘 골라서 모아놨다고 생각했음. ^^; 


게다가 웬일로 전시장에서 사진찍는 걸 제지하지 않았다. 물론 전문작가가 찍은 더 멋진 유물사진을 찾아 볼 수도 있겠지만, 눈으로 보고 그 자리에서 그 감동을 찍어와 홀로 넘겨보며 새삼 흐뭇해하는 기분은 또 다르다. 

해서 남들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나도 열심히 찍어왔고, 며칠 핸드폰 앨범 넘겨보며 아웅 예뽀라... 실실 헤벌쭉 행복했다. 


저 유명한, 청동기 <다뉴세문경>!!부터 시작해서 신라, 백제, 가야, 고려, 조선시대까지 유물 종류가 다양했는데, 조선시대엔 섬세한 아름다움이 주로 회화쪽이다보니 자주 보던 풍경화, 초상화 전시실에선 감동이 덜했다. 물론 터럭 하나도 사실과 똑같이 묘사한 집요하리만치 세밀한 초상화를 실물알현한 건 기뻤지만, 내가 주로 감탄했던 건 신라와 가야의 금세공품, 전돌, 고려 청자와 나전, 불상 등등이었다. 


기껏 휴대폰 사진에 그 감흥을 얼마나 담아왔겠냐마는 그래도 일종의 자랑질. ^^;

이 둘은 사리함이다. 옆에 있는 유리병 크기가 손가락보다 작음..  신라시대 유물이었던 것로 기억;;하는데 뭐 확실하진 않다. 저 함 외부에도 죄다 세밀한 부처와 구름무늬 등등이 새겨져 있다. 

위 사진 셋 중 왼쪽은 고려청자인가보다.. ㅠ.ㅠ 나전인 줄 알고 셋이 붙였는데 아 놔...

맨 오른쪽은 실물이 아니라 디지털 화면으로 찍어온 통일신라시대 나전 거울이다. 가운데 보이는 고려 나전함은 거북이 등딱지에 전복껍질과 기타 재료를 입혔다는 것 같다. 신라시대 나전은 무늬의 세밀함이 좀 떨어지는 것도 같지만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은 역시나 최고. 아.. 저런 보석함이랑 거울 갖고 시프다.. 뭐 그런 말도 안되는 욕심을 품었다. 죄다 국보 아니면 보물. ㅋㅋ

불경을 보관하던 화려하고 기품 있는 경전함도 여럿 전시되어 있었는데 전시실 양쪽에서 볼 수 있는 유리함에 들어 있어서 사진에 잘 담기질 않았다. 거의 일본과 유럽에서 빌려온 유물이었던 듯. 유출된 보물 환수 문제가 늘 뜨거운 감자인 건 알지만, 중국이나 일본 유물로 잘못 알려지지 않는다면 세계 유수 박물관에서 그 아름다움을 떨치고 있는 것도 나름 가치있는 일인 것 같다. 모두가 탐낼만 한 보물인 것을 어쩌겠어! 외국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초라한 한국관 유지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흠.. 암튼 좀 민감한 사안이긴 하다. 



이 섬세한 유물 세 세트는 죄다 '전돌'(塼돌) 혹은 '전석(塼石)'이라고 부르는 전통 바닥장식이다. 일종의 타일!

신라나 고려시대에 지은 오래된 사찰 대웅전 가운데는 종종 바닥에 아직도 저런 국보급 전돌이 깔려있는 곳이 있다. 칠갑산 장곡사 갔을 때도 연꽃무늬 전돌을 본 적 있다. 도자기 빚듯이 기와와 전돌에도 저렇게 다 무늬를 새겨서 가마에 구워 사용했다는 얘기다. 옛날 사람들의 미적 감각과 '인테리어' 욕심은 정말 어마어마했던 것 같다! 



손잡에에 앉은 작은 개구리, 몸통에 새겨진 소년무늬가 정교했던 고려청자 주전자 사진은 아무리 찍어도 잘 안나와서 실패하고.. 그 대신 투각으로 만든 두침(?) 찍어왔음. 목침은 나무로 만든 베개라는 걸 그날에서야 깨달았다. ㅋㅋ 고려시대 귀족들은 낮잠자는 베개도 저런 화려한 청자로 구워서 사용했다뉘.... 어휴... 



그 옛날 교과서에서 주로 봤던 것 같은 고려청자도 새삼 감탄하며 구경했다. 어떻게 도자기로 저런 그물 같은 걸 표현해내는지 원... 왼쪽 술병(?) 무늬 아오... 저런걸 '당초'(唐草)무늬라고 하는데, 옛날엔 당나라에서 유입된 무늬라고들 했지만, 그게 아니고 '덩굴풀'을 이두로 음차하면서 그렇게 표기한 것뿐이라는 게 최근의 결론이다. 주로 인동덩굴 무늬를 저렇게 표현했대고, 왕조나 나라의 영속성을 기원하는 의미로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도 발견되는 유서 깊은 무늬라고 함. ^^v

아 근데 저 오른쪽 도자기의 용도가 뭐였더라? 감탄하며 보다가 그걸 놓친 듯.. 연적이었던가... -_-a

불교신자인 울 오마니는 암만 다녀봐도 신라와 고려 불상이 전 세계적으로 제일 '잘생겼다'고 주장하신다. 근데 사실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비례미도 그렇고 섬세한 표현도 그렇고.... 중국이나 일본, 심지어 인도 불상도 어쩐지 '쨉'이 안되는 느낌이다. 이 사진들은 둘 다 부처가 아니고 무슨 '보살'인데 오른쪽 사진은 귀여운 동자처럼 나왔지만 실물로 봤을 땐 잘생긴 느낌이었다. 흔히 절에 다니는 아줌마 할머니들을 '보살'이라고 부르지만 보살은 여성이 아니고 그냥 성을 초월한 무성일 걸 아마... 왼쪽 사진 유물은 브로셔에도 들어 있는 <금동보살좌상>. 14세기 고려 보물이고, 일본에서 빌려온 거란다. 아까비... 


그밖에 작고 앙증맞은 금동불상도 하나같이 정교하고 아름다웠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맨 오른쪽 불상의 유연한 자세! 잘생기기도 했지만 저렇게 우아하고 편안하게 약간 비스듬히 나른하게 앉은 모습을 금속으로 표현해내다니 으으.. 기막힌 솜씨로다. 


관람료가 8천원이었는데, 전시장 나오기가 아쉬워서 반바퀴쯤 더 돌아본 뒤 미적미적 걸어나오며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품격'이라는 말은 역시 아무데나 붙이는 단어가 아니었다. 지난주말로 전시가 끝나버려서, 일찌감치 구경하고 와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러가라고 포스팅으로 권하지 못한 게 안타깝네그려. 

그래도 몇몇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니 언제고 발품을 팔면 또 볼 수 있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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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욕심 2탄

놀잇감 2015. 9. 14. 23:03

​전통한복 예쁜 거야 누구보다 잘 알지만... 가슴에서 끈으로 꽉 동여매고 펄럭이는 치맛자락 조심히 잡으면서 속치마에 속바지까지 챙겨입으려면 너무도 불편하단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궁궐에서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은 철철이 예쁜 전통한복을 바꿔입어가며 아리따운 한복 자태를 뽐내시기 때문에 그간 구경하는 재미도 아주 쏠쏠했다.  나야 뭐 계속 꾀가 나서 안내도 설렁설렁, 복장도 대충 생활한복으로 근근이 버텨오고 있는데, 내가 궁궐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걸 안 이후 주변에서 장롱 안 박스에 잠자고 있던 한복들을 내게 보내왔다. 언니도 제대로 한복 입고 해! 라면서... 체격이 비슷한 큰올케가 제일 먼저, 그러고 나선 후배 둘이나 더... ㅋㅋㅋ

하지만 전통한복을 입더라도 손에 그림 파일 들고 펼쳐 보여가며 설명을 하려면 양손이 자유로워야하기 때문에 치마가 일반 자락치마면 입기가 곤란하다. 통치마로 리폼을 해야하고, 길이도 좀 짧아야 질질 끌리지 않으면서 계단 오르내리기도 편하고... 

그렇다면 한복치마를 수선해야한다는 얘긴데! 머릿속으로는 내가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과, 에구 어딜... 어디 수선집에 맡겨야지.. 하는 생각이 오락가락하면서 1년 넘게 한복 세 벌이 먼지를 뽀얗게 쓰고 옷방에서 뒹굴고 있었다. 게다가 큰올케 한복은 무려 19년전! 결혼할 때 울 엄니가 청홍새색시 한복과 더불어 행사용으로 한벌 더 해주신 거라서(큰조카 돌잔치와 이후 집안 어르신들 잔치때 입었음) 연분홍치마는 예쁜데, 남색 저고리는 완전 구닥다리 느낌! 소매 통이 너무 넓고 품도 컸다. 더욱이 본견 깨끼저고리라 나 홀로 수선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반면에 후배Y가 보내준 한복은 꽃분홍 치마에 아이보리색 저고리. 그나마 한 10년 전 동생 결혼색때 입은 거라 스타일은 그럭저럭 요즘것과 거의 비슷하다. 옷고름이 넓고 길지만 소매통이 완전 붕어배래는 아니라는 얘기. 하지만 우어.... 꽃분홍색이 너무 눈부시다... 후배P가 보내준 한복은 그야말로 빨간치마에 초록저고리.. 새색시 폐백용 한복이었다. 흐음... 세 벌이라지만 당장 활용가능한 건 큰올케의 연분홍 치마와 후배Y의 아이보리 저고리 정도.


다른 분들도 더러 그리 비싸지 않은 중고 한복을 구입해서 통치마로 수선을 해입을 요량으로 동대문 수선집에 맡겼다기에 결과물을 기다렸다. 어디 한번 보고 나도 맡기든지 말든지... 일단 과연 내가 전통한복을 떨쳐입을 것인가 그 용기를 낼 수 있을까부터 고민해야겠지만 암튼... <친구따라 강남가기 권법>을 시도해보려했으나 ㅋㅋㅋ 1년이 넘도록 결과물이 나오질 않았다.

동대문 수선집에서 새 한복 바느질 하느라 바빠, 도대체 수선은 해줄 생각도 안하고 1년 내내 구석에 처박아 뒀다가 그냥 주더라나. 그럼 그렇지... 역시 그럼 내가 직접 수선하거나, 아예 말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근데 통치마로 리폼을 하려면 지퍼도 달아야 하고, 주름도 요즘 스타일~에 맞게 좀 넓은 주름으로 다시 잡으려면 치마말기를 달아야한다는 '디자인'은 나왔는데 도무지 동대문 원단시장에 갈 시간이 나질 않았다. 그 핑계로 또 몇달... 물론 인터넷으로 원단과 부자재를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는 벌써부터 알아봤지만, 어쩐지 개미지옥 같고... 금방이라도 자원봉사를 관둘지 모른다는 예감도 나를 흔들었다. 그런 마당에 니가 지금 한복 꿰매고 앉았을 시간이 어디 있냐!?

하지만.. 한복 조끼 포스팅에도 썼듯이 그놈의 '욕심'은 계속 나를 부추겼고, 요번에 조끼 원단 사면서 얼른 치마말기용 자수원단과 흰천, 지퍼 따위를 후다닥 같이 사들였다. 재료만 있으면야 뭐 언제든...

그러고는 마감과 동시에 당의 조끼 끝내고, 곧이어 생산성 폭발! 또 한 건 잉여짓이 완수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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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책보따리 2015. 9. 9. 22:41

지은이 이름이 케이트인 책의 작업을 마치고, 곧이어 케이트가 등장하는 소설을 번역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장편소설엔 원래 등장인물이 워낙 많고, 영미권에서 케이트는 흔하디 흔한 이름이니 요즘 애들 이름으로 치자면 작명 순위 1위라는 '서연' 쯤 되려나? 아니지, 작가 이름으로도 익숙해야하니깐 뭐가 좋을까.. '희경'? (언뜻 은희경, 노희경 정도가 생각난다)


독자로 치면 은희경의 수필집을 읽고 나서, 다음 책을 집어들었는데 마침 그 거기 '희경'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할 확률은 과연...? 하기야 폴 콜린스의 책을 읽었는데,우연히 곧이어 읽은 다음 책에 폴이란 주인공이 등장하는 사태는 단편집의 경우 별로 어렵지 않을 것도 같다. 다만 내가 요새 하도 책을 드물게 읽으니 직접 경험을 못해서 그렇지. 


이번에 책을 번역하면서 알게 된 건데, 가계에 쌍둥이 유전자가 전혀 없는 집안에도 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놀랍게도 80명 당 1명꼴이란다. 그 정도면 엄청난 확률 아닌가!? 길 가다가 날아가는 새의 똥에 맞을 확률도 저거보다는 낮을 것 같은데, 난 그런 적 있을 뿐이고! ㅠ.ㅠ 갈매기 드글거리는 바닷가도 아니고 종로 한복판에서... 암튼 우연의 일치는 생각보다 일상에서 꽤 큰 확률로 다가오는 게 맞다고 봐야 합리적일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이 어디 그런가. 선택적인 기억력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또는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짜깁기해서 뭔가 맥락을 짓고 의미를 부여하고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행운과불운을 점치고... 


째뜬 이번 케이트 아무개가 쓴 책과 케이트 아무개가 등장하는 소설을 연이어 번역하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돌파리 점쟁이의 점괘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겠거니 싶으면서도 종종 일과 관련해선 뭔가 보이지 않는 끈이랄지 운명의 힘 같은 게 정말 있나, 의아할 때가 있다. 아 그냥 교묘한 우연의 일치라니깐! 하고 넘기면서도 혹시 몰라... 그런 기분? ^^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미술관 전시실 벽에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근대 유럽 미술사조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 이런 표정으로 뭥미; 싶어서 한참을 읽어도 결국 모르겠다 중얼거리며 걸어나왔는데, 한달도 못 돼서 바로 다음 계약 책에 그 미술 사조가 떡하니 등장해 역주를 다느라 좀 더 알아봐야 한다든지... (워낙 무식해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걸지도)


작년엔 실존 인물이었던 은행강도 선댄스 키드 이야기가 등장한 책 때문에, 역주 한줄 멋지게 달겠다는 욕심으로 당시 상황과 <내일을 향해 쏴라>로 영화화 된 과정을 위키피디아와 구글로 한참 검색했는데, 동생놈이 무슨 다큐 작품으로 받게 된 부상이 하필 <선댄스 영화제> 초청이라는 소식이 곧 날아들질 않나, 심지어 몇달이 지나 동생이 선댄스 영화제 보러 비행기타고 떠난 날, 굳이 그 책의 증정본이 택배로 도착할 건 또 뭐람. 소름끼치게스리...


하기야 이번에 끝낸 책은 시리즈라서 전권부터 따지면 케이트가 나오는 소설을 번역했는데 다음에 계약한 책은 하필 케이트가 저자였고, 그 다음 책에 또 다시 케이트가 등장인물로 나오는 셈이다. ㅋㅋ 나만 재미있나? 


어랏 신기하네, 결국 이게 천직인가 싶었던 경험은 그밖에도 더러 있었는데 기록을 해두지 않았더니 거의 다 까먹었다. 어쩌면 자꾸만 자존감도 떨어지고 연봉도 부가가치도 형편없이 낮은 이 일에 자꾸 회의가 드는데 딱히 더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달리 방법도 없으니, 무언가 비논리적인 의미부여라도 하려는 심리 탓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괜히 유별나게 기억해 연결 짓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같은 일을 20년째 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 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맥빠지고 (과연 출판업과 번역가로서의 전망은 계속 어케되는 거냐규~??) 지칠 때, 다시 슬슬 곁눈질을 하고 싶어질 때 일종의 채찍질로 괜한 운명론을 들먹이는 것이든, 정말로 교묘한 인연의 실마리가 내 삶을 관통하는 것이든... 사실 상관은 없는 것 같다. 태어나서 글을 깨친 이후로, 독서가 지루한 적 없는 사람으로서 책에 기대어 밥벌이를 한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번역하기에 아무리 한심하고 하품나는 책이라도, 직장에서 발전소 연소기기 매뉴얼이나 계약서 번역하느라 끙끙대는 것보다야 훨씬 재미난 법! ㅋ 언젠가 출판과 종이책이 완전 사양길로 접어든다고 하더라도 내 생전에는 아직 그런 날이 없을 거라 믿고 또 달려보는 수밖에.(한 십년 더? ㅋㅋ)   


제목을 케이트로 정했더니 문득 내가 번역한 책들 중에서 케이트(캐서린 포함!)란 이름은 저자로, 등장인물로 얼마나 자주 나왔는지 통계 내보고싶어졌다. 아 정말 별게 다 궁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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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면 궁궐에서 정식으로 봉사를 시작한지 만 2년이 된다.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이기 때문인지, 올해 들어선 정말 회의가 많았고 고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시간 빼앗기고 몸 축내면서 나는 봉사랍시고 과연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질문을 던지면 도무지 명쾌한 답이 안나오니 원... (장점과 단점 목록을 만든지 오래 됐다. -_-;) 

암튼 계속 툴툴거리면서도 왜 '옷 욕심'은 끝이 없는지... ㅋㅋ 화려한 전통한복을 떨쳐입을 순 없지만 이왕이면 그럴싸한, 나름 예쁜 생할한복이라도 입어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속으론 버럭~ 한다. 아니 내가 왜 이런 데 쓸데없는(?) 돈을 써야하지? 한달에 두번 자원봉사 하려고 수십만원 들여서 따로 옷을 사야하다니 이 무슨... +_+

째뜬 그래서 계절별로 돌려막기하듯 번갈아 입었던 생활한복과 내가 고쳐입은 한복으로 버티며, 이렇게 투덜거리다가 곧 그만둘지 모르니 한복에는 더 이상 투자하지 말자, 생각했으나 또 인간이 간사해서 금방 다른 마음이 들었다. 아니 왜... 추석이랑 설날에 활용해서 입으면 되잖아? ㅎㅎ (잘해봤자 한정식집 사장님 같겠지만 ㅠ.ㅠ) 물론 거기에는 일본처럼 평소에도 종종 길거리에 한복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는 괜한 소망도 한 자락 거들었다. 결혼식장이나 칠순잔치에만 입는 옷이 아니라, 도나기를 아십니까 접근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입었던 머슴 한복 말고, 좀 예쁘고 화사한 평상복으로 한복을 입는 세상이 오면 좀 좋은가 말이다.

지난 여름엔 특히 일도 밀려 바쁜 데다 집안일로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다. 좀 멀리 겉에서 볼 땐 멀쩡해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드러나는 인간들의 단점도 환멸스럽고 나 역시 까칠 본색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독설을 퍼붓게 되고... ㅋㅋ 

그러다가 또 왜 마음을 다잡았는지는 기억도 잘 나질 않는데, 암튼 몇몇 선생님들한테 미안한 마음(아니 왜?)이 들면서, 3년은 버텨보자, 뭐 이런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좀 더 견뎌보자 결정하자마자 내가 한 짓이라는 게 덜컥 옷부터 새로 사는 거였다. 관두기 아깝게... ㅋ



그러나 새로 산 생활한복의 단점은 아무래도 한복스러워서 궁궐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는 것. ㅠ.ㅠ (난 사람들이 시선 집중이 무섭다. 일종의 무대공포증?) 싸들고 다니면서 갈아입는 한복 말고, 그냥 평소에도 입어보겠다고 장만했지만 저러고 집을 나서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ㅎ

째뜬 그래서 그걸 핑계로 난 또 집에 있는 평상복을 활용해 입을 수 있는(이미 랩스커트와 마 블라우스는 활용중이므로) 아이디어에 골몰했고, 원피스에다가 한복 조끼를 걸쳐입겠다는 결론에 도달, 미친듯이 검색에 나섰다. 하지만 생활한복 파는데를 아무리 뒤져봐도 내 마음에 꼭 드는 디자인과 색깔은 없어! 내 원피스가 연한 팥죽색이라서 더더욱 색깔 맞추기도 어려웠고, 기성복을 사면 한참 길이를 자르고 품도 많이 줄여야했는데 그나마도 비슷한 질감까지 찾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또 다시 나의 결론은? 까짓것 내가만들어 입지 뭐. 

대체 왜 그렇게 무모한 생각을 덜컥 하게 되었는지 원. 아마도 중고등학생 시절 가사시간에 만들어본 한복의 경험과 마고자를 한복 저고리로 고쳐입었던 경험이 쓸데없이 무한한 자신감을 주었던 것 같다. 게다가 유튜브를 뒤져보면 한복 바느질 영상이 종종 보이기도! (깃 바느질은 정말로 그 영상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분께 감사~) 

해서 상상으로 어울릴거라 정한 초콜릿 색으로 옷감을 인터넷으로 주문한 뒤, 마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잉여짓은 바쁠 때 해야 제격이지만 그래도 이번엔 너무 난감한 상황이라... 

드디어 원고를 넘기고 나서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꼬박 시체놀이하듯 잠을 몰아잔 뒤, 몇주 전에 날아온 옷감을 자르고 오리고... 얼추 상상 속의 그 <당의 조끼>가 완성되었다. ^__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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