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투덜일기 2007. 10. 20. 19:03

이건 반칙이다.
가을이 온 것도 겨우 인정하려는 판국에 날씨가 이게 뭐냐.
오늘은 집에 있는데도 발목이 시려워서(양말도 신었다) 드디어 칠부바지도 포기하고 아예 긴바지 '츄리닝'으로 홈패션을 바꿔야 하나보다고 고민했다.
웃도리는 물론 반팔 티셔츠에 긴팔 덧옷을 껴입었다.

며칠 전 설악산에 첫눈이 내렸다는 뉴스에 더럭 겁을 집어먹었더랬는데
이번엔 아예 첫 얼음이 얼었단다.
일기예보를 백퍼센트 믿을 건 아니지만 중부권도 체감온도가 영하로 내려간다는 말에
위축되어 오늘은 집밖으로 한발짝도 안 나갔다.
작년이었나.
공식적인 겨울을 인정하던 날을 애도하느라 온종일 이불속에서 동면모드로 지냈다는 푸념을
어디엔가 적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으스스 추워지면 늘 나의 시선은 남반구로 향한다.
이 나라가 얼어붙는 겨울 석달동안 따뜻한(?) 여름 나라에서 지내다 오는 것은 언제나 나의 아련한 소망이다.
석달 동안 동면하고픈 충동을 억지로 삼켜야하는 것도 서럽고 억울한데
10월부터 이리 추우면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

솜을 넣고 누빈 늦가을용 솜저고리(그래도 파카는 아니다)를 옷장에서 꺼내 이것 저것 입어보며
오후 내내 우울했다.
콜록콜록 밭은 기침은 아직도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는데 이런 날씨엔 겨울까지 줄곧 나랑 친구하겠다고
아예 눌러앉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겨울 아침, 뒤뚱뒤뚱 온몸이 둔할 정도로 옷을 입고 모자와 장갑 목도리까지 두르고도
드러난 얼굴이 추워서 학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다 책가방을 맨 채로 회초리를 맞았던 9살짜리 아이는
교복 아래 늘 체육복 바지를 껴입고도 무릎에 친구 체육복 웃도리를 하나 더 덮고 지냈던 여고생으로
자랐다가, 어느새 10월에도 춥다고 징징대는 중늙은이로 변해 있다.
겉모습은 변했어도 철없는 알맹이는 그대로란 얘기렸다.

아무튼 벌써 추워지니 월동대책 전혀 못 세운 서민 답게 마냥 암울하다. 젠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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