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살 소녀부터 18개월된 아기까지 어느덧 조카가 넷이다. 사랑스러운 나의 조카들이 과연 언제까지 나를 따를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인기관리 차원에서 늘 온몸을 다 바쳐 놀아주는 못말리는 고모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의 조카들은 어딜 가든 이동할 때 서로 고모 차를 타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가끔 조카 셋을 앞뒤로 다 태우고 어디론가 운전해 가다보면 사고 안내는 게 나도 신기하다 ㅠ.ㅠ) 밥먹을 땐 서로 고모 옆에 앉겠다고 싸우다 울거나 왜 만날 정민이 누나만 고모 옆에 앉으냐고 항의하며 질투를 하기도 하며 우리 집에 오면 현관문을 들어선 순간 할머니한테 인사고 뭐고 없이 "고모, 놀자~~~~!"라고 외친다. -_-;;
암튼 조카들에게 더 큰 사랑을 베풀고 받기를 원하는 이 땅의 수많은 고모와 이모들을 위하여 내가 조카들과 하는 놀이들 가운데 최근에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들만 추려 전격 공개하는 바이니 널리 애용하시기를 권한다. ^^ (허나 다른 집 조카들에게도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ㅋㅋ)
사실 말이 거창하여 '양말전쟁'이지 그냥 양말을 던지고 노는 놀이다. ^^; 조카가 정민공주 하나일때는 잘 몰랐는데, 확실히 사내녀석들은 정적인 놀이보다 과격한 놀이를 즐기는 경향이 있고 특히 싸움이나 전쟁.. 따위를 좋아한다. 작은 주머니 공을 던지고 놀 때도 있는데 그건 잘못 맞으면 몹시 아프기 때문에, 부상을 피해 시작하게 된 것이 양말 전쟁. 사실, 울 엄마와 올케는 먼지 난다고 질색을 하지만 나와 조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V 각자 양말을 벗어 공처럼 뭉쳐갖고 마구 던지며 공격을 하는 것이다. 달아나는 적을 쫓아가며 양말을 명중시키면 기분은 좋지만 곧장 탄환(?)이 떨어져 반격을 당하는 위험이 있다. 온 방안과 거실을 뛰어다니며 놀다 보면 고모는 쉽게 지치는데, 조카들은 제 엄마와 할머니의 양말까지 벗겨와서 신나게 고모를 공격하며 좋아한다. 10살된 공주부터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18개월 된 아기왕자까지도 소외당하지 않고 놀 수 있는 전천후 놀이라고 하겠다. 부작용: 가끔 양말 탄환이 어디론가 사라져 한짝만 잃어버릴 수도 있다. (지난 주에 놀고 나서 내 양말 한짝 분실했음)
그 유명한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이 끝난지 한참 됐지만, 우리 집엔 그 여파가 아직도 식지 않았다.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카페나 찻집에 많이 다닌 탓도 있지만, 암튼 어린 조카들도 그 드라마를 즐겨보았는데 그 드라마를 방영하던 즈음부터 웬만한 소꼽놀이는 '커피 프린스 놀이'로 이름이 바뀌었다. ^^ 일단 카페 주인과 종업원, 손님을 정한 뒤 카페 주인은 여러가지 소품(쿠션, 의자, 인형)을 이용해 카페를 꾸미고 손님 역할을 맡은 사람이 카페에 들어가 이것저것(커피, 아이스티, 와플, 오렌지주스 등) 주문해 먹고 마신다. 이때 지불하는 돈은 그냥 주머니에서 손만 꺼냈다가 내는 상상의 지폐이며, 나는 주로 손님 역할로 카페 분위기가 어쩌고 저쩌고, 커피 맛이 어쩌고 저쩌고 주인과 수다를 늘어놓는다. '하림'이나 '와플선기' 역할을 맡은 조카 녀석들이 때로는 사장님(주로 정민공주)과 싸우고 나서 바로 옆집에 새 카페를 차리기도 하는데;; 그때 나는 몹시 바쁜 손님 역할을 하며 양쪽을 (때로는 세 집을) 드나들어야 한다. ㅋㅋ 이때 소꼽놀이 소품은 주로 내 화장품과 미니 향수병들이 사용된다. -_-;; 이상하게 애들은 일습이 갖추어진 소꼽놀이 장난감보다 실생활 용품 응용을 더 좋아하기 때문. 요새는 카페에서 와플과 케이크 뿐만 아니라 스파게티와 피자, 햄버거, 샐러드도 팔기 시작했다. ^^
5살짜리 지환이가 특히 공룡을 좋아하여 공룡박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보니 지환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다. 누나인 정민공주는 별로 내키지 않아 하지만 그래도 하는 수 없이 협조할 때가 많다. 공룡박사가 추천하는 대로 각자 공룡이름을 정하고 그 특징에 따라(특징 역시 공룡박사의 조언을 듣거나 미리 공룡의 생태에 대해 공부를 해야한다) 사는 곳을 정하고 꾸민다. 예를 들어, 마이아사우라는 새끼들을 잘 돌보는 공룡이라 새끼(헝겊인형들)를 돌보는 데 신경을 쓰는 식이다. (다른 공룡의 특징은 벌써 까먹었다 ㅋㅋ)
평화롭게 놀려면 모두 초식공룡으로 정하는 것이 좋지만, 좀 더 과격하게 놀기를 원하는 경우 육식 공룡 역할도 정하여, 초식공룡들이 단체로 육식공룡을 막거나 결국에 다 잡아먹히거나 한다. ^^ 공룡놀이라고는 하지만, 공룡이 되어서 소꿉장난 하듯이 서로 집에 놀러가고 나뭇잎이나 과일 나눠먹고 그러다가 수틀리면 서로 싸우고, 원수가 되면 편을 갈라 약자를 티라노사우루스에게 제물로 바치기도 한다. 조카들의 상상력에 놀랄 때가 많고 또 많은 걸 배우기도 한다. 애들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놀아보면 아마 놀랄 것이다.
고모의 근력과 체력이 몹시 필요한 놀이다. 전신거울 앞에서 조카의 발목을 잡고(조카가 거울로 자신의 거꾸로 된 모습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거꾸로 들어올린 뒤 "시계는 아침부터 똑딱 똑딱~ ♪" 노래와 함께 좌우로 흔든다. 조카가 바로 인간시계추가 되는 셈인데.. ㅠ.ㅠ 20킬로그램을 넘어선 6살짜리를 흔들어 주려면 진짜 힘들다. 물론 너무 커버린 정민공주는 불가능해진 놀이다. (키 작은 고모가 거꾸로 들지를 못하니 공주는 키 큰 제 아빠에게 해달라고 하는데, 동생놈은 이런 놀이를 만들어낸 나를 몹시 원망한다 ㅋㅋ)
부작용: 시계 노래를 수십번 반복해서 불러야 하며, 팔과 어깨가 뻐근해서 뽑혀나갈 때가 되어야 그만둘 수 있다. ㅠ.ㅠ
조카들이 **랜드에 가는 걸 워낙 좋아하기는 하지만 집안 내력 때문인지 롤러코스터는 못탄다. 그에 대한 아쉬움을 놀이로나마 풀려는 듯, 만날 집에서도 놀이공원 놀이(사실 원래 이름은 '에*랜드 놀이'다)를 하자고 하는데, 놀이를 할 때만은 몹시 무서운 온갖 롤러코스터를 죄다 타고 논다. ^^ 일단은 방과 거실에 구획을 나누어, 놀이동산, 동물원, 캐리비안베이, 식당을 정하고 꾸민다. 동물원엔 집안의 온갖 인형들이 동원되고, 기다란 쿠션 버스를 타고 사파리 투어를 하는 식이다. 놀이동산에서는 소리만 들어도 무서운 바이킹과 양탄자, 독수리요새 따위를 타고 놀며 캐리비안베이에서도 제일 높은 미끄럼을 타고 내려온다. 진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온몸을 다해 연기를 해야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밥먹을 때가 되면 마치 '커피 프린스 놀이'를 하는 것처럼 다시 과정이 복잡해진다. ㅋㅋ 부작용: 조카들이 흥분하면, '퍼레이드'도 하자고 하기 때문에 고깔모자 같은 가면도구를 만들어 무척 오래 놀아야 한다.
손전등 놀이란 한 마디로 '춤'추고 노는 놀이다. 거기에 손전등으로 사이키 조명 효과를 내는 것이 포인트 ^^ 신나는 음악을 준비해 틀어놓고, 모든 불을 끈 다음 손전등 두어개를 마구 흔들면서 춤을 추고 논다. 분명 우리 조카들도 가무를 즐기는 핏줄을 이어받은 것은 틀림 없는데 워낙 숫기가 없다보니 훤한 곳이나 여러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에선 절대로 놀지 못하고 불을 끄고 손전등을 비추어주야 신나게 춤을 추며 놀아댄다. ㅋㅋㅋ 어디서 봤는지 최신 유행의 온갖 춤사위(텔미 춤을 나는 처음 조카들한테서 배웠다)를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어둠속에 서 있으면 나까지 춤을 추지는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고모로서 아주 좋아하는 놀이인데, 일단 시작하면 집엘 안 가려고 하기 때문에 막판에 울음바다가 되기 쉽다. -_-;;
온몸을 다 바쳐 놀다가 보면 당연히 체력이 딸리기 마련이다. 이럴 땐 조용히 정적인 놀이로 유도하는 것이 필요한데, 요샌 조카들이 머리가 굵어져서 그냥 "그림 그리기 놀이 하자!"고 하면 절대로 호응해주질 않는다. 이럴 때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티커를 그려주겠다고 하면 (물론 사서 나눠주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금방 좋아라 조용해진다.
프린터가 쓸만하면 컴퓨터에서 괜찮은 이미지를 찾아 라벨지에 프린트 한 뒤 위에 셀로판테이프를 붙여도 되고 안 붙여도 좋겠지만... 나처럼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경우엔 라벨지에 그림을 그리고(라벨지가 없으면 그냥 생 종이에 그림을 그린 뒤 뒷면에 양면 테이프를 붙인다. ㅠ.ㅠ 예전엔 늘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에 그림을 그려 스티커를 만들어야했다) 셀로판테이프를 덧붙여 칼로 오린다.
[#M_감이 안 온다고?|닫자|
이것이 바로 DIY 스티커다 ㅋㅋ
가장 훌륭하게 완성된 윗단 맨 왼쪽의 케이크는 5살 난 지환이가 그린 그림에 내가 색만 덧칠한 것이고 나머지는 정민공주의 주문에 따라 내가 그린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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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요샌 또 비치볼로 하는 피구(하체만 맞춰야 한다)와 숨바꼭질, 귀신 술래잡기(술래가 달리지 않고 걸어다니면서 다른 이들을 잡는 것인데 술래는 귀신처럼 무서운 표정을 지어야 하며, 도망치는 사람들은 얼음 땡 주문도 사용한다), 여행놀이(가방 싸들고 휴양지로 여행가서 소풍 및 수영하고 논다) 등등을 하고 노는듯.. 사실 뭘 하고 놀 것인지 고모 쪽에서 아이디어가 딸릴 일은 없다. 조카들은 늘 새롭고 반짝반짝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같이 놀아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고모나 이모는 그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놀아주면 되는 듯하다. ㅋㅋ
나의 조카들이 고모랑 노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또! 또! 또!" 를 지겹게 외쳐대도 체력이 허락하는 한 몸 으스러져라 놀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조카들이 돌아간 뒤엔 비록 드러누워 몇 시간 끙끙대야 하더라도 엄마들은 나가라고 내쫓아 문을 닫은 뒤 오로지 고모랑만 놀기를 원하는 조카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기분은 꽤나 아삼삼하다. @_@ 비록 체력적인 기운은 소진되겠지만 조카들에게 어린이 특유의 활기찬 '기'를 선사받는 느낌이랄까. 10년째 내가 노구를 이끌고도 충성을 다 바치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중독성 있는 마약같은 그 느낌이야말로 어린 조카를 둔 고모의 행복이 아닐는지.
사실 머지 않아 닌텐도 같은 것에 떨려날까봐 이 고모는 은근히 떨고 있다. +_+ (아직은 정민공주도 고모랑 놀려고 닌텐도를 집에 두고 오거나 차에 두고 내리는데;; 과연 그날은 언제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