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투덜일기 2009. 6. 19. 15:44

어제 아산에 사는 지인을 만나러 갈 일이 있어서 생전 두번째로 ktx를 탔다.
몇년 전 부산에 갈 때 처음 타본 ktx가 어찌나 실망스러웠던지 올라올 때는 일행 모두의 동의 하에 새마을호를 선택할 정도였다. 아무리 시간다툼을 위해 설계된 기차라지만 어떻게 제일 운임이 비싼 ktx가 새마을호 기차보다 자리가 좁은지 나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고, 겨우 1시간 차이라면 (지금은 완공구간이 늘어서 더 빨라졌을지 모르지만 그땐 부산까지 2시간 50분 걸린대놓고 3시간 걸렸었다) 만원이나 싸고 잠자기에 좌석도 더 편한 새마을호가 더 낫다 여겼고, 이제껏 누가 ktx를 탄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시간 넉넉하면 차라리 새마을호를 타라고 한 마디 거들었다.

게다가 우리가 찾아간 그 지인은 얼마전까지 천안에 살고 있어서, 용산 천안간 급행 전철을 타고 놀러간 적도 있었기에 이번에도 전철을 타고 가면 되겠거니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걸린 시간은 전철구간만 꼬박 1시간 40분이었는데, 나로선 천안까지 전철로도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개무량했던 것 같다. 중간에 전철 노선만 두어번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움은 일단 제쳐두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지인이 ktx를 타고 오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이사간 곳도 천안 시내인 줄 알았더니 아산시라나. 미리 예매를 하며 서울역에서 겨우 36분밖에 안걸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ktx를 타고 가보니 정말 눈깜짝할 사이였다. 36분이면 우리 집에서 서울역 가려고 집에서 나서고 버스 기다리고 또 버스에서 내려 역까지 걸어가고 하는 시간보다 훨씬 짧다. 천안아산까지 ktx 운임은 12600원. 전철비용은 2500원쯤 됐던 것 같다. 부산까지 가는 ktx/새마을호와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어쨌든 내 입장에선 이번에도 역시나 돈은 만원 차이. 시간도 1시간 쯤 차이가 났다. 
천안 전철역보다 천안아산 ktx역이 지인의 집과 가까운 이점도 있었지만, 함께 간 동행은 돌아올 때는 전철을 타자고 했다가 ktx를 난생처음 타보고는 마음이 바뀌어 돌아올 때도 ktx를 타고 싶다고 간절한 눈빛으로 ^^ 말했다. 내가 빠르기만 할 뿐 좌석 좁고 불편하다고 ktx에 대한 기대감을 최대한 낮춰놓았기 때문인지, 동행은 ktx 객차에 앉아 몹시 감동하는 눈치였다. 나 역시 처음 ktx를 탔을 때보다는 실망감이 덜했고, 아마 동행이 극구 1시간 40분이나 걸리는 전철을 타고 돌아가자고 우겼으면 속으로 짜증났을 것 같다. 용산 천안간 전철을 타고서도 주변에 펼쳐진 논과 밭, 산을 구경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차와 전철은 엄연히 다른 법! 게다가 서울에서 아산까지 36분이라니... 시속 300km가 넘는다는 속도를 거의 느낄 수 없는 게 신기한데 정말 빠르긴 했다.

처음 ktx타고 부산에 갈 땐 저녁이라 속도감을 더 못느껴 지루했던 걸까. 어쨌든 그때도 금요일 저녁 퇴근한 지인들과 떠나 부산 해운대에서 싱싱한 회로 늦은 저녁을 먹으며 빨라진 기차시간에 약간 고마워하긴 했지만, 뒤로 젖힐 수도 없는 좁은 좌석을 엄청 성토했었다. 나처럼 다리 짧은 인간도 답답하니 다리 길고 덩치 큰 사람들은 오죽 하겠냐고 투덜거리면서. 그런데 그새 내 다리가 더욱 짧아진 건지, ktx 좌석이 넓어진 건지(그랬을 리는 없을 텐데!) 어제 타본 부산행 ktx는 상당히 쾌적한 느낌이었다. 자리 잡고 앉았다가 고속철 본연의 모습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마자 금세 내려야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겨우 몇년 만에, 그리고 두번 만에 ktx에 대한 반감과 차비에 대한 아까움이 사라진 이유는 뭘까 고민해도 통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왕복 두시간을 아까워할 만큼 촌각을 다투어 바삐 사는 인간은 절대로 아니거늘. 그저 어디든 떠나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아무래도 또 한번 부산까지 ktx를 타고 다녀와봐야 확실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부산이 그리운 건 지도 몰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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