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병

투덜일기 2009. 8. 3. 16:21

고질병이 한두가지가 아닌 인간으로서 그래도 가장 큰 고질병은 게으름과 우우부단함, 미루기, 바쁠때 딴짓하기가 아닌가 싶다. 코앞 마감일을 앞두고 <7월까지만 놀자>고 했던 다짐도 당연히 물거품. 8월이 열린지 사흘이 지났건만 아직도 심신은 심각한 초절정 모드로 진입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게다가 마감전에 딱 한번의 예외를 두자며 정한 내일의 약속을 앞두고 고민하느라 또 다시 일손이 안잡히는 상황.
어차피 약속은 정한 것이니 나가면 될 터이나, 나의 고민은 딴 데 있다.
바로 보테로 전시회를 오전에 보러 갈 것이나 말 것이냐 하는 것.
친구 일행은 그 전시를 본 뒤 나와 만나기로 정했는데, 나도 부지런을 떨어 전시회를 같이 보고 나서 점심을 먹고 놀 것인가, 아니면 마감모드에 충실(?)하여 그냥 점심약속에만 나갈 것인가, 그것이 고민의 요지다. ㅠ.ㅠ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9월 17일까지 전시예정인 페르나도 보테로의 전시는 6월말 개관 이후 줄곧 별러오던 건데, 이번에 기회 될 때 그냥 확 같이 보는 것이 나을까 아닐까. 우유부단함 또한 극심한 나로선 결정을 못 내리겠다. 방학이니 당연히 아이들이 많을 것 같아 개학 이후로 관람을 미루는 게 좋다고 생각하다가도, 또 어영부영 게으름 부리다 아예 전시회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든다.
어차피 약속을 잡았으니 반나절쯤 더 노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이들도 있겠지만, 초절정마감모드의 작업능률을 지키기 위해선 생활리듬이 깨지면 안되는 법이다. 왕비마마의 심신회복률이 거의 95%에 도달해 드디어 아침 노동(식전약+아침밥+식후약 챙기기)에서 벗어나 심야작업과 오전취침 리듬을 회복한지 얼마 안되는데, 내일 오전에 무리해서 전시회를 보러 나가면 게으른 몸을 재정비하는데 며칠 걸리까봐 염려가 된다는 얘기다. ㅠ.ㅠ 그럼 이번엔 그냥 포기하고 다음에 보면 되잖아!, 라고 생각하려니 지난번 라틴아메리카 전시회 때 맛만 본 보테로의 그림이 눈앞에 아른거려 호기심이 불끈 동한다.

이리보면 우유부단함의 요체는 쓸데없이 미리 생각을 너무 많이하고 고민한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숨에 결정을 내리면 될 일을 나는 매번 이리 재보고 저리 재보고 만일의 여러가지 경우를 떠올리고 가능성을 점친다. 확실히 고질적인 지병이 아닐 수 없다. <우유부단>병에다 <미루기>병, <바쁠때 딴짓하기>병까지 고질병이 삼중으로 겹친 이 상황은 더더욱 고민스럽다. 아 어떡하지. +_+ 전시 포스터를 오려붙이고 나니 그림이 더 보고 싶다. 젠장. 참 싫은 나의 고질병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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