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르륵~

투덜일기 2009. 8. 13. 17:06

말복이라고 해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장을 보러 갔었다. 재래시장 분위기의 과일도매상 옆에 있는 늘 가던 마트로. 기껏 장을 다 보고 나오는데 과일가게에 놓인 수박자두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에도 말한 적 있지만, 그 마트는 주변 과일도매상 때문에 과일을 못판다. 원래 복날은 삼계탕도 먹고 맛난 여름과일도 먹는 거라는 생각에 값을 물어보니 놀랍게도 저렴. 한개 단돈 오백원이란다. 지난번 장보러 갔을 땐 무려 만원에 8개밖에 안주는 자두를 사먹었기 때문에 나는 반색하며 얼른 열개를 샀다.
속으론 <싼게 비지떡인데...>라면서 좀 찜찜했지만 아줌마가 하도 잘난척을 하며 맛있다고 추켜세우길래 아무런 의심도 안했던 것 같다. 그 옆엔 물론 그 두배인 만원에 열개짜리 수박자두도 있었지만 크기도 별 차이 안났고, 아줌마는 자랑스레 말했다. "집에 가서 북북 씻어 먹어봐요. 얼마나 맛있나..."

그런데!!
나만큼이나 과일애호가인 엄마가 현관부터 봉다리를 받아들고 얼른 씻어먹으려고 부엌으로 가더니 뭐 이런 걸 사왔냐고 하셨다. 하나같이 시들시들 과일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나는 대형마트에서 과일을 살 땐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 고르지만 과일가게 좌판에서 과일을 살 땐 주인한테 미안해서 그냥 맡기는 편이다. 같은 집은 아니었지만 지난번 그 언저리 과일가게에서 산  천도복숭아와 자두는 너무 비싸서 그렇지(한개에 1250원이라니!) 행복해질만큼 맛있었기 때문에 더욱 무방비였나보다.
꼬라지가 엉망이라도 맛이나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먼저 씻어 맛을 본 엄마는 오만상을 다 찌푸리셨다. 단맛은 하나도 없고 신맛 뿐이란다. ㅠ.ㅠ 신 과일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그 철면피 아줌마한테 너무 정나미가 뚝 떨어지고 화르륵 분노가 치솟아 그 자두를 먹어볼 생각도 나지 않았다. 생각 같아선 다시 과일을 싸들고 가서 그 아줌마네 좌판에 확 던져버리고 돌아오거나, 환불해오고 싶은데 엄마가 기름값 아깝다고 말린다.
그냥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교훈만 가슴에 새기란다. 과일은 비싸도 맛있는 걸 사야하는 거라면서. ㅠ.ㅠ
그나마 만원어치 사온 게 아니라 오천원만 버렸으니 다행이라나.
그래도 좀체 화가 가라앉질 않는다. 모름지기 장사와 거래는 신용이고 믿음인데, 어떻게 저런 사기를 치나 모르겠다. 뜨내기 장사꾼도 아니고 수십년째 거기서 과일 도매상을 하는 사람이!
생각해보니 그 수박자두가 눈에 들어온 건 다른 집엔 하나도 없는데 유독 그 집에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끝물이거나 맛있는 놈들이 대거 출하되지 않았단 의미인데 난 그걸 왜 지금에야 깨닫고 있을까. 그냥 지천으로 깔려 있던 복숭아나 사올것을... 결국 이 가라앉지 않는 분노는 바보처럼 부주의하고 생각없이 당한 나에 대한 것이다. 더 속상한 건 얼굴치인 내가 그 아줌마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그 집은 당연히 불매운동을 해야하는데 어쩐담. 그나마 끝에서 대여섯번째 집이었던 것 같으니(그도 자신은 없다만) 그 주변에선 두번다시 과일을 사지 않으리!
맛없는 저 자두를 어째야하나 그것도 심란하다. 확 버리기도 그렇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값은!) 확 다 갈아서 주스로 한번에 마셔버리자니 일일이 씨빼기가 귀찮고, 당장 되돌아가 그 아줌마 얼굴에 확 뿌려주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 것만 같은데 삼복더위에 내가 그런 에너지를 쏟는 것조차 아깝긴 하다. 해서 괜히 부아만 더욱 치밀고 있음. 우웩~~~!!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