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

투덜일기 2009. 7. 30. 23:37

왕비마마의 저녁운동을 채근하다 지쳐서 홀로 느루를 끌고 홍제천변엘 나갔다가 이를 갈았다. 하필 홍제천변 산책로에서 행사가 벌어지고 있어 문제의 분수와 폭포 앞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는 지나갈 수가 없었고 설상가상 대형 광고판으론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하는 어느 주민의 모습이 중계되고 있었다.
며칠 전 동네 버스정류장 유리에 붙어있던 홍보물을 본것도 같았다. 시낭송의 밤이라나 뭐라나 하는... 게스트 목록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유현상>이기에 속으로 큭큭 웃으며 과연 누가 가려나 싶었는데, 그건 내 생각이었나보다. 무대 위쪽으론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아래쪽 산책로에 돗자리를 깔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걸로 봐서 의외로 행사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시낭송의 밤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올까봐, 주민 노래자랑으로 프로그램이라도 바꾼 모양이었다.
일요일 낮마다 울 엄마도 송해 할아버지가 사회보는 <전국노래자랑>을 반드시 시청하는 분이긴 하지만, 나는 거기 나오는 사람들도 그 프로그램이 수십년째 장수하는 이유도 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TV에 얼굴 내보이는 게 신나고 좋을까. 내눈엔 망신살로밖에 안보이는 출연자들의 온갖 <쇼>와 <땡 소리>가 어떤 매력이 있는지 나로선 정말이지 모르겠다. 한민족이 원래 가무를 즐기기는 했다지만 혼자 끼리끼리 즐기는 거랑, 전국적으로 보여주며 즐기는 거랑은 다르지 않을까. 오늘도 나에겐 괴로운 소음이어서 더운 여름밤에 불쾌지수와 짜증을 배가하는 장면에 불과했던 주민 노래자랑을 꽤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걸 보면, 내 정서가 확실히 소수에 속하긴 하는 모양이다.
가끔 눈쌀 찌푸리면서도 일요일 낮엔 절대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리지 않는 왕비마마에게, 그게 왜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그냥 달리 볼 게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마도 한민족이 예로부터 가무를 즐겨왔다고 세뇌된 학습효과이거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지켜보는 못된 쾌감 또는 음치, 박치로서의 동병상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럼, 노래자랑 프로그램 싫어하는 나는 뭐지? 노래 잘하는 사람의 노래는 얼마든지 감사히 들어줄 수 있지만, 들어줄 가치도 없는 음치 아마추어들의 노래를 귀따갑게 참아야할 이유를 나는 도저히 꼽아낼 수가 없으니 하는 말이다. 나도 분명히 가무를 즐기긴 하는데... 참..

어쨌거나 오늘 내가 점입가경이라고 느낀 건, 동산에 억지로 파이프를 끌어올려 만들어놓은 폭포에다 이젠 알록달록 조명시설까지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자라는 나무와 풀에게도, 오래도록 그 동산을 지키고 있던 바위에게도 나는 막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연은 일단 훼손했다가 복원하고 인공적으로 마구 꾸며야 아름답다고 여기는 웃기는 취향의 행정가들과 주민들 때문에 니들이 고생이 많구나, 하고. 그나마도 밤엔 폭포 물줄기가 안보여 꺼져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젠 밤에도 그 동산에 자라는 식물들은 쉴 수가 없어졌다. 게다가 지난 폭우때 떠내려가 박살났다는 황포돛배도 어느틈엔가 새로 만들어 물레방아 앞에 세워놓았더라. 박살 난 걸 교훈삼아 다시는 안 가져다 놓기를 바랐던 내가 순진했다. 이상하게 변해가는 홍제천의 모습이 꼴사나워 구시렁거리는 나 같은 사람들이야 뒷전에서만 혀를 찰 뿐, 앞에 나서서 큰소리를 내는 이들은 대부분 분수에 폭포에 황포돛배에 볼거리 많아졌다고 좋아라하며 박수치는 사람들일 테니 아마도 얼마 지나면 또 이상한 인공 건조물이 들어설지도 모르겠다.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을 불태울 순 없는 법이라 했으니, 꼴보기 싫으면 내가 이사를 가야겠지. 그래도 자전거 도로로 한강까지 갈 수 있는 점 하나는 좋은 동네인데... ㅠ.ㅠ
할 수 없다. 그전까지는 볼썽사나운 것들 앞에서 시선을 돌릴 수밖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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