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1.07.23 장롱 밑 2
  2. 2011.07.21 새주소 10
  3. 2011.07.15 개미 소탕작전 8
  4. 2011.07.06 좋은 사람 나쁜 사람 10
  5. 2011.07.06 모르겠다 6
  6. 2011.06.29 펑크 5
  7. 2011.06.29 머리숱 염원 7
  8. 2011.06.27 ??? 9
  9. 2011.06.09 돌림노래 6
  10. 2011.06.02 소중한 침 17

장롱 밑

투덜일기 2011. 7. 23. 13:49

조카들이 다녀가고 난 뒤 일주일이나 지나서 장롱 밑을 뒤졌다. 조카들이 집에 오면 거의 빠지지 하고 하는 놀이가 있는데, 선물받은 컵받침(코르크에 금속을 덧씌워 호주 특산 동물 그림이 예쁘게 그려져 있는)을 투호놀이 하듯, 운전대 커버(역시나 선물 받은 딸기 캐릭터가 매달린 운전대 커버는 1년쯤 사용하다 이후 장난감으로 쓰인 역사가 더 길다) 안에 던져 넣는 거다. 놀이 이름을 짓는다면 <투반> 정도 되려나? 컵받침을 되도록 많이 넣은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그리 거리가 먼 것도 아닌데 6개를 던져도 난 2개 이상 넣는 적이 별로 없다. 아무렴. 그래서 거의 막내 지우와 동률 꼴찌. 제대로 조준해서 원형 커버 안에 잘 던져 넣어도 컵받침이 가벼워 막 튕겨나간다. 똘똘한 녀석은 그래서 튕겨 넣기 권법을 선보이기도.

암튼 그런데 지난주말엔 지우가 던진 컵받침 하나가 장롱 밑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그 전에도 들어간 적이 많았지만 빤히 보여 금세 꺼낼 수 있는 깊이였다면 이번엔 아예 보이질 않았다. (동그라미를 장롱쪽이 아니라 벽쪽에 놓으면 밑으로 들어갈 일도 없을 텐데 참 머리 나쁘다. 하지만 이미 방바닥엔 던지기 라인이 스티커로 붙어 있기 때문에;;;) 랜턴으로 비쳐도 안보일 정도. 하는 수 없이 꼬챙이를 넣어 더듬더듬 후려내는 수밖에 없었는데, 어휴... 뭉텅이 먼지와 함께 별별게 다 나왔다. 우선은 집안에 사차원의 세계로 향하는 구멍이 있나 의심하게 만들었던, 사라진 책 한권. 분명 머리맡에 두고 읽던 책이 어느 순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아 이상했더니만 장롱밑에 들어갔을 줄이야. 그 다음으론 몽당연필 한 자루. 긴 연필 한 자루. 실핀. 휴지조각 다수. 그림 그리다 말았거나 낙서가 적힌 이면지 여러 장. 백원짜리 동전. 물론 문제의 컵받침도 맨 마지막에 찾았다.

물건 사이사이로 꾸역꾸역 나오는 먼지뭉치와 머리칼에 넌덜머리를 내며 지난번 도배 장판 새로 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참 많은 것들이 장롱 밑에서 발견되었다. 없어진 줄도 몰랐던 머리띠, 귀걸이, 동전, 조카 양말 한 짝 같은 것들. 그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장롱 밑에 들어가 있던 건 결국 먼지 덮인 내 정신줄 한 가닥이었구나 싶어 아득했다. 이제 찾았으니 다시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그런데 다른 가닥들은 어디에서 찾아야할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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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주소

투덜일기 2011. 7. 21. 21:29

서울시 @@@구 □□로 37길 XX-X
정부가 우리집에 부과한 새주소다. (원래 주소는 서울시 @@@구 OO2동 XXX-XXX)
지번 찾기 쉬우라고 길마다 정했다는 새주소의 편리함 여부는 내 상관할 바 아니고, 그냥 마음에 안든다. 익숙한 것을 버리기가 원래 힘든 법이지만, 늘 새로운 걸 추구하는 취향도 갖고 있는 터라 단순히 낯설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따져보면 나는 이 동네에서 35년을 훨씬 넘겨 살았다. 20년 넘게 산 이 집 이전에도 우리집 주소는 번지만 달랐지 늘 OO동이었다. 전월세 계약 기간이 2년으로 정해진 지 꽤 됐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막 6개월마다 이사를 다녔다. 아이가 셋이라 시끄럽다고 집주인이 계약연장대신 계속 쫓아냈다고 들었던 듯하다. 해서 우리는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길 하나를 마주하고 반대편 주택가로, 주소상으로는 OO2동에서 OO4동으로, 다시 OO3동으로  하도 이사를 다녀 옛날 손글씨로 적던 주민등록 등본을 떼면 주소 적는 난이 빽빽하다못해 넘쳐날 정도였다. 같은 구를 벗어나지 않은 건 할아버지댁과 가까이 있기 위함이라고 해도 부모님은 대체 이 동네가 뭐 그리 좋다고 고수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전셋값이 다른 동네보다 쌌을까?

어쨌든 밤늦게 택시 잡기 어렵고 집값은 저렴해도 워낙 오래 터를 잡고 산 동네라 OO동이라는 주소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이상하다. 명목상 번지수가 바뀌었대도 물론 너 어디사니, 하는 질문엔 다들 원래 동네 이름을 대겠지만 당최 새 주소는 써먹고 싶은 느낌이 안든다. 그나마 이 동네에선 새주소명 의의신청 움직임은 없었던 것 같다. □□로에 붙은 □□동 이름이 우리 동네보다 더 부자 동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초동 방배동 사람들은 '우면로'라는 새주소를 못마땅히 여겨 결사반대를 했다고 들었다. 원래는 다 평창동이었는데  새주소명이 '세검정길'과 '평창길'로 나뉘어 근거 없이 차별받는다고 단체 이의신청을 했다는 아파트 단지 이야기도 들렸다. 다 집값과 상관 있기 때문이란다. -_-;

이재에 어두워 집값 같은 건 전혀 모르겠고 30년 넘은 우리집이야 주소명 바뀌었다고 값을 더 쳐줄 리도 없다. 나는 다만 발음도 착하고 정겨운 OO동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더는 못쓰게 된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새주소는 당연히 아직 외지 못했다. 요번에 날아온 계약서에 서명을 하면서는 당연히 원래 주소를 적었다. 연말까지 유예기간을 두고 내년부터는 다 바뀌 주소를 사용해야 한다는데, 나는 언제까지 원래 주소를 고집할 수 있을까?

한 동네에 너무 오래 살아서 너무 많은 이웃과 서로 알고 있기에 인사하기도 귀찮고 민망해 확 이사 가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내가 선택해서 새 동네에서 터를 잡고 사는 것과 원래 오래도록 산 동네에서 동네 이름을 빼앗기는 것은 확실히 기분이 다르다. 현정부가 하는 일마다 족족 마음에 안들어 무조건 닥치고 싫다는 게 아니라, 정말이지 새주소가 필요했던 건지 잘 납득하기가 어렵다. 전화도 안걸고, 심지어 초인종도 안 누르고, 현관문을 열고 올라와 물건을 전해주고 가는 수많은 택배기사님들은 새주소를 사용해도 그렇게 귀신같이 찾아와줄까? 아마도 내겐 그게 제일 큰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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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소탕작전

투덜일기 2011. 7. 15. 03:16

하도 오래 된 집인 데다 주변에 나무와 풀이 많아서 온갖 곤충(사마귀, 노린재, 호랑나비 따위 뿐만 아니라 온갖 해충 포함;;)들과 자주 맞닥뜨리기는 하지만 바퀴벌레와 개미는 없다는 것이 나의 자랑이었는데 그 자랑이 무색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주 엄마네 부엌에 개미가 출현 한 거다! 안경을 끼기는 했으나 작은 물체는 돋보기가 필요한 엄마는 '새까맣고 엄청 빠르고 아주 작은 벌레'가 토스터기 주변에 나타나 그걸 잡느라 땀을 한 바가지는 흘렸다고 말했다. 몇 마리 못잡고 다 도망가버렸다나. 엄마는 그 뒤로 검은 점만 봐도, 하나못해 후추가루 한 알갱이만 봐도 다 움직이는 것 같은 노이로제에 시달렸다. 혹 바퀴벌레 새끼가 나타났나 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진상파악을 해보니, 다행히도 개미였다. (개미가 바퀴벌레보다는 깨끗할 거라는 근거 없는 나의 믿음은 과연 옳을까?) 어쨌거나 아주 작은 불개미는 아니고 길이가 한 3mm쯤 되는 개미 녀석들이 최초 출현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가 서너시간 쯤 뒤 이번엔 싱크대에서 헤매고 있었다. 정말 어찌나 몸놀림이 빠른지 몇마리 잡기도 전에 달아났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 놈들인가 추적해보니 뒷베란다로 올라온 모양이었다.

나는 곧장 개미박멸을 위한 '검색'에 돌입했다. 사용후기에 '노벨평화상'이라도 주고 싶다는 말까지 올라와 있는 과립형 '잠자*'와 '개미박*' 제품이 괜찮은 듯했다. 얼른 약국에 가서 두 종류 개미약을 사와 개미 출몰 지역에 붙여놓았다. 원래 개미는 자꾸 죽이면 일개미 개체수가 줄어드는 걸 염려한 여왕개미가 더 많은 개미알을 낳기 때문에 함부로 죽이면 안된단다. 먹이인 척 유인해 과립형 약을 가져가 서로 나눠먹게 하면 여왕개미까지 모두 박멸할 수 있다고 설명서에 써 있었다. 최초 개미가 발견된 식탁 주변과 싱크대 주변, 뒷베란다 문 근처 다섯군데에 개미약을 붙여놓고 다음날 확인했더니, 문에 붙여놓은 약만 몽땅 사라져 빈통이었다! 다른 약은 거의 그대로인데! 해서 같은 자리에 새 약을 더 붙여놓고 계속 개미가 출몰하는지 지켜보았는데 우왕~ 정말 이틀만에 개미가 완전히 사라졌다! (하기야 나타난 것도 순식간에 갑자기 나타났으니 걔네들이 운 나쁘게 길을 잃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먹을 것도 없는 데서 우왕좌왕 방황하는 것 같긴 했음)

안심하고 있으려는 찰나, 아 글쎄 그제는 내 방에서 엄마가 또 개미 한 마리를 발견하곤 말했다. 엄마가 진짜 노이로제에 걸렸나보다. 자꾸 까만 점들이 움직이네.... 하지만 그건 엄마의 착각이 아니라 새로운 종의 개미였다! 다른 집이라서 개미 종류도 다른지 엄마네 집 개미의 절반도 안되는 크기였다. ㅠ.ㅠ 이미 퇴치 경험이 있어서 크게 당황하진 않았지만 하필 개미가 나타나는 곳이 내방 문틈이라 앞으로 잠은 다 잤구나 싶기도 하고, 개미 사라질 때까지 컴퓨터방에서 잘까 고민을 했다. 어쨌거나 또 다시 개미약을 문앞에 붙여놓고 주의 깊게 관찰을 했더니 이놈들은 워낙 몸집이 작아서 그런지 비실비실 움직임도 느리고 벽을 기어오르다간 이내 미끄러져버렸다. 그러니 미끄러운 플라스틱 통안으로 기어오르는 건 언감생심 불가능한 일인 듯했다. 결국 약통 입구를 놈들이 들어가기 좋게 낮추고 각도를 문턱과 똑같이 만들어준 다음 불까지 끄고 지켜보자(불이 환하면 점으로 착각하게 만들려는지 놈들이 안움직이더라!) 드디어 놈들이 한마리씩 약통으로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다음날 투명한 개미 약통을 살피니 조금 과립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애매했다. 여전히 개미는 문턱 아래로 한 마리 기어다니고... 이 종의 개미에겐 약이 효과가 없는 것인가 두려워했던 것도 잠시, 만 하루가 지나자 결국 이번 개미도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캬... 신기하다고 할밖에!

생각해보니 난데없이 개미들이 종별로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 건 폭우 때문인 것 같다. 원래도 우리 마당엔 온갖 크기의 개미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앵두도 딱 한번 따고 안따먹어 죄다 바닥에 뒹굴었으니 폭우 내리기 전까지는 아마 먹이도 충분했을 거다. 게다가 벚나무인 줄 알았던 옆집 나무 세 그루 중 하나는 살구나무여서 열매가 꽤 많이 열렸기에 익으면 따먹으려고 별렸더니 나보다 먼저 새들이 죄다 파먹어 그 잔해까지 우리 마당으로 떨어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하도 비가 많이 오니 땅속 개미굴은 다 물바다가 됐을 테고 먹이는 빗물에 쓸려 다 사라지고.. 그러다보니 먹이를 찾아 떠난 일개미 원정대가 벽틈을 타고 이층까지 올라온 게 아니었을지. 그런데 사악한 인간은 약을 쳐서 또 씨를 말려버리려 들었고...

뉴스를 보니 폭우 때문에 전국에 피해가 말이 아니다. 곧 제철이라 오매불망 맛볼 날을 기다렸던 달콤한 복숭아는 출하를 며칠 앞두고 다 썩어버렸대고 물에 잠긴 게 아니라 아예 진흙에 덮여버린 논도 부지기수란다. 가뜩이나 살인적인 물가인데 만만했던 채소값도 하늘까지 치솟을 예정이래고... 이재민들이 또 수백명이라는데 이 마당에 개미타령 하고 있으려니 문득 부끄럽다.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 얘기였나. 암튼 아무리 장마라지만 이제 비 좀 그만 내려서 비 피해도 더는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얘기로 급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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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지인을 만나 수다를 떨다가 들은 얘기.
출판계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좋은 사람'은 의외로 책을 많이 읽는 독자가 아니다.
책을 읽든 안읽든 자꾸 많이 사서 잘 꽂아두는 사람이 최고로 좋은 사람.
자기가 책을 안사더라도 동네 도서관에 자꾸 책 신청하는 사람, 좋은 사람. 
욕을 먹거나 말거나 요즘도 꿋꿋하게 책 선물 하는 사람도 좋은 사람.
욕이든 칭찬이든 책 읽고 블로그나 트위터에 리뷰 올리는 사람, 퍽 좋은 사람.
물론 최고로 나쁜 사람은 일년 내내 책 한권 안 사는 사람.
(책을 사기는 하되 전혀 안읽어도 괜찮음. 책보다 흥미로운 것들이 세상에 좀 많은가.) 
그러나 열심히 책을 사서 읽고난뒤 출판사에 전화 걸어 따지는 사람도 나쁜 사람이란다. ㅋㅋㅋ
자기가 '잘못' 알고 있는 맞춤법에 따라 책에 오탈자가 몇개라고 항의하는 독자들도 나쁜 사람.

오늘의 결론. 나 꽤 좋은 사람이었어!
밀린 책 좀 읽었다고 냉큼 사들인 책이 또 쌓여 뒹굴고 있다. 그래도 출판 유통에 일익을 담당했으니 완전 한심한 건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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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투덜일기 2011. 7. 6. 02:40

고등학교 졸업후 소식을 통 모르다 수십년 만에 만난 동창생. 많이 변했겠거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워낙 인면치이긴 하지만 어디서 본듯한 낌새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성형 때문이었다. 눈, 코, 뺨, 치열교정의 효과라고 했다. 나로선 도대체 시선을 어디 두어야할지 몰라 어색함을 무릅쓰고 일부러 계속 옆자리에 앉았다. 좀처럼 마주볼 자신이 없을 정도로 첫인상은 좀 무서웠다. 예전엔 눈매가 기름하니 순하고 귀여운 인상이었는데.  거의 변하지 않은 목소리와 걸음걸이로 겨우 붙잡아낸 반가움이 긴 세월의 무게와 낯설음을 이기기까지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같이 만난 다른 친구에게도 고백했지만 내눈엔 조금도 예쁘지 않았고 나이보다 젊어보이지도 않아 이상했다.

그 친구의 성형이 좀 과할뿐, 내 주변에도 성형으로 '예뻐진' 이들이 서넛에 하나쯤은 있는 듯하다. 쌍꺼풀 정도는 아마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변화한 뒤에 만난 사람에겐 굳이 물어본 적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원한다는데야 성형수술을 굳이 반대할 마음도 없다. 하지만 전혀 성형 따위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친구가 떡하니 얼굴을 고치고 나타난 경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심 약간 실망스럽기는 했다. 나 역시 예쁘고 잘생긴 사람에 반색하는 외모지상주의자이면서 그 무슨 심술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눈을 째고 코를 높이고 턱뼈를 깎고 얼굴 사방에 주사바늘을 꽂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외모를 바꾸는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다(배우나 모델이라면 몰라도;;). 심지어 수술후 더 미워진 경우는 정말 속상하다. 개인적으로 쌍꺼풀이 없는 길쭉한 눈매를 좋아하는데 하나같이 눈을 찝어 동그랗게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놓는 것도 못마땅하다.

요즘 젊은 남녀가 많이 다니는 곳에 가보면 인면치인 내눈엔 정말 똑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공장에서 규격 맞춰 찍어놓은 공산품처럼. 외모도 경쟁력이기 때문에 너도나도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뜯어고쳐야 살아남을 수 있을 듯한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말도 들린다. 오죽하면 성형공화국이 됐을까. 가뜩이나 취직도 잘 안되는 상황에 못생기고 뚱뚱하면 시작도 해보기 전에 패배자로 낙인찍힌다나. 정말 그럴까. 90%를 훨씬 넘는다는 대학진학률처럼 우리나라 인구의 성형률도 그 정도 수치에 육박하고 나면 아무 소용없는 게 아닐까. 그 가운데서도 이른바 돈을 들여 스펙쌓기 경쟁을 하듯, 외모와 성형의 정도도 시술 가격 및 결과에 따라 경쟁력을 갖게 되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친구의 경우 성형으로 미인이 된 게 아니란 건 확실했다. 부자연스러운 건 확실히 아름답지 않다. 대부분의 인공미인을 내가 못마땅히 여기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성형까지 갈 것도 없다. <6시 내고향> 같은 탐방 프로그램에 나오는 지방의 할머니 어르신들도 가만 보면 다 문신으로 짙게 새겨 숱검댕이 같은 눈썹을 하고 나온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서워 죽겠다.

다들 감쪽같이 자연스럽게 예뻐져 눈쌀 찌푸릴 일이 없다면야, 그들이 생돈을 들이든 뼈를 깎는 아픔을 겪든 내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미추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므로 내 잣대를 들이댈 일도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관리가 칭송받아야 하는 덕목임은 확실하므로, 자연을 거스르는 인공적인 관리 노력 역시 미덕으로 봐야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음 생이 있어 외모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예쁘게 태어나고 싶은지, 귀엽게 태어나고 싶은지 꽤 심각하게 고민했던 걸 떠올려 봐도 점점 더 모르겠다. 과정이 어떠하든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면 좋은 건가. 에라이, 모르는 소리는 관두고 중력 때문에 늘어지고 처진 내 뺨과 주름을 사랑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는 데나 신경을 써야겠다.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극구 위로하면서. 10년쯤 뒤 극구 위로하던 자연스러운 변화가 영 마음에 안들면 나도 겁없이 과학과 의술의 힘을 빌려는 생각이 들지, 그 또한 모를 일이니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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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투덜일기 2011. 6. 29. 17:49

지난 월요일 조카네 집에 가다가 오른쪽 앞바퀴에 펑크가 났다. 문방구에 들러 굳이 스테이플러 침을 사오라는 공주의 명령에 투덜투덜 낯선 동네에 차를 세우려니 삼거리에 주정차 단속 카메라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그걸 피해보겠다고 만만한 인도에 슬쩍 걸쳐놓으려던 것이 연석 모서리에 부딪친 모양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있기는 했으나 내려서 살피니 차체가 멀쩡했다. 해서 얼른 문방구에 들어가 침을 사가지고 나와 차에 올랐는데 차가 오른쪽으로 폭삭 가라앉아 있었다. -_-; 차체는 멀쩡했으나 바퀴가 찢어진 것.

난감하긴 했지만, 내 이름으로 자동차보험을 든지 4년째 단 한번도 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고 해마다 생돈만 날렸는데 드디어 나도 써먹을 때가 왔구나 싶어 한편으로는 득의양양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지갑에 넣어가지고 다니던 보험카드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보험사 자동응답 내용에 아예 <타이어교체> 항목이 있더군. 상담원과는 한 마디도 할 필요 없이 (심지어 내 정체를 밝히는 주민번호나 보험카드 번호 확인도 필요없이 OOO 고객님이 맞으면 1번을 누르라고 하더라!) 계속 해당 번호를 누르고 나니 편의를 위해 고객의 현재 위치 통보에 동의하느냐는 물음도 있었다. 오호라, 휴대폰 GPS로 바로 내 위치가 보험사에 날아가는 모양이었다. 좀 섬뜩한 기분도 들었지만 당연히 동의하고 전화를 끊었다. 1분만에 출동 기사의 전화가 와 구체적인 위치를 묻더니 10분 만에 서비스차량이 나타났다. 오 놀라운 IT 서비스천국의 혜택이여!

한시간쯤 늦어질 거라 예상했었는데 결국 모든 상황은 30분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보험사의 긴급출동 서비스 따위는 있지도 않던 까마득한 옛날, 강변북로에서 오른쪽 뒷바퀴가 펑크 나는 바람에 갓길에서 혼자 낑낑대며 기구를 꺼내 자동차를 들어올리고 렌치로 나사를 풀고 양손이 온통 새까매지며 낑낑 타이어를 손수 갈았던 기억이 떠올라 감개무량했다. (나 타이어도 혼자 갈아본 사람이야!) 문제의 타이어는 단순 구멍 정도가 아니라 찢어진 거라 바꿔야할 거라고 기사님이 말했다. 비가 와서 타이어 고무가 말랑해졌나? 그 정도로 찢어지다니 나 원참 의외였다.

째뜬 임시로 타이어를 갈았으니 카센터에 내려가야 하는데 연일 비는 계속 내리고(어제 날 갰을 때 행동했어야 하거늘) 은둔본능에 휩싸여 좀체 외출하기는 싫고 심지어 냉장고가 텅텅 비었는데도 장보러 가는 게 꺼려져 웅크리고만 있다. 온갖 종류의 서비스가 다양해져 세상이 편해질수록 나 같은 게으름뱅이는 더욱 더 게으름을 부리게 되는 듯하다. 자동차 수리도 집에 가만히 앉아서 전화나 인터넷으로 신청만 하면 사람 만나 설명할 필요 없이 척 차를 가져다가 척 고쳐서 다시 집앞에 세워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앉았으니 쯧쯧쯧...

어차피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은 마트 가서 장도 보고 카센터 들러 타이어도 교체해야지 하며 오늘도 할일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6월도 내일이면 쫑. 바쁜 마음과 달리 몸은 좀체 빠릿빠릿 움직여주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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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숱 염원

투덜일기 2011. 6. 29. 00:29

지난 겨울 쥐뜯어 먹은 것처럼 너무 짧게 커트를 해놓는 바람에 미용실 가는 게 두려워 7달이 넘도록 방치하다시피한 머리칼이 꽤 많이 자랐다. 집에 있을 땐 머리가 짧을 때도 거치적거리지 말라고 앞머리를 넘겨 실핀으로 꽂고 있는 편이라, 머리가 길어진 뒤로는 늘 질끈 동여매고 산다. 여름엔 확실히 숏커트보다도 가뜬하게 하나로 묶은 머리가 시원하다. 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노란 고무줄로 묶었었는데 가뜩이나 숱 적은 머리칼이 뽑혀 나오는 것 같아 머리끈도 몇 개 샀다. 예전부터 간간이 쓰던 검정 고무줄은 형편없이 늘어져 버려야 했다.
 
머리칼이 길어서 머리 고무줄을 상용하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머리끈도 규격이라는 게 있는지 크기는 거의 일정하고 고무줄의 굵기만 좀 차이가 있다. 거기에 장식이 달렸거나 안 달렸거나의 차이. 사람 머리숱이 저마다 다른데 왜 고무줄은 일정한 길이로만 나오는지 새삼 불만이다. 물론 '고무줄'이므로 탄력성이 있어 두번 돌려 묶든 세번 돌려 묶든 묶는 사람 마음이니 상관없다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일정한 고무줄의 탄력성이란 게 뻔한 수준이라 무한정 늘어날 리 없다. 보통 시중에서 파는 고무줄로 숱이 꽤나 많은 조카의 머리를 하나로 묶어보면 딱 두겹으로 돌리면 적당하다. 느슨하지도 않고 너무 팽팽해서 머리칼이 뽑혀나오는 느낌도 없을 정도로. 그러나 똑같은 고무줄로 포니테일을 해도 알량한 내 머리숱엔 최소 세번은 돌려야 고정된다. 고무줄이 좀 느슨해 많이 늘어나는 건 네번도 돌려진다. 허나 그렇게 쓰다보면 고무줄이 금세 늘어나 헐거워져 망가지고 만다. 고무줄도 소모품인지 몇달 쓰다보면 힘없이 늘어지거나 안쪽의 고무줄이 끊어져 바깥쪽 실만 연결되어 있는 형상이 종종 발생한다. 그렇게 규격이 허물어진 고무줄로는 도무지 내 머리를 묶을 수가 없다. 한번 더 돌리자니 모자라고 그냥 두자니 헐겁고...

거의 매일 일어나자마자 손가락으로 슥슥 빗어 머리를 질끈 동여매며 염원한다. 나도 고무줄을 두번만 돌려 묶을 수 있을 정도로만 머리숱이 많으면 좋겠다고. 고등학교 때 아침마다 내가 늘 머리를 땋아주던 친구가 있었다. 머리숱이 하도 많아서 아침에 머리를 감고 나면 드라이를 쪼여도 다 마르길 기다리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물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말린 뒤 그냥 산발을 해가지고 학교에 오는 아이였다. 샴푸도 엄청 든다고 했다. 긴 머리칼을 이리저리 모양내서 땋는 놀이를 즐기던 나는 하루는 디스코머리, 하루는 반고정 머리, 하루는 이단 땋기, 하루는 양갈래 머리, 하루는 그냥 포니테일, 하는 식으로 열심히 스타일을 바꿔주었다. 그 친구의 머리를 손으로 잡으면 한움큼이 넘어 일반 고무줄로는 제대로 묶을 수가 없었다. 파는 규격 고무줄로는 절대 두번 돌려지지 않는 굵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다란 검정 고무줄을 적당한 길이로 잘라 칭칭 동여 매 묶는 방식을 택했다. 고무줄 한쪽 끝과 머리칼 한손으로 잡고 다른 끝을 빙빙 돌려 마지막에 팽팽하게 딱 묶는 기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_-v

당시엔 사복을 입을 때라 검정 고무줄로는 마음에 차지 않아 그 위에 리본을 덧묶었다. 헤어밴드나 머리장식으로 쓸 수 있는 체크무늬, 땡땡이 무늬, 민무늬 리본을 각종 넓이로 팔던 시절이었다. 친구는 빨간색 체크무늬 리본을 좋아했던데 반해 나는 하늘색 바탕에 하얀 물방울 무늬가 있는 리본을 좋아해서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침 조회 시작 될 때까지 머리칼을 다 못 묶어서 담임한테 핀잔을 듣기도 했던 것 같고.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머리 길이가 어깨에서 어느정도 넘어가면 반드시 묶어야 하는 두발 규정이 있었다)

나는 스무살 무렵에도 속알머리 없다고 놀림을 당할 정도였으니 지금 머리숱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오늘도 최근에 산 제일 짱짱한 고무줄로 세번 돌려 머리를 묶고 풀리지 말라고 머리채도 빼다 말고 접어 끼워두었는데도 금세 느슨해지는 걸 보며, 문득 그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머리를 땋으려고 세 갈래로 갈라놓은 한 묶음이 내 전체 머리보다 굵었으니 최소한 머리숱이 내 세 배라는 뜻이다. 동년배 친구들 모두 이젠 흰머리도 소중해서 함부로 뽑지 않는다는 나이가 되었는데, 그 친구의 머리숱은 여전할지 궁금해졌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단 한번도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는데 그 숱많은 머리를 지금은 어떻게 하고 다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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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덜일기 2011. 6. 27. 00:11

사흘째 032 지역번호로 시작되는 전화가 휴대폰으로 계속 걸려왔다. 이상하게도 받으면 곧장 뚜뚜뚜 거리며 끊어져, 새로운 신종 스팸형 전화피싱인가보다고 짐작했다. 궁금해서 이쪽에서 전화를 걸면 요금이 엄청 나온다든지 하는. 그간은 계속 번호가 달라지는 것 같더니 오늘은 줄곧 같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조금 전엔 급기야 네 통화째 같은 번호로 전화가 울리다 받자마자 끊어지니 정말 짜증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받았다. 대체 이유가 뭔지 따져보려고 내쪽에서 유선으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다. 혹시 10초에 몇천원씩 부과된다는 전화피싱이면 확 끊고 신고하려고. 그러나 이번엔 그쪽에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피싱이 틀림없다고 확신한 나는 얼른 휴대폰 스팸차단 서비스에 접속해 그간 걸려온 032 번호를 죄다 등록했다. 그러고선 안심하려는 찰나, 곧이어 휴대폰 문자가 날아왔다.
<엄마 공중전화로 전화할테니깐 받아>라고. -_-;;
나는 얼른 배려랍시고 답장을 보냈다. <문자 잘못보내신듯 저는 자식이없습니다만;;>.

그러나 저쪽에서는 계속해서 진짜 자기 엄마가 화가 나서 자식을 부인한다고 여기는 듯 032-814-**** 번호로 또 다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우웩~~!! 스팸번호로 등록했는데 어떻게 전화가 오는 거냐??? 차라리 통화가 돼서 오해를 풀어줄 수나 있으면 좋으련만 받기만 하면 끊어지니 원 어쩌란 말인지. ㅠ.ㅠ 전화는 내가 "여보세요"라고 하는 사이에 곧장 끊어지기도 하고, 저쪽에서 "아~"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에 끊기기도 했다. 
 

전전긍긍하며 황당사건으로 포스팅이나 해야겠다고 문자를 캡쳐하고 있으려니 방금 전엔 또 다른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엔 통화에 성공. 저쪽에선 대뜸 앳된 남자 목소리가 내게 "엄마!" 했다. @.,@
나도 모르게 "누구세요?"라고 대화를 시도한 순간, 아... 3%밖에 남지 않았던 배터리 탓에 전화는 다시 끊어지고 말았다. 젠장!!

전화 꺼진 사이에 또 한번 전화가 걸려왔음을 알리는 문자를 보며, 내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 오해를 풀어주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는 중이다. 밤도 늦었는데;;;  대체 어떤 사연일까. 살다 보니 참 별일도 다 있다 싶으면서, 또 전화올까봐 내심 걱정스럽다. 아는 사람한테도 전화 잘 못하는 인간이 모르는 번호로 모르는 사람한테, 저 댁의 엄마 아니거든요, 라면서 순전히 오해를 풀어줄 요량으로 전화를 거는 건 더욱 못할 노릇이고... 흑..

누군지 모르지만 저는 정말로 당신의 엄마가 아니랍니다. 저는 맹세코 숨겨놓거나 버린 자식 같은 건 없는 사람이라구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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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림노래

투덜일기 2011. 6. 9. 15:39

욕심 많은 사람이 푸념이 많다는 글귀를 어디선가 보았다. 하나마나한 빤한 수다로 푸념을 도배해놓은 이 공간은 그러니까 소탈한 척 무심한 척 하는 겉포장을 뚫고 꾸역꾸역 밀려나오는 내 욕심의 증거로구나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웠다. 지루한 돌림노래처럼, 몇년째 같은 시기에 같은 주인공이 거의 같은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음을 깨닫고 보니 대체 왜 쓰나 싶은 맘도 들었던 차에 더욱 자판 두들기는 손이 무안했다. 비록 공개된 곳이긴 해도 냄새나는 배설의 장이니 지나는 이들은 눈치껏 알아서 피해주겠거니 여겼으나, 아무 때나 울려대는 전화처럼 수시로 업데이트 되는 나의 푸념도 일종의 폭력일 수 있음을 느낀다. 
 
어렸을 때 돌림노래를 부르다보면 늘 나는 지조없이 다른 사람의 노래를 따라 부르다 틀린 걸 알고 슬며시 입을 다물었던 것 같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귀를 막고 홀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 한 말이다. 틀리지 않겠다고 귀를 막고 목청 높여 돌림노래를 부르다 문득 민망해져 귀에서 손을 뗀 순간, 저도모르게 옆사람 노래를 따라가다 아차 싶어 입을 다무는 적이 많았다. 지금이 딱 그런 순간인 것 같다. 지루한 돌림노래를 불러재끼다 가사를 놓치고 어물어물 입술을 깨무는 시기. 그래봤자 또 금방 시작되겠지.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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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침

투덜일기 2011. 6. 2. 11:58

학창시절 앞자리에 주로 앉아야 하는 단신이라 침을 많이 튀기는 선생들에게 가끔 봉변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중학생 때는 착한 척을 하느라 싫은 내색도 못하고 슬쩍 닦는 걸로 그쳤지만 고등학생 때는 짝꿍과 동시에 야유를 보내며 싫은 티를 팍팍 냈다. 그러면 선생은 뻔뻔하게 스승님 침은 로열젤리라 피부에도 좋으니 고맙게 알라고 응수했다. 흥!

아무리 깨끗해도 밖으로 튀긴 침이 남에게 로열젤리일 리는 없겠으나 본인에게는 로열젤리 못지않게 소중하다는 걸 요번에 배웠다. 역시나 진료과를 또 한 군데 개척하신 엄마 덕분이다. 증상은 잇몸이 붓고 혀가 아파 고춧가루는 단 한 알갱이도 못 견딜 정도고 맛도 못느꼈다. 틀니를 해넣은 동네 치과에 갔더니 피곤해서 그런거라며 잇몸 가라앉을 때까지 한동안 틀니를 빼고 살라고 했다. 그러고도 좀체 나아지질 않아 교수 지정 특진은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대학병원 구강내과에 일반진료로 예약을 해 한달뒤로 날을 받았다. 그 사이 상태가 좀 나아지긴 했지만 나도 엄마도 내심 겁이 나서(심각한 병명을 마구 상상했다) 예약한 날에 진료를 받아보니, 궤양이나 염증은 전혀 없고 그냥 침 부족 때문이란다.

어떤 약이든 입마름이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엄마가 드시는 약은 무려 십수종. 약을 끊을 수도 없으니 침이 부족한 건 당연한 일이나, 입안에 침이 없으면 세균이 마구 번식해 곰팡이가 난단다. ㅠ.ㅠ 그래서 따로 염증이 없더라도 혀가 갈라지고 통증을 느끼고 맛을 모르게 된다는 것. 치료법은 곰팡이균을 2주간 약으로 없애고 수시로 인공침을 바르는 것이다. 인공 눈물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인공 침도 있더라. 그것도 스프레이 형태, 젤 형태로 다양하게. 스프레이는 낮동안에 한두번 뿌리고, 젤 형태는 자기 전에 혀에 바르고 자면 아침까지 세균번식을 막아준다는 듯. -_-;

상아질이 마모될 정도로 열심히 이를 닦는다고 닦는데도 자꾸만 충치가 생기는 사람이 있고, 양치질을 게을리 하는둥 마는둥 하는데도 이가 썪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 역시 침이 훌륭해서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전자에 속하므로 소중한 침이 별로 많이 안나온다는 뜻이다. 유난히 말할 때 침 튀기는 사람 정말 싫어하는데, 타인에게 피해를 끼쳐서 그렇지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많이 분비되는 침이 본인에게는 엄청 이롭겠다는 생각 처음 들었다. 아울러 잘 때 침흘리는 사람도 나쁜 게 아니라 건강엔 좋은 거겠지. 엄마 덕분에 알게되는 놀라운 인체의 신비. 또 뭐가 남았을까.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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