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1.12.22 섬집아기 8
  2. 2011.12.14 합창 그후 2
  3. 2011.12.09 밥짓기 9
  4. 2011.12.07 12월 6
  5. 2011.12.06 화장 3
  6. 2011.11.26 번역서는 공손하다? 12
  7. 2011.11.21 빌어먹을 모기 8
  8. 2011.11.17 카레라이스를 먹는 두 가지 방법 9
  9. 2011.11.15 합창 10
  10. 2011.11.12 시럽 한 컵을 마시면 죽을 수도

섬집아기

투덜일기 2011. 12. 22. 01:43

참 구슬픈 노래다. 어려서 정확히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는 통 모르겠다. 어쩌면 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게 아니고 TV <누가누가 잘하나>를 통해서 배운 노래일 수도 있겠다. 암튼 어려서도 커서도 <섬집아기>는 좋아하는 동요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연유는 잘 모르겠으나, 첫 조카가 태어나고 나서 자장가로 불러주던 노래이기도 했다. 잠투정이 심할 때는 안고 서서 집안을 걸어다니며 스무 번도 넘게 무한반복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대개는 볼륨을 점점 낮추고 곡조를 느리게 바꿔가며 2절까지 한 다섯번쯤 부르면 노랫말 속 아기처럼 조카도 스스르 잠이 들었다.

4년뒤 태어난 둘째 조카도 마음 같아선 <섬집아기>를 불러 재워주고 싶었지만 준우는 태어나면서부터 워낙 기골이 장대하여(4.5kg를 넘겨 태어났다;) 안고 흔들어 재우는 걸 습관들이면 엄마아빠가 너무 힘들다고 처음부터 눕혀놓고 옆에 같이 누워 퍽퍽 두들겨(!) 자장자장 재우는 쪽이었다. <섬집아기> 자장가 시대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래도 조카들에게 가끔 <섬집아기>를 불러줄 기회가 없지는 않았으나, 준우에게도 세번째로 태어난 지환이에게도 이 노래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너무 슬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엄마 없이 혼자 집에서 놀다 지쳐 잠드는 아기에게 심히 감정이입이 됐는지 지환이는 노래를 부르다 중간에 눈물을 쏟을 정도였다. 아기 혼자 집에서 놀다가 다치면 어쩌냐고, 엄마 나쁘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옛날 노래임에도 일하는 엄마들의 애환을 가사에 참 잘도 담아냈다.

원래도 슬픈 노래라 조심해야 하는데, 아까 낮에 이웃 블로그에 올려진 <섬집아기> 오케스트라 연주 동영상을 보다가 질질 울고 말았다. 병들어 가끔씩 정신을 놓치는 부모에게 바치는 자식과 손녀들의 선물이라는 사연을 미리 듣기도 했지만, 자장가로 <섬집아기>를 불러 재우던 조카가 어느새 훌쩍 자라 이제는 어른들과 눈도 잘 맞추려 하지 않는 뾰족한 폭풍 사춘기를 보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연말이랍시고 마음은 바쁜데 날씨는 춥고 할 일은 많고 뜻하는 대로 되는 건 잘 없다보니 사방에 복병이고 수도꼭지는 걸핏하면 고장날 기미를 보인다. 아주 슬픈 영화나 보면서 잉여 수분을 아예 다 말려버릴까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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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그후

투덜일기 2011. 12. 14. 23:54

엄마의 합창발표회가 무사히 끝났다. 연분홍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로 단복까지 맞춰입은 실버합창단 공연을 보는데, 첫 노래를 들으며 사진을 막 찍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열혈 선생님이 손수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 구워준 CD를 들으며 집에서 개별연습까지 열심히 했던 엄마는(역시나 <그대 있는 곳까지>가 너무 어려워 제일 끝까지 속을 썩였다;;) 공연 내내 표정도 좋고 방긋방긋 입도 크게 벌리시고, 나중에 <닐리리 맘보>를 부를 땐 살짝 보일듯 말듯 리듬도 타며 훌륭히 맡은 바 역할을 해내신 듯 했다. 청일점 할아버지와 함께 할머니 가운데선 울엄마가 유일한 은발이고 은발 두분만 70대라고 들었다. 청일점 할아버지 노래 잘하고 목소리 좋으시다고 엄마가 칭찬하는 말 여러번 들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눈> 부를 때 솔로도 하시고 나중에 노래자랑 땐 가곡을 불러 상도 타셨다. 두시간 전부터 가서 최종 리허설하랴, 공연하랴, 노래자랑 구경하랴, 몹시 고단한 하루를 보낸 엄마는 간신히 미니시리즈를 마저 보고서 조금 전 얼른 자겠다며 방으로 퇴청하셨다. 



조카들 재롱잔치 때마다 꽃다발이든 캔디다발이든 들고 가서 축하해주었는데 이젠 할머니 되신 울 엄마 발표회를 다 구경하는구나 싶은 것이 마음이 좀 복잡했다. 하필 공연이 평일 오후라, 나 말고는 아무도 그 좋은 구경(?)을 할 이가 없다는 게 안타까웠었는데, 큰올케가 시간을 내 꽃다발 사들고 와주었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창피하니깐 절대로 꽃다발은 사오지 말라고 내게도 신신당부를 했지만 우리 말고도 꽃다발을 사온 가족들이 더러 있었다. 물론 울 엄마가 받으신 꽃다발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찬조출연을 해 <닐리리 맘보>를 같이 부른 유치원 어린이들이 나중에 포토타임 때 무슨 영문인지 엄마를 둘러싸고 모여 조잘조잘 말을 걸었다. 나중에 들으니 장미꽃이 진짜냐고 물으며 꽃을 만져보고 향기를 맡아보고 가시도 있느냐고 물었단다. 가끔 느끼지만 아이들과 노인들은 좀 더 잘 통하는 구석이 있다.
 
어르신께 드릴 꽃이니 화사한 걸로 만들어달랬다는 꽃다발을 안겨드리며, 엄마가 제일 예쁘고 제일 잘하더라고 칭찬해드렸다. 빈말이 아니고 정말 그렇게 느꼈다. 영자씨 최고! d^^b 

맨 앞자리는 귀빈석이라 다들 엉거주춤 뒷줄에서 찍고 있으려니, 발표회 전에도 온 좌석을 돌며 인사를 청했던 구청장이 선뜻 우리를 앞으로 내몰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걱정말고 다들 앞에 나와 마음놓고 찍으라며 자기는 일어나 뒤로 갔다. 선거 직전 후보 때도 엄마랑 구청에 갔다가 맞닥뜨리는 바람에 얼결 악수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내가 역사상 얼굴 알고 찍은 유일한 구청장이 아닐는지. ㅋ 암튼 덕분에 간만에 배터리 충전한 디카로 사진은 실컷 찍어왔다. 이번엔 밍기적거리지 말고 1년전 사진까지 죄다 인화해 앨범에 꽂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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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짓기

투덜일기 2011. 12. 9. 21:05

쿠쿠밥솥이 고장났다. 쌀이 안익는 건 아닌데, 수증기가 다 옆으로 새는 바람에 푸실푸실 끈기없는 낱알 같은 밥을 만들어냈다. 2년전에도 겪어본 일이라 AS 신청을 해 패킹을 갈아야겠군, 의연하게 중얼거리고는 실로 간만에 냄비 밥짓기에 도전했다. 마음 같아선 그냥 또 쿠쿠밥솥에 쌀을 앉혀 한번 더 끈기없는 밥을 먹으면 좋겠건만, 왕비마마가 별로 어렵지 않다며 냄비밥을 명했기 때문이다. (아 그러면 엄마가 직접 하시든지! +_+ 아마 엄마도 냄비밥을 지어본 건 20-30년을 넘기지 않았을까. 쳇)

백미, 현미, 흑미, 서리태, 보리, 기장쌀, 율무까지 죄다 쌀독에 섞어놓은 잡곡인지라, 제일 바닥이 두툼한 냄비에 쌀을 씻어 앉히고 (까마득한 옛날 놀러가서 코펠에 밥할 때 압력솥보다 밥물 넉넉히 두던 걸 떠올려가며) 밤새 두었다가 무려 다섯시반에 일어나 '새벽밥'을 지었다. 한시간 내 곁에 붙어서서 불조절을 한 덕분에 태우진 않았지만 결과는 젠장, 죽밥이었다. 삼층밥, 꼬두밥보다는 그래도 진밥이 낫지 홀로 위로하며 상전(?)에게 새벽밥을 해먹이고 나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취사예약 버튼 눌러놓고 잊어버리면 그만인 쿠쿠밥솥의 힘과 편리함이 실로 대단한 것이었구나. 보온밥통이 있거나 없거나 옛날 엄마들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솥이나 냄비에 밥을 짓고 도시락까지 몇개씩 싸주었는데, 그 고된 노동을 최소 십수년씩 어떻게 견뎠을까. 내 경우 아버지가 보온밥통에 들었던 헌밥을 드시고 출근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도시락에 누렇게 변색된 헌밥을 싸간 적은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이야 해놓은 밥 금세 얼렸다가 전자렌지에 돌리면 새밥처럼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종류별로 햇반도 나오는 시절이지만(그나마도 급식을 하니 특별한 날 아니고선 도시락 쌀 일도 없겠다만;;), 옛날엔 정말로 새벽마다 부엌에서 솔솔 풍겨오는 밥짓는 냄새를 맡으며 어렴풋한 아침 잠에서 깨어나곤 했던 것 같다. 

하기야 엄마가 새벽밥을 지어주면 뭐하나. 중학생 때까지는 꼬박꼬박 밥상에 둘러앉아 다같이 아침밥을 먹었지만, 등교시간이 훨 빨라진 고등학생 때부턴 밥보다 잠이 더 중요하다며 아침을 거르는 대신 5분, 10분 더 자는 쪽을 택했었다. 정 배고프면 학교 올라가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꼬마김밥이나 못난이 만두를 사먹거나, 2교시 끝나고 도시락 까먹기를 해도 된다고 큰소리를 쳤으나, 엄마는 그래도 집밥이 최고라며 집에서 들기름 발라 재고 구운 김(사실 당시 김 재는 담당은 바로 나였다 뭐;;)에 싼 밥덩이 몇개를 접시에 담아 헐레벌떡 등교준비를 하는 내방에 가져다주며 눈을 흘겼었다. 그렇면 또 난 옷 갈아입고 책가방 싸면서 희희낙락 낼름낼름 주워먹었으니 참 얄밉기도 했겠다.

어쨌거나 밥솥은 AS를 신청해 해결했으므로 난데없는 냄비밥 짓기는 한번으로 끝인데, 냄비 하나 가득 만들어놓은 죽밥은 아직도 절반이나 남았다. 그나마 위안은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밥에 물 부어 끓여먹으면 퍽 맛있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계속 전기압력밥솥만 쓰면서 일부러 누룽지를 만들 수도 없어 그게 아쉬웠는데, 뜻밖의 고장으로 약간의 삽질과 고생은 있었지만 얻는 것도 있긴 하다. 인간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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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투덜일기 2011. 12. 7. 20:34



올 겨울 들어 처음 내눈에 들어온 크리스마스 트리.
종교와 상관없이 불 밝힌 트리 장식을 보면 반사적으로 마음이 따뜻해졌었는데 이젠 그런 감흥도 없이 12월을 실감하며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병원 로비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텐데...
그러고 보니 아직 첫눈을 구경하지 못했다. 날도 추워진다는데 예고없이 돌연 눈이나 내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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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투덜일기 2011. 12. 6. 23:12

국민학교 4학년 때였던가, 학예회에서 꼭두각시 춤을 추느라 칠한 검정색 아이라인과 빨간 립스틱이 아마도 처음 내가 해본 화장이었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 화장대에서 더러 화장놀이를 해봤다는데, 울 엄마의 유일한 화장도구는 '주홍색' 립스틱이었기 때문에 나는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얼굴 새하얀 엄마에겐 잘 어울릴지 몰라도(더는 얼굴색이 하얗지 않은 노년의 울 엄마는 여전히 '주홍색' 립스틱을 가장 선호하신다. 참 취향도 일관성 있으시지;;) 내가 바르면 그야말로 '김치국물' 묻은 것으로 보일 게 뻔했다.

그 뒤로 중학생 때는 언감생심 화장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고등학생이 되자 반에서 외모에 유달리 신경을 쓰는 몇명은 체리빛깔의 립글로스를 바르고 다녔다. 똑같은 체리향이 나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바르는 챕스틱 립크림과 달리 그애들이 바르는 건 향이 더욱 진하고 반짝반짝 입술에 윤기가 흘렀으며 색도 또렸했다. 물론 학생부 금지품목이었지만, 당시에 향수도 어지간히 뿌리고 다니던 친구 하나는 학생주임한테 가끔씩 립글로스 때문에 손바닥을 맞고 반성문을 써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개기름 바른 것 같다>며 그런 아이들의 요란한 입술을 비웃는 축이었다. 진짜로 안 예쁘고 입술만 동동 떠다니는 것 같던데!

그러고는 드디어 고3 말, 학력고사(그렇다, 나는 학력고사 세대 ㅋㅋ)가 끝나자 연일 화장품 회사에서 찾아와 특별수업을 진행했다. 아이섀도와 립글로스, 립스틱 샘플도 막 나눠주면서... 그러나 80년대 중반인 당시엔 파격적인 색조화장이 유행이라(분홍 바탕에 파란색으로 눈꺼풀 강조, 주황바탕에 진초록 따위!) 화장품 회사 직원이 예쁜 아이 하나를 모델로 뽑아 색조화장을 해놓은 몰골은 예뻐진 게 아니라... 퍽 무서웠다. +_+ 나는 결심했다. 졸업해도 화장하지 말아야겠다고.

대학 신입생때였던 것 같은데 당시에 <지지>라는 화장품 브랜드가 엄청 유행을 했다. 사회 초년생들에 맞는 가벼운 색조와 저렴한 가격, 앙증맞은 케이스로 관심을 끌었다. 내가 직접 샀는지 누가 선물을 해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암튼 5월 축제를 앞두고 드디어 내 손에도 그 <지지 립글로스>가 손에 들어왔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둥근 세모꼴의 분홍색 케이스가 지금도 눈에 선한데 암튼, 최초의 화장이랍시고 그걸 입술에 펴바르고 학교에 갔더니 촌스러운 과 남자애들이 막 아유를 보냈다. 초등학생이 엄마 꺼 훔쳐바른 것 같다 야! 갈치 한마리 입에 물었냐? 그러거나 말거나 그 이후로 나의 색조 화장품은 야금야금 늘어났다. 밤색과 검정색 아이라이너, 눈썹 연필, 매니큐어, 색색깔의 아이섀도까지.

그래도 학생시절엔 매일 화장을 한 건 아니었고 그냥 시간 많고 기분 내키는 날 그림 그리듯 시도해봤다가 외출 직전에 북북 지우고는 아이라이너와 립글로스 정도만 내버려뒀던 것 같다. 본격적인 화장은 역시나 회사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일단은 <내 얼굴의 햇살>이라고 불리던 안경을 벗고 콘택트렌즈를 껴야 했는데(얼굴을 반쯤 가리는 당시 유행 안경을 쓴 여직원은 잘 안뽑아주던 전근대적인 시대여서 입사원서용 사진부터 안경을 벗고 찍었다. ㅠ.ㅠ), 안경을 벗고 보니 부은 듯 수북한 눈두덩이 어찌나 더 눈에 거슬리던지! 그걸 감춰보겠다고 아이섀도로 색깔을 입히기 시작한 것. 

암튼 첫 직장이 의류관련업이었고, 그 회사 모토가 <패션을 모르면 패션을 다룰 자격이 없다>는 것이어서 옷이며 화장 가지고 꽤나 스트레스를 줬다. 해서... 옷이야 뭐 그렇다 치고 당시 사진을 보면 화장이 아주 가관이다. 눈주변은 뻘겋고 퍼렇고 때론 밤탱이처럼 시커멓고 입술은 새빨갛지 않으면 시커멓고(왜 그땐 진한 갈색 립스틱이 또 그리도 유행이었는지!)... 게다가 미국본사를 등에 업고 우리가 갑 입장이라 구매자로서 '센' 이미지를 줘야 한다고 선배들에게 교육을 받기도 했다. 끙. 암튼 그래서 앨범에선 그때 사진들이 바로 나의 암흑기다. 닭벼슬처럼 앞머리를 치켜세운 꼬불꼬불한 머리칼은 치렁치렁하고 얼굴은 독기 어린 화장에다 울트라파워숄더 재킷까지. ㅋㅋㅋ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흘러 화장의 유행도 변하고 나이를 먹으며, 이제는 화장이랍시고 얼굴에 공들여 색을 입히는 일이 거의 연중행사가 되었다. 물론 대개 외출할 때는 선블럭과 비비크림 정도야 바르지만, 이젠 귀찮아서 장보러 갈 때나 심지어 보호자로 엄니 병원 따라갈 때조차 미친 척 맨얼굴로 나가도 그리 민망하지 않은 뻔뻔함을 갖추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민낯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화장 지우기 귀찮아서다 ㅎㅎ) 민낯이 민망하면서도 귀찮음을 못이기고 그냥 집밖으로 나설 땐, 어쩔 수 없이 아줌마 다 됐구나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다시 화장에 요란과 부지런을 떠는 모습도 상상되지 않는다.

세대차겠지만 우리때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화장을 정말 일찍 시작하는 추세다. 요즘 열네살 조카의 (인위적으로) 뽀얀 얼굴에 놀란 내가 걱정을 했더니 비슷한 또래의 딸 키우는 친구가 별난 일도 아니라고 위로해주었다. 열네살 중학생이면 비비크림과 파우더, 아이라인은 기본이라고 봐야 한다나. +_+ 수도권 신도시에 사는 그 친구는 지켜보니 6학년 여자애들도 거의 절반은 파우더를 두드리고 다니더라고 했다. 미디어와 사회의 부추김 때문에, 온갖 수단을 동원해 더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은 이제 아이들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친구 말이, 고등학생인 큰딸은 차라리 지각을 했으면 했지 눈썹이 완벽하게 그려지지 않으면 아예 집을 나서질 않는단다. 그래서 친구는 고3이 되기 전에 차라리 딸에게 살짝 눈썹 문신을 해줄까 심각히 고민중이라고 했다. 참고로 친구 딸은 고교평준화가 되지 않은 수도권 지역의 유명 학교 우등생이다. 하기야 미모에 대한 관심과 성적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겠나. 개인차겠지.

그래도 여전히 나는 청소년기의 색조 화장이 걱정스럽고 마뜩찮다. 화장 안해도 눈부시게 예쁘다고, 네 나이 땐 여드름 송송난 이마도 매력이라고 아양도 떨어보고, 지금부터 화장 너무 하면 스무살 즈음엔 피부나이 서른살로 판명될지 모른다고 은근히 협박도 해보지만 별 소용은 없다. 돌아보면 화장에 대해서 이미 어른들이 너무 많은 빌미를 조카에게 제공했던 것 같다. 일종의 색채 수업일 수도 있겠다 여겨, 어린이용 장난감 화장품도 꽤 많이 사주었고(요즘 문제되는 유독성 화학제품은 아니었기를 빌고 있다 ㅠ.ㅠ), 어린 시절 미용실에서 장시간 버티며 까탈부릴까봐서 원장이 조카에게 예쁘게 화장을 해준 적도 많았다. 조카가 워낙 그런 걸 좋아라했었고...


예닐곱살 땐 가끔씩 어른들이 신나서 해주었던 색조 화장이 열네살 땐 '절대' 안된다고 말하는 논리는 내가 들어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 다만 '학칙'에 어긋난다는 점이 문제인데, 요즘 아이들이 그걸 중시할 리도 없지 않은가. 색조화장이라고 해봐야 아직은 비비크림과 아이라인 정도이니, 그저 화장은 잘 지우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하며, '요즘 열네살 다 그렇대'라고 마음을 달래고 있다. 가뜩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소용돌이 같은 사춘기 광풍 가운데 사실 화장은 아주 사소한 부분이니 그냥 넘어간다고나 할까. 귀엽고 어여쁜 조카들이 더는 자라지 않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품은 게 바로 얼마전인데, 간사하게도 지금은 사춘기가 후딱 지나버려 어서 성숙해지면 좋겠다고 빌고 있다. 그러면 사춘기의 말간 맨얼굴이 제일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걸 녀석도 뒤늦게 깨닫게 될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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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소설에는 작가에 따라서 얼마든지 비속어를 사용하는데 왜 번역서엔 그게 허락되지 않을까? 영어로  <son of bitch>는 거의 누구나 상대를 가리지 않고 흔히 쓰는 일상적인 욕이다. 그렇더라도 상황에 따라선 분명 <개새끼>가 정확한 옮김인데 번역서에선 종종 <개자식>으로 순화된다. 그뿐인가. goddamn, damn, fucking, mother fucker, shit... 제 아무리 머리 굴려 나름 기발하게 달리 옮겨봐도 편집 과정에서 그저 <빌어먹을> 아니면 <젠장>, <제기랄> 정도로 순화'당'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원서로 읽으면 방황하는 십대의 날선 언어와 감정, 욕설이 난무하지만(한 페이지에 욕이 막 두세개씩 나온다), 번역서로 읽어보면 어찌나 공손하고 고상하신지. 일부 오역도 오역이지만 이 책의 경우, 비속어의 일체 순화 및 생략은 확실히 읽는 재미를 반감시켰다고 생각한다. 김려령의 <완득이>를 킥킥대고 읽으며 <호밀밭의 파수꾼>의 번역도 가끔씩 그렇게 경쾌한 분위기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문득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다. 물론 두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퍽 다름을 잘 안다. 둘 다 남자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다보니 단순히 예를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라를 막논하고 약간 삐딱한 청소년이라면 원래 욕이 일상 아닌가?

암튼 언젠가 범죄소설을 번역하면서 수시로 등장하는 fucking의 뉘앙스를 살려보겠다고 내딴엔 비속어인 '씹할'을 주장했다가 결국 졌다. 단순히 한국 출판계에서 번역어의 공손함과 교양을 추구하기 때문은 아니다. 비속어가 남발된 책은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청소년 유해간행물로 딴죽을 걸 수도 있고, 그러다 혹 재수없게 19금 판정이라도 받게 되면 비닐로 포장 판매를 해야한단다. 그랬다간 가뜩이나 열악한 시장에서 독자층은 좁아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어쩔 수 없이 지레 위축된 편집자와 번역자는 오랜 세월 원서의 비속어를 자체 검열하는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설을 읽어보면 길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비속어와 욕을 작품에 구사해도 아무 문제 없더구만? (가령,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을 읽으며 '씨발'을 비롯한 비속어의 사용이 매우 자연스러워 놀랐었다) 그런데 왜 번역서는 구태의연하게 계속 공손해야 하는지?

그나마도 요즘엔 번역서에서도 <나쁜년> 정도는 허용되는 추세다(과거엔 <못된 계집>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아직도 <새끼>는 <자식>, <놈>으로 순화하고 있자니 문득 부아가 난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가끔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외칠 때 느끼는 희열을 번역서에서도 느끼면 안되는 걸까? 일부러 격 떨어지고 천박한 언어로 번역할 이유는 없지만, 걸핏하면 '원서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독자들의 비수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번역인들에게도 이제는 좀 제대로 비속어를 우리말로 옮길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 이미 그렇게들 하고 있는데 내가 너무 보수적인 출판사들과만 일을 했던가? -_-;;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 작업하는 책에선 나름 원색적인(?) 비속어를 또 한번 디밀어볼 생각이다. 통과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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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모기

투덜일기 2011. 11. 21. 02:26

잠결에 오른쪽 귓가에서 앵~ 모기 소리를 들었다. 모기와의 동침은 있을 수 없는 법. 알고서야 그냥 잘수가 없었다. 반사적으로 일어나 딸깍 전등을 켰다. 잠결에도 얼른 안경을 찾아 쓰고 눈에 초점을 모아 사방을 살폈다. 갑작스레 전등이 켜지면 모기란 놈도 멀리 도망가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하얀 벽에 꼼짝않고 붙어 있었다. 뒷걸음질을 쳐 휴지를 뽑아들고는 살그머니 다가가 단숨에 후려쳤다. 벽과 휴지에 놈의 새빨간 선혈이 묻어났다. 쯧쯧쯧... 가엾은 엄니가 한방 물리셨나보구만. 그래도 내가 복수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불을 끄고는 다시 잠을 청했다. 근데 엄마를 물어뜯은 모기가 어떻게 닫은 문새를 뚫고 내방으로 들어왔을까 잠결에 의문이 들었으나 궁금증보다는 잠이 우선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목덜미에 딱 드라큘라 흡입자국 위치에 난 빨간 자국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때려잡은 모기는 바로 내 피를 실컷 빨아먹고서 몸이 무거워 유난히 요란하게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던 놈이었다는 것을. 우어어어!!! 잡았으니망정이지 그냥 놓쳤더라면 얼마나 더 약이 올랐을까. 날이 추워져도 좀체 사라질 줄 모르는 빌어먹을 모기들!

요즘 거의 평균 하루에 세 마리꼴로 모기를 때려잡고 있다. 문틈을 다 막아놓아도 화장실 배수구로 들어온다기에 일부러 배수구 위에 대야를 얹어 원천봉쇄를 하는데도 모기들이 수시로 출몰을 한다. 마트엔 모기매트도 철수했대서 더 살 수도 없는데 젠장! 뿌리는 모기약으로 승부를 걸어보지만, 허브향으로 산 탓인지 살충능력이 별로 강하지 않은 것 같다. 얼핏 맞아서는 어림도 없고 직접 두어번은 쏘아주어야 겨우 죽으니 원. 하기야 살충성분이 너무 강하면 사람에게도 해롭다던가. -_-;

그동안 모기들은 주로 우리가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 따라들어왔다. 옛날 속담을 곧이곧대로 믿으시는 엄마는 처서 지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지기 때문에 물지 못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지난주 가을모기에게 얼굴을 집중적으로 공략당하고는 가까스로 그 믿음을 버렸다. 요새 모기는 겨울에도 펄펄 살아 날뛰는 것을! 어제도 세 마리나 죽였으니 온종일 현관문을 열지 않고 지나간 일요일엔 날아다니는 모기가 없어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도 조금 전 두마리를 사살했다. 급한 마음에 모기 스프레이를 찾을 새도 없이 손바닥으로 날아가는 모기를 잡고나면, 안데르센 동화였던가 그림동화에서 '한방에 일곱'이라고 적은 띠를 두르고 영웅 취급을 받았던 소년 생각이 난다. 한방에 일곱은 아니지만 하루에 서넛은 나도 퍽퍽 해치우고 있다. 혹시 화분 받침에 물이 고이면 거기다 모기가 알을 낳을 수도 있대서 확인해봤지만 장구벌레 같은 건 없다. 다만 잎이 무성한 화분에 모기들이 숨어있을 확률이 높긴 하다. 지난 여름 앵두나무에도 그렇게 모기들이 많이 숨어있더니만!

드디어 영하권으로 떨어진 서울 날씨. 현관문 밖에 진을 치고 있던 모기들은 이제 드디어 다 얼어죽었으려나? 아니면 교활하게도 또 어느 하수구로 다들 숨어들어 배수구를 막아놓은 목욕탕 대야가 열릴 순간을 노리고 있으려나? 지금도 모기를 유인하느라 요란하게 숨을 내뱉는 중이다. 어쩐지 한 마리 더 잡아 오늘의 평균량을 해치워야 안전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빌어먹을 모기야 어서 덤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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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라이스를 먹는 방법이 어디 두가지 뿐이겠냐마는 대략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밥과 카레를 한꺼번에 다 비벼놓고 균일한 맛을 즐기며 먹는 방법과 카레를 끼얹은 밥을 조금씩 먹을 만큼만 비벼먹는 방법이다. 원래는 빙수를 먹는 두 가지 방법으로 제목을 정하려다 너무 계절과 동떨어진 것 같아서 참았다. 사실은 빙수 먹는 방법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카레라이스야 혼자 먹지만 빙수는 대개 둘이 같이 먹으니 먹는 방법이 다르면 그야말로 '대략난감'이다! 올여름 빙수값이 거의 만원에 육박한 걸 보며 미쳤구나 생각했지만, 그래도 대개 둘이 나눠먹으니 다른 음료값과 비교하면 그럴만도 하다고 애써 이해하는 태도를 취했었다. 한 그릇 놓고 퍼먹으려면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아예 먹을 엄두도 낼 수 없는 빙수야말로 같이 먹는 사람의 취향이 중요하다.

나는 카레라이스도 그렇고 빙수도 그렇고 처음부터 섞어먹는 걸 싫어한다. 카레라이스 뿐만 아니라 각종 덮밥은 한꺼번에 비벼놓으면 어쩐지 개밥스러운 것이 먹을 확 맛이 사라지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비벼파'의 주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짜장면과 비빔밥을 처음부터 다 비벼야 양념맛이 고르게 배듯 덮밥류도 처음부터 죄다 골고루 비벼놓아야 시종일관 일정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점, 나도 인정한다. 짜장면과 비빔밥은 나도 처음부터 열심히 비벼서 먹는다. 짜장면은 그냥 두면 면이 불어 떡처럼 엉기니 어쩔 수 없이 비벼야하는 것이고, 비빔밥은 이름부터 비비는 행위가 근본임을 밝혀둔 음식인데다 가닥가닥 엉킨 나물과 고추장 양념은 한 숟가락에 따로따로 골라 담기가 어려운 재료다. 하지만 나머지 덥밥은 이미 다른 양념이 다 섞여 있으니 밥에 얹어서 입안에 넣고 음미하면서 얼마든지 씹어서 섞을 수 있다. 오히려 다 비벼놓으면 나중엔 양념수분이 밥알에 다 배어들어 대단히 뻑뻑하고 맛없어 보이는 단계로 변한다. 더욱이 요즘 유행하는 일본식 카레는 어찌나 짠지 처음부터 대뜸 비볐다간 못먹기 십상이다. 혹 양념이 모자라 나중에 맨밥을 먹는 한이 있어도 나는야 '조금씩 비벼파'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빙수는 각종 과일과 연유 단팥, 아이스크림을 죄다 섞어 곤죽을 만들어놓으면 내눈엔 순식간에 시궁창(!)으로 변한 것만 같다. ㅠ.ㅠ 그냥 한쪽 구석에서 야금야금 조금씩 뒤섞어 파먹으면 끝까지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거늘... 해서 취향이 다른 친구와 빙수를 같이 먹게 되면 처음에 몇번 숟가락질을 하다 이내 숟가락을 놓고 만다. 서로 배려하느라 절반씩 남기거나 섞는 노력을 기울여도 어쨌거나 얼음은 녹기 마련이니까. 지난 여름 몇번 팥빙수를 시도했다가 번번이 취향차로 속상한 일을 겪고는 2인용이라며 마구 가격을 올려버린 제과및 음료업체를 원망했다. 옛날처럼 작은 그릇에 1인분씩 저렴하게 팔면 좀 좋으냐고! 
 
실은 오늘 카레라이스를 해먹었는데 '처음부터 비벼파'이신 엄마와 '조금씩 비벼파'인 나는 서로의 카레라이스 먹는 방법을 매번 못마땅해한다. 엄마는 내가 카레라이스를 깨작거리며 먹는다고 생각하고, 나는 엄마가 비벼놓은 카레라이스가 영 맛없어보인다고 여긴다. 수십년 넘은 습관이니 그러려니 할만도 하건만, 못마땅한 건 못마땅한 거다. ^^; 가끔 밖에 나가 중식집에서 요리 하나에 잡채밥이라도 시켜 같이 먹게 되면 엄마가 얼른 다 뒤적여놓기 전에 잡채밥 접시에 금이라도 긋고 싶어진다! ㅋ 조금 전 식탁에서도 카레를 따로 그릇에 담아 놓았더니 엄마가 설거지 거리만 많아지게 뭐하러 그랬냐고 잔소리를 했다(아 설거지는 내가 하는구만!). 결국 나는 보기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까칠한 외모지상주의자로 또 한번 결론이 났고, 엄마는 겉모양보다 맛이 더 중요한, 무던한 실용주의자였다. 하이얀 얼음과 과일, 연유의 모양새를 최대한 지켜가며 빙수를 먹으려드는 내 모습을 보면(아무리 노력해도 곤죽이 되는 순간은 있다! 다만 비비지 않으면 완전 회색물로 변하지는 않는다;; -_-;) 웃길 수도 있겠으나 어쩌겠나. 취향이 이렇게 고정되어 버린 것을. 그래도 내 주변엔 나처럼 까칠한 사람 많을 거라고 항변하는 의미로 끼적여봤다. 저 말고도 카레라이스랑 빙수 안 비벼서 드시는 분 많죠? 그쵸?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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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투덜일기 2011. 11. 15. 03:03

학창시절 해마다 열리는 합창대회가 난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거의 한달도 넘게 방과후에 꼬박 남아 연습하는 게 무엇보다도 제일 싫고, 악보도 잘 못보는 까막눈으로 자칫하면 새로운 노래를 두곡이나(지정곡 하나, 자유곡 하나) 배워야하는 것도 싫고, 합창대회 직전 무대 뒤에서 닭비린내 나는 날달걀을 깨먹어야 하는 것도 싫었다(반장이 달걀 두판 사가지고 와서는 목소리 잘 나오게 무조건 먹으라고 무식하게 강요했었다. 지금에야 말하지만 달걀 껍질에 살모넬라 균 있을지도 모른다는데! 수년간 매해 날달걀 입대고 억지로 먹고도 다들 멀쩡한 게 참 신기하다. 우웩~).
 
투덜투덜 못마땅해하는 내가 속했던 때문인지 중고등학교 6년 내리 내가 속한 반은 합창대회에서 상을 타본 적이 없었다. 지휘자랑 반주자는 꽤나 유명하고 훌륭한 애들이었는데도 그랬다. 고등학교 때 나랑 3년 내리 같은 반이었던 지휘자는 조회 때마다 단상에 올라 애국가랑 교가 지휘도 하고 성악전공도 하는 실력자였는데도 우리반 60명으로는 합창대회 수상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악보치이긴 해도 음치박치는 아닌지라 내가 턱 들어봐도 합창 잘하는 반은 확실히 소리가 틀렸다. 화음의 균형이 잡히고 소리도 웅장하달까. 합창대회때 강당에 앉아있어보면 대강 어느 반이 상을 타겠구나 짐작이 가능했다.   

대학때도 잠깐 합창반 동아리에 억지로 끌려다닌 적이 있었는데, 둘째주였나 무려 독일어 가곡을 막 가르치려들어서 얼른 도망쳤다. 고딩때 합창대회 지정곡으로 <들장미>를 독일어로 외워 불러야했던 해의 악몽이 떠오르지 않겠나. -_-; 나는 아무래도 협동심이 좀 떨어지는 부류였던 것 같다. 매스게임도 그렇고 단체로 뭘 좀 하라 그러면 왜 그리도 싫던지! (하기야 단체로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마는, 그래도 합창대회며 응원대회 같은데서 상타는 반은 꼭 있기 마련;;) 내가 합창을 싫어했기 때문인지, 드물게 합창공연을 보아도 별 감동은 없었다. 그저 연습하기 힘들었겠구나 생각했던가? 그래도 전문합창단 공연은 대개 악보를 보면서 하니까 별로 안 어려울 것도 같았다. 

교생실습을 나가서도 애들 합창대회 준비를 도와봤지만 어휴, 할 게 못됐다. 피아노를 좀 배운 전적이 있든지 해서 악보 보고 대강이나마 음을 잡을 줄 아는 아이들은 반에 절반밖에 안 됐던 거 같다. 한소절 두소절씩 파트별로 노래를 기껏 가르쳐 돌려보냈다가 다음날 연습시켜 보면 다시 원점이고 엉망이었다. ㅋㅋ 하기야 뭐 나도 학생땐 그랬으니까. 다만 교생 입장일 땐 내가 아는 노래여서(6년이나 합창대회를 겪어봤더니 곡이 빤하더군) 참견이 가능했을 뿐. 물론 내가 교생때 맡았던 반도 역시나 합창대회에서 상을 타지 못했다. 나의 징크스였을까? ㅋ

하여간에 억지로 합창대회 준비를 할 때는 그렇게도 싫더니만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과 일반인이 모여 합창단을 꾸려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은 꽤 재미있게 보았다. 우는 사람 보면 덩달아 우는 버릇이 있긴 하지만 그와 별도로,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한 개개인이 모여 함께 노력해 얻은 성취감이 주는 눈물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대중매체의 힘과 유행 탓도 있겠으나, 암튼 그 프로그램 이후 전국적인 합창붐이 일었다고 들었다. 최근엔 시즌2로 실버합창단 프로그램도 방영했다.

여든이 넘어서도 고운 목소리로 합창단에 지원한 할머니를 TV로 보며 자극을 받으셨는지 울 엄마도 지난달부터 동네 문화센터인지하는데서 운영하는 노인합창단에 가입해 열공중이시다. 문제는 울 엄니가 박치라는 것. +_+ 소일거리 삼아 그냥 놀러 다니면 딱 좋겠구만 다음달에 공연이 있어 두곡을 완전히 익혀야 한다는데, 노인들이 일주일에 한번 연습으로 과연 그게 가능할지 나로선 심히 의문이다. 울엄마만 해도 수요일마다 합창연습 하고 돌아온 날은 그럭저럭 악보를 보며 노래를 하시는데, 바로 다음날만 되도 전혀 다른 가락이 흘러나온다. 듣고 있자면 웃겨서 미치겠다! 완전 민폐일 것 같아 걱정했더니, 같이 다니는 이웃 한분은 아예 콩나물대가리 구분도 못하신다고 자기는 우등생축에 든단다. +_+

요즘 엄마가 매일 악보를 보며 열공중인 노래는 <그대 있는 곳까지>(나는 <에레스뚜>로 배웠던 노래). 다행히 내가 아는 노래라서 2주째 매일 개인교습(?)을 시켜드리고 있는데, 음은 이제 얼추 다 잡아드렸으나 아직도 박자가 대단히 어설프다. '...그대목소리~ 아~모두...' 부분이 전혀 안된다. 이후 반복되는 '... 있을까~ 아~ 바람아..' 부분도 마찬가지. ㅠ.ㅠ 하도 매일 이 노래를 불렀더니 나도 모르게 아무때나 흥얼흥얼 아주 입에 붙어버렸다. 물론 왕비마마께서는 TV보다 말고도 척 악보를 펼치고 연습을 하실 정도다. 그러고도 음정박자는 여전히 불안불안.

하지만 엄마의 합창연습을 보며 막상 당시엔 몰랐다가 한참 지나고서야 알게 되는 가치를 또 한번 깨닫는다. 학창시절엔 참 지겹고 싫기만 했었는데 왜 해마다 교내합창대회를 강행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억지로라도 여럿이서 입을 모아 한 목소리를 내는 연습을 한다는 것의 의미 외에도, 그때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그런 합창곡들을 끝까지 외웠겠으며 날달걀 톡톡 깨먹는 법을 배웠겠나. 콩나물대가리에 서툰 내가 불안하게 외워 익힌 음정을 한달쯤 연습 후 자신있게 소리낼 수 있게 된 과정도 다 내겐 피가 되고 살이 되었겠구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계속해서 엄마의 합창연습을 열심히 도울 생각이다. 영원히 함께하자던 그 맹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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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럽 한 컵을 훌러덩 마시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오늘 처음 해보았다. 뜬금없는 제목의 사연은 이렇다. 홍대앞 롯데시네마 건물에 있는 타코집엘 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부동산에서 걸핏하면 우리집으로 전화를 걸어와, 그 건물에 점포 하나 분양받으면 땡잡는 거라고 꼬드겼지만 나는 코웃음을 쳤었다. 건물 완공된뒤 몇년째 영화관말고는 완전 폐가처럼 을씨년스럽게 칸막이를 쳐놓았더구만 무슨. 그런데 간만에 갔더니 그새 그 큰 건물에 점포가 다 찼더라!(어쩐지 최근 몇달은 그런 전화가 안 걸려오더라니;)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도 막 들어오고... 내 말을 들은 동행은 그러게 기획부동산 말대로 그때 점포 하나 분양받아놓지 그랬느냐고 킥킥댔다. 거기가 요새 유니클로/북스리브로와 함께 새로이 뜨고 있는 홍대앞의 랜드마크라나 뭐라나.

하여간에 후식으로 스노우마운틴 아이스크림까지 먹을 계산을 하고 간단히 요기할 생각에 타코집에 들어가 부리또를 시켰다. 종업원은 초록색 컵과 함께 물이 담긴 투명한 플라스틱 통을 가져다주었다. 목이 말랐던 나는 얼른 컵에 물을 따랐는데 따르면서도 어째 물의 점도가 좀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긴 했다. 뭔가 좀 진하고 걸쭉한 듯... 그러나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멕시코식당이니깐 뭔가 물에 '조치'를 취했을지도 모른다 싶었던 것. 얼음물에 레몬 띄워주는 것처럼 말이다.

컵에 가득 채운 물을 들어 한모금 벌컥 마셨던 나는 곧이어 입안 전체에 퍼지는 단맛에 경악했다. 이미 한모금 넘기고도 한가득 입에 머금고 있던 시럽은 도저히 넘길 수가 없어 뱉을 곳을 찾아 벌떡 일어났다. 냅킨을 수십장 집어왔지만 결국 나는 동행이 권하는 대로 컵에 다시 시럽을 뱉었다. 종업원이 실수로 얼음물대신 시럽이 담긴 통을 준 거였다! 미안하다며 곧이어 다시 얼음물통과 새컵을 가져다주었지만... 마비된 내 혀는 그게 물맛임을 알아차리는데도 한참 걸릴 정도로 충격은 쉬 가시지 않았다. 아보카도를 넣은 부리또는 꽤나 맛있었지만 달디단 시럽을 삼킨 후유증은 너무도 커서, 우린 아이스크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으으으 몸서리쳐지는 단맛의 기억! 

언젠가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물인줄 알고 가져다준 세척제를 마셔서 탈이 난 뉴스가 떠올랐다. 그땐 어떻게 물이랑 세척제 맛을 구분 못할까 싶은 생각도 했었는제, 겪어보니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그래서 비눗물도, 독약도 마실 수 있는 거구나... 물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맛을 느끼기도 전에 벌컥벌컥 들이킬 수 있구나... 

겨우 시럽 한모금씩을 삼킨 것뿐인데 나중에 커피와 맥주로 뱃속을 꽤나 희석(?)했음에도 아직까지 메슥거리는 속이 좀체 진정되질 않고 있다. 그래서 과학적인 분석과 상관없이 그냥 시럽 한컵이 내겐 치사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타코집에서 대체 그 시럽을 어떤 용도로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두 컵을 다 따라버려서 그 통에 든 시럽은 바닥 났었다. 아이스커피용 시럽일까?) 앞으로는 부디 물통과 다른 그릇에 담아두기를 빈다. 그게 시럽이 아니라 강력 세척제였다면 우린 응급실에 실려가지 않았을까? -_-;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니 좀 더 강력하게 불만을 표출해서 할인이라도 받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지네. ㅋ 물론 당시엔 별말 않고 고분고분 계산하고 나왔다. 내가 그렇지 뭐. 어쨌거나 앞으로도 어딜 가나 시럽은 내게 엄청 무서운 액체일 듯!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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