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다

투덜일기 2011. 7. 6. 02:40

고등학교 졸업후 소식을 통 모르다 수십년 만에 만난 동창생. 많이 변했겠거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워낙 인면치이긴 하지만 어디서 본듯한 낌새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성형 때문이었다. 눈, 코, 뺨, 치열교정의 효과라고 했다. 나로선 도대체 시선을 어디 두어야할지 몰라 어색함을 무릅쓰고 일부러 계속 옆자리에 앉았다. 좀처럼 마주볼 자신이 없을 정도로 첫인상은 좀 무서웠다. 예전엔 눈매가 기름하니 순하고 귀여운 인상이었는데.  거의 변하지 않은 목소리와 걸음걸이로 겨우 붙잡아낸 반가움이 긴 세월의 무게와 낯설음을 이기기까지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같이 만난 다른 친구에게도 고백했지만 내눈엔 조금도 예쁘지 않았고 나이보다 젊어보이지도 않아 이상했다.

그 친구의 성형이 좀 과할뿐, 내 주변에도 성형으로 '예뻐진' 이들이 서넛에 하나쯤은 있는 듯하다. 쌍꺼풀 정도는 아마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변화한 뒤에 만난 사람에겐 굳이 물어본 적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원한다는데야 성형수술을 굳이 반대할 마음도 없다. 하지만 전혀 성형 따위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친구가 떡하니 얼굴을 고치고 나타난 경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심 약간 실망스럽기는 했다. 나 역시 예쁘고 잘생긴 사람에 반색하는 외모지상주의자이면서 그 무슨 심술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눈을 째고 코를 높이고 턱뼈를 깎고 얼굴 사방에 주사바늘을 꽂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외모를 바꾸는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다(배우나 모델이라면 몰라도;;). 심지어 수술후 더 미워진 경우는 정말 속상하다. 개인적으로 쌍꺼풀이 없는 길쭉한 눈매를 좋아하는데 하나같이 눈을 찝어 동그랗게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놓는 것도 못마땅하다.

요즘 젊은 남녀가 많이 다니는 곳에 가보면 인면치인 내눈엔 정말 똑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공장에서 규격 맞춰 찍어놓은 공산품처럼. 외모도 경쟁력이기 때문에 너도나도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뜯어고쳐야 살아남을 수 있을 듯한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말도 들린다. 오죽하면 성형공화국이 됐을까. 가뜩이나 취직도 잘 안되는 상황에 못생기고 뚱뚱하면 시작도 해보기 전에 패배자로 낙인찍힌다나. 정말 그럴까. 90%를 훨씬 넘는다는 대학진학률처럼 우리나라 인구의 성형률도 그 정도 수치에 육박하고 나면 아무 소용없는 게 아닐까. 그 가운데서도 이른바 돈을 들여 스펙쌓기 경쟁을 하듯, 외모와 성형의 정도도 시술 가격 및 결과에 따라 경쟁력을 갖게 되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친구의 경우 성형으로 미인이 된 게 아니란 건 확실했다. 부자연스러운 건 확실히 아름답지 않다. 대부분의 인공미인을 내가 못마땅히 여기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성형까지 갈 것도 없다. <6시 내고향> 같은 탐방 프로그램에 나오는 지방의 할머니 어르신들도 가만 보면 다 문신으로 짙게 새겨 숱검댕이 같은 눈썹을 하고 나온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서워 죽겠다.

다들 감쪽같이 자연스럽게 예뻐져 눈쌀 찌푸릴 일이 없다면야, 그들이 생돈을 들이든 뼈를 깎는 아픔을 겪든 내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미추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므로 내 잣대를 들이댈 일도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관리가 칭송받아야 하는 덕목임은 확실하므로, 자연을 거스르는 인공적인 관리 노력 역시 미덕으로 봐야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음 생이 있어 외모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예쁘게 태어나고 싶은지, 귀엽게 태어나고 싶은지 꽤 심각하게 고민했던 걸 떠올려 봐도 점점 더 모르겠다. 과정이 어떠하든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면 좋은 건가. 에라이, 모르는 소리는 관두고 중력 때문에 늘어지고 처진 내 뺨과 주름을 사랑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는 데나 신경을 써야겠다.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극구 위로하면서. 10년쯤 뒤 극구 위로하던 자연스러운 변화가 영 마음에 안들면 나도 겁없이 과학과 의술의 힘을 빌려는 생각이 들지, 그 또한 모를 일이니까.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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