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1.04.08 때문이야 15
  2. 2011.04.07 봄비 10
  3. 2011.04.04 제비꽃 6
  4. 2011.03.31 다짐
  5. 2011.03.21 딸기와 신문지 12
  6. 2011.03.10 변하지 않은 것 12
  7. 2011.03.09 무사귀환 6
  8. 2011.03.06 닥터 하우스가 필요해... 16
  9. 2011.03.01 고구마 10
  10. 2011.02.28 선물 고민 12

때문이야

투덜일기 2011. 4. 8. 12:47

차두리가 이상하게 엇박으로 몸을 움직이며 "간 때문이야~"라고 노래를 불러대는 CF를 볼 때마다 비싯 웃음이 난다. 그 제약회사는 그 광고에 힘입어 매출이 엄청나게 올랐다니, 확실히 성공한 광고 사례다. 차두리의 매력과 중독성 강한 CF송 덕분이기는 하겠지만, 내 생각엔 어린시절부터 누구나 "@@때문이야!"라고 핑계대는 화법에 익숙해서 광고가 더 친근하게 다가왔던 게 아닐까 싶다. 친구랑 놀다가도 "너 때문에 망쳤잖아!"라거나 "쟤 때문에 안 놀아!", 부모나 동생에게 "엄마(너) 때문에 TV 못 봤잖아!"라고 했던 기억 누구나 있지 않을까.

어제는 종일 비 내린다고 괜히 분위기 잡다가 정말로 호박 부침개 부치면서 빈속에 먼저 캔맥주를 따서 벌컥벌컥 마셨더니 전도 술도 어찌나 맛이 있던지 헬렐레 기분까지 좋아졌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간만에 마신 술에 적응이 안됐는지 금세 알딸딸, 결국엔 초저녁에 뻗고 말았다. 밀린 일 할당량은 어쩌라고 술을 마셨던고 나중에 후회해봐도 소용없는 일. 벌개진 얼굴로 누워 속으로 외쳤다. 비 때문이야! 호박 부침개 때문이야! 맥주 때문이야!

물론 시작은 나 때문이다. ㅋㅋ
 

광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차두리의 간 영양제 광고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반대로 요즘 볼 때마다 내가 기분나빠하는 광고가 하나 있으니, 바로 ㅇ사의 브랜드 광고다. 아리따운 아이돌 여가수들이 떼로 몰려나와서 엄마를 하녀 부리듯 "엄마, 시원한 물 한잔 부탁해~!", 세수하고 나서는  "엄마, 수건 좀 부탁해!"라는 식으로 온갖 잔심부름을 시키며 "부탁해~!"라고 외치다가 그럼 엄마는 누구한테 부탁하느냐고 묻는 줄거리다. 엄마는 ㅇ사에 부탁하면 된다나. 악!!!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볼 때마다 진짜 짜증난다. 신경숙의 소설이 워낙 잘 나가니까 그 제목을 패러디했다는 건 알겠으나, 내 맘에 안드는 건  안드는 거다. 물론 아직도 자식을 하늘 떠받들듯 공주 왕자 모시듯 보필하는 엄마들이 세상엔 많겠지만 이건 뭐, 물 한잔도 엄마에게 시켜먹으라고 대놓고 부추기는 것도 아니고 뭐냐고! 나의 조카들은 대여섯 살만 되면 물은 자기가 알아서 따라먹을 수 있더구만, 왜 다 큰 멀쩡한 지지배들이 겨우 손톱 칠하느라고 엄마를 부려먹는지 원. 혹시라도 그 광고 때문에 애들이 새삼스레 엄마를 더 부려먹게 될까봐 염려하는 건 지나친 생각일까.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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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투덜일기 2011. 4. 7. 12:01

방사능 성분이 섞였네 마네, 외출을 삼가야 하네 어쩌구 언론에선 호들갑을 떨지만 어쨌든 나는 올해도 봄비가 반갑다. 새벽까지 기다려도 내리지 않더니만 어느새 똑똑 옥상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잠을 깼다. 자동차가 가끔씩 젖은 골목길을 지나며 내는 소리는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서 지지직 전이 익어가는 소리 같다. 비가 오면 부침개가 떠오르는 이유가 빗소리와 전부치는 소리의 음역대가 비슷하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하는 이야기를 TV에서 본 것 같다. 그 뒤론 비와 부침개와 술한잔을 연결해 생각하는 조건반사가 더욱 심해졌다.

어쨌거나 해마다 하는 나의 봄비 타령은 곧 꽃 타령이다. 어제 나가보니 개나리 목련은 죄다 피었고 올해도 가지치기를 건너뛴 앵두나무에도 담장 너머로 가지를 뻗어 우리집 베란다까지 손을 뻗은 이웃집 벚나무에도 꽃눈이 다닥다닥 이제 곧 빵 터트릴 태세를 갖췄다. 지금 두 나무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나뭇가지를 분홍색으로 덧칠해야 할 만큼. 봄꽃은 꼭 그렇게 무심한 내 옆구리를 쿡 찌르듯이 갑자기 피어나는 느낌이다. 분명 조금씩 조금씩 꽃눈을 키워왔을 텐데도 눈 뜬 장님이었던 내 탓이긴 하지만, 어쩌면 뚯밖의 횡재처럼 반가운 봄꽃을 보려고 일부러 눈감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며칠만 더 눈 질끈 감고 있으면 튀밥 같고 솜사탕 같은 앵두꽃, 벚꽃이 요것봐라 하면서 짠 피어 있을 거다. 오늘 내린 봄비에 그날이 좀 더 당겨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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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투덜일기 2011. 4. 4. 07:19


평년보다 훨씬 따뜻했던 한식 성묘길 나들이. 공원묘지 여기저기 제비꽃이 피어있었다. 인공적인 색채의 요란한 조화가 유일하게 어울리는 공원묘지에서 땅바닥에 잔뜩 수그려핀 보라색 생화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원래 잡초처럼 무더기로 많이 피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무덤가엔 딱 한송이가 피었다. 무더기로 많았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꺾어서 조카들에게 하나씩 반지를 만들어주었겠지만, 그냥 카메라만 들이댔다. 누렇게 마른 잔디 사이에서 잡초들과 함께 제일 먼저 홀로 피어난 제비꽃. 드디어 완연한 봄이 왔다고 인정하련다. 

십수년 전만 해도 통일동산과 공원묘지뿐, 허허벌판 아무도 없던 곳에 프로방스, 헤이리 마을이 생겨나고 영어마을이 들어서고 이젠 무슨무슨 아울렛까지, 그곳에 잠들어 계신 분들 참 정신 시끄럽겠다 싶게 근방까지 자동차행렬이 엄청나 한숨이 다 나왔다. 대식구라 이젠 인근 식당에서 밥먹기도 어려워 성묘 음복이 진짜로 도시락 싸가는 피크닉이 되어버렸으니 우리에겐 다행인 건가, 불행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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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짐

투덜일기 2011. 3. 31. 19:39

블로그를 하면서 늘 걱정하는 부분. 나는 왜 대단히 사적인 영역의 이야기들을, 사적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대단히 공적인 공간인 여기에 매번 풀어놓는가 하는 점이다. 간혹 노출증 환자 같다는 느낌도 버릴 수 없다. 어떤 느낌이든 굳이 적어두고 광고할 이유는 없을 텐데. 도저히 끝나지 않을 이런 원초적인 고민을 이제야 하고 있는 덜떨어진 인간 같으니.

암튼 드물게 올린 책 리뷰가 직방으로 검색망에 딱 걸려든 걸 보고 새삼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혼자 쓰는 배설용 일기라고 주장해도 여기 쓰는 잡담들은, 오래 전 수련회 입고 갈 잠옷을 새로 장만하기 위해 책상에 펼쳐두었던 거짓일기와 다를 바 없다고 말이다. 원래의 목적이든 아니든, 결과가 노골적일수록 나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함부로 끼적일 일이 아니다. 그래서 몇 가지 다짐했다.

안하던 짓은 그냥 하지 말자. 특히 일년에 한두번 올릴까 말까 하는 책 후기를 충동적으로 올리는 짓은 하지 말자. 특히 최신간은 묵혔다가 읽자. 욱하는 성미로 급히 충동적인 리뷰를 써올리기에 나의 독서 내공과 분석력은 그리 믿을만하지 않다. 기껏해야 손발 오그라드는 칭송과 부러움의 토로, 또는 막연하고 상투적인 감상밖엔 못쓸 주제란 걸 깨닫자. 그나마도 쓰려거든 부러움따위를 초월해 그저 존경할밖에 없는 고전 대가들의 책부터 써보든지.

글 공개에 신중하자. 생각가는 대로 막 지껄인 트위터 글을 5분 뒤에 슬쩍 지운 적도 많아 그쪽엔 뜸을 들이는 편인데 블로그 포스팅은 사후 수정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막 질러대는 느낌이다. 일단은 써놓더라도 공개해서 나누어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글인지 좀 뜸들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엄격하게 따지고 들자면 다 비공개로 돌려야할 글들임은 잘 알지만...

주말에 다녀간 동생들과 이야기하다 열등감 이야기가 나왔었다. 나름 잘난 줄 알고 살다가 큰코 다쳤던 이야기들. 주로 내가 떠들었다. 언제부턴가 열등감과 피해의식, 자격지심에 쩔어 살아온 속물 인생이다. 스스로 막 자학하고 반성해서 주변의 부인과 동정을 이끌어내는 유형의 인간 너무 싫은데, 정작 만날 내가 그꼴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냥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부족함은 단순히 '다름'으로 인식하는 자신감 회복과 자기애가 필요하다. 그래서 4월은 '나잘났어'의 달로 정해볼까 한다.

그간 또 까먹고 있었다. 블로그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이어야지 스트레스를 받는 곳이어서는 곤란하다. 관계 때문이든 글의 내용 때문이든 취향이나 의견 차이 때문이든, 무얼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편히 보고 편히 살자. 의무는 없다. 그리고 너무 얽매일 필요도 없다. 다만 이런 당연한 걸 간간이 일깨워야 하는 단세포 사고가 아쉬울 뿐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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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와 신문지

투덜일기 2011. 3. 21. 02:05

나이가 많아지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뜨악해 하거나 놀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험들이 내게도 꽤 많다. 동네 시장 어귀에서 살아 있는 닭 한마리를 골라 주인이 탁 모가지를 쳐서 잡아가지고 드럼통을 개조해 만든 털뽑는 기계에 넣어 닭털을 정리한 뒤 생닭을 팔거나 그 옆에 기름솥을 놓고 튀겨서도 팔던 닭집이라든지, 아궁이에서 연탄갈기, 석유곤로 따위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도 흔해빠진 흰색/검정색 비닐봉지 이전에 모든 시장에서 사용하던 신문지도 빠뜨릴 수 없다.

닭집 앞을 지나치는 게 너무 무섭긴 했지만 엄마 따라 시장 다니는 걸 좋아하던 나는 나중엔 엄마 대신 혼자 장보기 심부름을 다녔다. 그땐 모두들 플라스틱 장바구니나 동그란 손잡이에 실뜨개로 짠 망이 달린 장바구니를 가져갔다. 닭을 사도, 생선을 사도, 돼지고기를 사도, 하다못해 콩나물이나 풋고추를 사도 그 옛날 시장에선 다들 신문지 두어장에 내용물을 둘둘 말아 장바구니 안에 넣어주었다. 그래서 시장터 가게마다 신문 전지를 4등분한 크기의 신문지를 몇뼘이나 되는 높이로 쌓아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때문인지 학교에서 폐품을 걷을 때도 신문지가 제일 인기 품목이었고.

환경 문제로 비닐봉지 사용을 자제하려는 움직임이 요새 다시 일고는 있지만, 장바구니를 가져가더라도 마트를 가든 시장엘 가든 여전히 모든 먹거리는 기본적으로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것이 정석으로 굳어졌다. 무게를 담아 파는 채소를 살 때도 일단은 작은 비닐에 담아야 가격이 적힌 스티커가 나오는 판국이니까. 게다가 이젠 종이 신문 보기가 거의 하늘의 별따기처럼 느껴지고 있으니, 재활용도가 높은 신문을 옛날처럼 쓰라고 해도 다량으로 구할 수가 없어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몰라서 그렇지 신문지는 여전히 유용하게 쓰이는 포장재였던 모양이다. 주말에 이모가 다니러 오며 빨간 플라스틱 대야를 맞붙여 노끈으로 묶은 딸기를 들고 오셨다. 마트에서 파는 딸기는 대개 스티로폼이나 투명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지만, 과일 도매상에 가보면 그렇게 광주리 만한 빨간 대야에 수북하게 담아놓은 딸기를 팔기도 한다. 둘이 다 언제 다 먹나 싶게 걱정이 앞설 만큼 엄청난 딸기 대야를 여니 안엔 신문지 한장이 덮여 있었다. 아래쪽 대야 맨 안쪽에도 마찬가지로 신문지 한 장이 깔려 있었고.

그런데 싱싱해 보이는 딸기를 일부 씻어 먹으려니 희미하게 석유냄새 같은 것이 났다. 입맛이 무뎌진 왕비마마는 아무 말씀 안하셨지만 나는 이내 고민에 빠졌다. 딸기를 물에 덜 담갔다 씻었나? 혹시 보일러 난방유가 불완전 연소되는 비닐하우스에서 수확한 딸기라 기름 냄새가 밴 걸까? 과일가게 주변에서 혹시 기름사고 같은 게 있었나? 주말 내내 별별 가능성을 다 상상하며 찝찝한 마음으로 딸기를 먹던 나는 드디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범인은 바로 신문지다.

어느 신문사였던가 인체에 좋은 콩기름으로 인쇄한다는 홍보를 한참 했던 것 같은데, 다른 신문사들도 다 그렇게 휘발유 냄새가 안나는 잉크로 바꿨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옛날에 갓 배달된 신문에서 풍기던 휘발유 냄새를 맡으면 나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지면서 멀미 비슷한 증상이 생겼다. 그래서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조간신문을 꼭 다 저녁때 본다고, 신문이 아니라 '구문'을 보는 거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누군가 다 뒤적여놓아 그나마 휘발유 냄새가 희미해진 다음에야 두통 없이 신문을 볼 수 있는 걸 어쩌랴.

옛날 신문지는 워낙 오래된 것들을 폐지 도매상에서 떼어다가 썼을 테니 휘발유 냄새가 다 날아간 다음이었겠지만, 요즘처럼 종이 신문이 많지 않을 때는 아무래도 최근 신문을 활용했을 것 같다. 게다가 수익성이 날로 떨어지는 주요 신문사든, 사방에서 남발되는 무가지든 고가의 인쇄용 기름을 썼을 것 같지는 않으니, 예나 지금이나 신문지 특유의 매캐한 기름냄새는 변함없을 것이라는 게 나의 추측이다. 그리고 워낙 과육이 무른 딸기에 그 미세한 휘발유 냄새가 온통 배어들었을 테고.

어쨌거나 식탐꾼답게 먹거리의 미묘한 맛에도 까탈스러운 나는 아직도 꼬박 닷새는 더 먹어야 할 만큼 많이 남은 딸기가 돌연 먹기 싫어졌다. 아무리 물에 오래 담가 놓아도 사라지지 않는 석유냄새를 나로선 도저히 극복할 수가 없다. -_-; 물론 아주 옛날 과일가게 좌판에 둥그렇고 큰 '다라이'에 담긴 딸기를 근으로 달아 팔 때도 양은인지 주석인지 알 수 없는 쇠다라이 바닥엔 딸기 물크러지지 말라고 신문지가 깔려 있었다. 그래도 딸기에서 석유냄새를 맡은 적은 없었는데 우째 이런 일이. 짐작컨대 이모는 아마도 과일가게를 오래 하고 있는 어느 주인에게서 딸기를 사왔을 것 같다. 신문지로 딸기를 포장해도 불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때부터 과일가게를 해온 주인장으로부터. 그렇지 않았다면 신문지 대신 과일상자 위에 흔히 덮여 있는 얇은 스티로폼이나 투명 비닐을 대신 덮지 않았을까나.

건강에 해로울지 아닐지도 모르겠고, 내 추측이 맞는지 틀리는지 자신도 없지만 암튼 방금 결심했다. 남은 딸기는 생으로 먹지 말고 쨈을 만들기로. 내 아무리 딸기를 좋아하기로서니 석유냄새 나는 딸기는 못먹겠다. 현재로선 팍팍 끓이면 휘발성인 냄새가 다 사라질 거라 생각하는데 막상 쨈으로 만들어도 그 냄새가 안 가시면 어쩌나? 작년엔가 귤쨈을 만들어본 경험에 따르면 한시간 가까이 서서 계속 저어줘야 하던데 으으윽. 괜히 시간낭비하며 일감만 만드는 거 아닌가 걱정도 앞서지만 하는 수 없다. 암튼 과일가게 주인 여러분, 딸기는 웬만하면 최근 신문지로 덮지 말아주세요. 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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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은 것

투덜일기 2011. 3. 10. 03:17

현대의학은 상당부분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외과 수술에 로봇을 도입한다든지 내시경으로 비절제 수술의 범위를 확대한다든지 암이나 에이즈 같은 난치병에 획기적인 약물이 개발된다든지 하는 경우는 있어도 오묘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정신과 두뇌에 관해서는 의술에 크게 변한 점이 없는 모양이다. 요번에 왕비마마의 진단과정을 지켜보며 새삼 놀라고 우스워서 진즉 포스팅감이라고 생각했다. 원래는 환자와 의사가 따로 상담실에 가서 주고받아야 할 대화인데,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라 병실에서 대신 문진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보호자인 나도 지켜볼 수 있었다. 정신과 진단은 예나 지금이나 접근방법이 동일하다는 것을. ㅋㅋ 날짜를 묻고, 전현직 대통령을 묻고, 여기가 어딘지, 자기가 뭐하는 사람인지 물어보는 양상이 어쩜 하나도 안 변했는지! 정말이지 소설의 한 장면인 줄 알았다. ^^; 이웃들도 비교해 보시라고, 인용문을 옮겨놓는다. 40년이나 세월이 흘렀어도, 나라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정신과 진단 이대로 좋은 거니까 계속 되는 것이겠지? 암튼 나는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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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귀환

투덜일기 2011. 3. 9. 20:01

어제 집에 왔다. 작년 여름 최단기간 입원이었다고 기뻐했던 것 같은데 요번에도 날짜상으론 얼추 같은 기간이었던 것 같다. 귀찮아서 지난 포스팅 찾아보고 싶지도 않지만.

이번엔 병실 운이 좋아서 2인실 옆 침대가 계속 비어 있는 덕분에 좁고 낮은 보호자용 간이침상 대신 나도 버젓이 환자용 침대에서 잘 수 있었고, 다들 정신적인 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들만 모인 병동이다 보니 간호사들도 밤새 두어번 살짝 문만 열어보고 나가는 식이라 다른 때보다는 나도 훨씬 더 잘 잔 편이었는데도 나이 탓인지 체력 탓인지 어제 오후부터 오늘까지도 끼니 때만 빼곤 정신 못차리고 계속 잤다. 머릿속으론 밀린 일해야 하는데, 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몸이 늘어지는 걸 무슨 수로 막겠나. 일단 자고 보자, 배째라는 마음이 더 컸다.

5박6일간 좀 비싼 건강검진을 받은 셈 치자고 생각하기로 했지만, 지난주의 충격과 당혹감이 혹 착각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왕비마마는 거의 말짱해지셨다. 물론 몇 가지 약을 끊은 바람에 무릎 통증과 손발저림은 심해졌지만 일단 그건 원인도 치료법도 아는 병이니 차차 다른 약으로 대체하면 될 일이다.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건, 1년 가까이 복용해온 약들이 왜 새삼 이제와서 '충돌'을 일으켜 사람을 놀라게 했는가 하는 점이다. 의사들도 모르겠다는데 그걸 내가 어찌 알겠냐마는,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다.

그나마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수확을 찾아본다면 없는 것도 아니다. 온갖 성인병을 지닌 종합병원 수준의 몸이지만, 결정적으로 왕비마마의 뇌와 심장은 나이에 비해 꽤나 건강한 편이란다. 방금 했던 말도 까먹는 기억력 감퇴 현상 때문에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만;;) 혹 치매 아니냐고 노상 전전긍긍하셨는데 큰 걱정을 덜었다. 입원 첫날부터 100에서 7을 계속 빼보라는 의사의 요구에 거의 거침없이 대답하는 왕비마마를 보며 나도 좀 놀랐다. 수맹인 나는 속으로 같이 계산해보면서 93에서 7을 빼면 얼만가 머리가 멍해지면서 통 답이 안나와 끙끙 앓았는데 말이다. 지금도 93에서 7일 뺀 답이 86임을 아는 건 몇번에 걸친 연습의 각인 효과이지 즉각 암산해서 나오는 답은 아니다. -_-; 마흔다섯 살 딸보다 셈을 더 잘하는 일흔한 살의 노모라니, 훌륭하지 아니한가. ㅎㅎ

어쨌든 집에 오니 좋다. 며칠 새 더 뽀얗게 쌓인 먼지를 털어낼 기력은 아직 없지만 먼지 속에 뒹굴어도, 출판사에서 원고확인 전화 올까봐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속이 뜨끔뜨끔해도, 아무튼 집이 최고다. 집밥과 집잠이 이렇게 달디달다는 걸 나에게 깨우쳐주기 위해서 가끔가다 한번씩 왕비마마가 식겁하는 상황을 만드는 건 설마 아니겠지? 병원에 있는 동안 발생한 디도스 공격으로 혹 내 컴퓨터 하드도 날아갔으면 어쩌나 살짝 고민도 했는데 기우였다. 하기야 모르긴 해도 그 사이 컴퓨터가 아예 꺼져 있었으니 공격을 하려야 할 수도 없었을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그저 바짝 정신차리고 밀린 일을 하는 것뿐. 일하자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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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한번씩 이 무슨 난리인지... 갑작스런 간병 무수리 생활 사흘째다. 이젠 마음 놓고 투덜댈 수 있는 상황이니 천만다행이지만, 그렇다고 걸핏하면 반복되는 이런 상황에 대한 짜증이 줄어들진 않는다. 인체의 신비인지, 인간의 한계인지, 현대의학의 무능인지 좀체 알 수 없는 질병 상황 앞에서 난 또 닥터 하우스를 그리워하고 있다.

수요일 밤부터 왕비마마의 상태가 심상칠 않아서 응급실엘 가야하나 고민하다 담날이 정기외래 진료라 주치의와 의논후에 결정하기로 했다. 자꾸 앞으로 쏟아질 것처럼 걷고 간간이 판단력도 떨어져 헛소리까지 하는 걸 보더니 의사는 전격 입원을 권했다. 혹시 뇌졸중이라면 빨리 머리 MRI를 찍는게 좋겠다면서...

허나 의욕 충만한 정신과 주치의의 생각과 달리 MRI는 갑작스런 입원절차를 다 거치고도 한밤중에나 겨우 찍을수 있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 응급실로 들어갔어야 하는 거였다. 정신과 환자들은 생명을 다투는 증상이 아니니 순서에서 뒤로 밀린다는 걸 교수된지 얼마 안되는 주치의는 몰랐겠지. ㅡ.ㅡ; 어쨌거나 머리 사진에선 뇌졸중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도한 수면, 균형감각 상실, 보행 어려움, 간간이 섬망증, 이명, 판단력상실 등의 증상이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과연 뭘까. 가능한 요인은 수십가지나 된다고 말하며 병실담당 레지던트는 내 속을 뒤집었다.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다고!! 혈액과 소변 검사 결과로 신장이나 간 기능 이상으로 인한 전해질 균형 문제의 가능성도 사라졌다. MRI 결과 이상없으면 바로 퇴원하라던 주치의 교수는 퇴근해버리고 결국 왕비마마는 일흔한번째 생신을 병실에서 맞았다. 미역국이고 주말 파티 계획이고 다 물 건너 간 거다.

병원체질이신 왕비마마는 무수리 속이 새카맣게 타든지말든지 잘 자고 잘 먹고(병원밥 싹싹 다 비우는 노인환자 정말 드물다 ㅋㅋ) 하루하루 정신이 맑아지더니 어제부턴 걸음걸이도 제대로 돌아와 부축해 드리지않아도 될 정도다.

은근히 알츠하이머의 가능성도 타진하던 눈치더니 간단한 몇가지 검사 이후 그 말도 쑥 들어갔다. 나머지 유력한 가능성은 수많은 약들 사이에 생긴 충돌현상이라는 것 같다. 약을 하나씩 줄이고 빼며 지켜보자는 얘기. 아 맞다. 심전도에도 약간 이상소견이 있어서 심장초음파도 할 예정이다. 주말이 끼어서 빨라야 내일...

그러는 사이 우린 마냥 멍하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병실생활의 절반은 막막한 기다림이고 절반은 킬링타임이다. 링거하나 안꽂은 이른바 '나이롱 환자'는 시방 TV 시청중이시고, 마감인생 무수리는 홀로전전긍긍 하고있다. 금요일에 온 원고독촉 전화에 사정 이야기하며 얼굴이 뜨거웠다. 그쪽에선 아마 거짓말이라 생각할지도... ㅡㅡ; 장기전이면 간병인을 부르겠지만 며칠 안걸릴 것 같으니 그럴수도 없다. 닥터 하우스도 절실하지만 내겐 손오공 변신술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나를 하나 더 복제해놓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이럴 때마다 한숨 나오는 비혼의 늙은 고명딸 노릇 ㅠㅠ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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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투덜일기 2011. 3. 1. 04:03

오늘은 밤참으로 무얼 먹을까 궁리하다 일주일쯤 전에 사다둔 고구마에 생각이 미쳤다. 두 개만 전자렌지에 쪄먹어야지 하며 꺼내려는데 곰팡내가 훅 끼쳤다. 봉지 맨아래 고구마 하나가 썩어가고 있었던 것. 안되겠다 싶어 고구마 한 봉지를 몽땅 찜통에 쪄놓기로 했다. 과일이든 고구마든 하나가 썩어들어가기 시작하면 주변 것들까지 금세 덩달아 상하는 법이다. 곰팡난 고구마를 3분의 2 이상 잘라내 성한 부분만 남기고 나자 다행스럽게도 다른 고구마들은 다 멀쩡했다. 밤참으로 며칠 내리 토스트를 먹다가 문득 고구마가 생각난 건 혹시 고구마들이 나에게 보낸 텔레파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 황당한 생각이 들 정도로 희한하게 딱 하나만 심하게 썩었다.

커다란 찜기 위를 거의 다 채울 만큼 많은 고구마를 한꺼번에 쪄셔 계획대로 두개만 냠냠쩝쩝 먹고 나니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썩어가는 모든 것들도 이렇게 일부만 싹둑 잘라 익혀 부패를 미리 중단시킬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명력을 지닌 모든 것들은 결국 생을 마감하며 부패하기 마련이지만, 찐고구마도 계속 오래 내버려두면 또 상하겠지만, 무너지는 도미노처럼 날 고구마들이 연달아 썩어가 결국 다 버려야할 상황은 사라지지 않았나 말이다. 누군가는 단지 부패의 속도만 지연시켰을 뿐이라고 지적할지 모르겠다. 허나 그건 찐고구마의 효용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당장 먹을 건 냉장고에 보관하고 남은 건 냉동실에 넣었다가 아이스크림 먹듯 베어물어도 그만이고, 귀찮음을 극복할 수 있다면 납작하게 썰어 말려 쫀득쫀득한 간식으로 만들 수도 있다. 통영에선가는 그렇게 말린 찐고구마로 빼때기죽도 만든다던데. 그러니까 이 미친 썩은 세상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는 것들을 싹둑 잘라버리고 난 뒤에 원래의 달콤한 맛을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로 있었으면, 누군가 그런 묘안을 생각해낸다면 참말 좋겠다는, 찐고구마 옆구리 찌르는 것 같은 이야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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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고민

투덜일기 2011. 2. 28. 16:51

1900분짜리 전화카드를 샀다는 친구랑 요 며칠 계속 통화를 했다. 친구의 언니가 부탁한 화장품 때문이다. 미 서부지역엔 웬만한 한국 제품이 다 들어가있는 것 같아 보여도, 세부품목이 거의 기함할 정도(손바닥 두개로 가려지는 얼굴에 발라야 한다고 사람들이 '주장'하는 화장품은 왜 그리 많은 건지! 나는 다 무시하는 쪽이다 ㅋㅋ)인 화장품은 아직 온갖 브랜드가 다 수출되진 않나 보다. 더구나 요즘엔 피부과 병원이랑 연계해서 만드는 기능성 화장품도 좀 많은가. 암튼 친구 언니와 딸들이 한국 사이트에 들어와 수많은 사용후기를 읽어본 뒤 골랐다는 *앤* 화장품을 사보내는 건 내겐 일도 아니다. 친구는 예전부터 로션도 잘 안바르고 다니는 사람이고, 그 언니들도 화장을 열심히 하는 이들은 아닌데 작은언니는 유독 피부에 신경을 쓴다. 원래 미인은 다 그런듯. 한국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작은언니의 교복입은 모습이 워낙 아름다워, 하도 남학생들이 쫓아다닌 탓에 친구 어머니(몹시 보수적이신 분;)께서 이를 갈았던 역사는 나까지 알고 있을 정도.

암튼 종종 작은언니가 고르는 화장품을 사보낼 때면 나는 또 고민에 빠진다. 친구 말로는 자기는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다지만 그래도 뭔가 또 덩달아 같이 보내야 내 마음이 뿌듯하지 않은가. 근데 진짜 사보낼 품목이 마땅하지가 않다. 일과 집, 잠밖에 모르는 친구라서 특별히 기호품도 없고... 오죽하면 지난번 작은언니 화장품 보낼 때는 아줌마스럽게 그냥 멸치(볶음용 및 국물용)와 오징어, 쥐포를 보냈다. 가끔 내가 친구한테 다니러 갔을 때에도, 친구 역시 한국에 왔다가 돌아갈 때에도 멸치와 오징어, 쥐포는 빠지지 않는 쇼핑 품목이었다. ㅠ.ㅠ 2년전엔가 친구가 남편과 함께 다녀갈 때엔 그 세  품목에다 맥심 커피믹스까지 바리바리 사서 아예 이민가방 하나를 꾸렸었다. 물론 LA 한인마트에도 다 파는 물건이지만 여기 거랑은 맛이 다르다는데 어쩌랴.

노상 보는 친구의 선물도 역사가 길어지면 품목과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고민스러운 마당에 태평양까지 건너가려면 정말이지 난감하다. 좀 민망해도 제일 만만한 건어물은 무게가 많이 나가서 물건 값이나 부치는 비용이나 비등비등해서 좀 억울하긴 하다. 그래도 친구와 그 가족들이 제일 반기는 선물인 것 같아서 요번에도 염두에 두고는 있지만, 그거 말고 또 뭔가 참신한 선물을 보내면 좋겠는데 아무리 머리를 짜도 생각이 안난다. 작은언니가 오매불망 물건을 기다리고 있으니 화장품 배송되어 오는대로 나 역시 우체국으로 직행해야할텐데 뭘 사야하나. 친구가 이민간 초기엔 책도 많이 보냈는데, LA 인근 한인서점에 가면 웬만한 책은 다 있다. 초창기에 내가 번역한 책을 그곳 서점에서 발견하면 친구가 감격해하며 전화도 할 정도였지만, 요즘 새로 나온 책 증정본이 와도 우리 가족이 시큰둥한 것처럼 친구와 언니들 역시 이젠 **이 책 또 나왔네 하며 그냥 지나친단다. ^^; 미국에서 살며 굳이 번역서를 읽을 이유는 없잖은가.

최근 왕래가 뜸해지긴 했어도 친구 역시 한국 나올 때마다 선물 때문에 고민이란다. 한국에 수입 안되는 물건이 어디 있어야 말이지. 그래도 내가 커피를 좋아하니까 십수년년 전까지는 코스코에서 대용량으로 산 인스턴트 봉지커피를 사 나르다, 그 담엔 원두커피를 대형 깡통으로 안겨주었었는데 와서 커피를 먹어보더니 여기 커피 원두가 더 맛있다고 인정한 뒤엔 주로 육포로 승부를 걸었다. 그러나 또 광우병 광풍이 부는 바람에...  그 뒤로 서로 짬을 내지 못한 수년 사이, 몇번은 아주 실용적으로 서로의 계좌에 마음에 드는 선물 사라고 송금을 하기도 했으나, 하면서도 찝찝한 느낌이라 친구와 합의 하에 관두고 말았다. 미국에 살며 볼펜도 한국 걸로 사서 쓰는 친구에겐(디자인이 예쁘단다) 현금보다는 역시 여기 물건을 보내야 제대로 선물했다는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니 만우절인 친구 생일도 머지 않았다. 화장품 보내면서 이참에 미리 챙겨야 마음이 편하겠는데 과연 뭐가 좋을까나. 그다지 무겁지도 부피가 크지도 않으면서 유용하고 뿌듯한 선물 뭐 없을까? -_-; 예쁜 메모지와 필기도구는 부록이니 제외하고, 목걸이는 지난번에 해봤으니 건너뛰고, 친구에게도 기능성 화장품을 보낼까? 그렇다면 어떤 종류로? 화장품에 대해서 나 잘 모르는데... 으으으. 이러다 또 멸치랑 오징어 냄새 안나게 비닐과 랩으로 꽁꽁 싸고 앉았는 내가 그려지는 것 같다. 뭐 없을까????? 이웃 여러분의 뾰족한 아이디어 대환영합니다.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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