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1.02.26 봄아 봄아 4
  2. 2011.02.25 이중잣대 6
  3. 2011.02.21 파랑이의 수난 26
  4. 2011.02.17 구세대 20
  5. 2011.02.09 방전 7
  6. 2011.01.29 일의 범위 18
  7. 2011.01.26 눈길 11
  8. 2011.01.21 방학 10
  9. 2011.01.09 모피 유감 8
  10. 2010.12.30 돈 세기 7

봄아 봄아

투덜일기 2011. 2. 26. 04:19

4월을 넘겨 5월쯤은 돼야 지난 겨울의 잔해를 청산하는 게으름뱅이가 올해는 좀 부지런을 떨었다. 어느날인가 외출한 대낮의 햇볕에서 확실히 봄이 느껴졌고 두툼한 외투가 살짝 버겁기도 했다. 밤엔 다시 싸늘해지는 날씨를 모르는 건 아니므로, 외투를 다 치울 생각은 못하고 우선 두어개 먼저 세탁해 넣어두었다. 간만에 방청소 하는 김에 겨우내 강추위를 견디게 해주었던 소형 난로도 스팀용 물통에 남았던 물을 빼버리고 바싹 말려 걸레로 닦아 두었다. 완전히 치우지 못한 건 순전히 난로를 통째로 넣어둘 큰 비닐봉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선식품은 장바구니를 꼭 챙겨가 담아오고 그도 귀찮으면 아예 인터넷으로 장을 봤더니 집에 그리도 남아돌던 대형비닐이 완전 바닥났다. 이젠 재활용품 넣어 버리기 위해서라도 간간이 50원 주고 비닐봉투를 사야할 판국이다. 몇년전 3월에도 폭설이 내렸던 게 떠올라 털부츠와 패딩부츠까지 상자에 담아 치우며 잠시 멈칫하긴 했다. 그러면서 다시 꺼내는 사태는 부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느낌상 올봄엔 그러는 일이 없을 것 같다. 이 말로 산통이 깨져서 머피의 법칙이 발휘되는 건 설마 아니겠지.

어쨌거나 얇디 얇은 옷으로 요즘 날씨를 견디는 열혈 젊은이들을 많이 보긴 했어도 내 차림은 여전히 겨울옷에 머플러를 칭칭 감고 다니며 쉬 오지 않는 봄타령에 심술을 내고 있다. 급기야 오늘밤엔 기운이 뚝 떨어졌는지 집안 기운이 싸늘하다. 그동안 약간 내려놓고 지내도 멀쩡했던 보일러 온도계를 다시 올렸는데도 으스스한 기운이 가시질 않아 급기야 지금은 곁난로를 다시 켰다. 작업실용 털신도 안 치우고 평소처럼 게으름을 부린 게 장하다. 결론은 내가 경솔했다는 뜻이다. 원래 봄은 해마다 어렵게 찾아왔다. 그렇게 오래오래 기다려서 찾아온 봄은 또 금세 자취를 감춘다. 그래서 자칭 봄형 인간인 내가 이리도 조바심을 내나보다. 그러니 봄아 봄아, 이젠 그만 어서 와라.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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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잣대

투덜일기 2011. 2. 25. 00:20

오전에 한참 곤히 자는데 전화가 울렸다. 화면엔 0050******** 엄청 긴 숫자가 떴고 잠결에도 국제전화인가보다 짐작했다. 동생네인가? 뜻밖에도 후배 S였다. 과테말라에 있단다. -_-; 작년 여름에 만났을 때 S는 회사를 관두고 모은 돈을 톡톡 털어 1, 2년 예정으로 연말쯤 세계일주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고 말했다. 걱정하는 부모님에겐 현지에 아는 선배가 있어서 그쪽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고 안심시키기로 했다나. 실제로 베트남에서 중고 컴퓨터 사업을 하는 선배가 있으니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다. 유럽과 북미는 이미 구석구석 거의 다 다녔으므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를 속속들이 다녀보는 것이 S의 목표였다. 떠나기 전에 한번 더 얼굴을 보자고 약속하고 헤어졌으나, 미안하게도 그간 나는 그가 여행을 떠났는지 말았는지도 잊고 있었다.

계획성이 철저한 S는 작년 연말까지 회사일을 마무리하고 (회사에선 멋진 계획이지만 미친 거 아니냐고 했단다 ㅋㅋ) 스페인어를 열심히 익힌 뒤 드디어 올초 비행기를 탔단다. 그래서 현재 여정이 과테말라. 막 카약을 타고 들어와 저녁 요가수업을 받으러 가기 직전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안하던 요가수업을 과테말라에서? 참 신기한 친구다. 거기서 만난 현지인 친구가 좋다고 해서 같이 다니고 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단다. 염려했던 치안 문제는 지금까지 괜찮은 듯. 원래도 좀 까무잡잡한 얼굴이지만, 현지인과 별 차이 안나게 더 새까맣게 태우라고 말해주고는 부러워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다 때려치우고 전재산을 털어 홀로 떠나는 세계여행이라니, 진짜로 그걸 실행에 옮기는 이가 내 주변에도 있었구나 싶어 정말 신선했다. 나이도 적지 않은데 (아마 올해로 서른여섯인가 일곱일 거다) 돌아와서 어떻게 다시 자리를 잡을 생각이냐고 지인들이 대부분 만류했던 데 반해, 나는 처음부터 전적으로 찬성이라며 쥐뿔도 모른 채로 마구 부추겼다. 홀몸이라 나중에 돌아와서도 NGO 단체에서 가난하지만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친구인데 뭐가 걱정이랴. 이미 터키, 이집트 같은 말 잘 안통하는 데 가서 무전여행에 가까운 생고생도 다 겪어본 인간이고. 나도 역마살이 있다고 가끔 이야기하지만, S야말로 진짜 역마살을 즐기는 인생이 아닌가. 최고다. S가 건강하고 신나게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유람한 뒤 이야깃거리를 잔뜩 안고 무사히 돌아올 것을 믿는다.

우유부단함의 특징은 노상 경우의 수에 따라 고민만 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실천력과 추진력이 매우 떨어져 팍팍 저지르고 사는 이들을 부러워한다는 점이다. 헌데 막상 그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간간이 못되게도 꼬투리를 잡고 앉았는 내가 보인다. 예컨대, 동생네는 아이들 봄방학을 맞아 난데없이 며칠 만에 전격 여행을 결정하고 동유럽으로 떠났다. 콧바람 들어 여행가고 싶다기에 가까운 일본이나 다녀오려나보다, 그랬더니 내친김에 유럽이란다. 오 놀라운 추진력! 게다가 악! 마흔살이 넘도록 나도 아직 가보지 못한 프라하와 부다페스트, 빈의 거리를 열네살, 아홉살 조카들이 제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거닌다니 어찌나 부럽던지. 그런데 곧 걱정이 들었다. 일정상 돌아온 이틀후가 곧장 개학, 입학이다. 가뜩이나 중학교 올라가 새학교와 새친구 적응에 스트레스 많을 텐데 시차적응까지 하려면 힘들지 않을까? 제 부모도 걱정 안하는 걸 왜 고모가 걱정하고 앉았는지 원! 설마 이게 시누이의 심술? 그건 절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다만 나는 암울한 인간형이 되어 좋은 면보다 안 좋은 면, 미리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항상 먼저 하고 앉았는 사람이 된 것 뿐이다.

예산부족으로 2년 계획을 1년으로 줄이긴 했지만 최대한 여유롭게 남미 대륙과 아프리카를 훑고 다니겠다는 S와 통화를 끝낸 뒤 다시 잠을 청하며 깨달은 게 있다. 내가 이번에도 친구와 가족에게 이중잣대를 들이댔었다는 사실이다. 늘 그렇듯 친구나 지인에겐 유독 관대하다. 같이 떠안을 책임감의 비율이 적기 때문일까. 반면에 가족에겐 그 누구보다 너그러워야하는데 꼭 옹졸함을 부려 간섭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가족이 멍에처럼 느껴지고 피곤하다고 항상 불평하면서도 말이다. 요번에 동생네에게도 겉으로는 재미있게 잘 놀다오라고 말하면서 내심 왜 하필 이런 '중대한' 시기에 여행을 떠났는지 나무라며 혀를 끌끌차고 있었다는 얘기다. 학기 중에 애들 학교 안보내고 여행 떠나겠다고 했으면 더욱 어처구니없어 했으려나? (아니다, 나도 따라갈래~~!)

그런데 생각을 바꾸니, 이렇게 나름 '중대한' 시기에 여행을 갔으니 그들에게는 얼마나 더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 부모에게나 자식에게나 어쩌면 더 큰 스트레스와 바쁨을 안겨줄 상급학교 진학을 앞두고 마지막 방학을 신나게 죽어라 놀면서 보내는 거잖아! 긴 여행의 묘미는 일상의 비루함에서 벗어나 최대한 누리고 대접받고 멋진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음미하는 것일진대, 이보다 더 통쾌한  결정이 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조카들도 새학기 시작을 앞둔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잊고 열흘간 토실토실 정신과 마음에 살이 올라 돌아오겠지. 그러고 나서 나중에 2011년을 회상할 때, '시금치 같은 흉측한 초록색 교복'을 입어야 하는 괴로운 중학교의 첫 인상 대신 멋진 유럽여행으로 시작한 한 해라고 떠올릴 수 있을 거다. 저녁때 통화해보니 오늘은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로 들어갔대고 모름지기 클림트의 그림을 보러갔을 거다. 악, 부럽다. 괜히 심술부리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부러워'만'하자는 의미에서 괜히 구실을 붙여 유럽 여행이나 남미 여행을 다닐 때 편할 것 같은 운동화를 샀다. 그거 신고 춘천 가서 닭갈비나 먹어야지. -_-;

(아 그러고 보니 유럽과 남미에서 걸려온 국제전화를 한날에 받은 역사적인(?) 날이로군. 참 별것에 다 의미를 두는 인간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살면서 또 몇번이나 되겠느냐고! 이래저래 포스팅할만한 날이었다고 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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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의 수난

투덜일기 2011. 2. 21. 02:54
파랑이네 가족이 파랑이만 남겨두고서 9박10일간 여행을 떠났다. 그럴 때마다 파랑이를 기꺼이 도맡아주는 사람은 유명한 애견인이신 나의 막내고모인데, 주말까지 녀석을 맡을 사정이 되지 않아 일요일 오후부터나 파랑이를 맡아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남은 옵션은 두 가지. 그나마 얼굴을 익혀 친해진 우리집에서 파랑이를 이틀 데리고 있다가 고모네 집에 데려다주는 것. 그게 아니면 파랑이가 겁을 내든 말든 동물병원에 이틀 맡겼다가 역시나 고모네 집으로 데려가는 것. 두 경우 모두 파랑이 픽업은 나의 몫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금요일에 나는 외출할 약속이 있었고 밤열두시에나 들어올 예정이었다. 혹 파랑이를 우리집에 둔다면 처음이라 사방에 영역표시 하느라고 질질 싸댈 똥오줌을 왕비마마가 치우셔야 한다는 얘긴데, 나의 개혐오증은 돌연변이가 아니라 물려받은 것이므로 그런 일을 왕비마마가 해봤을 리도 없고 잘 해내실 리도 없었다. 물론 나 역시 그런 개수발엔 영 자신이 없었다. 다만 파랑이가 낯선 동물병원에서 이틀밤을 보내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심난해할지 그건 좀 걱정스러웠지만, 나 역시 동물병원엘 맡기는 게 최선이라는 데 동의했다. 어차피 병걸린 강아지들은 입원도 시키잖아, 라고 위로하면서. 물론 애견인인 막내고모는 절대로 동물병원에 보내지 말라고, 병에 걸려올지도 모르고 파랑이가 '트라우마'를 겪게 될 거라며 결사반대하는 쪽이었다. 나도 왕비마마도 마음이 약해져 그럼 그냥 죽이되든 밥이 되든, 아니 개판이 되든말든 집에 파랑이를 데려다놓을까 마음이 흔들려, "그럼 그냥 이틀만 우리가 한번 데리고 있어 볼게..."라고 '자신없이' 말했다. -_-;
 
그런 태도에 선뜻 파랑이를 맡길 순 없었을 거라는 거 나도 인정한다. 그래서 결국 파랑이는 난생 처음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암튼 새 주인과 산 이후 처음으로 동물병원에서 이틀밤(개주인이 토요일 아침에 출국했으니 하룻밤일 수도 있음)을 보내게 됐다. 그리고 드디어 일요일 오후, 죄책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나는 파랑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인 사과를 한 조각 잘라 은박지에 싸들고 동물병원을 찾았다. 솔직히 동물병원에 들어가본 것도 처음이었는데, 옛날 대한극장으로 영화 보러 다닐 때 밖에서 보이는 애견가게 우리 안에 든 강아지들처럼 파랑이도 그런 요람 같은 데 들어있을 줄 알았더니 나의 착각이었다. -_-;

병원 2층으로 올라가니 얼핏 보기엔 닭장 같기도 하고 개들의 독방 감옥 같기도 한 케이지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데 그 안에 강아지들이 한마리씩 갇혀 있었다. 예방접종의 차이나 질병의 가능성 때문에라도 당연히 한마리씩 격리수용(?)하는 것이 원칙일 것 같기는 했다. 어쨌거나 좀 크기가 넉넉한 독방 마다 이름표를 매달고 있는 첫번째 방에는 파랑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문을 하나 열고 들어간 또 다른 방엔 아 글쎄 이름표가 안 달려 있지 않은가! 순간 나는 당황했다. 안면인식장애로 여러 번 본 사람 얼굴도 잘 몰라보는데 다 똑같이 생긴 말티즈 중에서 파랑이를 어떻게 알아본담! 나는 담당 직원이 당연히 적어둔 파일 같은 걸 찾아보고 개를 인계할 줄 알았더니만, 나더러 찾으란다. ㅠ.ㅠ

다행스럽게도 당황한 내가 방안을 훑어보다가 하얀 개와 눈이 딱 마주쳤는데 파랑이 같아 보였다. 내가 파랑아~! 하고 부르니까 녀석도 철창을 마구 긁어댔고, 직원은 얼른 녀석을 꺼내 나에게 안겼다. 헌데 내 품에 안긴 파랑이가 난리도 아니었다. 내가 놀러갈 때마다 친한 척 했던 건 다 거짓이었는지, 계속 불안하게 발발 떨면서 품을 벗어나려고 하질 않나 네 다리를 버둥거리며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병원 직원은 애가 좋아서 그러는 거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낯설음과 불안감의 표현일 뿐이었다. 주인님들은 어디가고 대체 이사람은 뭔가? 날 또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가?

그때까지만 해도 얘가 정말 파랑이가 맞는지 나 역시 불안했다. 엉뚱한 개를 데려가서 두 집에 혼란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 상상하게 된 거다. 어쨌거나 녀석이 하도 불안해 하니 얼른 차로 데려와서 잘라간 사과를 먹여주었다. 아그작아그작 사각거리는 사과를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녀석이 파랑이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파랑이네 식구들도 파랑이가 사과 먹을 때 제일 예뻐할 정도로, 아삭거리는 사과를 씹는 자태가 귀엽기 때문이다. 

사과로 조금 친해지긴 했지만 막내고모 댁까지 가는 40여분간, 파랑이는 계속해서 극도로 불안해하며 조수석에서 덜덜 떨었고 운전하는 내 팔을 자꾸만 툭툭치며 쓰다듬어달라고 요구했다. 나를 낯선 사람으로 인식하긴 하지만 일말의 믿음은 있는 모양이었다. 사흘전만 해도 깨끗하게 목욕해서 뽀얀 자태를 자랑하던 녀석이었건만, 케이지에 갇혀서 오줌을 사방에 지렸는지 꼬리와 배, 다리엔 누런 오줌이 묻어 말라뭍어 냄새도 퀴퀴했고 케이지 안이 더러웠는지 전체적으로 꼬질꼬질했다. 내가 그런 더러운  녀석한테 한 팔을 아예 내주고 왼손으로만 운전을 하다니... 역사에 남을 일이었지만, 녀석에 대한 미안함이 더러움에 대한 거부감을 이겼다.

고모댁에 도착할 무렵엔 내 가방을 둥지삼아 드디어 떨기를 멈추고 엎드려 안정세에 점어든 파랑이는, 원래도 자주 가본 곳이고 워낙 자기를 예뻐하는 사람인 막내고모를 만나 집안으로 들어가자 드디어 제 세상을 만난듯 뛰어다녔다. 제 침대와 쿠션, 담요까지 모조리 옮겨다 주었으니 안심할 만도 했다. 그래도 불안한지 오후면 노상 꾸벅꾸벅 졸거나 코를 골며 자던 녀석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고, 결국엔 내가 벗어놓은 옷위에 달랑 올라가 잠을 청하더니 걸핏하면 깨어나 내 손밑으로 파고들지 않으면, 막내고모 옆으로 가 온기를 나눴다.

파랑이의 크리스마스빔(?) 차림

저녁까지 있다가 다시 녀석을 떼어놓고 집으로 돌아와 전화를 해봤더니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막내고모를 졸졸졸 쫓아다니는 중이란다. 막내고모가 지난 여름엔 일주일 내내 계속 함께 데리고 다녔다는데(심지어 치과에 갈 때조차!) 요번엔 전시회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더 남은 여드레 동안 사나흘은 또 녀석 혼자 두고 나가야한단다. 과연 파랑이는 애견인이고 완전 낯설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인의 집은 아닌 곳에서 홀로 밤중까지 견디는 시간을 어떻게 버텨낼까. (그렇게 걱정되면 데려다 놓으시지! 하는 말이 들리는 것 같지만 나는 정말로 자신없다니까!) 파랑이 주인들에게는 아무 염려말고 여행이나 즐기다 오라고 했어도 은근히 걱정스럽긴 하다. 요번에 받은 스트레스로 나중에 주인들한테 복수한답시고 막 대소변 실수하면 어쩌나. -_-; 이사하면서 가까스로 쫓겨날 위기를 넘긴 녀석인데 과연. 모든 강아지를 상전 모시듯 하는 막내고모의 각별한 애정으로 하루 이틀밤의 충격쯤은 말끔히 치유될 수도 있기를 빌 뿐이다. 지난번 아파트 단지에서 무작정 달아나는 바람에 한번 잃어버려 이틀인가 사흘 만에 찾은 적도 있으니 주인과의 인연은 꽤 진한 편이라고 치고, 부디 파랑이의 수난은 이것으로 끝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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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대

투덜일기 2011. 2. 17. 03:24

거의 일년만에 경기 남부에 사는 친구와 중간지점이라고 여겨지는 강남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둘 다 과거 강남, 역삼, 삼성, 선릉 일대로 출퇴근을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과거일뿐, 친구도 나도 강남쪽에선 똑같이 '촌년'이 된지 오래라 만날 장소 때문에 고민을 좀 했다. 내가 아는 강남역의 주요 지점은 전철역과 교보타워, 그리고 늘 그 친구와 만나던 빵집이다. 그 일대엔 콩다방, 별다방이 하도 많아서 자칫하면 서로 엉뚱한 곳에서 기다릴 수 있으므로, 문자를 한참 주고받은 끝에 어쩔 수 없다며 결론을 내렸다. "태극당인가 고려당인가 하는 그 빵집 있잖니. 그냥 거기서 열두시에 보자."

약속시간 10분전, 나는 아직도 버스 안에 있는데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언니! 그새 그 빵집 없어졌나봐. 전철역에서 교보타워까지 거의 다 올라왔는데 안보여. 파고다 학원 건물에 있지 않았어?" 파고다 학원 건물이 어딘지도 난 모른다. 그치만 이상했다. 지난 여름인가 가을에도 거기에서 누군가를 만났었는데, 그새 없어졌다고? 하기야 요즘엔 어디나 상권이 확확 바뀌니까. 결국 친구는 중앙버스차선 정류장 부근의 어느 도넛 가게에서 기다리기로 했고, 우린 별 문제없이 만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무엇보다 중요한 수다를 장시간 떨었다.

그러고 나서 친구를 바래다주려고 전철역쪽으로 걸어가며 우린 진짜로 그 빵집--태극당인지 고려당인지 확실하지 않은--이 없어졌나 확인을 했다. 물론 빵집은 없어지지 않았고, 생각보다 전철역 출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그대로 있었다. 문제는 거기가 태극당도 아니고 고려당도 아닌 '뉴욕제과'였다는 사실.

두 여자는 길바닥에서 미친듯이 깔깔대고 웃다가 거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빵집'이름으로 우리는 태극당이나 고려당이 더 익숙한 구세대라는 걸. '뉴욕제과'는 그러니까 요즘 간판에 알파벳으로 써있는 뚜레주르나 파리바게뜨와 '당'이 붙는 빵집 상호의 중간이라 할 수 있는데도, 우린 그걸 기억 못했던 거다. 사십대 아줌마들의 건망증 때문이랄 수도 있지만, 벌써 몇년째 교보문고 아니면 그 빵집에서 만났으면서 어렵지도 않은 '뉴욕제과'를 뇌리에 새기지 못한 이유가 또 뭐란 말인가. ㅎㅎㅎ

웃음이 그치지를 않아서 눈가를 훔치다 헤어지며 친구는 다음번에도 아마 자기는 또 '뉴욕제과'를 기억하지 못할 테니 나더러 기억해두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도 자신이 없어 얼른 아이폰 메모장에 저장을 해뒀다. '강남역 6번출구 앞 뉴욕제과'라고. -_-; 

집에 돌아오면서 난 또 한참 기억을 더듬었다. 그럼 태극당은 어디에 있는 거지? 옛날에 그 앞에서도 친구들과 참 많이 만났던 것 같은데... 버스가 강남을 벗어나 남산을 통과할 무렵 드디어 생각이 떠올랐다. 태극당은 돈암동 성신여대앞에 있는 빵집이었다.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교 시절에 주로 만남의 장소로 이용했던. 거기도 가본지가 오래라 아직 남아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혹 흔적 없이 사라졌거나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바뀌었을까. 아직 그대로 있다면 거긴 여전히 '태극당' 상호를 쓰고 있을까.

버스를 갈아타려고 집근처 정류장에서 내려 '국내산' 땅콩을 찾아 길거리 좌판과 마트를 뒤지다 돌아보니, 도로 양옆엔 파리바게뜨, 뚜레주르, 던킨도너츠가 몇걸음 간격으로 자리를 잡았고, 빵이 맛있어서 내가 가끔 이용하는 빵집도 'OOO 베이커리'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옛날 어르신들은 읽지도 못하게 모든 상호는 근사하고 멋지게 외래어와 외국어로 적어야 직성이 풀리는 풍조 속에서 이렇게 나도 구세대로 접어들고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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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전

투덜일기 2011. 2. 9. 05:19

반드시 창작이 아니더라도 글과 관련된 직업은 대개 '말이 빠져나가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채워넣지 않고 계속 줄줄 뽑아쓰기만 하면 어느 순간 번쩍번쩍 배터리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등이 켜지다가 완전히 방전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같은 번역가라고 해도 공력이 월등한 분들은 자가발전기 같은 게 늘 작동하고 있어서 별도의 충전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상상하며 씁쓸해 한 적도 있었으나, 그런 분들도 쉴 새 없이 빠져나가는 말을 다시 채워넣는 과정을 간간이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물론 사람마다 빠져나간 말을 채워넣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문화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여행을 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다시 책 속에서 말과 글을 골라 주워담아 비어가는 머리를 채우 것이 보통이다.

예전에 소형 카세트플레이어나 CD플레이어를 들고 다닐 때 충전지를 쓴 적이 있다. 그때 배운 건 음악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배터리가 약해졌더라도 바로 충전기에 끼우지 말고 좀 더 방치해 완전히 방전시킨 다음 다시 충전을 해야 그나마 건전지가 오래간다는 사실이었다. 최근에 나온 휴대폰에 들어가는 리튬 배터리는 그럴 필요가 없어 수시로 충전해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누누히 들었어도, 한번 익힌 버릇이나 습관은 쉬 고쳐지는 것이 아니어서 나는 거의 매번 배터리가 저절로 꺼질 때까지 휴대폰을 방치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내 고집이 맞다는 듯이, 2, 3년씩 휴대폰을 써도 남들보다 배터리 성능이 쉬 떨어지는 문제를 겪은 적은 없었다. (물론 아이폰의 부실한 배터리 문제는 워낙 유명하여 나도 앞으로 어떻게 되려는지 두고볼 작정이다만;)

과거의 휴대폰처럼 여분의 배터리가 있다면야 완전히 방전이 되든 말든 아무 걱정이 없겠지만, 배터리 인심이 인색한 아이폰처럼 문제는 그 누구도 머리를 여유분으로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몇달에 한번씩 자진 방학을 해가며 한가로이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방전을 피할 방법은 오로지 하나 미리미리 채워넣는 것뿐인데 참 그게 잘 안된다. 더욱이 작년엔 독서를 또 얼마나 게을리했던가. 작년에도 아마 읽다 그친 수많은 책들은 방전된 머리에 뭐라도 채워넣어보려고 잠깐씩 애쓰다 성급하게 중단한 흔적들일 것이다. 외출 직전에야 휴대폰이 방전된 걸 알고 한 30분쯤 충전기에 꽂아 겨우 한 눈금의 배터리로 불안불안하게 반나절을 견딜 때가 많은 나의 꼬락서니와 어쩜 그리도 닮았는지.

쌀독 바닥에 깔린 한줌의 쌀알을 닥닥 긁어모으듯 억지로 쥐어짜 역자후기를 한 편 써 보내고 나니 정말로 완전방전이 되는 바람에 블로그에 쓰는 시답잖은 수다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임시방편으로 또 반권쯤 책을 읽고 열심히 TV 영화를 찾아보았지만 잘 알다시피 이렇게 전전긍긍할 때는 배터리의 한눈금도 잘 차오르지 않는 법. 알량한 이 포스팅도 썼다 중단하기를 세번쯤 했나보다. 원래도 많이 비어 있는 머리를 가득 채우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그럭저럭 밟아 넣어서라도 눈금을 좀 더 늘려야할 텐데 이젠 완전히 불량 전지가 되어버렸는지 진득하니 충전하는 과정을 통 못견디게 된 것 같아 걱정이다. 노상 걱정과 반성만 하지 말고 공부좀 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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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범위

투덜일기 2011. 1. 29. 00:12

'번역가'를 직업으로 삼으면서 어쩔 수 없이 꼭 해야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하기 싫은 일은 누누이 이야기했다시피 '검토서'를 만드는 일이다. 번역에 앞서 책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이므로 대단히 중요한 일임을 알지만, 대단히 편협한 독자로서 나는 책의 재미 여부를 말할 순 있겠으되, 과연 책이 잘 팔릴지 어쩔지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분석'을 하라고 하면 그저 멍하다. 노상 지지부진한 일의 진도 때문에 쫓기는 입장이라 대개 짬을 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좀 시간 여유가 있다고 해도 책을 검토해달라는 부탁은 이제 그나마 거절을 잘하는 편이다. 책의 내용은 물론이고 검토소견까지 소상히 '공식 문서' 형태로 작성해야 하는 검토서를 만드는 일은 정말 토나올 만큼 싫기 때문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얼치기로 아는 출판계 지인들의 부탁을 거절 못해서, 대규모 도서전 이후 원서들이 쏟아져들어올 때는 한달 내내 책읽고 검토서 만드는 일만 한 적도 있었는데, 기껏해야 10만원에서 20만원 정도밖에 주지 않는 검토비(가끔은 그 이상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만;;)도 들이는 품에 비하면 말도 안되는 수준이지만, 상당 수의 출판사에서 번역하는 이에게 검토를 맡기는 이유는 책의 내용이 쓸만하여 번역으로 이어지는 경우, 그 알량한 검토비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번역가에 대한 상당 수 출판사의 대우가 겨우 그 정도다. 필요에 따라선 공짜로도 '가끔 써먹을 수 있는 인력'. 물론, 역시나 번역을 맡게 되더라도 사전 검토비는 칼같이 따로 미리 지불하는 '훌륭한' 출판사도 있다.

헌데 양심 불량 출판사의 경우엔 번역가를 또 다른 무보수 노동에도 동원하기 일쑤인데, 책 홍보를 위한 각종 언론자료 번역이 바로 그것이다. 대개는 번역원고를 넘기고 나서 직후나 한참 뒤 책이 출간될 즈음에 부탁을 받을 때가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번역서 마다 전부 자료번역을 해야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일부 '개념있는' 출판사에서는 당연히 각종 자료에 대한 번역의뢰도 원고료로 계산해 지불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출판사에선 그냥 은근슬쩍 담당자가 '도움'을 청하는 식으로 들이미는 것으로 끝이 난다. 번역가로선 당연히 책이 잘 팔리도록 도울 의무가 있으니 극구 거절할 입장은 아니다. 정 바쁘면 양해를 구할 수 있을 테고. 또 대부분은 그 자료라는 것이 그리 많지도 않아서 크게 부담되는 일감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긴 해도 게으른 나는 다른 일로 마구 바쁠 때 그런 영양가 없는 일을 하고 앉았노라면 자괴감이 든다. 흔히 번역한다고 하면 "한장에 얼마나 받아요?"라고 물으며 여권서류 번역일 쯤으로 알던 예전 대우와 달라진 게 뭐란 말인가? 물론 사내의 원칙이 어떠하든 담당자의 재량껏 앞뒤 표지와 날개글까지, 자료번역 원고까지 모두 매수계산을 해서 번역료에 반영해 지불하는 출판사도 많으니 무조건 분개할 일만도 아니다.책의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번역가가 관련 자료도 번역해야 제대로 된 카피 한 줄이라도 더 뽑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나 역시 믿으니까.
 
검토서 만들기 만큼 싫은 일은 아니지만 내 경우엔 역자후기 쓰기도 만만칠 않아서 일주일 이상 고민할 때가 많다. 번역하면서 뭔가 틀이라도 잡아놓는 경우엔 다행이지만, 도무지 방향도 못잡고 헤맬 때는 멍하니 백지를 들여다보며 머리털만 쥐어뽑다가 이러면서 무슨 글줄로 밥벌이를 한다는 건가 자학에 빠지기도 한다. 게다가 원고와 역자후기를 다 넘겼다고 번역가의 책무가 끝나는 건 아니다. 역자교정 과정이 아직 남았으니까. 책에 따라서 대단히 수월하게 한번 쓱 읽고 넘길 수 있는 원고도 있지만, 꼼꼼히 다시 원서대조하고 편집자와 용어 협의에 힘쓰느라 2, 3주도 훨씬 넘게 걸리는 역자교정 원고를 앞두면 또 한숨이 나온다. 그 즈음 되면 같은 책을 서너번째로 읽는 셈이니 아무리 재미 있는 책도 멀미가 나지 않겠나. -_-;; 사실 그렇게 멀미나게 역자교정을 마치고 드디어 책이 출간되면, 아무리 여러번 보았더라도 오탈자 확인도 할 겸 마지막으로 읽어주어야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몇장 들춰보는 경우는 있어도 옛날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새삼 읽고 살펴 혹시라도 2쇄에 반영할 부분을 찾아두는 경우가 없었다. 주변에서 오탈자를 일러주어 출판사에 통보한 적은 있었지만...

말 그대로의 '번역' 이외에도 번역가에게 주어지는 일의 범위가 이토록 다양하다 보니, 초창기에 에너지 넘치고 오지랖 넓을 때 작가나 해외 저작권사 쪽에 이메일 보내서 뭔가 작품에 대한 질문을 하거나 특별 서문을 먼저 부탁하는 따위의 정성은 꿈도 꾸지 않게 됐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다고나 할까. 해외 작가와 각별한 인연을 맺어서 작가 쪽에서 번역가를 독점 지정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나라면 미리 사양하고 싶다. 나도 안다. 비겁하고 불성실한 태도다. 하지만 정말로 '전문분야'를 갖고 있는 '전문번역가'를 꿈꾸는 대신 지겹지 않게 이것 저것 골고루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싶은 '종합출판인'을 목표로 삼고 있으니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번역할 때만 그러는 게 아니라, 작가 한 사람에게 반해서 그 사람 책을 모두 읽는 충실한 독자로서의 태도도 보인 적이 없다. 혹시 싫증나면 어쩌나, 라는 것이 나의 핑계지만, 이러면서 책으로 밥벌이 한다니 참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어쨌거나 마감일을 6개월도 넘게 어겼으니 어떤 무리한 부탁을 듣더라도 해줘야할 입장인 판국에, 자료번역에 대한 부분도 모두 원고료로 계산해주겠다는 '개념 있는' 출판사의 일을 하고 있으니 감지덕지해야 하는데, 어쩐지 자꾸 허드렛일 같고 자투리일 같고 쓸데없이 시간 부서지는 일 같고, 원래 내 일이 아닌 것 같은 불평이 불쑥불쑥 피어난다. 출판사에 따라서는 이런 자투리 번역만 따로 맡기는 인력망도 갖추고 있느 곳이 있긴 하다만, 결국엔 내 배가 불렀다. 번역의 원래 범위가 여기까지라고 애당초 생각했으면 될 일인데,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간 잡역부 취급했던 '일부' 출판사에 대한 고까움이 너무 커서 '책 번역' 이외의 모든 일엔 본능적인 거부감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번엔 자료 분량이 워낙 많다고 또 변명;;) 그러니 여기다 고백하고 얼른 마음을 고쳐먹어야지. 책 팔아먹으려고 얼굴 팔리는 이상한 홍보에 동원하지 않는 게 어디냐.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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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투덜일기 2011. 1. 26. 11:24

설날 전에 두번 남은 주말 가운데 큰작은아버지의 일정에 맞춰 잡은 성묘일은 마침 대폭설이 내린 지난 일요일이었다. 집에서 출발할 즈음 눈길을 걱정스러워하는 전화를 받기는 했으나, 정말이지 그땐 눈발이 우스워보였고 공주보필에 힘쓰느라 나는 뉴스니 일기예보니 하는 것에도 무지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강행한 파주 성묘길은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여기저기 눈길에 서너대씩 차들이 뒤엉켜 있는 도로를 엉금엉금 달려, 작은 언덕도 못올라 빌빌 미끄러지는 차를 산소 입구에 세워두고 모두들 함박눈을 맞으며 버적버적 걸어올라가야 하는 난코스였다. 제일 먼저 출발한 나는 빌빌 기어갔어도 한시간도 안 되어 약속시간보다 20분이나 먼저 공원묘지에 당도했지만, 모두 다섯대가 다 모인 시간은 약속시간에서 한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그나마도 그간 쌓인 눈이 엄청나 발이 푹푹 빠지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엔 접근도 못했고, 아버지 계신 납골당에 들어가 급히 이면지에 적은 조부모님 지방과 아이폰에 담긴 아버지 사진을 나란히 제단에 놓고 절을 올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손을 호호 불며 (부츠는 신고 갔으되 왜 장갑을 빼먹었던고!) 한참이나 눈길을 걷고나서 돌아온 다음날까지 뒷다리와 허리가 뻐근했다. 생각해 보니 뜻밖의 눈사태로 나는 울음바람도 잊었더라. 지난 추석 성묘땐 비가 철철 오더니, 설날 성묘땐 대설이라... 다 자손들 잘 되라는 뜻이라는 큰작은아버지 말씀에 비싯 웃으며 동감했다. 눈길 운전은 솔직히 겁났지만, 1킬로 미터에 한번 꼴로 여기 저기 구석에 차가 처박혀 있던 자유로를 달렸어도 열여섯 명이나 되는 가족들 모두 별 탈없이 무사히 귀가하였으니 그냥 눈구경 한번 잘했다 싶은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너무 춥고 장갑이 없어서 조카들이랑 눈싸움 한번 못한 건 두고두고 한이 되겠다.

그나마 돌아올 무렵엔 거의 눈이 그쳤다. 저런 길을 내가 다녀왔구나.... 사진으로 다시 봐도 놀랍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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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투덜일기 2011. 1. 21. 13:26

겨울방학을 맞아 조카 공주가 몇주째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어제부터 4박5일간의 일정으로 와 있다. TV 리모컨도 컴퓨터 사용권도, 아이폰마저도 모두 공주의 손아귀에 들어가, 무수리는 그저 공주와 왕비마마께 봉사하는 일에 매진하는 수밖에 없다. +_+ 발등에 붙은 불 끄느라 며칠 블로그질을 멀리 했는데, 또 며칠 블로그계를 떠나 있을 수밖에...
지금도 점심준비 핑계로 잠시 컴퓨터방에 숨어들었다. 월요일까지 갈 길이 멀다. 강추위를 뚫고 매일 외출 스케줄이 잡혔다. 그나마 이번 겨울엔 조카를 동반하고 볼만한 영화가 별로 없다는 것이 다행인가, 불행인가. 으휴... 들켜서 혼나기 전에 얼른 나가야겠다. ㅠ.,ㅠ 아니지, 이렇게라도 쉬는 걸 나도 겨울방학이라고 생각하자. 공주의 요구사항은 단순하다. 자기가 다니러 온 동안엔 절대 '일'을 하지 말고 자기랑 즐겁게 놀아달라는 것. 하지만 열네살 짜리 조카와 '재미있게' 놀 거리는 그리 많지 않다. 그냥 빈둥거리라는 얘기다. 하기야 이 얼마만의 빈둥거림인지. 여튼 간만에 온종일 틀어놓은 TV는 광고부터 다 신기하다.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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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 유감

투덜일기 2011. 1. 9. 16:15

왕비마마와 내가 옷에 대한 취향이 사뭇 다르긴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의견통일이 이루어진 부분은 모피 코트에 대한 거부감이다. 젊어서는 모피를 싫어하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고 특히 노년에 접어들면 모피, 특히나 밍크 코트 한벌쯤은 갖고 있어야 면이 선다는 말을 많이 들었으므로, 엄마가 예순살 즈음부터는 겨울마다 나도 아버지도 계속 왕비마마의 의향을 물었다. 한벌 사줄 테니 골라보시라고 말이다. 한벌에 몇천만원까지 한다는 초고가의 모피는 못 사줘도 '까짓것' 몇백만원짜리는 사주겠다며 몇번이나 백화점엘 모시고 나가 입혀본 적도 있었다. 엄마가 내심 갖고 싶은데 괜히 사양하는 '척'하는 거라면, 백화점까지 가서 입어본 다음에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실 것이라는 게 우리의 짐작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때마다 억지로 걸쳐는 보았으되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원래 우리 모녀는 웬만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옷을 잘 입어보지 않는다. 입어보고 나면 소심한 성격에 점원에게 미안해 마음에 안들어도 얼떨결에 사버리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모피 코트가 워낙 고가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왕비마마의 거절 이유는 우리가 듣기에도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첫째로는 불자로서 수백마리 짐승을 죽여 만든 옷을 걸치고 절에 다니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고, 둘째로는 당신 몸이 뚱뚱해서 그렇게 짐승털가죽 옷을 입은 본인의 모습이 한 마리 곰처럼 흉측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말 부부동반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모피코트를 입지 않은 사람은 울 엄마밖에 없더라면서 그게 속이 상했는지 아버지는 잊을만 하면 한번씩 계속 백화점 모피 매장으로 왕비마마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왕비마마는 밍크 코트 대신에 밍크털이 깃과 소매에 장식된 무스탕이나, 오리털, 모직 코트를 대신 사거나 차라리 아버지랑 세트로 등산 점퍼를 장만해 들어오셨다. 그러고 나서는 지난 몇년간 나는 왕비마마의 모피 취향이 변했는지 아닌지 떠보기를 잊고 살았다. 그런데 유난히 혹독한 추위가 이어지고 있는 올 겨울, 왕비마마의 나들이라고 해봤자 한달에 한번 동창모임 아니면 절에 가는 것 이외엔 죄다 병원 정기검진이긴 하지만 노친네들이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밍크 코트'를 보니 새삼 또 찔려 왕비마마에게 물었다. 엄마도 이젠 밍크코트 한 벌 입으시지, 라고. 그랬더니 단박에 싫으시단다. 더 뚱뚱해보일 거라나. 그럼 살 빠지면 입으실 거냐고 했더니 그도 아니란다. 오히려 입고 싶으면 너나 입으라고, 통 크게도 한벌 사주시겠다고, 요즘엔 젊은 애들도 많이들 입나보더라고, 한 술 더 뜨는 거다. -_-; 징그러워서 개털도 잘 못쓰다듬을 뿐더러, 특히 실감나게 생긴 밍크털은 더 소름끼쳐서 소매나 깃장식도 못 견딜 판국인데 무슨!

이렇게 모피 혐오증 환자처럼 굴고는 있지만 나도 짐승털이 얼마나 따뜻한지는 알고 있다. 할머니 유품 중에서 스웨터 말고도 내가 또 챙긴 물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밤색 토끼털 목도리다. 다행스럽게도 토끼 눈과 꼬리까지 실물처럼 재현해놓은 그런 모양이 아니라(그런 거라면 무서워서 절대 갖겠다는 소리 안했을 거다. 할머니 밍크 코트를 외면했던 것처럼;;) 둥글게 코트 깃처럼 생긴 집게형 목도리라 모직코트를 즐겨 입던 시절엔 정말 거의 매일 두르고 다녔다. 비록 이제는 몇년째 장농에 그저 매달려 있기만 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가죽코트 사면서 안에 입는 토끼털 조끼가 덤으로 생겨 입어본 적도 있다. 그나마 변명이라면 내가 일부러 모피를 추구해서 장만한 건 아니라는 정도지만, 토끼털은 괜찮고 밍크 코트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과연 나도 더 '늙으면' 취향이 바뀔지 그건 모르겠으나, 어려서는 모피가 징그럽다고 나와 동감하던 친구들도 중년에 접어들더니 슬슬 모피에 눈길이 가고 호피무늬가 좋아진다고들 고백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나는 요즘 모피 코트 디자인이 제 아무리 세련되게 바뀌었다고 해도, 깜찍 발랄하게 새하얀 모피를 입은 젊은 아가씨들을 보아도 전혀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데 말이다. 호피무늬 싫은 거야 예전에도 포스팅했던 적이 있을 정도고! (좋아하는 배우가 배역 때문이 아니라 그저 좋아서 호피무늬 걸치고 나오면 호감도는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선호 배우 명단에서 제명될 수도 있다) 얼마 전 혹독하게 추운날 잠깐 만나 밥을 먹었던 친구는 나 싫어할까봐 제일 뜨뜻한 모피 코트를 못입고 나왔다고 툴툴거렸다. 그 친구는 그 옛날부터 걸어다니면 반드시 팔짱을 껴야 하는데, 모피 걸치고 나온 날은 내가 내내 사모님이라고 놀려줄 뿐만 아니라 팔짱도 금지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내 취향을 고려해 하루쯤 모피를 포기한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긴 것, 짧은 것, 색깔 연한것, 조끼형까지 일일이 갖고 있는 모피 코트를 들먹이며 효용성을 피력하는 사모님에게 결국 나는 '고급스러운' 취향을 존중해 줄 터이니 그만 입닥치라고 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까마득한 옛날에 결혼할 때도 시어머니 혼수로 모피코트를 해드리고 저도 모피를 받았던 것 같다. 어차피 물려받을 거라 생각하고 좋은 걸로 바치기로 했다던가.

암튼 그렇게 뜨뜻하다는 모피 코트에 대한 왕비마마의 거부감이 진심인지 아닌지, 진심이었더라도 혹시 변하는지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떠볼 작정이다. 왕비마마가 계속 싫다고 하시면 몹시 뿌듯하고 자랑스러워 하겠지만, 못 이기는 척 입겠다고 하셔도 매몰차게 친구에게 하듯 팔짱을 못끼게 하지는 말아야지 마음먹고 있다. 곰 한마리나 바야바 같은 왕비마마를 모시고 다니는 일은 정말 싫겠지만, 뭐 그렇게 또 따뜻하다니까... 원시 시대엔 겨울에 누구나 모피를 몸에 두르고 다녔을 텐데 뭐... 암... 혹시 내가 하도 질색팔색을 하니까 왕비마마가 모피 입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계신 건 아닌가 슬며시 걱정스럽기도 하다. 빤딱이 여우털 프린세스 라인 패딩을 사다 입으라고 강요 받았을 때 내가 난감했던 것처럼, 나 또한 내 취향을 노친네에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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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세기

투덜일기 2010. 12. 30. 12:34

예전에 부모님이 즐겨 보시던 오락 프로그램에서 하던 게임이 하나 있었는데, 낱말 퀴즈를 맞히면서 동시에 돈을 세는 거였다. 낱말퀴즈를 몇개 이상 맞히면서 지폐도 정확히 세면(이 또한 몇십 장 이상 세어야 하는 제한이 있었다;) 점수를 획득하는 게임인데, 나로선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그 상황에서 놀랍게도 거의 다섯 명에 한 명꼴(열 명에 한 명꼴이던가;;)로 정답자가 나왔던 듯하다. 인간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숫자나 셈에 관한 한 나는 물론 심히 모자란 부류에 속하기 때문에 열장이 넘어가는 지폐는 두어번 셀 때마다 매번 장수가 달라진다. 숫자나 셈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손가락의 기민함에도 문제가 있는 건가?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마찬가지다 ㅋ)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긴 하지만 내가 다닌 마지막 회사에선 매달 월급날에 월급봉투를 만드느라 경리부에 대소동이 일었다. 그 무렵 이미 대부분의 회사에서 급여통장으로 이체하는 방식을 시행하고 있었으나, 회사에서 그 누구보다 목소리가 컸던 생산직 직원들의 거부로 유독 그 회사만은 월급봉투 지급제를 고수하는 중이었다. 이전의 두 회사에선 이미 급여통장으로 월급을 받았었는데 갑자기 월급날마다 누런 봉투에 손글씨로 급여내역이 적힌 '월급봉투' 받아들었을 땐 나도 '아 이 맛에 사람들이 월급봉투를 선호하나 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통장에 한줄로 찍히는 금액과는 느낌이 다르게 노동의 대가를 실물로 받아드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300명에 가까운 직원들의 급여봉투를 일일이 만들어야 하는 경리부 직원들의 수고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나마도 며칠 전부터 명세내역을 일일이 손으로 적어야 하던 누런 월급봉투는 머지 않아 컴퓨터로 출력한 전산용지로 바뀌었지만, 그 봉투에도 일일이 일원(!) 단위까지 금액에 맞춰 돈을 세어 넣는 데는 인력이 필요했다. 월급날 아침 일찌감치 경리과장과 여직원이 은행엘 다녀오면, 경리부의 모든 직원과 총무과 직원까지 동원되어 이사실에서 돈을 세 월급봉투 만들기 작업에 돌입했다. 나중엔 인원감축으로 총무과 직원이 한 사람밖에 남지 않자 다른 부서의 여직원들도 '차출'되었다. 그저 나이가 제일 많다는 이유로 멋모르고 월급날 경리 이사실에 불려갔던 날, 나는 그야말로 공황상태에 빠졌으나 다행스럽게도 곧 그 방에서 쫓겨났다. 틀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더욱 긴장해 봉투 하나를 들고 한시간 가까이 계속 끙끙댔기 때문이다. 수표와 현금을 적절히 분배해서 봉투에 적힌 급여 금액을 맞춰 넣어야 하는 상황인데, 셀 때마다 지폐 장수가 달라지는 내 솜씨로 그런 고난도의 노동을 제대로 해낼 리가 없지 않은가.

어린 시절 설날에 받은 세뱃돈도 나를 믿지 못해서 세고 세고 또 세고 그러고도 총액 계산이 잘 안되서 헤매던 나였다. 지금도 돈 세는 건 정말 싫고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현금지급기나 은행 창구에서 돈을 찾으면 당연히 맞겠거니 세어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현금을 많이 찾아서 들고 다니는 적도 별로 없다!). 언젠가 창구에서 꽤 많은 돈을 찾아야 했던 날 잘난 척 돈을 세어봤는데 두번 모두 한 장 모자랐고, 평소 지폐를 두번 세어서 같은 장수가 나오는 적이 한번도 없던 나는 그간 실력이 늘었나보다 놀라워하며 창구직원에게 재확인을 요구했다. 창구 직원은 착착 순식간에 지폐를 세어 확인한 뒤 한 번 더 지폐 개수기로 장수를 보여주었고, 결과는 당연히 나의 오류였다. 얼굴을 붉히며 도망치듯 은행을 나오면서 생각했었다. 그래, 은행직원이 어떻게 돈을 틀리게 세겠니. 내가 멍청했지.

가끔 현급지급기에서도 지폐 장수나 금액 오류가 나므로 꼭 세어보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이제껏 나는 그런 경우를 단 한번도 겪은 적이 없다. 혹시 안 세어봐서 모르고 지나친 게 아니라면 말이다. -_-; 가끔 왕비마마의 은행 심부름을 하는 경우 나는 지급기에서 뽑은 돈을 그냥 뭉텅이로 봉투에 담아 가져다 드리는데, 옛날 분 답게 왕비마마는 지폐를 구부려 잡고 부실한 손가락으로도 꼭 장수를 세어 확인하신다. 그걸 지켜보며 나는 속으로 조마조마하지만 (혹시 뭔가 잘못되어 금액이 틀리면 대체 나는 그걸 은행에 가서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싶어서;;) 이제껏 한번도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다. 참 다행이다.

왜 이런 돈타령을 하고 있는고 하니, 조금 전 새삼스레 돈 세기 때문에 민망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오전에 병원에 갔다 오는 길에 은행에 왕비마마를 내려드리고 그냥 차에서 기다렸다. 각종 자동이체와 연금 때문에 통장정리를 취미생활 쯤으로 여기시는 양반이라 직접 즐거움을 만끽하시라고 말이다. 헌데 아무리 기다려도 노친네가 나오질 않기에 뭔일인가 싶어 들어가보니, 가뜩이나 복잡한 말일에 번호표까지 뽑아들고 창구 순서를 기다렸단다. 아니 새삼 왜? 단순 인출이란 걸 안 다른 직원이 지급기로 안내해 현금인출을 돕고 있는 순간이었는데, 민망해서 얼른 모시고 나오려는 순간 직원이 내게 요구했다. 지금 바로 현금을 세어  확인해 보시라고. 헉. 왕비마마 혼자도 아니고, 남들 보는 앞에서, 그것도 은행직원 앞에서 수십장 지폐를 세라니. 게다가 왕비마마는 5만원권을 영 신뢰하질 않으셔서 만원권만 좋아라하시는데. ㅠ.ㅠ 내심 대충 세는 척 하고 맞다고 말할 작정이었으나 바보처럼 나는 습관처럼 중얼중얼 숫자를 세었고 당연히 마지막 숫자는 금액과 달랐다. 곁에서 지켜보던 왕비마마는 당연히 다시 잘 세 보라고 타일렀다. 이미 내 머릿속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선 채로 서툴게 돈을 세다가 파라락~ 지폐를 바닥에 떨어뜨려 허겁지겁 다시 주우며 얼굴 뻘게지는 나의 모습이 눈에 선했던 거다....

천만다행으로 눈 녹은 물이 질척한 바닥에 돈을 떨어뜨리는 사태까진 벌어지지 않았으나, 서른장밖에 안되는 지폐를 나는 두번이나 더, 하나, 둘, 셋, 넷... 왕비마마와 구호를 맞춰 세야 했다는 슬픈 이야기. 아 왜 노친네들은 현금을 그리 좋아하시냐고!!! 쳇.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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