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주소

투덜일기 2011. 7. 21. 21:29

서울시 @@@구 □□로 37길 XX-X
정부가 우리집에 부과한 새주소다. (원래 주소는 서울시 @@@구 OO2동 XXX-XXX)
지번 찾기 쉬우라고 길마다 정했다는 새주소의 편리함 여부는 내 상관할 바 아니고, 그냥 마음에 안든다. 익숙한 것을 버리기가 원래 힘든 법이지만, 늘 새로운 걸 추구하는 취향도 갖고 있는 터라 단순히 낯설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따져보면 나는 이 동네에서 35년을 훨씬 넘겨 살았다. 20년 넘게 산 이 집 이전에도 우리집 주소는 번지만 달랐지 늘 OO동이었다. 전월세 계약 기간이 2년으로 정해진 지 꽤 됐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막 6개월마다 이사를 다녔다. 아이가 셋이라 시끄럽다고 집주인이 계약연장대신 계속 쫓아냈다고 들었던 듯하다. 해서 우리는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길 하나를 마주하고 반대편 주택가로, 주소상으로는 OO2동에서 OO4동으로, 다시 OO3동으로  하도 이사를 다녀 옛날 손글씨로 적던 주민등록 등본을 떼면 주소 적는 난이 빽빽하다못해 넘쳐날 정도였다. 같은 구를 벗어나지 않은 건 할아버지댁과 가까이 있기 위함이라고 해도 부모님은 대체 이 동네가 뭐 그리 좋다고 고수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전셋값이 다른 동네보다 쌌을까?

어쨌든 밤늦게 택시 잡기 어렵고 집값은 저렴해도 워낙 오래 터를 잡고 산 동네라 OO동이라는 주소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이상하다. 명목상 번지수가 바뀌었대도 물론 너 어디사니, 하는 질문엔 다들 원래 동네 이름을 대겠지만 당최 새 주소는 써먹고 싶은 느낌이 안든다. 그나마 이 동네에선 새주소명 의의신청 움직임은 없었던 것 같다. □□로에 붙은 □□동 이름이 우리 동네보다 더 부자 동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초동 방배동 사람들은 '우면로'라는 새주소를 못마땅히 여겨 결사반대를 했다고 들었다. 원래는 다 평창동이었는데  새주소명이 '세검정길'과 '평창길'로 나뉘어 근거 없이 차별받는다고 단체 이의신청을 했다는 아파트 단지 이야기도 들렸다. 다 집값과 상관 있기 때문이란다. -_-;

이재에 어두워 집값 같은 건 전혀 모르겠고 30년 넘은 우리집이야 주소명 바뀌었다고 값을 더 쳐줄 리도 없다. 나는 다만 발음도 착하고 정겨운 OO동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더는 못쓰게 된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새주소는 당연히 아직 외지 못했다. 요번에 날아온 계약서에 서명을 하면서는 당연히 원래 주소를 적었다. 연말까지 유예기간을 두고 내년부터는 다 바뀌 주소를 사용해야 한다는데, 나는 언제까지 원래 주소를 고집할 수 있을까?

한 동네에 너무 오래 살아서 너무 많은 이웃과 서로 알고 있기에 인사하기도 귀찮고 민망해 확 이사 가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내가 선택해서 새 동네에서 터를 잡고 사는 것과 원래 오래도록 산 동네에서 동네 이름을 빼앗기는 것은 확실히 기분이 다르다. 현정부가 하는 일마다 족족 마음에 안들어 무조건 닥치고 싫다는 게 아니라, 정말이지 새주소가 필요했던 건지 잘 납득하기가 어렵다. 전화도 안걸고, 심지어 초인종도 안 누르고, 현관문을 열고 올라와 물건을 전해주고 가는 수많은 택배기사님들은 새주소를 사용해도 그렇게 귀신같이 찾아와줄까? 아마도 내겐 그게 제일 큰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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