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1.11.08 돋보기가 필요없어 5
  2. 2011.11.03 꼬꼬면이 뭐라고 21
  3. 2011.10.27 커피집 불만 9
  4. 2011.10.26 물려받은 옷 4
  5. 2011.10.24 꽃파는 마트 12
  6. 2011.10.21 이상한 댓글 4
  7. 2011.10.14 어떤 결혼식 12
  8. 2011.10.13 택배 없던 시절엔... 5
  9. 2011.10.10 바보짓 6
  10. 2011.10.04 엄마, 갈게 8

은행에 가는 일이 지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암튼 드물게 동네 은행에 가보면 높은 탁자에 돋보기 3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40대용, 50대용, 60대 이상용. 예전부터 그걸 보며 몹시 궁금했다. 사람들의 눈 노화는 그렇게 뭉뚱그려 10년 단위로 돋보기를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일반적인 현상일까?

그래, 이젠 빼도박도 못하는 엄연한 중년이라고 다짐하면서도 올들어 부쩍 빌빌대고 맥빠져했던 건 확실히 체력도 예전같질 않고(운동부족이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ㅋㅋ), 노안(老眼)이 확연해져 책을 볼 때나 일을 할 때 눈이 쉬 피로하기 때문이라고 굳이 이유를 분석했다. 3년전까지는 계속 근시 시력이 떨어져 안경알을 바꿔야했는데 그 추세가 멈춘 걸 봐도 불안했다. 나도 조만간 근시용과 돋보기 안경 두개를 갖고 살아야하는 건가 싶어서. 혹은 안경점마다 써있는 다초점렌즈가 필요하게 되는 걸까?

혼자서 오래 고민만 하다 드디어 오늘 눈이 뻑뻑하고 안경돗수가 잘 맞지 않는듯하다는 엄마 덕분에 나도 덩달아 안과검진을 받았다. 결과는 둘 다 양호. 눈이 뻑뻑한건 가을이라 건조해지면 거의 누구나 다 겪는 증상이래고, 안경돗수도 적당하단다. 모녀 둘 다 난시가 있어서 간혹 계단이 어른어른할 때가 있긴 하겠지만 그에 맞춰서 안경 돗수를 높이면 눈이 더 피로해진다네. 별 이상 없다는 말에 엄마는 한시름을 놓으셨고 나도 기쁜 소식을 하나 들었다.

나의 시력이 아주 오묘한 범위라 더 늙어서도 돋보기가 필요 없을 거라네! 웬만한 작은 글씨도 그냥 30센티미터 정도 떼고 보다가 더 나이들어 정 안되겠으면 안경을 벗고 보면 된단다. 가끔 자기 전에 엎드려 책을 보면 초점이 잘 안맞는 것 같아 안경을 벗고 볼 때도 있는데 그건 눈이 피로해서 그런 것이고 자세도 나빠 생기는 현상이니 아직은 염려말라고 하는데 왜 그리 안심이 되던지. 조만간 노상 휴대용 돋보기를 꿰차고 다녀야하는 게 아닐까 하던 염려에서 돌연 자유로워졌다. 인간지사새옹지마라고, 눈이 적당히(?) 나쁘니 덕보는 것도 있다 싶은 게 꽤나 뿌듯하다. 예전에 눈이 좋아 나를 안경잡이라 놀렸던 친구들은 슬슬 돋보기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거지.  

게다가 지금 쓰는 안경들도 다 돗수가  잘 맞는다니 금상첨화! 새 안경을 사고픈 욕망이야 벌써부터 있었지만 시력이 달라졌으면 쓰던 안경들 알을 또 죄다 바꿔줘야하니 난감했는데, 그냥 기존 돗수로 새 안경만 하나 맞추면 된다는 의미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듯. 평생 돋보기 맞출 필요가 없으므로 거기서 절약되는 비용을 감안하여 예쁜 안경테를 하나쯤 또 장만해도 괜찮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비욕에 관한 셈법엔 언제나 그럴듯한 핑계가 있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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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먹진 않지만 나 역시 <라면은 역시 신라면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한달에 한두번 끓여먹는데도 집에 신라면이 떨어질 일은 없다. 그밖에 우동과 소면, 인스턴트국수, 떡국떡도 상시 준비되어 있다. <점심끼니는 웬만하면 간단히 분식으로>가 나의 모토이기 때문이다. 점심에 제일 자주 끓여먹는 건 떡만두국과 가쓰오부시 우동(생면으로 인스턴트 제품이 나온다). 최근 맵지 않아 만만한 후루룩 국수도 꽤 애용했다(엄마는 매운 음식을 못드신다). 그런데 몇달 전 꼬꼬면이 등장한 거다. 별로 맵지 않다니 점심끼니 후보로 올릴 만했다. 헌데 엄청 인기라서 품귀현상이 빚어진다나 뭐라나 뉴스에도 나오고, 거의 암거래를 연상케 할 만큼 어렵사리 구해야 하는 라면으로 루나파크 에피소드에도 등장했다. 동네 마트에 가보니 정말로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또 괜히 빈정이 상하면서 맛도 보기 전에 먹기가 싫어졌다. 닭비린내 난다잖아! 일부러 유통을 제한해서 사람들 감질나게 만드는 꼼수 마케팅 수법 아냐? 라면이 맛있어 봤자지... 

그러고 잊고 있었는데 얼마전 LA사는 친구가 통화하다가 문득 물었다. 아 참, 너도 꼬꼬면 먹어봤니? 그렇게 맛있어? 여기 사람들 그거 먹어보고 싶다고 난리다 너.. -_-; 나도 아직 구경 못했다고 했더니 친구가 말했다. 너도 못먹어 봤으면 여기 들어와도 엄청 비싸고 사기 힘들겠다 야. 너 내년에 놀러 올 때 한 박스 사와! 킥킥 웃으며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나는 다음번 친구와 통화할 때 먹어보니 별 맛 아니더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그 담번에 장보러 갔을 때 열심히 라면류 선반을 뒤졌다. 어느 구석에 한개라도 남아있을지 몰라, 그러면서... 그러나 없었다. 나는 또 다른 음모론을 상상했다. 꼬꼬면의 물량이 부족해 공급 안되는 게 아니라, 혹시 농심에서 마트에 압력을 넣는 거 아닐까? 그 마트가 원래 이름 없는 중소기업의 신선식품이 들어와 좀 인기를 끄나 싶으면 이내 대기업 제품에 쫓겨나곤 했기 때문이다. 국내산 쌀로 만들어 정말 맛있고 부드러운 데다 가격도 저렴해 내가 애용했던 떡국떡이 몇달만에 비싸고 찔깃해서 별로인 풀*원 떡국떡에 밀려나는 식이었다. 물론 한국야쿠르트가 힘없는 기업은 절대 아니겠지만... 암튼 꼬꼬면에 대한 나의 열망이 그리 큰 건 아니라 없으면 말지 하는 정도였다. 게다가 가끔씩 마트에서 행사로 구매액이 몇만원 넘으면 주는 사은품이 노상 오뚜기 '진라면'이더니 '신라면'을 줬다. 농심 마트 외압설(?)에 괜히 더 심증이 갔다.

그런데 요번엔 미중부에 사는 후배가 꼬꼬면과 나가사키 짬뽕이 드디어 들어왔다고 신나하는 감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목하 흰국물 전쟁중인 라면업계에서 나가사키 짬뽕은 삼양이 꼬꼬면의 대항마로 내놓은 제품이다. (나 이런 거 왜 일케 잘 알지? ㅋㅋ) 유학생 및 교민들에게 한국 라면류의 인기야 익히 알고 있는 거지만, 한국에 있으면서도 몇달째 아직 맛도 보지 못하고 있는 나는 이유없이 조바심이 났다. 해서 마트에 가 또 다시 꼬꼬면을 찾아 헤맸다. 이번에도 없었다. 대신에 나가사키 짬뽕은 특설판매대에 엄청 쌓여 있었다. 흠... 꿩대신 닭이라는데...

적어간 쇼핑목록에 있지도 않던 나가사키 짬뽕을 결국 꾸역꾸역 사오긴 했지만 뭔가 기분이 찜찜했다. 어쩐지 업자들의 담합 농간에 넘어간 느낌도 들고...... 대체 꼬꼬면이 뭐라고! 그래서 반항(?)의미로 오늘은 소면을 삶아 건강에 좋은 콩국수(물론 두부와 우유로 만드는 간단식)를 새삼 만들어먹었다. 날씨도 다시 더워져 아주 딱이두만. 그러나... 아마 나는 담번 장을 보러 가서도 혹시 꼬꼬면이 있나 기웃거리게 될 것 같다. 이런 걸 도달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이라고 하는 건가.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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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집 불만

투덜일기 2011. 10. 27. 17:25

지난번 추석때였나. 두 올케와 둘러앉아 명절노동에 힘쓰는 도중에 둘이 입을 모아 말했다. 언니, 옛날에도 좀 까칠했지만 요샌 심히 까칠해졌어요, 라고. 스스로 까칠한 인간인 건 알고 있었어도 '심히' 티나게 그 소양이 발전했다니 좀 찔렸다. 원래도 버럭버럭 화를 잘 내는데 동생들한테도 그랬었나? -_-a 며칠 전엔 동생이 뭘 부탁한 일로 통화를 하다가 막 언성을 높이며 쪼잔하게 굴었더니(분노의 대상이 동생은 아니었다), 전화기 너머 저쪽에서 큰동생이 길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쯧쯧, 이 누나를 어쩌면 좋으냐고 속으로 중얼대는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듯했다. 그렇다고 사소한 불평불만을 속으로 삭이고만 있을 배포는 안되니 또 단순하게 투덜투덜 구시렁구시렁.

오늘은 후배랑 시내에서 점심 먹을 일이 있어, 이왕이면 매상 올려준다고 안국동 트윈트리타워에 가서 수제햄버거와 샌드위치를 먹고는 건물 1층에 있는 Think Coffee로 수다자리를 옮겼다. 나는 이미 커피를 한잔 마셨으므로 아메리카노 작은 걸(S, 3800원)로 두잔 주문하며 머그잔에 담아 달랬더니 머그잔 커피는 중간 크기(M, 4300원)부터 판매한다고 했다. 엥? 뭐시라고? 머그잔이 크면 거기 양껏 담아주면 되지 머그잔으로 마시려면 큰 걸로 주문하라는 시스템은 또 뭐냐? 은근 빈정이 상했다. 그제야 카운터 옆에 세워놓은 컵 사이즈가 눈에 들어왔다. 별다방 콩다방을 비롯한 커피집엘 내가 요즘 잘 안다녀 거기도 최근 바뀌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작은 크기 컵이 아 글쎄 겨우 자판기 종이컵 만한 게 아닌가! 공정무역이니 저온 로스팅이니 어쩌니 해도 Think Coffee가 별로 맛은 없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는데, 게다가 양까지 적다니 돌연 화가 났다. 어쨌든 나는 머그잔에 나름 양껏 커피를 마시고 싶었으므로 돈을 천원 더 내고 크기를 바꿨다.

투덜투덜 자리로 돌아와 기다리고 있으려니 좀 있다가 카운터에서 아메리카노 두 잔이 나왔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데 떡하니 종이컵에 담겨 있는 게 아닌가! 철저한 환경주의자는 아니지만 일부러 종이컵에 안먹고 머그잔에 마시려고 사이즈까지 바꿨는데 종이컵에 담아주는 무신경함은 뭐냐고! 우리가 시킨 거 아닐지도 몰라 재차 확인했다니 맞단다. 와락 열이 오른 내가 머그잔 주문했는데 어찌된 거냐고 따졌다. (까칠해지면 소심이에서 돌연 쌈닭모드로 변신!) 그제야 머그컵에 다시 담아주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얼빵한 직원... 만약에 머그잔이 보온중이었다면 나는 그러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직원이 집어드는 머그잔은 그냥 선반 꼭대기에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는 것들이었다. 이미 종이컵에 따랐던 커피를 다시 차가운 머그잔에 부어 주겠다는 거냐!? 또 한번 열받음 -_-;; 나는 일그러진 얼굴로 됐다고 말하며 그냥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점심시간 이후라 거의 빈자리 없아 바글거리는 사람들 모두 플라스틱컵 아니면 종이컵에 담긴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보나마나 빤했다. 직원들이 머그잔 설거지하기가 싫었겠지! 콩다방에서 알바를 했던 후배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매장 인원이라는 게 빤한데 설거지까지 하려면 시간없고 힘들어서 굳이 원하는 손님이 아니면 모르는 척 종이컵에 준다고. 그리고 제일 진상손님은 조각 케이크 시켜서 먹으며 접시와 포크 뿐만 아니라 머그잔과 쟁반에 크림 묻혀서 설거지 복잡하게 만드는 인간이라고. 보통 쟁반은 행주로 슥~ 닦고 만다는데, 쟁반 설거지까지 하려면 싫기야 싫겠지. 하지만 그게 그들이 해야할 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잖아? 커피전문점들의 시급이 최저임금수준이고 그들이 노동력 착취를 당하는 현실 때문에, 노고를 감해주는 의미로 소비자가 종이컵을 무조건 수용해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고용주와 노동자간에 사회가 개입하여 해결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머그잔과 종이컵의 선택은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몫인데, 머그잔에 달라는 손님까지 종이컵에 담아주는 건 대체 무슨 무대포 정신일까나. 커피는 따뜻한 머그잔에 마셔야 제맛이란 말이다, 이놈들아! 이런 지경이니 어떤 진기한 커피를 시켰더라도 맛있을 리 없었지만 냉정히 객관적으로 평가해도 정녕 맛있는 커피는 아니었다. 흐리지도 않은데 밍밍한 건 뭔지. 차라리 햄버거집 커피가 더 훌륭했음.

수다를 이어가면서도 내 머리 한 구석엔 계속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Think Coffee 안되겠네. 담에 다신 오나 봐라. 담부터는 옆동에 있는 별다방에 갈 거다. (실은 두번째 방문이었는데 처음 갔을 땐 밤이라 카모마일차를 시켰고 머그잔에 달라고 했었음. 나중에 합류한 일행은 별 말 안했는지 종이컵에 커피를 받아왔고.) 커피집 게시판에 소비자불만 올릴까? 확 가열찬 불매운동을 펼칠까? +_+ 니들 까칠한 인간 잘못 건드렸어! 소비자 입장 대신 이젠 업주 입장에서 요식업계(?) 비즈니스를 바라보게된 동생들은 아마도 띨빵한 직원이 깜빡하고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뭐 그리 쪼잔하게 속을 끓이냐고 한 마디 할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마음 상한 건 절대 안 잊는 뒤끝 엄청 긴 쪼잔한 소인배인걸... 그리고 애당초 머그잔에 마시려면 작은사이즈 커피는 주문도 안된다고 하는 것부터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게시판 불만 접수나 불매운동 같은 건 게으름 덕분에 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그저 이런데다 하소연하고 마는 거지. 혹시라도 소비자 반응을 살피는 프랜차이즈 관계자 검색에 걸려 직원교육을 제대로 시키는 계기가 된다면 다행인 거고 아님 마는 거고. 나야 뭐 다시 안가면 그만이니까... 와이파이 잡으려면 비밀번호 입력해야하는 것도 불편했다고! 흥! 융통성없고 요령 없는 그 직원은 끝까지 정점을 찍었다. 매장을 나서며 마침 출입구가 음료 내주는 데 바로 옆이라 빈 컵과 쟁반을 내밀었더니 (다른 커피집은 그러면 주방까지 가져다준데 오히려 감사하며 선뜻 받지 않나?) 굳이 구석쪽 반납대를 가리키며 거기다 가져다 놓으라고 명령하시더군. 우엑~! 혹시나 커피집 관계자가 와보고선, 예전 허위학력 건축가처럼 무작정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글이라 티스토리에 삭제를 청구하는 사태가 발생하려나 어쩌려나 두고볼 작정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정식 법적 소송이 아닌 한 티스토리측에서도 한달간 글 비공개로 해뒀다가 다시 공개하는 걸로 마무리됐으니 나도 겁날 거 없다. 정당한 소비자 불만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보면 더더욱 그 커피집 영업방침을 알게되겠지. 분명 말해두지만 나는 얼토당토않게 괜히 트집잡는 블랙슈머가 아니고 단지 종이컵 두개 소비 안 되도록, 또한 잘 안식는 머그잔에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가 '무시당한' 일개 힘없는 소비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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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려받은 옷

투덜일기 2011. 10. 26. 00:56

맏이임에도 어렸을 때 물려받은 옷을 종종 입었다. 주로 네살 많은 사촌언니가 입던 옷이었는데, 한복이야 내가 워낙 명절에 한복 떨쳐입기를 좋아하는 어린이였던 터라 신을 냈지만 그밖의 옷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나 나일론이라서 보풀이 사방에 일고 소매를 두세번 둥둥 걷어야 겨우 손이 나오는 스웨터 같은 건 진짜 입기 싫었다! 물려받는 옷이라도 차라리 엄마옷을 물려입는 건 신나고 좋았다. 엄마가 손수 줄여주든 세탁소나 양장점엘 가져가 줄여오든 내 몸에 맞게 제대로 줄여서 예쁘게 맞춰주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옷 가운데 지금도 기억나는 건 두벌인데, 아무래도 사진이 증거로 남아있기 때문일 거다.

하나는 국민학교 1학년 봄소풍때 입고 간 점퍼스커트. 옛날에 촌스러운 노인들이 산으로 단풍놀이 가면서 양복 떨쳐입듯, 내가 어린 시절 소풍 때는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가는 게 '관례'여서 그때 사진을 보면 아래 위 정장을 입은 남자아이들, 곱게 원피스나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1년중 드물게 '사진'을 박는 날이니 당연하지! 암튼 그날 사진 속의 나도 분홍색 블라우스에 민소매 원피스처럼 생긴 진회색 모직 점퍼스커트를 입고, 풍선을 든 모습이다. 언젠가 앨범을 보다 엄마가 말해주었다. 소풍에 입고갈 새옷을 벌로 다 사입힐 돈이 없어서 블라우스만 새로 사고, 점퍼스커트는 엄마 치마를 고쳐 만들어 입혔다고. 내가 엄청 좋아했던 옷이라 블라우스 말고, 흰색 폴라티에도 엄청 입고 다녔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두번째 엄마옷 리폼은 목둘레에 인조털이 붙은 겨울 코트. 5, 6학년 겨울에 엄마가 낡아 헤진 당신 모직코트의 안감을 떼고 천을 뒤집어 만들어 입혔는데 정말 따뜻하고 우아해서 신나게 입고 다녔다. 그 코트에다 목도리를 한번만 감아 앞뒤로 늘어뜨리면 어찌나 어른이 된 느낌이던지. 아마 국민학교 졸업식날도 그 코트를 입었을 거다.

거의 대학 다닐때까지 사촌언니 옷을 계속 물려받아 입기는 했지만, 중간에는 언니가 너무 몸이 비대해지는 바람에 그게 불가능한 시기가 있었다. 그 무렵 내가 물려받기를 노렸던 옷은 넷째 고모와 막내고모 옷이었다. 두분 고모는 또 제일 '부자'인 셋째고모에게서 가끔씩 옷을 물려받았는데, 그런 옷들이 내 눈엔 또 어찌나 멋져보이던지. 6학년쯤 되어보이는 어린시절 사진을 보면 어깨부분이 너무 넓어 어른 옷이 분명한 빨간색 페이즐리 무늬 공단 재킷을 소매만 잘라 좋다고 입고 웃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하기야, 9살 차이나는 막내고모는 계속 내 우상이었으니까. 고모가 좀 작아졌다며 프린트 티셔츠라도 한장 주면 기분이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았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언제부턴가 정민이는 나와 체격이 비슷해지자 자꾸 내 옷을 노렸다. 핑계는 있었다. 계획없이 우리집에 놀러왔다가 자고가게 될 때 입을 옷이 없다는 것. 그럴 때면 녀석은 편한 티셔츠는 관두고 과거의 나처럼 꼭 어른스러운 옷을 직접 골라 입고갔다. 티셔츠 원단으로 만들어졌으나 실은 정장용인 셔츠 같은 것. 고모 옷이 자기한테 맞는다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고모가 입기엔 '너무 귀엽다'면서 후드티도 뺏어가고, 어떤 옷은 그냥 빌려가는 거라더니 돌려주지 않았다. -_-;

그러던 것이 올봄을 기점으로 중단되었다. 이미 키는 나보다 커진게 작년 초였으나 워낙 조카가 가늘가늘해서 체격은 얼추 비슷하더니 올해들어 쑥쑥 크고나선 어깨도 나보다 한뼘은 넓어진 것 같고 팔도 엄청 길어졌다. 녀석의 최대관심사가 다이어트가 될 만큼 살도 붙었음은 당연하다. 이젠 웬만해선 내 옷을 빼앗아입을 수 없게 된 것! 며칠 전엔 조카가 자기 옷장을 열어보라니 이제 자기한테 작아져 입을 수 없는 옷들을 넘기겠다고 했다. 고모한텐 맞나 그거랑 그 하얀 거 입어봐, 고모. ㅠ.ㅠ

결국 나는 정민이가 나한테서 빼앗아 가거나 무단으로 빌려갔던 옷들과 함께 작아진 조카의 옷을 한 무더기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카들이 쑥쑥 크는 바람에 옷뿐만 아니라 운동화랑 인라인 스케이트 같은 거 물려입고 신는다는 친구들 이야기를 가끔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겪고 보니 기분이 아주 묘하다. 내가 자기 옷 입고 있는 거 보면 녀석은 또 얼마나 잘난 척을 해댈까나.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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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파는 마트

투덜일기 2011. 10. 24. 05:08

찾아보니 벌써 7년전이다. 부산으로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KTX타고 셋이 내려가면 울산에 사는 한 사람이 역으로 마중을 나오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 회사를 마친 직딩 둘을 서울역에서 만나 설레는 마음으로 부산으로 떠났고, 9시쯤 반가운 상봉 후 곧장 숙소를 잡아놓은 해운대로 향했다.

시간이 넉넉했던 울산 친구는 일찌감치 부산에 도착해 우리가 2박3일간 먹고 지낼 먹거리 장만까지 미리 다 해둔 터였다. 해운대 횟집에서 거나하게 배를 채우고 숙소엘 가보니, 화장실 세면대에 분홍색 장미 한 다발이 비스듬히 물에 잠겨 있었다. 광안대교가 바라다보이는 밤풍경에 이미 신이 나 있던 나는 너무 좋아서 꺅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울산 친구는 낑낑대고 혼자 미리 장을 보며 마트에서 파는 장미다발을 충동적으로 샀다고 했다. 마트에서 꽃을 판다고? 환영의 의미로 장미를 마련해둔 친구의 센스도 만점이었지만, 꽃파는 마트에 대해선 금시초문이었던 나는 부산 마트가 서울보다 좋다고 술김에 막 감탄했다. 그랬더니만 친구가 울산 마트에서도 꽃 판다고 했던 것도 같고...

암튼 그날 우리는 다시 본 술상 한 가운데 장미를 꽂아놓고 기분을 냈고, 다음날부턴 우리가 마신 빈 맥주병에 장미를 꽂아 창가에 놓아두었다. 이렇게...

떠나오는 날, 비가  많이 내렸는데, 아깝지만 저렇게 꽂아두고 방을 나서며 빗방울 맺힌 유리창과 맥주병에 꽂힌 장미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도 마트에서 장볼 때 기회 되면 꽃도 같이 사야지 마음 먹은 게 이때였을까나...

작업실 있던 시절엔 코앞에 이마트가 있어 자주 갔었지만 매장 규모가 서울에서 제일 크다는(확실한지 모르겠다) 그곳에서도 생화는 잘 팔지 않았다. 꽃이 핀 화분(주로 양란이나 포인세티아 정도)과 알록달록 조화 파는 건 많이 봤어도, 한다발씩 묶어놓은 꽃을 파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도 최근 이마트는 조카들 장난감과 레고를 사러 가는 일이 없으면 아예 가질 않는다. 대형마트는 너무 정신없고 피곤하고 무엇보다 이상하게 숨이 가쁘다. 특히 멀미나게 지하6, 7층까지 뺑글뺑글 내려가 주차를 시켜놓고 나면 벌써부터 호흡곤란을 느끼는 듯.

그래서 내가 주로 다니는 마트는 동네 근처에서 주차가 그나마 편한 곳이다. 대형 유통업체의 프랜차이즈기는 하지만 매장이 단층이고 멀미나게 넓지도 않아 빠르게는 30분, 길어야 1시간내에 후다닥 장을 보기에 딱이다. 그러니 당연히 생화까지 갖춰놓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재래시장 쪽으로 가보면 화원이 하나 있기는 해도 소박한 다발꽃을 파는 것 같지는 않다. 동네 꽃집도 다 문을 닫는 바람에, 내가 가끔 전철역 근처 좌판에서 꽃을 만나면 반색하고 사는 이유도 다 워낙 꽃보기가 드물기 때문이다.

헌데 요번에 노상 다니는 굿모닝마트(혹시나 담당자가 검색하고 들어와 보고 또 꽃화분 기획하길 바라는 흑심에 밝혔다;; ㅋㅋ)엘 갔더니 입구에 꼬맹이 소국 화분이 좌르륵 놓여 있었다. '국내산 1990원'이라고 찍힌 가격표까지 붙어있는 걸 보니 어찌나 기쁘던지 쇼핑카트에 제일 먼저 소국을 두 개 실었다. 나중에 안고가기 번거롭겠지만 어떠랴. 우리동네 마트에서도 꽃을 팔다니. 아니, 마트에서 가을을 파는 것도 같았다. 1990원짜리 가을. ^^

절화는 생명줄을 똑똑 끊어 파는 거라는 말을 들어놔서, 일주일이나 열흘 쯤 눈요기 삼자고 사긴 사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찔린다. 뭐 그렇다고 살아 있는 꽃화분을 사서 결국 말리거나 썩혀 죽이는 것도 별로 나은 짓은 아니겠으나, 꽃화분을 사는 건 절화 다발을 사는 것보다는 좀 덜 찔리는 행동 같다. 분홍과 노랑, 두 종류를 품에 안고 돌아와 엄마한테 자랑하니, 엄마 역시 어느쪽을 고를까 잠시 고민하다 (처음엔 분홍을 선택하셨다) 꽃이 많은 노랑을 곁에 놓고 보겠다 하셨다.  


재주없이 따로 찍은 사진을 편집하렸더니 영 시원찮다.

꽃파는 마트로서의 위상을 계속 유지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동네 마트에서 꽃을 사왔더니 고릿적 여행추억까지 떠올라 두루두루 기뻤다는 얘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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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댓글

투덜일기 2011. 10. 21. 01:41

예전에도 이상한 아랍어 댓글이 달린 적이 있었지만
요즘 방명록에 대체 영문을 알 수 없는 딴죽을 영어로 자꾸 거는 사람이 없나
몇년전 포스팅에 뜬금없이  뭔소린지 알 수 없는 댓글이 달리지를 않나
검색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간이란 건 알지만
외국에서 번역기를 돌렸음이 분명한 이상한 댓글을 보며
기분이 찜찜하다.
 
영어환자 플러그인으로 어느정도 걸러지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건 티스토리에서 뭔가 대책을 세워줘야 하는 거 아닌가?
쳇...

대체 아래와 같은 묘한 댓글은 어떤 경로로 찾아와 나를 괴롭히는 걸까?? +_+
일일이 지우는 것밖엔 방법이 없나?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ㅋㅋ
  • Favicon of http://tinyurl.com/mp9g2v lawyer marketing 2011/10/17 2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당신이 내 즐겨찾기로 추가 알고 싶었어요. 저도 다른 블로그 주제를 봤어 그리고 당신이 좋은 아이디어가있어 생각합니다. 그것이 계속!

  • makeityourring diamond engagement rings 2011/10/19 2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 이 문서는 매우 좋은, 그리고 전 당신의 기사 독서 공공 가치 생각합니다. 제가 블로그에 더 도움이 답변 게시물을보고 싶은데요.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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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결혼식

    투덜일기 2011. 10. 14. 23:47

    지난주 다녀온 친구 결혼식 때문에 뭔가 끄적이고 싶긴 한데 스스로도 뭔가 입장정리랄까 생각이 마무리되질 않아 갈팡질팡했다. 오늘은 신부가 보낸 의례적인 답례 문자도 받았으면서 뭐가 이리도 불만인가. 그 이유가 정확하게 뭔지, 어쩌면 알것 같은데 편협한 자신에게 실망스러워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여기다 일러바치다 보면 결론이 나지 않을까.

    흥미진진한 쇼 이벤트를 보러가는 양 즐겁게 시작했던 결혼식 참석의 뒷맛이 씁쓸한 사유로 추정되는 몇 가지.
    1. 데미 무어처럼 심히 어린 남편감을 짠~하고 선보일 것이라 늘 기대했던 친구의 배우자가 오십대 중반의 법조인이다.
    2. 친구가 내게 "미안하다. 시집 나 먼저 간다!"라고 말했다. (-_-; 뭐가 미안한데?)
    3. 가을밤 낭만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야외 결혼식장의 둥근 테이블엔 뜻밖의 팻말이 많았으나 정작 '신부 친구'가 앉을 자리는 표시되지 않아 우릴 방황하게 만들었다.

    근래 참석한 식장중 단연 아름다웠다


    4. 신부 친구로서 축사를 한 두 사람이 다 외국인이었다. (추워죽겠는데 영어 축사를 어찌나 길게 하던지!)
    5. 신랑 친구로서 축사를 한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특정 정당의 정치인이었다.
    6. 주례가 없는 대신 두명이나 나선 사회자 소개부터 시작하여, 결혼식 내내 '모대학 법대'라는 말을 최소 30번쯤 들었다.
    7. 축가로는 신랑이 직접 My way를 열창했다.
    8. 이 친구의 결혼으로 인하여 마치 금지된 봉인이 풀리기라도 한 듯, 최근 10년간은 감히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던 결혼독촉(너도 늦지 않았어! 넌 언제 할래? 등등)을 지인들이 내게 서슴없이들 해댔다. 푸하하하. .ㅜ.,ㅡ
    9. 아무리 봐도 내가 심히 소인배다.

    역시 써내려가며 결론이 났다. 답은 9번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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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인데도 택배가 없던 시절엔 어떻게 살았었는지 모르겠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좀체 나가고 싶지 않은 게르음뱅이로 살다가 그런 나날이 보름이상 이어지면 또 압력솥 꼭지를 틀어 증기를 배출하듯 콧바람을 쐬어 팽팽해진 무료함을 달래주어야 할 것 같은 삶의 연속인데, 그렇게 간만의 외출을 하더라도 쇼핑은 온전한 출타목적에서 제외된다. 지나는 길에 눈에 띈 물건을 얼른 사는 건 또 몰라도 말이다.

    얼마전 홍대 와우북페스티벌에 가서 책을 고르며 사람에 치이기도 했지만 돌아와서 죽도록 피곤했던 이유는 눈요기로만 하는 것이든 실제 물건을 사는 것이든 하도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져 이제는 직접 발품 팔아 하는 쇼핑이 드물어졌기 때문인 듯하다. 뭐니뭐니해도 옷과 신발은 직접 가서 걸쳐보고 사야한다고 아직도 믿지만, '무료반품' 혜택까지 있는 경우엔 겁없이 덜컥덜컥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워낙에도 뭔가를 지를때 한참 고민하는 성격이라 신중히 머리를 하도 굴리다보니 실패율은 그리 높지 않다. 최근 몇해동안을 따져봐도 반품한 횟수는 두어번 정도?

    아무튼 이달 들어 거의 하루가 멀다하고 택배가 왔다. 주변에 부는 운동화 열풍에 따라 검색하다 엉뚱하게 고른 밤색 옥스포드화, 옷을 사줄 땐 함께 가서 고르기로 한 원칙을 깨고, 반품할 각오를 하고 산 엄마 옷(다행히 마담사이즈라 익숙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브랜드라 성공했다), 두피관리에 좋다는 샴푸(벌써 두번째 구매), 검정콩 미숫가루(역시나 두번째 구매), 늘 쓰는 수분크림과 핸드크림, 장난감과 문방구(요맘때 정기세일을 하는 텐바이텐에서 또 사줘야 제맛이지), TV볼 때 쓸 목베개, 커피원두, 책, 내가 주문한 건 아니지만 외삼촌이 보내신 고구마까지. 어떤 날은 택배가 두 건이나 오는 날도 있었는데, 골목에 지나가는 차만 봐도 미친듯이 짖어대는 아래층 똥개 때문에 택배 오는 것도 나름 스트레스다. 놈이 좀 요란하게 짖어대야지!

    다른 데서 쇼핑했는데 택배회사가 같아 이틀 내리 같은 분께 택배상자를 받게 되면 슬며시 민망하다. 이 사람은 뭘 이렇게 연일 사들이나 짜증낼 것 같아서(우리집 골목이 협소하여 운전에 미숙하거나 너무 큰 택배 트럭은 골목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와 배달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랫집들의 경우를 보아도 며칠에 한번은 택배가 오는 것으로 보아 (똥개가 워낙 크게 짖어대는 데다가 택배 아저씨들이 계단 아래부터 받는 이의 이름을 크게 외치므로 내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ㅋㅋ) 홈쇼핑에 탐닉하는 것 나뿐이 아닌 모양이다. 온라인 쇼핑 없을 땐 다들 어떻게 살았대그래!

    오늘 도착한 플레이모빌(이건 세일도 안하는데 조카한테 상으로 하나 사주기로 한 김에 내것까지 또 구매)을 조립해 선반에 올려놓고, 종류별로 골라 산 '우표' 스티커를 문방구 상자에 넣어두며(거의 쓰지도 않고 보기만 할 거면서!) 어찌나 뿌듯한지 웃음이 실실 났다. 앞으로 누가 물으면 인터넷 쇼핑과 택배상자 받기가 취미라고 할까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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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짓

    투덜일기 2011. 10. 10. 03:36

    준백수처럼 종일 집에서 빈둥대거나 복닥거리는 날이 이어지다 보면 요일감각, 날짜감각이 사라진다. 그래서 굳이 날짜며 요일을 따지지 않고 넘어가는 날도 많지만 주말과 월요일은 그래도 비교적 확실히 안다고 자부했다가 어제 아주 바보짓을 했다.

    새벽에 인터넷을 실행시키며 분명 한글날 기념임이 분명한, 구글의 한글 로고를 보았으면서도 이상하게 난 어제가 10일, 월요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주말까지는 꼭 보내달라고 부탁받은 꼭지원고를 마무리하느라 (주말까지 해달라는 말을 나는 월요일 출근 전까지 보내달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아침까지 눈에 불을 켜고 일을 마쳐 메일로 쏘아주고는 드디어 노곤한 몸을 눕혔다. 

    훤히 밝은 날과 소음(아래층 개자식!) 때문에 여러번 뒤척거리다 겨우 잠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퍼뜩 눈을 떠보니 이미 오후였다. 원래 월요일은 조카네 가야하는 날이다. 부리나케 점심을 먹은 뒤 씻고 나서 커피는 조카네 가서 마셔야겠다고 마음 먹으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내가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자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오늘이 월요일이었느냐고, 일요일인 줄 알았다고 의아해했다. 요일 감각 없는 건 모녀가 똑같은지라 그러려니 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 골목을 후진으로 거의 다  빠져나갔을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 전용으로 정해놓은 벨소리. 아 또 뭔가 싶어 이맛살을 찌푸리며 받아보니, 오늘은 월요일이 아니라 일요일, 9일이라는 엄마의 전언. 못믿겠으면 휴대폰 날짜를 확인해보라신다. +_+ 확인해볼 것도 없이 민망해 하며 냉큼 그대로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오래 전 어느 휴일에 자다말고 깜짝 놀라 회사에 지각한 줄 착각해 헐레벌떡 씻고 나서다 부모님께 깨우침을 받았을 땐 늦잠 못잔 게 억울해서 그렇지 온전히 하루를 공으로 벌은 것처럼 기뻤던 것 같은데, 어젠 남은 하루가 길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젠 휴일도 고스란히 일의 영역이 되고만 삶 때문인지 그저 우스꽝스러운 바보짓인 것만 같아 얼굴이 뜨거웠다. 그나마 엄마가 말려줬기에망정이지 조카네 집까지 가서야 알았더라면 얼마나 더 황당하고 멍청이 취급을 받았을까. ㅋ 어쨌거나 나의 착각으로 일요일 아침에 보낸 메일을 보며 담당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모르겠다. 평소처럼, 요번에도 늦어서 미안하다고 서두를 달았는데 이상하다는 낌새를 알아차리려나 어쩌려나. 으으. 창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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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갈게

    투덜일기 2011. 10. 4. 21:07

    어제 다니러온 큰동생네가 밤늦게 돌아갈 때의 일이다. 늘 하던대로, 동생은 계단을 내려가며 위쪽 현관에 서 있는 울 엄마에게 또 한번 인사를 했다. 엄마, 갈게.

    그랬더니 아홉살 지환이가 대뜸 호통을 쳤다. 아빠는 내가 나중에 커서 인사할 때 '아빠, 갈게!'라고 하면 좋겠어? 급 당황해 말문이 막힌 동생을 본 내가 킥킥 웃으며 거들었다. 그럼, 그럼! 엄마, 안녕히 계세요, 이렇게 인사해야지. 그치?

    ㅋㅋㅋ 사십줄에 들어선지 오래인데도 부모님께 존댓말이 서툰 건 나도 마찬가지다. <엄마, 진지 잡수세요>라는 말을 연습하고 자주 써먹겠노라고 언젠가 포스팅을 하기도 했지만 그야 결심이 그렇다는 것이고 현실에선 "엄마!"라고 부르면 끝인 경우가 잦다. 기껏 높여봐야, "엄마 저녁 드셔". (오늘 저녁에도 이렇게 말한 듯;;)

    밖에 나가선 그래도 제법 예의바른 언어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집안에서 나의 형제들이 부모님 존대를 엄중히 실행하지 못한 이유는 아무래도 부모님 두분이 서로 반말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겨우 한살 차이인데다가, 학년상으로는 같은 동네 친구로 연애를 시작해 8년만에 결혼했으니 두분이 평생 반말을 쓰고 산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고해서 부모님이 서로를 함부로 대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냥 워낙 막역하고 정이 깊은 부부사이라고 느꼈을 뿐이다. 가족인 경우 반말이 곧 상스럽고 예의 없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냥 친근함의 차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나는 심지어 친할머니께도 오래도록 반말을 했었다. 할아버지랑 외할머니한테는 당연히 존댓말을 쓰면서도 친할머니한테는 존댓말을 쓰는 게 오히려 어색했다. 가끔 할머니께 반말하다 할아버지한테 걸리면 꾸지람을 듣기도 했지만 제버릇 남주나... (그렇다고 밖에 나가 낯선 어르신에게 함부로 반말짓거리 해대는 사람들은 싫다. 그건 몰예의, 몰상식한 거고!)

    밖에서 보면 버르장머리없는 집안 내력이라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는데, 중학생이 된 정민이도 제 할머니한테 아주 편히 반말을 한다. 할머니가 용돈을 주면 옆에서 고맙습니다, 라고 하라고 잔소리를 해대는 바람에 들릴락말락 '고맙습니다'라고 따라하는 적이 간혹 있지만 노상 반말 쓰다 갑자기 존댓말이 나올리 없지 않은가? 옆에서 제 엄마가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라 종용해도, 고집스런 정민이의 대답은 '잘 쓸게, 할머니'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외출할 때 나 역시 지금도 '엄마, 갔다올게'라고 하는 판국에 감히 누굴 탓하랴.

    반면에 사내 조카녀석들은 존댓말을 꽤나 유연하고 자연스레 쓰고 있는 듯하다. 만만한 고모한테는 당연히 반말을 써도 할머니한테는 차마 못그러겠다는 듯이. 그게 대단히 기특하고 장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말의 길이만큼 할머니와의 사이도 약간은 멀어진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예절바른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면서도, 나는 더 자글자글 늙은 후에도 녀석들에게 '고모, 안녕히 계세요'보다는 '고모, 갈게!' 또는 '고모, 안녕~!"이라는 인사를 듣고 싶다. 내가 좀 이상한 건가? ㅎ 나도 자타공인 할머니 나이가 되면 마음이 달라지려나?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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