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소탕작전

투덜일기 2011. 7. 15. 03:16

하도 오래 된 집인 데다 주변에 나무와 풀이 많아서 온갖 곤충(사마귀, 노린재, 호랑나비 따위 뿐만 아니라 온갖 해충 포함;;)들과 자주 맞닥뜨리기는 하지만 바퀴벌레와 개미는 없다는 것이 나의 자랑이었는데 그 자랑이 무색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주 엄마네 부엌에 개미가 출현 한 거다! 안경을 끼기는 했으나 작은 물체는 돋보기가 필요한 엄마는 '새까맣고 엄청 빠르고 아주 작은 벌레'가 토스터기 주변에 나타나 그걸 잡느라 땀을 한 바가지는 흘렸다고 말했다. 몇 마리 못잡고 다 도망가버렸다나. 엄마는 그 뒤로 검은 점만 봐도, 하나못해 후추가루 한 알갱이만 봐도 다 움직이는 것 같은 노이로제에 시달렸다. 혹 바퀴벌레 새끼가 나타났나 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진상파악을 해보니, 다행히도 개미였다. (개미가 바퀴벌레보다는 깨끗할 거라는 근거 없는 나의 믿음은 과연 옳을까?) 어쨌거나 아주 작은 불개미는 아니고 길이가 한 3mm쯤 되는 개미 녀석들이 최초 출현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가 서너시간 쯤 뒤 이번엔 싱크대에서 헤매고 있었다. 정말 어찌나 몸놀림이 빠른지 몇마리 잡기도 전에 달아났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 놈들인가 추적해보니 뒷베란다로 올라온 모양이었다.

나는 곧장 개미박멸을 위한 '검색'에 돌입했다. 사용후기에 '노벨평화상'이라도 주고 싶다는 말까지 올라와 있는 과립형 '잠자*'와 '개미박*' 제품이 괜찮은 듯했다. 얼른 약국에 가서 두 종류 개미약을 사와 개미 출몰 지역에 붙여놓았다. 원래 개미는 자꾸 죽이면 일개미 개체수가 줄어드는 걸 염려한 여왕개미가 더 많은 개미알을 낳기 때문에 함부로 죽이면 안된단다. 먹이인 척 유인해 과립형 약을 가져가 서로 나눠먹게 하면 여왕개미까지 모두 박멸할 수 있다고 설명서에 써 있었다. 최초 개미가 발견된 식탁 주변과 싱크대 주변, 뒷베란다 문 근처 다섯군데에 개미약을 붙여놓고 다음날 확인했더니, 문에 붙여놓은 약만 몽땅 사라져 빈통이었다! 다른 약은 거의 그대로인데! 해서 같은 자리에 새 약을 더 붙여놓고 계속 개미가 출몰하는지 지켜보았는데 우왕~ 정말 이틀만에 개미가 완전히 사라졌다! (하기야 나타난 것도 순식간에 갑자기 나타났으니 걔네들이 운 나쁘게 길을 잃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먹을 것도 없는 데서 우왕좌왕 방황하는 것 같긴 했음)

안심하고 있으려는 찰나, 아 글쎄 그제는 내 방에서 엄마가 또 개미 한 마리를 발견하곤 말했다. 엄마가 진짜 노이로제에 걸렸나보다. 자꾸 까만 점들이 움직이네.... 하지만 그건 엄마의 착각이 아니라 새로운 종의 개미였다! 다른 집이라서 개미 종류도 다른지 엄마네 집 개미의 절반도 안되는 크기였다. ㅠ.ㅠ 이미 퇴치 경험이 있어서 크게 당황하진 않았지만 하필 개미가 나타나는 곳이 내방 문틈이라 앞으로 잠은 다 잤구나 싶기도 하고, 개미 사라질 때까지 컴퓨터방에서 잘까 고민을 했다. 어쨌거나 또 다시 개미약을 문앞에 붙여놓고 주의 깊게 관찰을 했더니 이놈들은 워낙 몸집이 작아서 그런지 비실비실 움직임도 느리고 벽을 기어오르다간 이내 미끄러져버렸다. 그러니 미끄러운 플라스틱 통안으로 기어오르는 건 언감생심 불가능한 일인 듯했다. 결국 약통 입구를 놈들이 들어가기 좋게 낮추고 각도를 문턱과 똑같이 만들어준 다음 불까지 끄고 지켜보자(불이 환하면 점으로 착각하게 만들려는지 놈들이 안움직이더라!) 드디어 놈들이 한마리씩 약통으로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다음날 투명한 개미 약통을 살피니 조금 과립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애매했다. 여전히 개미는 문턱 아래로 한 마리 기어다니고... 이 종의 개미에겐 약이 효과가 없는 것인가 두려워했던 것도 잠시, 만 하루가 지나자 결국 이번 개미도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캬... 신기하다고 할밖에!

생각해보니 난데없이 개미들이 종별로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 건 폭우 때문인 것 같다. 원래도 우리 마당엔 온갖 크기의 개미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앵두도 딱 한번 따고 안따먹어 죄다 바닥에 뒹굴었으니 폭우 내리기 전까지는 아마 먹이도 충분했을 거다. 게다가 벚나무인 줄 알았던 옆집 나무 세 그루 중 하나는 살구나무여서 열매가 꽤 많이 열렸기에 익으면 따먹으려고 별렸더니 나보다 먼저 새들이 죄다 파먹어 그 잔해까지 우리 마당으로 떨어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하도 비가 많이 오니 땅속 개미굴은 다 물바다가 됐을 테고 먹이는 빗물에 쓸려 다 사라지고.. 그러다보니 먹이를 찾아 떠난 일개미 원정대가 벽틈을 타고 이층까지 올라온 게 아니었을지. 그런데 사악한 인간은 약을 쳐서 또 씨를 말려버리려 들었고...

뉴스를 보니 폭우 때문에 전국에 피해가 말이 아니다. 곧 제철이라 오매불망 맛볼 날을 기다렸던 달콤한 복숭아는 출하를 며칠 앞두고 다 썩어버렸대고 물에 잠긴 게 아니라 아예 진흙에 덮여버린 논도 부지기수란다. 가뜩이나 살인적인 물가인데 만만했던 채소값도 하늘까지 치솟을 예정이래고... 이재민들이 또 수백명이라는데 이 마당에 개미타령 하고 있으려니 문득 부끄럽다.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 얘기였나. 암튼 아무리 장마라지만 이제 비 좀 그만 내려서 비 피해도 더는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얘기로 급마무리.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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