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3.05.25 급식 15
  2. 2013.05.22 흰머리 미스터리 15
  3. 2013.05.03 씨앗 심기 2
  4. 2013.05.02 서양수수꽃다리 4
  5. 2013.04.16 집앞에 꽃잔치 8
  6. 2013.04.09 진달래 10
  7. 2013.04.07 April come she will 12
  8. 2013.03.27 불충분한 느낌 10
  9. 2013.03.19 흉터 7
  10. 2013.03.15 목구멍이 포도청 6

급식

투덜일기 2013. 5. 25. 12:47

나는 급식과 대체로 친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어려선 당연히 도시락 세대였고, 그 이후엔 선택의 여지가 조금은 있다 하나 단체급식과 다를 바 없는 저렴한 학생식당의 '스텐' 식판과 푸슬푸슬 찐밥과 배식대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싫어서 가능하면 교문 밖 분식집에서 차라리 라면을 먹었다. 그도 아니면 하숙하는 친구의 월식 식권을 축내거나...  배식구 근처에서 풍기는 그 혐오스러운 냄새를 누군가 '잔반' 냄새라고 가르쳐주었다. 어쩔 수 없이 쌓인 음식물쓰레기의 냄새. 저렴한 밥을 먹는 대가로 반드시 본인이 큼지막한 그릇에 쓸어모아 두어야 하는 오물그릇. 방금 맛나게 먹은 음식들이라 해도 한데 뒤섞여 국물과 함께 처참하게 모여 있으면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그 자태. 배식구와 퇴식구가 아무리 멀어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그 잔반의 냄새가 나는 정말이지 토나오게 싫었다.

 

급식에 대한 인식이 완전 바닥인 나와 달리, 유치원이며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어김없이 급식에 익숙해져야 하는 요즘 아이들은 또 생각이 다르겠지 싶으면서도 여전히 염려스럽다. 누군가는 엄마들이 도시락 싸기에서 해방된 게 여성참정권만큼이나 중대한 일이라고 하고, 웬만한 학교는 부실한 엄마표 집밥보다 급식이 훨씬 더 알차다는 말도 들었지만, 아직까지도 급식 담당 외식업체와 교장의 담합이나 유통기한 지난 식재료를 공급하다 걸린 사건이 종종 있는 마당에, 애들 급식이 정말로 영양과 맛 면에서 합격점인지 어쩐지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나도 최근 다시 3500원짜리 구내식당 밥을 2주에 한번 먹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나마 식판은 아니고 큼지막한 스텐 대접을 주로 쟁반도 없이 덜렁 국그릇과 함께 들고가 먹지만 단체급식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구나 느낀다. 잔반통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운동 중이라고 사방에 적어놓은 덕분인지 퇴식구 앞에 놓여있는 잔반통은 흔히 식당에서 뼈통으로 쓰는 작은 스텐그릇이고, 주로 국국물만 버려지는 것 같다.(아마도 자주 비우겠지;;) 언젠가 심히 배가 고팠던 내가 밥을 좀 많이 퍼서 덮밥 양념을 달라고 내밀었더니, 아주머니가 밥 많아서 남기겠다고 덜고 오라고 했다. 민망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내가 봐도 많았다. 그대로 시도했다면 꾸역꾸역 다 먹었을지 남겼을지 그건 모를 일이지만;;) 얼른 전기밥통에 다시 덜어냈다. 자기가 푸는 음식 양도 잘 조절을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퍼준 급식밥을 말없이 다 먹어치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뜬금없이 급식과 잔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건 막내조카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조카가 급식 때문에 고전중이라고 들은 탓이다. 원래 좀 편식이 심하고 양도 적어 염려를 했지만, 유치원에선 그래도 잘 먹는 편이라 적응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근데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훈육방식은 유치원 선생님과는 당연히 다르고, 오십대 베테랑 선생님들이 주로 맡는 1학년 급식은 종종 '억지로 참고 빨리 먹기' 훈련인 것 같다.

 

집에선 밥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으라고 가르치는데 아 왜!? 거기다 '국물' 문제가 또 큰 걸림돌이란다. 우리집은 특히 가계 모두 고혈압 인자가 있어서 간을 최대한 싱겁게 하는 편임에도 '국물은 다 먹지말고 남겨!'가 식탁의 모토다. 수년간 잔소리를 해댄 끝에 왕비마마는 요새 아예 국과 찌개를 젓가락으로 드실 때도 많다. 실버아카데미에서도 매번 강조한단다. 한식의 국물만 안 먹어도 나트륨 섭취량을 대거 줄일 수 있다고. 작은올케는 국을 아예 안 끓여먹을 때가 많단다. 국이 꼭 있어야 밥먹는 식구들이 아니니 상관없다.

 

헌데 조카의 담임선생님은 국을 국물까지 다, 남김없이 먹어야하는 걸 급식교육의 모토로 삼으신 분인가보다. 먹기 싫으니까 아이들이 국은 조금만 달라고 해도, 그걸 또 용납 안하신단다. 모든 반찬을 적당량 다 남기지 말고 먹어야한다고. 아 대체 왜!?!? -_-;; '밥먹기 속도와 국'에 대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틈 사이에서 된통 고생하는 건 물론 조카녀석이다. 먹기는 싫은데 버리진 못하게 하고... 그러다 보니 맨날 밥을 늦게 먹어서 선생님한테 미운털 박히고 혼나고... 심지어 얼마전엔 점심시간 끝나도록 식판을 못 비운 우리 조카에게 국 다 먹을 때까지는 어림도 없다며 홀로 책상에 식판을 두고 5교시를 지내게 했단다. 다른 애들 다 책 펴놓고 공부하는데 혼자 냄새나는 식판 앞에놓고 앉아있으면서 여덟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일부 학교에선 환경과 아이들 편식 고치기의 일환으로 반마다 나오는 급식 잔반의 양으로 담임 선생님들 인사고과 점수를 매기는 데도 있다고 들었다. (아 정말 학교가 미쳤다;)  인사고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잔반이 제일 많이 남은 반 선생님은 교장한테 잔소리를 듣기도 하고...  암튼 급식 때문에 아이의 수업권을 박탈했다는 얘기를 전화통화 하다가 전해들은 나는 대번에 "그 선생 미친 거 아냐?"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이들의 편식을 고쳐주려는 의도도 알겠고, 음식쓰레기를 줄여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방침도 알겠고, 1학년이니깐 더더욱 학교 규율에 적응시키려 더 엄하게 한다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밥 늦게 먹는다고 선생님이 아이를 미워(?)하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얘기들 들어보니 조카는 학교에서 담임선생님한테 한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달리기에서 무려 1학년 전체에서 1등을 했다는데, 그거야 담임의 판단력이 개입할 수 없는 분야라서 어쩔 수 없었을 거다. 그 외엔 밥 늦게 먹고 국물 안 먹고, 숫기 없어서 발표 잘 안하고, 수업중에 친구가 말시키면 대답해주다가 걸려서 수업시간 내내 팔 들고 벌 서고, 엄마가 치맛바람 일으키며 찾아다니지도 않는 조카녀석은 그냥 밉상으로 찍혔구나 싶다. 다른 건 몰라도 '그림' 하나는 미술학원에서도 유치원에서도 주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뜨르르 실력을 인정받았던 조카의 그림을 담임 선생님은 여태 단 한번도 칭찬해주지 않았다.

 

그림 잘 그렸다고 교실 뒤에 붙여놓고 상도 주었다는 아이들 작품을 가서 보고온 올케 역시 당연히 마음이 상했다.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제도권 교육에서 원하는 '얌전한' 그림이 따로 있다지만, 디테일한 스케치 묘사력과 색채감과 아이디어가 정말로 남다른(! 팔불출인 거 안다 ㅋㅋ) 그림을 몰라보다니 쳇. 아무리 전문가가 아니라도 미술시간에 과정을 둘러보면 누가누가 얼마나 열심히 그리는지 척 대번에 알지 않을까? 특히나 칭찬과 격려가 중요한 1학년 아이들에게는 아무리 편애의 마음이 들더라도 골고루 상을 나눠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그리다 만 거 같은 그림인데도 순전히 밥 빨리 먹고 담임 말에 고분고분한 아이들이 그렸다는 이유로 잘 그렸다고 상주고 교실에 붙여놓고 그럼 안되는 거 아니냐고!! 애들 그림이 죄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뭔가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야지!!

 

급식 문제로 여전히 선생님한테 만날 혼난다는 조카에게 얼마전엔 내가 못된 반항을 가르쳐보았다. <우리 할머니가 국 국물 먹으면 고혈압 걸린다고 먹지 말랬어요!>카드를 써보라고 한 거다. ^^;; 그럼 선생님도 좀 이해를 해주거나, 속으로 엇뜨거라 하거나 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숫기 없고 선생님한테 아직은 잘보이고 싶어하는 조카는 당연히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단다. 어휴...

 

내가 조카였다면 급식 때문에라도 매일매일 학교 가기가 싫을 것 같다. 점심시간만 되면 미리부터 먹기 싫은 국물 흡입할 생각에 체기가 돌지나 않을까. 조카는 원래 집에서 밥 먹을 때도 양이 작아서 몇 숟갈 먹고는 배부르다며 끝내는 아이다. 오죽하면 몸매가 자코메티의 조각 같을라고. 그렇게 먹고도 콩나물처럼 키는 쑥쑥 자라주니 고맙다. 하여간 학부모 면담때 급식 국물 갖고 애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선 강력하게 항의(?) 내지는 읍소라도 하겠다던 올케는 역시나 아이 맡긴 약자라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왔단다. 미운털 더 박히면 어떻게 해요... 라고. 아아악~~~! 묘안도 없으면서 암튼 요즘 급식만 생각하면 속이 상하다. 여덟살 아이는 계속되는 담임과의 대립을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까. 째뜬 보지도 못한 조카네 담임선생님을 엄청 미워하고 있다. 당신이 인정 안해도, 지우 실력은 어디 안간다규!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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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노인들은 대부분 머리를 새카맣게 염색해 10년쯤 젊어보이는 쪽을 택하는 게 대세지만, 왕비마마는 염색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이보다 더 늙게(!) 보는 경우가 많아 가끔 속상해하시면서도, 염색비 안들어 좋고 머릿결 좋아져서 좋단다. 정말로 몇달에 한번씩 미용실에서 염색했을 땐, 가느다란 머리칼이 파시시 까슬까슬 비비면 금세라도 다 바스라질 것처럼 윤기가 없더니, 염색 안한 이후엔 머리칼도 굵어지고 윤기도 생겨났다. 완벽한 백발이 아니라서 어떻게 보면 좀 지저분해 보이는 은발이지만, 다른 할머니들의 까슬까슬 파시시한 인공적인 검은 머리보다는 훨씬 더 자연스럽고 내가 보기에도 마음에 든다.

 

나 역시 염색을 안한지 10년쯤 된 것 같다. 예전엔 나도 검정머리는 고집스럽고 촌스러워 보인다는 미용사의 권유에 따라 지조 없이 밝은 갈색, 붉은 갈색, 자연 갈색 돌아가며 머리칼을 염색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다 귀찮아졌다. 염색을 많이 하면 모발의 유전자가 변형된다느니 어쩌니 하는 말도 신경이 안 쓰인건 아니지만 (그건 파마도 마찬가지라던데 뭐;;), 보통 6개월씩 미용실을 안가고 앞머리만 집에서 대강 자르곤 하는 나에게 두세달 만에 다시 모근을 물들여줘야 하는 염색은 너무 귀찮은 일. 비용도 아깝고 시간도 아깝고, 왕비마마처럼 자연스러운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도 굳어졌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물론 남들에 비해 좀 늦게 세기 시작한 머리털 덕분이었다. 주변을 보면 삼삽대에 이미 수많은 새치가 나기 시작해 어쩔 수 없이 염색을 한다는 이도 있고, 염색을 안하면 스컹크 수준이라 주변에서(특히 배우자와 아이들이) 더 질색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사십대 들어서 한두 개씩 새치가 나는 정도여서, 비록 머리숱이 지극히 적음에도 새치가 보이면 뽑아버리는 쪽이었다. 그런 내게 친구들은 머리칼 한올이 소중한데 그걸 왜 뽑느냐고! 호통을 쳤다. -_-; 더욱이 나는 이십대부터 정수리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속알머리 없는 사람이었거늘.

 

허나 오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는 법. 작년부터는 나에게도 흰머리가 '다량으로' 출몰하기 시작했다. 끝은 검은데 중간부터 흰머리인 것도 보이고(모근이 드디어 늙은 거다 ㅠ.ㅠ) 아예 흰머리로 나는 것들도 양쪽 옆통수에 각각 열개씩 출현! 얼마 전엔 정수리에 바짝 서서 난 흰머리를 왕비마마가 뽑아주셨다. 옆으로 누워있으면 그냥 놔두겠는데 튀어나와서 보기 싫다고...

 

우리는 원래도 잡곡밥을 먹어왔지만, 오래전부터 아버지가 염색약 알레르기 때문에 염색을 포기한 이후로는 서리태와 흑미를 꼭 밥에 넣어 먹어왔고, 서리태 콩자반도 밑반찬으로 자주 등장한다. 검은콩, 흑미, 오징어 먹물 따위의 블랙푸드를 먹으면 좋다니까 먹긴 하면서도 정말로 검은머리가 나는데 도움이 되는지 어쩐지는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놀랍게도 왕비마마는 작년부터 머리칼이 다시 검어지기 시작했다. 이마 위쪽 머리는 거의 다 새하얬었는데 거기서부터 검은머리칼이 사이사이 나왔고, 귀밑머리 부분도 다시 검게 변하는 중. 왕비마마는 내가 먹거리를 잘해먹여서 회춘하는가보다고 (원래 노인들의 흰머리가 다시 검어지고 피부도 젊어지는 회춘은 90살 넘어야 하는 거라고 들었다;;) 좋아하신다. 검게 변해가고 있는 왕비마마의 은발은 동네 미용사 아줌마도 인정하는 사실.

 

그런데 똑같이 서리태, 흑미 넣은 잡곡밥 먹고 콩자반은 엄마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데(콩을 잘먹어 '콩순이'란 별명도 있었던 나는 어린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콩자반을 노상 싸줘도 좋아했었다) 왜 나는 흰머리가 점점 많아지고 왕비마마는 검은머리가 새로이 나는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이듦을 받아들이겠다며, 앞으로 흰머리가 많이 나도 염색은 안하고 버티겠다면서 흰머리가 보이는 족족 뽑아버리고 싶은 나의 이 심보는 또 뭔가? ㅠ.ㅠ

 

머리칼 한올한올이 소중한 나이란 건 나도 알지만, 자꾸 뽑아버리면 모근이 스무번쯤 머리칼을 내놓다가 결국 말라죽고 만다는 무서운 이야기도 들었지만, 당분간은 흰머리가 보이는대로 족족 소탕하고 말 기세다. 흰머리 자꾸 난다고 징징대는 나에게 머잖아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 정도면 감지덕지라고, 그나마 여지껏 먹어온 서리태와 흑미 효과를 본 것일지 모른다고, 어쩌면 친할머니를 닮아서 (식성은 확실히 닮았다) 머리가 하얗게 세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왕비마마를 비롯한 주변사람들이 위로를 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속상한 건 속상한 거고 남들과의 비교우위로는 성에 차질 않는다. 중년 이후의 삶이란 확실히 심신의 늙어감에 적응하는 과정인 듯한데, 노안도 그렇고 흰머리도 그렇고 적응과 체념보다는 버럭 화가 나고 슬퍼지는 걸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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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심기

투덜일기 2013. 5. 3. 22:14

왕비마마도 나도 오래도록 화분 죽이는 '마의 손'이었으나 이젠 사정이 다르다. 아버지가 생전에 탁상달력에 동그라미까지 쳐가며 물주는 날 따져서 키우던 화분 관리를 몇년간 내가 고스란히 이어받았다가,  왕비마마께 완전히 넘긴지가 또 몇년. '있는 화분이나 죽이지 말고 키우자'가 나의 모토였다면, 왕비마마는 자꾸만 새 화분 욕심을 내셔서 크고 작은 화분이 올해만도 몇개나 늘어났다. 원래 있던 화분들도 많이 자란 건 다 분갈이까지 해주고...

 

작년 가을 산책나가셨던 왕비마마가 낑낑대며 사들고 올라오다 결국 나에게 전화로 sos를 쳐서 '구박'을 받았던(아니 왜 무거운 거 들고 다니며 사서 고생이시냐고!) 제라늄 화분엔 흙도 더 덮어주고 영양제도 꽂아주었더니 꽃이 몇달째 어마어마하게 계속 피어나고 있다. 이에 고무된 왕비마마, 그간 사다먹은 딸기 스트로폼을 차곡차곡 모아두더니 깻잎을 키우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어디서 깻잎 씨앗을 받아둔 게 있다나 뭐라나.

 

그리하여 왕비마마는 크고 작은 스티로폼에 흙을 담아 들깻잎 씨앗을 심어 양지바른 담장 밑에(라일락 나무 옆에) 내다놓고는 며칠에 한번씩 물을 주며 근 한달을 기다렸다. 과거에 아버지가 한식 성묘 다녀오며 굳이 화원에 들러 깻잎이랑 고추, 상추 모종 사다가 베란다에서 키울 때는, 쌈채소 만원어치 사다먹는 게 차라리 낫지 그게 무슨 쓸데없는 짓이냐고 타박만 했던 왕비마마가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다. 그러나 노상 들여다보아도 깻잎 씨앗에서 통 싹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 문제. 그간 날씨가 또 좀 추웠나말이다. 검정 비닐을 씌웠어야하는 게 아닌가, 개토를 너무 얇게 했나, 온갖 걱정을 다 하셨다.

 

송추 집앞에다 매년 텃밭을 가꾸는 막내고모도 모종을 사다가 심는다는데 씨앗부터 키우는 건 원래부터 말이 안되는 거였다고 왕비마마를 달래며, 정 싹이 안나면 작년에  길가에서 받아다 놓은 분꽃 씨앗을 대신 심겠노라고 내가 선언했다. 그러고는 얼른 '분꽃 씨앗 파종'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니 4월 말에 심으라고 나왔다. 그것도 하루 물에 불렸다가.

 

의기양양하게 포스트잇에 적어 탁상달력에 붙여두었는데 어영부영 정신없이 일에 치여 지내다보니 이미 5월이지 뭔가. 어제에야 비로소 알량한 분꽃 씨앗 다섯 알을 물에 불려놓았다가 오늘 내려가 깻묵냄새가 나는(들깨 씨앗이 썩었나??) 스티로폼 화분에 심어놓고 올라왔다. 설마 분꽃 씨앗은 싹을 틔우겠거니 기대하고 있는데, 왕비마마는 아직도 희망을 안버리셨다. 원래 들깨 싹이 오래 걸린다고 들었단다. 한달은 되야 한다니 이제 곧 나올 거라고...

 

어랏, 나는 것도 모르고 흙을  마구 헤집어 놓았는데, 깻잎 씨앗이 싹을 틔울 준비중이었다가 청천벽력을 맞은 건 아닐까나. ㅋㅋ 어쨌거나 까마득한 옛날 할아버지댁 살던 시절 화단 가장자리에서 해마다 핀 분꽃은 일일이 씨앗을 심은 게 아니라 저절로 떨어진 씨앗이 겨울을 나고 다음해에 또 다시 싹을 틔운 거였다고 기억한다. 그러니까 깻잎 씨앗보다 분꽃 씨앗이 더 생명력이 탁월하리라는 것이 나의 주장.

 

왕비마마는 일주일 쯤 더 기다려보다가 그래도 깻잎 싹이 안나면 포기하는 게 아니라(!) 모종을 사다가 심어야겠단다. 일주일 기다리는 동안 과연 분꽃은 싹을 틔울 수 있을까. 그 옛날 강낭콩 관찰일기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괜히 기분이 좋다. 그러면서 속으로 큭큭 웃음이 난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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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가고 왔는지 모르게 4월이 가고 5월이 왔다. 그새 벚꽃, 살구꽃은 다 떨어져 연두잎을 내밀었고, 라일락이 피어났다. 두문불출하는 나날의 연속이지만 드물게 마당에 내려가보면 라일락 향기가 퍽이나 유혹적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가 라일락 향기에 감탄하는 두 아줌마에게 외쳤다. 라일락이라고 하지 말고 서양수수꽃다리라고 해야 돼! 기특한 녀석. 라일락이 수수꽃다리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는데, 그새 '서양'이 더 붙었나보다. 배배 꼬여 쓰러져가는 라일락나무 밑둥에서 올해는 가느다란 가지가 올라오더니 볼품없는 막대기처럼 보였던 외줄기에도 꽃이 매달렸다. 허리를 숙여야 제대로 보이는 높이에서 솟아나듯 피어난 서양수수꽃다리는 더욱 향기롭고 예뻐 보인다. 애먼 데서 느끼는 단신의 동질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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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에 꽃잔치

투덜일기 2013. 4. 16. 17:00

질기디 질긴 꽃샘추위 때문에 아직도 간간이 발이 시린데도 꽃은 피어난다. 꽃봉오리 벌어지는 동안 찬비를 두번이나 맞아서 그런지 작년보다는 꽃송이가 좀 작다싶은 것이 덜 탐스럽다고 느껴지지만 그래도 베란다 창문 밖이 드디어 밤낮으로 환한 꽃잔치가 열렸다. 오늘처럼 흐린 날씨에도 우리집 창밖만은 환하게 햇살이 비치는 느낌.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90퍼센트쯤 다 핀 것으로 인정하고 오늘부로 '만개' 선언.(왜 니가 그런 선언을? ㅋ) 다른 해엔 살구꽃이 가장 먼저 피고, 다음으로 벚꽃, 앵두꽃의 순으로 피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앵두꽃이 되레 가장 일찍 피었다. 현재 마당에선 세 종류의 하얀 꽃이 서로 마주보며 뽐내기를 하는 형국이다. 앵두꽃도 같이 담아 올리면 좋겠지만 계단 내려가기 귀찮아서 -_-; 관두기로.

 

 

살구꽃 벚꽃

 

6년 전에 밤벚꽃놀이 포스팅을 했을 때, 나는 벚꽃이 다 피었다가 눈송이처럼 후두둑 마구 떨어질 때가 가장 예쁘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날 아버지는 벚꽃이 바람에 휘날려 떨어지면 앞으로 몇년이나 더 이런 꽃구경을 하겠나 싶어져 서글픈 생각이 들어 싫다고 하셨고, 나는 얼른 미안해져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앞으로 10년간은 해마다 벚꽃놀이 다니자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말 아버지의 벚꽃구경은 그게 마지막이었고 내 호언장담은 공수표가 되었다. 아버지가 그날로부터 석달도 안되어 돌아가실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날 왜 하필 그런 대화를 주고받게 되었는지, 두고두고 가슴이 아프고 새하얗게 피어난 벚꽃을 보면서도 문득문득 슬퍼진다. 동시에 예쁠 때 많이 봐두자는 생각도 하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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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투덜일기 2013. 4. 9. 01:13

똑같은 봄꽃인데도 개나리, 목련이 핀 걸 보면 따뜻한 느낌이 드는 반면 진달래를 보면 추워보여 안타깝다. 분홍 꽃잎이 투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어려서 살던 동네 뒷산에서 진달래를 목격한 것이 분명 소월의 시를 안 시점보다 훨씬 더 먼저일 테니까 싯귀 때문은 분명 아니다. 어쨌거나 내게 진달래는 예뻐서 슬프다는 말이 뭔지 알려주는 듯한 봄꽃. 그래선지 오늘 어느 학교 교정에서 진달래꽃을 보고 반색하다가 문득 조금 서글펐다. 기다리던 봄이 왔는데 왜 마냥 좋아하질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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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come she will

투덜일기 2013. 4. 7. 01:07

4월이 되면 어쩐지 꼭 찾아 들어야할 것 같고 생각나는 사이먼&가펑클의 노래.

그러고는 제목이 달랑 <April>이라고 생각했다가 매번 참,  아니지, 한다.

불충분한 느낌 하소연이 너무 오래 떠 있는 게 마음에 안들지만

달리 뭔가 다른 글을 끼적일 만한 머릿속의 여유도 없다.

라붐 주제가 링크해놓았던 벨로의 포스팅에 잠시 흐뭇했던 느낌을 따라서

나도 글 밀어내기의 일환으로 유튜브 링크와 가사 긁어오기.

  

 

 

 

 

April come she will
When streams are ripe and swelled with rain;
May, she will stay,
Resting in my arms again

June, she´ll change her tune,
In restless walks she´ll prowl the night;
July, she will fly
And give no warning to her flight.

August, die she must,
The autumn winds blow chilly and cold;
September I´ll remember.
A love once new has now grown old.

 

 

4월이라고 찾아들어보면, 이미 가을까지 다 들어있는 쓸쓸한 노래다. 

하필 이 노래로 영어의 '구문도치'를 가르쳤던 수업시간까지 더불어 생각나는 것은

'성문종합영어' 세대의 슬픔이겠거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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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충분한 느낌

투덜일기 2013. 3. 27. 15:10

 

사놓은 지 한참 된 더글라스 케네디의 <위험한 관계>를 드디어 읽었다. 사자마자 처음 몇장 읽어볼 땐 뭔가 견딜 수 없이 따분하고 상투적이라 참지 못하고 내려놓았었다. 나랑 안맞는 책인가. 가끔 그런 책들이 있다. 다들 좋은 책이라고 하는데 나는 통 그 재미를 모르겠는 책들. 더글라스 케네디도 그런 작가인가 싶었는데,1년도 더 지나 다시 집어드니 이번엔 꽤 잘 읽혔다. 그때도 아마 소설 기피증이 발현되었을 때였을지도 모르겠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다른 책을 안 읽어서 저 유명한 <빅 픽처>와 비교는 불가하지만 퍽 재미나게 읽었다. 균열이 가기 시작한 부부관계와 모성의 부담감을 참 잘도 파헤쳐놓았다 싶다. 마흔 살 넘어 어렵사리 딸을 낳은 친구 하나가 겪었던 무시무시한 산후우울증을 알기에 더 실감이 났던 것 같다. 친구 역시 아기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엄마로 판명되어 분리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권유가 있었다. 아기는 부산 시댁으로 보내고 우선 엄마의 우울증부터 치료해야한다고 했다. 친구는 아기를 죽일 뻔 했다면서 엄마 자격 불충분이라고 몹시 울었다. 다행히도 친구는 아기가 백일을 맞기 전에 건강을 회복했고, 이후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키우고는 있지만 아직도 간간이 엄마 노릇에 자신 없어하며 한숨짓는다. 가끔 우는 소리를 하는 친구에게 내가 해주는 말은 하나 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위대해!

 

모성이 뭔지 나로선 절대 알 수 없겠지만, 불충분한 느낌이 뭔지는 나도 잘 안다. 책에서도 딱 내 마음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

 

우리의 대화에 공통된 주제가 있다면 이 오래 지속되어온 불충분한 느낌이었다. 대학시절 내가 내내 그랬지만 성적이 B학점을 넘지 못하면 늘 하던 걱정.... 내가 모든 면에서 '괜찮은 편이지만' 그리 뛰어나지는 못한 사람 같다는 기분.... 내가 꽤 저명한 신문사에서 오래도록 일했거나 특파원이었다거나 직업 일선에서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늘 의심을 품었고, 언제 내 능력이 들통날지 염려스러웠다.

- p267, <위험한 관계>

 

맞다. 나는 내 실력이 늘 의심스럽다. 실제 능력이 들통날까봐 겁이 나서 늘 조심씩 허세를 부려온 것도 사실이다. 뭘 해도 불충분한 느낌이 가시질 않는 건 깜냥도 안되면서 뛰어난 사람이면 좋겠고 이왕이면 완벽을 추구하는 욕심 때문이다. 어쩌면 이미 본모습이 들통나 다른 이들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아직 욕심을 부여잡고 징징거리는 지도 모르겠다. 하여간에 또 다시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뒹굴다 막 발에 밟히는 나날에, 내 불안을 콕 집어준 구절을 책에서 발견하고는 나만 그러는 게 아니구나 좀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또 궁금해지는 것 한가지. 불충분한 느낌이 주는 불안에 얽매이는 사람은 이 책 주인공처럼 다 그렇게 비호감에 짜증나는 성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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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

투덜일기 2013. 3. 19. 17:32

오른손바닥에 가로로 5센티미터쯤 꿰맨 흉터가 있다. 예닐곱 살 무렵 수영장에서 콜라병 들고 뛰다 엎어져 여섯 바늘을 꿰매야 했다. 어린아이라서 그랬는지, 당시 의술이 그 정도였는지 암튼 마취도 못하고 그냥 생으로 꿰매야 했기에 그 순간의 기억은 수십년이 지났어도 퍽 생생하다(아마도 나중에 무용담으로 거듭 이야기를 반복하며 장면이 각인되었을 거다). 아버지와 간호사가 내 몸과 손을 누르다시피 꽉 쥐고 있으면, 의사는 한 바늘만 꿰매면 된다고 해놓고선 또 한 바늘만 더, 한 바늘만 더... 하며 거짓말을 이어갔다. 바늘이 생살을 뚫고 쑥 들어오는 느낌에 더 자지러지게 울었던 것 같다. 병원에 상처를 소독하러 다니면서도 나는 무서워서 한번도 손바닥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러다 드디어 실밥을 풀던 날 처음으로 오른손바닥에 벌레가 꿈틀거리듯 지나간 검은 실밥과 우글쭈글 들러붙은 상처를 보고 내심 충격을 받았다. 당시로선 최선의 처치였는지 어쩐지, 어린아이의 작은 손에 난 상처라 어쩔 수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 이후 꿰맨 흉터가 당겨서 오른손은 왼손에 비해 완전히 활짝 펴지 못한다.

 

고1땐 또 오른손목 관절 부분에 근육이 뭉쳤다나 약간 응어리가 생겨 팔을 짚을 때마다 불편하고 아팠다. 엑스레이를 찍어본 대학병원 의사는 간단하게 잘라내면 된다며 그날 바로 수술을 권했다. 그 옛날엔 대학병원도 참 한가했었나보다. 얼결에 수술을 하고는 1센티미터쯤 되는 수술자리에 또 다섯 바늘을 꿰맸다. 어렸을 때 찢어진 손바닥도 그럼 수십바늘 촘촘히 꿰맸어야하는 거였나 그제야 의문이 들었다. 그랬더라면 손바닥이 아무 불편함 없이 다 펴졌으려나... 아무튼 집에 돌아와 우리 부녀는 엄마에게 된통 혼이 났다. 근육 뭉친 건 그냥 없어질 수도 있다는데 덜컥 수술이 웬말이냐고. 여자애 몸에 얼마나 더 수술자국을 남겨야 속이 시원하겠느냐고. 머쓱했지만 손바닥 흉터와 달리 손등쪽 손목에 난 작은 흉터는 계속 신경이 쓰여 다 나은 뒤에도 손목시계로 흉터부위를 꼭꼭 가리고 다녔다. 어느 시점부턴가 손목 흉터도 손바닥 흉터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고, 휴대폰 때문에 시계 차는 일이 드물어지기는 했지만 그래서 지금도 어쩌다 시계를 찰땐 당연히 오른쪽이 편하다.

 

지난 설날엔 허겁지겁 산적을 다시 데우다가 손을 데었다. 부위는 왼손 엄지손가락의 아랫부분. 다른 때 같으면 얼른 화기 뺀다고 찬물에 담그고 얼음 찜질하고 그랬을 텐데, 미친듯이 아침상 보는 중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더니, 아침을 다 먹고 날 무렵엔 봉긋하게 물집이 올라왔다. 다들 물집 터지면 감염되기 쉬우니 잘 간수하라고 염려했지만, 그날 점심 먹고 나니 어느 결에 물집은 터져버렸다. 꽤 오래가겠구나 싶어 덧나면 안되니까 씻을 때도 매우 조심하고 약국에서 새로이 소독약과 항생제 성분이 든 새살 연고를 사다 발라주었다. 약사는 2주면 나을 거라고 했지만 2주를 한참 넘기고도 상처는 계속 딱지가 앉았다가 다시 진물이 났다가를 반복했다. 주변에선 흉 잡히겠다고 쯧쯧 혀를 찼다. 섬섬옥수 망가진지 오래인데 뭐 어때, 라며 대범하게 굴었지만 드디어 새살이 다 돋고 나서도 거무죽죽하게 남아 원래 색으로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흉터를 보며 가끔 웃음이 난다. 누가 보면 대단한 요리사라도 나셨나 할 것 같아서.

 

흉터는 본래부터 상처가 다 아물고 남은 자국이다. 어린시절 깨뜨린 무릎에도, 책장 모서리에 찍혔던 이마에도 흉터가 남아있다. 가끔은 이게 어쩌다 생긴 흉터더라,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 것도 있지만 하나같이 크고 작게 아팠던 역사와 사연이 담긴 몸의 기록 같다. 나날이 얼룩덜룩해진 양손을 보며 어쩌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심신의 상처가 아물고 남은 흉터의 총체가 곧 내 인생이겠구나 싶어진다. 흉터가 많을수록 더 튼튼해지는 게 아닐까나. 아오, 무슨 얘기 쓰려다 여기까지 흘러왔나 모르겠네. 암튼 나이들면서 점점 더 흉터에도 대범해진다는 것. 영영 낫지 않는 상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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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게 안식년 선언도 했겠다, 악착같이 알뜰하게 버티면 1년쯤은 탱자탱자 놀면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으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적어도 반년(그러니깐 최소한 4월까지!)은 놀아야 재충전을 위한 안식'년'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 게 아니냐고! 그러나 수년째 알량한 수입으로 버텨온 재정상태에 비해, 긴축을 해 살아도 고정된 씀씀이는 별로 줄지 않았고 통장 잔고는 다달이 푹푹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었다. 호기롭게 놀아보겠다던 결심도 당연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번역가도 실업수당 같은 걸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ㅠ.ㅠ 작년과 재작년에도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삶을 살았으니, 10여년 전에 다시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고 일을 중단했을 때와 비슷한 통장 잔고로는 애당초 시작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땐 등록금을 내야 했으니, 지금 다달이 들어가는 보험료와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따위의 총액과 대강 엇비슷할 거라 여겼는데... 누가 셈에 젬병 아니랄까봐 통장 바닥나는 속도는 내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위기감에 휩싸여 보험을 해약할까 어쩔까 어떡해야 더 버틸 수 있을까, 노는 기간을 6개월로 줄여야 하나 한창 약해진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자니, 일감 문의 전화를 전처럼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번역 문의가 오면, 신뢰 못할 악덕 번역자로 출판계에서 완전히 매장당한 건 아니로구나 내심 기뻐하며 우아하게 내년을 기약하자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자꾸만 구차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어흑... 

 

올 10월 중순이면 만 일년을 꼬박 노는 셈이므로, 올 들어서는 여름 이후 정도로 가능한 일정을 통보하면서도 몇번 더 도끼질을 당하면 넘어가고 말 거란 예감이 들었다. 연로하신 노모한테 얹혀사는 것도 모자라 용돈까지 달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그저 가난이 웬수! 그래도 불황에 허덕이는 출판계를 감안하면 여름까지 통 일감 의뢰가 들어오지 않을 확률도 높으니 그저 운명에 맡기련다 하고 앉았었는데... 여차저차해서 으음... 설날 지나고 결국 계약에 응하고야 말았다. 장당 500원도 아니고 300원 인상에 마지못한 듯 넘어가면서 가슴 한켠이 슬픔으로 먹먹해졌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구나. 물려받은 재산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는 나 같은 인생이 신나게 아무 걱정 없이 놀고먹을 가능성은 결국 로또 당첨밖에 없다는 결론. 그러나 내 사주는 평생 소박하고 성실하게 꾸준히 벌어먹어야 한다던데 행여나!

 

어쨌거나 이젠 정말 진득하게 앉아서 일 좀 해야하건만... 펄럭거리는 궁둥이가 좀체 묵직해지질 않는다. 이 짧은 포스팅 하나도 제대로 못 끝내고 왔다갔다 여러번 오가는 산만함을 어뜨케 잡아야할 것인가. 그 또한 문제. 이래저래 서글프다. 젠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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