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게 안식년 선언도 했겠다, 악착같이 알뜰하게 버티면 1년쯤은 탱자탱자 놀면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으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적어도 반년(그러니깐 최소한 4월까지!)은 놀아야 재충전을 위한 안식'년'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 게 아니냐고! 그러나 수년째 알량한 수입으로 버텨온 재정상태에 비해, 긴축을 해 살아도 고정된 씀씀이는 별로 줄지 않았고 통장 잔고는 다달이 푹푹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었다. 호기롭게 놀아보겠다던 결심도 당연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번역가도 실업수당 같은 걸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ㅠ.ㅠ 작년과 재작년에도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삶을 살았으니, 10여년 전에 다시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고 일을 중단했을 때와 비슷한 통장 잔고로는 애당초 시작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땐 등록금을 내야 했으니, 지금 다달이 들어가는 보험료와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따위의 총액과 대강 엇비슷할 거라 여겼는데... 누가 셈에 젬병 아니랄까봐 통장 바닥나는 속도는 내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위기감에 휩싸여 보험을 해약할까 어쩔까 어떡해야 더 버틸 수 있을까, 노는 기간을 6개월로 줄여야 하나 한창 약해진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자니, 일감 문의 전화를 전처럼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번역 문의가 오면, 신뢰 못할 악덕 번역자로 출판계에서 완전히 매장당한 건 아니로구나 내심 기뻐하며 우아하게 내년을 기약하자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자꾸만 구차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어흑... 

 

올 10월 중순이면 만 일년을 꼬박 노는 셈이므로, 올 들어서는 여름 이후 정도로 가능한 일정을 통보하면서도 몇번 더 도끼질을 당하면 넘어가고 말 거란 예감이 들었다. 연로하신 노모한테 얹혀사는 것도 모자라 용돈까지 달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그저 가난이 웬수! 그래도 불황에 허덕이는 출판계를 감안하면 여름까지 통 일감 의뢰가 들어오지 않을 확률도 높으니 그저 운명에 맡기련다 하고 앉았었는데... 여차저차해서 으음... 설날 지나고 결국 계약에 응하고야 말았다. 장당 500원도 아니고 300원 인상에 마지못한 듯 넘어가면서 가슴 한켠이 슬픔으로 먹먹해졌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구나. 물려받은 재산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는 나 같은 인생이 신나게 아무 걱정 없이 놀고먹을 가능성은 결국 로또 당첨밖에 없다는 결론. 그러나 내 사주는 평생 소박하고 성실하게 꾸준히 벌어먹어야 한다던데 행여나!

 

어쨌거나 이젠 정말 진득하게 앉아서 일 좀 해야하건만... 펄럭거리는 궁둥이가 좀체 묵직해지질 않는다. 이 짧은 포스팅 하나도 제대로 못 끝내고 왔다갔다 여러번 오가는 산만함을 어뜨케 잡아야할 것인가. 그 또한 문제. 이래저래 서글프다. 젠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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