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2.08.14 더위 6
  2. 2012.07.31 나름 휴가 4
  3. 2012.07.26 귀걸이 4
  4. 2012.07.25 스마트폰과 착한 사람 4
  5. 2012.07.13 북촌 13
  6. 2012.07.04 벅차 6
  7. 2012.06.25 기우제 8
  8. 2012.06.11 ... 11
  9. 2012.05.28 되다 14
  10. 2012.05.25 버릇 8

더위

투덜일기 2012. 8. 14. 03:07

36도면 얼추 체온과 같다. 근데 이제 해마다 여름엔 이런 더위를 노상 겪어야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깊은 한숨. 어쨌거나 딱 입추 지나고 이틀 뒤였던가 소나기 좀 내리면서 더위가 한 풀 꺾여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이젠 30도쯤 되는 더위는 코웃음을 칠 수도 있게 되었다. 고맙게도 서울엔 엊그제부터 열대야도 사라져 밤엔 좀 춥기까지 하다.

 

'살인적인' 더위라는 말이 그 어느때보다도 실감나던 열흘남짓, 마루에 달린 소형 에어컨을 틀고 선풍기를 돌려도 열기를 풀풀 뿜어대는 컴퓨터 본체 때문에 좀처럼 방안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루에 상을 펴고 오래된 노트북을 꺼내놓는 고육지책을 실천해보았지만 온라인 검색 기능 없이 작업을 한다는 게 어찌나 성가시고 짜증스럽던지! 게다가 에어컨 바로 아래 앉으니 또 산소부족인지 정신이 몽롱하고 정신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그냥 일이 하기 싫었을수도 ㅋ) 게다가 핑계 삼기 좋게 또 밤마다 올림픽 생중계. 어차피 더워서 잠도 못 잘 거 TV나 보자 하며 그 어느때보다 열심히 올림픽 중계를 찾아보았다. BMX인가 하는 자전거 경기 완전 멋지더라!

 

결국 그 기간동안 작업한 원고 분량은 정말... 눈물겹게 적다. 드디어 밤엔 좀 서늘해졌으니 컴퓨터를 다시 켜고 의자에 앉아야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마음 먹는데만 이틀이 걸린 것 같다. 물론 거추장스러운 노트북을 치우는데 걸린 시간은 그보다 짧은 하루. 그렇게 어렵사리 앉은 컴퓨터 앞에서 또 일은 아직 한톨도 안하고 그간 아이폰으로 답답해서 잘 못본 블로그 파도타기나 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으냐. 그간 본 영화 후기 쓰고 싶어서 더욱 밍기적거리는 것 같아 일단 여기다 뭐라도 적어놓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다 더위 탓이려니, 그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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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휴가

투덜일기 2012. 7. 31. 17:55

TV와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 3박4일간 지내다 돌아와 어제는 가려움과 싸우느라(산길과 밭에서 벌레한테 팔다리를 무려 서른한군데나 뜯어먹혔다 ㅠ.ㅠ) 정신이 없었다. 한낮의 열기는 죽을 것처럼 뜨거웠어도 산밑이라 그런지 밤엔 서늘해져 큰 타월이라도 덮어야했는데, 서울은 어김없이 열대야. 어젯밤 선풍기를 계속 돌리면서도 자다깨다를 반복했더니 오늘도 대체로 멍하다. 이것은 어김없는 휴가 후유증. 휴가땐 하도 먹어대서 당연히 체중이 불어 오지만, 이번엔 하도 땀을 빼 +/- 제로가 되지 않았을까 상상했으나 체중계에 올라보니 어김없이 무거워져 있다. ㅋㅋㅋ 주로 밤에 몰아서 먹고 마셔댔으니 당연한 건가.

 

오후 들어서야 통째로 뽑아놓았던 플러그들을 콘센트에 끼고 슬슬 일 모드에 돌입하려 했으나, 컴퓨터를 켠 이후론 계속 인터넷질만 하고 앉았다. 아무래도 저녁이나 먹고 나야 슬슬 꼬부랑 글씨들이 눈에 들어올 모양. 생각해보니 여름에 제대로 휴가를 떠난 게 제주도 이후 처음이니 몇년 만이었다. 그땐 왕비마마를 동생네 모셔다두고 가야해 괜히 찜찜했었는데 올핸 훨씬 더 팔팔해진 엄니를 혼자 집에 두고 떠나면서 하나도 걱정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위 먹을라, 찬물은 싸갔냐, 공연은 재밌냐, 노친네가 내 걱정을 더 많이 했던 듯. 이 추세라면 좀 더 긴 휴가 계획도 별 걱정없이 세울 수 있겠다 싶어 의기양양 기쁘다.

 

본격 후기를 후딱 쓸까 했는데 며칠 만이라고 자판도 낯설어 계속 오타를 내는 걸 보니,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도 적응이 필요한 것 같다. 끼니때마다 뭐 먹나 걱정해야 하는 밥순이의 삶에도 적응이 필요한 것처럼. 에구구, 젠장 여섯시 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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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

투덜일기 2012. 7. 26. 09:55

인체의 복원력은 대체로 놀랍다. 간이식 같은 것까지 멀리 갈 것도 없다. 얼굴에 한번 생긴 주름은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지만 글쎄? 수시로 밤샘을 하며 잠을 좀 부실하게 자면 얼굴은 금세 자갈밭이 되고 만다. 세수할 때 손바닥에 닿는 느낌이 과장하면 그대로 자갈밭이요, 곧이 곧대로 표현하자면 좁쌀밭(?)이다. 거무죽죽 변한 눈밑이나 넓어진 느낌의 기미 같은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또 하루 이틀 푹 자고 일어나면 세수할 때 느낌이 다르다. 어랏, 다시 맨들맨들해졌네. 물론 어른이 되고 나선 백옥같은 아기 피부였던 적이 통 기억나지 않으며, 아무리 잠을 푹 잔다고 회춘 같은 게 이루어질 리는 없다. 수십년 넘게 중력의 힘을 받아온 볼살은 확실히 아래를 항해 차츰 늘어지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잘 먹고 잘 자고 빈둥거리면 확실히 낯빛은 나아진다. 세포분열과 재생의 힘일까?

 

그러나 인체의 복원력은 때로 좀 귀찮다. 예를 들면 20년쯤 전에 뚫어놓은 귓불. 당시 처음 귀를 뚫고나서도 엄청 고생을 했다. 남들은 사흘쯤으로 말짱해진다는 먹는 항생제와 연고를 일주일도 넘게 먹고 발라도 귀가 땡땡 부으며 피가 막 났다. 금속 알레르기인가 싶어 금 재질로 바꿔 끼어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아픈 수고를 허사로 만들 수가 없어 근 1년 가까이 고생을 참아야 했다. 좀 멀쩡해졌다가도 술만 마시면 덧나고 난리! 젠장, 또 내가 20대 직딩시절 또 좀 애주가였나. ㅎㅎ

 

귀걸이 구멍이 완전 자리를 잡고 나서도 또 한참 귀걸이를 안하다 새삼 끼워보려면 저항이 느껴졌다. 안 익은 돼지고기 젓가락으로 찔러보듯 귀걸이로 귓불을 마구 쑤시는 것처럼 복원일로에 있는 구멍을 다시 확보해야 할 때도 많았다. 으으, 징그럽고도 집요하다. 그치만 그래도 20년쯤 지났으면 이제 한 몇달 귀걸이를 전혀 안하다가 불시에 시도해도 구멍이 온전히 남아있어야 정상 아닌가? 내 생각은 그런데 막강한 인체의 재생력은 그렇지가 않다. 어제 또 근 몇달만에 귀걸이를 했더니 아 젠장, 오른쪽이 또 말썽이다. 쫄깃하게(?) 오른 새살이 구멍을 막아서는 느낌이 들더니만 억지로 귀걸이를 하고 나선 역시나 좀 부었다. 

 

귀 뚫었다가 잠시 소홀히 한 사이에 홀라당 막혀버린 사람은 주변에 널렸다. 그래서 다시 또 뚫기도 하던데 나는 한번 막히면 또 다시 뚫을 용기가 없다. 20년 전에도 한쪽만 뚫고 아파서 관두겠다고 도망치는 걸 엄마가 붙잡아 앉혔었다. 미리 사놓은 귀걸이 아까워서 안된다면서... 지금 내 마음도 그렇다. 혹시 나중에 귓불이 막히면 언젠가 친구 하나가 그랬듯이 주변에 귀걸이를 죄다 나눠주면 되겠지만, 귀걸이는 팔찌, 반지와 더불어 나의 기호품이라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귀걸이 타령을 하고 있자니 문득 엉뚱한 생각이 난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귓불에 걸거나 다는 장신구를 뜻하는 우리말은 '귀고리'만 표준어였다. 그러다가 '귀걸이'도 표준어로 인정된 건데, 아직도 가끔 책에서나 만나게 되는 '귀고리'라는 낱말은 참 어색하고 낯설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아니고 왜 귀걸이 귀걸이라 부르지 못하게 했었는지 원.

 

아무튼... 똑같은 세포분열과 재생의 힘이건만 귓구멍 막히는 건 짜증내고, 피부색 좋아지는 건 반기고, 변덕스러운 주인 때문에 내 몸도 참 고달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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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어제 잠시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었다. 서점내 커피집에서 만나 일차로 수다를 떨다가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음식점에서 친구가 갑자기 가방을 뒤적뒤적이더니 휴대폰이 없다고 사색이 되었다. 마침 커피집 영수증이 있어 그리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앉은 자리를 알려주며 흘린 휴대폰이 있는지 물었지만 없다고 했다. 친구는 혹시 길에 떨어졌나 돌아보고 오겠다며 앞뒤 잴 것도 없이 후다닥 뛰어나갔다.

 

남은 친구들 셋은 요즘 스마트폰 잃어버리면 거의 못찾는다더라. 택시에 두고내려도, 그걸 중국쪽에 수출하는 업자한테 팔면 최소 20만원쯤 받기 때문에 혹시 분실 후 통화가 되더라도 사례금을 20만원쯤은 줘야 돌려준다더라.. 뭐 그런 암담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혹시나 누군가 전화를 받아줄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나는 계속 친구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진동으로 되어 있던 탓인지 한동안 받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한 열번쯤 연달아 걸었을 무렵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OO문고 별다방인데 휴대폰을 주웠다고...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곧 가지러가겠다고 말한 뒤 뒤이어 음식점을 뛰쳐나갔다. 친구는 길바닥에서 만나지겠지...

 

친구도 혹시나 해서 다시 서점안으로 들어갔던 터라 입구에서 만나 기쁜 소식을 알렸고, 우린 노트북을 켜놓고 음악을 들으며 공부인지 검색인지를 하던 대학생 차림의 청년에게 구형 '걘역시' 휴대폰을 받아들고는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뭔가 사례를 하고 싶었으나 아뿔사, 친구도 나도 둘 다 흥분해서 가방은 음식점에 두고 몸만 튀어나갔으니... ㅠ.ㅠ 암튼 핑계 대듯 그런 사정을 말하고는 몇 번 더 인사를 마치고 서점을 나왔다.

 

우와,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라며 우리는 찌는듯한 무더위 속 뙤약볕을 걸으며 마구 감탄했다. 친구는 언젠가 금돼지 한돈까지 달린 휴대폰을 주인에게 찾아준 적 있다며 그 선행이 보답을 받는가보다고, 기뻐했다. 우린 답례 못한 것이 미안하니, 얼른 밥 먹고 나서 서점으로 다시 가 청년에게 별다방 상품권이라도 사주자고 이야기를 했다. 어쩜 두 여자가 그래 똑같이 몸만 튀어나갈 수가 있냐.. 그러면서.

 

헌데 배불리 밥을 먹고 나오니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뙤약볕을 걸어 다시 서점까지 가는 게 퍽 귀찮고 수고롭게 느껴졌다. 아깐 보은하러 당장 달려갈 기세더니만! 어쨌거나 그래도 우린 귀찮음을 무릅쓰고 다시 사거리를 건너 오던 길로 되돌아가 서점으로 내려갔다. 노트북 펼쳐놓고 있었으니 당연히 아직 있을 거야, 라면서... 그러나 청년은 가고 없었다. 일행을 만났을지 몰라 원래 자리뿐만 아니라 다른 테이블까지 돌아보아도 없다고 했다. 좀 아쉬웠다. 밥먹고 나서 아줌마들의 귀차니즘 때문에 살짝 심보가 흔들리긴 했어도, 별 건 아니지만 커피집 상품권으로 그 착한 청년에게 진짜로 일말의 보은을 했더라면 드문 도시의 미담이 더욱 완벽하게 마무리되었을 텐데. 아까 그 청년의 연락처라도 받아둘 걸, 생각이 짧았다고 민망해했다. 그 착한 청년은 혹시 우리가 뻔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찝찝하기도 했다.

 

스마트폰 잃어버리는 게 무서워 분실보험까지 들어놓긴 했지만, 2년 가까이 차곡차곡 쌓인 역사를 한꺼번에 잃어버린다면(아이튠즈 동기화 기능이 있기는 해도;;) 나는 그야말로 '멘붕'이 올 것만 같다. 그러니까 요즘처럼 험악한 세상에서 금세 스마트폰을 되찾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뻤던 것이고,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는 감탄까지 토로했을 것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물건은 무엇이든 별 문제 없이 그 자리에서 찾을 수 있는 사회가 원래 살만한 세상 아닌가. 그 청년이 '유별나게 엄청' 착한 게 아니고, 휴대폰을 주웠으니 주인에게 돌려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평범한 청년이어야 옳지 않겠나 뭐 그런 생각이 새삼 든다. 꽤나 평범한 상황을 각박한 도시의 훈훈한 미담으로 여겨야하는 세상이 된 걸 더 씁쓸히 여겨야 하는 게 아닐까나. 그러나 이미 달라진 세상은 어쩔 수 없는 거고, 우리가 운이 좋았으며 그 청년이 착했다는 건 변함없는 진실이다. 누군지 복받을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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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투덜일기 2012. 7. 13. 17:04

등잔밑은 확실히 좀 어둡다. 전국방방곡곡은 물론이고, 나고 자라 살고 있는 도시만 해도 안가본 동네를 꼽아보면 아직도 많다. 유명한 곳일수록 더 그렇다. 각자 서울서 산 세월이 40년을 넘겼지만 삼청동은 꽤 다녔어도 길 하나 위에 있는 북촌은 골목골목 제대로 구경해본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누군가 가보자고 나섰다.

북촌 한옥에 대해선 책을 먼저 읽었다. 몇채 안남았다는 건 알고 갔는데도 골목이 금세 끝나 허무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도 들고 다니며 북촌 7경이니 8경이니 순례를 다니더라. 째뜬 이나마 남아 있는 것도 감사할 일인데, 박제되어 먼지 낀 짐승을 보듯 마음이 무거웠다. 제대로 원없이 사람냄새 나는 한옥을 보려면 그러니까, 안동이나 전주 같은 델 가야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를테면 여기가 북촌 한옥마을의 '메인스트리트'다. 저 골목 끝 언덕 꼭대기에서 서울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것이 포인트라고 지도에 안내되어 있는지, 너도 나도 그 지점에서 사진을 찍었다.

올라가다 나도 슬쩍 돌아보았지만 한옥 처마 사이로 보이는 부연 하늘과 볼품없는 건물들과 남산타워는 하나도 멋지지 않던데. 뭐가 멋있다는 건지. 흠.

 

 

 

 

 

 

 

 

 

 

 

 

저런 아치형 문은 대문엔 안 쓰고 궁궐 중문에서나 본 것 같은데.. 이른바 퓨전한옥인가보다, 그랬다.

그렇지만 기와 넣어 쌓아올린 황토담과 어우러져 예쁘긴 하다. 저 집엔 누가 살고 있을까나. 북촌 한옥에 사는 건 뿌듯하다 해도 노상 사람들이 와글와글 돌아다니니 참 시끄럽겠다. 오죽하면 골목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니 조용히 해달라고 팻말이 적혀있을라고...

 

 

 

 

 

 

 

 

 

같은 집 담장은 아니지만... 왼쪽 집은 시원시원한 느낌이고 오른쪽 집은 아담하니 정겨웠다. 담장 밑에 내놓은 화분도 꽤나 부지런히 가꾼 흔적이 보인다.

 

 

 

<한옥이 돌아왔다>라는 책에서 북촌 한옥 이야기를 읽긴 했는데 어느 집이 그집인지 'OO헌'이었다는 것 말고는 통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책에서 이렇게 담장에 낸 창문 사진을 본 적은 있다. 이집이 그집일까, 잘 보이지도 않는 저 창살 틈새로 기웃기웃 안마당을 들여다보다 킥킥거리며 포기했다. 새어나온 담쟁이랑 다 예쁘다.

 

 

 

 

 

 

 

한옥 사이에 자리한 어느 양옥집 담장 너머로 축 늘어진 감나무 가지에 열매가 어찌나 다닥다닥 탐스럽게 열렸던지... 가을까지 안떨어지고 잘 버티면 좋겠다.

우리집앞 골목길 감나무는 얼마 열리지도 않은 열매가 노상 떨어져 바닥에 으깨져 있어 볼 때마다 심난했는데 튼실한 초록감을 보니 괜스레 반가웠다.

 

 

 

 

 

 

 

마지막으로 골목을 벗어나 밥먹으러 가려다가 해무리를 봤다. 아직 저렇게 어둡진 않았는데, 한옥에 초점을 맞추면 해무리가 안보이고, 해무리를 찍자니 한옥이 그림자로만 나왔다. 가뜩이나 구도도 엉망인데 전깃줄이라도 없으면 딱 좋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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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차

투덜일기 2012. 7. 4. 02:49

아까 오후에 서울엔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서 번쩍번쩍 꽈광꽈광 천둥번개가 꽤나 요란했다. 천둥 치는 걸 유난히 무서워하는 건 아니지만 꽤나 가까운 곳에 벼락이 내리치면 겁이 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최악의 상상 시나리오. 컴퓨터가 벼락에 맞아 작살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_+ 천둥번개가 치지 않을 때에도 간간이 더럭 겁이 나면 원고며 사진 백업을 해두는데, 외장하드도 기계인지라 철썩같이 믿을 건 못된다고 생각한다. AS센터가 괜히 있겠느냐고! 옛날 일이긴 하지만, 당연히 요샌 더 기술이 좋아졌겠지만, 과거 경험상 망가진 컴퓨터에서 파일 복원해봐도 완전히 말짱하게 되는 건 아니다 싶으니 생각이 깊어지면 더 전전긍긍하게 된다.

 

어쨌거나 아까 천둥번개의 소요 속에서 컴퓨터에 벼락 칠까봐 전원 끄고 있어야 안전할 텐데 못 그러는 신세를 토로했더니 누가 클라우스 시스템을 이용하라고 조언해줬다. 컴퓨터에 저장하면 알아서 지가 서버에도 저장을 한다나 뭐라나. 클라우드 시스템이라면... 나도 아이패드, 아이폰 선전할 때 본 적 있다. 폰에 있는 자료나 사진이 저절로 집 컴퓨터에도 동시에 저장된다나 뭐라나. 근데 그건 와이파이가 작동되야 하는 거 아닌가? -_-; 우리집엔 와이파이 없음, 이러면서 클라우드 설정도 꺼놨고 어차피 무료 용량 5기가면 뭘 얼마나 넣어둘 수 있겠나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날로그 세대 컴맹의 아전인수식 해석이랄까. 근데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에도 그런 기능이 있나보다.

 

백업이라고 하면, 웹하드나 외장하드 밖에 모르고(가끔 내 이메일로 보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스마트폰의 일부 기능을 사용하는 나 정도도 내 또래에선 꽤나 앞서간다고 평가해주는 편인데(ㅠ.,ㅠ 왜 말하면서도 슬퍼지는지 원;;), '요즘 사람들' 기준으로 보면 TV광고에서 스마트TV니, LTE니, WARP니 하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통 무슨 영문인지 몰라 괜히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울 엄마나 나나 오십보백보가 아닐지. 지조 있게 아날로그 세상을 신봉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디지털 세상에서 현명하게 잘 따라가는 것도 아니면서 얼치기로 투덜투덜 어영부영 살아가려니 더욱 벅찬가 싶어 짜증이 난다. 맨날 똑같은 걸 물어보는 궁금증 많은 노친네한테, 조단조단 상냥하게 설명하기보다는 "뭔지 못알아먹겠다 싶은 광고는 엄마한테 팔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야! 그러니깐 몰라도 돼!"라고 윽박지르는 이유도 결국엔 나도 잘 모른다고 말하기 싫은 건가.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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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

투덜일기 2012. 6. 25. 05:25

5월말 6월초부터 30도를 막 넘어가는 건 반칙 아닌가 투덜대보지만, 작년에도 이맘때 똑같은 푸념을 했을 거다. 이미 한반도가 아열대기후로 변해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몇년 전부터 들은 것 같고. 어쨌거나 따뜻한 커피를 마신 기억이 최근엔 없다. 더워 더워를 연발하며, 연일 얼음을 잔뜩 넣어 만들어 마시고는 남은 얼음까지 우드득 우드득 깨물어 먹었다. 더운 오후엔 물 한잔을 마셔도 얼음을 띄워 마실 때가 많다. 그런데도 얼마나 건조한지 얼음 담긴 유리잔에 물방울이 거의 안맺힌다. 습기 높은 장마철에 아이스커피 한잔 만들어 마시면, 아니 그냥 찬물 한잔만 놓아두고 있어도 잔 표면에 물이 줄줄 흘러 바닥에 고이는 게 난 그렇게 싫을 수가 없다. 그래서 책상엔 어울리지도 않게 잔받침을 아예 놓아두고 살고, 방바닥에서 마실땐 강박적으로 휴지를 접어 깔거나 심지어 키친타월로 둘러놓아 아예 잔이 땀 흘리는 걸 방지한다. 그런데 올 여름엔 아직 한번도 그러지 않았다. 물컵에 물방울 맺히는 걸 아예 못 본것 같다. 미세하게 맺힌 수증기도 금세 날아가버릴 만큼 온 세상이 메말랐다는 뜻이다. 원래도 해걸이를 하지만 올해는 앵두가 달랑 열 개나 열렸을까, 그나마도 익기 전에 말라붙어 시들어 떨어졌는지 빨간 앵두알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온 나라의 과수원 나무들도 형편이 다 그렇겠거니 하면서, 종일 밥은 굶어도 과일은 못 굶는 모녀를 위해 시들시들 알도 작으면서 값은 엄청 비싼 과일을 두어 종류 사다 놓았다. 이제 그만 장마가 시작되면 좋겠구만 일기예보엔 늘 가뭄과 더위 이야기뿐이다. 드디어 이번주중엔 장마전선이 북상할 거라니 그 예상은 절대 빗나가지 않도록 기우제라도 지내고픈 심정이다. 농사 걱정은커녕 마실 물도 없다는 분들의 마음에야 댈 것도 아니겠지만, 뒷베란다 지붕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며 치직치직 빗길에 굴러가는 차바퀴 소리 듣다가 부침개 타령도 좀 해봤으면 좋겠다. 옛날 할머니들이 왜 비를 오신다고 말했는지 이럴 때만 잘 알겠다. 정말 귀하신 비님, 이젠 좀 와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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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일기 2012. 6. 11. 17:40

쓰다 만 서도호 전시 후기를 마무리 해야하는데 통 못하고 있다.

요즘은 특히나 글이 눈에 잘 안들어오고 써지지도 않는 시기인 듯.

풋. 슬럼프 핑계 대기도 이젠 민망하고 지친다.

 

최근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정리해야 할 계기가 있었다.

번역가라는 직업의 장단점도 새삼 꼽아보고, 알고보면 허술하고 열악한 출판번역계의 현실도 인정하고

분명 매력 있는 일이지만 잘 하려 들면 들수록 더 큰 어려움이 느껴지는 번역의 허망함도 까발렸다.

탁 까놓고 연봉이 얼마나 되냐는 물음엔 '영업상 비밀'이라고 눙치는 데 성공을 거두었으나

'나만의 번역론'이 무얼까 하는 질문에선 딱 막혔다.

......

 

이미 많은 유명인들이 번역에 관하여 워낙 주옥같은 명언들을 쏟아냈기에

난 그저 살짝 얹혀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번역은 반역", "번역은 실패의 예술", "번역은 경계를 넘어서는 일", "번역은 언제나 손실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훌륭한 번역론을 감히 내가 어찌 생각해내겠나.

노동력 대비 수익성이 현저히 떨어지기는 하나 그래도 내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훌륭한 밥벌이 수단이라 여기며 그저 감사할밖에.

 

내가 허투루 보내는 오늘 하루가 누군가에겐 절박하고 간절한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식의

감상적 사고 전환이 더는 불가능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노상 투털투덜 구시렁구시렁 불평불만 많은 나의 직업이 누군가 몹시 선망하는 목표라는 사실도 크게 절실하진 않다.

인간은 원래 가진 걸 잘 몰라보고 늘 멀리서만 파랑새를 찾는 족속이 아닌가.

 

그럼에도 가끔씩 허우적대던 구멍에서 벗어나 돌아보고 반성하고 주제파악을 하는 건 꽤 건설적인 과정이다.

초심으로 돌아가기엔 속물 근성이 너무 완연해졌더라도

그게 어떤 마음이었는지 기억을 뒤지며 조금 웃을 수 있었다.

17년 전의 나는 참 무모하게도 패기 넘쳤고, 그런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구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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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다

투덜일기 2012. 5. 28. 23:30

삼일 내리 붙은 황금연휴 딱 가운뎃날에 사촌동생이 결혼을 했다. 눈에 콩깍지가 덮인 사촌동생 커플이 지들끼리 돌아다니며 잡은 날과 식장에 대해서 벌써부터 친척들은 말이 많았다. 사흘 연휴 딱 한 가운데인 일요일에 날을 잡으면 어쩌라는 거냐! 게다가 일요일 12시라니! 교회 다니는 사람은 어쩌라고? 멀리서 가는 사람들은 대체 몇시에 일어나라는 건지?! 그 동네가 대체 어드메 붙어있는 것이관대 거길 잡은 거냐! 너무 신랑쪽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는 거 아니냐! (물론 인륜지대사라는 혼사를 앞두고는 원래도 이런저런 참견과 말이 많은 법이다 ㅋㅋㅋ)

 

어쨌거나 시종일관 생글생글 웃으며 여유롭게 대사를 치러낸 사촌동생은 참으로 어여뻤고, 결혼식도 잘 끝났다. 원래도 집안 결혼식에 다녀오면 엄청 더 피곤한데, 이날은 집에 돌아와 완전 픽 쓰러졌다.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전날밤에 제대로 잠을 못잤다. 굴러다니면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앉는 것으로 나를 식겁하게 만들기 선수인 조카녀석이 난데없이 자고 갈줄이야. 게다가 한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식장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된통 자빠졌다.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게 먼저라 벌떡 일어나긴 했는데 ㅠ.ㅠ 심신의 충격이 꽤 컸다. 그러고는 귀가길에 한 차 가득 친척어르신을 태우고 잘 쓰지도 않는 휴대폰 내비게이션을 켜고 인근 전철역을 찾는데, 우어~~~~ 꼭 5초쯤 느리게 가야할 길을 지나서야 안내를 하더군. 결국 내비게이션 전철역 안내는 무시하고 강을 건너와 내가 빠삭하게 아는 곳에서 넷째 고모를 내려드렸다. 처음부터 내 맘대로 길을 찾았으면 막히지도 않고 더 편했을 텐데! 내비게이션 떠들지, 어르신들 떠들지, 나도 간간이 맞장구 쳐야지... 운전할 때 정신 시끄러우면 음악도 잘 안듣는데 아주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간만에 한복까지 떨쳐입고 큰엄마 노릇을 톡톡히 하신 엄마도, 원피스 떨쳐입고 자빠진 사촌언니라고 사돈댁에 소문날까 무서웠던 나도 집에 오자마자 드러누웠다. 

 

부모 등골이 빠지든 말든 호화롭고 번듯한 결혼식을 선호하는 요즘 풍조 속에서 사촌동생은 퍽 야무지게 부모 도움 전혀 안받고 순전히 자기가 모은 돈으로 소박하게 결혼준비를 했고 예단도 생략했다. 유치원 교사의 박봉으로 결혼자금을 모았다니, 나는 그게 그렇게 기특하고 장할 수가 없는데 일부 어른들은 그게 또 예의가 아니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아우 짜증! 친척 예단으로 돌린 이불 같은 건 짐만 되고, 현금봉투로 받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실제로 울 엄만 몇년 전 고모네 집에서 현금으로 받은 예단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예단 없어 섭섭하다는 그 고모를 흉봤다. "자기네도 예단 안했으면서!"라고. +_+ 어휴, 엄니;;) 겉치레가 더 큰 예식 자체도 참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지만, 가풍이니 예의니 따져가며 한 마디씩 보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진저리가 난다. 결혼식은 사라져야 할 제도라는 심중만 굳어질 뿐이고!

 

친구 하나도 요즘 그놈의 '식' 때문에 연일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올해 학부형이 된 그 친구는 오래 전 '쿨'하게 식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만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남자네 집에서 결혼을 결사반대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둘 다 결혼식에 들일 무모한 비용을 집 얻는 데 더 보태자는 실용적인 결론을 내렸다. 나중에 부모님 마음이 돌아서면 제대로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계획 같은 것도 아예 없었다. 여자라면 꼭 한번 입어보고 싶다는 웨딩드레스의 로망? 그딴 거 없는 여자도 있다규! <주목 공포증>이란 게 있다는 걸 요즘에서야 알았지만, 그 옛날부터 그 친구와 나는 지인들 결혼식장 구경 다니며 서로 비슷한 말을 중얼거렸다. 사람들 수백 명이 동시에 쳐다보는데 어떻게 저렇게 멀쩡하게 걸어들어가냐, 신기하다. 저런 것도 끼가 있어야 하는 건가봐... 나와 달리 친구는 독신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외국영화에서 남녀가 평상복 입고 시청 같은데서 혼인서약 하고 양쪽 집안에 전화로 결혼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을 멋지다고 하더니, 현실에서도 그 비슷하게 꿈을 이루었다.   

 

그런데 10년도 넘게 잘 살고 있는 지금에 와서 새삼 '그래도' 결혼식은 올려야한다고 친정엄마가 졸라대고 계시다는 것. 교회에서 운영하는 부부수업(?)을 듣고나서 웨딩드레스 입고 목사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라고, 죽기전 평생 소원이시라고 하루에도 두세번씩 협박과 읍소와 호통을 번갈아하고 계시단다. 부모로서의 마음을 일견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이라는 게 원래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고 집안 대 집안의 거사임을 알기는 하지만, 당사자가 싫다는데 어쩌란 말인가. 전화로 징징대는 친구에게 위로랍시고 내가 해준 말은 그나마 친정엄마라 싸울 수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도 안통하고 무서운 시어머니(진짜 무서운 양반이다 ㅎㄷㄷ)가 시키는 게 아니라 얼마나 좋으냐는 거였다. 20주년에 리마인드 웨딩 멋지게 할 테니 기다려 달라고(일단 10년은 시간을 버는 셈이니까;;) 해보라는 조언도 했는데, '그 전에 나 죽는다'며 엄마한테 혼만 났단다. 그럼 그렇지, 내가 뭘 안다고... 

 

푸념 들어주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반복되는 상황에 내가 슬슬 짜증을 내고 있다는 걸 친구도 알았챈 모양이다. 며칠째 시도 때도 없이 딩동딩동 날아오던 문자가 잠잠해졌다. 남들은 들로 산으로 바글바글 여행을 떠났다는 황금연휴에 나는 피곤한 심신을 달래느라 일 한자 못하고 비실비실 방바닥을 뒹굴었다. 앞으로 넘어져 무릎에 멍이 들었는데, 왜 엉덩이도 욱신거리는지 원. 정말이지 결혼은 구경하는 것도 이야기를 듣는 것도 다 고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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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투덜일기 2012. 5. 25. 18:39

이웃 주민의 꿈의 미용사 포스팅을 읽기도 했겠다 나도 머리 얘기 잠깐 해야겠다. 전에도 그런 얘기를 쓴 적 있지만 내가 바라는 '꿈의 미용실 & 꿈의 미용사'의 조건은 늘 똑같다.

- 파마나 두피케어, 영양손질 등 값비싼 시술을 강요하지 말 것.

- 호구조사 나온 사람처럼 꼬치꼬지 질문을 던지거나 말을 너무 많이 걸지 말 것.

- 커트 실력이 좋을 것.

- 가격이 적당할 것.

- 소요시간이 짧을 것.

하지만 이런 나의 취향에 똑 떨어지는 꿈의 미용실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암튼 나름 적정선에서 신촌 일대의 미용실을 이곳저곳 기웃대다 결국엔 동네 미용실 하나를 뚫었다. 나 정도의 반곱슬이면 굳이 롤스트레이트 파마를 하지 않아도 된다며 파마하러 간 손님을 커트만 해서 보내는 원장을 만나 살짝 감동했던 이 동네 ㅂ미용실에 꽤 다녔으나, 결정적으로 재작년 겨울이었나 그곳 실장이 내 머리를 완전히 쥐뜯어먹은 것마냥 잘라놓은 이후 두번다시 발길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다시 찾아낸 곳이 두 정거장 정도 걸어가야 하는 ㄲ미용실. 시험삼아 처음 미용실에 딱 들어갔을 때 나는 미용사의 머리모양으로 신뢰도를 일차로 판단한다. '헤어디자이너'라는 사람이 자리 머리를 촌스럽거나 엉망으로 하고 있다면 말이 되냐고! 꽤 세련된 머리모양을 한 그 미용사는 비교적 빠른 손놀림으로 최대한 내 바람에 맞추어 머리를 잘라주었고, 나는 내심 퍽 만족했다. 게다가 가격도 무척 저렴해!

 

그러나 지난 3월 머리를 자르러 가보니 아리땁고 적당히 친절했던 그 미용사가 보이질 않았고, 그 사람보다 나이가 많은 미용사가 새로 와 있었다. 머리 자르러 왔다는 나를 의자에 앉히고 미용덮개를 씌우더니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두피가 엄청 약한가보다고, 각질 관리도 엉망이고 (머리로 열이 올라오는 체질이라나 뭐라나 스트레스 때문인지 머리에 노상 뭐가 많이 난지 오래;;) 머리카락도 가늘고 탈모증세도 있다고 완전 난리... ㅠ.ㅠ 커트하는 손길이 매우 재빠르긴 했는데, 나중에 집에 와보니 재빠른 게 아니라 성의없고 덜렁거린 탓인지 뒷덜미 머리칼 한 줌이 길게 그대로 남아 있어 내가 잘라야 했고, 들쭉날쭉 앞머리는 사람들이 왜 머리를 자르다 말았느냐고, 혹시 니가 잘랐냐고 묻기에 이르렀다(내가 앞머리를 얼마나 잘 자르는데!). 아우 정말! 암튼 그 미용사는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대머리라도 된다는 듯이 나를 구박했고, 시간이 없고 바빠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 싶다고 웅얼거리던 나를 결국 굴복시키고 말았다. 그나마 20분이면 끝나고 가격도 저렴한 두피케어를 받기로 한 것. 시간도 2시간쯤 걸리고 가격도 두배로 뛰는 영양두피케어를 일주일에 한번씩 세번은 받아야 하는 상태라고 극구 주장하는 미용사 앞에서 나는 머리감는 방법도 제대로 모르는 무식하고 게으른 여자로 전락했다. ㅠ.ㅠ

 

하여간에 커트가 끝나자마자 뭔가 두어 종류의 액체를 면봉으로 두피에 발라 온 머리통이 화끈거리게 만들어놓고 나서야 그 미용사는 뿌듯해했고, 다음번 머리 자르러 올 땐 꼭 영양두피케어를 받으라고 충고했다. 과거엔 머리를 자르고 싶다고 마음 먹으면 원래 그날로 잘라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었으나, 마음에 꼭드는 미용실을 잃은 이후 내게 머리 자르기는 이제 벼르고 별러 마뜩찮게 실천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런 마당에 또 그 막무가내 아줌마 미용사를 대면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워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지난번 그 간단한 두피관리를 받고도 일주일 넘게 두피가 따갑고 가렵고 괴로워 다시는 그런 짓거리 안 할 생각이건만, 내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바로 내일모레 사촌동생 결혼식도 있고, 가뜩이나 성의없이 들쭉날쭉 자른 머리를 대책없이 두달 가까이 기른 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삼손 같다'고 할 지경이라 어제 드디어 그 미용실을 찾았다. 아무리 강권해도 딱 머리만 자르고 나와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들어섰는데, 우왕~ 그 미용사가 없다! 그 사람 뿐만 아니라 그새 미용사 둘이 다 새로운 인물로 대체됐고 원장은 아예 부재중. 아싸! 나는 새로운 미용사들의 실력도 모르는 채 그냥 쾌재를 불렀다. 다듬기만 할 건데 뭐 망쳐봤자지.

 

새로운 미용사도 역시나 롤스트레이트 파마기가 다 풀려 머리칼에 히마리가 없다며 은근히 파마를 종용하는 기세였다. 허나 이미 나는 '이 정도의 반곱슬머리면 롤스트레이트 파마가 필요없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놓은 터, 그 정도 공격은 물리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무튼 어딜 가나 머리를 자를 때마다 반복되는 '약한 두피' 타령은 어김없이 이어졌는데, 그 뒷 이야기가 의외였다. 두피가 약해서 여기저기 올라온 뾰루지를 내가 긁어서 상처를 내놓았다는 것! 나는 지난번에 두피케어를 받고 나서 일주일 넘게 따갑고 가려운 증상에 힘들었다고 얘기했더니, 이런 상태에선 두피케어를 할 게 아니라 두피를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란다. 지난번 미용사는 뭐냐! 각질관리라면서 면봉으로 아플 만큼 엄청 두피를 문질러대두만. 그래서 그렇게 따갑다가 나중엔 가려웠구나야. 암튼 이번 미용사는 나더러 절대 뾰루지에 손대지 말고(내가 긁은 적 없다고 했더니 자면서 자기도 모르게 긁었을 것이라고;;;) 머리 감기 전에 브러시 빗으로 두들겨 혈액순환을 시켜주라고, 불가능하겠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게다가 왼쪽 머리만 심히 바깥으로 뻗치는 이유는 내가 왼쪽 머리만 무의식적으로 자꾸 만지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헐... 맞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책 읽을 때라든지 뭔가 생각할 때 왼손으로 머리칼을 비비 꼬는 게 내 버릇이다. 해서 과거 자율학습 시간 선생님한테 '이잡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 드라이를 해주며, 아니 이렇게 드라이가 잘 먹는 머리를 왜 손질 안하고 다니느냐고 또 한마디 했다. 파마 굳이 안하셔도 되겠네요, 라면서. ㅡ.,ㅡ;; 휴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도 당분간 두피케어와 파마를 강권하는 일은 없겠군. 다시 양심적인 미용사를 만난 것 같아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자면서 무의식적으로 긁는 머리를 어찌 중단할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또 반전. 오늘 종일 '두피에 난 뾰루지'와 왼쪽 머리칼에 좀 신경을 쓰며 있어보았더니, 머릿속 상처는 내가 자다 긁은 게 아니고 깬 상태에서 긁어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집에 있을 땐 앞머리도 신경쓰여서 핀으로 질끈 올려꽂고 있는데도 나도 모르게 손이 자꾸 머리로 올라가 여기저기 쑤시며 뾰루지 부분을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예리한 전문가의 관찰력. ㅠ.ㅠ 빌어먹을 이놈의 손버릇, 이참에 좀 고쳐야할 터인데 가능하려나 모르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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