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에 해당되는 글 157건

  1. 2014.03.01 2월에는 1
  2. 2014.02.25 안동 - 원풀이 2
  3. 2014.02.11 종돈과 입춘 부적
  4. 2014.02.03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 2
  5. 2014.01.06 2013 Best 7
  6. 2013.12.24 명화를 만나다_한국근현대회화 100선 8
  7. 2013.12.1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8
  8. 2013.08.28 마지막 4중주 2
  9. 2013.07.29 전주 한옥마을(7/21-22) 13
  10. 2013.07.12 비오는 날 경복궁 4

2월에는

놀잇감 2014. 3. 1. 17:04

 

책 3권을 읽고 영화 2편과 뮤지컬 하나를 보았으며 안동에 다녀왔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2(가브리엘 마르케스 지음/송병선 옮김/민음사) 

이게 뭐가 지고지순한 사랑이여! 콜레라가 수시로 창궐하던 시대의 사랑은 뭔가 좀 더 고귀하길 바란 내가 잘못된 건가? ㅋㅋ 아니, 책 읽기 전에 얼핏 '주워들은' 책에 대한 정보가 오해였을지도...  시대에 대한 고발은 들어있을지 모르지만 남성중심의 꼰대스러움에 종종 거부감이 들었다. 첫사랑을 53년간 기다린 건 맞지만... 자기 할짓 다 하면서 그것도 기다린 건가? 그냥 세월을 보낸 거겠지... 그 집요한 집착과 자기합리화는 어떻고.. 흥!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 돌 하르방 어디 감수광(유홍준 지음/창비)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책장을 덮은 이후 줄곧... 제주도 가고 싶다! 특히나 담에 가면 '오름'을 특별 공략해볼 심산이다.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신경숙 지음/문학동네)

안동 고택에 책이 있길래 밤에 후딱 읽었다. 아주 가벼운 단편집. 소설이 아니고 신변잡기 수필을 읽은 느낌? 시간 떼우기엔 좋았지만 뭐 그닥... -_-; 

 

겨울왕국(Frozen, 2013)

이 영화를 두번이나 보고 수시로 유튜브를 찾아 노래를 따라부르는 조카랑 통 대화가 되지 않아 보긴 했지만, 대체 왜 관객수가 천만까지 넘보는 건지 좀 의아;; 노래가 좋은 건 인정. 그치만 내용도 단순하고, 엘사가 변신 후 허벅지 드러내고 엉덩이 씰룩거리며 걸어나올땐 욕나오던데! 애들 보는 만화에서 그리는 여성의 모습이라는 게 대체 왜 그 모양;;

 

관상(2013, 한재림 감독,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김혜수)

뒷북으로 집에서 봤는데 상영시간이 어찌나 긴지 후반부엔 지루해서 혼났다. 이정재의 수양대군이 매력적인 건 나도 인정하겠는데, 역사가 스포일러다보니 송강호의 열연으로도 어쩔 수가 없더군. 암튼 헐리우드나 충무로나 여배우를 소비하는 방식이 참 짜증난다고 느꼈음.

아 참... 아는 게 병이라고, 진선문(창덕궁) 들어갔는데 경복궁 근정전 나와주시고 ㅋㅋ 근정전 바닥엔 전돌 대신 마루가 깔렸고 (어차피 근정전은 행사 때만 쓰는 공간이지 신하가 왕을 알현하러 들어가는 데도 아니라규!) 과거에 갓 급제한 말단 하급 관리가 감히 편전에서 열린 어전회의에 참석하고(편전에는 3품 이상이던가 당상관만 들어갈 수 있거든!) ㅋㅋㅋ 퓨전사극이니 그려러니 다 넘어가야하는데 거슬리는 게 많았다. ^^;  

 

해를 품은 달(훤-김다현/연우-린아/양명-조휘 출연) 

지인 덕에 스태프 할인으로 엄청 저렴하게 봤기에망정이지 제 돈 주고 봤으면 적잖이 실망하고 열받았을 뻔했다. 원작이 아무리 탄탄해도 창작 뮤지컬의 문제점은 역시나 레퍼토리의 부재. 노래가 하나같이 어쩜;;; 가사도 안 들려, 멜로디도 매력없어, 어쩌라는 건지. 그래도 조각보를 이어붙인 느낌의 무대장치나 한국무용과 판소리 느낌이 돋는 몇몇 연출은 좋았다. 서울 공연 마지막날 마지막회에 객석을 거의 꽉 매운 관객수도 좀 놀라웠고, 휴대폰 꺼내보며 시야 방해하는 관객들도 하나 없더니 계속 기립해 박수치던 그들의 매너도 훌륭. 

 

안동 얘기는 아래 포스팅에 길게~ 적었으니 패스.

한두 달에 한번씩 길든 짧든 여행을 다니면 참 좋겠다.

Posted by 입때
,

안동 - 원풀이

놀잇감 2014. 2. 25. 16:59

2012년 가을에 안동 갔을 때 못 가고 못 보고 못 먹어 아쉬웠던 것들에 대한 원풀이를 얼추 다 하고 돌아왔다. 탱자탱자 놀러다닐 상황은 아니지만 일행의 생일 선물로 다녀온 여행, 마음의 여유가 없어도 노는 건 좋더라. 길고 자세한 여행후기는 생략하고, 그냥 1박2일간 움직인 동선대로 원풀이 목록을 적어볼 생각.

 

1. 일직식당 간고등어 조림

 

아침 9시에 서울을 출발했더니 딱 점심시간에 안동에 도착했다. 먹거리 1순위로 일행과 의견의 일치를 보았던 고등어조림의 위용이다. 익히 맛있단 얘기를 듣고 기대가 높았음에도 정말 맛있었다. 둘 다 밥 한 그릇 뚝딱.

곁다리 반찬도 깔끔하고 맛있는 편이었고, 아주 작은 종지만한 그릇에 주는 식혜도 심히 달지 않고 맛났다.

올라가기 전 점심으로 한번 더 먹고 갈까... 그런 생각을 품기도 했으나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안동역 바로 옆에 있는 일직식당 주소는 안동시 운흥동 176-20. 건물 바로 뒤에 유료주차장에 주차하고 식사 후 도장 찍어가면 무료. 나중 재방문을 대비한 기록차원의 포스팅이다. ㅋㅋ

 

 

2. 퇴계종택

 

도산서원 앞에 도착해보니 주차장이 전방 몇백미터에 또 있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조금이라도 덜 걷겠다는 욕심에 도산서원 입구가 어딘지 찾아보지도 않고 괜히 길을 따라 더 올라갔다가 고개를 넘어 엉뚱하게 먼저 가게 된 곳이다. ㅋㅋㅋ

 

표지판을 자세히 읽지 않아 벌써 홀딱 까먹었지만 1900년대 초에 퇴계의 후손이 지은 집이라는 것 같다. 대청마루에 유리를 낀 문을 단 것으로 보아 근대 한옥건축이 틀림없지 않을까... 짐작만 했다.

 

 

 

 

 

 

 

3. 도산서원

 

두둑한 배를 두들기며 도산서원을 먼저 찾은 이유는 숙소가 도산면에 있었기 때문이다. 안동 시내에서 차로 30-40분쯤 걸리는 거리. 산속으로 꼬불꼬불한 길을 꽤 많이 들어가야 나타난다. 성수기 때는 주차료도 따로 받는 모양이던데, 비수기라서 입장료 1500원만 내고 들어갔다.

 

걸어들어가는 입구부터 어찌나 아름다운지, 저 아래 흐르는 낙동강의 물소리며 주변을 아늑하게 둘러싼 산까지 진짜 명당이로군, 했다. 서원이라지만 한옥의 규모가 그리 크지도 않고, 고색 창연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아기자기했다.

 

하지만 선비문화원인가 뭔가 하는 교육(혹은 수료식?)이 진행중이라 서생 복장을 한 젊은 남녀가 대청마루에 줄지어 앉아있고 도포자락 휘날리는 사부님도 보여서 중심건물은 속속들이 제대로 구경할 순 없었다. 어쨌거나 오래된 툇마루에 앉아 있으려니 마음 뿌듯.

 

왼쪽 사진은 <시사대>였던가.. 정조가 퇴계를 기려 특별 과거시험인 별시를 연 곳을 기념해 세운 전각이라는 것 같다.

오른쪽은 아마도 서고? 초록색 단청을 칠한 덧문이 진짜 오래된 느낌... 

 

 

4. 농암 종택 

 

언젠가 신문에 크게 난 기사를 보고 일행이 찜해 예약해둔 숙소는 농암 종택. 농암 이현보의 후손이 현재 위치로 옮겨다 지었다는데 규모가 대단하다. 드넓은 대지에 집을 띄엄띄엄 앉혀놓아 엄청나게 툭 트인 느낌. 

솟을대문 앞에서 사당쪽으로 바라본 종택 입구 사랑채 왼쪽에 붙어 있는 맨 구석방이 우리 숙소

 

겨울이라 창문에 다 뾱뾱이를 붙여놓아 열수가 없었지만 여름이나 봄가을에 창문을 열면 건너편 기암절벽과 산이 보여 풍광이 대단할 것 같다. 방도 곳곳에 엄청 많고!

 

평일이라 아마 투숙객은 우리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건 완전 야무진 착각이었고, 버스까지 대절해 온 단체손님이 있었다. ㅋㅋ

그래서 밤에 큰방에 모여 노는지 좀 시끄럽긴 했지만, 기특하게도 12시 전에는 행사를 마무리해주더군. 1인당 7천원을 내면 종부가 차려주는 아침밥상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우리도 부탁을 했는데, 단체손님 덕에 밥상을 받는 대신 졸지에 뷔페식으로 먹어야했지만 홈페이지에서 본 반찬보다 훨씬 더 많은 가짓수의 반찬이 나온 것 또한 단체손님 덕분이었던 것 같다. 인간지사는 역시 새옹지마! ㅎㅎㅎ 

8시 반 되자마자 눈꼽도 안 떼고 제일 먼저 밥먹으러 가서 얼른 후다닥 찍어서 흔들렸는데, 맨 마지막에 구워온 간고등어까지 반찬이 무려 15가지! 장아찌 몇 종류는 아예 건너뛰고 한입거리씩만 접시에 담았는데도 저 정도... 담백하고 맛있었다! (누룽밥까지 두 그릇을 뚝딱 해치운 일행은 점심때도 배가 고프지 않다며 정식 끼니를 거부했다. ㅠ.ㅠ 안동 한우 갈비 먹으러 갈 차례였는데! 전날 저녁도 찜닭 먹으러 나갈까 말까 하다가, 귀찮아서 읍내 하나로마트에서 사온 맥주와 안주와 컵라면으로 떼웠으므로... 이번 안동 여행에서도 토속 먹거리-헛제삿밥, 한우갈비, 찜닭-모두 맛보기는 원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가 묵은 방엔 '다실'이 딸려 있었는데 발시리고 추워서 겨울엔 엄두도 나지 않겠지만 여름엔 앞뒷문 다 열어놓고 풍류를 즐기며 차 마시는 게 가능하겠다. 모든 방에 TV는 없지만, 냉장고와 무선주전자와 다기세트가 구비되어 있다고. 도배상태며 침구류도 깨끗했고, 우리가 묵은 '내실'은 4명이 자기에도 넉넉한 크기. 다만 심야전기를 이용한다는 난방은 7시반부터 따뜻해진다고 하여 좀 추운 편. 비교적 따뜻한 날씨였는데도 공기를 덥히려 전기난로를 돌려야했음. 물론 밤중엔 뜨끈뜨끈해졌다. 세탁기가 떡하니 놓여있는 드넓은 화장실도 추워서 겨울엔 샤워하기 무리. 한참 틀어놓으면 뜨거운 물이 나오긴 했지만 다음날 머리도 안감고 모자로 버텼다. ㅋㅋ 아 참, 수건도 가져가야하고(달라면 주긴 한다;;) 헤어드라이어 같은 것도 없다. 한옥고택 체험은 아무래도 겨울엔 무리일지도. 치암고택이나 학인당은 어쩐지 겨울에도 화장실까지 따뜻할 것 같은데...  그야 모를 일.

주소는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을미재 612번지. 054-843-1202

 

 

5. 하회마을

안동시내를 중심으로 동과 서로 뚝 떨어져 있는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우리 숙소에서도 하회마을까지는 1시간 30분 가까이 가야했다. 안동 관광은 욕심 내서 많이 보려면 기동력이 필수인듯.

왼쪽은 아마도 충효당? 오른쪽은 마을 중심에 있는 삼신당의 삼신목. 수령 600년치고는 둘레가 너무 어마어마하게 커서 의아할 정도인데 벌어지며 자라서 그런 듯. 암튼 일행은 삼신목에 열심히 고개를 조아리며 무언가를 빌었다. 무얼 빌었을까...

 

암튼 요번엔 나의 원풀이를 제대로 해주려고 하늘이 도왔는지(?) 지난번에 나룻배만 묶여있던 백사장 나루터에 연신 배가 오가며 부용대 쪽으로 사람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강을 건너는데 30초나 걸리려나... 째뜬 '나름' 낙동강을 건너는 왕복 뱃삯 3천원.  

그렇다고 우리가 부용대 꼭대기까지 올라갈 인물들은 절대 아니고 강 건너편에 있는 옥연정사인가 하는 곳만 둘러보고 나왔다. 오른쪽 사진이 고택체험 숙소로도 묵을 수 있는 옥연정사. 하여간 그래도 뱃놀이까지 했다는 뿌듯함에 막 시(?)도 읊어주고 ㅋㅋㅋ

 

 

 

첫날은 날이 약간 흐렸는데, 다음날은 완전 쾌청화창. 두툼한 겨울 외투가 민망할 정도로 따뜻한 날씨였다.

하회마을 골목길을 돌아나오며 아쉬움에 사진 한 장 더.

 

 

 

 

 

 

 

 

 

 

 

 

 

 

 

 

 

 

 

 

 

6. 병산서원

 

주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병산서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 같다. 하회마을에서 걸어서도 접근이 가능하다지만, 왕복하려면 2시간 반은 잡아야한다고. 차로 찾아가도 꼬불꼬불 비포장도로를 꽤 가야 나온다. 요번에 본 한옥들은 하나같이 다 배산임수, 명당에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캬... 어쩜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곳을 콕콕 집어 집을 짓고 공부를 했을까나. 이런 데서 공부를 하면 공부가 더 잘될까 어쩔까 뭐 그건 시답잖은 생각이 들었다.

 

서원 건축의 '백미'라는 병산서원은 건물의 수가 도산서원보다 훨씬 적은데도 규모가 큰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이 만대루 때문일 듯... 길쭉하고 장엄한 누각이라 어디에서도 한 컷에 안잡힌다. ㅠ.ㅠ 

 

 

 

 

 

7. 맘모스 제과

안동여행 마지막 코스는 대망의 맘모스 제과!

병산서원을 다 돌아보고 났을 무렵 나는 허기가 져서 손이 덜덜 떨릴 정도였는데 ㅠ.ㅠ 간고등어도 싫고 헛제삿밥도 싫고 그저 맘모스 제과 빵으로 달콤하고 행복한 요기를 하겠다는 일행의 '빵심' 덕분에 견과류로 대충 배를 채운 뒤 다시 안동 시내로 달려갔다. 문제는 내가 검색을 대충하는 바람에 주소는 정확했으되 빵집이 대로변에 있지 않다는 걸 몰랐다는 게 함정. "목적지 부근입니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주변 도로를 두번이나 돌다가  '차로는 못 들어가는 골목'이라는 주민의 설명을 듣고서야 찾아들어갔다. ^^;

오후라서 빵이 많이 남았을라나 모르겠다는 주차요원 아저씨의 말씀에 불안했더니만, 헐.. 역시나 '맘모스 빵'은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그나마 좀 남은 치즈브레드와 애플또띠야, 유자파운드를 고른 뒤 커피와 함께 폭풍흡입...  

미슐랭 별점을 받은 빵집이라더니만 커피도 맛있네그려! 배를 채우고 나서야 빵사진을 찍을 생각이 들었는데, 빵집을 나오며 선반을 보니 그나마 있던 빵도 거의 다 떨어졌다. 왼쪽이 생크림치즈가 듬뿍 든 치즈브레드. 냉장고에 넣었다가 담날 먹어도 맛있었다! 안동 사과를 넣어 만든다는 애플 또띠야는 그냥 또띠야 반장에 사과절임을 넣어 삼각형으로 말아놓은 건데 아삭아삭 씹히는 사과와 바삭 담백한 또띠야가 꽤 잘 어우러졌다. 다음날 먹어본 거라 맛이 좀 덜했을 수도 있겠으나 암튼 별로 달지 않아 내 입맛엔 합격. 유자 파운드는 유자청이 콕콕 박혀 있긴 한데 겉에 설탕을 입혀놓아 너무 달았고 크기도 작았다. 가격대비 별로. 그나저나 맘모스 빵을 결국 못 먹어본 건 아쉽다. 또 가야하나... ㅋㅋ

맘모스 제과 앞길은 보행자만 다니는 쇼핑가인 듯. 주소는 안동시 남부동 164번지 

주차는 주변 남부시장 공용주차장에 하고 빵을 만원어치 이상 사면 1시간 무료라는 것 같은데, 그냥 도로변 공용주차장에 대도 완전 저렴하다. 주차비 700원 나왔음! ^^;  

 

이로써 1박2일간 왕복 690킬로미터쯤 되는 안동여행을 신나고 맛나고 뿌듯하게 마쳤다. 간단히 쓴다더니 엄청 길기도 하다. ㅋㅋㅋ

Posted by 입때
,

생전에 아버지는 설날 전에 은행에 가서 꼭 만원짜리 신권을 바꿔다가 세뱃돈을 주셨다. 95년부터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머니가 참 공교롭게도 꼭 한해 간격으로  돌아가시고 나자, 설날 세배드릴 어른들이 확 줄어든 것도 슬펐지만 천원짜리 몇장 푼돈이라도 재미삼마 받던 세뱃돈을 주실 분은 부모님 뿐인 것도 못내 섭섭했다. 직장인이 되고부터 어른들께는 세뱃돈을 드리면서 세배하는 거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마치 물물교환이라도 하듯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에게도 주섬주섬 쌈짓돈 챙겨주시는 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하여간 아버지는 머리 큰 자식들에겐 빳빳한 만원짜리 한장 세뱃돈으로 건네면서 '종돈'(種돈)으로 지갑에 넣고 다녀라, 하셨고 정말로 나는 그 씨앗 돈이 무럭무럭 새끼를 치면 좋겠다고 바라며 늘 다음해 설날까지 지갑에 모시고 다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첫 설날, 엄마는 손주들 세뱃돈 봉투만 챙길 뿐 삼남매와 조카들에게 주는 '종돈'은 준비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게 어딨어!! 나도 세뱃돈 받고 싶단 말이야! 늙은 딸은 앙탈을 부렸고, 아들 며느리들도 아빠가 하시던 일 엄마가 그냥 이어가기를 바랄 거라고 계속 꼬드겼다. 엄만 어차피 세뱃돈 남는 장사잖아! 협박도 좀 하고...

 

그 덕에 올해도 설날 빳빳한 만원짜리 한장이 든 봉투를 받았고, 작년에 받은 종돈 옆에 나란히 지갑에 넣어두었다. 종돈이 두 장이면 새끼를 더 많이 칠 지도 몰라, 이러면서 ㅋㅋ.

 

어쩐지 미신덩어리가 되어버린 듯한 내 지갑엔 요번 입춘 부적도 새 걸로 개비되었다. 정작 입춘 날엔 낙상 후유증으로 절에도 못가고 끙끙 앓느라 식구들 부적 챙겨놔 달라고 전화만 한 뒤, 노친네가 며칠 지나고 찾아오더니 내껀 작년부터 특별히 삼재 부적이라며 시뻘겋고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아오, 진짜...  교회 다니는 둘째 며느리 것만 빼고 본인이며 자식들 부적을 갯수대로 다 받아와서는 다들 빨랑 바꿔줘야 하는데... 전전긍긍하는 노친네를 보자면 짜증스럽다가도 결국 피식 웃음이 난다. 동생들도 다들 별 군말 없이 부적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이유는 미신을 믿어서라기보다는 그냥 노친네 마음 편하시라고 그러는 거겠지.

 

작년에는 절에서 입춘첩도 받아와 현관문에 붙여두었던 터라, 문 여닫고 드나들 때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한문으로 적혀 있는 한지를 보며 괜히 기분이 좋았으나, 올핸 입춘첩 받아오면 엄청 추웠으니까 거꾸로 붙여야지 생각했던 게 무색하게도 부적만 챙겨준 모양이다. 한해 무사태평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붙이는 입춘첩이나 부적이나 지갑에 돈 많이 들기를 바라는 종돈이나 어떻게 보면 다 터무니 없는 미신이고 허튼 짓인데, 또 한편으론 재미나고 정겨운 풍습이니 손가락질 할 것만도 아니다. 종돈이든 아니든, 이 나이에도 새배하고 세뱃돈 받으면 그저 흐뭇한 걸 어쩌겠나. 

Posted by 입때
,

 

2013년 마지막에 본 전시가 김환기였다면, 2014년 들어 처음 본 전시는 박수근.

 

동시대 화가이다보니 탄생 연도가 한해 차이였고 당연히100주년 기념전도 나란히 붙어 열렸다. 덕수궁에서 하고 있는 근현대회화 100선에도 박수근 그림이 몇 개 포함되어 있었지만, 위작 논란에도 휩쓸렸고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빨래터>를 비롯해서 내가 제일 탐내는 <아기 업은 소녀> 그림까지 모조리 한꺼번에 구경할 기회를 그냥 넘길 순 없지. 스케치 포함 작품 수가 120점이나 된대고, 그 중 유화만도 90여점이라 몇년전 45주기 회고전 때보다 훨씬 대규모다.

 

3월 16일까지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하고, 입장료는 만원. 월요일은 당연히 휴관인줄 알았는데 전시기간 중 무휴라고 하고, 매주 수요일엔 오후 9시까지 관람가능하단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수요일엔 늦게까지 열고 매월 마지막 수요일엔 무려 '무료' 입장이라던데!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모르지만 한번 노려볼만 하다고 생각;;)

 

가나아트센터 4층까지 전시실 네 군데를 빼곡하게 채운 박수근의 그림들은 기대대로 정겨웠고, '예쁜' 그림을 탐닉하는 나는 특히 아직 화강암의 질감이 너무 두드러지지 않고 색채감이 살아있는 초창기의 아련한 그림들이 좋았다. 그 유명한 <빨래터>도 파스텔 톤 저고리 색깔이 예쁜 그림과 무채색 느낌만으로 처리한 작품이 2개더군.

 

박수근이 같은 주제로 워낙 많은 그림을 그려서 똑같은 제목이 많았다. 박수근 그림 싫어하는 한국사람은 없을 거라고들 하는데, 그 이유는 조부모나 부모의 옛 추억을 공유한 세대에 공통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시장 좌판에 바구니를 놓고 앉은 여인들이나 광주리를 이고 나무 아래를 걷는 모습은 어쩐지 딱 우리 할머니의 모습처럼 느껴지고, 상고머리를 한 아기 업은 소녀도 10살 차이 나는 막내 이모 업고 골목길에서 서성대는 울 엄마의 옛모습과 겹쳐지니 말이다. 

 

[노상] 1957년

내가 국민학교 다닐때까지 여전히 쪽머리를 하고 있던 친할머니도 부산 피난시절에 아마 이 그림과 비슷한 모습으로 생선행상을 하지 않았을까. 나의 아버지가 평생 등푸른 생선과 멸치 비롯해 비린 생선을 못먹게 된 것도 어쩌면 졸지에 생선장수를 나선 어머니를 마중다니며 비롯된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비린내가 죽도록 싫어서 엄마의 생선광주리를 받아들면 입으로 숨을 쉬면서도, 깜깜한 길 홀로 돌아올 어머니를 매일이다시피 마중나갔다는  열두살 장남의 기특함을 할머니는 평생 나한테 자랑하셨었다.  

 

ㅎㅎ 그건 그렇고 박수근이 주로 그린 노점상은 과일 행상과 소금장수인듯. 아무렴... 생선장수 아줌마는 저렇게 새하얀 치마를 입고 시장에 나갈 수가 없단 말이지! 울 할머니는 몸빼바지에 거무티티한 나이롱(!) 치마를 덧입었다는 것 같다. 어쩌면 <고목과 행인>에 나오는 이런 모습? ㅋ

 

[고목과 행인] 1960년대

김환기 100주년전에서도 브로셔가 없어서 심술을 부렸었는데, 박수근 100주년전에도 브로셔는 없었다. 무료 브로셔는 관람객들이 휙휙 가져다가 보고 금세 버리기 때문에 안만드는 게 갤러리들의 추세인가? 쳇...

어쨌거나 브로셔 고이 모셔와서 한참동안(어쩔 땐 1년 내내) 벽에 붙여두거나 세워놓고 감상하는 나 같은 사람은 어찌나 서럽고 짜증나는지 원. 3만원씩하는 기념 화집을 대신 사라고 강권하는 것 같아서 계속 툴툴거렸다. 12장짜리 기념 엽서도 낱장으론 안팔아서 선뜻 사기 부담스러운 것도 불만. 몇 개만 골라서 살 수 있게 하면 좀 좋은가! 흥!

 

게다가 작품 설명에 죄다 작품 제목과 연도만 기록되어 있고 그림 재료에 대해선 설명이 없어, 아니 뭐 이렇게 불친절한 전시가 다 있나 구시렁거리다가 끝내 안내원에게 묻고 말았다. 왜 유화인지, 목탄인지 그런 설명은 안 적혀 있나요?

그랬더니만, 어차피 박수근 화백의 작품은 캔버스에 유화 아니면 종이에 연필 아니면 목탄인데, 워낙 오래된 그림들이라 작품별로 재료를 확실하게 기록해둔 것도 없어서 부러 적지 않았단다. 아... 박수근도 김환기 못지않게 아내와 금슬이 좋긴 했지만, 김환기의 아내 변동림(김향안)처럼 아내가 철저한 매니저 역할까지 한 건 아니었겠구나 싶었다. 박완서의 소설에도 등장하듯, 박수근은 생활고로 미군PX에서 초상화가로 돈을 벌었고 당연히 화구 구입에 들일 돈이 많지 않았으니 작품 사이즈도 그리 크지 않다. 딱 엽서만한 1호짜리 캔버스에 그린 그림도 여럿 본 것 같다.

[아기 업은 소녀] 캔버스에 유채, 1953년, 28x13cm

어쨌거나 이번 전시를 보면서도 작품을 딱 하나 가져갈 수 있다면 과연 나는 어떤 그림을 선택할지 쓸데없이 계속해서 고민을 했는데, "당연히 <빨래터>를 가져야지!"라고 하던 일행과 달리 나는 크기도 아담하고 정겨운 <아기 업은 소녀>로 정했다. ^^; 역시나 똑같은 제목으로 여럿이나 되는 작품 중에서 내가 좋아라 하는 <아기 업은 소녀>는 바로 이것.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전시장 밖 포토존에도 저 소녀가 (조악하나마;;) 제작되어 있었다. ㅎㅎㅎ 작품 사진은 못찍게 하니 아쉬운 대로 다른 층 포토존에 마련된 화가와 작품 형상도 찍어왔음. 

 

화가 뒤편 벽에 걸린 그림은 [나무와 두 여인]이다

 

꽤 많은 작품 이외에도 그림을 팔고 사느라  주고받은 편지며 관련 기사 스크랩, 직접 그린 연하장도 전시장 한쪽 구석에서 소소하게나마 구경할 수 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박수근 본인 입으로도 자기 작품은 소재와 정서로 보나, 화강암의 질감으로 보나 서양화가 아니라 한국화라고 했단던데(정확한 말인지 벌써 가물가물, 암튼 뭐 이 비슷한 맥락이다;; ㅎㅎ) 그 말이 딱 맞다. 고향인 양구에 박수근 미술관이 있다니, 진품이 늘 상설 전시되고 있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또 박수근의 그림이 그리워지면 언제 한번 가보고 싶다고 느꼈다. 전시장 곳곳에 박수근을 회고하는 박완서의 글귀가 있기도 했지만, 박수근과의 일화를 소설로 엮은 <나목>도 한번 더 읽어봐야 하려나... 

 

Posted by 입때
,

2013 Best

놀잇감 2014. 1. 6. 23:21

Best 포스팅을 빌미로 한해정리를 한하고 넘어가면 새해를 제대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기분은 정말... *.*

괜스레 일감 진도 잘 안나가는 것 같다. 얼른 마무리하고 열심히 일해야지!

 

 

 

Posted by 입때
,

한국근대미술은 덕수궁관에서 하도 여러번 전시해줘서 이제 볼만큼 봤다고 생각했지만... ^^; 그래도 또 보러가자는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근현대회화 100선엔 또 어떤 작품들이 선정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기념전이니 뭔가 이어서 봐주어야할 것도 같았다. 역시나 낯익은 작품들이 많아서, 오지호나 장욱진처럼 내가 애정하는 화가들 그림은 또 유심히 신나게 들여다보았지만, 대개는 설렁설렁 둘러보았다. 일요일이라서 사람들이 워낙 많아 쾌적한 관람환경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100선'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만큼, 확실히 유명한 작품을 알현할 수 있었다. 이중섭의 <황소>라든지, 박수근의 <빨래터> 같은 작품 말이다. 박수근이나 이중섭 그림은 꽤 열심히 본 것 같은데도 아래 딱 한장 찍어온 미술관 사진에서 왼쪽 현수막 그림을 본 기억이 없다. ㅠ.ㅠ 자주 볼 수 없었던 박수근의 <골목 안> 그림이 틀림없는 것 같은데... 아우 젠장. 현수막 오른쪽 그림은 김기창의 <아악의 리듬>이다.

 

이응노의 <향원정> 그림이 좋아서 그림파일을 검색했더니만 김기창 그림과 같이 뜨네.

 

이응노 [향원정] 1959년, 김기창 [아악의 리듬] 1967년

 

그밖에 또 인상적이었던 그림은 최영림의 <경사날>. 어째 옛날 연하장에서 많이 본 그림인 것도 같지만 아기자기한 귀여운 느낌이 좋았다.

 

최영림 [경사날] 1975년

 

천경자의 <길례언니> 그림도 반가웠고, 변관식의 산수화도 새삼 느낌이 좋았다. 김환기 작품은 조만간 환기미술관에 100주년 기념전(올해 말까지한다!)을 보러 갈 거라 상대적으로 좀 소홀하게 봤는데, 꽤 크고 유명한 작품들이 너댓개나 전시되어 있었다.

 

2014년 3월 30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이고, 입장료는 6천원(덕수궁 입장료 포함). 박수근과 이인성, 이중섭 작품은 일부가 1월말이나 2월초까지만 전시되고 교체된단다. 그러니 시간이 좀 넉넉히 남긴 했어도 내년 1월 중으론 가봐야 제대로 100선 작품을 다 볼 수 있을 듯. 현대미술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근대작품이 많고, 김환기의 추상화 같은 건 나도 좀 좋아하는 편이라 현대미술이 늘 어렵고 벅차다는 느낌이 덜했다. ^^; 아직 이름 모르는 화가들도 많은 데다, 초중고 미술교과서에 들어있는 작품들을 몽땅 실물로 본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 같아서, 한번 더 볼까 말까... 그러는 중. ㅋㅋ

Posted by 입때
,

공사중 불이 나질 않나, 종친부 담장 문제로 전주이씨와 싸워대질 않나, 계속 말도 많고 탓도 많았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드디어 개관을 했다. 11월 개관 직후엔 사람들이 엄청 몰렸대고 인터넷 예약이 아니면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해서 (내가 바쁘기도 했고) 12월 들어 별렀다가 가봤다. 경복궁 옆 길가에서 보면 옛날 학교 건물 같기도 하고 오래 된 창고 건물 같기도 해서 볼품없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는데(있던 건물 그대로 쓰려니 어쩔 수 없었겠으나;;;) 안에 들어가보고선 일단 건물이 맘에 들었다. 사방으로 툭툭 트여 시선 가리는 거 없고, 지하층인데도 통창이 있어서 환하고, 유리창 밖으로 너른 마당 보이는 거 좋아! (그런 의미에서 종친부 담장은 원래 계획대로 안 세웠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의견. 그러나 뭐 일부만이라도 세우기로 했다지 아마?)

 

건물이나 공간은 그런대로 흡족했던 반면 특별 기획전시는 한 마디로 기대에 좀 못미쳤다. -_-;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물론 가장 기대가 컸던 서도호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은  좋았고, 그래서 통합관람권 7천원이 하나도 안아깝다고 여겼지만, 개막 특별전이면 앞으로도 계속 상설전시할 작품들도 엄청 유명한 대작들을 좀 턱턱 가져다 놨어야하는 게 아닐까나? 전시실이 꽤 많다고는 하지만 1층과 지하 전시실 돌다보니 다리만 아프고 금세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2층엔 굳이 미술관 공사과정 장면들과 공사소음까지 재현해놓은 공간을 마련해놓았던데, 발상 자체는 기발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나 같은 사람은 싫다규~ ㅋㅋ

 

특별전시를 다 포함한 통합관람권은 7천원. 각각의 전시를 3천원, 5천원으로 볼 수도 있게 해놓아, 전시실 입구마다 표를 보여달라고 하는 게 좀 성가셨다. 가방과 소지품은 디지털도어락 달린 무료 사물함에 넣어두고 다녀서 홀가분했지만, 핸드폰이랑 티켓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하다가 결국 일행 하나는 전시장 바닥에 표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통합권은 팔찌 같은 걸로 대체해야 하지 않을까, 직원에게 툴툴거렸더니 그렇게 건의 해달라고...  티켓 떨어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한가보다.

 

1층에 아마도 제일 큰 제1전시실이 있고 거기에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이라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거대한 도마뱀 조형물이 인상적이었고, 미래의 로봇이었던가... 새하얀 여체의 기계식 몸매가 멋졌던 이불 작가의 조각도 좋았다. 전시실 맨 안쪽 구석에 노숙자(?)를 형상화해놓은 작품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귀찮아서 이날은 도슨트 설명을 안듣고 그냥 내키는 대로 돌아다닌 탓도 있지만, 대체 뭐가 <시대정신>이라는 건지 주제가 딱히 와닿지는 않았다. 조선총독부 건물이며 숭례문을 소재로 삼은 작품들도 그렇고, 뭔가 중구난방이란 느낌... 이 시대가 워낙 개판이란 의미인가? ㅋㅋ 

 

설치미술 말고는 죄다 작품 사진을 못찍게 해서 별로 사진도 없다. 남들은 몰래몰래 다 찍는다면서 일행 하나도 어느틈에 몇 개 찍어오긴 했던데, 뭐 굳이 찍지 말라는데 싫은 소리 들을까봐 조마조마하면서 도촬까지 할 마음이 드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p 뭐니뭐니 해도 내가 기대했던 서도호 작품은 맘껏 사진 찍어도 되는 거니까 ㅎㅎㅎ

 

 

작품 내부에서 찍은 사진 작품 전체 외형은 위층에서 내려다보아야 다 보임

서도호의 작품은 지하1층 중앙에 '서울 박스'라고 하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리움 미술관 전시 때도 본 적 있는 미국 유학시절의 3층짜리 서양집 안에 다시 성북동의 한옥집이 들어앉아 있는 모양새다. 둘 다 실물 크기라는 것 같다. 제목이 왜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속의 집>이냐면, '한옥을 품은 양옥, 양옥을 품은 서울 박스, 서울박스를 품은 서울관, 서울관을 품은 서울'까지 공간이 확장되는 개념을 담은 거라서 그렇다고...  상설전시가 아니라서 5월 11일까지만 볼 수 있단다. 끝나기 전에 한번 더 가서 봐줘야지, 라고 마음 먹었다.

 

서도호의 작품을 한바퀴 돌아나오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청아한 가곡이 들려왔다. 어머나, 여긴 전시장에 음악도 트나보다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었고 <리밍웨이>라고 하는 대만 작가의 <소닉 블로섬>이라는 작품이었다. 병환 중인 어머니에게 슈베르트의 가곡을 틀어드리면서 느꼈던 교감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관객들과도 느낌을 교류하려했다는 것 같다.

 

리밍웨이, 소닉 블로섬, 가운데 서 있는 분이 성악가

전시장 통로 같은 곳에 의자 하나와 나무 틀 같은 게 덩그라니 놓여있는데, 시간대 별로 진한자주색 가운을 입은 성악가가 나타나 직접 선택한 관객 한 사람을 의자에 앉히고 혼자만을 위한 노래를 들려준다. 남녀 성악가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노래를 하는 듯...

슈베르트의 가곡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이날 처음 알았다. 뭔가 괜히 울컥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작가의 어머니가 아팠을 때 들려드렸다는 글귀를 보았기 때문만은 아닌듯...),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스피커로 흘러나온 아리아를 들은 죄수들이 잠시 느꼈을 자유의 희열이 뭔지 알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암튼 천장 높은 전시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저 성악가의 목소리가(앳된 얼굴로 보아 어쩐지 성악전공 학생 같다고 짐작했음) 참으로 좋아서, 다른 전시 보다가 노래소리 들리면 다시 달려가 옆에 서서 구경하곤 했다. 그치만 만약에 성악가가 나를 콕 집어 저 의자에 앉히겠다고 하면, 아마 난 얼굴 뜨겁고 민망해서 처음부터 거절하거나 제대로 음악을 감상할 수도 없을 것 같다. ^^;

암튼... 서울대 동문회 하냐는 뒷말을 들었다는 1, 2관 전시에서 시큰둥하고 애걔걔 싶었던 마음이 서도호 작품과 슈베르트 가곡 작품 딱 두 개로 무마되는 기분이었다. 

 

리밍웨이는 이 <소닉 블로섬>(굳이 번역하자면, 소리 꽃, 음향 꽃라는 뜻인데, 또 다른 작품과의 연계성도 있고 하니 번역해서 제목을 달아주지 그랬나 싶었다. '블로섬' 정도는 누구나 아는 영어인가? -_-;;) 보다도 <움직이는 정원>이란 작품으로 더 언론이나 블로그계의 조명을 받은 것 같다. 별것도 없는 길다랗고 시커먼 콘크리트 틈새 같은 데 진짜 꽃을 꽂아놓고 관객들이 집어가게 해놓았기 때문이다. 요는 그렇게 집어간 꽃을 본인이 갖는 게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 주면서 또 다시 교류와 소통을 하라는 거란다. 그런 경험을 sns 같은데다 남기는 게 조건이라던가.. (작품 설명 자세히 안 봤음 ㅋㅋ)

 

암튼 수시로 수백 송이씩 꽃을 꽃아놓아도 워낙 관객들이 많으니, 꽃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더러 봤어도 작품에 꽃이 꽂혀있는 장면은 한번도 보질 못했는데 부지런한 일행이 어느 틈엔가 한 송이 뽑아와 내게 바쳤다. ^^; 낯선 사람 아니면 뭐 어때.. 이러면서. ㅋㅋ

사실 남들 들고 다닐 땐 거베라 조화인가보다 했는데, 실제로 받고 보니 철사로 줄기를 튼튼하게 버텨놓은 생화였다. 줄기가 엄청 길어서 오래 들고다녔더니 자꾸 부러져 줄기는 점점 짧아지고, 부러진 줄기는 버릴 데도 없어서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자니.... 어느 순간 꽃이 짐스러워지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이 사진을 기념으로 남기고는 주변 인물을 물색하다, 어쩐지 예뻐보이는 커플을 골라 아가씨한테 불쑥 건네주었다. 엄청 좋아하며 고맙다는 아가씨에게, 속으로 약간 미안하긴 했지만 뭐 작가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교류가 아니겠냐며 돌아섰다.

 

 

 

 

고대 화석 같기도 하고, 심해 생물체 같기도 한 이 작품은 최우람 작가의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 ^^;

중앙홀 천장에 매달려 있는데 저 갈비뼈 같은 돌기들이 아주 유연하게 움직이며 그림자도 달라져서 신기해하며 한참을 구경했다. 첨단 과학기계문명과 고고학적인 상상력의 만남이라나 뭐라나.. 그랬던 것 같다. 이 작품은 그래도 내년 11월까지 전시 예정.

 

 

 

 

 

 

 

'타시타 딘'이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제목도 안 적어와서 까먹어 모르겠다. 7명의 큐레이터가 7명의 작가를 선정했다던가 하던 <연결-전개> 전시 중 하나였는데, 깜깜한 전시실 저 끝에서 영상물이 계속 돌아가고 바닥에 길쭉한 방석 같은 걸 놓아 앉아 쉴 수 있게 해놓은 게 좋아서 꽤 오래 다리를 쉬었다. 그래서 일부러 내 발도 같이 찍었음. ㅋㅋ  

 

 

그밖에 <알레프 프로젝트>라고 해서 도무지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신개념이론의 현대미술 작품들이 있었는데 전기고문이 바로 이런 거겠구나 싶게 계속 스파크가 터지는 깜깜한 방도 있고(나는 그 안에서 5분도 못 버티겠다 싶어서 그 전시실 담당 직원이 불쌍할 정도였다), 이상한 액체를 담아 특수섬유로 만들어 사람이 다가가면 촉수처럼 막 움직이는 거대한 샹들리에 같은 작품도 있었다.

 

새빨간 고딕체 글씨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듯한 장영혜중공업 프로젝트도 나로선 난해했고....

어우.. 난 역시 현대미술은 어려워서 잘 못보겠어, 라는 좌절감을 안겨주는 작품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

 

 

 

 

암튼 그래서 빙글빙글 전시실을 한바퀴 다 돌고 나선 체력 완전 방전. 씩씩한 일행들이 더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자꾸만 앉아 쉴 곳을 찾고 있었다. 전시장 안에 벤치를 마련해놓은 곳도 있는 건 반가웠지만, 서울박스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자리잡은 전시장 사이사이마다 쉴 곳이 있진 않았음. 날씨가 춥기도 했지만 그나마 지하 공간 안마당은 뭔가 공사중이라 출입금지.

 

그래도 날씨 따뜻해지면 나가서 쉴 수 있을 것 같아 사진 한방 박아왔음. 오른쪽은 어느 구석에 있던 아주 푹신한 소파. 전시장을 죄다 돌고 났을 즈음엔 다리허리가 너무 아파서 저 공간이 제일 마음에 든다며 오래도록 처박혀 일행을 기다렸다. ㅎㅎ

 

이날 가장 큰 불만사항은 카페테리아가 로비 밖에 있다는 것! 전시장은 입구와 출구도 달라 재입장이 안되기 때문에, 전시 보다가 카페인을 충전하고 다시 관람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아닌가! 아 젠장. 3시간 가까이 가열차게 전시를 구경한 나는 어차피 볼 만큼 봤으니 퇴장을 선언했으나, 뒤늦게 합류한 일행 하나가 전시를 절반도 못본 상황이라 여차하면 싸울 태세였는데 ^^; 직원이 융통성을 발휘하여 그럼 다녀오시라고 허락해주었다. 앞으로도 전시 보다가 카페 들락거리는 문제는 좀 개선이 되어야할 듯.

 

암튼 아직 초창기라 도서관도 디지털아카이브도 개장을 안했다는 것 같다. 따뜻한 봄쯤 되면 죄다 이용할 수 있으려나. 그런 기대를 안고 나왔음.

 

정명우, [움직이는 바닥에게] 2013/12/6

인사동으로 이동하려고 마당을 뒤쪽으로 가로지르려니 마침 아트선재 앞에선 행위예술이 준비중. 트럭에 온갖 기계와 장비를 올려놓고 퍼포먼스를 벌이는 <움직이는 바닥에게>란 작품. 춤도 출 거라면서, 시간 되면 구경하고 가라기에 서서 좀 구경했는데 ㅋㅋㅋ 춤이 아니라 수줍은 율동 수준. ^^; 마지막까지 참 현대 예술은 어렵구나야....

 

Posted by 입때
,

마지막 4중주

놀잇감 2013. 8. 28. 22:24

 

 

주변에서 이 영화 좋다는 말이 꽤 들려왔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시는 은사님 한분은 자진해서 영화 상영 후 토론에 패널로 나가시기도 했대고, 어느 이웃은 '내 인생 최고의 영화'라고 손꼽기도 했다. 내가 클래식에 무지한 게 보러 가기 전부터 염려스러웠고, 영화 속 연주를 들으며 나도 귀가 섬세해 악기의 소리를 다 구분해가며 감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웠지만, 그런 우려나 안타까움과 별개로 영화는 좋.았.다.

 

까닭을 알 수 없이 여러 장면에서 와락 눈물이 났고 불꺼진 객석에서 수많은 자막이 올라가는 걸 보며 앉아있는 동안에도 눈물이 솟았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라도 한번은 더 봐야하나 어쩌나, 또 보면 진이 더 빠지는 건 아닌가 지금도 생각이 많고 정리도 잘 되질 않는다. 일단은 그런 마음이라고 실토하려고.  

 

 

 

 

Posted by 입때
,

청양 갔다 온 후기도 마저 다 써야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전주 다녀온 후기부터 마무리할 작정이다. 청양은 남이 정한 행선지엘 반강제로 따라 간 거고, 전주는 내가 가고싶어서 간 데라 확실히 만족도와 감상이 다르다. 1박2일이라지만 엄밀히 따지면 전주에 딱 24시간 머물렀던 여행은 한마디로 참 좋았다. 날씨가 너무 뜨거웠던 점만 빼고. ^^;

떠나는 날 서울 날씨는 비가 오락가락했고, 다음날부터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신발이며 옷을 '우천용'으로 준비했으나 그건 나의 오판이었다. 전주 터미널에 내리니 햇빛은 쨍쨍 한낮 기온은 32도. 숨이 턱 막히고 조금 걸으면 맨살 드러난 발등이 따끔따뜸거릴 정도였으니 체감온도는 훨씬 높았을 듯. 반바지를 싸갔어야 했는데!

터미널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러 가면서 제일 먼저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바로 이것.

터미널 입구 인도에 네모난 얼음을 세워놓았다. 내가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자 지나던 아저씨 한분이 시원하게 얼음을 만지고 가야 복받는다고 한 마디 던지셨다. ㅋㅋㅋㅋ 난데없는 얼음덩이 하나로 전주의 첫인상이 정해졌다. 뭔가 소박하고 꾸밈없는 느낌?

전주 한옥마을을 손바닥처럼 훤히 꿰고 있는 일행을 따라간 거라 난 그저 가자는 대로 가고 먹자는 대로 먹기만 하면 되었던 이번 여행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면 대부분 내가 온갖 계획을 세우고 정보를 검색하고, 의견을 조율하고 했었는데 그런 과정이 전혀 필요없으니 진짜로 놀고먹는 편안한 인생!

첫 행선지는 60년 전통의 풍년제과였다. 그 유명한 수제 초코파이와 전병을 먹어줘야 하기 때문. 안동 여행 때 맘모스 제과엘 못 가본 것이 천추의 한이었던 나는 희색이 만면했다. 네거리에서 택시를 내려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정말로 관광객들이 줄줄이 택시에서 내리거나 걸어와서 풍년제과 안으로 들어갔다.

네 종류의 전병이 있다는데 일행이 추천하는 대로 생강전병과 땅콩전병을 고르고 초코파이를 집어들어 계산대로 갔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웬만한 건 셀프란다. 종이백에 전병과 빵을 담는 것도, 계산 후 튀어나온 영수증을 집어가는 것도... 주인도 손님도 그런 걸 쿨하게 이해해주는 분위기.

풍년제과에서 한옥마을까지는 한 블록 정도. 슬슬 걸어가면 된다. 나중에 알고보니 전동  성당, 풍남문, 청연루, 경기전, 남부시장... 내가 대강이나마 가볼만한 곳으로 꼽아두었던 곳은 다 걸어가면 되는 거리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아이 좋아라. 게다가 전주는 좁아서 택시로 그 어디를 가도 만원이 넘지 않는단다. 택시도 많아서 쉬 잡히고 우리가 다닌 웬만한 데는 요금이 3-5천원 사이. 시내버스 노선까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수제 초코파이와 전병을 맛볼 생각에 흐뭇해하며 일단은 한옥마을 고택에 잡아둔 숙소로 향했다. 그곳 역시 일행이 대여섯 번 이상 묵어보아 검증된 한옥. <학인당>이란 곳인데, 내 마음에도 꼭 들었다!

 

왼쪽 사진은 솟을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광경이고, 오른쪽은 별채 앞 마당에서 보이는 안채의 옆모습. 한달전에도 학인당에서 묵었던 일행은 쪽문을 들어서자마자 비명처럼 외쳤다. 아니, 잔디는 언제 깔았지? 전통적으로 잔디는 무덤에나 입히는 것이고, 한옥마당과는 좀 안어울리는 것이 사실. 게다가 '겨우' 2주전에 심었다는 잔디는 모발 이식해놓은 것마냥 좀 흉측했다. ㅠ.ㅠ 어쨌거나 나는 안채, 사랑채, 별채 한옥건물이 모두 다 예뻐서 그저 헤벌레. 

방과 화장실 모두 깔끔했고 마련되어 있는 이부자리도 정갈했다. 오른쪽 사진이 우리가 묵은 별채의 모습인데 문이 열려있는 맨 끝방에서 우리가 묵었다. 두명이 자면 딱 맞을 한칸짜리 방이다.

뙤약볕 속에서도 한옥마당엔 선들선들 바람이 일었지만 그래도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좀 쉬며 풍년제과표 전병과 초코파이를 시식했다. 전병이야 옛날부터 '센베이'라고 알고 있던 양과자 맛이라 크게 새로울 게 없었는데, 초코파이는 견과류도 씹히는 것이 정말 맛있었다. 단 거 안좋아하는데도 입가에 초콜릿 묻혀가며 순식간에 흡입했음.

다음 코스는 태조의 어진이 있다던 경기전. 입장료 천원 내고 들어가야 한다. 다른 때 같았으면 패스~ 했을 곳이었지만 궁궐 공부에 필요할 것 같아 내가 가고 싶다 했었다. ㅋ 조선의 왕 가운데 어진이 남아있는 사람은 딱 셋뿐이다. 태조, 영조, 철종. 그나마 철종은 불에 타다가 일부만 남았다지. 나머지 어진은 죄다 후대에 상상하여 그린 것들이라는데도 떡하니 '어진박물관'에 여러 왕들의 어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오로지 경기전 정전에 봉안된 태조의 어진. ^^; 드물게 푸른색 곤룡포를 입고 있다잖은가. ㅎㅎ

그밖에도 담장 안에 전주이씨 시조의 사당과 예종의 태실이 어디엔가 있다는데 거기까진 가보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다던 전주사고에 올라가본 걸로 만족. (그러나 옛 건물인 줄 알았더니 현대에 복원한 것이라고.. ㅋㅋ)

 

 

 

전주사고 제기고

전주사고도 그렇고 제기 창고도 그렇고 물건을 오래 보관하려면 바람 잘 통하게 전각을 이층으로 지어야하나보다.

 

경기전을 나서는데 저 멀리 전동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기는 했지만 일단은 너무 덥기도 하고 일요일이라 미사 중일 것 같아 다음날 가보기로 했다. 서울엔 배롱나무가 이제 조금씩 피기 시작하던데 전주엔 가는 곳마다 배롱나무 꽃이 색색깔로 만발해 정말 예뻤다.

 

 

 

 

 

 

일행이 계획한 다음 행선지는 한방체험관(우석대에서 운영하는 것 같았음) 족욕. ^^; 아토피 조카를 위하여 수제 비누도 사야한다는데(비누도 하나에 5천원, 족욕 체험료도 5천원. 족욕하는 물에 뭔지 모를 한약봉지를 하나 풀어준다) 월요일엔 문을 닫는다고. 더위에 헉헉대다 시원한 에어컨 켜진 실내에 들어가 다시 또 따뜻하게 족욕을 20분쯤 하고 나자 피로가 확 풀렸다. 초코파이도 먹은 데다 더워서 입맛이고 뭐고 다 달아났다던 말이 무색하게도 좀 쉬었다고 다시 전투적으로 저녁밥 먹을 생각이 들지 뭔가. 

아래 오른쪽은 무엇보다도 밑반찬이 맛있어서 꼭 가야한다는 '나들벌'의 동태찌개 상차림이다. 반찬 종류가 더 많은데 왼쪽으론 좀 짤렸다. 찌개가 8천원, 한정식은 만원이던데 한정식을 시켰으면 어떤 반찬이 더 나왔을지 궁금했다. 최명희 문학관 바로 뒤에 있는 식당인데, 이미 문을 닫은 최명희 문학관은 다음날 가보든지  하자고 했으나 결국 담너머로 보는 걸로 그쳤다.  

최명희 문학관 8천원짜리 동태찌개의 위용 ^^

땀흘리며 저녁밥을 배불리 먹고 나니 밤거리 구경이고 뭐고 일단 쉬고 싶은 마음 뿐. 캔맥주 하나 사들고 숙소로 향했다. 시원하게 기네스 한잔 하면서 첫날 일정 끝. ^^;

돌아다녀 본 바에 따르면 전주 한옥마을엔 고택을 숙소로 개조한 곳이 꽤 여러곳 있었고 규모도 다양했다. 나야 뭐 처음 가보는 곳이니 비교가 불가능하고, 전주 고택에선 다 아침밥을 주는지 어쩐지도 모르겠는데 학인당의 장점은 종부가 직접 아침상을 차려준다는 점이라고 했다. 8시 반쯤 행랑채를 개조한 듯한 공간으로 밥먹으러 오라고 종부께서 직접 방마다 부르러 다닌다. ㅎㅎㅎ 우리가 간 날은 세 팀밖에 없어서 단촐하고 좋았는데, 성수기에 방이 다 차면 몇 차례로 나누어 순서대로 먹어야한다고. 

솟을대문과 안마당 학인당 아침상

둘쨋날 하늘은 더욱 맑아 아침부터 공기가 뜨끈뜨끈했다. 그런데 이날 서울경기지방엔 물폭탄이 쏟아지고 있었다는;; 우리나라 땅 참 넓다니깐! ㅋㅋㅋ 오른쪽 밥상이 바로 종가집에서 받은 아침상인데, 아직 쑥된장국이 나오기 전이다. 밥 먹기 전에 사진 찍는다며 수선 떠는 거 민망하여 앉기 직전에 얼른 한장 건졌다. 전주가 고향인 후배한테 오래 전 들은 풍월을 상기해 보자면, 전주엔 조선시대부터 한양에서 낙향한 양반들이 많아 궁중음식이며 한양 반가의 음식이 많이 전수되었을 뿐만 아니라 맛이나 간도 경기 음식과 비슷하게 담백하다더니만 정말 그런 듯했다. 남도쪽의 진한 맛과는 완전 다른 느낌. 깔끔하고 담백하니 내 입에도 딱이었다. 전날밤 과음이라도 해서 아침 건너뛰고 늦잠이나 자겠다고 했으면 크게 후회할 뻔;; ㅋ

슬금슬금 뙤약볕으로 나가 다시 한옥마을 구경에 나서 처음 찾아간 곳은 전동성당. 정조 때 최초로 순교자를 처형한 장소에 세워진 성당이라고. 국내에서 제일 오래된 성당 셋 중 하나라는 것 같다. 고색창연하고 아담한 것이 명동성당보다도 예쁘고 인상적이었다. 

다음으론 남부시장의 청년몰에 가서 커피를 마실까 생각했지만 더우니까 신호등 기다려 횡단보도 건너기도 싫은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부터 적어둔 전주의 가볼 곳 중 남부시장에 있다는 <조정례 남문 피순대> 역시 이번엔 경험할 수 없었다. 파트너가 순대국을 못먹는 사람이라... <전주 왱이 콩나물국밥>도 먹어보고 싶었으나, 역시나 일행이 콩나물국밥을 싫어했다.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술국으로 유명한 음식과는 친할 수 없나보다는 것이 요번에 깨달은 나의 가설. ^^;  

풍남문 청연루

<호남제일도성>이라는 편액도 함께 걸려있는 풍남문은 동대문처럼 뒤쪽에(앞쪽인가?) 궁장이 남아있고 주변이 로터리였는데, 문 바로 코앞까지 사람들이 주차를 해놓았다. 그래서 어디서 찍어도 자동차 없이 문만 사진에 담기가 어려웠음. 오른쪽 청연루는 대로변 다리 위에 뜬금없이 서 있는 누각인데, 한시간 정도 걷고 이미 지쳐서 가까이 가보지도 않았다. 저렇게 긴 누각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먹거리 목록에 있던 <외할머니 솜씨 흑임자 팥빙수>도 요번엔 못 먹었다. 뙤약볕에 줄 서서 기다렸다 먹을 만큼 내가 빙

사랑나무 카페

수를 좋아하지 않으니 뭐;; 대신 그 건너편에 있는 한옥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셨는데... 우와 정말 맛있었다. 한옥마을 곳곳에 커피를 직접 볶는 커피집이 보였고, 깨끗하게 정비된 길가쪽 한옥들은 대부분 상점이나 음식점, 카페였다. 삼청동과 북촌을 평지에 뒤섞어 놓은 느낌이랄까.

이름은 같은 한옥마을이라도 안동 하회마을은 한옥집들의 규모가 대부분 다 크고 안채를 제외한 공간은 거의 관람객들에게 공개해 놓았지만(입장료를 받으니 그렇겠지;;), 전주 한옥마을은 집들이 대개 다 규모가 작은 편이고 길가 영업장을 제외하곤 숙박용 고택들도 죄다 꽁꽁 대문을 닫아놓았다. 사유지이니 고택체험 하러 온 사람들에게만 개방한다는 문구가 대문마다 걸려 있음. 뒷골목엔 정말로 그냥 다 오래 된 살림집들이었고, 군데군데 한옥을 개조하는 공사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린시절 한강변에 있던 외할머니댁 동네에서도 본 적 있는 근대 한옥들이 여전히 그대로 명맥을 잇고 있고, 두 사람이 지나가면 어깨를 부딪힐 것 같은 좁은 골목도 많았다.

왼쪽 사진은 숙소였던 학인당 옆쪽에 있는 한약방인데 원래 아흔아홉칸으로 지은 학인당에 속했던 것을 가세가 기울며 떼어 판 집이란다. 전주 시내를 돌아보며 느낀 건 곳곳에 한의원과 한약재상이 참 많다는 사실. 좀 과장하면 남부시장 근처엔 세집 거너 하나꼴로 한의원이 있었다. ^^

전주 한옥마을을 한눈에 조망하려면 오목대엘 올라가는 것이 상책. 일행이 계단 엄청 많다고 경고해서 올라갈 생각이 없었는데 전주향교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코앞에 오목대가 있었다. 사실 그리 높지도 않음. ^^ 

이것이 바로 오목대

이성계의 할아버지가 살던 집터에 누각을 지었다는 것 같다. (더워서 안내판을 읽어도 머리에 안 들어가는 단계;; ㅎㅎ)

암튼 이곳에서 한옥마을 곳곳으로 내려가는 계단과 길이 대여섯 군데나 사방으로 뚫려있었다.

<선비의 길>을 걸어보라며 유명한 고택 위주로 탐방로를 표시한 지도를 들고 다녔으나, 유명한 고택은 죄다 겉에서 담장 너머로 구경하는 수밖에 없어서 뭔가 야박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라도 살림집에 아무나 드나드는 건 싫겠지...

우리 숙소도 솟을대문은 항상 굳게 잠겨있고, 드나드는 건 한사람이 겨우 통행할만한 크기로 난 쪽문으로 해야했다. 집앞에서 전화를 걸면 대문을 다 열어주는지도 모르겠으나, 암튼 그집에 익숙한 일행 덕분에 우리는 밖에서도 손가락이나 접은 종이를 틈새에 넣어 쪽문 가로쇠를 돌려 드나들었다. 나름 재미있는 경험.

학인당 쪽문

 

12시쯤 체크아웃을 해야했으므로 숙소로 돌아가 짐을 싸들고 아쉬운 별당아씨 놀이를 마감했다.

집안이 하도 고요하여, 여긴 잘 가라는 인사도 안하나보다고 종알거렸더니 그 말을 들었는지 금세 안주인이 나오셔서 배웅을 했다. 에고 민망하여라.

이번에도 우산은 싸들고 갔으되, 툇마루에 앉아 한옥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낙숫물 구경은 하지 못했다. 장마철에도 장마전선이 나를 배신하다니... ㅋ

학인당 쪽문을 나와 다시한번 담벼락을 돌아보며 눈도장을 찍고는 풍남문으로 향했다. 풍년제과 초코파이도 유명하지만, 일행 말로는 풍남문 근처에 있는 <원제과>의 초코파이가 더 쫄깃하고 맛있으며 바나나빵이 일미라고. (그러나 막상 먹어보니 내 입에는 풍년제과표 초코파이가 더 맛있다고 느껴졌고, 바나나우유 맛--우어 난 바나나우유 못먹는데--이라는 바나나모양 카스테라는 아예 사고싶지가 않았;;다 ㅋ)

풍남문을 향해 길을 건너자 또 다시 나타난 얼음덩어리. ㅋㅋㅋ 전주에선 구청별로 곳곳에 얼음 갖다 놓는 게 유행인가보다. 좀 귀여운 발상인듯;;

학인당 담벼락 저 멀리 풍남문

전주에서 마지막으로 돌아보기로 한 곳은 덕진공원이었다. 원래는 예정에 없던 코스인데, 전날 택시에서 덕진공원에 연꽃이 한창이며(사실 여부는 몰라도 국내 최대 규모라고 기사님 자랑하심;;) 방금 울산에서 일부러 연꽃 보러 오신 어느 할머니를 내려드리고 오는 길이란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연못이라니까 향원정이나 경회루 정도의 규모를 상상했다가 완전 깜짝 놀랐다. 꽤 큰 호수의 절반 가득 연꽃이 끝도없이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많은 연꽃과 연잎을 본 건 내 평생 처음이었다. 우왕;;;  

그러나 난점은 호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일종의 현수교를 건너야 했다는 것. 멋모르고 따라들어가긴 했는데 ㅠ.ㅠ 철판으로 된 바닥이 약간 꿀렁거리는 것이 느껴지면서 난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중간중간 시멘트 기둥이 나올 때마다 숨을 몰아쉬었다가 다시 종종걸음으로 직진... 어찌나 긴지 나중에는 토하기 직전이었다. 흑... 일행은 엉거주춤 징징대며 다리를 건너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며 낄낄대고... 나도 내 꼬라지가 우스운 건 알겠는데 무서운 걸 어쩌라고... 흑..

나중에 알고보니  정자와 연결된 튼튼한 나무다리도 있는데 왜 굳이 그 위험한 다리를 건넜는지 (내가 고소공포증 있는 걸 일행이 모른 건 아니었으나, 그 정도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원.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 드넓은 연꽃밭을 한번에 담아낼 순 없음이 아쉬웠다. 현수교 중간에선 찍을 수 있었으려나? ㅎㅎ

정자에서 보면 저 멀리 내가 징징 울며 건넌 현수교가 보인다. 정말 길지 않은가? ㅋ

덕진공원을 끝으로 2시반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고속버스를 타려면 늘 강남이나 남부터미널로 가야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요번에 화정 터미널에서 타고 가보니 엄청 더 편리하다. 우리집에서도 전철로 불과 30분 거리. 앞으로도 강북 주민 친구들과는 애용해볼 작정이다. 안동 다녀와서도 그랬지만 전주에도 조만간 또 가고 싶다. 대구못지 않게 덥다는 여름보다는 가을쯤이 좋을 듯. 

 

Posted by 입때
,

비오는 날 경복궁

놀잇감 2013. 7. 12. 17:34

유홍준 교수가  부제를 '인생도처유상수'로 붙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권에서 그랬다. 경복궁 근정전은 비 많이 내리는 날 가보아야 그 진가를 감상할 수가 있다고. 그래서 내심 장마기간 동안 기대하고 있다가 꽤나 비가 철철 내리는 날 어디 진짜 그런가 살펴보았다.

흥례문 행각, 근정문 앞마당 구석에서 찍은 사진이다. 뒷배경의 북악산에 드리워진 비구름과 어우러진 모습이 꽤나 매력적이다.  


그러나 내가 궁금했던 건 정말로 근정전 앞 조정바닥에 깔린 박석 사이로 물길이 휘휘 돌아 흘러 배수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하는 점! ^^; ㅋㅋㅋ 배수구로 연신 물이 빠져나가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낮아진 박석 주변엔 어쩔 수 없는 물웅덩이가 보여, '개뻥 아냐!'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____^ 내가 조정에 얕게나마 물웅덩이 있다고 투덜대니까, 저 정도면 물 고인 거 아니라고... 집중호우 쏟아져도 강남사거리처럼 물바다로 변하진 않는다고...

째뜬 장화신고 가길 잘했다고 생각이 들만큼 궁궐 마당엔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생겨났다는 것이 현실이다. ㅋㅋ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