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예정된 미술 전시 목록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혔던 호안 미로 특별전. 드디어 보고 왔다. ^___^ 연일 35도를 넘기는 뜨거운 날씨에 집밖으로 한발짝도 나가기 싫었지만, 막상 나가서 시원한 데 들어가면 또 집에 들어오기가 싫어진다. 게다가 호안 미로 전시장은 '추울 정도로' 완전 시원했다. 한 여름 최고의 피서! 방학이라 숙제하러 온 애들 많으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비교적 한산해서 더욱 좋았다.
나중에 집에 와서 비로소 펼쳐본 브로셔 글귀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통틀어 '최대 규모로' 기획된 전시란다. 정말로 작품들이 엄청 많다! 몇년 전 시립미술관에서 봤던, 한쪽 벽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작품은 보이지 않아서 처음엔 살짝 실망스러웠는데, 마지막 창작 시기 위주로 작품 수가 264점이래고, 그림 이외에 조소 작품이며 도자기 그릇, 화가의 작업실도 고스란히 옮겨다 놓았다. 볼거리가 풍부할 밖에!
근래들어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엘 가보면, 다닥다닥 비좁게 그림을 구겨넣은 듯한 전시실 배치도 그렇고, 조명도 그렇고, 심지어 그림 걸린 배경 벽의 질감과 색도 영 마음에 안들어 툴툴거릴 때가 많았는데, 우왕 요번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전시장은 내 취향에 딱이었다. 미로 작품들과 딱 맞춤한 듯한 배경과 조명! 거기다 플래시 터뜨리지 않으면 사진 촬영도 맘껏 하게 해준다. 아이고 좋아라...
용량부족으로 머리와 마음에 아무리 담아도 금방 휘발되는 기억을 붙잡을 수 있도록 사진도 많이 찍어왔다. 감동.. ㅠ.ㅠ 같이 간 친구는, 내가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그림이라고 미로 작품을 간단히 소개했었는데 의외로 엄청 슬퍼서 울컥울컥 했다는 촌평을 남겼다.
현대미술 무식자인 나는 호안 미로가 프랑스 출신인 줄 알았었다. 퐁피두 전시때는 분명 표기도 '호앙 미로'였었다규... 근데 알고보니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이고 전쟁 통에 프랑스로 망명했었단다. 흐잉... 가우디와도 교류가 있었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시리즈 작품들도 볼 수 있다. 바르셀로나, 마요르카..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 여행가고픈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마요르카 미로 재단 소유의 미술관에 가고시프다.. 흑..
그림감상은 늘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현대미술은 특히나 더 구구절절 해석하고 설명하는 게 더 난감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 호안 미로는 보는 사람 보고 싶은 대로 보라는 의미에서 대다수의 그림에 작품명을 붙이지 않았단다. 웬만한 건 다 '무제'다. 원래 작품명 말고 무제인데도 굳이 이름을 붙인 건 판매상들이 세일즈를 위해 편의상 만들어놓은 것들이라고. 보는 사람 마음대로 봐도 좋다는 화가의 너그러움 또한 엄청 마음에 든다. 그림들이 예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하고.... 암튼 참 아름답다. 눈호강 실컷 했음.
사진도 맘껏 찍을 수 있었겠다... 시시콜콜 잡소리보다는 맛보기로라도 그림을 올리는 것이 이웃들에게 더 도움이 될 듯하야, 이만 총총.. ^^;
[무용수]라는 작품이다. 어렵사리 하나를 골라 갖는다면 난 이걸로 하겠다. ㅋㅋ
마지막에 들른 기념품 샵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2천원씩 하는 큼지막한 엽서는 인쇄의 질과 색감도 좋았는데 어쩐지 한동안 세워놓고 보다 서랍에 쟁여두고 마는 엽서보다는 오래오래 유용한 걸로 사고 싶어서... 핸드폰 케이스(12000원)와 마우스패드(5000원)를 장만했다. 대림미술관 팬톤 전시 때는 기념품 가격이 대체로 너무 사악하다 느꼈는데... ㅎㅎㅎ 미로 전시 기념품들은 가격도 합리적이라 느꼈고 품질도 괜찮은 편이다. 해서... 사고싶은 거 많았는데 참느라 애썼음. ㅎㅎ
포스터는 진열대에 안보이길래 슬며시 다가가서 한 장 주면 안되느냐고 그랬더니 2천원에 판매한다고. 우왓.. 요즘 전시 포스터 거창하게 만들어서 막 만원 넘게 팔던데 웬떡이냐 싶어서 ^^ 얼렁 달라고 했다.
방문에 붙여둔 브레송 전시 포스터 아래쪽에, 김환기 브로셔를 떼어내고 눈누난나 흥얼거리며 붙여두었다. 돈 많은 사람들이 값비싼 그림을 집에 걸어두고 흐뭇한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이겠지.... ㅎㅎ 나는야 싸구려 포스터로도 비슷한 만족도를 얻을 수 있으니 참으로 조으다.
호안 미로 특별전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9월 24일까지 휴관일 없이 계속 전시하고.. 입장료는 15,000원이다. 들어갈 땐 좀 비싼 거 아닌가 했었는데 나오면서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
올 7월은 이상스레 엄청 길게 느껴졌다. 탄신파티 몇번 하고 나면 후딱 가버렸던 예년의 7월과 달리, 옥수수 농장에 주문해놓고서도 익기를 기다리기까지 며칠간이 한참 걸린 것 같고, 월초에 두번이나 갔던 등산은 아주 까마득한 일처럼 느껴진다.
탱자탱자 거의 먹고 놀려니 오히려 블로그질엔 소홀했다. 게다가 몇달에 한번씩 마감이 있다가 2주마다 마감에 쫓기려니 마음이 조급해지고 느긋하게 글을 끼적일 여유 또한 사라졌다. 또한 그간 책도 멀리하고 문화생활도 잘 안하고 탱탱 빈 머리를 통 채우질 않았더니만, 말이든 글이든 문장 하나 만드는데 이렇게 힘들어 어디 해먹겠나 싶을 때가 많다. 글줄로 밥벌이 계속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작년 쯤부터 어느덧 또래 친구들이 대화 중 <그거 뭐야>, <그게 뭐지>를 거의10초마다 추임새로 넣는 걸 내가 막 놀려먹으면, 너도 좀 있어봐라, 머지 않았다는 협박성 예언을 들었는데, 정말로 나 역시 파닥파닥 낱말이 떠오르질 않는 증상이 나타났다. 가뜩이나 뭔가를 설명할 때 서론도 길고 말이 긴 인간인데 이젠 거두절미하고 요점만 잘 추려서 말하는 법을 새로 익히기라도 해야할 것 같다.
어휘를 더 잃어버리기 전에 우선 책, 책, 책을 읽어야해! 라고 생각을 하지만 더운 날씨 핑계로 몇달째 책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지도 이러면서 무슨 책 안읽는 국민들 탓을 하고 난리냐, 급반성.
탁상 달력을 오늘에야 8월로 넘기려니 7월엔 칸칸이 뭐가 이리도 적힌 게 많은지... 웃겨서라도 기록을 해놔야지 싶었다.
1. 등산: 북한산(정릉코스), 양평 소리산
북한산이 명산인 건 갈 때마다 느끼지만, 정릉 계곡이 그렇게 깊고 청량한 줄은 정말 몰랐었다. 까마득한 옛날에 소풍도 가고 그랬는데 완전 새로운 느낌. 언제고 북한산을 능선따라 한번 종주해보고 싶다. 어렸을 때 멋 모르고 부모님 따라갔던 것처럼... 송추에서 우이동까지? ㅋㅋ
양평 소리산 역시 계곡이 일품. 비 많이 내린 며칠 뒤에 가서 계곡물 구경 제대로 했지만, 곳곳에 바위가 미끄러워서 애도 많이 먹었다. 낑낑대고 올라갔다 내려와서 시린 계곡 물에 발 담그고 노는 게 좋아지면서 점점 아저씨가 되어가는 건가 민망하다. 예전 같으면 등산화 벗는 거 귀찮아서 절대 싫다고 했었는데 ㅠ.ㅠ
<굿바이 싱글>은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아무 기대없이 보러 들어갔다가 의외로 재미나게 눈물도 흘리며 봤다. 김혜수, 마동석 연기야 뭐 믿고 보는 거라 치고, 서현진이 마동석 부인으로 나왔다는 거! ㅋ 요샌 영화든 드라마든 아역배우가 연기를 잘해야 완성도가 높아지는 듯. 십대 미혼모로 나온 김현수 연기가 대단하다 싶었다. 김혜수한테 안 밀려! ㅎㅎ
<제이슨 본> 돌아온 맷 데이먼! 말이 필요없다. 기억도 다 돌아온 마당에 더 무슨 할 이야기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ㅎㅎ 기대를 했는데도 그럭저럭 좋았다. 주말에 빈 자리 하나도 없는 극장에서 몸을 움찔움찔 하며 봤음. 폭력은 너무 과하지 않을 정도이고 늘 그렇듯 액션과 추격 신은 풍부하다.
뒷북으로 본 <귀향>, <내부자들>은 볼까말까... 벼르다가 본 거라서... 그냥.. 의외로 좋았다, 고만 쓰련다. <의궤, 8일간의 축제>는 KBS다큐멘터리 3부작인가로 다 본 건데도 영화판으로 한번 더 보며 눈요기했다. 리움 미술관에서 봤던 화성능행도 그림들을 떠올리면서..
3. 공연: <ONE LOVE> 콘서트 @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친구따라 묘한 팬질을 하고 있다. ㅋㅋ 토요일 낮공연엔 유열, 이사벨, 임태경이 차례로 나와 노래를 서너곡 씩 불렀다. 판매수익이 재난구호단체에 기부된다고 해서 사실 대단히 부실한 공연을 고가에 보고도 그리 분노하지 않았다. 백주년 기념관의 지나치게 빵빵한 에어컨에 놀란 몸이 심한 냉방병에 걸려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라 공연 중간에 밖으로 뛰쳐나가기까지.. ㅠ.ㅠ 했던 것과 상전벽해가 따로 없구나 싶었던 놀라운 백양로 풍경이 더 기억에 남았다.
4. 드라마: <굿 와이프>, <닥터스>
박신혜의 은근 팬이라 <닥터스>를 열심히 챙겨보고 있다. 오글오글 병원에서 의사들이 연애하는 얘기 뻔하다며 많이 접어줬는데도 느글느글 김래원표 홍지홍 쌤까지 귀엽고 사랑스러워졌다.특별출연하는 배우들도 대단. 어제 오늘은 남궁민이랑 애들 때문에 눈물 찔끔.
<굿 와이프>는 케이블 TV 챙겨보기 어려워서 안 보고 있다가 주변의 추천으로 뒷북 탑승했다. 와... 다들 왜 보라 그랬는지 알겠다. 전도연은 비뚤어진 입 때문에 한쪽만 더 깊어진 주름까지 아름다운 자태로 김혜경 변호사를 멋지게 그려내고 있고, 유지태의 폭발할 듯한 존재감이 대단하다. 유지태한테 좀 밀리긴 하지만 윤계상도 그만하면 잘하고 있고 , 무엇보다도 법조계와 정재계 비리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 죽겠다. 누가 정말 나쁜 놈인지도 아리송... 그게 매력이다.
5. 먹는 게 남는 것이 아니고, 사진으로 남은 먹거리 ^^;
이젠 식상해져서 예전처럼 음식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있진 않지만, 여전히 푸드포르노 트렌드에서 벗어나진 못한 것 같다. 민망하면서도 얼른 사진으로 남겨둔 음식의 자태를 가끔 휴대폰으로 넘겨보며 뿌듯하다. 그래, 이날 이건 이런 맛이었지... ㅠ.ㅠ
하지만 음식과 함께 그날 같이 있었던 사람들, 주고받은 이야기도 함께 떠오르기 때문에 내겐 그 또한 소중한 기록이다. 나 이렇게 잘 먹고 잘산다는 과시형 목적보다는 정보공유 차원이라는 핑계도 있다. 나중에 찾아보긴 나도 여기가 젤 편하다니깐요...
라뮤즈 드 연희의 음식들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비프스테이크, 라구 파스타, 리코타 치즈 샐러드, 라뮤즈 버거다. 룸이 여럿 있는 모양이어서 가족모임하기 딱이었는데 가격대비 만족도를 따진다면 흠... 글쎄 ^^; 괜찮은 것도 같고. 브런치나 런치 세트 메뉴는 가격도 괜찮아 보였지만, 우린 샐러드 제외 1인 1메뉴가 필요한 대식가 부대이고 저녁 시간이라, 200g짜리 고깃덩어리도 좀 작아보였다. 300g짜리를 시킬 걸 그랬나 했었음. 10명이서 스테이크 다섯 접시, 버거 2개, 파스타3개, 샐러드 4개 완전 클리어! 그나마 파스타 1개는 나중에 추가주문했는데 실수로 주문이 안들어가서 안 먹고 나왔음. ㅋㅋ 밖에서 스테이크를 잘 안 사먹어봐서 가격대를 모르겠다.... ㅎㅎ 대체로 맛있게 먹었고 친절해서 음식과 서비스 면에선 좋았다. 많이 먹었다면서 나중에 아이스커피 서비스로 줬음. 일방통행 골목에 있고 주차장도 없는 2층 주택 개조 레스토랑이지만, 골목 입구에서 발레파킹 가능! 담엔 맥주랑 안주를 먹으러도 한번 가보고싶다.
합정역 메세나폴리스에 가면 상가 중심부 하늘에 우산이 매달려 있다. 몇년 전 처음 오픈했을 때 우산이 있었는데 중간에 한번 없애고 다른 걸 장식했었다가 다들 우산이 더 낫다고 해서 다시 설치했다나 뭐라나... 암튼 며칠 전 확인 결과로도 아직 우산은 건재하다. 이렇게...
한동안 우산 장식이 유행이었는지 서울시청 시민청 입구쪽에도 그림 우산들이 매달려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 어쩐지.. 안가본지 오래 됐지만. 애들이 그린 그림 같은 얼굴도 있고 사진도 있고.. 흉물스러운 쓰나미 같은 시청 유리건물 안보여 좋네.. 그랬었다. 2013년 여름에 찍은 사진.
어쩌면 쇼핑몰에 우산 장식 거는 게 세계적인 트렌드였는지.. 2014년 11월 터키 안탈리아에 갔을 때도 발견.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우리 현지 가이드. ㅋㅋ 한 가운데 검정색 우산이 찌그러져 있는데 그것마저도 좋아라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돌연 궁금해져 찾아보니 알록달록한 우산장식은 포르투갈 어느 도시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는 듯. 역시.. 원조가 가장 멋진 것도 같다. ^^ 위 셋은 내가 직접 찍은 거고.. 아래는 빛 좋은 시간에 전문가가 찍은 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서도.
올 봄엔 특히 비도 자주 내리겠다... 며칠전 합정동 갔다가 다시 본 우산 덕분에 우산 사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올랐고 더불어 여행이 가고싶어졌다. 으으으...
올해 기대되는 전시 중에 특히 전혀 모르면서도 괜히 땡겨서 보러가야지 마음 먹었던 변월룡 회고전. ^^; 성 때문에 굳이 관심이 갔던 건 아니고, 구소련 연해주에서 태어난 고려인으로서 소련에서 주류 미술가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전후 북한 미술에 큰 기여를 했으나 북한으로 귀화를 거부한 뒤 입국금지 조치를 당했고 소련에서 미대 교수로 후학 양성에만 힘썼다는 개인사가 아무래도 흥미로웠던 것 같다.
미술관 홈피에서 미리 몇작품 맛보기로 본 것도 다 마음에 들었다. 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이 틀림없을 텐데도 작품이 다 천편일률적인 느낌이 아니네!
암튼.. 그러나 봄날 내내 벼르다 전시 마지막날 가까스로 달려가 후르륵 스치듯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전시 마지막날은 하필 연휴 마지막인 5월 8일. ㅠ.ㅠ 내수진작인지 뭔지 고궁과 미술관 입장료도 연휴내내 무료여서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원래도 전시회 마지막날 드글드글 사람 많다는 걸 감안했는데도 와.. 너무 혼잡해서 도슨트 그림설명이 다 취소됐을 정도였다.
사람들 바글거리지.... 웬일인지 사진촬영을 금지하지 않아 다들 그림 감상은 뒤로하고 너도나도 휴대폰 카메라 눌러대는 소리가 철커덕 철커덕.. 지겹게도 시끄러웠다. 물론 나도 얼른 몇장 찍어왔지만..;;; ㅎ
소련의 유명 예술가들과 일반인들의 초상화도 엄청 많고, 사회주의 선전화도 보였지만 특히 좋았던 건 세계 곳곳을 그린 풍경화였다. 유화도 있고, 동판화도 있고...
변월룡, [겨울]
아마도 저 나무는 자작나무가 아닐까 상상했던 <겨울>이란 풍경화가 좋아서 한참 들여다보다 사람들 없을 때 얼른 한장 찍어왔다. 눈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작은 뒷모습이 엄청 정겹다.
아래는 같은 구도의 풍경을 동판화와 유화를 나란히 걸어놓아 더욱인상적이었던 <나홋카의 밤> 풍경.
좌: [나홋카의 밤] 에칭, 1962
우: [저녁의 나홋카 만] 캔버스에 유채 1968
나홋카는 연해주의 도시라는 거 같다. 원래 변월룡이 연해주 고려인 유랑촌에 살다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을 떠났는데 그 사이 난데없이 가족이 강제이주를 당했단다. 그나마 고향이면서도 고향이 사라져버린 상황. 그래서 변월룡은 그곳을 그리워하며 1년에 한번씩은 연해주를 찾았다는 듯.
저 멀리 빛나는 항구도시의 불빛과 하늘에 지나간 두 줄기 비행기 자국, 그리고 언덕 앞에 크게 구불구불 자란 소나무가 이국적이면서도 이상하게 낯익다. 소나무 탓인가? 금강산 그림도 있고 북한의 소나무 그림도 많은데, 구불구불한 소나무는 화가가 북한을 다녀온 뒤로 많이 그렸다는 모양이다. 소나무에 향수를 담았다나 뭐라나... 하여간에 그 소나무 풍경과 모내기 풍경 중에 "평안북도 정주"라는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었다. 우와 우리 할아버지 고향인데.. 그러면서.
4개의 전시실 중 마지막 주제가 <디아스포라의 풍경>이었고, 그가 그린 세계 곳곳과 소련의 풍경들이 모여 있었다. <북한 기행> 전시실에 걸려있던 을밀대와 평양 대동문을 그린 그림들도 좋았지만 딱히 기억에 남을 정도는 아니었고, 그외 내가 재미있어 한 그림은 바로 이것!
변월룡 [블라디보스토크 해변] 에칭, 1972
동판화가를 고모로 둔 나로서는 에칭이 얼마나 더 섬세하게 회화적인 기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잘 알기에 에칭 작품의 완성도는 아쉬울 수 있지만, 단순한 삽화 느낌으로도 바람 부는 순간을 포착해낸 것이 어찌나 유쾌하던지. 우산 날아가는 장면까지 ㅎㅎㅎㅎ 재미 있어서 웃음이 실실 나왔다. 빗줄기며 휘청이는 나뭇가지며 그림 구석구석에 다 바람이 몰아친다. 거짓말 좀 보태면 바닷바람의 소금기까지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음. ㅎㅎㅎ
변월룡을 두고, 잃어버린 천재화가라고 하던가. 아무튼...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도 보길 잘했다 싶었다.
미술관 말고도 궁중문화축전 기간+연휴가 겹쳐 덕수궁 곳곳에 다 사람들이 많았는데 바삐 전각들을 지나다보니 안에 설치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전에 보았던 덕수궁 프로젝트만 못한 느낌... ㅠ.ㅠ 내 편견인지 궁궐이랑 하나도 안 어울리는 듯! 현대미술이 워낙 어려워서 내가 무식한 탓이겠으나.... 째뜬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설치미술 구경하는 사람은 하나도 못봤음. ^^;
이런 공이 덩그러니 대청마루에 놓여있는다든지...
하얀 카펫같은 건 축구경기장의 라인으로 쓰이는 하얀 잔디라고. 근데 이게 뭐? 밤에 조명 비추고 보면 더 그럴듯하려나? +_+
함녕전 돌아나오다가 떡 아래 사진 속 문을 봤을땐 우와 진짜 성의 없다, 하얀 커튼 달아놓고 끝이네? 그랬었는데....
그나마 반전이었던 건, 저게 천이 아니고 에폭시. ^^; 고체로 하늘하늘 천 커튼을 형상화해놓은 거였다. 뭐 그래도 궁궐 전각에 병원 칸막이 같은 흰 커튼이 웬말... 이란 생각은 안변했지만.
덕수궁엔 현대미술관 분관이 있고 전시도 늘 근현대미술만 한다는 건 알지만, 내가 늘 들어가보고싶어서 안달을 내는 궁궐 전각 안에다가 설치미술을 전시할 작정이라면 좀 더 작품선정에 신중했으면 좋겠다. 지난번 덕수궁프로젝트 아주 좋았다니깐요! ㅎㅎ
5월의 나무 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내가 좋아하는 연두색 이파리는 이제 4월에 볼 수 있다. 5월이 되면 이미 색이 너무 진해질 것 같은 안타까움.
아카시아꽃도 5월에 핀다고 믿었으나 지는 벚꽃 옆에 벌써 피어나 향기를 뿜고 있었다. 지구가 덥다덥다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건 아닌가. 어쨌거나... 흐린 4월 어느날.. 멋진 나무들과 여린 연두색 잎들을 실컷 보고 돌아왔다. 날이 너무 흐려서 나무들은 죄다 검게 나왔군. ㅠ.ㅠ
그나마 제대로 나뭇잎 연두색이 담긴 사진은... 너무 새빨개서 섬뜩하기까지 했던 철쭉꽃 저 뒤쪽에 얼핏 담긴 나무들이다.
내리기 전에 빨랑 보러가야지, 아카데미라도 타고나면 괜한 대세거부증이 돋을까봐 게으름뱅이치고는 꽤나 서둘러서 영화를 보러갔다. (근데 결과적으로 오스카는 하나도 받질 못했다! 으이..) 일부러 사전 정보를 하나도 안 찾아보고 갔기 때문에, 배경이 현대가 아니란 것도 몰랐네그려. (스포일러 있음)
한줄 평을 쓴다면... 먹먹하게 아름답고 우아한 영화였다.
벨로가 후기에 적기를.. 영화가 끝나자마자 다시 한번 처음부터 보고싶은 영화라고 했던가. 그 마음이 뭔지 나도 알겠다. 눈빛 하나, 클로즈업된 표정 하나까지 장면장면 뭔가 자세히 보고싶은데 감정선을 따라가느라 그럴 여력이 없었다.
클래식한 올드모빌이 돌아다니는 1950년대 뉴욕 거리, 담배연기마저도 향기로울 것 같은 우아함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캐롤, 자존감도 낮고 우유부단의 극치로만 보였으나 캐롤과 만나면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걸 확실히 깨닫는 듯한 풋풋한 테레즈.
캐롤(케이트 블란쳇)이 입고 나오는 코트들(모피 코트와 빨간색 숄칼라 롱코트)이야 워낙 인상적이었지만, 그 밖엔 어떤 어떤 옷을 입고 나왔는지 잘 기억도 나질 않는다. 테레즈(루니 마라)의 체크무늬 빵모자가 처음엔 촌스러웠는데 나중엔 예뻐보였다는 정도?
후기를 좀 잘 써보고 싶다는 욕심에 오히려 시간만 질질 끌다가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말았다. 이젠 어느 장면에서 울컥했었는지도 잘 떠오르질 않으니... ㅠ.ㅠ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고 포스터 문구로도 적혀 있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맨 처음 테레즈가 백화점에서 캐롤을 봤을 때, 주변 배경이 흐릿하게 지워지면서 캐롤의 모습만 눈에 들어오는 장면을 보면서, 아 맞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찍이 군중 속에서도 한눈에 확 파고들듯 찾아내는 순간이 이런 거였지, 그러면서 덩달아 따라서 설렜던 것 같다. 아름다운 사람에게 매혹된다는 게 어떤 건지, 테레즈한테 마구 감정이입이 된 시선으로 케이트 블란쳇(캐롤)을 바라봤던건 내가 좋아하는 배우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케이트 블란쳇이 캐롤이란 인물을 그만큼 잘 살려낸 게 아닐까. 목소리와 말투도 섹시하기 그지없었는데 나중에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보니 케이트 블란쳇한테 사투리(?) 가르친 사람들도 나오더군. 뉴요커나 동부 특유의 말투를 배웠던 걸까. 언어학자에게 물어보고 싶었음.
찌질한 남자들이 등장해서 짜증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래도 추하게 망가져가기 직전에 마무리짓는 이야기여서 좋았고 그 성숙한 결정의 주체가 캐롤이어서 더 좋았다. 덩치 큰 캐롤 남편이 사랑을 빌미로 매달리며 취해서 큰소리 칠 때 혹시 폭력이라도 쓰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는데, 오히려 캐롤한테 뿌리침 당해서 혼자 넘어지는 거 보고 통쾌했고 안심했다. 아... 참 이건 한국 막장 드라마가 아니지.
대상에 대한 사랑이 담겨야 멋진 사진이 나온다고들 하는데, 테레즈가 찍은 캐롤의 사진들이 정말 멋져서 나까지 흐뭇했고, 비록 뉴욕타임스에 들어가서도 회의하는 남자들 옆에 메모지 들고 서 있는 직책이라고 하더라도 테레즈가 자기 꿈을 계속 좇는 것도 좋았다. 군더더기 없이 딱 둘의 재회 장면으로 끝낸 구성도 마음에 들었고.
워낙 섬세한 영화라 자막번역을 누가 했는지도 궁금했는데(아마도 <캐롤> 책 번역자가 역자후기에서 '남사스러운'이라는 표현을 써서 물의를 빚었단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겠지;;) 내가 싫어하는 이모, 홍모 씨와 달리 괜히 튀지 않고 분위기를 잘 잡아낸 것 같아 이름을 눈여겨봤더니 황석희라고. 영화를 하도 안 보러 다녀서 나로선 처음 보는 이름인 거 같은데, 으음 출판 번역계에서 날리는 김석희 선생이 떠오르면서 '석희'라는 이름이 번역을 잘하는 운명인가 택도 없는 일반화 가설에 잠시 빠졌었다. ^^; 그러고보니 '손석희' 앵커도 있네. 남자이름으로 석희는 글과 말로 먹고 사는 이름일까? 표본 겨우 셋 가지고 참 놔;;
2015년을 깔끔하게 끝낼 생각으로 best 목록 뽑기를 시작했는데 에효... 난데없는 감기기운으로 계속 빌빌대느라 새해 시작되고 나서도 한참 지나도록 마무리를 못했다. 나름 건강관리를 한 덕분인지 이놈의 감기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활약하진 못하고 묵직한 두통과 약간의 콧물로 깔짝깔짝 괴롭히고 있는데, 그게 아주 성가시다. 가을에 일찌감치 독감예방주사를 맞고도 감기몸살로 2주 넘게 끙끙 앓고 계신 왕비마마와 한 공간에 사는 사람치곤 그래도 이만한게 장하다 싶지만... 빌빌대려니 짜증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째뜬 2015년 정리와 함께 감기도 말끔히 떨어지기를!!
2015 책 best 3
줄리언 반스의 <용감한 친구들 1,2>는 읽으면서도 이건 무조건 올해의 베스트야.. 라고 생각했었다. 아서 코난 도일 경과 사무변호사 조지 에들지의 실화를 재구성했다는데 그야말로 치밀하고 흥미진진하다. 추리소설이면서 회고록 같기도 하고, 전기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또 깊은 주제의식과 반전이 있었다. 소설은 통 못 읽고 빌빌대다가 두권짜리 소설을 홀라당 밤새가며 읽게 만든 점 또한 수훈 갑.
세월호 유가족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책을 사놓고도 차마 용기가 안나서 반년 가까이 못읽고 밀어두고 있다가... 기막힌 청문회 뉴스에 다시 분개하며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쳐들었다. 당연히 많이 울었고, 다시 반성했다. 잊지 않겠다고 다들 다짐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무심함과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고 관계자들,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에라도 올해의 책으로 여기저기 투표하고 다녔지만, 그런 정치적인 이유말고도 절절한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폭삭 속았수다>는 11월에 다녀온 제주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선망으로 별점을 좀 과하게 준 면이 없지 않다. ^^; 제주 올레길 소개 이외에도 제주 지역 구석구석에 깃든 주민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고 나도 몇 코스는 꼭 가봐야지 적어두긴 했는데.. 3쇄나 찍은 책치고는 만듦새가 부실한 느낌이 있었다. 오탈자가 꽤 눈에 띄었음. 그래도 제주는 무조건 옳으니까.. ㅠ.ㅠ
2015 영화 best 3
다 개봉작이 아니라 뒷북으로 본 게 많아서 2015년 베스트 영화 셋으로 꼽기엔 좀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고민고민하다 엄선했다. ^^;
<스파이>는 이토록 유쾌 통쾌한 여성 원탑 스파이영화가 또 있을까 싶어서 미련없이 골랐고
<월플라워>는 너무 좋아서 눈물 흘리며 연달아 두번이나 봤으므로,
<아메리칸 셰프>는 엄청 좋았던 건 아니지만 나의 식탐과 요리 본능을 어느정도 충족시켜준데다가 아들 퍼시 역할로 나온 아역배우가 너무 귀여워서!! ㅋㅋ 이 영화 역시 두번 봤다. (마침 케이블에서 또 해주길래...)
p.s. 으악.. 내 정신머리하고는...
본 영화 목록에서부터 <인사이드 아웃>을 홀라당 빠뜨렸다는 걸 좀 전에 컴퓨터 사진 정리하다 깨달았다. ㅠ.ㅠ
나중에 연말에 베스트 뽑을 때 쓰려고 사진도 미리 다운받아놨으면서... ㅠ.ㅠ
아효... 그래서 번외편으로 추가. ^^;
슬퍼할 일이 종종 생겨도 이젠 눈물대신 욕부터 튀어나오는 사나운 아줌마가 되어간다. 그도 아니면 무작정 참거나.. 슬픔과 눈물의 중요성을 애니메이션 한편 보고 다시 깨닫다니 참 나도 단순하지. 째뜬 디즈니와 픽사의 특징이 어우러진 작품이라 좋았음.
2015 드라마 베스트 3
올 상반기에 <풍문으로 들었소>는 거의 본방사수를 할 정도로 열심히 봤던 드라마다. 유준상 특유의 약간 과장된 연기를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 드라마엔 그야말로 딱 맞아떨어지는 듯 했고, 유호정, 고아성, 이준 이외에도 봄이 부모님들, 집사 부부, 비서들, 하다못해 백지연, 장호일까지 정말 허투루 연기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결국 판타지요, 한계도 느껴졌지만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허상을 블랙코미디로 비꼰 시도 또한 좋았음.
<오 나의 귀신님>은 노상 똑같은 역할로만 나오는 것 같아 별로라 느껴졌던 조정석이 좀 쳐져서 그렇지 박보영과 김슬기의 깜찍하고 발랄한 연기랑, 뻔할 것 같은 '빙의' 소재를 미스터리 추리로 풀어나가는 전개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쿡방에 아직 내가 넌덜머리 내기 전이라서 요리하며 벌어지는 로맨스라는 점도 싫진 않았던 듯. 맨날 여자 꼬시려고 남자들이 하는 응큼하고 뻔한 대사가 깜찍한 박보영 입에서 주절주절 나올 땐 어찌나 귀엽던지 ㅋㅋㅋ
나머지 한편은 <응답하라 1988>이다.
전작인 <응답하라 1997>은 좋아라 봤고 연말에 베스트 드라마로 꼽기도 했지만 그 다음<1994> 시리즈는 통 재미가 없었다. 유연석 말고는 배우들도 마음에 안들고... 보다말다 막판엔 최종회를 안보기도 했을 걸. 쓸데없이 호흡이 질질 늘어지고 장면이며 대사며 괜히 길게 멍하니 정지된 듯한 부분이 너무 많고, 뻔한 남편찾기 놀이에 치중하는 게 싫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엔 아예 안 보리라.. 그러고 있었는데 ^^
뜻밖에도 동생네(동생이 88학번이고, 올케가 덕선이 또래니깐)와 조카들이 열혈 시청자가 되더니만. 울집에 와서 하도 드라마 이야기를 하길래 ㅋㅋ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간부터 보다가 아예 첨부터 정주행에 돌입했다.
덕선이, 정팔이. 택이 같은 애들도 귀엽고 별 대사 없이 그냥 눈을 깜박깜박하는 얼굴이 화면에 비추기만 해도 헤벌쭉 웃음이 나는 진주가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난 이 아줌마들 3인방이 너무 웃기다! 특히 치타여사 라미란 최고! ㅋㅋㅋ 신파스러운 가족 이야기인데도 또 그 묘미가 넘친다. 맞아, 그땐 그랬었지 그런 추억돋는 에피소드도 많았고... (물론 내가 마당에 수돗가 있는 집에서 뜨신 물 데워 머리 감고, 이웃집에 반찬이랑 밥 나르며 지내던 시절은 80년대 초였지만...)
하여간에 그닥 본 드라마도 없거니와 이만큼 열심히 등장인물에 애정하며 보는 드라마도 별로 없겠다 싶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냥 베스트 드라마 3에 넣어버렸다. 미친 스케줄로 결방까지 하고, 종영까지 겨우 4회 남았는데... 어차피 덕선이 남편감은 빤한 거고... 라미란 여사의 활약이 계속 기대될 뿐이다. ^^
링크한 대로 전시 구경 다닌 후기는 비교적 매번 소상히 포스팅했지만, 베스트 셋을 뽑는데 한참 걸렸다. 리움미술관의 세밀가귀말고는 다들 조금씩아쉬운 점들이 있어놔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점을 다시한번 느꼈다. 이젠 무조건 기대를 버리고 보러가야겠다. ㅎㅎ
2015 등산 best 3
사진 왼쪽부터...
남양주 운길산(3월)
대구 비슬산(5월)
인제 방태산(10월)
매달 둘째주 토요일마다 단체산행에 열심히 따라다녔지만 개근을 하진 못했다. 북한산 2번, 북악산, 청계산, 수락산, 대모산, 구룡산, 운길산 같은 근교 산행도 좋았지만 역시 인상적인 건 멀리 대절버스 타고 가야하는 높은 산들이었다. 언제고 눈덮인 한라산과, 아무 계절이든 지리산에 갈 날이 있으려나...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2015 지름 best 3
아이폰6
숏커트
북해도 여행
3가지 지름이 이 한장의 사진에 다 담겼다. 삿포로 공원의 가을을 배경으로 숏커트 머리 그림자를 아이폰6로 찍다. ^^;
새로나온 아이폰6s의 성능이 몇 가지 탐나긴 하지만 4년만에 고민고민 개비한 새 휴대폰으로 뭐 이 정도면 만족이다. 아무케나 찍어도 사진도 잘 나오는 것 같고, 시리 기능도 아주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
지름에 숏커트를 넣은 이유는 아마도 수년간 또 이 머리를 고수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주 미용실에 가야하는 건 좀 귀찮지만... 지루하게 단발머리를 왜 그렇게 오래 하고 다녔나 의아할 만큼 짧은 머리가 가뿐하고 아주 좋으다. ㅎㅎ
얼결에 친구따라 떠난 여행이긴 해도, 허리까지 높이로 쌓인다는 삿포로의 눈을 못보긴 했어도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11월은 여행의 달이었다. 어쩐지 만만해서 자주 가게 되는 일본은 이제 오사카랑 오키나와만 가면 저 북쪽부터 남쪽까지 얼추 다 일본을 섭렵하는 듯한 느낌. 2016년에는 또 좀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2015 Worst 3
수락산 낙오. 포스팅도 했다시피 나 혼자만의 실수는 아니지만 우길 땐 우겨야한다는 것,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땐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때 당황해서 길 같지도 않은 길로 숲을 헤치고 걷다가 나뭇가지에 찔린 팔엔 영구히 흉터가 남았다.... ㅠ.ㅠ
신사동에서 길을 잃다. 11월에 한국 다니러 온 친구와 언니들의 서울 숙소가 강남 신사역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주로 국내외 여행을 다니느라 며칠 묵진 않았지만 암튼... 서울 관광이 좀 일찍 끝난 어느날 저녁, 부른 배도 꺼뜨릴 겸 한강 둔치로 밤산책을 나갔었다. 마음 같아선 한강변 야경을 보며 세빛둥둥섬까지 쭉 갔다 올 생각이었는데....(너무 멀다 그러면 올 땐 택시타지 뭐.. 그럼서) ㅋㅋ 노상 차만 타고 다니시는 LA 사모님들은 신사동에서 한강 둔치까지 걸어간 것만으로도 버거워했다. 갈 땐 누구한테 묻지도 않고 요리조리 굴다리를 지나 잘만 찾아갔는데... 돌아올 땐 방향감각 뛰어나다고 믿고 아파트 단지로 질러가려다가... 신사동 잠원동을 뺑뺑 돌며 헤매다... 주민들에게 신사역 방향이 어딘가요.. 몇번이나 물은 끝에 겨우 엉뚱한 반대 길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아..산속도 아니고 서울 한폭판에서... 개망신. 다시는 어디가서 방향감각 자랑하지 않겠다!
토지 소송. 어찌저찌해서 토지 분할권인가 뭔가 하는 문제로 집에 소송이 걸렸다. 아주 오래전 우리 집을 지어 팔면서 땅주인이 나중에 재건축을 예상하고 토지 일부를 분할 소유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럼 불법 알박기 아닌가?) 몇년 전 대규모 재건축 가능성이 완전 사라지자 뜬금없이 그 땅을 우리 더러 구매하라는 내용증명이 왔었다.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그래서 그냥 개무시하고 말았는데.. 어느날 문득 법원 소송장이 날아왔다. 젠장... 그마저도 난 이리저리 좀 알아보고 법원에 온라인으로 몇가지 서류제출하면 당연히 (상식적으로) 우리가 유리하고 가뿐하게 판사의 조정을 거쳐 승소할 거라 믿었는데... ㅋㅋ 법은 역시 어려운 것. 놀랍게도 무조건 우리가 지는 소송이란다. ㅠ.ㅠ 결국 부동산 전문 변호사 소개받고 상담받은 결과, 형식적으로는 질 수밖에 없지만 내용상으로 이기는(?) 전술을 펼쳐야한다고...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 피같은 쌩돈 입금하고서도 소송끝날 때까지 몇년은(빨라야 1년?) 집 팔기 글렀다. 내 잘못도 아니고 뜻밖의 재앙이긴 하지만, 웃기는 건 변호사가 소송서류 제출한 다음주엔가 몇년 째 아무 소식 없던 부동산에서 돌연 집보러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아오 정말 인생은 아니러니하다!
2015년은...
나의 번역인생 20주년이라는 이유로 뭔가 자꾸 되돌아보고 정리하고, 장기적으로 미래를 계획해두어야할 것만 같은 한해였다. 그러나 그건 괜히 조바심만 쳤다는 뜻일뿐 실제로는 그냥 다른 해와 똑같이 방만하게 보냈고, 드디어 실질적인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정확히 첫 번역서가 나온지 만 20년만인 12월 10일 현재, 완전 허당 백수가 아니었을 기뻐해야하겠으나 2016년 전망이 그리 밝지 않기에 실제론 이미 벌벌 떨고 있다.
홀로 꿈꾸던 프리랜서 근속파티(?)는 25주년에나 하기로... 5년이란 유예기간을 정했지만, 당장 올 한해도 불투명한 마당에 2020년의 내 모습은 도무지 상상되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버텨보는 수밖에. 다만 부디 다시 좀 성실해져야겠다! 아쉬운 소리도 좀 하고.. ㅠ.ㅠ 그러니깐 2016년의 목표는, 한해 정리 포스팅에 반성, 한심해 따위의 태그 없이 약간이나마 희망의 서광 같은 분위기를 띄우는 것으로 정해야겠다. 일단 코앞의 일에 집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