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에 해당되는 글 103건

  1. 2009.03.26 못생겨야 예쁘다 13
  2. 2009.03.19 저녁준비 21
  3. 2009.03.19 이것이 온난화? 11
  4. 2009.03.14 욕먹을 두려움 21
  5. 2009.02.10 독촉전화 23
  6. 2009.01.29 두통 15
  7. 2009.01.20 암담 8
  8. 2009.01.16 편견 10
  9. 2009.01.09 악몽 9
  10. 2008.12.24 짜증 22

해마다 청룡영화제에 과연 어떤 드레스를 입고 나올 것인지 세간의 주목을 받는 배우 김혜수. 당연하겠지만 그녀에게도 풋풋하고 싱그럽고 깜찍하기만 하던 십대가 있었다. 중학생쯤으로 기억되는 그녀가 나온 TV 광고를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심지어 광고문구까지도.
"못생겨도 맛은 좋아, 매치매치바!"
아니, 어쩌면 그 광고문구 때문에 귀엽게 콧등을 찡그리며 웃는 김혜수의 앳된 얼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당시 막내동생이 방문에 브로마이드를 붙여놓을 정도로 김혜수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나 역시 그 땅콩초콜릿바를 꽤나 애용했다. 5분 더 자겠다고 아침을 굶고 떠난 등교길, 산꼭대기에 있는 학교건물까지 올라가려면 언덕배기 초입에 있는 문방구에 들러 초코바를 하나 입에 물어야 무거운 다리를 들어올릴 기운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소녀 김혜수의 깜찍함에 힘입었든, 초코바의 맛 때문이든, 기발한 광고카피 때문이든 그 제품은 한동안 꽤나 사랑을 받았는데, 나는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 같은 속담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꽤나 인상적이었을 그 광고문구 덕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못생긴 걸 자랑삼은 경우는 아마도 그게 유일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그때도 지금도 '추함'은 이 사회에서 비웃음과 손가락질과 비하의 대상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 같은 사람은 자신의 외모를 드러내놓고 희화해서 성공을 거두었고(아예 그가 부른 <얼굴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노래도 있었다) 요즘도 못생김을 무기로 활동하는 수많은 코미디언, 개그맨들이 있지만, 나는 덩달아 웃으면서도 그들의 자기비하가 마음 불편하다. 얼굴 생김새가 곧 개그라는 그들의 목소리는 곧, 대한민국의 외모지상주의가 점점 공고해지고 심화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였던가 외모가 뛰어나고 키가 커야 성공한다는 논문이 발표될 정도이니, 외모지상주의는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된 모양이다. 하지만 그래도 좀 괜찮게 산다 싶은 나라로 꼽히는 국가 가운데선 이력서에 대놓고 사진을 붙이게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밖에 없을 거다. 하기야 어디 사람얼굴 뿐인가. 최상품이 되려면 황소도 잘 생겨야 하고, 과일도 번지르르 때깔이 고와야 하며 애완동물도 더 예쁜것들을 골라 더 예쁘게 치장하는 경쟁이라도 붙은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들은 원래 그렇게 예쁘지만은 않다. 여기서 예쁘다는 말은 이미 보편적 잣대로 굳어져 버린 <현재의> 인공미 기준을 따질 때 그렇다는 말이다. 그저 자연스러운 형태를 예쁘다고 찬미하는 시대는 가버린 듯하다. 아니, 아직 오지 않은 것인가? 
나 역시 무슨 물건을 사든 예쁜 게 좋고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속물이지만, 예쁘지 않다고 차별하거나 무시하거나 인위적으로 바꿔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요즘 사고방식엔 숨이 막힌다.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이고 본인의 선택이라고는 해도, 평범한 사람들까지 나이고하를 막론하고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배불리는 사회현상이 건강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젊든 늙든 예쁘지 않고는 못견디도록 만든 건 분명 집단의 압력이 작용한 게 아닌가. 내가 보기엔 징그럽기만 한데, 연세 많으신 시골 할머니들까지 시커멓게 눈썹 문신을(십중팔구 불법 시술이었을 거다;;) 하고 계신 걸 보면 숨이 막힐 정도다.

그나마도 현대인의 건강염려증과 환경에 대한 일부인들의 뒤늦은 염려로 차츰 늘어나고 있는 유기농이나 무농약 채소들을 보면 조금씩 변화가 느껴진다. 농약을 하나도 치지 않고 때깔나게 왁스도 바르지 않고 나온 과일들은 울퉁불퉁 크기도 제각각 모양도 제각각이며, 채소들도 하나같이 참 못생겼다 싶을 정도로 매끈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미 익숙해진 감별방법에 따르면 차마 선뜻 손이 안 가게 생긴, 흠집도 많고 모양도 비뚤어진 녀석들을 엄청나게 비싼 값에 사먹으며 새삼 느낀다. 자연스럽다는 건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텃밭에서 채소를 키워먹는 외삼촌이나 고모의 말을 들어보면, 처음엔 비료를 치지 않고는 고추 하나 오이 한개도 똑바로 자라지를 않더란다. 생김새는 비틀리고 굽었지만 맛은 비할데 없이 좋은 그 채소들을 얻어먹으며, 생산자의 양심에 대해 반신반의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비싼 유기농 제품들을 사먹으며 자꾸만 나도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중이다.
자연스럽게 못생겨야 예쁜 거라고.
영화든 드라마든 주인공이 예쁘고 잘생겨야 볼 맛이 난다는 편견도 이젠 좀 버려야겠다고 반성하고 있다.
많이 티 안나게 참 잘도 고쳐 예쁜 사람들을 보며 감탄하고, 티나게 고친 사람들을 보며 쑥덕거릴 것이 아니라
나라도 자연스럽고 개성있는 얼굴들에 박수를 쳐줘야 할게 아닌가.
비록 내 목소리가 외모지상주의의 집단최면의 기세에 눌려 이내 짓밟히고 말지언정
잊지는 말아야겠다.
못생긴 떡도 재료만 좋으면 얼마든지 맛있다고!
백화점에 즐비한 요란한 화과자보다 옛날 집에서 대충 만들어 먹은 인절미가 정말 훨씬 더 맛있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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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준비

투덜일기 2009. 3. 19. 18:41

대형마트에서 대량으로 식료품 쇼핑을 하는 건 환경을 위해서나 건강을 위해서나 좋지 않은 일이니 재래시장에서 그때그때 먹을 것만 구입해야 한다는 원칙은 나도 안다. 하지만, 마트에서도 원산지를 속이는 판국에 원산지 표시가 잘 눈에 띄지도 않는 우리 동네 재래시장은 좀체 잘 안가게 된다. 특히 시장 입구에 좌판을 벌이고 마치 집앞 텃밭에서 뜯어온 것처럼 소규모로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들의 채소가 박스째 떼어온 중국산일 수도 있음을 알고 난 뒤로는 말이다. 게다가 나로선 일주일에 한번 장보는 것도 얼마나 별러야하는 일인데!
어쨌거나 장바구니에 생선과 고기 같은 신선식품은 미리 담아오더라도 늘 박스 한두개는 따로 배달을 시켜야 할 정도로 거한 일주일치 장보기를 마치고 난 다음 며칠은 당연히 밥상이 풍성하다.
원래 어젠 공주님 납시는 날이어서 가장 풍성한 밥상이 꾸며졌어야 할 터이나, 저녁에 <파스타>가 먹고 싶다는 난데없는 공주의 변덕을 맞닥뜨린 무수리는 우리 동네 마트에선 생 <바질>을 절대로 구할 수 없다는 억지스런 변명으로 간단히 인스턴트 스파게티를 해먹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고 본격 요리는 오늘로 미뤄졌다.
오늘은 오징어를 볶을까 시금치된장국을 끓일까 고민하다 블로그질에 도끼자루 썪는 줄 모르고 어영부영 시간이 많이 지나 제일 간단한 닭죽을 끓이기로 했다. 통마늘과 대파를 넣고 푹푹 닭을 삶다가 불린 찹쌀만 넣어 끓이면 되는 간단한 메뉴. 어려선 닭 백숙과 닭죽이 그리도 느끼하고 싫더니 요샌 별러서 먹는 영양식이다. 물론 엄마가 해주실 때보다 나는 닭껍질을 많이 벗겨버리고 누런 기름도 죄다 건져내니까 당연히 담백할 수밖에 없겠지만...

어제 저녁에 끓인 굴국도 시원하고 좋았는데 엄마가 점심때 안드시고 남겨두는 바람에 나는 신경질을 펄펄 내며 다 쏟아버린다고 신경질을 부렸다. 내가 요리한 음식이 내가 예상한 대로 <딱딱> 소비되지 않으면 나는 왜 화가 나는지.
엄마는 순전히 나 먹으라고 아껴둔 것이지만, 저녁엔 또 저녁에 먹을 메뉴를 염두에 두고 있던 나는 계획이 틀어지면 버럭 히스테리와 홧병이 도진다.

삼십대 초반이었을 거다. 초보 번역가 시절, 어느 출판사의 부탁으로 외서기획과 저작권 계약 업무를 도우며 비상근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란 저작권 에이전시를 주기적으로 돌아다니며 책을 추천받고 검토를 하고 기획회의를 거쳐 계약을 추진하는 것. 기회가 되면 맘에 드는 책을 번역하겠다고 나서기도 하고.
그런데 그때 만난 어느 저작권 담당자 때문에 웃을 일이 있었다.
당시에 내가 액세서리, 특히 반지를 좀 과도하게 끼고 다닌 탓도 있기는 했겠지만, 몇달쯤 안면을 익히고 나서 점심도 한번 같이 먹어 일 관련 이야기와 함께 간간이 사담도 끼어들기 시작했을 무렵 나와 동년배였던 그 담당자가 나에게 난데없이 물었다.
"아직 아이는 없으세요?"
허걱.
나는 순간 멈칫했지만 푸하하하 웃으면서 결혼여부도 아니고 어떻게 대뜸 아이가 없는지 물을 수 있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게 유부녀 아줌마스러워 보였느냐고. 
그 담당자는 몹시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지면서, 나이 들어 보인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며  두세개쯤 끼고 다니던 나의 알반지 때문만은 아니고 그냥 분위기가 그렇게 느껴졌다고 실토했다. 자기도 결혼을 했기 때문에 더욱 잘 아는데, 통상적인 혼기로 여겨지는 나이가 지난 미혼여성들, 특히 자존감이랄까 자기색깔이 뚜렷하기 쉬운 출판계의 <노처녀>들이 풍기는 미묘한 까칠함과 조바심 같은 것이 나에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분의 변명이었다. 심지어 나에게선 기혼자 특유의 여유로움 같은 것까지 풍겼다나. -_-a 자기가 설명을 계속 이어봤자 나에겐 더욱 민망한 평가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녀는 정말로 칭찬의 의미였다고 극구 미안함을 토로했고 나도 순순히 칭찬이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남들 다하는 것의 때를 놓친(또는 놓쳤다고 생각하며 낭패감에 젖는) 사람들은 확실히 조바심과 앙탈을 부릴 수밖에 없다. 20대 초반부터 꽤 오래 결혼을 꿈꾸며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마음처럼 삶이 풀려나가지 않았던 내 주변의 몇몇 친구들이 그야말로 <노처녀 히스테리>가 무엇인지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에게선 그런 짜증스러움이 온몸에서 배어나오지 않는다는 평가에 그땐 솔직히 흐뭇했다.
그런데 그때의 그 담당자를 요즘 만난다면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것이 틀림없다. 매사에 왜 이리도 짜증이 많아졌는지. 물론 지금도 혼자라는 내 상태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고, 이 정도의 자유로움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만날 무얼 해먹어야 할지, 냉장고에 먹을 거리가 떨어졌는지 살펴야 하는 밥순이로서의 삶은 도저히 기뻐할 수가 없다. 가사 도우미를 들이고 그 시간에 열심히 일을 더 해보자는 생각도 해보지만, 사실 내가 <실제로> 가사일에 힘쓰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청소도 일주일에 한번 할까말까 하니, 후닥닥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 하는 시간을 따져보면 과연 그 시간에 일을 얼마나 하겠나. 오히려 시간이 많이 드는 건 왕비마마의 건강과 영양상태를 감안해서 메뉴를 고민하는 일인데, 우유부단함과 본인의 식탐까지 더해져 그 과정은 쓸데없이 참 소모적이다. 그러고는 또 혼자서 생병을 앓으며 짜증을 부려 이마에 내천자를 그리고 사니, 삶이 반영되어 스스로 책임져야 할 얼굴은 더더욱 못생겨지고 있는 듯하다. ㅜ.ㅜ

예전엔 그래도 아, 또 한끼 해결했으니 기쁘다, 고 여겼는데
이젠 아이고, 한끼는 해결했다만 내일은 또 뭘 해먹냐, 고 미리 걱정부터 하고 앉았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인데 난 왜 이리 자꾸 비비 꼬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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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전부터 꾸준히 오가고 있지만 무지한 나로서는 춥지 않은 겨울, 녹아 없어질 위기에 놓인 북극 빙하, 마른 장마, 세계 각지의 이상기온을 그저 막연하게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뉴스를 자주 보는 것도 아니고, 바깥 공기는 며칠 만에 한번씩 접할 때도 많기 때문에 기온 파악을 전혀 못하고 살다가 잘못된 옷 선택에 민망한 순간이 있긴 해도 요즘 기온이 평년보다 얼마나 더운지 추운지는 잘 모른다.

아무리 봄이 왔다고 해도 춥게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못견디기 때문에 늘 남보다 뒤쳐지는 두툼한 옷을 입는 편인데, 어제는 과연 입을 때가 됐을까 아닐까 고민하며 그간 꺼내지 못했던 할머니의 유품 스웨터를 드디어 꺼내 걸치고 장보러 나갔다가 쪄죽을 뻔했다. +_+ 예년엔 3월과 늦가을에 입었던 것 같은데...
골목 어귀의 목련도 이제 막 벌어지려는 듯 물이 올라 있었다. 봄꽃은 원래 4월이나 돼야 피는 거 아니던가? 어쨌든 아름다운 꽃들이 좀 빨리 피는 것이야 반가우면 반가웠지 나쁠 일은 없다.


문제는 얼마전부터 우리 동네에 미친듯이 생겨나고 있는 모기떼다.
특별 방역이 필요할 정도로 벌써부터 모기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다. 어차피 요즘 모기들이야 아파트촌의 뜨뜻한 하수구에서 한겨울에도 버젓이 살아 날아다닌지 꽤나 오래 되지 않았나. 그런데 최근 출몰한 우리 동네 모기들은 한겨울에 몇마리씩 날아다니는 수준이 아니다. 자연하천 복원이랍시고 한강물을 끌어들이고 분수에다 물레방아, 폭포까지 생돈을 쳐들여 물이 흘러가게 만들어놓은 홍제천이 핵심 원인이라는 심증이 가기는 하는데, 흐르는 물에도 모기들이 알을 낳을 수 있는지 없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동네에 날아다니는 모기들은 군데군데 시커먼 갈색구름처럼 수백, 수천마리씩 뭉쳐 윙윙거리는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아직 그나마 기온이 낮기 때문인지 여름날 보이는 모기처럼 몸집이 크지 않아 그 절반도 안되는 듯부실하고 아직은 사람을 물지도 못한다. 자칫하면 하루살이처럼 보일 정도로 작은 놈들이 가끔 집안으로 숨어들었다간 제풀에 지쳐 비실비실 죽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놈들이 방충망 바깥에 수십마리씩 앉아 있는 광경을 보노라면 으으으으....
방충망을 향해 모기약을 뿌려대도 놈들은 후르륵 날아갔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며칠 전 꽃샘추위가 왔을 땐 모기들이 하나도 안보이길래 다 얼어죽었나보다 기뻐했더니 어느새 다시 살아났더라. 이른 봄부터 벌써 이 지경이면 여름엔 어쩌란 말인가.
경상도 어느 도시였던가. 근처 공장에서 내보낸 높은 온도의 폐수 때문에 모기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져 구름처럼 날아다니는 바람에 집밖으로 외출을 하려면  벌치는 사람들처럼 망을 내려뜨린 모자를 써야할 정도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본 것 같은데, 설마 우리동네도 그런 지경이 되는 것은 아닐까.
모기 잡으라고 구청에 민원전화라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만날 구시렁거리면서도 정착 전화해볼 용기는 못 내고 있다. 이미 누군가 불평을 해서 상황을 알고 있을 거야, 라고 막연히 짐작하면서...

이런 것이 지구 온난화로구나 싶어서 문득 두렵고 으스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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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먹을 두려움

책보따리 2009. 3. 14. 16:31

실제로 욕하는 사람들과 대면할 일은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긴 하지만 번역가 역시 대중에 노출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직업이기에 어느 정도 욕 먹을 각오는 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검증과 검색 수준이 뛰어난 독자들을 상대로는 더욱 그렇다. 나 역시 과거에 번역서들을 읽으며 통 내용 이해가 잘 되지 않거나 문장 호흡이 길어 심히 얽힌다 싶으면 <번역이 뭐 이따위야!> 또는 <번역이 엉망이군>이라는 말을 아무 생각없이, 수없이 외쳤던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지금도 내노라하는 이름난 번역가들이 옮긴 책에서도 혹시 제자를 대리 번역시켰나 싶은 의혹이 드는 이상한 문장이나 비문을을 발견하는 일이 더러 있을 정도이니 오죽하랴.

어차피 입맛 다양한 독자들을 일일이 다 만족시킬 수 있는 번역문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로 위로를 삼기는 하지만, 굳이 지난번 시리즈물 번역건으로 속쓰렸던 일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특히 잘 팔렸으면 싶은 책이거나 잘 팔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책의 경우는 욕먹을 두려움 때문에라도 점점 최종 원고를 넘기는 일이 망설여진다. 물론 그래야 번역의 질이 높아지고 더 정성들인 문장이 태어날 터이니 나에겐 도움이 되는 고민이긴 한데, 아무리 고민을 해봤자 딜레마는 깊어만 간다는 데 문제가 있다.

과거 출판사들은 대부분 독자들을 위해 가독성이 뛰어난 매끄러운 번역문장을 선호하여 너무 복잡한 문장은 번역이나 편집 단계에서 <알아서> 정리했지만 최근들어선 가독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원문의 문체와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번역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쉽게 술술 잘 읽히는 문장만이 능사는 아님을 책만드는 사람들도 책 읽는 사람들도 깨닫기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나 역시 골머리가 썩을지언정 쉽게 번역하자고 대여섯줄씩 이어지는 복잡한 문장을 생선 토막치듯 난도질해 편히 옮기는 것보다는 기필코 유려하게 원문과 <최대한> 유사한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고 나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 걸 더 즐기는 편이다. 복잡한 만연체로 쓴 작가의 작품을 선택해 읽는 독자라면 호흡이 더뎌 진도가 느리더라도 문장을 곱씹어 읽는 정도의 수고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글을 다듬는 과정을 <윤문>이라고 하는데, 번역서의 경우 윤문의 정도가 얼만큼이 적당한지, 원작 훼손과 가독성의 문제를 어느 정도까지 양보를 할 수 있을 것인지의 논란은 아마도 인류가 다른 언어권의 책을 읽어대는 행위가 끝나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옷을 바꿔입으면서 이미 원전은 훼손을 피할 수 없지만, 그 훼손의 정도를 최소로 줄여 전달하는 것이 번역자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할 때 번역가의 존재는 눈에 띄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은이와 독자 사이의 소통에 옮긴이의 개입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독서를 이끄는 번역. 냄새 고약한 정로환에 분홍색 껍질을 입혀 냄새를 없앤 정로환 당의정 같은 느낌의 번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약효는 똑같으니 본질은 같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겠지만, 일단 다른 언어로 먼저 쓰인 책을 만들고 읽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라면 거북한 냄새가 나는 정로환은 냄새 나게, 달콤하고 알록달록한 새알 초콜릿은 또 그렇게 경쾌하고 달콤하게, 번역가도 편집자도 독자도 그대로 인정하고 삼킬 의무가 있다.

그러나 내 경우도 이 생각은 어디까지나 내가 번역작업을 하며 목표로 삼는 <이상>일 뿐, 현실에선 끊임없는 유혹을 느낄 때가 많다. 이왕이면 좀 더 그럴듯하게 유려하게 문장을 다듬고 싶은 유혹. 읽다가 턱턱 걸려서 짜증났던 과거의 수많은 번역서 독서 경험도 원인으로 작용했겠고, 일단은 쉽게 풀어 독자 입에 쏙 넣어주는 매끄러운 번역을 선호했던 과거의 번역경향에 이미 내가 꽤 길들여진 탓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원문이 워낙 유려하다면 오히려 그 느낌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할까 염려해야 하는 형편이니 더욱 공을 들이면 될 일이다. 하지만 원문이 의도적인 비문이라면?

이번에 번역한 책이 그랬다. 중국인 지은이가 <고의로> 서툰 영어로 쓴 일기식 소설. 초반부엔 완전한 문장이 단 한줄도 없는 단어의 나열이고, 맞춤법을 틀리게 쓰는 건 유머스러운 애교 수준이었으며 중반 이후에도 주어와 동사가 마구 생략되거나 시제는 무시되었다. 물론 처음엔 재미있는 작업이라 여겼고, 점점 문장력이 향상되는 지은이의 글쓰기 과정을 독자들도 생생히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원전의 비문을 온전한 문장으로 만들려는 관성 같은 것이 되살아났고, 몇번이나 서술어를 지우고 다시 눈에 거슬리게 비문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은 출판사 및 담장자와 의논하여 결정한 번역방향이기도 했고, 그 책의 독특한 특징이므로 옮긴이로선 당연히 지켜야할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_-;; 그렇게 어렵사리 고민하고 넘긴 원고가 교정지 형태로 다시 되돌아온 지난주 내내 나는 역자교정을 하며 새삼 두려움에 떨었다. 책속의 수많은 비문과 불온전한 문장, 서툰 글쓰기와 표현을 과연 독자들이 순순히 원전 때문이라고 여길 것인가? 아니면 옮긴이의 역량부족이라고 불평하며 짜증이 나서 책을 집어던질 것인가?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하마터면 역자후기에 수많은 비문과 서툰 글쓰기 및 표현은 지은이의 의도이니 옮긴이의 책임이 <절대> 아니라고 티나게 유치한 변명을 적어넣을 뻔했다가 참았다. 욕을 할테면 하라지. 나만 떳떳하면 되는 거니까, 라고 마음을 다잡고는 있는데 그래도 슬며시 되살아나는 두려움은 어쩔 수가 없다. 욕 먹는 거 너무 싫은데. 온당한 욕이라면 발전의 밑거름이라도 삼겠지만, 부당한 욕은 나같은 소심생이 투덜이에겐 큰 상처와 좌절을 남긴다. 잘해야 본전인 번역 인생에서 앞으로도 욕 먹을 일은 수없이 많을 텐데 햇수가 거듭될수록 대범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고민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나마 발전적인 고민이라고 새삼 위로를 하고는 있지만, 이 책 잘 팔렸으면 좋겠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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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촉전화

투덜일기 2009. 2. 10. 15:39

사람마다 죽어라 하기 싫은 일이 다르겠지만
워낙에도 먼저 전화하기를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뭔가를 독촉하는 전화가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일 축에 들지 않을까 싶다. 거기다 금전 문제의 독촉전화라면 더더욱.

아주 가끔 몇년씩 원고료 지불로 속을 썩이는 출판사가 있다고 푸념을 늘어놓으면
힘깨나 쓰는 지인들이 당장에 나선다.
"내가 대신 받아다 줄까?"
과연 그들이 험상궂은 얼굴로 찾아가 단박에 받아낼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상상을 해보면 즐겁기는 하다. 요리조리 뺀질뺀질 결제를 미루는 악덕 담당자의 멱살을 쥐고 위협해
당장 원고료를 받아내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나의 하수인이라니.
다만 그러고 나면 출판계에 소문이 자자해지겠지.
깡패를 동원해 밀린 원고료를 받아내는 무시무시한 번역가이니 나와는 웬만하면 상종하지 말라고. ㅎㅎ

가끔 정말로 사장의 개인 주머니는 배불리면서 결제에 인색한 출판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이 업계에 발을 들이민 후 해마다 최악의 불경기에 허덕이고 있다는 출판계 사정을 빤히 아는 나로선
무작정 배째라 원고료 독촉을 해댈 배짱도 없고 담당자의 얼굴을 봐서라도 늘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웬만해선 독촉하지 않고 마냥 기다리는 것.
다행히 최근 꾸준히 거래하는 출판사들은 때가 되면 다들 알아서 결제를 해주는 양상이라
죽어라 싫은 독촉전화를 할 일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나 문제는 친분관계가 쌓이기 이전에 순전히 단발성 작업으로 연결되었는데 계약 및 번역 이후 차일피일
결제가 미뤄지다 담당자들이 모두 퇴사하고 나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경우다.
그나마 책이라도 출간되었으면 상황이 나은데
중간에 기획이 엎어져 출간은 물 건너 가고 흔적도 남지 않은 책의 경우, 담당자마저 없으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딱 2년전에 번역 원고 넘기고 마냥 기다리다가 작년에 드디어 출간포기 결정을 들은 책이 있는데
얼굴 익힌 담당자들은 다 떠나고 그나마도 전화 통화하던 후임자마저 퇴사한 후
아무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으니 가뜩이나 출간도 안 된 책의 결제가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그럴 땐 나라도 나서서 자꾸 독촉질을 해야하는데, 뼛골 빠지게 작업해서 넘긴 원고료 달라는 것임에도 나는 왜 그리도 결제 독촉전화 하는 게 싫은지. ㅠ.ㅠ
전화 해야지 전화 해야지, 작년에도 몇달을 벼르다 새로운 편집부 팀장과 통화를 했더니 넌지시 관리부 담당자와 직접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 마침 그날 관리부 차장은 자리에 없었고....
나는 또 꼬박 한달을 넘게 벼르고 별러 겨우 오늘 전화 걸 용기를 냈다.

그러나.
관리부 차장은 내가 2년 전에 그런 번역원고를 넘겼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_+
사실을 확인해봐야겠단다.
미치겠다. 
왜 진작 독촉질을 하지 않은 건지, 이럴 땐 우유부단하고 행동력 떨어지는 내가 정말 짜증스럽다.
여기에 이런 창피한 푸념을 적어 놓는 것은 수일 내로(가능하면 내일!) 추후 독촉전화를 해야겠다는 뒤늦은 의지의 표현이다.

결심 1. 이번 결제 건이 해결될 때까지 일주일에 한번은 반드시 독촉전화를 한다.
결심 2. 내키지 않는데도 부탁을 거절 못해 억지로 맡는 일은 반드시 탈나게 되어 있으니 앞으론 확실히 거절하자.
결심 3. 계속되는 출판불황에 원고를 넘겨도 결제일이 불확실하니 큰소리 치려면 마감일이라도 잘 지켜 원고를 넘기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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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

투덜일기 2009. 1. 29. 23:48

아침부터 서둘러 움직이느라 종일 커피마실 시간이 없었다.
카페인 중독자임이 분명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갈망을 오래 느끼는 경우 특히나 심한 두통에 시달리는데
이미 두통이 시작되고 난 이후엔 커피를 마셔도 소용이 없다. 그 또한 카페인 중독의 전형적인 증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하루쯤 커피를 멀리한 대가로는 너무 혹독하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두통을 잠재우려고 다 저녁때 커피를 마셔보았지만 결국엔 두통약을 삼키고도 아직 앞머리가 깨질것 같은 편두통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두통이 가시면 일해야지 마음먹고 계속 방바닥을 뒹굴어도 소용이 없기에
모니터를 보려면 왼쪽눈을 살짝 감아야할 정도로 머리가 계속 지끈거리는 이 상황에도 컴퓨터 앞에 앉기는 했으나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번역작업은 도저히 시작할 수가 없겠다.
내일까지 잠을 못자든 말든 이 밤중에 진하게 커피를 한잔 더 마실까 하는 충동이 일었지만
컨디션이 무너지면 안되는 초절정 마감모드에 돌입해야 하므로 참는 대신
스킨과 사진이라도 커피 냄새나게 바꿔보자고 전격 손을 댔다.
블로그 스킨을 바꿀 때마다 컴맹답게 몇시간씩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리며 고민을 하는 편인데
이번엔 워낙 머리가 아프다 보니 5분도 안돼 모든 선택이 끝났다.
타이틀 배경그림이 너무 빨개서 아래쪽과 전혀 안어울리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커피잔의 최면이 나의 편두통에 작용하게 되지나 않을까.
내일 제 정신 차리고 봐서도 보기 불편하면 또 바꿔야지 큭.
아... 머리아픈 거 참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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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담

하나마나 푸념 2009. 1. 20. 20:30

여기가 한국 맞나?
조금전 저녁뉴스를 보다 깜짝 놀랐다.
불타는 건물, 무시무시한 차림새를 한 일단의 특수기동대 모습, 검은 복면을 한 사람들이 건물 아래로 던지는 화염병, 촛불시위 때 본 것처럼 사람들을 향해 쏘는 물대포인지 불을 끄려는 소방호스인지 알 수 없는 굵은 물줄기. 활활 타오르는 불길만 얼핏 봤을 땐 억지휴전을 선언한다던 이스라엘이 또 다시 가자지구를 폭격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내 눈에 익은 한글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확실히 한국이었고 군사독재 시절도 아닌 현재 오늘 일어난 일들이었다.
서울 어디에서 철거민들이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는 뉴스는 어제 들은 바 있었다.
우리 동네 구청 앞에도 수시로 가재울 철거민대책위원회 사람들이 봉고차를 세워놓고 확성기를 틀어 시위를 하기 때문에 갈곳 없는 철거민들의 극단적인 저항은 익숙한 터였다.
당장 나만해도 아무런 보장도 받지 못하는 세입자 입장이라고 할 때 이렇게 어려운 경제상황에 맨손으로 쫓겨나야 한다면 머리띠와 몽둥이 뿐 아니라 화염병인들 손에 못들까 싶었다. 원래 본인과 가족을 살리기 위해선 죽기를 무릅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
옛말에 궁지에 몰리면 하물며 생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그러니까 일말의 숨통은 틔워놓고 몰아야 하는 거라고.
그런데 어떻게...
이미 여섯명이 목숨을 잃었고 철거민 시위대 가운데 부상자가 많아 희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란다.
영하날씨는 아니라지만 이 추위에 물대포를 쏘고 곤봉 든 특공대를 투입해 진압을 시도하다니.
그것도 겨우 농성 하루만에.

아주 오래 전 시국이 흉흉하던 나의 대학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전국적인 규모의 대학연합 반정부 시위가 있었고 정부는 당연히 강경진압을 계획했다. 광장에 모여있던 수많은 시위 학생들을 비롯하여 오후 수업이 과연 휴강일까 아닐까 소심하게 걱정하느라 강의실을 지키던 일부 학생들까지 독안에 든 쥐처럼 학교에 갇히고 말았고, 새카맣게 몰려드는 전경부대의 서슬에 밀려 학생들은 모두 건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점거농성이었다. 점거농성이란 것이 외부에서 통로를 차단함으로써 이루어질 수도 있음을 그때 난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겁을 먹고 오후 휴강을 틀림없이 믿으며 사방의 교문을 막아선 전경부대를 피해 부속중고등학교 쪽 샛길로 피신했지만, 여러 친구들은 미련하게 문과대며 학생회관 건물에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캠퍼스 곳곳에서 화염병과 돌멩이와 최루탄이 어지러이 오가더라도 다음날이면 여느 때처럼 교문이 열릴 줄 알았던 나의 기대는 착각이었고, 그날 저녁 뉴스에는 수백명의 학생들이 **대학에서 극악무도한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복면 쓴 시위대와 전경부대의 대치 모습이 보도되었다. 실제 농성 학생들의 수는 무려 2천명에 달했다.
그래도 하루 이틀이면 끝나려니 믿었던 대치상황은 일주일 가까이 지속되었던 것 같다.
결국 유례없는 대학 <점거> 농성은 몇날몇일이나 지난 뒤 가혹한 강제 진압과정을 거쳐 천명도 넘는 시위대의 전원 연행으로 끝이 났다. 그 기간 내내 전경측에선 학생들의 투항(=순순히 걸어나와 자수하고 체포되는 것을 의미했다)을 요구했고, 학생들은 전경들이 먼저 철수하기를 요구했으므로 팽팽한 갈등은 결코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없었다.
학교가 다시 열렸지만 수업은 진행될 수 없었다. 우리 과에서 연행된 학우들만 해도 이십여명이었고 당연히 내 친구들도 몇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매일 큰 강의실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며 교수와 학생들 모두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우선 두툼한 파카를 사서 유치장에 있는 이들에게 보내주면서 우리는 너무 억울하고 허무해서 많이 울었다. 내가 그날따라 조금만 더 강의실에서 꾸물거렸거나, 학관 앞에서 운동화끈을 고쳐매며 "오늘은 너도 같이 구경갈래?"라고 묻던  K나 S를 따라 구경을 갔었더라면 나도 복면을 한(시위때 마다 최루탄 가스가 너무 심해 마스크나 스카프로 입을 가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극악무도한> 점거농성자가 되었을 터였기 때문이다. 

20년도 넘은 그 때의 기억이 오늘 본 뉴스장면과 겹쳐지며 기가 막혔다.
역지사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면,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그간의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철거민의 입장이라면 과연 경찰청장은 그런 진압명령을 내릴 수가 있을까?
왜 다른 나라는 현대적이고 번화한 수도에서도 한켠에 남아 있는 수백년씩 된 건물과 집에서 멀쩡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이 나라는 겨우 수십년 된 집과 건물들을 죄다 허물고 삐까번쩍한 고층건물과 아파트를 지어 번드르르하고 숨막히는 공간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개발은 반드시 과거를 지워야만 성공한단 말인가?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은 어차피 권력의 시녀이자 하수인일 수밖에 없지만
지금이 어느 땐데...
이런 살육극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저들의 사고방식이 정말 두렵다.
주먹을 불끈쥐고 욕하면서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것뿐인가 싶어서 자꾸 비감에 젖는다.
뉴타운이니 재개발이니, 하는 것들은 결코 서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란 걸 서서히 서민들도 깨달아가고는 있다지만 금전만능주의에 눈이 뒤집힌 수많은 기득권자들이 자기 밥그릇을 양보하지 않는 한 위정자들의 개발논리는 뒤집힐 수 없을 것이다. 
참으로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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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하나마나 푸념 2009. 1. 16. 22:04

며칠 전 왕비마마와 공주를 모시고 느닷없이 찜질방엘 갔을 때의 일이다.
날씨가 워낙 추웠던 탓인지 시설이 워낙 노후한 곳이기 때문인지 찜질방은 놀랍도록 한산했다.
원래 가려던 찜질방은 하필 정기휴일이라 다음을 기약하려 했으나 고집쟁이 조카 공주의 강짜에 어쩔 수 없이 갔던 것인데 약간 뜬금없는 일을 겪었다.

황토방이었던가 소금방이었던가, 잘 기억은 나질 않는데 워낙 사람이 없어서 딱 한사람이 누워있는 찜질방엘 공주와 함께 들어갔더니 드러누워 있던 아줌마가 반색을 하며 자꾸 말을 걸었다.
"사람이 너무 없으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추워서 그런가봐요."
공주와 나는 노코멘트.
"그나저나 오늘 평일인데 너는 어떻게 학원에 안가고 엄마를 따라왔니?"
여전히 우리는 노코멘트. 엄마가 아니라 고모라는 말도 해주기 싫었다.
"아유 엄마가 젊어서 큰언니랑 동생 같아 보이네요. 넌 오늘 학원 안갔나보다? 추워서 안갔어? 불이 어두워서 이런데서 책 보면 눈 나빠지는데..."
당시 조카는 바닥에 드러누워서 가져간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의 침묵이 답답했는지 급기야 아줌마는 벌떡 일어나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얜 학원 안다녀요?"
하는 수 없이 내가 대꾸했다. "네, 안 다녀요."
드디어 집요하게 나의 반응을 이끌어낸 아줌마는 속사포처럼 수다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어머나, 왜 학원을 안 보내요! 요새 학원에 안다니는 애들이 어디 있다고! 이런데까지 와서 책 읽는 거 보니까 얘는 시키면 잘하겠구만. 눈빛도 초롱초롱한 게 똘똘하게 생겼네. 요즘 공부는 엄마가 신경써서 시켜야 잘 되는 거예요."
"왜요, 학원에 안다니는 애들 많지 않은가..."
졸지에 무식한 엄마 취급을 받으며 더욱 말대꾸 하기가 싫어진 내가 혼잣말을 하듯 대꾸했더니 아줌마의 댓거리는 더욱 가관이었다.
"요즘에 학원에 안다니는 애들은 다 문제 있는 애들이에요. 엄마 아빠가 이혼해서 혼자 데리고 있거나 가난한 할머니가 키워서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애들이나 학원에 안가는 거지, 제대로 된 집안 아이들은 다 학원에 다닌다니깐요! 학원도 동네 속셈학원 같은 데는 아무 소용없고, 아주 잘 가르친다고 이름난 학원엘 보내야 돼."
공주와 나는 내심 발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이렇게 무례하고 무식한 편견에 사로잡힌 아줌마가 다 있나 싶었던 것.
정민공주는 일찌기 학원에 다니기를 거부하여 집에서 학습지 방문교사와 사촌오빠의 과외교습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주가 그날 우리집에 온 것도 무수리 선생과 영어공부를 하기 위함이었는데!
조카는 아줌마 들으라는 식으로 나에게 말했다.
"내 친구들도 학원에 안다니는 애들 많은데... 현지도 안다니고 예림이도 안다니고 **도 안다니지만 걔네들 다 엄마아빠 다 있고 아무 문제도 없어."

나는 어떻게든 무식한 아줌마로부터 정민공주를 보호하며 변호도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앞뒤없이 말했다.
"애들 공부를 학교에서 가르쳐야지 어려서부터 너도나도 학원에 보내는 이 사회가 잘못된 거죠.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순전히 나의 실수였다. 나의 논리를 받아들일 상대가 아니란 것쯤은 미리 파악했어야 하는데.... 아줌마는 한심하다는 듯 나에게 훈계를 했다.
"어떻게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에요? 인생의 전부지! 공부를 잘해야 인생이 성공하는데! 공부 못하면 요새 사람취급도 못 받아요!"
"어떻게 모든 아이들이 공부를 다 잘할 수가 있겠어요. 잘하는 애들도 있고 못하는 애들도 있고, 공부 못하는 애들은 또 잘하는 특기를 살려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죠. 저는 꼭 큰돈 들여 공부시켜야 성공하는 이 사회가 틀려먹었다고 생각해요..."
벽창호 같은 아줌마를 단시간에 설득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내 목소리는 점점 약해졌고 더는 대꾸하기가 싫어져 그만 일어나 나가버릴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미 옷이 다 젖도록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그 아줌마는 별 희한하고 무식한 여자를 다 보겠다는 식으로 금방이라도 혀를 끌끌 찰 것 같은 표정이더니 "참 내..."라고 중얼거리며 찜질방을 나갔다.

뒤에 남은 나는 인상을 찡그리다 그 아줌마의 뒷모습에 대고 혀를 낼름거렸는데, 그 모습을 본 조카가 물었다.
"고모, 왜 메롱 했어?"
"저런 아줌마랑은 아무리 얘기해봤자 쇠귀에 경읽기거든. 어떻게 공부가 인생의 전부겠니.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한 거지."
"맞아. 저 아줌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웃긴다."
공주는 그렇게 말하며 대수롭지 않은 듯 다시 책을 읽었지만, 나는 혹시나 조카가 아줌마의 폭언에 마음을 다치진 않았을까 걱정스러웠다.

사실 그 아줌마의 생각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 사회의 대다수 엄마들과 부모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편견이 더욱 무섭고 씁쓸했다. 그런 아줌마들은 단지 학원엘 안다닌다는 이유로 문제 가정의 아이로 단정하고 자기네 아이들과 못놀게 격리시킬 것이 뻔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인간취급도 안할 테니까.
조카들이 태어났을 때 나는 그들이 자라 대학엘 가고 어른이 될 때쯤엔 입시지옥, 취업지옥도 없는 근사한 사회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꿈꾸었는데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오히려 옛날이 좋았지.. 라고 회상하게 될 뿐 도무지 발전할 기미가 보이질 않는 것 같다.
이렇게 이기적으로 다들 사회적 특권을 누리기 위한 편법에만 목표를 두면 안되는 거 아닌가.
늘 뾰족한 대안은 생각나질 않고 불만만 가득하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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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투덜일기 2009. 1. 9. 06:38
이상한 불면이 또 찾아오는 바람에 이틀 꼬박 예민하게 날선 신경으로 지내야 했는데 
어제 저녁엔 고맙게도 밀린 잠의 공격을 받았다.
잠을 몹시 즐기는 사람이지만 며칠만에 빚 독촉 온 채권자처럼 가혹하게 찾아온 잠의 경우엔 사실 별로 편안하질 않아서 이런저런 꿈을 많이 꾸게 된다. 깜짝 놀라 까무룩 깨어났다가 스르르 다시 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 꿈을 연속적으로 꾼 것 같은데, 결국엔 확연한 악몽에 시달리다 새벽에 소스라치며 깨어나 더는 잠이 오질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끔찍한 꿈도 아니건만, 꿈속의 나는 너무도 괴로웠고 깊은 절망감으로 숨을 헐떡였던 것 같다. 현실에서도 가끔 맞닥뜨리는 주차장의 두려움이 꿈속에서도 나를 괴롭혔는데, 우리나라에선 잘 볼 수도 없는 드넓은 주차빌딩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차를 찾아 헤매도 끝내 내가 세워둔 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동차 열쇠를 손에 들고 끊임없이 사방을 향해 자동열림 단추를 누르며 혹시나 비상등을 반짝이는 자동차가 있는지 살피며 층층이 주차빌딩을 돌아다니던 꿈속의 나는 호흡곤란을 느끼며 울부짖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나는 소용돌이에 휩쓸리듯 좁고 굽은 통로를 따라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내려갈 때마다 아득한 현기증을 느낀다. 건물 지하라는 공간이 주는 폐쇄적인 느낌도 싫지만 드넓은 지하 주차장에 고만고만한 생김새로 서 있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제대로 차를 찾아내지 못하면 어쩌나, 그러니까 차를 세워둔 곳을 까먹으면 어쩌나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공간지각력이라고 하던가. 평면 도형의 좌우를 바꾸고 회전시켜 놓은 모양을 찾아내거나, 입체 도형 조각을 조립하여 특정한 형태를 만드는 아이들의 놀이를 대할 때도 나는 언제나 막막함을 느낀다. 사람마다 이런저런 능력이 제각각이듯 공간지각력이 크게 떨어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자위하면서도,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 어렵사리 빈 자리를 찾아 차를 세우고 볼일을 본 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이미 미로에 내던져진 실험용 쥐 같은 두려움과 공포를 피할 수가 없다.
실제로 주차 위치를 찾지 못해 오래도록 미친듯이 드넓은 주차장을 헤맨 적도 있었다. 실내 놀이공원과 백화점이 연결된 대형 쇼핑몰에 처음 차를 몰고 갔을 때의 일이었다. 차의 위치를 기억해둔답시고 제 나름대로 기둥에 그려진 주황색 동물 모양을 알아두긴 했지만 나중에 지하주차장에서 한 시간 넘게 자동차를 찾아 헤매다 주차장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자 형광색 모자를 쓴 주차요원은 딱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코끼리 주차장 면적만 해도 수백 평이 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입구도 여러 군데라 기둥에 표시된 글자와 숫자를 모두 알아 놓으셔야 합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만 되풀이 하며 주차요원은 짜증스럽다는 듯 자리를 피했다.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친구와 미친듯이 지하주차장을 헤매던 그날의 기억은 그 쯤에서 더는 이어지지 않는다. 분명 자동차를 찾긴 찾았을 터인데...
그 때의 낭패를 경험삼아 복잡하고 넓은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울 땐 기둥에 적힌 번호와 글자를 어디에든 메모해두지만, 막연한 공포로 이성이 마비되면 메모해둔 내용도 소용이 없다. 'A동 라06'이라고 적힌 메모를 빤히 보면서도 엉뚱하게 B동 지하에서 헤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지하주차장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 자동차와 함께 논리적인 사고도 삼켜버리는 미지의 검은 공간.
자주 다니는 대형 할인매장이나 대학병원의 지하주차장은 그리 복잡하지 않아 출입구가 빤히 보이고 미로 같은 구획도 없어 헤맬 이유가 없는데도 나는 나선형 진입로로 빨려들듯 깊이 뚫린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며 깊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익사자가 된 느낌으로 숨을 헐떡거리게 된다. 그나마도 차에 동행이 있을 땐 괜찮지만 혼자 운전할 땐 증세가 더욱 심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아무래도 오늘 아침 일찍 엄마 모시고 병원에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불러온 꿈인 모양이다. 아무리 자주 다녀도, 본인이 환자가 아니어도 병원과 지하주차장의 결합은 결코 유쾌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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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투덜일기 2008. 12. 24. 20:17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무조건 기분좋게 보낼 수야 없는 일이고 사실 나와는 별 무관한 날이니깐
그냥 평소 까칠한 성격대로 혼자 구시렁거리며 털어버려야겠다.

소소한 짜증의 원인이야 누구에게나 늘 있으며 얼마간 마음 끓이다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요 몇주일 증폭되는 짜증의 원인은 결국 내가 뿌린 씨앗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단기간에 끝날 것도 아니어서 더욱 속이 곯는다.

첫번째는 지난번에도 자아비판이랄까 제발등 찍기랄까 민망한 고백을 한 적이 있었던 번역건.
4권짜리 시리즈물을 두 권 번역한 뒤 세번째 책의 계약을 앞두고 있었을 때 담당자들이 바뀌면서 트집을 잡혀 이후 계약이 무산되었던 일이 있다. 그  사람들이 제 아무리 예의나 출판개념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사소하든 말든 내가 빌미를 제공하여 일이 불거졌으니 다 내 잘못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그들과는 두번다시 상종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앞으론 바쁜 마감에 시달리더라도 번역에 좀 더 신경쓰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였으니까.
그것으로 그냥 덮어두고 잊을 수 있으면 좋겠으나 상황이 또 여의치가 않다.
처음 상하 두권으로 냈던 소설을 단권으로 재출간하고 내가 번역한 두번째 시리즈가 출간된 뒤,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었으며 출판사에선 영화개봉과 더불어 특별판을 제작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작년 말에도 몇년 전 내가 우리말로 옮겨 출간된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나오긴 했지만 워낙 흥행이 안되는 바람에 곧장 극장에서 내려와 주변에서 아무도 알은체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할리우드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꽤나 흥행에 성공한 모양이다. 비수기인 요즘 관객수 백만을 넘어섰다나 어떻다나, 뉴스에서도 다뤄지는 상황이니 뭐.
설상가상, 영화나 드라마가 뜨면 원작도 덩달아 팔리는 법이어서 책도 엄청나게 팔리고 있는 눈치다.
그걸 배 아파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인세계약도 아닌 책이 수십만 부(실제로 수십만 부가 팔렸을 거란 얘기는 결코 아니다!) 팔린들 나한테 더 돌아오는 금전적 이득은 없으니까.
아 그런데, 속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만 인사랍시고 그 책과 영화에 대해서 알은체를 하며 축하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짜증스럽다는 얘기다!
별 문제 없었던 책이라면, 그런 연락을 받더라도 후후 낮게 웃으며 "많이 팔리고 장사 잘 되도 저랑은 상관 없는 거 아시잖아요"라고 한 마디 대꾸하면 그뿐이겠는데 이번 책은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잖아!
더욱이 고약한 출판사에서는 재출간된 첫권과 나중에 출간된 2권의 증정본도 보내주지 않았다. 2권의 경우 계약철회 통보와 출간일정이 얽히면서 역자교정도 없었고 심지어 역자후기도 싣지 않은 채 출간된 상태.
당시에 기가 막히고 열이 받쳤지만, 내 의무는 다하려고 역자후기와 교정 문제를 문의했지만 저들은 내 이메일에 아무런 회신도 하지 않았다.
그런 예의없는 인간들과 더는 상종하고 싶지가 않아서 나중에 서점에 나온 책을 보고도 증정본을 요구하는 대신 나는 씁쓸하게 한권씩 주문을 해서 책꽂이에 꽂아두었으며, 완전히 마음을 비웠다는 의미로 책과 함께 받은 휴대폰 액정클리너도 달고 다녔었다.
그런데, 이번주 내내 몇번이나 영화흥행과 더불어 예약판매까지 하고 있는 세번째 시리즈(다른 사람이 번역한!) 출간 때문에 덩달아 나한테 공연히 축하전화 비슷한 것이 걸려오니 그야말로 짜증스럽다. 출판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책 잘 팔린다고 옮긴이가 떼돈 버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는 걸 잘 알 텐데 왜들 그러는지 원!!
(제목 언급을 교묘히 회피하긴 했지만 이쯤하면 내 정체가 다 드러난 걸까? 아닐까? 에라 모르겠다.)

국내외 흥행에 힘입어 이미 할리우드에선 2번째 시리즈 영화 제작을 결정했다고 하니, 돌아가는 꼬락서니로 봐서는 다음 영화개봉 때도 나 역시 덩달아 일부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는 또 있다. 단권으로 출간된 1, 2권 원고를 아무래도 출판사측에서 나의 동의 없이 문장에 손을 댄 모양인데, 대체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번역문장이 훼손되었을 확률이 더 높고 그에 대한 욕도 내가 먹어야한다는 사실이다.
출판사에서 애당초 문장 스타일로 꼬투리를 잡아 옮긴이를 <잘랐>으니 지들이 고쳐놓은 문장에 대한 비난 역시 내 탓으로 돌릴 거라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벌렁 분노가 치민다. 으으으.

두번째 짜증의 원인 역시 일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중견 출판사들과 일을 하지만 초창기엔 나도 당연히 작은 출판사에서 번역을 시작했고 경력 없는 번역자를 키워주다시피한 곳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지금도 그대로다. 오랜 출판불황을 겪으며 안타깝게도 그 출판사는 몇년 전 부도를 맞았고 사업등록은 유지하고 있지만 사장님 혼자 고군분투하며 재기를 꿈꾸고 있다. 그 회사에서 알게 된 편집자며 기획자, 번역자들은 지금까지도 친한 친구로 남아 있기 때문에 가끔 모이면 그 회사와 사장님 걱정을 잊지 않았고, 가능하다면 조금씩 일을 거들어줄 수 있기를 바랐다. 시간이 되는 대로 번역이든 편집이든 디자인이든 도와드리자는 식으로.
그러다 나는 정말로 몇년 전 운좋게 작업스케줄이 비는 틈에 그 출판사를 위해 얇은 책 한권을 번역해주었다. 언제 출간될지 기약도 없는 일이었고, 원고료는 혹시 책이 대박나면 주세요, 라고 흔쾌히 제안할 정도로 처음엔 순수하고 기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몇년이 지난 지금 새삼 그 일의 뒤치다꺼리를 짬짬이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니 왜 이리 짜증이 날까. 그때도 긴급하게 출간일정을 잡겠다 하여 몇날몇일밤을 홀딱 지새워 번역을 마치고, 힘겹게 역자후기까지 써서 보냈는데 몇년이나 소식이 없었던 전적이 있기 때문인지, 더욱 미적지근한 마음이 드는 것 같다.
몇년 새 간사하게 변해버린 내 마음도 부끄럽고 잔뜩 밀린 다른 일은 어떻게 하나 한숨이 나오면서 과연 얼마나 걸릴지 모를 <공짜 일>의 순서를 어떻게 잡아야할지 갈피가 안잡히고,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짜증스럽기만 하다. 

이달들어 걸핏하면 "나 요즘 슬럼프인가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좋아하는 일이고 재미있게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어서 선택했는데 왜 요샌 만사가 다 시큰둥하고 열정이 일지 않을까.
결국 가장 큰 짜증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것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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