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초였나, 전시회 보려고 인사동에 갔을 때 놀라운 인파도 인파려니와 또 다시 죄다 뜯어내고 <또> 공사중인 인사동길에 식겁해 얼굴을 찌푸려야 했다. 인사동은 몇년째 공사중이 아닌 꼬라지를 본 적이 없다. 아스팔트 뜯어내고 하이힐 뒷굽 잡아먹기 딱 좋게 생긴 울퉁불퉁 돌을 깔아놓은지 얼마나 됐다고 또 한복판을 네모나게 파놓았었다. 이번엔 또 무슨 돈지랄을 하려나 싶어 짜증이 더욱 치밀었는데, 지난주에 나가보니 유럽 구시가의 뒷골목 자갈포장을 흉내낸 짝퉁 같았던 작은 돌포장 대신 널찍한 박석을 네모지게 깔아놓았다. 왜 당국자들은 애당초 처음부터 튼튼하고 전통적인 느낌의 길바닥을 깔 생각을 하지 못할까. 서울시가 하는 짓을 보면 뭐든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이다. 설마 이번 포장도 1년만에 뜯어내고 또 딴 걸로 바꾸는 거 아닌지 염려스럽다. 혹시라도 몇년에 한번씩 한국에 들렀다가 인사동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갈 때마다 공사중인 인사동에 뭐 볼 게 있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의아할 것 같다. 100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10년, 20년쯤 뒤를 내다보는 행정은 이 땅에서 불가능한 것일까.

똑같은 놈들이 권력을 잡고 하는 일이야 늘 뻔하지 싶어 별 기대도 안했지만 일년 넘게 생돈 처들여 만들어 놓은 광화문 꼬라지는 또 어떤가. 시청앞도 그렇지만 사방에서 차들이 빼곡히 돌아다니는 길 한복판에 광장이랍시고 만들어놓은 그곳이 정말로 시민들에게 도심 휴식처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지, 거길 만들어놓은 장본인들한테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 당신 같으면 그 정신 사납고 조잡한 곳에 들어가 진짜로 쉴 수 있겠느냐고. 많이 양보해서 쉬는 공간이 아니라 구경하는 공간이라고 치자. 이순신 동상이 거기 서 있는지 수십년이 넘었지만 차도 때문에 그거 구경하기 어려워 불만 품은 사람이 있었던가? 세종로라 이름에 걸맞게 원래 자리 꿰차고 앉게 된 세종대왕님도 불쌍하다. 그 혼잡한 매연 속에 얼마나 정신 사나울까 싶어서.

가끔 새로 닦은 광화문을 차로 지나거나 그 앞 버스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어보면, 아스팔트 대신 깔아놓은 조그만 타일 같은 포장재 때문에 소리가 아주 요란하다. 다다다다.... 목욕탕 타일 붙이듯 일일이 그 포장재를 붙였을 건설노동자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눈물겨울 지경이지만, 그런쪽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장담할 수 있다. 아스팔트도 눈비맞고 혹독한 여름과 겨울을 지나면 몇년안에 다시 깔아주어야 하는데, 그런 얄팍하고 조잡해 보이는 포장재는 그보다 먼저 떨어져나가 이빠진 것처럼 흉물로 변하고 말 거라고. 아주 가까운 인사동에 그 전례가 있지 않았던가! 설마 남은 예산 모두 써버리느라 연말만 되면 보도블럭을 교체해대는 서울시와 지자체들의 <불가피한> 예산확보의 방편으로 광화문에도 <일부러> 내구력 짧은 포장재를 선정한 것은 아니겠....지?

지자체에서 저마다 생색용 돈지랄에 재미를 붙인 이후 동네마다 이런저런 공원이 많이 생겨났고, 요샌 대학로에도 중학천 복원공사인지 뭔지해서 청계천 짝퉁 같은 실개천을 다시 만든다고 난리라는데, 내가 보기엔 하나같이 한숨만 나온다. 어쩜 그렇게 공원마다 천편일률적으로 생긴 게 똑같은지. 보나마나 중학천도 청계천과 똑같이 시멘트로 온통 싸바른 뒤 물풀 몇개 심어놓고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복원>했다고 자랑할 게 틀림없다. 공원조경 업체에서 서울시나 구청 쪽에 대거 뇌물을 쓰거나 담합 독점이라도 한 것일까?
특히 공원마다 내가 제일 꼴보기 싫어하는 것은 땅바닥에서 솟아나오는 분수. 시청앞에도 있더니 광화문에도 만들어놓았다. 여름이면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땅바닥 분수 사이를 뛰어다니며 철딱서니 없이 놀던데, 어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 분수의 수질이 얼마나 엉망인지 굳이 뉴스에서 다루지 않았더라도 나 같으면 그런 분수 근처에 절대 발도 들이지 않을 뿐더러 아이들도 못들어가게 할 텐데,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하기야 새로 세운 세종대왕상 보겠다고 주말이면 우글우글 몰려드는 사람들이 내 눈엔 이상해만 보이니 내가 비정상인가?
나 역시 분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 어린이대공원 정문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높은 분수대는 나에게 아련한 꿈과 행복의 상징이었고, 덕수궁 미술관 계단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분수의 모습도 가슴 찡하도록 아름답다. 하지만 온동네 공원마다 죄다 땅에 수도관을 묻고 시멘트나 돌을 덮어 바둑판처럼 똑같이 만들어놓은 바닥 분수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르네상스 서울이니, 디자인 서울이니 해서 특히 요즘 서울은 온통 누더기다. 아니지, 막가파식으로 삽을 떠버린 4대강 죽이기 사업에다 툭하면 토목공사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어리석은 우두머리 때문에 온 나라가 누더기다. 그런 인간들이 또 세종시 건설 원안을 반대하는 걸 보면, 자기네가 확보한 땅값 떨어질 토목공사는 절대로 용납 안한다는 뜻이니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다. 오래된 집에 비가 새지 않게 하려면 조금씩 고쳐가며 살아야한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런 공사는 깨진 기와를 바꾸고 금간 벽을 채워넣고 노후한 수도관을 갈거나 구둘장을 다시 까는 것일 뿐, 건넌방 전체를 확 깨부수고 거기만 <르네상스 양식> 따위로 다시 짓는 건 미친 짓이다.

서울서 나고 자랐어도 고향이라는 말을 하기엔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이지만,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고 다른 도시나 시골에서 살 자신이 없다. 제주도라면 가서 평생 살 수 있을지 몰라, 라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거기 혼자 뚝 떨어져 살라고 하면 1년 내내 행복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곳에도 더러 행복한 추억이 깃들어 있지만 40년 넘게 살아온 서울만큼 개인적인 역사와 추억이 깊을 수야 없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나의> 서울을 나날이 망가뜨리는 저들의 행태가 원망스럽고 숨막힌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모든 이들이 집을 갖고 살려면 위로 높이 올려짓는 아파트 밖엔 방법이 없다지만 이미 양적으로 따지면 이 나라에 필요한 가구수는 넘은지 오래다. 집마저도 수백채씩 많이 가진 놈들이 나눠주면 더 짓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러는 일은 죽었다 깨나도 벌어지지 않을 테니 여기저기 죄다 동네 째로 허물고 다시 아파트를 올리는 거다. 그렇게 흉물스러운 아파트를 동네마다 죄다 세워올려도, 부동산으로 돈벌려는 인간들만 좋아라할 뿐 정말로 집이 생기는 서민의 비율은 턱없이 낮다는 걸 놈들은 왜 모르는지...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이 닥치는대로 누덕누덕 기워놓은 서울이 조각보 이불처럼 예쁘게 마무리될 리는 만무하다. 어쨌거나 내가 덮을 이불인데 싫어서 치를 떨면서도 당분간은 덮고 살아야 하는 이 현실을 참아내려면 한 가지 희망밖에 없다. 몇년 지나면 다시 뜯어내고 제대로 만들거야. 암.. 그래야지. 그럴 거야... 다음 세대에라도...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