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아는 사람
친구: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벗: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
동무: 1.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  2. 어떤 일을 짝이 되어 함께 하는 사람
지기: <지기기우>의 준말. 자기를 잘 알아주는 친구. 자기를 잘 이해해 주는 참다운 친구.

쓸데없이 개인사를 많이 털어놓는 블로그라 부지불식간에 글에 등장하는 <지인>들이 꽤 되었는데, 결국엔 나에게 그만큼 쓸데없이 <지인>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되는 듯하다. 물론 나의 블로그에 자신이 등장했음을 아는 <지인> 정도라면 그냥 아는 사람이 아니라 <친구>이거나 <지기>인 경우가 많아, 뭉뚱그린 <지인>의 호칭에 슬며시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친구>라고 하면 어쩐지 <벗>과 비슷하게 비슷한 또래여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이 들어 나이가 밑이거나 위인 친구에게는 막연하게 거리를 두는 <지인>이라는 표현을 들먹이고 말았던 것 같다.
이번에 새삼 <지인>부터 친구를 뜻하는 여러 낱말을 찾아보고 나니 반성이 필요하긴 하다. 영화 <아는 여자>에서 <그냥 아는 여자>라는 정재영의 소갯말에 이나영이 얼마나 상심했는지 남녀관계를 떠나서 얼마나 공감했던가. 이쪽에선 뭔가 특별한 관계라고 여겼는데 저쪽에선 <그냥 아는> 사이로만 규정하고 있거나 믿음을 저버리는 해악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위해인물임음을 깨달았을 땐 마음의 상처를 피할 수가 없다. 얼른 관계 재수정에 돌입해 처리하면 그만일 수도 있겠지만, 기대에 대한 배신감이랄까, 인간 자체에 대한 실망까지 겹쳐 그간의 모든 다른 관계까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쪽에선 정말로 <그냥 아는> 사이로 남았을 뿐인 관계인데도 상대쪽에서 뭔가 특별한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는 낌새를 보이면 차마 냉정하게 쳐내지 못하고 뒷구멍에서나 구시렁거리게 된다. 세월이 좀 더 지나면 어떻게든 정리가 되겠지, 그런 한심한 바람이나 품으면서.

작년에 휴대폰을 바꾸면서 전에 있던 휴대폰에 저장됐던 번호를 모조리 옮기긴 했지만 상당수의 번호를 과감히 지우고 정리한 뒤엔 <가족> 외에 딱히 유용하게 정리해두진 못했던 그룹별 번호 정리에 돌입했었다. 휴대폰을 을 잃어버려 나쁜 사람 손에 들어가는 경우를 대비하여 <가족> <친구> 따위의 솔직한 그룹명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설마 그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겠어 싶은 생각에 난 고집스레 가족/친구/동창/후배/선배/er/비즈니스/기타/받지마 9개의 분류를 정했다. 물론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이들은 첫 그룹인 <미지정>에 남겨둔 채로. (예를 들어 ㅌㄹ 주민들은 아직 미지정 그룹에 속한다 ^^; 블로그이웃이라는 그룹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세월을 견디다 고민 없이 친구 그룹에 넣을 수 있는 사이가 될 날을 꿈꾸는 중이다;;)

처음 그룹을 일일이 나눌 땐 벨소리도 다르게 해서, 전화오는 소리만 듣고도 척, 어떤 부류의 인물인지 알아보겠다는 심사였으나 당연히 뻘짓이었다. 내가 9종류나 되는 벨소리를 기억할 리가 없지 않은가.
우선은 가장 많이 울려대는 <가족>의 전화를 차별화하고, 자다가도 안잔 척 목소리를 맑고 씩씩하게 내야 하는 <비즈니스> 전화의 벨소리만 식별하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친구>와 <동창>을 굳이 나눈 이유야 뻔한 것일 텐데, 내 경우는 <후배>와 <친구>의 분류에서 이리저리 고민을 좀 해야했다. 나이로는 밑이지만 이래저래 연이 닿은 지인들과 차츰 동등한 우정을 쌓아가다 보면 그냥 <후배>라고 칭하기 미안한 느낌이라 <친구>라고 불러야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이로는 선배뻘이지만 당연히 친구 폴더에 정리된 사람들도 물론 존재한다. 하기야 싸이월드 시절 일촌에도 급수를 나눠야한다고 여겼던 것처럼, <친구>도 사람마다 심리적 거리감이 퍽 다르다. 사전상의 뜻처럼 가깝게 오래 사귀었어도 새삼 멀어지는 과정에 있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오래 사귀지 않았어도 누구보다 가까움을 느끼는 친구도 있으며, 멀찌감치 오래 사귀어 친구로 여겨지는 이들도 있다. 유독 <지기>라고 마음속에 꼽아두게 되는 이도 있음은 물론이다.

쓸데없이 넓고 얄팍한 인간관계는 과감히 청산하는 것이 나에게 이롭다는 생각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해왔지만 게을러서, 매몰차지 못해서, 맺고 끊음이 불명확해서 질질 이끌려온 관계로 엮인 <지인>들이 아직도 꽤나 많은 것 같다. 가끔 나를 친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맥확장을 위한 디딤돌이나 그밖의 쓸모로 <이용>하려는 지인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적도 몇번이나 되면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씁쓸하다. 이제부턴 정말로 서로 마음 다치지 않을 사람들로만 벗과 동무를 삼아 <지기>로 발전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일 테다. <그냥 아는> 사람들에게 허투루 쏟아부을 에너지와 감정이 이젠 몹시 아까워졌다. 드디어 내게도 방만한 인간망 정리의 시기가 왔나보다(사실 이 말도 10년전부터 되뇌긴 했다. ㅠ.ㅠ). 늦었더라도 다행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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