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패션은 20년 주기로 돌고돈다는 말이 있고, <복고풍>이란 말이 패션계에선 단 한시즌도 빠지질 않는 걸 보면 아무리 디자이너들이 창의력을 발휘한다고 해봤자 사람들의 생각이란 게 워낙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결국 옛것에 약간의 변형을 가미해 새로운 척 내미는 시도가 되풀이될 수밖엔 없나보다. 옷장엔 한가득 옷이 들어 있어도 계절마다 옷타령을 멈출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백화점이든 거리의 옷가게엘 나가봐도 선뜻 사고픈 옷은 그리 많질 않다. 나로선 신체특성상 소화할 수 없거나 소화할 마음이 없는 옷들을 제외하고 나서 어렵사리 골라보면 결국 이미 갖고 있는 옷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저 본인이나 <새옷>이라는 기분만 낸다뿐이지 남들이 보면 아마도 십수년째 만날 똑같이 우중충한 옷만 입고 다닌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기야 뭐든 잘 못 버리는 성격인 데다 옷 욕심이 많기 때문인지 20년 묵은 옷가지들까지 끌어안고 살아가는 인간이니, 십수년째 똑같은 옷만 입는다고 누가 손가락질해도 전혀 할말은 없다. 오히려 20년 전에 입던 옷이 아직도 더러 몸에 맞는다는 게 자랑스러울 뿐!

20년 전에 유년기나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20년전에 이미 대학생이었던 나는 요즘 최고 유행이라는 패션경향을 보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 옛날 나도 어쩔 수 없이 입고 다니긴 했지만 이후 촌스럽다고 외면했던 유행이 정말로 다시 되돌아왔구나 싶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샌 유행의 폭이 넓다고나 할까 다양성이 인정되는 분위기라서 아무리 한 가지 스타일이 유행해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으니 참 다행스럽다. 제 아무리 몇년째 스키니진이 유행이지만, 스키니진이 아닌 바지를 찾아 입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란 뜻이다. 과거엔 정말로 한 가지가 유행이면, 신상품은 죄다 한 가지로 통일되어 있었던 것 같다. 말만 달라졌지, 요즘 유행하는 <스키니진>은 그 옛날 <빽바지>로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고 나도 소싯적에 선택의 여지 없이 사입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 물론 지금처럼 밑위길이가 짧동하진 않아서, 허리까지 올라가는 <배바지>에 가깝긴 했지만, 청바지나 진바지는 물론 교복바지까지 통좁게 줄여입고 다니는 고등학생들이 있을 정도로 <넣고 꿰매입은 듯한(울 엄마의 표현이시다)> 몸에 밀착되는 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지천이었다. 그나마 요샌 다른 모양의 바지도 사입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워낙에도 너도나도 똑같이 입고 다니는 집단유행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데다, 최신유행 패션을 열렬히 따를 만한  신체조건을 타고나지도 못했기 때문에 당대 유행하는 패션엔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무슨 옷이든 그저 내눈에 <예뻐> 보이면 그만이란 얘기다. 물론 첫눈에 아무리 <예뻐> 보여도 조만간 거리에 물결처럼 반복되는 패션이라면 일단 마음에서 제외된다.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거리에서 만나면, 나는 두번다시 그 옷을 입고 싶어하지 않는 유형의 인간인데, 어떤 이는 똑같은 옷을 입었더라도 상대가 멋쟁이라면 스스로 대단히 뿌듯함을 느낀단다. <역시 유행과 패션을 아는 사람끼리는 통한다>고 생각한다나.  -_-; 작년 가을부터 요맘때면 계속 체크무늬 셔츠가 유행이라지만 나는 좀처럼 사 입을 마음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너무 흔해빠진 체크무늬 말고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하고 예쁜 체크무니 셔츠를 사입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아직 그런 체크무늬는 발견하지 못했다;), 워낙 유행이라 똑같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거리에서 누군가를 맞닥뜨릴 확률이 높다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요즘 유행이라는 패션 가운데 내가 참아줄 수 있는 건 스키니진과 체크무늬 셔츠 정도인 것 같다. 하나같이 외래어라 더더욱 마음에 안드는 <2009 A/W 핫트렌드 패션>은 내눈엔 정말 아니올시다다! 나 같으면 거저 준다고 해도 안입을 옷들이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를 달고 언론의 조명을 받는 걸 보면, 한숨이 나올 정도. 가까운 지인이 입고 나타난다면 당장 말리고픈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해도, 나로선 좀체 이해할 수 없는 요즘 유행패션을 골라봤다. 어디까지나 따분함을 피해보려는 소치이니, 혹시 이미 소장했거나 소장할 마음을 먹은 지인들이 있다면 그러려니 하시길. 부디 나 같은 삐딱 촌닭과 만날 때만 선보이지 않으면 될지어니..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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