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해당되는 글 76건

  1. 2010.01.08 조심히 22
  2. 2009.12.25 2009년에 읽은 책 14
  3. 2009.12.17 연말유예 7
  4. 2009.11.30 책 고르기 20
  5. 2009.11.20 배가 불렀구나 12
  6. 2009.10.14 증정본 22
  7. 2009.07.31 짜증나 11
  8. 2009.07.28 일하자 일 17
  9. 2009.05.22 괜한짓 12
  10. 2009.04.24 약력 25

조심히

놀잇감 2010. 1. 8. 20:54

번역을 잘 하려면 영어실력도 중요하지만 우리말과 글솜씨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번역관인지라, 탁월한 건망증으로 깜박깜박 생각 안나는 단어 때문에 영어사전을 뒤지는 빈도수 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자주 국어사전도 열심히 찾아보는 편이다. 헌데 국어사전을 찾다보면 가끔 내가 잘못 알고 있던 말들을 만나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작은 충격에 사로잡힌다.

언제부턴가 자주 들려오던 <조심히 다녀오세요>라는 말을 접할 때마다 나는 <조심히>가 틀림없이 <조심해서>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조심>이라는 명사와 <조심하다>라는 동사가 기본형이므로 <조심히>라는 부사형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나의 확고한 믿음은 무슨 근거였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난 사전을 찾아볼 필요조차 느끼지 않은 채 그렇게 믿었고 <조심히>라는 형태를 보거나 들을 때마다 내심 못마땅했다.

헌데, 내가 틀렸더라. +_+ <조심히>는 엄연히 국어사전에 등재된 표준말이다. 최소한 내 주변과 가족들 사이에선 수십년 간 들어본 적 없어 몹시 낯설고 이상하게 들리는 <조심히>라는 말이 표준말이었다니. 나와 가족들은 늘 <조심해서>라는 형태로만 사용했지, <조심히 잘 찾아봐> 따위의 표현은 써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히>가 표준말임을 알게 됐다고 해도 내가 앞으로 이 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며, 다른 이들이 사용하는 <조심히>라는 말이 유독 거슬려 귀가 쫑긋 서는 버릇도 쉬이 없어지지 않을 듯하다.

짐작컨대 내가 표준말로 알고 있던 단어나 표현이 틀렸음을 깨달을 때마다 공연히 자존심이 상하는 이유는 스스로 내가 쓰는 말이 거의 표준말이라는 맹목적인 고정관념 때문인 것 같다. 조부모님이 평안도 출신이긴 하지만 서울에서 오래 사셨고 외가쪽은 계속 서울 토박이인 덕분에 살아오면서 내가 쓰는 낱말이나 억양을 은근히 올바름의 척도로 삼아왔다는 뜻이다. 아등바등, 어리바리, 복불복, 해쓱하다, 핼쑥하다, 설렘, 쩨쩨하다, 후텁지근하다 등등 그간 틀리게 알았다가 뜨끔했던 말이 꽤나 많은데도 아직 내가 틀렸음을 깨달으면 허걱 놀라우니 인간의 허영심이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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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읽은 책

책보따리 2009. 12. 25. 22:53

올해는 드디어 나도 독서노트라는 걸 만들어 읽은 책을 적어두었고, 탁상 달력 맨 아래 그달그달 읽은 책을 적어보았더니 꽤 훌륭한 채찍이 되는 바람에(단 한권도 끝내지 못한 7, 8, 9월 석달간은 괜히 가시방석이었다) 애당초 목표인 스무권 넘기기를 가뿐히 달성했다. 다 애서가 이웃분들을 따라가 보려는 뱁새의 몸부림이었는데, 앞으로도 적당히 가랑이 찢어지지 않을 만큼만 따라가는 시늉을 할 작정이다. 역시나 따라하기의 일환으로 개인적으로 좋았던 책은 색을 달리해보았는데 비율이 꽤 높다. 재미 없거나 인내가 따르지 못한 책은 더러 읽다 집어던졌기 때문인데,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위로할 작정이다.
잘생긴 뱀파이어한테 반해서 <트와일라잇> 시리즈만 탐독하는 열두살 조카의 독서를 독려하느라 새삼 읽은 아동서도 많으니 공주에게도 고맙다고 해야할 판.  
하지만 여전히 사들인 책 대비 읽은 책의 비율은 60퍼센트 정도인듯. 이젠 좀 그만 사고 있는 거나 읽자. 책꽂이도 부족해 다탁 밑에 쌓아둔 책엔 먼지만 쌓이고 있다는 점은 반성이 필요하다. 


1 에드워드 사이드 자서전. 김석희 옮김. 살림. 사둔지 꽤 됐는데 작년에 <디아스포라 기행> 읽은 김에 생각나 작년말부터 시작해 연초에 끝냈다. 학자로서도 대단한 인물이지만 무슨 기억력이 그리도 좋은지.
2.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지음/이한음 옮김. 김영사. 맞다, 신은 없다. 종교에 대한 오랜 회의를 속 시원히 긁어준 책. 오죽하면 포스팅까지 했을라고.
3. 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지음/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산 책인데, 내용은 제목만큼 기발한 재미는 없었고 평이한 편. 글줄이 곧 밥줄일 땐 어디서든 삶이 지난하다는 만고의 진리.
4. 문학은 자유다. 수전 손택 지음/홍한별 옮김. 밑줄그어 외두고 싶은 그야말로 주옥같은 사고와 글의 집합체.
5. 보이지 않는 인간 1, 2. 랠프 엘리슨 지음/조영환 옮김. 민음사. 투명인간으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는 아직도 지천이므로 분명 가치 있는 독서였지만 그래도 지루한 건 지루한 거다. 어려운 과제물 끝낸 기분.
6. 완득이. 김려령 지음. 창비. 조카 주려고 사서 먼저 읽고는 너무 재미있어 자지러졌다. 이후로 아류작이 쏟아져 나왔던데 원조는 다를걸! 물론 조카도 이 책을 무척 좋아해서 몇날몇일 완득이 얘길 주고받으며 신을 냈다.
7. 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한미희 옮김. 비룡소. 조카한테 읽고 토론하자고 해놓고 막상 기억이 잘 안나서 다시 읽었는데도 새삼 부분부분 좋더라.
8. 사자왕 형제의 모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김경희 옮김. 창비. 예상대로 슬프고 감동적이긴 했으나 <만들어진 신> 독서의 영향으로 결말에 대해선 조카와 어떤 토론을 해야할지 막막했다. 
9.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J.M. 바스콘셀로스 지음/박동원 옮김. 동녘. 예전에 읽다가 슬퍼서 몇번이나 울었다고 했더니 공주가 구체적으로 어디서 눈물이 나더냐고 따져서 빌려다 다시 읽었다. 역시나 또 눈물이 났다. 그제야 떠올랐다. 처음 읽었을 때 너무 비참하고 슬퍼서 책을 내던지며 짜증을 냈던 기억이.
10. 한밤중의 작은 풍경. 김승옥 지음. 전집구매 욕망을 잠재우고 작년 이웃 블로거의 목록에서 딱 한권 고른 책. 역시나 좋았다. 하찮은 블로그질에라도 간결하고 깔끔하게, 너저분하지 않게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주는 김승옥의 글!
11. 그녀의 프라다백에 담긴 책. 이유정 지음. 북포스. 이요님이 여기서 권하는 책도 몇권 골라 읽었다 ^^ 
12. 나는 런던의 수학선생님. 김은영 지음. 브레인스토어. 해리님의 친구분이자 나 홀로 링크 걸어놓고 구경다니는 내맘대로 이웃의 책이라 읽어보고팠다. 영국의 학교체계와 교사들의 마음가짐이 어찌나 부러운지.
13.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 이구열 지음. 돌베개.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 다녀와서 부푼 호기심에 읽어보며 새삼 '공부'했다. 비록 지금은 다 까먹었지만;;
14.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서경식 지음/이목 옮김. 돌베개. <기억>은 정치적, 문화적 산물이라는 옮긴이의 말이 인상적이었고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가운데 내가 미처 모르는 이들이 많아 민망.
15. 나의 서양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박이엽 옮김. 창비. 남다른 개인사 때문에 서양미술 가운데서도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에 유독 시선이 머문 지은이의 감상이 가슴아팠음.
16. 눈먼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정영목 옮김. 해냄. 신종플루 공포가 처음 연일 미디어에 오르내리던 시기에 읽어 더욱 실감났던 듯. <눈뜬자들의 도시>도 연이어 샀지만 몇십장을 못넘기고 지지부진.
17.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오주석 지음. 솔. 문근영양 나온 드라마 덕분에 새삼 한국화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 펄럭거린 1人의 선택으로 고른 책. 이 책 보고선 또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지 실습하러 국립박물관 가보려 작심했으나 실천은 못했다. -_-;
18. 하나의 대한민국, 두개의 현실. 지승호 인터뷰. 시대의창. 사둔지 오래돼 이 책에서 비판의 주요 대상인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세상을 떠난 다음이라 맥빠지는 독서였다는 기억이 난다. 소통 안되는 답답한 현실은 그대로지만... 
19. 탐욕의 시대. 장 지글러 지음/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지식인의 의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의무는 민중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다"라고 한 레지드 브레의 말에 정말 딱 맞는 지식인이 바로 장 지글러! 무지하고 이기적인 민중이 이런 지식인의 말을 외면하는 현실이 슬플 뿐.
20. 소설. 제임스 미치너 지음/윤희기 옮김. 열린책들. 컴퓨터질로 피로해진 뇌파 정리용으로 올해는 잠자리에서 책을 꽤 읽었는데, 이 책은 잠이 완전히 달아나게 할 정도로 흡입력이 있어 자야한다며 일부러 애써 책을 덮기도 했다. 소설 탄생을 둘러싼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의 입장이 얼마나 다른지 기발하게 조명한 소설. 사둔지 오래 됐는데 왜 이제야 읽었던고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
21. 희박한 공기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김훈 옮김. 황금가지. 오래 전 외서기획 할 때 프랑크푸르트 현지에서 출간도 안 된 이 책에 대한 판권 경쟁이 엄청났고, 당연히 작은 출판사를 대신해 간 나는 힘을 써볼 도리가 없었는데 빼앗겼다고 돌아와서 언짢은 소리를 좀 들었던 책이다. 민음사 그룹을 어찌 이기라고! 해서 97년 첫 출간됐을 때 괘씸해서 안보리라 마음 먹고 잊었다가 이요님의 책을 읽고 마음을 바꿔 집어들었다. 읽고보니 여전히 경쟁적인 고산 등반의 열기가 식지 않아 누군가 죽고 누군가는 정상등반의 진실을 의심받는 요즘 세태를 보며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산이 뭐라고... 
22. 한국의 글쟁이들. 구본준 지음. 한겨레출판. 글잘 쓰는 글쟁이들에 대한 선망을 부채질하고 수많은 독서를 강권하는 책. 나는 동의할 수 없는 글쟁이들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서 다시 수십권의 도서목록을 적어두었으나, 일단 눈을 질끈 감았다.
23.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지음/이재원 옮김. 이후. 조목조목 짚어주시는 손택 여사의 말씀이야 한줄한줄 피가되고 살이되고...
24. 꿈꾸는 책들의 도시 1, 2. 발터 뫼르스 지음/두행숙 옮김. 들녘.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은 판타지 소설을 잘 못즐긴다던데 내가 좀 그런 편이라 여겼으나, 이렇게 기발한 발상이 다 있나 싶어 하며 즐겁게 읽었다. 지루하고 답답한 병원 간병 무수리의 괴로움을 순간순간 잊게 해주었던 고마운 책.
25. 성찰하는 진보. 조국 지음. 지성사. 조국 교수는 내가 이상으로 여기는 지식인에 가까워 칼럼도 열심히 찾아 읽는 편이나, 이렇게 글을 모아놓으니 가끔 그가 쓰는 <백화제방 백가쟁명> 따위의 고루한 한자성어 쓰임새가 턱턱 걸리더라. 내용도 너무 원론적이고... 하기야 원론만 지켜져도 이 세상이 이꼴은 아니겠다만서도.
26. 노란 불빛의 서점. 루이스 버즈비 지음/정신아 옮김. 문학동네. 서점에 대한 선망이 늘 있어 크게 기대했다가 실망했다. 서점이 좋아 서점 직원이 된 사연이 담긴 앞부분만 좀 읽을만.
27. 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정창 옮김. 열린책들. 열린책들 Mr. Know시리즈 50% 할인소식에 눈이 어두워 전격 사들인 열권의 책 가운데 이거 딱 한권 읽었다. 온라인 서점의 반액할인 때문에 출판사가 죽어간다는데 덩달아 춤춘 게 미안해서였던... 건 아닐테고, 주섬주섬 골라보다 이게 제일 재미있었음.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소설"을 즐기는 노인의 사연이 짠하다. 중남미 문학엔 특히 무지한 편이라 좀 더 찾아 읽어볼 작정. 
28. 어루만지다. 고종석 지음. 마음산책. 어떻게든 써먹어 보겠다고 열심히 좋은 우리말 베껴 적으며 읽었는데 책을 덮을 때쯤엔 과연 번역할 때 써먹으면 편집자와 독자들이 받아들여줄지 회의가 들었다. 
29. 앗 뜨거워. 빌 버포드 지음/강수정 옮김. 해냄. 기자직을 때려치우고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려고 뛰어든 남자의 요리학습기. 손으로 조물조물 만드는 것, 먹는 것,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겐 시종일관 침나오고 감탄스러웠다. 요리사가 그렇게 어려운 직업인 줄 몰랐다네...
30. 밴버드의 어리석음.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 양철북. 당대엔 파란을 일으켰지만 이내 잊혀지고 만 이른바 '루저'들을 결국엔 이렇게 책으로 기억해준 폴 콜린스 같은 사람이 다 있다니, <기억>이 정치적, 문화적 산물이라는 이목 선생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인 사회에서 세상을 바꾸지 않은 사람들의 역사도 기록을 시도한 지은이와 이런 책을 번역하자고 기획한 옮긴이 블루고비에게 갈채를! ^^


작년처럼 한줄 평만 넣으려고 했는데 쓰고 보니 길어진 내용이 많다. 역시나 독서노트의 덕이다! 이러다가 내년쯤엔 나도 두려움 없이 읽은책 리뷰를 몇권 더 올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나는 게 아닐지. 
하지만 내년엔 더 많은 책을 읽겠다고 호언장담하지 못하겠다. 이 정도로도 내겐 장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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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유예

투덜일기 2009. 12. 17. 03:15

대개 책 한권에 두달 정도로(물론 최소 넉달 이상 잡아야 하는 책도 있긴 하다) 번역기간을 정해놓으면 첫 한달은 작업량이 형편없다. 그야말로 워밍업 기간.
그놈의 워밍업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어느 첫달엔 심지어 첫장만 계속 펼쳐놓고 있던 적도 있으니 말해 무엇하리. 그래도 둘째달이 시작되면 남은 날수에 맞춰 일일 작업분량을 정해놓는다. 이번 책은 비소설이고 챕터가 달랑 열개. 하루에 한 챕터씩 하면 열흘이면 초벌 끝내겠네, 싶어 쓸데없이 가소로운 미소를 지으며 한껏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크게 방심해선 곤란했다. 연말이랍시고 엠티부터 시작해서 몇몇 모임과 행사까지 있는데, 원고마감 핑계대고 놀 일에 빠질 위인이 아니므로 최소한 일주일은 없는 셈 쳐야 했으니까.
새벽까지 앉아 있어도 일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았던 월초를 보내며, 엠티 다녀오면 작업에 박차를 가해 가속도를 높이리라 마음 먹었는데 그놈의 끔찍한 숙취는 후유증을 이틀이나 안겨주었고, 정신 차려보니 허거덕 남은 날은 한달의 반토막이었다.
진도는 아직도 지지부진한 주제에 초인적인 가속도가 붙었을 경우에나 가능한 <하루 한 챕터 번역>의 야망을 버리지 못한 채, <잘하면> 계약 마감일에서 늦어도 일주일 내로 원고를 털어낼 수 있을 거라 상상하던 차였다. 마침 출판사에서 내년 출간 계획을 잡아야 한다며 원고 진행상황을 묻는 메일이 날아왔다. 앗 뜨거라 싶어 하루 종일 고민한 끝에 나의 상상 마감일을 적어보냈더니만, 흐흐흐 원고마감 때문에 연말 연휴에도 일에 매진하는 게 아니나며 한껏 위로하는 글과 함께 원고는 1월 중순까지만 보내면 된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아싸~
마침 그 메일을 열어보는 중에 뒤에 서 있던 조카가 한 마디 했다.
"우리 고모는 놀 때 안 놀고 일만 하는 사람 아닌데. 놀 거 다 놀고 또 밤새서 일하는 사람인데..."
너무도 정곡을 찌른 그 말이 칭찬인지 꾸지람인지 언뜻 파악하기가 어려워서 흐흐 웃고 말았다.

헌데 문제는 어제까지도 그럭저럭 조여졌던 긴장의 끈이 연말유예 메일과 함께 풀어져버렸다는 사실이다. 열흘 쯤 더 여유로워졌다고 당장 이밤에 또 일이 하기 싫어졌으니 원! 다시 조이는 데 한달 반이나 걸린 이 긴장의 끈을 다잡으려면 일단 이렇게 널리 자아비판을 하는 수밖에 없는 듯하여 또 부끄러운 쉰소리 끼적이고 앉았다. 당장 낼모레로 다가온 할아버지 제사부터 간간이 잡힌 <놀 일>을 감안해서 제발 밤을 샐 때는 진지하게 진짜 일을 해보자.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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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르기

책보따리 2009. 11. 30. 06:12
책을 읽고 나서 꼼꼼한 후기를 블로그에 올리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책으로 밥 벌어 먹고 살면서 민망하게도 그리 책을 많이 읽지도 않지만, 그나마 드물게 읽는 책의 경우도 내가 좀체 후기를 쓰지 못하는 건 직업병과도 관련이 있다.

전에도 푸념을 한 적이 있지만 번역을 맡아 일을 하는 과정 중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분은 <책 검토와 검토서 작성>이다. 순수한 독자로서 책을 읽으면 좋다 싫다 별로다 괜찮다 정도로 뭉뚱그려 판단할 수도 있고 중간에 집어던졌다가 맘 내킬 때 다시 읽거나, 아예 끝내 포기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책의 재미와 가치 여부는 물론이고 상업성은 있겠는지, 독자층은 어떤지, 기존의 책들과는 어떻게 차별화되거나 유사한지, 내용 요약과 책을 조목조목 분석해서 판단하는 의견까지 내놓으라는 출판사의 요구를 받노라면 시작도 하기 전에 나는 책멀미를 느낀다. 논리와 분석력이 떨어지는 인간에게 책 한권을 읽고 객관적인 검토 소견을 제시하는 일이란 몹시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해서 바쁜 일정을 핑계삼아 책 검토는 애써 사양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는 법이라, 어쩔 수 없이 원서를 읽고 검토서를 만들어야 할 때면 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한다. 그냥 독자로서 책을 즐겨보려고 노력하는 거다. 다행히 재미있게 책장이 넘어가면 호감어린 검토서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시작도 전에 느꼈던 책멀미가 계속 이어진다면 비판적으로 헐뜯는 의견을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늘 두려운 건 독자로서 나의 객관성이 얼마나 합리적일까 하는 점이다. 단순히 독서할 책을 추천하는 것이라면야 누군가 읽고나서 투덜대며 별로였다고 던져버려도 상관없지만, 원서에 지불해야하는 저작권 로열티부터 제작비까지 큰 돈과 시간을 들여 만들 <가치>가 있는 책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지기 시작한다. 

번역만으로는 당연히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번역 초창기 시절 나는 월급을 받으며 비상근으로 어느 출판사의 기획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말이 그럴듯해 출판 기획이지, 내가 하는 일은 저작권 중개 사무소를 돌아다니며 책을 추천받고 꼼꼼히 검토해 <대박>날 책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였다. 경제경영서 같은 무지한 분야의 책들을 고르는 건 괴로운 작업이었지만, 그래도 온갖 종류의 책을 접하고 읽는 게 좋아서 처음엔 꿩먹고 알먹는 일이라고 기뻐했었다. 요것조것 책을 골라 읽으면서 정기적인 수입도 생겼으니까.
하지만 머지않아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출판 경력도 전혀 없는 내가 어떻게 개인적인 취향이나 재미 여부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잘 팔릴> 책을 골라낸단 말인가! 출판사에서 원하는 건 <베스트셀러>가 될 책 90% + <출판인으로서 의미 있는 책> 10% 정도의 비율이었으나,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책은 얼마든지 추천 가능해도 <잘 팔릴 책>을 찝어내는 건 로또 번호 찍기처럼 막연하기만 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저작권 중개사무소에서 소개받은 <유망한> 책들을 다 읽고 검토서를 만들어 기획회의를 거쳐 높으신 분들이 결정하도록 책임을 회피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도 문제는 있었다. 놓친 고기는 늘 커보이는 법이라고, 내가 보기에 괜찮은 책 같아서 열심히 추천하다가 막판에 꼬리를 내려 출간을 포기했는데 그 책이 다른 출판사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면 난 곧 지탄을 받았다. 워낙 좋으신 분들이라 심한 얘긴 하지 않았지만, 그때 내가 좀 더 강력하게 출간을 주장했으면 안 놓쳤을 거라며 안타까워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내가 완전 별로라며 소개만 하는 수준에서 그쳤던 원서가 그럴싸한 포장으로 날개돋친듯 팔려나갈 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베스트셀러가 다 좋은 책은 아니란 건 누구나 알지만, 아무리 문화산업의 자긍심을 품은 출판사라고 해도 우선은 매출이 높아 돈을 많이 벌어야 그 여력으로 <많이 팔리진 않더라도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최종 결정은 다 같이 했더라도, 비싼 저작권료 지불해가며 공들여 출간한 책이 맥을 못추고 안팔려도 애당초 맨 처음 그 책을 집어왔던 장본인인 나는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대체 출판이 도박과 다른 점은 뭐란 말인가!

책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도 좋았고 책 자체를 읽는 재미는 충분했지만 나는 3년만에 결국 <책 고르기>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 아예 외서 기획일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내게 그 일을 맡겼던 출판사 사장님의 깊은 뜻은 번역가로서 책 고르는 안목을 높여 주어지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책을 선정하고 기획해 출판을 주도하는 역할까지 하라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런 재목이 되지 못함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지금도 가끔 아마존이나 뉴욕타임스 북리뷰 같은 사이트에서 좋은 책을 찾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는 출판인들이 계시지만, 나는 머쓱하게 뒷머리만 긁적이는 수밖에 없다. "죄송하지만 게을러서 그럴 시간이 잘 없네요..."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블로그 이웃 가운데 동종업계에서 번역에 힘쓰고 계신 두 분은 놀랍게도 번역과 함께 그 어려운 <책 고르기>를 병행하고 계신다. 재미 있으면서 가치도 있는 책을 골라 어렵사리 출간을 권유하고, 또 번역을 맡아 그 책이 세상에 선을 보였을 땐 성취감과 뿌듯함이 몇배는 더 클 것이다. 더욱이 그 책이 독자들에게도 호응을 얻어 <잘 팔리는 책>으로까지 인정을 받는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지만 막연히 그걸 짐작하면서도 겁쟁이에 게으름뱅이이자 소심증 환자인 나는 의식 있는 번역가의 책무라고 하는 그 길을 갈 수가 없다. <책 골라 권하기>는 고사하고 출판사에서 골라준 원서 읽고 검토서 하나 만들라고 하는데도 어깨가 무거워 한숨을 쉬는 위인임에야 어쩌겠는가.

마뜩찮게 도맡은 책 검토를 할 때도 그나마 위안을 삼는 건, 번역작업을 맡을 욕심에 재미없는 책을 재미있다고 의견을 내거나 가치없는 책을 가치 있다고 추켜세운 적은 없다는 점이다. 사실 사적으로 싫은 분야가 아닌 한 웬만한 책은 소소하게 읽는 재미를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이미 다른 언어로 세상에 선을 보인 책은 누군가 출간할 가치를 인정했다는 의미이므로, 그 분위기에 얼렁뚱땅 편승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또 다시 수천만원 이상의 돈과 노력을 들여 나무 없애가며 다시 우리말로 책을 펴낼 의미가 있을지 곱씹어보자면 나는 웬만하면 회의적인 태도로 기울게 된다. 어쩌면 출간 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술수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책이 안팔려도 최초 검토자로서 덜 민망하도록. 물론 검토자에게 추후 책 판매 여부의 책임을 묻는 출판사는 없다. 검토자가 아무리 칭찬을 하거나 혹평을 해도, 결국 최종 결정은 출판 기획자의 몫이니 말이다.

번역서든 창작서든 이 땅에 나오는 수많은 책들은 하나같이 여러 사람의 고민과 염려와 손길을 거쳐 탄생한다. 얼마 전 본 기사엔 3만개도 넘는 국내 출판사 가운데 작년에 한 권 이상 책을 낸 곳이 10%에 불과하며, 나머지 90%는 단 한 권도 책을 펴내지 못했을 정도로 출판시장이 열악했다고 한다. 서점에 나가보면 지천으로 깔려있고 쌓여있고 꽂혀 있는 게 신간이던데, 그게 겨우 10%였다니.

올해 상황은 어떠했을지 지나봐야 알겠지만, 이 나라 사람들의 먹고 사는 형편이 극적으로 나아지지 않는 한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책 산업이 돌연 호황을 누릴 리 만무하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어렵디 어려운 <책 고르기>와 <책 만들기>에 종사하는 수많은 출판인들이 보람을 느끼려면 그래도 누군가 꾸준히 책을 읽어주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골치아프게 만들어 내놓는 입장보다야 선뜻 집어 읽는 입장은 얼마나 더 수월한가. 확실히 나는 독자쪽을 더 선호하는 것 같은데, 그런데도 막상 읽기를 소홀히 하는 걸 보면 책으로 밥 벌어먹을 자격이 부족한 것도 같다. 2009년 정리할 때 덜 부끄럽도록 마지막 남은 한달 동안 몇권이나 더 읽을 수 있으려나 마음이 조급하다. 검토서 멀미증의 영향으로 독자로서 읽은 책의 후기를 쓰는 것 또한 못할 노릇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그래도 이웃 애서가들에게 자극을 받아 올해는 읽은 책을 기록하는 독서노트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정리에 젬병인 위인에겐 큰 발전인데, 이러다 보면 시답잖은 감상이라도 언젠가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꼬박꼬박 독서후기를 쓸 날도 오게 되려나 어쩌려나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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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불렀구나

투덜일기 2009. 11. 20. 16:14

혹시나 물기가 남아 있으려나 싶어 빨래를 쥐어짜듯 머리를 혹사시켜 어렵사리 번역원고를 마감하고 나서 특히 이번엔 슬럼프가 깊었다. 시기적으로 공연히 맥빠지고 무기력한 늦가을이기도 했고, 내년이면 벌써 만 15년을 넘기는 이 직업과 나의 역량에 대해서도 새삼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일 하나 끝낼 때마다 슬럼프 타령을 한건 벌써 작년부터인 것 같다.
예전엔 책 한권을 마치고 났을 때의 성취감이 다음 작업시작을 부추길 만큼 커서, 마감 후유증이라며 한 일주일이나 열흘쯤 널브러져 있다간 얼른 새 일감의 책장을 넘기곤 했다. 그런데 이젠 꼬리에 꼬리를 물듯, 다람쥐 쳇바퀴를 돌듯 반복되는 과정이 어쩐지 한심하고 짜증스럽게 느껴져 작업 중간에도 돌연 맥이 빠지는 바람에 몇달씩 배째라는 식으로 마감일을 넘기기도 했고, 새로 다시 일을 시작하려면 마음을 추스리는데 한달씩 걸리기도 하는 지경이다.
몇달씩 끙끙거린 작업의 결과물이 따끈한 책의 형태로 주어져도 예전 같은 벅찬 감격은 느껴지지 않는다. 책이 나오면 신간코너에 진열되어 있는 책구경을 하느라 일부러 서점엘 나가보던 정성 따위는 벌써 10년 전의 추억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수없이 쏟아진 책들 사이에 파묻혔다가 소리없이 사라질 그 책의 운명이 눈에 환히 보이는 듯해 차마 보기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얼마 전 오랜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내가 털어놓았다. "나 요새 일하기가 싫다."
십수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 친구도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며 맞장구를 쳤다. 헌데 주변에 그런 얘기를 털어놓았더니 단박에 "너 배가 불렀구나"하는 반응을 보이더란다. 요즘 일 없어서, 짤려서, 망해서, 팽팽 놀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일이 있으면 감사한 줄 알라고 했다나.
할 일이 있다는 것에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건 한편 동의하지만, 동시에 배알이 뒤틀리기도 한다. 지금의 위치에 오기까지 내가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애써왔는지 저들이 뭘 안다고!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아서 선택한 직업인데 끊임없이 문제만 풀어야 한다는 사실이 싫다는 친구와 달리 나는 정말로 내가 선택한 일 자체에 멀미가 나고 회의가 드니 문제다. 분명 평생 하고픈 일을 찾았다고 여기며 들어선 길이었는데, 이 길이 아니면 어쩌나 싶은 느낌.
회사 다니던 시절 성취감이나 뿌듯함은 눈곱만큼일 뿐이고 대부분은 조직사회의 중압감과 심리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괴로웠던 마음에 비하면야 여전히 훌륭한 선택이라 생각되지만, 그 정도 위로만으로는 밤샘을 밥먹듯하면서도 책장을 넘기며 흥을 냈던 열정이 되살아나질 않는다.

친구는 "아마 우리 나이가 그런 나이인가보다."는 결론으로 잘 넘겨볼 것을 권했지만, 이 맥빠짐이 정말로 단순한 나이 탓인지 잘못된 길 탓인지 배부른 투정인지 나로선 잘 모르겠다. 어쩌면 괜한 욕심 부리다 겪는 배고픔이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겠고. 어쨌거나 궁금한 건 해마다 <단군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계의 역사 갈아치우기가 내년에도 되풀이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나는 올해도 읽은 책보다 사들인 책이 더 많건만, 대한민국 출판계는 왜 노상 불황인지 원. 혹시라도 내년엔 출판계 호황에 힙입어 불끈 번역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길 빌어봐야겠다. 여러모로 따져봐도 배가 불러서 하는 푸념은 확실히 아니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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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본

책보따리 2009. 10. 14. 21:26

출판사가 옮긴이에게 무상으로 주는 증정본은 과연 몇부가 적당한 것일까?
번역계약서 내용엔 증정본의 부수까지 포함되어 있다. 내가 같이 일한 출판사들의 경우 10부 아니면 5부다. 물론 담당자들과 친하거나 굳이 친하지 않더라도 말만 잘하면 증정본을 몇 권 더 받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10여 군데 출판사가 죄다 그렇게 정해 놓은 것을 보면, 10부나 5부가 증정본의 적당한 숫자라고 여겨지는 모양이다.

번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책이 나오면 <예의상> 책을 달라는 이들도 많고 또 나도 여기저기 <예의상> 인사할 곳도 많아 증정본 5부론 턱도 없이 부족했다. 책이 모자랄 땐 주변머리 없는 인간 답게 남몰래 서점에서 책을 사서 전달하기도 했는데, 초창기엔 워낙 한군데 출판사와 주야장천 일을 했고 다른 일도 거들어 주게 되었으므로 얼마 후엔 책 좀 가져가겠다고 말만 하고 창고에 직접 들어가 몇부 집어올 수도 있는 형편이라 책꽂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예 증정본을 마다하고 달랑 한권씩만 집에 갖다놓기도 했다.

어느 때부턴가 내가 작업한 번역본은 반드시 두권씩 보관하기로 원칙을 세웠는데, 결과적으로 초창기에 작업한 책은 미리 증정본을 챙겨두지 않은 탓에 한권씩밖에 없는 경우가 꽤 된다. 10년도 넘은 책이니 당연히 절판된 데다 그 이전에 출판사가 문을 닫아버려 구하려면 헌책방을 노리는 수밖에 없는데, 뭐 그렇게까지 귀중한(?) 책은 아니라 그저 한권씩 갖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보관본을 2권씩 챙겨놓겠다는 욕심은, 한권은 새책으로 남겨두고 또 한권은 오탈자나 번역상 미진한 부분을 표시해두었다가 재판이나 2쇄, 3쇄를 찍을 때 수정할 요량으로 품은 원대한 꿈이었다. 초보 번역가에겐 편집 전과 후의 원고를 검토하고 문장 공부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초창기엔 나도 책이 나오면 반드시 원서까지 다시 찾아보며 꼼꼼하게 읽어보고 눈여겨 보아야 할 곳엔 포스트잇을 붙여놓는 등의 정성을 들였다. 
허나 부끄럽게도 요즘엔 책이 나온 뒤 내가 다시 새삼스레 꼼꼼하게 오탈자를 살피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ㅠ.ㅠ 원서 검토할 때 읽어보고, 번역 전에 읽어보고, 번역 내내 씨름하고, 나중에 다시 역자교정까지 거치면 최소한 네번 이상 읽어야하니 제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이라도 그 지경에 이르면 거의 멀미가 날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시기적으로 출간이 늦어졌다거나 <정말로> 애정이 듬뿍 가는 재미있는 책이라면 다시 또 읽어보며 스스로 감동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아예 없지는 않다.

어쨌거나 내게 꼭 필요한 책이 두권이니, 증정본 5부는 어쩐지 부족한 느낌이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은 집에 온 동생들이 집어가기도 하고 특히 욕심쟁이 공주님은 제 엄마 아빠와 별도로 책을 따로 챙기는 형편이며, 가끔씩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는 책의 경우엔 얄밉게도 <너무도 당연하게> 증정본 한권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지인도 있다. 지금은 집에서 일을 하기에 망정이지, 작업실 있을 때는 한번씩 놀러왔다가 증정본이 그거밖에 안남았다는 데도 굳이 책을 뺏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_-;; 해서 어떤 책은 보관용으로 두세 번이나 직접 구입했을 정도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래한 출판사라 선뜻 증정본 더 달란 말은 꺼낼 수도 없었고...
사실 증정본 10권이면 대개는 풍족하다 못해 많이 남는다. 블로그 이웃분들과 달리 내 주변엔 책을 열심히 읽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 내가 번역하는 책들이 그닥 <양서>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변에 강권하기도 민망하여 절반 정도는 집에 쌓아놓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헌데 문제는 아예 증정본을 안주는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너무 많이 주는 출판사도 있다는 점이다. 믿어지지 않지만 영화흥행에 힘입어 시리즈가 무려 백만부나 팔렸다는 문제의 그 소설은 출판사 직원들과 틀어진 뒤로 증정본 한 부 받지 못했다. 내쪽에서 당당히 요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시는 그 사람들과 말도 섞고 싶지 않아서 그냥 보관용으로 서점에서 한 권씩 사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꼭 그런 책은 달라는 사람이 많다. 영화를 보고 온 공주님도 역시나 책을 탐내는 바람에 빼앗기고 다시 구입해야 했는데, 그 책의 증정본을 달라고 손 내민 지인들 몇몇에겐 열받은 사연을 전하고 <사보지도 말라!>고 조언했다. -_-;
소싯적에 도움을 많이 주신 출판사 사장님을 돕는 의미로 <무료봉사>했던 책도 얼마 전에 출간되었는데 내가 사긴 좀 속상하고 언젠가는 보내주겠지 무작정 기다렸더니 추석 전에 와인 두병과 함께 친히 책을 한권 주고 가셨다. 이왕이면 한권 더 주시지 딱 한권은 또 뭐람. 그 책도 어째 보관본 2권의 원칙에선 열외가 될 듯하다. 자꾸 열외가 많아지면 원칙도 무너지기 마련인데 젠장...

놀라운 것은 내 경우 증정본을 아예 못받는 섭섭함보다 <증정본 폭탄>처럼 느껴질 만큼 너무 많이 주는 것이 더 곤란하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그 책이 두권짜리인 경우는...
몇년 전에 출간된 소설의 저작권이 만료되면서 새로운 출판사에서 내 원고를 다시 가져다 책을 냈는데, 아 글쎄 증정본을 20부나 보내준 게 아닌가! 1, 2권으로 나온 책이니 무려 40권. 택배회사에서 책 배달이 오면 나는 대개 1층 현관문에서 받아가지고 들어오는데, 그날은 어깨에 엄청나게 큰 박스를 짊어진 택배 아저씨가 나더러 비켜서라고 하더니 친히 2층까지 올려다주고 갔다. 안 그랬으면 아마 난 들지도 못했을 듯. 
그렇게 받은 20세트의 증정본은 당연히 골칫거리가 되었다. 좁아터진 집구석에 쌓아 놓을 데도 마땅치 않고 당연히 책꽂이엔 자리도 없고, 하필 두번째로 나온 책이라 책 좀 읽는다 하는 지인들은 이미 몇년 전에 나온 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처음 책이 출간되었을 때 출판사에서 하도 광고를 해대기도 했고 서점 순위에도 올라, 그땐 출판사에서 꽤 여러번 보내준 증정본이 부족할 만큼 주변에서 청하는 이도 많았고 내가 읽어도 좋았던 책이라 부러 선물도 했기 때문이다.

무거워서 선뜻 옮기지도 못하고 책이 10권씩 철끈으로 묶인 채 들어있는 증정본 박스를 현관에 계속 버려두고 있으려니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스트레스였다. 완전 새책을 확 내다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솔직히 이번 책이 수정보완본이긴 하지만, 난 장정이며 표지가 옛날 책이 더 마음에 든다)  책 소진을 위해 왕비마마는 모임 있을 때마다 들고 나가 친구들에게 나눠주시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참 나 2권짜리 두툼한 로맨스 소설을 어느 할머니가 읽으신다고!! 당연히 말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모녀에게 스트레스를 주던 증정본은 일단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컴퓨터 방 구석에 쌓여 있다. 방문을 열어놓으면 안보이는 구석탱이에. ^^
만일 내가 옮긴이가 아니라 지은이였다면 증정본 20부가 저토록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얼핏 든다. 처음 책을 내신 어느 선생님은 증정본 30부도 모자라서 정가의 70%를 주고 다량 구입하기도 했다는데 말이지...

증정본이 10부도 모자랐던 적이 있는가 하면 때론 5부로도 여유로우니 번역서 증정본의 적정 권수는 몇권인지 나로선 도통 알 수가 없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20부는 너무 많다는 거!
어쨌거나 고육책으로 선택한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현재 다섯 세트 예약받아 놓았다. ㅋㅋ 혹시 이 책도 영화 덕분에 새삼 읽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아질지 어떨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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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

투덜일기 2009. 7. 31. 18:01

월급쟁이의 가장 큰 장점은 독촉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날짜가 되면 월급이 입금된다는 점일 것이다. 동료나 상사가 마음에 안들거나 일이 따분해서 사표를 쓸까말까 매번 고민하다가도 월급날이 되면 또 한달 버텨낼 힘이 불끈 생겨났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프리랜서의 가장 큰 단점은 뭐니뭐니해도 불규칙한 수입.
프리랜서라도 착실한 사람이라면 꾸준히 저축을 해서 언제나 여유돈을 마련해두고 살아야 정상이며, 불규칙한 자금의 흐름 속에서도 어느정도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작업량과 원고료 수입을 배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월급쟁이도 가끔 회사가 경영난을 겪으면 월급날 제대로 봉급을 받지 못하는 수가 있으니, 프리랜서는 오죽할까. 아무리 장기적으로 수입을 감안해 작업량을 계획하고 여유롭게 수입과 지출을 예상해도, 의외의 변수는 꼭 있다. 경제불황과 열악한 출판시장을 이유로 결제를 미루는 것이 가장 크고 고질적인 난관.
여러번 원고료 체불로 마음고생을 한 뒤로는 지명도가 있건 없건, 회사 재정상태도 알 수 없고 각별히 나를 챙겨줄 직원도 있을 리 없는 출판사와 처음 연을 트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안면 없는 출판사와도 몇번 통화를 하고 정말로 작업 스케줄 때문에 의뢰를 거절하다가도 책이 괜찮다거나 공교롭게 작업스케줄이 비었을 때 딱 걸리면 대면하지도 않고 이미 안면을 튼 사이 같아져서, 결국엔 슬그머니 일을 맡게 된다. 물론 그렇게 시작해서 수년째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출판사들도 많으니, 나의 우유부단함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리고 다행히도 요새 꾸준히 작업중인 출판사들은 내가 죽도록 하기 싫어하는 결제 독촉전화를 전혀 할 필요가 없다. 내가 게으름을 부리느라 원고를 늦게 넘겨서 그렇지, 제때 원고를 넘기고 나면 알아서 송금을 해주니까.

헌데 겪어보니 출판사의 규모나 지명도와 결제 습관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소규모라도 착실하고 정직하게 원고료와 인세를 제때 보내주는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수없이 일간지 광고와 라디오 광고에 나와 막대한 자금을 들인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규모 있는 출판사이건만 얼마 안되는 원고료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곳도 있다.
내가 2년째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출판사도 그런 축에 속하는 곳. 2년이나 지연되고 있는 건이고 내가 <죽도록> 하기 싫은 독촉전화를 반복한지도 9개월째이건만 아직도 해결이 안됐다!
올들어서는 거의 한달에 한번꼴로 채근을 하고 있는데도 매번 다음달에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매번 어기는 일이 반복된다. 어우 짜증나! 오늘은 더위 때문에 불쾌지수도 팍 오른 김에 전화를 했더니 <정말로> 다음주엔 결제를 해주겠단다. 과연?? 그 출판사 요즘 라디오에서 신간 광고도 하던데, 그럴 돈은 있으면서 왜 밀린 번역료는 해결해주지 않는지 정말 이해가 안된다. 번역료를 결제 우선순위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돌리는 악덕 출판사라고밖엔 여겨지지 않는다. 

그곳 말고도 이번주에 계약금 송금을 약속한 출판사가 있었는데 통장을 확인해보니 역시나 안들어왔다. 예전에 출간된 책의 저작권이 만료되어 다른 출판사에서 <저렴한> 번역료로 내 원고를 넘겨받아 출간하기로 한 건이라 나로서는 어찌보면 거의 불노소득에 가까워 처음 거래하는 출판사측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여 계약을 하고도 순진하게 기뻐했는데 문득 너무 계약을 서둘렀나 후회스럽다. 출간 급하다고 해서 원고부터 후딱 보내주었는데 혹시 약속 잘 안 지키는 출판사라 계속 속깨나 썪으면 어쩌지.. ㅠ.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거늘...
출판계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같은 원고 재출간임을 감안할 때  퍽 양심 있는 계약조건이라고 해서 덜컥 수락을 했지만, 매절 계약서에 도장 쾅 찍어 보내고 난 다음날부터 인세계약으로 할 걸 잘못했나 쓸데없이 가슴을 치기도 했던 터라 더 짜증이 난다. 이미 팔릴 만큼 팔린 책이긴 해도, 작년에 나온 문제의 <그> 베스트셀러처럼 영화 개봉으로 새삼 대중의 주목을 받아 엄청 팔리게되면 배 아파서 어쩐담. ;-p
하기야 계약금 약속도 잘 안지키는 출판사라면 인세 지불도 속썪이지 말란 보장도 없으렸다. 결국 번역가는 도를 닦듯 돈으로부터 초연해져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으나, 하여간 상대적 약자한테 약속 안 지키는 사람들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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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자 일

투덜일기 2009. 7. 28. 16:29


번역으로 밥벌이를 하며 생겨난 나의 꿈이자 로망은 번역인세로 계약한 책들이 여러 권 쌓이고 또 그게 모두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라 꾸준히 분기별로 쏠쏠한 인세수입을 안겨주는 바람에 몇년에 한번씩은 스스로 안식년을 정해 일년 내내 팽팽 놀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상황이다. 로또 당첨 같은 수십 만부짜리 베스트셀러를 꿈꾸는 것도 자유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평생 로또 한번 사본 적 없는 나의 성향과 별로 맞지 않는 일인 것 같다.
하기야 순전히 번역료 수입만으로 너무도 여유로운 삶을 누리며 안식년까지 향유하는 삶을 자랑하는 번역가 또한 내 주변에선 본적 없으니, 엄밀히 말하면 나의 <로망>도 로또 당첨에 버금가는 헛된 꿈일지 모르겠다. 이 땅에서 번역이란 직업은 대개 일개미나 일벌처럼 노동집약적이고 소모적인 일을 꾸준히 쉬지 않고 해서 추운 겨울을 그저 안온한 정도로만 소박하게 지낼 수 있는 여유만을 허락한다. 유명 번역가치고 저술가든, 작가든, 교수든, 강사든 다른 직업을 겸하지 않고 오로지 번역에만 힘쓰는 이를 보기 힘든 이유도 아마 그런 열악한 조건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십수년째 해마다 최악이라고 일컬으니 도대체 얼마나 더 바닥을 쳐야 부상할지 알 수 없는 출판불황의 상황임에야 오죽하랴. 얼마 전 후배가 진지하게 번역가로서의 내 수입이 홀로 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만큼은 되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만약 내가 홀벌이 가장으로서 생활비며 아이들 학비며, 사교육비에 노년을 위한 저축까지 책임지는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하는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영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지금 내가 무엇보다 이 직업의 장점이라 여기는 시간과 정신의 자유는 잊고 살아야 할 것은 뻔하다. 불규칙한 수입을 감안하여 엄청난 강도로 쉼없이 거의 <떡 찍어내듯> 번역작업에 매달려야 할 테고, 지금보다 더 빈번하게 하기 싫은 장르의 책들까지 절대 거절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일을 받았겠지. 
더욱이 딸린 식구들 때문에 일터에서 고까운 일도 묵묵히 참아내며 열심히 일하는 가장들처럼 나도 최소한 이렇게 일년째 게으름을 부리며 슬럼프를 운운하지도 못했을 테지. 
안식년 타령을 할 만큼 아직 쌓아둔 인세번역도 많지 않은 주제에 일년쯤 일 안하고 놀 궁리만 파고드느라 어느새 또 코앞으로 다가온 마감일 앞에서 일일 의무작업량을 다시 분배하고 있으려니 참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 왜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고서는 열심히 일을 하지 않게 되었을까. 할 일을 뒤로 미루는 것이 원래 게으른 인간의 본성이라고는 해도 매번 이건 참 심하다. 약속 안지키는 인간 싫어하면서 마감일 약속은 밥먹듯이 어기고 앉았는 인간이 되다니. 이번에도 지킬 생각보다 어길 작정을 먼저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 하고 있는 책도 그다지 잘 팔릴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나에게 수년간 쏠쏠한 인세수입을 안겨줄 효녀노릇을 할 거라 기대하며 제발 일이나 하자,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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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짓

투덜일기 2009. 5. 22. 17:09

슬럼프라고 하기엔 너무 오랜 기간 일이 하기 싫어짐을 느끼면서 요새 턱도 없는 소망을 품는다. 작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인세계약 번역서들이 스테디셀러가 되어(베스트셀러는 바라지도 않기로 했다) 10년 뒤까지 다들 끊임없이 팔려나간다면, 분기별로나 상하반기로 나뉘어 송금받는 번역인세가 점점 쌓여 중간에 한해 쯤은 스스로 안식년으로 정하고 팽팽 놀기만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것. 
솔직히 고백하자면, 버는 족족 써버리는 나의 소비행태와 현재의 수입과 지출 규모를 감안할 때 통장 잔고가 착실히 늘어나거나 적금통장 따위가 새로이 생겨날 가능성은 전혀 없으므로, 저런 소망은 막연한 상상에 가깝다. 그래도 어쨌거나 꿈꾸는 데는 돈 안드니깐 뭐.

문제는 십수년째 해마다 <최악의 불황>이라고 하소연하는 출판시장과 전 지구적인 경기침체뿐만이 아니다. 내가 번역한 책들이 특별히 널리 권할 만큼 좋은 책도 아닌 데다 블로그 이웃들을 제외하면 내 주변인들 가운데서는 책을 열심히 읽는 이들도 없기 때문에 나로선 인세 수입을 늘이는 데 기여할 만한 방법이 통 없다. 내 번역서만 특별히 마케팅에 신경 써달라고 출판사에 강짜를 부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초판 1쇄 다 팔리고 2쇄 인쇄 들어갈 수 있게 책 좀 사보라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강권하면, 그들은 씩 웃으며 "책 한권에 만원이라고 치고 옜다, 넉넉하게 10% 챙겨주마"라면서 천원짜리를 내밀곤 했다. -_-;;
그러다 요번에 <도서관에 책 신청해서 깨끗한 책 처음으로 빌려보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문득 궁금해져 내가 번역한 책들을 검색해보았다. 아, 그랬더니 매절 계약이라 많이 팔려도 상관없는 책들은 거의 다 동네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는 반면, 인세 계약한 책들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젠장. 혹시나 해서 최근에 책을 내신 이웃분들의 책도 검색해봤더니 그 책들 역시 도서관엔 없었다. 확실히 이 동네 시립 도서관의 장서량이 열악하다는 증거였다.

당장 책을 신청해야겠다고 마음 먹고보니 또 문득 민망해졌다. 자기가 번역한 책 자기가 신청한다고 도서관에서 안 사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한두 권 더 소비하도록 손쓴다고 해서 당장 2쇄, 3쇄를 찍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이왕 생각한 거 실천해보자 싶어서 우선은 읽고 싶은 책과 이웃분들의 책을 먼저 신청하고 내 책은 시험삼아 한권만 비치요청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괜한 짓을 한 모양이다. ㅠ.ㅠ 이웃분들의 책은 도서관에 입고되었으니 빌려가라고 문자메시지가 다 왔길래 이미 읽은 책이지만 얼른 가서 받아다 놓았다가 2주 후에 반납했는데, 내 책은 연락이 없다. 그나마 제일 <양서>로 골라 신청했는데!
번역서는 책 정보 입력란에 지은이 이름만 넣게 되어 있던데, 담당자가 공교롭게 나의 음모를 알아차린 것일까? 아니면 그냥 착오로 빠뜨린 것일까? 아니면 마지막 신청한 책들은 다음 달로 넘어간 것일까? 아무려나 소심쟁이의 인세 늘이기 로망은 괜한 뻘짓으로 마무리 되고 있는 것 같아 상심했다. 내 책 들어왔다고 문자 메시지 오면, 이번에도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빌리러 가야하나 그냥 책꽂이에 비치되도록 모른 체 할까, 우유부단하게 그거 고민하고 있었더니만 이게 뭐람. 이번 책 성공하면 나머지 인세 책도 다 신청할 작정이었는데, 다 부질없다. 쓸데없는 요행 바라며 게으름 피우지 말고, 일이나 착실히 하라는 건가. 쳇.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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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9. 4. 24.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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