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해당되는 글 76건

  1. 2007.03.27 반성, 그리고 삶 속의 과학 7
  2. 2007.03.01 Why not? 5
  3. 2007.02.06 옮긴이의 말 21
  4. 2007.01.07 지적 사기2 9
  5. 2006.12.19 책 안 읽는 국민? 6
  6. 2006.10.12 지적 사기 7
일단 딴소리 먼저... (난 왜 이렇게 쓸데 없는 서론이 늘 긴지 몰라 -_-;;)
몇달 전 블로그를 시작하며, 여기엔 싸이와 달리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와 신변잡기적인 자랑은 '지양'하며서 책과 번역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하고, 생각을 좀 더 다듬은 이야기들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문득 '식탐'이라는 태그가 제일 크게 주황색으로 떠 있는 걸 보니
새삼 내가 그간 줄곧 대단히 개인적인 이야기와 신변잡기적인 자랑을 삼가는 대신 오히려 '지향'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허거걱.
물론 삶은 늘 계획대로 생각대로 풀려 나가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란 걸로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반성은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가끔 가서 훔쳐보는 루인님의 글이었던가, 하루하루의 끄적임이 배설 같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는데, 별 부담 없이 낙서 하듯 적어내려가는 이 블로그의 글들이 내게도 크고 작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배설임엔 틀림없지만, 잠시 정신 차리고 되짚어 보니  배설이란 본인에게나 시원할 뿐이지 남들이 지켜보기엔 냄새 고약하고 추잡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나에게 한정된 비유일 뿐, 루인님 같은 분의 손가락으로 배설된 글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유머와 재기가 번뜩이거나 사색과 성찰의 향기가 풍기는 이웃 불로거들의 글과 사진들은 그야말로 '주옥' 같다.)

이런 자성 끝에도 아마바처럼 다 잊고 금세 난 또 희희낙락 화장실 낙서 같은 이야기들로
이 공간을 채워가리라는 것 또한 잘 안다.
품위 있고 진지한 생각이 담긴 글쓰기만 하라면 난 아마 미쳐버리거나
원고 10매짜리 알량한 옮긴이의 말을 쓸 때처럼 끙끙거리며 괴로워만 할 뿐
텅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기 십상이니까. ^^;;

암튼 좀 민망하긴 하지만 혼자 옆구리 찔러 절하고 절받는 심정으로
이제부터는 지금 작업하고 있는 책 이야기를 살짝 할 생각이다.

원고가 밀리는 바람에 작업 순서가 엉망이 되기는 했지만
하여간 지금은 천문학을 중심으로 과학을 다룬 책을 번역하고 있는데
나로선 처음 옮기는 과학책이라 의미가 깊기도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특별히 옮긴이로서의 최면을 걸지 않아도 은근히 재미가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과학분야의 책을 옮긴 전적도 전무할 뿐만 아니라
과학 분야의 책읽기에도 몹시 소홀하여,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과거에 읽은 과학 관련 책이 무엇이었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간은 정말로 말랑말랑한 책을 주로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독서 측면에서도 말랑말랑 흐물흐물한 책 아니면 지적 허영심을 어떻게든 채워보려는 심보로 인문학 관련 책만 들춰본 듯하다.
<TV, 책을 말하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가끔 과학 책을 선보이면
우와 재미 있겠다, 읽어봐야지.. 중얼거리다가 결국엔 흐지부지 잊고 만 게 대부분이었다.
흥미로운 소설이나 역사서 같은 건 구매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던 걸 보면
내가 어지간히 과학을 멀리하긴 했다는 뜻이다.

아마도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수학을 무서워하는 근본적인 사고가 지금까지 작용해
과학마저 덤터기로 거부하는 본능을 보인 것으로 여겨지는데 ^^;;
이번 작업을 하면서 느낀 건 생활 속에 아주 밀접하게 침투한 과학(어쩌면 보편적인 상식인데 나 혼자 과학이라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ㅋㅋ)이 실제로는 꽤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미터법은 18세기 프랑스에서 세계표준으로 삼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추진되었으며 과거에 쓰이던 야드와 인치, 마일 따위가 자의적이고 나름 독선적인 규정이었던 데 반해,
1미터는 지구 원주의 4분의 1 (그러니까 북극이나 남극에서 적도까지의 거리)을 천만으로 나눈 길이여서, 어느 나라에서도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었다는 것. @.@

문과 출신이라 과학이라곤 생물과 화학만 살짝 거치고 지나갔지만
과학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면 이과반 친구들이 신물나게 괴로워했던 물리나 지학도
꽤 흥미로운 시각에서 공부할 수도 있겠다는 뜬금없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물론 원서 뒤쪽에 꽤 골치 아프게 생긴 그래프와 수식들이 보여 막연한 두려움을 품고 있긴 하다 ㅎㅎㅎ)

원래는 본격적인 번역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원서를 일단 끝까지 읽어본 뒤
소설의 경우 필수적인 인물관계나 상황을 설정해두고
비소설의 경우에는 문체와 분위기를 미리 파악해 번역의 방향을 정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나의 첫 과학책 작업이라 처음 번역을 결심할 때도 앞뒤 부분만 조금씩 훑어보고는 분야의  범위를 넓히는 의미에서 무조건 해보리라 작심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고,
혹시나 수학과 과학을 한꺼번에 싸잡아 두려워하는 마음이 책에 대한 멀미로 이어질까봐 염려스러워 본격적인 정독 작업을 건너뛰고 무작정 씨름을 하고 있었기에
나로선 이 책이 재미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___^

올해 안엔 주로 역사서와 소설만 주르륵 계약되어 있으니
다시 과학책을 번역하는 재미를 느끼는 건 한참 뒤로 미뤄야겠지만,
원고를 넘기고 나선 삶 속의 과학을 돌아보는 독서를 이제라도 간간히 해볼 작정을 품었다.

이 고무적인 생각을 연장하여...
이제 생새벽 딴짓은 중단하고 어서 작업에 몰두하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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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not?

삶꾸러미 2007. 3. 1. 17:52

언제고 이 블로그의 주소가 왜 ynot(와이낫)인지 사연을 적어야겠다 마음 먹었는데
그날이 오늘이 되고 말았다.
물론 몹시 심오한 뜻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혹 아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언더그라운드 밴드 가운데 '와이낫 ynot'이라는 밴드가 있다. 대학원 다니던 시절 지금은 캘리포니아에서 유학중인 J양의 추천으로 함께 대학로 소극장에서 한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는데, 간만에 락카페 간 기분으로 스탠딩 공연에서 맥주 한 캔 손에 들고 어슬렁어슬렁 춤도 따라 출 수 있었던 분위기도 좋았고, 국악과 크로스오버 한 것 같은 음악도 섞여 있는 레퍼토리가 제법 괜찮았다.
그래서 다음 카페 가입도 하고 공연소식이며 신곡 소식에 한동안 귀를 기울이기도 했었는데
늘 그러듯 나야 음악에 관한 한 문외한이고 오타쿠적인 면도 전혀 없는 인간이다 보니
어느 순간 멀어졌다.

그런데 ynot이라는 밴드 이름을 들은 순간 낯익고 정겹게 느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번역을 처음 시작할 때 이른바 '로맨스 소설'이라는 장르를 '전문적'(?)으로 출간하는 출판사와 일을 하게 되어 주야장천 몇년간 로맨스 소설만 번역한 적이 있었다. ^^;;
사실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면 중학교 시절 하이틴 로맨스, 할리퀸 로맨스를 열심히 읽다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천편일률적인 갈등 구도와 인물묘사에 식상해져 집어치웠던 전적이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다시 로맨스 소설을 사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거다.
전에도 살짝 이야기했지만, 원서 내용이 제 아무리 부실하고 짜증나더라도 일단 정성을 들여 번역을 하려면 (다른 번역가들은 어떨런지 모르겠다만...) 내 경우 무조건 애정을 가지려고 자기최면을 걸어야한다. 

그러다보니 또 로맨스 소설을 읽는 재미도 새삼 불타올랐다.
남성우월적인 마초이기 십상이지만 '몹시 잘생기고 훤칠하고 돈 많고 대개 목소리까지 멋진' 남자 주인공과 짜증스러운 감정의 기복을 보이며 까탈을 부리지만 매우 예쁘고 몸매도 훌륭한 여주인공에 대한 불만을 어지간히 잠재우고 나면, 그들의 밀고 당기는 사랑놀음과 절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농염한 러브신(!), 그리고 성격파탄자 남녀 주인공을 서로 잘 길들여 어김없이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적인 해피엔딩이 주는 재미가 또 쓸만하기 때문이었다. ^^;;

암튼 세부묘사가 장황한 로맨스 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상투적인 표현 가운데
여주인공의 성격을 묘사할 때 현대물의 경우 흔히 들어가는 말이
"Why?"라는 말보다 "Why Not?"이라고 되묻는 때가 더 많은 유형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삐딱투덜이 기질을 뼛속까지 지닌 나에겐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적혀 있으면 오히려 한 번 꼭 들어가고 싶은 반항의 기질을
한마디로 표현한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어린시절 꼭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 주변에서 보란듯이 찍은 사진들이 참 많다 ㅎㅎ)

'여자가 어딜 감히...'라는 편견이라든지
'술 많이 마시지 마라', '담배 피우지 마라', '늦게 들어오지 마라', '노처녀는 안된다' 따위의 당부에 난 걸핏하면 속으로 '왜 안되는데?'라고 되뇌었고, 웬만한 건 몸소 부딪쳐 깨지고 다치고 겪어본 다음에야 나름대로 판단을 내렸던 것 같다.

carpe diem과 함께 why not?(줄여서 y_not)은 이제 거의 내 삶의 잣대쯤으로 자리잡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더 정겨운 ynot이라는 블로그 주소.

3월 첫날을 맞아 심기일전 열심히 살아야한다고 다짐하고 나왔는데
자꾸만 엉겨붙는 짜증과 여건의 압박 때문에 오늘은 온종일
"대체 왜 안된다는 건데?"
"왜 못하게 하는 거야?"
"왜 가지 말라는 거야?"
.
.
.
따위의 why not?을 조금 전까지도 연발했다.
속이 좀 상하지만, 결국엔 내 뜻대로 밀고 나가리라 다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까짓거 못할 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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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책보따리 2007. 2. 6. 21:31
번역을 생업으로 삼은지 12년째.
남의 글을 옮기지만 말고 이젠 직접 한 번 써보지 그러냐는 말을 가끔 듣기도 하는데
그럴때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펄쩍 뛴다.
유명 번역가들 중엔 등단을 한 문인들도 꽤 되지만, 내 경우 번역은 스스로 글을 창작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남의 글을 매만지는 것으로 글쓰기에 대한 만족을 누리는 수단인 것 같다.

원서에 기대어 말을 뽑아내는 것은 그럭저럭 해보겠는데(물론 이 과정에서 아마도 원저자의 본래 의도와는 상관없는 왜곡을 수없이 저지르고 있을 거라는 걸 안다. 다만 그 왜곡이 최소의 수준이기를 바랄 뿐이다), 텍스트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활자로 인쇄될 글을 만들어 쓰라고 하면 참으로 난감하다.
번역원고를 출판사에 넘긴뒤 얼마간 잊고 지내다가, 출간을 앞두고 역자후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게되면 문득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 같다.
writer's block.
우리말로 옮기기에도 까다로운, 글쓰기의 막막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옮긴이의 말이라고 해봤자, 특별히 작품해설을 좀 더 심오하게 써달라는 요구를 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그야말로 책을 옮기며 느낀 점을 후기 식으로 짤막하게 쓰면 되는 것인데...
난 왜 그리도 옮긴이의 말을 쓰는 것이 어려운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쩔 땐 일주일 내내 원고지 10매도 안되는 후기 원고 때문에 끙끙거릴 때도 있는데, 또 우스운 것이 출판사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옮긴이의 말을 쓰지 말라고 하면 몹시 섭섭한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개인적으로 역자후기가 없는 번역서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책 판매를 부추기기 위한 단순한 책자랑이든 아니든(대부분은 내용의 재미 여부나 책의 유용성과 상권없이, 옮긴이는 무조건 자기가 옮긴 책이 훌륭하고 재미있고 유익했다고 자기최면을 걸어 후기에 반영해야 한다!), 옮긴이의 말에서 책에 대한 애정이나 정성이 느껴지면 좋은 번역이란 선입견이 들곤 한다.
그런데 역자후기가 아예 없으면, 혹시 유령 번역가를 앞세우거나 이름만 빌린 엉터리 번역서가 아닐까 의심이 든다는 얘기다.
그렇다보니, 옮긴이의 말을 아주 잘 써야만 할 것 같고, 그래서 더욱 괴로움에 휩싸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몇년 전 기획출판을 잘 하기로 유명한 출판사에서 동화를 각색한 책을 의뢰받은 적이 있었는데, 원고를 넘기고 출간일이 다가와도 역자후기 쓰라는 말이 없어 의아했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덧 이미 서점에 깔린 책을 들춰보니, 옮긴이의 말 대신 내가 싫어하는 어느 여자 방송인의 추천의 글이 들어 있었다. 묘하게 기분나쁘고 아주 허탈했다.
물론 출판사에서 옮긴이에게 옮긴이의 말을 생략하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내 쪽에서 미리 확인하고 역자후기를 꼭 쓰겠다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는 것이므로 잘잘못을 따질 순 없다.
어쨌든 그 책은 예쁜 포장과 감각적인 그림을 곁들인 기획에 힘입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 때문에 나에 대한 인지도도 제법 높아졌으니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처음 같이 한 작업이 그런 미진함을 남겼던 까닭인지, 그 뒤로 그 출판사와 일한 책은 기획이 통째로 엎어지거나 출간이 보류되거나 해서 이제 더는 거래를 하지 않게 됐다.
아.. 미수금이 약간 남아있긴 하구나. ㅡ.ㅡ;;

최근에 나온 책에도 옮긴이의 말이 빠진 채 출간 된 게 2권 있는데, 한 권은 출판사 재량으로 아예 나에게 후기 의뢰도 하지 않고 제작을 진행해서 또 한 번 섭섭함을  느끼게 했고,
나머지 한 권은 작년 12월 한참 놀기 바쁠 때에 후기를 의뢰받은 터에 겨우 이틀만엔가 써달라고 해서, 내쪽에서 포기를 한 경우였다. 거의 무슨 만화책 같은 느낌으로 나온 표지를 보며, 옮긴이의 말을 안쓰길 잘했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옮긴이로서의 책임감을 회피한 것 같아 못내 마음이 무거워 앞으론 그러지 말아야지 반성을 했었다.

그리고 2007년을 맞아 첫 책이 나올 판국인데
단 하루만에 옮긴이의 말을 써야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
아...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투털투덜 주절주절 씨부리는 건 얼마든지 하겠는데, 그 수준에서 얼마 벗어나지 않은 나의 잡문이 활자로 인쇄되어 책 뒤에 실린다고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휴우~

그래도 작년엔 옮긴이의 말을 읽고 감동을 받아 출판사에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했다는 어느 여사님의 전화를 난생처음 받기도 했더랬다. (재수없게 다시 잘난척 모드?)
하지만 그 전화를 받고 나서 더욱 옮긴이의 말을 쓰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독자들 절반 이상은 아마 옮긴이의 말 따위 안 읽을 지도 몰라!'라고 자위하며 얼렁뚱땅 설익은 후기를 후다닥 출판사에 보내는 일이 더는 불가능해졌으니 말이다.

쓰라면 괴롭고, 쓰지 말라면 섭섭한 옮긴이의 말..
역자후기쯤은 언제나 거뜬하게 쓸 수 있는 내공을 과연 나는 언제쯤 쌓게 될 것인가.
그런 날은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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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사기2

책보따리 2007. 1. 7. 21:19
대리번역과 관련하여 지적 사기에 대한 글을 쓴 게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출판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사기극이 연이어 불거져 나오는 걸 보니 씁쓸하기 그지 없다.


출판을 업으로 삼은 이들이 제 아무리 '문화사업'이라며 자부심을 갖고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정작 처절한 생존을 위해서는 '문화' 보다 '사업'에 더 힘을 쏟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보니, 출판계에서도 '관행'이라는 뻔뻔한 명목으로 크고작은 사기극을 미화하거나 부도덕한 대필이나 표절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수십년간 반복되어 너도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습관처럼 박혀 있던 잘못들이
이제라도 하나둘 발각되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져 단죄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차라리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들은 스타 작가와 번역가를 전면에 내세우며 실질적인 대필작가나 구성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는 걸 '독자들이 원하기 때문'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외국엔 '공저' 체제가 자리잡혀 있는 반면, 우리나라엔 '공저'라고 하면 이름을 앞세운 유명인사도, 실질적인 작가도 둘 다 불신하고 외면하면서, 이번 사건처럼 대필이나 대리 번역 의혹이 불거지면 완전히 매도하는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독자들의 성격이라는 얘기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를 출간한 회사의 사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다는 얘긴데, 기사를 보며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독자들 수준을 너무 평가절하하는 건 아닌가 발끈해서, 일단 정직하게 책을 내보는 시도부터 해보지 않는 출판인들을 비난하는 마음이 앞서긴 했다.
하지만 정지영 아나운서를 앞세운 대리번역 사건에서 일부 독자들과 변호사가 집단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인 걸 보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지난번 대리번역 사건에서 제일 나쁜 건 물론 출판사지만, 정지영 아나운서를 믿고 그 책을 사본 독자들이라면 그 여자의 팬이라는 얘기니 그 여자를 감싸줄 만도 한데 오히려 배신감 운운하며 심리적인 손해를 배상하라고 나서는 걸 볼 때, 역시 스타 작가나 번역가를 앞세워야 장사가 잘 된다는 출판사들의 논리를 입증하는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래서 출판계엔 내부인들만 아는 거대 권력이 존재한다.
책만 내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이른바 '스타 작가' 또는 '스타 기획자'들은 막대한 계약금을 받고 이 출판사, 저 출판사를 오가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물론 부정직한 출판사들이 인세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사이가 나빠져 작가가 출판사를 옮기는 경우도 많지만, 일부 악덕 문인들(아.. 이들에겐 '문인'이라는 말도 아깝다! 상업적인 글쟁이 정도가 딱이라고나 할까... )은 상도덕이나 인간에 대한 도리 따위는 나몰라라 한 채 사리사욕만 채우기에 급급하다.
출판 기획도 하고 번역도 하는 저 유명한 시인 X모씨는 출판사를 오갈 때 마다 아예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별도의 출판사처럼 운영하며 엄청난 이윤을 벌어들이는 것으로도 악명 높다.
예전엔 나도 그의 글과 번역을 좋아한 적도 있지만, 이젠 분명 확신한다.
출판계에서 독불장군처럼 전대미문의 권력을 휘두르는 X모씨가 결코 번역 따위에 힘쓸 시간은 없을 터이므로, 그의 이름으로 나오는 번역서도 분명 힘없는 새끼번역가의 노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이렇게 거품을 물고 불만을 품어도,
그가 번역을 하든 엮어내든 출간하는 책이 어김없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걸 볼 때, 그에 대한 출판계와 독자들의 수요는 한동안 끊이지 않을 것이고 돈 많은 출판사들은 계속해서 호시탐탐 그를 스카웃하려고 애를 쓸 게 틀림없다. ^^;;
나는 그저 흥미진진한 눈초리로 과연 X모씨가 다음번엔 어느 출판사로 옮겨가 또 어떤 새 이름으로 책을 낼 것인지 지켜볼 뿐이다. (그나마 예전에 틀어졌다 다시 돌아간 이번 출판사와는 공생관계를 1년도 넘길 모양이어서 신기하다)

아무튼
자금력 딸리고 '사업적인' 두뇌와 인력을 갖추지 못한 중소출판사는 나날이 도태되고, 이름도 알쏭달쏭한 수많은 자회사를 거느린 거대 출판사들만 출판시장을 독식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는 과정이라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는 출판업자들의 몸부림이 범죄수준으로 치닫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한데, 이렇게라도 가끔씩 고름이 터지듯 문제가 불거지다 보면 나름대로의 자정작용이 생기고 도의가 되살아나지 않을까?

현재로선 독자들의 역량이 못미친다 하더라도
차츰 힘 있는 출판사들부터 구성작가나 대필작가의 이름을 떳떳하게 공저자의 이름으로 책표지에 실어 대우하고, 모든 유명인사들이 전부 뛰어난 글쓰기 실력을 갖출 순 없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인정하도록 만들어간다면 그야말로 정직한 출판문화가 자리잡는 터전이 되지 않겠나 싶다.
또한 전략적인 광고에 힘입은 대형 출판사들이 베스트셀러 시장마저 완전히 독식하는 기형적인 시장에서 꿋꿋하고 의연하게 좋은 책을 만들어내는 작은 출판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독서인구의 다양화도 실현되면 좋겠다.

그래야.. 개인적으로 번역료를 떼이거나 받기 어려울 확률이 높은 작은 출판사와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서글픈 다짐을 하지 않아도 될 터이니까 ㅜ.ㅡ...
(작년에 이 다짐을 어기고 계약 출간한 책 몇 권은 역시나 번역료를 "아직도" 못 받았다. 어흑...) ((오해의 소지가 있는 듯하여 "아직도"는 추후 삽입했음^^))

아무튼 이번 사기극의 결과를 나는 계속 주시할 것이다.
출판이라는 문화 사업이 '사업' 보다는 '문화' 쪽에 마음 놓고 힘을 실을 수 있는 시대가 언젠가는 와줄 것이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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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 읽는 국민?

책보따리 2006. 12. 19. 03:26

(처음 블로그 폴더를 나누면서 여기라도 이런저런 책 이야기를 좀 많이 해야지
마음 먹었는데 기막히게도 만날 신변잡기 타령만 하다보니 정작 책 이야기 폴더엔
그간 글이 달랑 하나밖에 없었음을 반성하며... 약간 쥐어짜듯 적어보는
별 쓸모 없는 푸념임을 미리 밝혀둠 ^^;;)

며칠전 인터넷 뉴스를 휘적휘적 뒤지다 보니
<성인 넷 가운데 하나, 책? 안 봐>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출판 관련 기사는 유독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지난 9월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를 발표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예년보다 성인의 연평균 독서율과 독서량은 76%, 12권으로 좀 오른 반면
(각각 1년에 책을 1권이라도 읽은 사람들의 비율, 1년에 읽은 권수라는 얘기)
빈익빈부익부의 현상은 날로 심화되어, 성인 넷 가운데 한 명은 1년 동안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단다.
여기 집계된 책에는 만화는 물론 잡지도 포함된다고...

솔직히 나는 저 집계 결과가 상당히 놀라웠다.
표본조사이니 물론 오차범위가 있겠지만...
1년에 책을 단 한권도 안 읽는 성인이 '겨우' 25%밖에 안되며
게다가 75%나 되는 사람들은 책을 1년에 12권이나 읽는다고???
책으로 벌어먹고 사는 나도
일과 관련되지 않은 순수 책읽기는 열손가락 안쪽이 될 것이 유력하고 ㅜ.ㅜ
내 주변의 수많은 측근들과 가족들 가운데서도 공부와 상관없이 책과 친하게 지내는 이들은 참으로 드문데!

언젠가 드물게 번역료를 인세로 계약한 친구가 주변 지인들에게
이번엔 책이 많이 팔리면 자기에게 득이 되니 책 좀 사보라고 권했더니만
책 사보겠다는 이는 없고
인세 로열티를 묻고는 선심쓰는 체하며 다들 천원짜리를 내밀더라는 얘기에
나를 비롯한 출판계 친구들이 씁쓸하게 웃은 기억이 있을 만큼
정말로 주변에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물론 내가 번역하는 책들이 정말로 마음의 양식이 되고 정신을 살찌우는 '양서'라기 보다는 출판사에서 장사해보려고 만들어내는 대중서가 대부분이고 보니
나 역시 민망해서 주변에 권하지도 않게 된다.
게다가 또 열악한 출판계 사정상 잘 팔릴 것 같은 책은 절대로 인세 계약으로 안 해주고 (물론 정지영 아나운서 같은 경우엔 얼굴마담 격이었으니 예외겠지만), 대부분은 '매절'이라는 매정한(?) 원고료 지불 방식을 선호하며, 그나마 두어번에 나눠주는 원고료도 부담이 되는 아주 작은 출판사나 소신있는 마케팅을 위해 무조건 인세계약을 원칙으로 하는 출판사들만 드물게 책 판매량에 따라 번역료를 챙겨주는 인세계약을 원하기 때문에, 초베스트셀러가 되어도 나한테 떨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 굳이 나까지 나서 책 팔기를 거들긴 싫다. -.-;;

번역인생 11년 동안 40여권을 우리말로 옮겼지만
그간 인세계약을 한 건 앞으로 나올 책 2권을 포함해 단 3번 뿐이니 더 말해 무엇할까..

지난번 <마시멜로 이야기> 파동으로 이름 빌려준 아나운서가 인세로 벌어들인 돈이
자그마치 8천만원이 넘는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뒤
준백수로 지내던 몇몇 지인들한테서 연락이 왔더랬다.
나 또한 번역으로 그리 떼돈을 버는 줄 알았는지, 새삼 자기들도 번역을 해보고 싶으니
어떻게 시작하면 좋겠느냐고 조언을 구하는 그들의 순진무구함에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지만...

내가 또 냉정할 땐 면도날처럼 차가운 인간인지라
출판계와 번역하는 사람들의 처절한 현실을 일러주고
영어보다는 우리말 글솜씨가 훨씬 더 중요하니, 지금 당장 원서 한권 습작해서
번역된 책과 비교해 본 뒤
그래도 하고 싶으면 5년간 손가락 빨며 완전 가난하게 지낼 자신 있을 때 
덤비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짐작컨대, 그때 전화했던 지인들 가운데 지금 열심히 습작중인 이는 아무도 없을 거다.

어쩌면 그들은 내 이야기를 제 밥그릇 지키려는 앙탈로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번역'이라고 하면 영어깨나 접해봤다고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전천후 아르바이트' 쯤으로 여기는 세상에서(심지어 출판계에서조차 돈독 오른 사장들은 실제 원고를 매만지는 편집자들의 고충은 나몰라라 한 채, "값싼" 번역만 찾는 지경이다),
번역깨나 한다고 이름 난, 이른바 '중견 번역가' 선생들은 새끼작가인지 문하생인지 알 수 없는 '하청업자' 아이들에게 원서를 찢어 맡겨 일을 시키거나, 번역아카데미 같은 걸 차려
'수업교재'로 쓰다가 거지 발싸개 같은 그들의 원고를 취합해, 떡하니 자기 이름을 걸고 출판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며,
섣불리 초보 번역가에게 일의 기회를 주고 차츰 '인재를 키워보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넓은 출판사는 더는 없거나, 있더라도 대형 출판사들의 공세에 밀려 곧 망할지도 모를 위기에 놓여 있는 마당에,
들이는 품과 시간과 열정에 비해선 아직도 턱없이 낮은 번역료에 기대어 생계를 유지하겠다고 마음 먹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내년이면 이 길로 접어든지 12년째인 나도
이 나라 출판계가 과연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인지 불안하게 고민하며
불투명한 미래를 염려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올해까진 거의 한달도 쉬지않고 일하고 있음에도
출간되는 책의 수가 들쭉날쭉한 걸 보면 (작년엔 달랑 2권, 올해는 무려 9권)
결국 나의 미래는 이 나라 사람들의 독서 수준에 달려있다는 이야기다.
복지부동을 실천하듯, 몇년 전 다들 숨죽여 시장을 관망하던 때와 달리 확실히
작년부터 출판계는 발악하듯 요동치고 있는데, 나는 이럴 때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
내년 번역 스케줄이 절반쯤은 짜였을 만큼 바쁘니 일단은 다행이지만
이렇게 우르르 몸부림치다 또 출판시장이 와장창 사그라들면
일감 역시 줄어들 것이 뻔하니 말이다.

그러니 독서인구의 연평균 독서량이 작년보다 늘어 12권이란 말이 놀랍고도 감사할밖에.
잡지라도, 만화라도, 요즘 유행하는 시답잖은 자기개발서나 '칙릿'이라도 많이많이 읽으라고
새해엔 사방에 강권이라도 해볼까... ^____^

당신이 읽는 한권이
대한민국의 출판계
라니의 생계와 미래를 살립니다!

이런 팻말이라도 등뒤에 써붙이고 다니든지 ㅋㅋㅋ

(아이쿠.. 글이 어째 용두사미..  애당초 하려던 말이 뭐였는지 까먹고 곁다리로 빠진 느낌..
에라 모르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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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사기

책보따리 2006. 10. 12. 17:57
이 세상엔 참 많은 종류의 사기꾼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지만
교묘하고 정교하게 이루어지는 수많은 지적 사기에 대해서는  
다른 유형의 사기극에 비해 응징이나 처벌이 훨씬 덜 이루어지는 듯 하다.
워낙 지능적으로 절묘하게 자행되는 사기극인 탓도 있지만
어차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얼렁뚱땅 넘어가기도 때문이리라.

거의 1년 가까이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던 책의 옮긴이로 더욱 주목을 받은 유명 아나운서 대신 실제로 그 책을 번역했다는 대리 번역자가 나서면서
또 한 번 출판계가 떠들썩한 모양이다.

처음 그 아나운서 이름을 옮긴이로 달고 책이 출간되어 홍보를 할 때부터
나는 믿지 않았었다.
번역 원고료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투잡족이 되는 수는 있어도
아나운서처럼 바쁜 직업을 가진 사람이 기사 한 꼭지도 아니고 책 한권을 턱하니
번역할 시간을 내는 건 그리 쉽지 않을 게 너무도 뻔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제법 유명한 사람을 옮긴이나 지은이로 달고 나오는 책치고, 원래부터 문인이 아닌 한 진짜로 그 사람이 번역하거나 지은 책은 역사상 단 한권도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유명한 무용가나 사업가들이 내는 책도 본인은 에피소드만 제공할 뿐, 다 대신 써주는 작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만큼 출판계에 대리번역의 관행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는 뜻인데
멀리 보지 않더라도,
영문과 대학원에 있는 동안 본 바로도 과사무실을 통해 수많은 번역 아르바이트가 쏟아지더라. 일부는 그냥 참고 교재로 두고 볼 개인적인 번역 의뢰물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버젓이 다른 학과 전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출간될 번역서를
뻔뻔하게 대학원생들에게 원고를 "찢어" 번역을 맡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어차피 대학원생들도 바쁘다 보니 1권 분량을 누군가 한 사람이 맡을 수는 없는 것이고
품앗이 하듯 여럿이 나눠 번역을 하는 거다.
나는 어차피 수업 따라가기에도 벅차 그런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도 없었고, 시간이 있었더라도 할 마음이 없었지만, 당시 씁쓸한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다 보니.. 차라리 수업에 쓴 교재를 제자들에게 초벌번역을 맡기고 그 원고를 취합해
나중에 교수 이름으로 번역서를 출간하는 건 완전히 애교스러울 정도다.
제자들 가운데 누군가 나서서 최소한 용어 통일과 문체 일관성 확보에 힘을 쓴 흔적이라도 있을 터이고, 교수의 역자 후기에 "원고 교정에 힘쓴 제자 누구누구에게 감사한다"는 인사라도 남겨주는 게 '관례'이니 말이다.

이렇게 교수들의 번역서는 죄다 조교나 제자들이 도맡아 하는 관행이 너무도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교수들의 연구업적 평가에서 번역서는 고작 학술지에 논문 1편 발표한 것과 점수가 같다고 들었다. 저서를 출간한 경우 10점이라면, 번역서는 겨우 1점이라나...
실제로 당신이 손수 한 문장 한 문장 1년여에 걸쳐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  번역에 힘쓰시는 선생님들에겐 참으로 억울한 처사가 아닐 수 없지만, 그만큼 학계에선  아직도 교수들이 대리번역을 양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는 듯 하지만, 얼마 전 국무총리에 지명되었다가 국회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대단히 단명한 국무총리가 된 어느 전직 교수가 청문회에서, 국내에서 논문을 중복되게 학술지에 게재하는 일을 문제 삼으면 그런 기준에서 자유로울 교수는 아무도 없다는 발언을 하여, 같은 학교 교수들이 벌컥 화를 내며 성명서를 발표하는 해프닝을 벌였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지 않나? 교수들이 논문 하나로 이리저리 조금씩 다듬어서 여기저기 학술지에 실어 연구업적을 높이는 게 '당연한 관행'이라는 거 말이다. ㅡ.ㅡ;;

대리번역...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그리고 다량으로 그런 비행이 저질러지는 경우가
교수들을 앞세운 번역물이다보니, 그쪽으로 괜히 더 거품을 물고 씹어대긴 했지만
골프서적을 비롯한 수많은 실용서들은 그 분야의 유명인을 앞세우고 실제로는
대리번역을 시키는 경우가 아예 정착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의 <마시멜로 이야기>를 출간한 출판사처럼
다들 투자비를 뽑아내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그런 사기극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는 것인데, 문제는 그렇게 유명인을 앞세워야 독자들에게 책이 '먹힌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책을 잘 읽지 않는 이 나라 국민들에게 그나마 '먹히는' 책이 있다는 걸 감지덕지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비뚤어진 생각을 품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출판 시장은 나날이 축소되고, 마케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대형 출판사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세월이 되었으니 서글픈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책'이라는 소중한 문화형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러한 뻔뻔한 지적 사기 행각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용인해줄 수는 절대 없다!
누가 뭐래도 대중을 속이고 뻔뻔하게 책을 팔아먹은 출판사는 나쁜 놈들이고
수많은 지적 사기꾼들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보호하고 있는 출판계는 어서 반성하고 악습에서 벗어나야 하며, 울며 겨자먹기로 자기 이름 대신 유명인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기로 비밀 계약을 맺어 온 수많은 대리번역자들이 당당하게 세상의 빛을 보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이렇게 떠들썩하게 난리를 피우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잊고
똑같은 사기극에 놀아나지 말고, 이참에 확실하게 번역을 둘러싼 출판계의 지적 사기극을 단죄하거나 미연에 방지할 방법이 있으면 더욱 좋겠고...
(역시 자기 밥그릇 관련된 일이니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이기주의는 버리지 못하는군 ㅠ.ㅠ)

하여간에 더불어... 처음부터 내 이름을 걸고 책을 출간하게 해준... 지금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작은 출판사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한다.

(역시... 글이 길어지면 논지가 마구 흐려지는 단점이 마구 드러나누만 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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