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해당되는 글 76건

  1. 2015.10.07 번역가란... 3
  2. 2015.09.09 케이트 10
  3. 2015.05.26 세금의 달 5월 4
  4. 2015.04.15 모둠 과제 발표? 9
  5. 2014.01.06 2013년에 읽은 책 6
  6. 2013.03.15 목구멍이 포도청 6
  7. 2013.01.05 2012년에 읽은 책 6
  8. 2012.11.23 잘 될까 15
  9. 2012.06.11 ... 11
  10. 2012.02.01 정년 16

번역가란...

놀잇감 2015. 10. 7. 14:02

​오래 전에 돌아다니던 사진이다.
어딘가 올려놓고 글도 쓴 것 같은데 블로그는 아니었나보다.
며칠 전 번역을 하는 친구 셋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다 이 사진이 다시 떠올라 돌려보며 깔깔댔다.
공감 백퍼~라면서.
​그나마 우리말은 번역가/통역가를 확실하게 나눠쓰지만 영어로는 둘 다 translator라서 더욱 이런 오해를 사겠지.


친구들이 번역가인 우리를 생각하는 모습과
엄마가 상상하는 모습과 (물론 울 엄니는 이제 내 실체를 아시지만)
세상의 통념과...
셰익스피어를 꿈꾸는 우리들의 야망에 이어 현실까지.... 볼수록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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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책보따리 2015. 9. 9. 22:41

지은이 이름이 케이트인 책의 작업을 마치고, 곧이어 케이트가 등장하는 소설을 번역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장편소설엔 원래 등장인물이 워낙 많고, 영미권에서 케이트는 흔하디 흔한 이름이니 요즘 애들 이름으로 치자면 작명 순위 1위라는 '서연' 쯤 되려나? 아니지, 작가 이름으로도 익숙해야하니깐 뭐가 좋을까.. '희경'? (언뜻 은희경, 노희경 정도가 생각난다)


독자로 치면 은희경의 수필집을 읽고 나서, 다음 책을 집어들었는데 마침 그 거기 '희경'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할 확률은 과연...? 하기야 폴 콜린스의 책을 읽었는데,우연히 곧이어 읽은 다음 책에 폴이란 주인공이 등장하는 사태는 단편집의 경우 별로 어렵지 않을 것도 같다. 다만 내가 요새 하도 책을 드물게 읽으니 직접 경험을 못해서 그렇지. 


이번에 책을 번역하면서 알게 된 건데, 가계에 쌍둥이 유전자가 전혀 없는 집안에도 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놀랍게도 80명 당 1명꼴이란다. 그 정도면 엄청난 확률 아닌가!? 길 가다가 날아가는 새의 똥에 맞을 확률도 저거보다는 낮을 것 같은데, 난 그런 적 있을 뿐이고! ㅠ.ㅠ 갈매기 드글거리는 바닷가도 아니고 종로 한복판에서... 암튼 우연의 일치는 생각보다 일상에서 꽤 큰 확률로 다가오는 게 맞다고 봐야 합리적일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이 어디 그런가. 선택적인 기억력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또는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짜깁기해서 뭔가 맥락을 짓고 의미를 부여하고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행운과불운을 점치고... 


째뜬 이번 케이트 아무개가 쓴 책과 케이트 아무개가 등장하는 소설을 연이어 번역하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돌파리 점쟁이의 점괘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겠거니 싶으면서도 종종 일과 관련해선 뭔가 보이지 않는 끈이랄지 운명의 힘 같은 게 정말 있나, 의아할 때가 있다. 아 그냥 교묘한 우연의 일치라니깐! 하고 넘기면서도 혹시 몰라... 그런 기분? ^^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미술관 전시실 벽에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근대 유럽 미술사조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 이런 표정으로 뭥미; 싶어서 한참을 읽어도 결국 모르겠다 중얼거리며 걸어나왔는데, 한달도 못 돼서 바로 다음 계약 책에 그 미술 사조가 떡하니 등장해 역주를 다느라 좀 더 알아봐야 한다든지... (워낙 무식해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걸지도)


작년엔 실존 인물이었던 은행강도 선댄스 키드 이야기가 등장한 책 때문에, 역주 한줄 멋지게 달겠다는 욕심으로 당시 상황과 <내일을 향해 쏴라>로 영화화 된 과정을 위키피디아와 구글로 한참 검색했는데, 동생놈이 무슨 다큐 작품으로 받게 된 부상이 하필 <선댄스 영화제> 초청이라는 소식이 곧 날아들질 않나, 심지어 몇달이 지나 동생이 선댄스 영화제 보러 비행기타고 떠난 날, 굳이 그 책의 증정본이 택배로 도착할 건 또 뭐람. 소름끼치게스리...


하기야 이번에 끝낸 책은 시리즈라서 전권부터 따지면 케이트가 나오는 소설을 번역했는데 다음에 계약한 책은 하필 케이트가 저자였고, 그 다음 책에 또 다시 케이트가 등장인물로 나오는 셈이다. ㅋㅋ 나만 재미있나? 


어랏 신기하네, 결국 이게 천직인가 싶었던 경험은 그밖에도 더러 있었는데 기록을 해두지 않았더니 거의 다 까먹었다. 어쩌면 자꾸만 자존감도 떨어지고 연봉도 부가가치도 형편없이 낮은 이 일에 자꾸 회의가 드는데 딱히 더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달리 방법도 없으니, 무언가 비논리적인 의미부여라도 하려는 심리 탓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괜히 유별나게 기억해 연결 짓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같은 일을 20년째 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 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맥빠지고 (과연 출판업과 번역가로서의 전망은 계속 어케되는 거냐규~??) 지칠 때, 다시 슬슬 곁눈질을 하고 싶어질 때 일종의 채찍질로 괜한 운명론을 들먹이는 것이든, 정말로 교묘한 인연의 실마리가 내 삶을 관통하는 것이든... 사실 상관은 없는 것 같다. 태어나서 글을 깨친 이후로, 독서가 지루한 적 없는 사람으로서 책에 기대어 밥벌이를 한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번역하기에 아무리 한심하고 하품나는 책이라도, 직장에서 발전소 연소기기 매뉴얼이나 계약서 번역하느라 끙끙대는 것보다야 훨씬 재미난 법! ㅋ 언젠가 출판과 종이책이 완전 사양길로 접어든다고 하더라도 내 생전에는 아직 그런 날이 없을 거라 믿고 또 달려보는 수밖에.(한 십년 더? ㅋㅋ)   


제목을 케이트로 정했더니 문득 내가 번역한 책들 중에서 케이트(캐서린 포함!)란 이름은 저자로, 등장인물로 얼마나 자주 나왔는지 통계 내보고싶어졌다. 아 정말 별게 다 궁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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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의 달 5월

투덜일기 2015. 5. 26. 16:26

정신없이 사느라 잊고 있었는데 지난주에 만난 프리랜서 친구가 종합소득세 신고했느냐고 물었다. 잉? 난 우편물도 안왔던데? 우편물 안 왔더라도 홈택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신고할 수 있으니 어서 하라는 충고였다. 하지만 뭐든 질질 끌다가 막판에나 겨우 하지 않으면 마감일을 넘기기 일쑤인 내가 행여나 일찍, 공식 우편물도 날아오기 전에 세금신고를 할 리가 없다. 마지막주에 하면 되겠거니 그냥 또 잊고 있었더니 주말 직전에 우편물이 드디어 도착했다.


나는 간편장부 대상자라 세무서에 갈 것도 없고 그냥 인터넷으로 신고하면 되니까 얼마간 끙끙대면 되겠지 했더니, 오지랖 넢은 친구가 주말에 또 문자를 보냈다. 이번에는 신고양식이며 시스템이 다 바뀌어서 더 헷갈린다, 나중에 헤매다 기한 넘기지 말고 얼른 신고해라...  그렇다면 오케이. 조금 전 점심 먹고 분연한(?) 마음으로 홈택스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친구 말이 맞았다. 작년까지는 지들이 다 알아서 기입해놓은 총 수입액의 명목을 눌러, 총액이 맞는지 아닌지 자체 확인할 수도 있고, 항목별로도 링크가 많이 되어있어서 기부금 공제 항목도 영수증만 있으면 본인이 따로 입력이 가능했는데 그런 게 죄다 사라졌다! 게다가 시스템이 죄다 바뀌었는지 원래 회원인데도 재가입해서 로그인하라고 하고, 비회원로그인도 가능하다지만 메뉴가 제한되고 아우 불편해!! 

 

하는 수없이 통장 2개의 1년치 수입액을 다 뽑아 계산해서 맞춰보고, 기부금공제는 그냥 포기했다. 기부금공제를 받으려면 별지 서식 45호를 작성해서 세무서에 제출하라는데, 별도 증빙서류 제출해야하면 인터넷 신고할 때도 작성할 수 있게 해야지 뭐냐!!! 일단 신고서를 제출하고 나서 증빙서류 제출하라는 메뉴가 있긴 하지만 거긴 기부금 공제 서식이 생성되지 않았다. 기부금은 아예 공제해주지 않겠다는 꼼수가 아니고 뭐냣! 5월에 세무서 가면 얼마나 줄을 오래 서서 기다려야하는데... 그러고도 전자신고하라고 한쪽 구석에 있는 컴퓨터로 내몰기 일쑤... 옜다 먹고 떨어져라 하는 마음으로 그냥 기부금 공제는 빼고 신고를 마쳤다.


부양가족 공제도 없지(울 엄마는 막내동생이 부양가족으로 신고하는 게 관례), 자녀공제도 없지, 출산, 입양 공제도 없지.... 이번에 공제되는 거라고는 표준세액공제 7만원이랑 전자신고 공제 2만원뿐이다. +_+ 젠장젠장... 째뜬 알량하게나마 원천징수로 뜯어갔던 세금 환급되는 거나 기다리는 수밖에. 작년 내가 벌어들인 수입을 확고하게 '숫자'로 확인하는 이 맘때는 참으로 마음이 참담하다. 이거 벌자고 노상 밤새고 있는 거구나 내가...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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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 과제 발표?

투덜일기 2015. 4. 15. 18:26

6학년짜리 조카가 어제 저녁에 난데없이 인터뷰(?) 요청을 했다. 엄밀히는 조카가 직접 한 것도 아니고 올케가 전화를 해서... +_+ 학교에서 '직업탐구'와 관련된 모둠 과제 발표가 있는데, 조카녀석이 자기 고모가 번역하는 사람인데 만나보면 어떻겠느냐고 같은 모둠 아이들에게 의견을 냈고 다들 동의를 했다나. 아 근데 왜 나한테는 미리 말도 안하고! 


암튼 과제 발표 및 제출 기한이 내일이므로, 마침 개교기념일이라 노는 날인 오늘 당장 인터뷰할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 했다. 아 놔;;; 조원은 남자2, 여자 2인데, 여자애들은 다 바빠서 인터뷰에 참여할 수 없고 조카와 친구가 인터뷰를 진행하면, ppt파일 만드는 건 여자애들이 담당하기로 했다나 뭐라나...  


조카는 여자애들이 바쁘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추측했다. 말로는 학원에 간다지만 어차피 평일이라 당연히 오후에 갈 텐데, 오전이나 점심때쯤 한두 시간 짬을 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그냥 귀찮은 거라고...  말을 듣고 보니, 애 엄마도 아니면서 돌연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 여자애들 워낙 영악해서 수행평가에서 특히 탁월한 솜씨를 보여 남자애들이 감히 따라가지도 못한다더니만... 귀찮고 생색 안나는 일은 남자애들 시키고, 지들은 그럴듯하게 다 해 놓은 과제 발표만 맡겠다는 심보인가? -_-+++


아무튼 난데없는 상황에 팔불출 고모는 거절할 수도 없고, 그저 따라나서는 수밖에. 으휴...

그래도 계속 투덜투덜... 출판사나 주변에서 하루 전에 이런 인터뷰 하라고 통보하면 절대 안해주는데! 정식으로 인터뷰를 하려면 미리 질문지를 주고 준비를 시켜야지! 했더니 녀석은 공책 반장 찢어 적은 질문 10가지를 쓱 내밀었다. 번역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왜,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학력조건, 이제껏 번역한 책, 번역하며 느낀점, 포기하고 싶었던 적, 앞으로의 활동 계획.... 으아 인터뷰 질문이 꽤나 날카로웠다. 언젠가 대학생 애들이 물어본 내용이랑 하나도 다르지가 않잖아! 누가 정한 질문이냐고 물으니, 역시나... 다들 의논을 하긴 했지만 여자애 중 하나가 적어줬단다.


또 준비할 건 없으냐고 물었더니 번역한 책들 몇권 가져가라고. 심드렁하게 대충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떤 어떤 책을 가져갈지 콕 찝어서 골라주었다. 영화 덕에 초 베스트셀러 됐던 그 책이랑... 번역과정에서 녀석이 계속 참견했던 최근 시리즈물이랑.... ^^;;

그러고는 약속장소로 가며 조카가 한 마디 또 했다. 너무 잘난 척 하지 말고, 겸손하게 인터뷰 해 줘, 고모! +_+


아무렴입쇼,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ㅋㅋ


사진도 찍어야해? 

응, 근데 얼굴 공개되는 거 싫으면 모자이크 처리해줄게. 

땡큐.. 근데 인터뷰 내용은 받아적을 거야, 녹음할 거야? 

받아적기도 하고 녹음도 할 거야. 근데 음성변조도 해줄게. 

으잉? 어.... 얼굴 모자이크 하고 음성변조하고 그러면... 좀 범죄자 같지 않을까?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거나... 으음.. 고맙긴 한데...

내맘이야!

아, 눼;; 그러세요 그럼...


덩치만 컸지 둘째라 집에선 아직도 애기처럼 굴고 노상 휴대폰 게임만 하는 것 같더니만, 밖에서 보니 녀석은 또 느낌이 달랐다. 뭔가 더 훨씬 의젓하고 진지하고... 친구랍시고 엄마를 대동하고 나타난 아이는 덩치가 조카녀석의 절반도 안되는 깡마른 몸매에 테리우스 머리! @.,@ 여자애들 못지 않게 찬찬하고 똘똘한 아이였고, 조카놈이 시키는 대로 인터뷰 질문과 진행은 그 녀석이 도맡았다. 조카 녀석은 마치 엔지니어나 PD라도 되는 듯 음성녹음을 실행하고 질문과 대답을 대충 메모하고, 내 대답이 길어지면 입모양으로 너무 길다고 눈치주고 그만 줄이라고 손짓을 하질 않나, 나름 총지휘 역할. 인터뷰 시작과 끝 마무리 멘트도 소곤소곤 친구에게 사주했다. ㅋㅋ 


카페 한 구석에 앉아서 녀석들이 시키는 대로 따박따박 대답하고 앉아 있으려니 어찌나 웃음이 나는지! 민망하기도 하고 녀석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아 요즘 애들은 5, 6학년이면 벌써 이런 모둠 과제 발표를 하는구나. 중고등학교 때도 그렇고 대학생때도 수업에 조별 과제발표 꼭 있다던데 우왕... 


다른 모둠은 의사, 교수도 만나러 가고, 학교 선생님을 인터뷰하기로 한 애들도 있고, 방송국도 가고 했다는 말에 괜한 자격지심이 든 나는 다들 뭔가 직업이 더 빵빵한데, '겨우' 번역가로 경쟁이 되겠어? 물었더니 '당근'이란다. 뭐 그렇다면야 안심... 


남은 건 아이들이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서 ppt를 얼마나 근사하게 만들어 발표를 하느냐는 건데, 결과물이 어떨지 진짜로 궁금해진다. 대담 원고 정리하고 사진 앉히고 그러는 건 아무래도 인터뷰에 직접 참여한 애들이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었는데 과연? 요즘 열혈 부모들은 따로 숙제 전담 과외선생을 붙이거나 전문가한테 돈을 주고라도 화려한 ppt 파일을 의뢰하고 난리라던데, 조카네 모둠 아이들은 겨우 반나절 머리 맞대고 어떤 걸 만들어낼지... 다 차려진 밥상에 밥숟갈만 얹으려고 했던 여자애들은 어떻게 거들기로 했을지 (조카는 걔네들이 도와준 게 하나도 없으니 이름을 아예 빼버리겠다고까지! ㅋㅋ)... 또 괜한 걱정을 하고 앉았다. 


하여간에 조카 덕분에 퍽 색다르고 신기하고 오글거리는 경험이었다. 계속 뭔가 더 밥벌이가 좋은 ㅠ.ㅠ 재미난 일은 없을까 기웃기웃하면서 자학했던 마음도 애들 질문에 대답하며 새삼 반성이 되었고... (미래는 불투명하고 가난하지만 무엇보다 보람 있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게 중요하지 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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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도서관에서 한꺼번에 빌려준대도 그렇지, 두달만에 30권 읽겠다는 망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는 1년간 읽은 책의 권수를 보니 더욱 명확해진다. 돈벌이와 상관없이 읽은 책은 재독 포함 겨우 25권이었다. 1년에 30권도 못 읽는 주제에 나 원 참... (아쉬운 김에 돈벌이로 읽은 책을 올해부터 끼워넣으려다가 영업비밀상 안될 것 같아서 말았다 ㅋ)

예전에도 읽다가 말고 미뤄두는 책들이 있었지만, 읽기 괴로워도 꼭 끝내야할 것만 같아서 어쩐지 빚쟁이가 된 심정으로 그런 책들을 흘끔거렸다면 이젠 과감히 포기할 책은 포기하는 대담함(?)을 갖추게 되었다는 걸로 나름의 핑계를 삼기로 했다. 나랑 안맞는 책도 있는 거지 뭘, 굳이 억지로 읽을 것까지야 ^^;  

 

하여간 2013년 독서 경향을 보면 궁궐에 대한 책이거나 관련서적이 압도적이다. ㅋㅋ 알량한 안내 매뉴얼 만드느라고 어쩔 수가 없었다. ㅠ.ㅠ 건축 관련 책도 많이 읽은 줄 알았더니 빌려 읽다말고 돌려준 책이 대부분인지 끝낸 건 몇 권 안되네 쩝. 이런 독서경향은 아마 2014년에도 이어지지 않을까나. 뭘 좀 떠들어대려면 아직도 알아야할 게 너무 많다.  흑...

 

2013년부터는 독서노트를 쓸 때 몇줄이라도 감상을 적어놓아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다 실천하진 못했다. 그래도 휴대폰에 iReaditNow라는 앱을 깔아놓았더니 나름 자극도 되고 독서 직후 별점 표시도 할 수 있어서 집계에 도움이 되었다. ^^; 그 별점을 토대로 베스트 책 3권을 뽑아야하는데 그건 여전히 좀 어렵군. ㅋ (째뜬 별 3개 이상은 파란색으로 표기해두었음)

 

 

<비소설>

1. 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삼인, 2006.

안방에서 부엌으로 나가는 문 옆에 또 작게 음식전용 출입구로 쓰이던 쪽문 이야기며, 다락방의 추억 등등, 옛날 내 어린시절과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가 많아 정겨웠다.

2. 우리궁궐이야기, 홍순민 지음, 청년사, 1999.

궁궐공부의 원조 교과서 격이라 또 한번 완전 정독했다. 10년도 더 세월이 흘러, 지은이가 초판에 개탄했던 문제점들이 여러부분 개선되었으니 개정판이 나와줄만도 한데, 왜 절판도 안시키고 계속 옛날 책을 파는지 난 그게 못내 궁금하다. -_-;

3.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 최순우 지음, 학고재, 2002.

역시나 필요해서 재독한 책. 종이가 벌써 누렇게 변해가는 오래된 책을 보며 한국 정원의 미학이니, 차경이니 하는 이야기를 새삼 곱씹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무량수전엘 못가봤을 뿐이고! ㅠ.ㅠ

4. 궁궐, 조선을 말하다, 조재모 지음, 아트북스, 2012.

궁궐 교육 받을 때 이 책의 지은이가 강사진 중 한명이었는데, 강사들 대부분 자기 책 홍보를 했지만 이 책 딱 한권 샀다. 전각에 신을 신고 들어가느냐, 벗고 들어가느냐가 공간 활용에 엄청난 차이를 준다는 이야기에 혹했던 것. 궁궐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 아니라 의례의 공간으로 풀어나간 건축학자의 책이라 열심히 읽었음. 

5. 타블로이드 전쟁,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양철북, 2013.

옐로저널리즘의 시작과 그 '끝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책. 근거 없는 증권가 찌라시와 개인의 sns 문구들이 언론에서 자랑스레 재생산되는 이 시대와 다를 게 뭔가싶다. 따로 포스팅도 했으니 중략.

6.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오영욱 글`그림`사진, 페이퍼스토리, 2012.

길쭉하기만 해서 나로선 도무지 정말 아름답고 빼어난 건축물인지 이해가 잘 안되는 종묘 정전이 표지에 들었고, 지은이는 종묘 정전이 길어서 좋단다. ㅋ. 전작들처럼 지은이의 그림체가 예뻐서 좋았고, 복닥복닥 정신사나운 서울에 대한 내 마음과도 비슷해서 '소장'에 더 의미를 뒀던 책이다. 가끔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감탄하기로. 

7. 감응의 건축, 정기용 지음, 현실문화, 2011.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도 나오는 무주프로젝트 10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건축가들이 다 그림도 잘 그리는 것도 사실이고 정기용 선생은 특히나 미술학도였으니 말할 것도 없지만, 아니 뭐 이리 글도 잘 쓰나그래. 건축에 대한 선망도 있겠다 폭풍감동하며 읽었고 많이도 베겨적어놓았으되 벌써 오래전 일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굳이 인용문을 찾아보자면...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하고 산으로 중첩된 지역은 조물주가 이미 절반 이상을 건축해 놓은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 점에서 이런 땅위에 건축을 한다는 것은 잠시 존재할 수 있는 건축물을 땅 위에 올려놓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즉 땅을 기능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건축과 땅이 결합하면서 자연을 더 자연답게 하고 건축을 더 건축답게 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정할 때 좋은 건축이 가능하다.  - p302

8. 경복궁에 대해 알아야할 모든것, 양택규 지음, 책과 함께, 2007.

9. 조선의 정궁, 경복궁, 신영훈 지음, 김대벽 사진, 조선일보사, 2003.

10. <반차도>로 따라가는 정조의 화성행차, 한영우 지음, 효형출판, 2007.

11. 경복궁에서 세종과 함께 찾는 조선의 정체성, 박석희, 최석원, 황금희 지음, 미다스 북스, 2013.

12. 신궁궐기행, 이덕수 지음, 대원사, 2004

모두 참고용으로 읽은 책인데 요긴히 도움을 받은 책은 <경복궁에 대해 알아야할 모든 것>과 <경복궁에서 세종과 함께 찾는 조선의 정체성>. 전자는 몇년 시간이 지나며 복원 사업 탓인지 수정해야할 부분이 더러 있었지만 전각별로 속속들이 짚어주어 좋았고, 후자는 경복궁 관련 가장 따끈한 책이라 의미 있었던 듯. 궁궐관련 책들은 서로서로 참고해서 쓰다보니 비슷한 면이(틀린 부분까지도!) 많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

13. 조선의 못난 개항, 문소영 지음, 역사의 아침, 2013.

근대역사에 급관심이 생겨서 찾아본 책. '일본은 어떻게 개항에 성공했고 조선은 왜 실패했나'는 부제에 딱 맞게 실패원인을 다각도로 조명해준다. 역사에는 if가 아무런 소용없는 짓이라지만, 우리로선 노상 '그랬었더라면...'이라고 상상하게 되는 걸 어쩌겠나. 드물게 포스팅도 했으니 길게 설명 안하겠음.

14. 남아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유진숙 지음, 파라북스, 2010.

이태준, 김동인, 한용운, 백석. 이상.... 서울 곳곳에 남은 문인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문학산책이다. 잊고 있던 싯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건 좋았으나 이미 흔한 기획이고 뻔한 글처럼 느껴졌음. ^^;

15. 1901년 서울을 걷다, 버튼 홉스 지음, 이진석 옮김, 푸른길, 2012.

역시나 근대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빌려읽은 책. 종종 부정확하지만 퍽 객관적인 외국인의 흥미로운 시각으로 본 조선의 근대라는 점에 의미가 있을 듯.

16. 조선 궁궐의 그림, 한국학중앙연구원(박정혜, 황정연, 강민기, 윤진명) 지음, 돌베개, 2012.

그림도 내용도 실해서 소장욕을 엄청 불러일으키는 책! 33000원이라는 고가만 아니었다면 벌써 사들였을 텐데.. ㅠ.ㅠ 

아쉬움이 있다면 지은이 여러 명이 나눠 집필하다보니 챕터별로 설명이 중복되어 중언부언하는 느낌이 들고 전체적인 짜임새 면에서 헐거워졌음. 그래서 물론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17. 즉위식, 국왕의 탄생, 김지영, 김문식, 박례경, 송지원, 심승구, 이은주 지음, 돌베개, 2013.

역시나 갖고 싶은 책! 앞책과 비교할 때 서론, 본론, 결론(물론 이렇게 나눠놓은 건 아니고!)의 구성이 짜임새 있었고 깊이와 재미와 볼거리를 모두 충족시켰음.

18.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 이상현 지음, 효형출판, 2013.

건축엔 당연히 그 시대와 사회의 이념과 사상이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지만, 건축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인간을 길들이기까지 한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다. 제목에 혹해서 빌렸다가 두번이나 연장까지 해가며 다 읽은 2013년 마지막 독서. 꽤 재미있었음.

양반집에서는 사랑채와 행랑채, 안채를 구분함으로써, 향교나 서원에서는 계단을 통해서, 궁궐에서는 왕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에서 길들이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도시는 공간구조를 계급구조와 일치시킴으로써, 수도를 정하는 일에서는 수도에 물적, 인적, 시스템적 조건을 몰아줌으로써 길들이기를 수행한다. 이들 모두 건축활동의 결과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p123. 

 

 

<소설>

1.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지음, 서민아 옮김, 예담, 2010.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엄청 길지도 않은데 읽기 시작했다가는 몇번이나 중간을 못넘기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완독의 동기는 <500일의 썸머> ㅋㅋ 사랑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에 시큰둥하던 썸머가 카페에서 이 책을 읽다가 누군가를 만났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ㅎㅎㅎ 나도 뭐 그런 기대를 품고서 카페에서 펼쳐 읽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취침전 독서로 한 사흘 만에 끝내느라고 잠을 잘 못잤다. ;-p 째뜬 뒤표지에 스포일러를 담는 건 좀 안했으면!

2. 그레이스 1,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민음사, 2012.

실화를 소재로 어찌도 이리 손에 잡힐 듯한 현실을 상상하고 묘사했는지 감탄. 노련한 추리기법으로 끝까지 궁금증을 놓지 않게 하는데다, 진실은 끝내 알 수도 없다. 두 권을 단숨에 내처읽은 듯.

3. 고양이 눈 1, 2,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민음사, 2007.

원제인 cat's eye는 보석 이름일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집어들었는데 그게 아니라 어린시절 갖고 놀던 구슬에 들어있는 고양이 눈 모양 무늬를 말하는 거였다.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잔인하고 은밀한 괴롭힘, 상처로 남은 유년의 기억들, 다름을 받아들이고 대하는 아이들 방식의 섬뜩함이 요즘 아이들의 왕따문화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4. 위험한 관계,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밝은 세상, 2011.

'이미 읽기 시작했다면 내려놓기 힘든 책'이라는 <더 타임스> 인용문이 뒷표지에 적혀 있지만 나는 처음 몇장 읽다가 내려놓기를 몇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ㅋㅋㅋ <빅 픽처>를 처음으로 읽었어야 할 걸 그랬나 싶었음. 어쨌거나 내 심리와 운대가 맞았는지 어느 날인가 드디어 내처읽을 수 있었고 그럭저럭 재미나게 읽었다. 요동치는 여성심리를 '남성작가 치고는' 꽤나 공감가게 묘사한 것 같다. 특히 '불충분한 느낌'에 대해서는 내가 따로 포스팅도 했을 정도 ^^;

우리의 대화에 공통된 주제가 있다면 이 오래 지속되어온 불충분한 느낌이었다. 대학시절 내가 내내 그랬지만 성적이 B학점을 넘지 못하면 늘 하던 걱정.... 내가 모든 면에서 '괜찮은 편이지만' 그리 뛰어나지는 못한 사람 같다는 기분.... 내가 꽤 저명한 신문사에서 오래도록 일했거나 특파원이었다거나 직업 일선에서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늘 의심을 품었고, 언제 내 능력이 들통날지 염려스러웠다. - p267

5. 아름다운 나날, 플뢰르 이애기 지음, 김은정 옮김, 민음사

모던클래식 12권. 키드님한테 양도받은 책이라 약간의 부채감이 없을 수 없었다. ㅎㅎ 성장기 소녀의 감수성을 담아낸 자전소설이랄 수 있는데, 성장기 소녀의 아픔은 마거릿 애트우드 책으로 이미 한 번 느껴본 터라 딱히 좋은 느낌이 없었다.

6. 향수,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민음사, 2000.

쿤데라의 소설은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가끔 인상적인 문장에서 한번씩 휴 한숨을 내쉬며 읽게 되는 것 같다. 도서관에서 대거 빌렸다가 다 그냥 반납한 책들은 관두고 집에 있는 쿤데라 책부터 올핸 다시 좀 재독하며 그의 문장에 더 취해봐야지 결심중.

7.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2013.

정말 수시로 깔깔거리며 읽었다. 어떻게 그 다양한 세계사를 한 개인의 역사로 다 엮을 수가 있는지 재주가 놀랍다고 생각. 너무 어처구니없는 우연의 연속이더라도 암튼 그 모든 사건을 하나로 관통시킨 역량과 유머는 높이 사줄만 하다. ㅋㅋ 게다가 트렌디한 번역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한 발랄경쾌한 번역체도 인상적이었다. <와 시발, 진짜 대박 성경책이다!> 같은 문장을 수시로 번역서에서 만날 수 있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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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게 안식년 선언도 했겠다, 악착같이 알뜰하게 버티면 1년쯤은 탱자탱자 놀면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으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적어도 반년(그러니깐 최소한 4월까지!)은 놀아야 재충전을 위한 안식'년'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 게 아니냐고! 그러나 수년째 알량한 수입으로 버텨온 재정상태에 비해, 긴축을 해 살아도 고정된 씀씀이는 별로 줄지 않았고 통장 잔고는 다달이 푹푹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었다. 호기롭게 놀아보겠다던 결심도 당연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번역가도 실업수당 같은 걸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ㅠ.ㅠ 작년과 재작년에도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삶을 살았으니, 10여년 전에 다시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고 일을 중단했을 때와 비슷한 통장 잔고로는 애당초 시작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땐 등록금을 내야 했으니, 지금 다달이 들어가는 보험료와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따위의 총액과 대강 엇비슷할 거라 여겼는데... 누가 셈에 젬병 아니랄까봐 통장 바닥나는 속도는 내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위기감에 휩싸여 보험을 해약할까 어쩔까 어떡해야 더 버틸 수 있을까, 노는 기간을 6개월로 줄여야 하나 한창 약해진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자니, 일감 문의 전화를 전처럼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번역 문의가 오면, 신뢰 못할 악덕 번역자로 출판계에서 완전히 매장당한 건 아니로구나 내심 기뻐하며 우아하게 내년을 기약하자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자꾸만 구차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어흑... 

 

올 10월 중순이면 만 일년을 꼬박 노는 셈이므로, 올 들어서는 여름 이후 정도로 가능한 일정을 통보하면서도 몇번 더 도끼질을 당하면 넘어가고 말 거란 예감이 들었다. 연로하신 노모한테 얹혀사는 것도 모자라 용돈까지 달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그저 가난이 웬수! 그래도 불황에 허덕이는 출판계를 감안하면 여름까지 통 일감 의뢰가 들어오지 않을 확률도 높으니 그저 운명에 맡기련다 하고 앉았었는데... 여차저차해서 으음... 설날 지나고 결국 계약에 응하고야 말았다. 장당 500원도 아니고 300원 인상에 마지못한 듯 넘어가면서 가슴 한켠이 슬픔으로 먹먹해졌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구나. 물려받은 재산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는 나 같은 인생이 신나게 아무 걱정 없이 놀고먹을 가능성은 결국 로또 당첨밖에 없다는 결론. 그러나 내 사주는 평생 소박하고 성실하게 꾸준히 벌어먹어야 한다던데 행여나!

 

어쨌거나 이젠 정말 진득하게 앉아서 일 좀 해야하건만... 펄럭거리는 궁둥이가 좀체 묵직해지질 않는다. 이 짧은 포스팅 하나도 제대로 못 끝내고 왔다갔다 여러번 오가는 산만함을 어뜨케 잡아야할 것인가. 그 또한 문제. 이래저래 서글프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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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베스트 포스팅을 하려고 보니 먼저 읽은 책 정리부터 해야겠다 싶었다. 마흔권을 넘겼던 작년에 비해 권수가 거의 절반으로 줄었으니 정리하기도 더 수월하다. 읽은 족족 누구에게든 도움이 될만한 독후감을 써놓으면 참 좋으련만 올해도 독서후기는 거의 남기지 못했고, 독서노트랍시고 만들어놓은 공책에도 감상은 별로 없고 죄다 베껴적어놓은 인용문 투성이다. 그래서 어떤 책은 제목도 벌써 가물가물, 낯설 정도다. 적어놓은 제목을 보며 소설인지 비소설인지 분류하는 것도 혼동했으니 오죽하랴. 어쨌든 따져보니 24권, 한달에 딱 2권 꼴이다. 여름 지나고부터는 통 소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비소설만 찾아보았는데도 소설이 적지 않아 좀 놀랐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일도 하기 싫어 마냥 방구석에서 뒹굴러다니는 날들이 많았기에, 독서경향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 그저 이 정도로도 장하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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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될까

투덜일기 2012. 11. 23. 22:54

이젠 어느 동네엘 가도 잘 찾아볼 수 없는 소형 서점이 최근 우리 동네에 생겼다. 제법 큰 플래카드를 두어 군데나 붙여놓고 개업을 알리는 서점이 걱정스럽고도 신기해서 일부러 언덕을 넘어 구경을 갔었다. 옛날 내가 다니던 학교앞 책방처럼 학습지 교재와 잡지가 주요품목이고, 잘은 모르지만 베스트셀러 신간 정도는 갖추어 놓은 것 같았다. 늦은 오후, 비좁은 책방에 당연히 손님은 한명도 없어서 차마 들어가도 될까, 인사 받고 들어가서 구경만 하고 나오면 안될텐데, 누구든 손님이 들어가면 따라 들어가야지 마음먹고 버스 기다리는 척 한참을 기다렸으나 손님이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괜히 들어갔다가 읽지도 않을 책이나 잡지를 집어오기도 뭣하고, 딱히 사고픈 책(있느냐고 물어볼;;)도 생각나지 않아서 결국 줏대없이 그냥 돌아섰다.

 

얼마전엔 오래도록 비어있던 동네 입구 상가 한 귀퉁이에 '이탈리아 수제 버거'집이 생겼다. 응? 햄버거가 이탈리아 음식이었나? 의문도 잠시, 입구에 나무데크를 깔고 인테리어에도 꽤나 신경을 쓴 그 가게가 걱정스러워서 나는 오갈 때마다 안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주민이라고는 노인들이 대부분인 강북의 오래된 주택가가 하루 중 활기를 띠는 때는 언덕 꼭대기에 있는 중학교 여학생들이 등하교를 할 때 뿐이고, 하나 있는 치킨집마저도 장사가 잘 안될 지경인데 햄버거집이라니. 마치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듯 매번 부지런히 빈 테이블을 닦거나 주방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두 여인을 슬쩍 훔쳐보며 안타까웠다. 이미 '수제 햄버거'로는 동생이 뜨거운 맛을 본 뒤라 남일 같지가 않았다. 여중생들이 먹어봤자 떡볶이랑 김밥일 텐데 대체 누굴 대상으로 가게를 열었을까?

 

처음 한달은 통 손님이 든 모습을 못보겠더니 그래도 두어달 지난 요즘엔 커피잔을 앞에 두고 수다를 떠는 사람이나 유치원 끝난 아이를 데리고 들른 엄마 손님 한 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가끔 보였다. 나만큼이나 그 햄버거집을 염려하던 울 엄니('수제' 햄버거집은 웬만해선 곧 망한다고 굳게 믿고 계심;;)는 오지랖 넓게도 바로 옆에 있는 미용실 아줌마를 통해 정보를 입수해왔다. '수제' 햄버거가 '단돈 천원'부터라 여중생들이 곧잘 사먹긴 하는데 그래봤자 임대료나 나오겠느냐고, 인건비까지 뽑긴 어려울 거라고. 커피는 맛있다더냐는 내 질문에는 대답을 얻지 못했다. 하기야 나도 커피 한 잔 안팔아주면서 말로만 걱정은!  

 

부디 내가 볼 때만 유독 그런 것이라면 좋겠으나 대부분 '개점 휴업' 상태가 분명한 두 가게를 보며 요즘 내 상황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서, 주로 자고 먹고 놀고 쉬고를 반복하는 나날을 본격적으로 즐긴지 한달이 좀 넘었다. 말로는 거창하게  나도 안식년이라는 것 좀 누려보자고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개점휴업, 그냥 일이 없어 노는 것과 뭐가 다른가?

 

굳이 변명을 하자면 친구의 휴가에 맞춰 일을 빼느라 꼼수를 부리긴 했다. 허나 휴가가 한두달도 아니고 겨우 2주였으니 핑계거리밖에 안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고는 순전히 일을 하기가 싫어서, 이미 너무 늦어버린 계약마감에 쫓기는 게 숨막혀서, 아니 나도 나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고 출판 담당자만 계속 물먹이는 상황이 죄스러워서, 결국 두 건은 계약금 돌려주고 일을 포기했다. 사실 한권은 절반 이상 진행된 상태라 아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멀미가 나서 다시는 부실한 원고륻 들춰보고 싶은 마음도 안드는 상황을... 과연 누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출판 담당자에겐 천인공노할 죄를 진 셈이지만 암튼 그땐 그랬다.

 

 그런데 그러고도 이상스레 마음은 편했다. 막연한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17년간 번역일을 해오면서 한번도 사라지지 않은 조바심과 다를 바 없다. 아무도 내게 일을 주겠다고 찾는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과연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모든 프리랜서의 숙명적인 고민이 아니겠나. 원숭이 줄타기의 법칙을 아무리 고수한들 언제고 한두 번은 떨어지게 돼있다. 더욱이 단군이래 최대불황이라는 출판계의 비명은 그저 엄살이 아니라 해마다 변함없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걸 왜 모르겠나. 그런데도 이 엄혹한 마당에 안식년을 즐겨보겠다는 용기가 참 가상할 지경이다. 

 

잠자리에 들어서 오늘 과연 뭘 했나 돌이킬 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무위도식하며 사는데도(어쩌면 그러기 때문에;;), 생각보다 하루는 참 빨리도 지나간다. 컴퓨터와 인터넷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살것 같더니만, 일하기 싫어서 게으름 부릴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며칠씩 컴퓨터를 켜지 않아도 아무렇지가 않다. 대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긴 하지만, 부쩍 심해진 노안 덕분에 작은 화면으론 뭘 오래 보기도 어려우니 그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됐다.

 

뭘 좀 배울까, 운동을 할까, 텅빈 머리는 어떻게 채울까, 여행을 갈까, 빈한기의 삶은 어떻게 유지해야 좋은가, 별로 힘들이지 않고 허투루 하는 생각들은 당연히 아무런 결과도 낳지 못한다. 그저 궁금할 뿐이다. 우리 동네 서점과 동네 수제햄버거집처럼 나의 안식년도 과연 잘 될까, 하고. 그러고는 이내 눈을 질끈 감는다. 잘 되겠지 뭐. 서점과 햄버거집 주인들도 아마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결국엔 죽지만 죽으려고 사는 사람은 없듯이, 잘 안되려고 뭔가를 벌이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나. 나는 다만 뭔가를 '벌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되는 일이다. 해보니 그건 퍽이나 쉽다. 무위도식, 이게 딱 내 적성이었는데 그간 몰랐던 게 한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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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덜일기 2012. 6. 11. 17:40

쓰다 만 서도호 전시 후기를 마무리 해야하는데 통 못하고 있다.

요즘은 특히나 글이 눈에 잘 안들어오고 써지지도 않는 시기인 듯.

풋. 슬럼프 핑계 대기도 이젠 민망하고 지친다.

 

최근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정리해야 할 계기가 있었다.

번역가라는 직업의 장단점도 새삼 꼽아보고, 알고보면 허술하고 열악한 출판번역계의 현실도 인정하고

분명 매력 있는 일이지만 잘 하려 들면 들수록 더 큰 어려움이 느껴지는 번역의 허망함도 까발렸다.

탁 까놓고 연봉이 얼마나 되냐는 물음엔 '영업상 비밀'이라고 눙치는 데 성공을 거두었으나

'나만의 번역론'이 무얼까 하는 질문에선 딱 막혔다.

......

 

이미 많은 유명인들이 번역에 관하여 워낙 주옥같은 명언들을 쏟아냈기에

난 그저 살짝 얹혀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번역은 반역", "번역은 실패의 예술", "번역은 경계를 넘어서는 일", "번역은 언제나 손실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훌륭한 번역론을 감히 내가 어찌 생각해내겠나.

노동력 대비 수익성이 현저히 떨어지기는 하나 그래도 내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훌륭한 밥벌이 수단이라 여기며 그저 감사할밖에.

 

내가 허투루 보내는 오늘 하루가 누군가에겐 절박하고 간절한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식의

감상적 사고 전환이 더는 불가능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노상 투털투덜 구시렁구시렁 불평불만 많은 나의 직업이 누군가 몹시 선망하는 목표라는 사실도 크게 절실하진 않다.

인간은 원래 가진 걸 잘 몰라보고 늘 멀리서만 파랑새를 찾는 족속이 아닌가.

 

그럼에도 가끔씩 허우적대던 구멍에서 벗어나 돌아보고 반성하고 주제파악을 하는 건 꽤 건설적인 과정이다.

초심으로 돌아가기엔 속물 근성이 너무 완연해졌더라도

그게 어떤 마음이었는지 기억을 뒤지며 조금 웃을 수 있었다.

17년 전의 나는 참 무모하게도 패기 넘쳤고, 그런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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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삶꾸러미 2012. 2. 1. 03:00

며칠 뒤면 만난지 꼭 13년째 되는 이들을 주말에 만났을 때 어쩌다 나온 이야기인데, 나를 알기 이전에는 책을 읽을 때 한번도 번역자에게 신경을 써본 적이 없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지금도 내가 번역한 책이나 돼야 옮긴이 이름을 눈여겨 볼 뿐, 다른 책은 여전히 무관심하다나. 그렇다면 나는 과거에 어쨌더라? 번역을 생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다음에야 당연히 번역의 질과 번역자가 최고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겠으나, 그 이전에는?

흔히들 가장 훌륭한 번역자는 투명인간이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 번역서를 읽고 있으되 번역서를 읽고 있다는 의식이 들지 않을 만큼 문장이 매끄럽고 작품의 결을 살려, 지은이와 독자 사이에서 '번역'이라는 중간단계의 존재를 가능한 한 일깨우지 않아야한다는 뜻이다. 순수하게 책읽기를 즐기고 감동하였다면 그 찬사는 오로지 작가를 향한 것일뿐, 번역자가 누구인지는 굳이 몰라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는 별 생각 없는 독자 시절에도 확실히 번역자에게 관심을 두었다. 그 옛날 세계문학전집류의 번역이야 다 거기서 거기였으므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간간이 손에 들어오는 단행본 번역서의 경우엔 중고등학생의 눈에도 느낌이 달랐다. 같은 루이제 린저의 책이라도 전혜린 번역은 감동스러운데 다른 사람이 번역한 책은 이게 뭔소린가 싶어 여러번 되돌아가며 읽어야했다. 고려원에서 출간되어 라디오에 광고까지 나오던 당대의 화제작들 가운데서도, 밤을 홀딱 새가며 손에서 놓지 못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도저히 책에서 묘사되는 상황과 인물이 그려지지 않는 책도 있어 짜증이 났다. 그런 부실한 책의 번역자는 부러 눈여겨봐두곤 했다. 나중에 피해 읽으려고. -_-; 특히 고려원의 단골 번역자 중에 영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십수년 뒤 내가 이 분야에 들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하생들에게 원고료 반값도 안주며 번역시키고 자기 이름으로 책 내는 걸로 유명한 분이었다. 아직까지도 현역에서 활동중이시던데 설마 여전히 그러지는 않으니까 출판사에서 계속 일감을 주는 것이기를 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특히 교수입네 하는 사람들이 번역한 책을 유독 못미더워했다. 웬만한 교수님들은 시간도 없고 논문 한편으로밖에 인정해주지 않는 번역에 힘쓸 이유가 없기에, 죄다 제자들한테 번역 시켜 원고정리만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특히 전공책 같은 건 어떻게 번역본보다 차라리 원서가 더 쉬울 수가 있는지! @.,@ 하지만 나 같은 사람들의 의구심과 불신을 알면서도 묵묵히, 꾸준히 손수 번역에 힘쓰는 교수님들도 분명 존재한다. 본인이 아니고선 누가 하겠나 싶어 사명감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고, 고전의 경우엔 공신력 있는 번역을 원하는 출판사들이 교수진을 설득해 본인에겐 크게 득될 것도 없는 일감을 맡기는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종신교수직도 갖고 있으면서 번역도 잘하는 분들은 나에겐 워낙 넘사벽이라, 외국어를 두세개씩 전천후로 막 번역하는 다재다능 번역가들에게 품는 질투심 같은 것도 아예 생기질 않는다. 요번에 드디어 줄리언 반스를 읽어보겠다고 사둔 책들을 들춰보니 번역자가 모두 신재실 선생이다. 호흡도 그렇고 소설 내용도 박학다식하여, 쉽지 않았을 것 같은 번역 문장도 마음에 들어 어떤 분인가 슬쩍 약력을 살피니 1941년생이시란다. 그렇다면 울 엄마와 동갑! 올해로 일흔둘의 나이다. 초판이 나온 건 2005년이니까 그보다 몇 해 전에 작업했다고 해도, 60대 초중반에 번역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교수 정년이 65세니까 어쩌면 투잡족의 시기에 번역을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순전히 내 상상 시나리오에 그칠 수도 있다;;) 2011년 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최신작 <The Sense of an Ending>도 아마 같은 분이 지금 막 번역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상상하며(파피, 블루고비, 새알밭님이 모두 원서로 읽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작품이다;;), 나는 또 괜히 비감에 젖었다.

처음 생업이자 천직이라 여겨 이 길에 들어섰을 땐 정말 득의양양했다. 좋아하는 책 노상 끼고 볼 수 있고, 시간 자유롭고, '정년'도 없고 얼마나 좋은가!
.....

하지만 이 일로 10년을 넘기고 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정년'이 없다는 게 그렇게 환상적인 업무조건은 아닐지 모른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딱 예순살까지만 일하고 은퇴해서 소박하지만 유유히 놀고 먹을 순 없을까. 길게 잡아도 예순다섯살까지만 일하고 싶은데! 내가 이런 말을 하고 다니면 주변에서 끌끌 혀를 차거나 한심해 했다. 늙어서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게 얼마나 큰 특혜일 텐데 배부른 소리 하고 앉았구나. 그 정도 벌이와 씀씀이로는 아마 너 평생 죽기 직전까지 일해야 할걸? 누가 그때까지 계속 일감을 주기는 한다냐? 

설상가상 요샌 평균수명이 '너무' 늘어 100살까지 산다고들 난리다. 노령화사회의 폐해가 어쩌고 저쩌고 겁을 줘가면서. 심지어 남들은 철밥통으로 알고 있는 종신교수직에 있는 지인도 65세에 정년퇴직하고 나면 얼마 되지 않는 사학연금으로는 100살까지 살기 어렵다며 무언가 다른 방도를 내야한다고 엄살을 떤다. 으윽. 그렇다면 결국 결론은 내가 '정년'과 '은퇴'에 관한 생각을 바꾸고 십수년전의 나로 돌아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희희낙락 열심히 일을 해야한다는 의미다. 계속 신뢰를 쌓아 노년에도 계속 찾는 이가 있도록 깊은 내공을 쌓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별 내공도 쌓지 않은 채 올해로 '겨우' 번역 17년째 접어든 나는 자꾸 꾀가 나서, 뭔가 더 내게 잘 맞고 머리를 덜 쓰는 일은 없을까 두리번거리고 있을 뿐이고... ㅠ.ㅠ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는 좀 쉬라고 노인들에게 말해줄 복지사회 따윈 이 땅에 거의 불가능한 것 같은데 대체 어쩌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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